삼성 라이온즈/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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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준플레이오프 탈락으로 코칭스태프를 대거 보강했는데, 우선 이전에 삼성에서 투수코치로 있었던 유백만 前 MBC 청룡 감독을 수석코치로 영입했다. MBC 청룡에서 타격코치로 있던 우용득을 다시 영입했고, 1987년을 끝으로 은퇴했던 원년멤버 손상대를 배터리코치로 불렀다. 은퇴한 권영호는 투수코치를 맡았고, 기존 투수코치였던 황규봉은 계약 만료로 일본으로 연수를 갔다[2] . 류영수 前 MBC 청룡 투수코치를 2군 감독으로 영입했다. 정동진과 류영수는 현역 시절 제일은행에서 오랜 기간 배터리로 호흡을 맞춰 온 절친이다.
또한 국내 프로야구 구단으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산하 트리플A에서 투수코치로 있던 마티 디메리트[3] 를 영입했다. 1989년 말 마무리 훈련에서 재미교포 웬델 김과 인스트럭터로 투수들을 지도한 것이 인연이 됐는데, 짧은 기간이었지만 투수들에게 귀감이 됐고 당시 국내프로야구에서는 생소했던 스플리터를 선보이도 했다.자, 손가락을 벌려 잡았죠. 이게 스플리터예요. 이밖에 서클 체인지업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는데, 서클 체인지업이 팔꿈치에 무리를 준다고 당시 국내 야구인들이 이를 비난하기도 했다. 마티 코치는 기존의 많이 뛰고 많이 던지기만 했던 투수들의 훈련 방법에도 변화를 일으켰고, 김상엽에게 파워 커브 등의 변화구를 전수하면서 그를 에이스를 키웠다. 하지만 최동원과는 훈련 방법을 두고 마찰을 빚었다.
1988년 시즌 후 강만식, 권영호, 김훈기, 양일환 등이 은퇴했다.
1989년 12월 18일에 신생팀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 지원으로 진동한이 지명돼 같은달 27일에 이적했다.
1989년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것을 선수들의 정신력이 해이했던 탓으로 봤는지 1990년 초에 야간산행을 비롯해 공수부대에서 유격 훈련과 담력 훈련 등의 강도 높은 극기훈련을 실시했다. 이따금 인터넷에 떠도는 과거 삼성 선수들의 극기훈련 사진이 바로 이 때 찍은 것으로, 삼성이 이러한 극기훈련을 실시한 건은 이때 뿐이었다. 한편 투수들은 마티 코치와 함께 필리핀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입단 2년차였던 김상엽이 마티 코치로부터 파워커브를 배우며 급성장해 12승 18세이브를 기록했다. 신인 이태일은 8월 8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프로야구 통산 6번째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구단 첫 노히트 노런이자 역대 신인이 기록한 최초의 노히트 노런. 이 노히트 노런을 비롯해 이태일은 13승을 기록하며 선발의 한 축으로 활약했다.
타선에서는 류중일과 박승호가 3할 타율을 기록하면서 각각 유격수 부문,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하지만 팀 창단멤버들이 하나둘씩 은퇴하는 가운데 1980년 중반 이후로 대구·경북지역 고교팀의 성적이 하락하면서 주전급 유망주가 나오지 않았고 이는 팀 전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66승 2무 52패로 4위를 차지했다.
자세한 내용은 KBO 준플레이오프/1990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KBO 플레이오프/1990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1990년 한국시리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비록 정규시즌에서는 4위를 차지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빙그레 이글스를 2연승으로 꺾고, 플레이오프에서는 해태 타이거즈를 3연승으로 꺾는 기염을 토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으나 한국시리즈에서는 정규시즌 1위였던 LG 트윈스에게 4연패로 무너졌다.
삼성은 한국프로야구가 시작한 1982년 이후 최초로 4위팀 자격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고 준우승에 그쳤다. 1996년 현대 유니콘스, 2002년 LG 트윈스, 2003년 SK 와이번스, 그리고 2013년 및 2021년의 두산 베어스 역시 4위팀 자격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고 모두 준우승하였다.
5월 29일 대구 해태 타이거즈전에서 이만수의 깡통투척 사건이 일어났다.
6월 5일 잠실 OB 베어스전에서는 OB 선수들과 난투극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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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토브리그[편집]
1.1. 코칭스태프 이동[편집]
1989년 준플레이오프 탈락으로 코칭스태프를 대거 보강했는데, 우선 이전에 삼성에서 투수코치로 있었던 유백만 前 MBC 청룡 감독을 수석코치로 영입했다. MBC 청룡에서 타격코치로 있던 우용득을 다시 영입했고, 1987년을 끝으로 은퇴했던 원년멤버 손상대를 배터리코치로 불렀다. 은퇴한 권영호는 투수코치를 맡았고, 기존 투수코치였던 황규봉은 계약 만료로 일본으로 연수를 갔다[2] . 류영수 前 MBC 청룡 투수코치를 2군 감독으로 영입했다. 정동진과 류영수는 현역 시절 제일은행에서 오랜 기간 배터리로 호흡을 맞춰 온 절친이다.
또한 국내 프로야구 구단으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산하 트리플A에서 투수코치로 있던 마티 디메리트[3] 를 영입했다. 1989년 말 마무리 훈련에서 재미교포 웬델 김과 인스트럭터로 투수들을 지도한 것이 인연이 됐는데, 짧은 기간이었지만 투수들에게 귀감이 됐고 당시 국내프로야구에서는 생소했던 스플리터를 선보이도 했다.
1.2. 선수 이동[편집]
1988년 시즌 후 강만식, 권영호, 김훈기, 양일환 등이 은퇴했다.
1989년 12월 18일에 신생팀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 지원으로 진동한이 지명돼 같은달 27일에 이적했다.
1.3. 신인 선수[편집]
- 포지션은 지명 당시 기준.
2. 전지훈련[편집]
1989년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것을 선수들의 정신력이 해이했던 탓으로 봤는지 1990년 초에 야간산행을 비롯해 공수부대에서 유격 훈련과 담력 훈련 등의 강도 높은 극기훈련을 실시했다. 이따금 인터넷에 떠도는 과거 삼성 선수들의 극기훈련 사진이 바로 이 때 찍은 것으로, 삼성이 이러한 극기훈련을 실시한 건은 이때 뿐이었다. 한편 투수들은 마티 코치와 함께 필리핀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3. 정규 시즌[편집]
입단 2년차였던 김상엽이 마티 코치로부터 파워커브를 배우며 급성장해 12승 18세이브를 기록했다. 신인 이태일은 8월 8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프로야구 통산 6번째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구단 첫 노히트 노런이자 역대 신인이 기록한 최초의 노히트 노런. 이 노히트 노런을 비롯해 이태일은 13승을 기록하며 선발의 한 축으로 활약했다.
타선에서는 류중일과 박승호가 3할 타율을 기록하면서 각각 유격수 부문,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하지만 팀 창단멤버들이 하나둘씩 은퇴하는 가운데 1980년 중반 이후로 대구·경북지역 고교팀의 성적이 하락하면서 주전급 유망주가 나오지 않았고 이는 팀 전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66승 2무 52패로 4위를 차지했다.
4. 포스트시즌[편집]
4.1. 준플레이오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http://obj-sg.the1.wiki/d/2a/c3/2af8a3cde73220d4d2ce2a2d6cd7ab6096df203a6cf8021431522ae01d6c0ecb.png)
4.2. 플레이오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http://obj-sg.the1.wiki/d/2a/c3/2af8a3cde73220d4d2ce2a2d6cd7ab6096df203a6cf8021431522ae01d6c0ecb.png)
4.3. 한국시리즈[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http://obj-kr.the1.wiki/d/2a/c3/2af8a3cde73220d4d2ce2a2d6cd7ab6096df203a6cf8021431522ae01d6c0ecb.png)
비록 정규시즌에서는 4위를 차지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빙그레 이글스를 2연승으로 꺾고, 플레이오프에서는 해태 타이거즈를 3연승으로 꺾는 기염을 토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으나 한국시리즈에서는 정규시즌 1위였던 LG 트윈스에게 4연패로 무너졌다.
삼성은 한국프로야구가 시작한 1982년 이후 최초로 4위팀 자격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고 준우승에 그쳤다. 1996년 현대 유니콘스, 2002년 LG 트윈스, 2003년 SK 와이번스, 그리고 2013년 및 2021년의 두산 베어스 역시 4위팀 자격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고 모두 준우승하였다.
5. 사건·사고[편집]
5월 29일 대구 해태 타이거즈전에서 이만수의 깡통투척 사건이 일어났다.
6월 5일 잠실 OB 베어스전에서는 OB 선수들과 난투극이 벌어졌다.
6. 선수별 개인 성적[편집]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성적.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 투수는 이닝이 많은 순서대로, 타자들은 타수가 많은 순서대로.
6.1. 투수[편집]
- 우완
- 좌완
6.2. 타자[편집]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