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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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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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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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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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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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1990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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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승: 준우승 | : 포스트시즌 진출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1 KBO 리그 1999 시즌 {{{#FFFFFF |}}} 삼성 라이온즈 }}}
순위



승차
승률
4 / 8
73
2
57
-1.0
0.562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
1.2. 충격적인 영입의 연속
1.3. 신인 지명
1.4. 외국인 선수
1.5. 기타 사항
2. 전지훈련
3. 정규 시즌
3.1. 선수 이동
4. 포스트시즌
5. 선수별 개인 성적
5.1. 투수
5.2. 타자
6. 수상 및 기록



1. 스토브리그[편집]



1.1. 코칭스태프 이동[편집]


수석코치로 서정환의 측근인 김용희를 영입했다. 투수코치는, 작년부터 투수코치였던, 이용철코치로 쭉 이어간다. 2군 감독으로 해태에서 신용균을 데려왔다. 은퇴한 이순철은 주루코치가 됐다.


1.2. 충격적인 영입의 연속[편집]


1998년 말 사장이 교체됐다. 이 신임 사장이 구단 지원에 아낌 없었는데, 전력 보강 차원에서 여기저기서 선수들을 수집하다 보니 팬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 현대 유니콘스쌍방울 레이더스박경완조규제를 데려와 1998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1번도 못한 삼성으로서는 그런 현대의 모습이 배 아플 수밖에 없긴 했지만.

1998년 11월 3일, 선발보강 차원에서 한화 이글스에서 노장진을 영입하는 대신 최익성과 박태순을 보냈다. 12월 14일에는 마무리를 데려온다고 양준혁, 곽채진, 밥 잘먹는황두성에 현금 30억원 가량까지 보태가며 해태 타이거즈에서 임창용을 데려왔다. 마무리가 필요하다고 리그 정상급 타자[1]이자 1998년 올스타전 최다득표를 얻은 팀내 최고 인기선수를 트레이드 해버린 것. 양준혁은 트레이드에 불복했으나 결국 삼성팬들은 양준혁이 붉은 유니폼을 입는 모습을 봐야했고, 해태팬들은 한동안 마무리 기근에 시달렸다. 다만 1998년 시즌 중에도 임창용의 트레이드 얘기가 거론됐을 정도로, 삼성은 이미 임창용을 탐냈었다.

12월 25일에는 양준혁의 빈 자리와 중간계투 보강 차원에서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김기태, 김현욱[2]을 데려왔다. 12월 30일에는 두산 베어스에서 현금트레이드로 김상진을 데려왔다.

삼성 라이온즈에 돈성이란 별명이 붙은 건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지만, 그 전설은 이 해부터 시작됐다.


1.3. 신인 지명[편집]


  • 포지션은 지명 당시 기준.
  •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입단하지 않은 선수.
  • #표시는 대학 진학이나 유급으로 이후에 지명 당해가 아닌, 그 이후에 입단한 선수.

이름
포지션
경력
계약금
1차
정성열
내야수
경북고 - 한양대
8000만원
고졸우선
이성훈
투수
대구고
4000만원
2차
1라운드
권오준
투수
선린정보고
2억 4000만원
2라운드
이동은
투수
경남상고 - 건국대
6000만원
3라운드
장영균
외야수
동대문상고 - 인하대
7000만원
4라운드
안상국#[3]
내야수
대전고
-
5라운드
임동규[4]
투수
광주상고
-
6라운드
김태훈#[5]
내야수
경기고
-
7라운드
허연철#[6]
내야수
마산고
-
8라운드
박지호#[7]
투수
충암고
-
9라운드
김민우
외야수
경남고
?
10라운드
주재필#[8]
투수
충암고
-
11라운드
김우룡※[9]
내야수
충암고
-
12라운드
이준호
투수
경북고 - 단국대
2000만원
지명권 양도
라형진(쌍방울 2차 1라운드)[10]
투수
경동고 - 한양대
1억원
신고선수
조상수
포수
광주일고
없음

1998년 2월 박현영의 트레이드 조건이었던 쌍방울의 1999 신인 2차 1라운드 지명자인 라형진(한양대 투수)이 입단했다.


1.4. 외국인 선수[편집]


외국인선수 2명은 모두 교체됐다. 호세 파라는 그의 활약을 좋게 평가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요청으로 트레이드 형식으로 요미우리에 입단했다. 스캇 베이커는 15승을 올렸지만 평소 좋지 않았던 행실에, 무릎과 발목 부상경력이 있음에도 정밀진단도 거부하고, 전년도 연봉의 배 이상의 연봉을 불러 삼성에서 재계약 포기했다. 공교롭게도 베이커 이후 삼성에서 15승 좌완투수는 그로부터 14년 후인 2012년에 나왔다.

1999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1루수 찰스 스미스를, 2순위로 유격수중견수 빌리 홀을 데려왔다. 사실 구단에서는 제이 데이비스를 데려오려고 했으나 서정환 감독이 유격수를 요구했기에 대신 빌리 홀을 데려온 것. 그러나 홀은 입단 후 내야 수비에 낙제점을 받고 중견수로 전향했다. 이름 그대로 타선에서도 구멍, 수비에서도 구멍


1.5. 기타 사항[편집]


1998년 시즌 후 로나쌩 회장성준이 방출돼 롯데로 이적했다. 양용모이계성 등도 방출돼 둘다 쌍방울로 이적했다. 김형석은 은퇴했다.

김재걸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


2. 전지훈련[편집]


1998년 가을에는 장호연 코치를 비롯해 김진웅, 정현욱, 김지훈, 황두성이 미야자키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캠프에 합류했다.

1999 전지훈련은 베로비치가 아닌 플로리다 포트 마이어스에 있는 보스턴 레드삭스 전용훈련장에서 실시했다. 포트 마이어스로 간 것은, 지난 1997년 LA 다저스에서 자매결연을 전제로 고액의 스프링 캠프 사용료를 요구했기 때문. 포트 마이어스의 시설이나 기후는 베로비치와 별 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포트 마이어스가 더 좋았던 건 보스턴 레드삭스를 비롯해 미네소타 트윈스, 텍사스 레인저스, 피츠버그 파이리츠 등 4개 팀이 훈련 중이어서 여러 팀과 연습경기를 치를 수 있는 조건도 갖추었다.


3. 정규 시즌[편집]


선발인 노장진, 김상진, 김진웅 등이 170이닝을 소화하면서 모두 10승 이상을 기록했지만 3명 모두 평균자책점이 4점대 이상이었다. 한편 마무리 임창용에 대한 의존이 상당히 심했는데, 이 해 임창용은 선발로는 아예 등판한 적이 없었지만 138⅔이닝을 소화해 규정이닝을 채우면서 평균자책점 1위를 했다. 당시 임창용의 등판 패턴은 다음과 같았다.

  • 3점차 이내로 앞선다. → 당연히 마무리인 임창용을 투입해 경기를 끝낸다.
  • 1~2점차의 박빙이다. → 임창용을 투입해 실점을 막고 주도권을 뺏어온다.
  • 경기 초반부터 주도권을 뺏겼다. → 임창용을 투입해 더 이상의 실점을 막고 어떻게든 역전을 노려본다.

김기태찰스 스미스는 이승엽 때문에 좌익수와 지명타자를 서로 번갈아 맡았는데, 둘다 좌익수는 자신의 커리어에서는 생소하다 보니 수비는 다소 불안했지만 타격에서는 기대만큼 활약하며 양준혁의 공백을 메꿨다. 또한 이승엽54홈런으로 단일시즌 홈런 기록을 경신하는 등, 타선의 파괴력은 여전했다.

타선의 어마어마한 힘에도 불구하고 이해 득실은 정확히 0일 정도로 투수력은 불안했다. 이는 접전 상황마다 나오는 임창용의 공헌도가 매우 높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리그 상위권의 타격에 임창용의 희생이 더해지면서 73승 1무 57패로 매직리그 1위를 차지했다. 시즌 막바지에 한화의 10연승으로 2위로 떨어졌지만 한화와의 최종전에서 승리하며 1경기차로 매직리그 1위가 됐다.[11]


3.1. 선수 이동[편집]


7월 31일, 이상훈두산 베어스진갑용을 상대로 트레이드됐다. 진갑용은 지명 당시만 하더라도 10년에 1번 나올까말까하는 포수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정작 프로 입단 후에는 기대만큼 못했다. 게다가 방콕 아시안게임 참가로 병역특례를 받고도, 1년 후배인 홍성흔에게 밀려 두산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어차피 양대 리그인데다가, 삼성과 두산은 다른 리그로 배속되어서 이런 트레이드를 해도 손해가 없었다. 그리고 훗날 이 트레이드는 삼성에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반면에 두산으로 간 이상훈은 3시즌 반 밖에 써먹지 못하고 은퇴했다.

4. 포스트시즌[편집]



4.1. 플레이오프[편집]


1999년 플레이오프 2경기
롯데 자이언츠 VS 삼성 라이온즈

경기
일시
경기장
원정
경기 결과

중계방송사
1차전
10월 12일 (화) 18: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X
롯데 4 : 5 삼성
O
KBS위성2TV
2차전
10월 13일 (수) 18:00
X
롯데 2 : 6 삼성
O
3차전
10월 15일 (금) 18:00
사직 야구장
X
삼성 2 : 10 롯데
O
MBC
4차전
10월 16일 (토) 14:00
O
삼성 9 : 6 롯데
X
KBS2
5차전
10월 17일 (일) 14:00
X
삼성 5 : 6 롯데
O
-
6차전
10월 19일 (화) 18: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O
롯데 6 : 5 삼성
X
KBS위성2TV
7차전
10월 19일 (수) 18:00
O
롯데 6 : 5 삼성
X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KBO 플레이오프/1999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선수별 개인 성적[편집]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성적.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 투수는 이닝이 많은 순서대로, 타자들은 타수가 많은 순서대로.
  • 시즌 중 이적한 선수들은 당해 삼성 소속 성적만 기록.

5.1. 투수[편집]


  • 우완
 
이름
경기수
선발등판
이닝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4
노장진
33
30
188⅓
(5위)
15
(5위)
9
0
4.35
180
116
173
(4위)
31
김상진
31
30
179⅓
(8위)
12
7
0
4.67
195
64
136
51
김진웅
34
31
171⅔
(10위)
11
13
0
5.40
173
89
144
(6위)
39
임창용
71
(4위)
0
138⅔
13
(8위)
4
38
(1위)
2.14
(1위)
91
36
141
(7위)
46
김현욱
54
0
93
6
4
1
3.97
95
36
55
62
정현욱
25
15
78⅔
3
7
0
5.03
80
32
56
69
문남열
29
2
59
2
1
0
6.86
74
38
38
34
이상훈
24
7
59
3
4
0
7.63
83
37
25
50
이준호
26
2
40⅔
4
1
1
5.09
50
18
28
23
라형진
13
3
20⅔
0
0
0
12.19
41
20
15
27
조계현
12
3
20⅓
0
3
0
11.51
36
15
16
65
정성훈
5
2
19⅔
1
1
0
5.95
29
4
9
21
박동희
7
3
12
0
1
0
11.25
20
7
16
38
조문식
4
0
4
0
0
0
6.75
6
0
2
17
박충식
3
0
4
0
0
0
0.00
2
1
3
70
최창양
3
0
3⅓
0
0
0
2.70
3
1
4

  • 좌완
 
이름
경기수
선발등판
이닝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1
전병호
44
4
71⅓
3
2
0
5.68
90
28
39
26
이동은
33
0
28
0
0
0
7.07
42
13
26
19
감병훈
7
0
4
0
0
0
20.25
5
7
2


5.2. 타자[편집]


  • 포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2
김영진
97
189
.138
26
4
0
2
13
8
0
2
진갑용
33
99
.263
26
2
0
3
15
8
0
25
정회열
47
89
.180
16
3
0
2
14
6
1
57
김지훈
37
41
.146
6
0
0
0
3
1
0
66
김광현
4
4
.000
0
0
0
0
0
0
0

  • 내야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5
김한수
128
497
.340
(4위)
169
(4위)
36
(3위)
1
18
88
87
7
36
이승엽
132
486
.323
157
(9위)
33
(5위)
2
54
(1위)
123
(1위)
128
(1위)
10
9
정경배
105
398
.312
124
15
0
18
53
75
16
6
김태균
125
394
.244
96
14
1
12
53
43
4
4
송재익
80
103
.204
21
2
1
2
15
18
3
1
류중일
56
60
.233
14
1
0
0
6
13
1
55
김수관
11
24
.083
2
0
0
0
1
2
0
35
김승관
20
20
.000
0
0
0
0
0
0
0
41
정회선
5
2
.500
1
0
0
0
0
1
0

  • 외야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0
김기태
130
468
.293
137
33
(5위)
2
28
88
82
5
37
신동주
122
431
.278
120
9
2
22
87
64
26
(8위)
8

116
414
.244
101
12
3
4
23
73
47
(2위)
33
스미스
123
408
.287
117
20
1
40
(3위)
98
70
1
3
김종훈
106
252
.230
58
12
1
2
17
36
5
0
황성관
90
164
.317
52
6
0
0
15
27
12
56
박규대
18
8
.125
1
0
0
0
0
3
2
59
장영균
9
4
.000
0
0
0
0
0
2
0


6. 수상 및 기록[편집]


  • 노장진 : 전구단 상대 승리
  • 임창용 : 평균자책점 1위(2.14), 세이브 1위(38세이브)
  • 김한수 :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
  • 이승엽 :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 정규시즌 MVP, 홈런 1위(54개), 타점 1위(123타점), 득점 1위(128득점), 장타율 1위(.733), 출루율 1위(.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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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장 1998년 시즌 기록만 봐도 타율·최다안타·출루율 부문 리그 1위였다.[2] 앞서 김현욱은 삼성에서 버림받다시피 쌍방울로 트레이드됐다. 선수 개인 차원에서는 금의환향한 셈.[3] 중앙대 진학 이후 2003년 입단.[4] 동국대 진학 이후 2003년 입단.[5] 단국대 진학 이후 2003년 입단.[6] 동아대 진학 이후 2003년 입단.[7] 중앙대 진학 이후 2003년 입단.[8] 성균관대 진학 이후 2003년 입단.[9] 한양대 진학 이후 지명권 포기.[10] 1998년 2월 박현영 트레이드 보상.[11] 승률 동률일 경우 상대전적에서 밀려 2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