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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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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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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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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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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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4위

2위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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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
8위
?위
?위
?위
: 우승: 준우승 | : 포스트시즌 진출




페넌트레이스
전기리그 성적

순위



승률
1
39
0
15
0.722
페넌트레이스
후기리그 성적

순위



승률
4
31
1
22
0.585

1. 스토브리그
1.1. 선수 이동
1.2. 신인 선수
1.3. 기타
2. 정규 시즌
3. 포스트시즌
4. 선수별 개인 성적
4.1. 투수
4.2. 타자
5. 수상 및 기록



1. 스토브리그[편집]



1.1. 선수 이동[편집]


1986년 1월 16일에 황병일과 입단 예정이었던 1986 신인 1차 지명자 중 한 명인 임순태가 빙그레 이글스로 현금 트레이드됐다. 20일에는 김성갑성낙수가 빙그레로 현금 트레이드됐다. 전년도 시즌 중에 트레이드됐던 김한근, 박찬, 송상진처럼 선수 지원차 보낸 것.


1.2. 신인 선수[편집]


  • 1차 지명 : 구윤(중앙대 외야수), 김훈기(영남대 투수), 성준(한양대 투수), 이성근(한양대 포수), 이척기(중앙대 투수), 최무영(고려대 외야수)
  • 2차 지명 : 곽현태(동국대 투수)

전술한 임순태 외에 마수진(인하대 투수)도 지명권 양도로 OB 베어스에 입단했다. 입단 동기 최무영과 이성근은 은퇴 후 스카우트로서 이름을 날렸다[1].


1.3. 기타[편집]


외환 사정 악화로 전년도처럼 해외 전지훈련은 떠나지 못했고, 대신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코치 2명을 인스트럭터로 초빙했다.

전년도 전·후기리그 통합우승으로 인해 이건희 회장이 전용훈련장 건립을 주도해, 1986년 2월 경산에 전용훈련장 건설이 시작됐다. 현재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의 전신이 되는 경산훈련장은 이듬해 6월 8일에 완공됐다.


2. 정규 시즌[편집]


투수 중에서는 전년도 50승을 합작한 김시진, 김일융 원투펀치는 각각 16승과 13승으로 전년도 대비 부진했지만 대졸 신인 성준이 15승을 올렸다. 타선에서는 이만수, 장효조가 건재한 가운데 이종두가 타율 8위로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전기리그에서 16연승을 기록하며 39승 15패로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반면 후기리그에서는 4위를 했다.[2]


3. 포스트시즌[편집]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성적

한국시리즈 성적







3
0
2

1
0
4
한국시리즈 패배

전년도 삼성의 전·후기리그 통합우승으로 인해 한국시리즈 진출 제도가 전기리그 우승팀과 후기리그 준우승팀, 후기리그 우승팀과 전기리그 준우승팀이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승자팀끼리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그런데 해태 타이거즈가 전·후기리그에서 모두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전기리그 우승팀인 삼성과 후기리그 우승팀인 OB 베어스가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해태는 한국시리즈로 직행하게 됐다.

삼성은 OB 베어스를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1승 4패로 졌다. 자세한 경기 결과는 1986년 한국시리즈 항목 참조.


4. 선수별 개인 성적[편집]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성적.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 투수는 이닝이 많은 순서대로, 타자들은 타수가 많은 순서대로.

4.1. 투수[편집]


  • 우완
 
이름
경기수
선발등판
이닝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9
김시진
30
26
196⅔
(7위)
16
(5위)
6
3
(3위)
2.47
(9위)
161
116
87
(10위)
13
진동한
24
10
109⅓
9
4
4
(8위)
2.88
99
44
37
9
양일환
22
12
96⅔
6
3
1
3.72
62
53
33
1
황규봉
13
8
50
3
5
2
3.96
48
21
10
41
전용권
11
1
28⅔
1
0
0
3.77
24
13
7
47
김준희
8
0
13⅔
0
0
0
5.93
19
8
7
17
송진호
6
0
13⅔
0
0
2
3.29
11
4
2
49
김훈기
3
1
8
0
1
0
3.38
9
3
1
30
박동경
1
0
2⅔
0
0
0
3.38
3
2
2

  • 좌완
 
이름
경기수
선발등판
이닝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4
성준
29
19
149
15
(6위)
5
2
2.36
(8위)
135
43
60
27
권영호
38
(8위)
10
146⅓
7
7
19
(2위)
2.77
121
55
74
28
김일융
19
19
138⅔
13
(7위)
4
0
2.53
(10위)
120
47
60
48
권기홍
5
2
12⅔
0
2
0
9.24
18
5
7


4.2. 타자[편집]


  • 포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2
이만수
59
212
.321
68
8
0
16
(3위)
39
31
1
32
손상득
59
87
.230
20
1
1
0
6
9
3
23
송일수
40
84
.155
13
3
0
0
4
7
0
34
이성근
9
17
.176
3
1
0
0
2
2
0

  • 내야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5
김성래
102
344
.288
(10위)
99
22
(3위)
1
8
48
(8위)
47
3
43
이종두
104
323
.294
(8위)
95
10
3
9
42
50
(10위)
12
7
김용국
108
278
.216
60
10
2
0
31
20
6
16
오대석
76
211
.256
54
11
1
4
24
23
4
21
박승호
93
182
.275
50
12
1
4
33
15
4
12
함학수
69
111
.243
27
4
2
4
17
19
5
25
김동재
57
95
.316
30
11
0
2
9
13
0
3
배대웅
72
94
.266
25
3
0
1
11
5
2
15
김근석
55
92
.207
19
3
0
2
9
2
2
6
정진호
6
4
.250
1
0
0
0
2
0
0
31
홍순호
2
1
.000
0
0
0
0
0
0
0

  • 외야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
허규옥
99
376
.293
(9위)
110
(5위)
17
5
(3위)
4
33
60
(4위)
26
(4위)
10
장효조
95
304
.329
(1위)
100
20
(6위)
2
6
41
55
(7위)
16
(8위)
11
이해창
95
238
.315
75
14
2
3
19
44
7
4
장태수
96
200
.285
57
12
1
8
29
35
15
(9위)
20
정현발
72
128
.328
42
5
1
4
23
17
2
44
정성룡
58
84
.226
19
2
0
0
8
11
1
39
구윤
37
68
.221
15
5
0
1
5
7
1
38
홍승규
26
38
.211
8
2
0
0
5
1
0
24
김이수
26
29
.069
2
0
0
0
0
2
1
18
최무영
12
17
.294
5
1
0
0
2
0
0


5. 수상 및 기록[편집]


  • 김시진 : 전구단 상대 승리
  • 김성래 :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 이만수 :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 장효조 :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타율 1위(.329), 출루율 1위(.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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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몇 가지 일화만 소개하면 최무영은 1994년 말 삼성 입단과 한양대 진학 사이에서 갈등하던 이승엽을 설득했고, 2000년 신인 지명 당시 대구상고 에이스 장준관을 거르고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 경북고 배영수를 지명했다. 이성근은 2002년 신인 지명 당시 대구고 에이스 윤길현 대신 3년 공백이 있던 포철공고 권혁을 지명했고, 2005년 2차 지명에서는 부상 경력으로 다른 구단이 지명하길 꺼리던 오승환을 지명했다.[2] 0.585라는 비교적 준수한 승률을 기록했음에도 4위밖에 하지 못했는데, 이는 신생팀 빙그레 이글스와 원년 동네북 청보 핀토스 두 팀이 야기한 승률 인플레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