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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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공무원, 정치인.
2. 생애[편집]
1938년 9월 24일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서 아버지 서정기(徐廷麒)와 어머니 일선 김씨(一善 金氏) 김진하(金鎭夏)의 딸 사이의 4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성주국민학교(현 성주초등학교)와 성주중학교를 졸업하고, 성주농업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고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하였다.
그 뒤 1956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외교학 전공[2] 으로 입학하였고, 1959년 외교학과가 정치학과로부터 분리됨에 따라 1960년 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1964년부터 2년간 미 국무성의 AID 장학금을 받아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공부하였다.
1959년 제11회 고등고시 행정과 3부[3] 에 합격하고, 1962년 3월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하였다. 주로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하며 고속 승진을 거듭한 끝에 1977년 39세로 역대 최연소 차관이 됐으며[4] 박정희 정권 말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제1수석비서관,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현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1980년 9월부터 1982년 5월까지 상공부 장관을 지냈다가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으로 인해 경질되었다. 1983년 7월 경제기획원 장관 겸 경제부총리에 임명되어 근무하다가 같은 해 10월 9일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사망하였다.
사후 그의 유해는 1983년 10월 13일 국립서울현충원 제1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또한 그의 업적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고향인 성주군에 있는 생가 터에 청사 기념관 건립 후 1989년 4월 청사도서관으로 개관하여 현재까지 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다.
3. 기타[편집]
외동딸 서이영(徐伊永)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까지 취득한 재원이었으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 27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당시 앨범을 사기 위해 삼풍백화점에 갔다가 변을 당했다. 관련 기사
김재익과는 동갑내기 친구이자 서울대학교 동기에 둘 다 검정고시 출신이다.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임명되어 휴양 중이던 하와이에서 돌아와서 기자들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 이라고 할 정도로 성장을 우선시하는 서석준과 달리 김재익은 전형적인 안정론자로 경제정책 방향은 서로 전혀 달랐으나 사적인 친분은 돈독했다. 그리고 둘 모두 아웅산 묘소 테러로 인해 한날 한시에 세상을 떠났다. 사망 이후 버마 방문 시 숙소에서 런닝셔츠 차림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둘의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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