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야마 쇼고/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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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colbgcolor=#b30000><colcolor=#ffffff> 모기업 관련 정보 ||모기업 파일:마쓰다 로고.svg 마츠다 ||
|| 일본시리즈 우승
★★★ ||1979 · 1980 · 1984 ||
|| 리그 우승
(9회)
||1975 · 1979 · 1980 · 1984 · 1986 · 1991 · 2016 · 2017 · 2018 ||
|| 클라이맥스 시리즈 ||2013 · 2014 · 2016 · 2017 · 2018 · 2023 ||
|| 시즌별 요약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월별문서 · 2023월별문서 · 2024월별문서 ||
||<|2> 현역 선수 경력 ||야수 | 키쿠치 료스케/선수 경력 · 아키야마 쇼고/선수 경력 · 사카쿠라 쇼고/선수 경력 ||
||투수 | 모리시타 마사토/선수 경력 · 쿠리바야시 료지/선수 경력 ||
||<|2> 경기장 ||1군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 · 2군 히로시마 도요 카프 유우 연습장 · 지방 홈구장 미요시 킨사이 스타디움 ||
||과거 히로시마 시민 구장 ||
|| 홈 중계 채널 ||파일:J SPORTS 1 로고.svg ||
|| 주요 인물 ||감독 아라이 타카히로 · 선수회장 오세라 다이치 · 주장 공석 · 어드바이저 쿠로다 히로키 · 스카우트 브래드 엘드레드 ||
|| 구단 상세 정보 ||역사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 카프죠시 · 2022년 센트럴 리그 3위 ||
|| 틀 문서 ||<bgcolor=#b30000>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육성 선수역대 감독영구 결번 | 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마츠다 산하 구단
||



1. 프로 입단 전
1.1. 아마추어 시절
2. 프로 경력
2.1.1. 2011년
2.1.2. 2012년
2.1.3. 2013년
2.1.4. 2014년
2.1.5. 2015년
2.1.6. 2016년
2.1.7. 2017년
2.1.8. 2018년
2.1.9. 2019년
2.2.1. 2020년
2.2.2. 2021년
2.2.3. 2022년
2.3.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산하 마이너 시절
2.3.1. 2022년
2.4.1. 2022년
2.4.2. 2023년
3. 국가대표 경력
3.1. 2013 일본-대만 친선경기
4. 연도별 기록


1. 프로 입단 전[편집]



1.1. 아마추어 시절[편집]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야구를 시작,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등 거의 전 포지션을 소화했다고 한다. 중학교에는 야구부와 함께 육상부에도 들어서 주력을 길렀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1학년 때부터 주전 멤버로 출전했지만 3학년 여름 지역대회 8강에서 탈락하면서 고시엔 전국대회 출전은 하지 못했다. 이후 아오모리현 소재의 하치노헤가쿠인 대학에 진학하여 1학년 시절 부터 주전으로 봄, 가을 대회 연속해서 베스트나인을 수상했다. 4학년 때는 4번 타자로 기용되어 찬스에 강한 타격으로 타율 .486 14타점으로 대학 리그 최우수선수, 수위타자, 최다타점, 베스트나인을 휩쓸며 4관왕이 되었다.

2010년 프로야구 드래프트 회에서 세이부 라이온즈가 3순위로 지명하면서 입단하였다. 이때 원래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2라운드에 지명할 예정이었으나 드래프트 직전에 오 사다하루의 지시로 인해 야나기타 유키를 뽑도록 계획이 변경되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둘다 윈윈이었다. 지역팜의 유망주 놓친 히로시마 도요 카프만 눈물을 흘리게 된 줄 알았으나, 두 사람을 모두 거르고 대졸 외야수 원탑이었던 이시미네 쇼타를 데려가고 망한 롯데나 고졸 외야수 원탑 고토 슌타를 데려가고 망한 오릭스의 상황을 생각하면 그리 슬프지만은 않을 것이다.[1]


2. 프로 경력[편집]



2.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시절[편집]



파일:세이부아키야마.jpg


2.1.1. 2011년[편집]


구단 역사상 30년만에 개막전 신인 외야수로 선발 출전하게 된다.(9번타자,우익수) 개막 직후에는 신인 치고 괜찮은 성적을 보였지만, 그 후 부진이 길어지면서 2군으로 강등된다. 7월 중반 다시 1군으로 승격되고는 나서 중견수를 보던 쿠리야마 타쿠미가 부상으로 좌익수로 포지션을 전향하면서 아키야마가 그 자리를 대신해 주전 중견수로 고정 출전, 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 어깨로 좋은 수비를 보였다.


2.1.2. 2012년[편집]


개막 선발로 기대를 받았지만, 대퇴부 부상으로 개막을 2군에서 맡았다. 이 후에도 부상으로 몇번 2군으로 떨어졌지만 전년도의 과제였던 타격이 도이 마사히로 1군 수석·타격코치의 지도 아래 향상 되면서 1군에 있는 동안은 주로 상위 타순을 맡게 된다. 쿠리야마 타쿠미가 부상으로 이탈하고 난 뒤로는 2번으로 고정 출전. 9월 5일 소프트뱅크 전에서는 프로 입단 첫 끝내기 홈런을 쳤다. 또한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채우며 리그 6위인 .293의 타율을 기록했다.


2.1.3. 2013년[편집]


중견수로 전시합에 출장하여 후반에 대타로 교체된 1시합을 제외하면 풀 시즌 출장을 달성했고, 커리어 첫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타격에서는 약간 기복을 보이며 타율 .270으로 시즌을 마쳤다.


2.1.4. 2014년[편집]


개막전부터 3번 타순으로 기용되었지만 타율이 1할대로 타격 부진에 시달려 4월 말에는 2군으로 강등된다. 1군 복귀 후에는 1번으로 기용되어, 5~6월 월간 타율이 3할을 넘는 등 좋은 컨디션을 보였지만, 다시 타격이 부진해지면서 하위 타선으로 기용된다. 10월에는 같은 팀의 나카무라 다케야와 함께 무릎 수슬을 받았다.


2.1.5. 2015년[편집]


같은 팀의 신인 모리 토모야의 타격 폼을 참고하여 배트 위치를 낮게 잡는 타격 폼으로 변경 후, 엄청난 타격을 보이기 시작했다.

6월 14일, 63시합에서 100번째 안타를 치면서, 역대 3번째로 적은 시합에 100안타를 쳐냈다.(이 부문 1위는 스즈키 이치로), 6월 27일에는 이치로 이 후로 사상 두번째로 2개월 연속 월간 40안타를 달성했다.

6월 3일부터 7월 14일까지 31경기 연속 안타를 쳤는데 이것은 일본 역대 기록 3위, 좌타자 기록으론 역대 1위.

9월 13일 NPB 역대 6명째로 200 안타를 달성했다. 시즌 10여 경기를 남겨두고 있어 일본 최다 안타 기록도 가능성 있어보인다.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db529328-s.jpg


9월 30일 오릭스 버팔로스 전에서 5타수 5안타를 몰아치며 맷 머튼의 NPB 시즌 최다 안타기록인 214 안타에 타이를 이루게 되었다.


파일:external/www.nikkansports.com/s-sato2015100113-ogp_0.jpg


10월 1일 오릭스 버팔로스 전에서 4타수 2안타를 기록하며 216안타로 NPB 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을 수립하였다. 수위타자 타이틀은 야나기타 유키에게 내주고 말았다.


2.1.6. 2016년[편집]


시즌 전 경기(143경기)에 출장해 타율 0.296, 출루율 0.385, 장타율 0.422, 171안타, 11홈런, 62타점, 98득점을 기록했다.


2.1.7. 2017년[편집]


시즌 전(143)경기에 풀 이닝 출장했다. 리그 1위를 기록한 항목은 타율(0.322), 타석(639), 타수(575), 안타(185), 2루타(38), 누적루타(308), 득점(106), 희생플라이(7)이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야나기타 유키와 치열한 선두 타자 경쟁 끝에 첫 리그 수위타자 타이틀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퍼시픽리그에서 타율 3할을 넘긴 건 아키야마와 야나기타 단 두 명 뿐이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게 장타력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일단 2016년의 홈런이 11개에서 25개로 늘었고. 순장타율도 2016년의 0.126에서 0.214로 늘었다. 더욱 대단한 건 장타력이 늘어나면 정확성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타율도 오히려 늘었다는 점이다. 과연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계속 장타력이 유지될지도 주목 할 만하다.


2.1.8. 2018년[편집]


올해도 변함없이 꾸준하게 활약했다. 시즌 종료 기준, 143시합 195안타 24홈런 82타점, 타율 .323 / 출루율 .403 / 장타율 .534(3위) / OPS 0.937이라는 우수한 스탯을 찍었다. 7월 21일에 536경기 연속 풀이닝 출장의 퍼시픽리그 기록을 달성했다. 여담으로 9월달에 현재 두산 베어스 소속인 아리엘 미란다 상대로 9회초에 노히트 노런을 저지했었다. [2]


2.1.9. 2019년[편집]


올 시즌이 끝나면 해외 FA 자격을 취득한다. 본인 역시 메이저리그 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 아사무라 히데토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3번 타자로 타순이 변경되었고, 새롭게 팀의 주장을 맡았다. 그런데 이에 따른 부담감 때문인지 4월 한 때 타율이 2할 1푼대로 추락하는 등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극심한 타격 부진을 겪었다. 하지만 츠지 하츠히코 감독은 개의치 않고 꾸준히 아키야마를 중용했고, 결국 5월 15일 현재 거의 3할까지 타율을 끌어올린 상태. 이후 꾸준한 타격감을 과시하며 143경기 678타석 590타수 179안타 .303 .392 .471 OPS .864 20홈런 62타점 12도루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초반 슬럼프로 인해 작년보다는 아쉬운 성적이지만 뛰어난 수비력은 유지해 골든글러브와 베스트나인을 3년 연속으로 수상하게 되었다.

또한 8월 12일 경기까지 풀 이닝 출장하여 기존 2위였던 미야케 히데시의 700이닝 기록을 넘어 역대 2위가 되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인 9월 26일 경기까지 풀 이닝 출장하며 2014년 9월 6일부터 이어왔던 연속 경기 풀 이닝 출장 기록을 739경기까지 늘렸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소프트뱅크 투수진을 상대로 19타수 5안타(0.278)를 치며 나름 선전했지만 기대에 미치진 못했고 결국 세이부의 스윕 탈락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해외 FA자격을 취득하게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한다. 하지만 2019 WBSC 프리미어 12를 대비한 캐나다 야구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투수 필립 오몽의 공에 오른발을 맞아 도중 교체되었고 이후 정밀 진단 결과 골절이 확인되어 대표팀에서 하차했다.

메이저 도전을 앞둔 쇼케이스 기회를 놓친 셈.[3] 대체 선수로는 마루 요시히로가 선발되었고, 팀은 결국 프리미어 12 첫 우승을 맛봤다.


2.2. 신시내티 레즈 시절[편집]


2019년 12월 30일, 최종적으로 신시내티 레즈3년 21M의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마침 신시내티의 유망주 중견수 닉 센젤이 어깨 수술 후 재활 중으로 현재 자리를 비웠고, 코너 외야수 야시엘 푸이그가 팀을 떠난 만큼 이래저래 외야에서 충분한 기회를 부여받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신시내티가 아키야마를 영입하면서 신시내티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마지막으로 일본 국적 선수를 보유하게 되었다.

스프링캠프에서는 타율 .321로 특유의 타격 능력을 과시했다.


2.2.1. 2020년[편집]


7월 22일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 진행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연습경기에서 좌익수로 선발 출장하여 4타수 1안타 3타점 1득점을 기록하였다.관련기사

8월 12일 기준 14경기 출장해 42타수 10안타 4볼넷 3타점 1도루 15삼진, 타율 0.238, 출루율 0.319, 장타율 0.333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홈런은 하나도 없다.

8월 15일 좌익수로 선발 출전해 7회 초에 호수비를 하나 보여주었고 그 후 안타를 치고 출루해 팀 동료가 친 홈런으로 득점도 기록하게 되었다.

8월 29일 기준으로 27경기서 홈런 없이 타율 0.183, OPS(출루율+장타율)는 0.495에 머무르고 있다.'日최고 리드오프' 아키야마, ML선 16타수 연속 무안타 극악 부진

8월 30일 시카고 컵스전에서 같은 일본인 메이저리거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7번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전하였다. 다르빗슈와의 첫 대결에서는 포수의 타격방해로 인해 1구승부만에 출루하게 되었다. 2번째 대결에서는 다르빗슈가 투수 앞 땅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여 1루로 출루하게 되었고 이 역시 다르빗슈의 실책으로 기록되었다. 그 후 8번타자가 친 중전안타로 3루까지 진루하게 되었다. 3번째 대결에서는 우전안타를 만들어내면서 드디어 무안타 행진을 끊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내야땅볼이 페이볼이 되면서 1-4-1 병살타로 루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래도 다르빗슈와의 첫 대결을 3타수 2실책 1안타로 기록하며 판정승을 챙기게 되었다. 모두 웃은 日투타 맞대결, 다르빗슈 6승+아키야마 5G 만에 안타그러나 그 후 진행된 더블헤더 2차전에서는 아키야마한테 날아온 빈볼에 의해 양팀간의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기도 했다.(...)감독 2명-코치-선수 줄줄이 퇴장, 컵스vs레즈 무슨 일이?아래 영상은 더블헤더 2차전에서의 전 타석 영상이다. 그 경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일본어로 설명해준다.

9월 10일 시카고 컵스전에서도 다르빗슈 유와 만나게 되었는데 2타수 1안타를 기록하며 판정 무승부를 거두게 되었다.

2.2.2. 2021년[편집]


3월 4일에 스프링캠프에 합류했는데, 나중에 본인이 합류하고 나서 진행한 화상 인터뷰를 통해 부인이 집 근처에서 산책하다가 나무에 깔려 입원한 탓에 팀에 양해를 구하고 빠졌었다고 밝혔다.

시즌 성적은 지난해는 적응 문제라는 핑계라도 댈 수 있었지만 올해는 6월 초 기준 2할 초반의 타율에 그치며 부진의 늪에 깊이 빠진 상태. 타구의 질도 많이 좋지 않은데, 배럴 타구(장타율 1.500 이상을 기록할 수 있는 타구)가 한 개도 없다. 즉, 제대로 당겨치지 못하고 밀어쳐서 안타를 간신히 만드는 데만 급급하단 것. 당연히 홈런은 한 개도 기록하지 못한 상태. 또 커브나 슬라이더 같은 브레이킹 볼에 쥐약이라는 점이 간파된 후론 상대 투수들이 대놓고 변화구 위주로 들어오고 있다. 도루 역시 1개 성공 1개 실패에 그쳤다. 수비는 여전히 괜찮은 편이지만 신시내티가 수비 하나 보고 저 금액을 지불했을 리는 없기에 이대로라면 먹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2.2.3. 2022년[편집]


결국 개막 로스터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간 방출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는데 결국 4월 5일 방출되어 자유계약 신분이 되었다. 잔여 연봉 8M은 신시내티 레즈가 부담하기에 최저 연봉으로 타 팀이 자유롭게 영입할 수 있긴 하지만, 백업으로도 실패한 외야수를 위해 아까운 로스터 자리를 쓸 팀이 있을지는 미지수.

하지만 5월달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마이너 계약을 성사시키며 다시 한번 메이저리그 진입에 도전하게 되었다.

한편 방출 직후 일본 현지 팬들의 반응은 친정팀인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를 비롯해 세이부 출신/해외복귀파라면 적극적으로 시장에 뛰어드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싸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었다.[4] 이외에 언론에서 언급되는 영입 후보로는 쿠리하라 료야우에바야시 세이지가 시즌아웃 돼서 외야가 필요한 소프트뱅크 호크스, 아키야마의 출신지와 인접한 연고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가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체급이 있는 선수라면 일단 내지르고 보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내부 육성에 중점을 두고 영입전에 참전하지 않았다.# 4월 30일 친정팀인 세이부에서 아키야마 쇼고 복귀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고 기사가 나왔으나# 마이너 계약이 성사되면서 일본 복귀는 보류되었다.

2.3.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산하 마이너 시절[편집]



2.3.1. 2022년[편집]


6월 13일 기준 16게임 70타수 24안타 3홈런 4볼넷 21타점 14삼진 타율 .343 출루율 .378 장타율 .529 OPS .907의 성적을 기록 중이다.

프로 주전급으로 준수한 성적 수치를 보여주고 있으나 타신투병으로 악명높은 PCL에서 기록하고 있는 성적이라 향후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아도 기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부호가 따르는 상황. 여기에 6월 7일에 코로나19 확진 판정까지 받는 등 곤욕을 치렀다.

2.4.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편집]



2.4.1. 2022년[편집]


결국 6월 15일에 계약이 종료되어 FA 신분이 됐으며, 자국리그 복귀를 결정했다. 기사에 의하면 친정팀인 세이부행이 유력하다고 한다.[5] 만일 세이부 복귀 시 세이부 구단 역사상 최초로 메이저리그에서 곧바로 친정팀으로 복귀한 선수가 된다.[6] 현재까지 알려진 언론들의 소식에 의하면 세이부와 소프트뱅크의 2파전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영입 후보 구단인 요코하마는 아직 어떠한 입장표명도 하지 않은 상태로 사실상 영입 의사가 없다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라쿠텐의 경우 일부 언론들이 4월 말 당시와는 상황이 바뀌었기에 영입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는 추측성 내용으로만 언급되었다가 이시이 감독 겸 GM이 보강 포인트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영입전에서 선을 그었다. 그러다가 21일 새벽 정말 뜻밖의 구단인 히로시마가 참전한다고 선언했다. 여러 구단들의 동향이 알려진 후 22일 오전 세이부 주주총회에서 고토 타케시 오너는 아키야마를 무조건 잡아야한다는 코멘트로 반드시 아키야마를 잡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다만, 소프트뱅크 팬들은 아키야마를 영입할 바에 차라리 신인선수를 키우자는 반응이고 세이부 출신 메이저리거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영입했더니 역대급으로 먹튀한 사례가 있어서 팬들은 꺼리는 모양이다. 그러나 팬들의 반응으로 구단을 운영하는 것은 절대 아니기에 외야 자원이 2명씩이나 시즌 아웃되고 독주체제를 굳혀야 하는 소프트뱅크 구단 입장에선 자국 리그에서 검증된 국가대표 외야수를 데려오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현재 팀 전력에 꼭 필요한 선수로 여기고 있다.

6월 27일, 3년 총액 5억 엔의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놀랍게도 빅클럽 소프트뱅크도 아니고 친정팀 세이부도 아닌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계약을 맺으며 아키야마 쟁탈전은 의외의 결과를 맞았다.[7]그렇게 본인이 뛰었던 신시내티 레즈와 똑같은 색과 로고를 가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선수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에 아키야마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의하면 소뱅측은 같은 3년 계약에 히로시마보다 더 높은 총액 9억+엔을 제시했고 세이부는 친정팀임을 어필하며 복귀를 종용하던 도중 히로시마가 참전하게 되었는데, 히로시마는 자신이 통산 2000안타까지 500개가 남았던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자신의 개인 기록까지 세세하게 꿰차고 있을 만큼 진심이 가득한 히로시마의 열의에 감명받아 영입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다만 이를 감안해도 정말 놀라운 결과.

미국에서 700만 달러로 연 9억 엔 가량을 받았고, 미국 진출 전에는 연 2억 엔을 넘게 받았던 선수인지라 최소 1년 3억 엔부터 시작하지 않겠냐는 예상이 주류였는데, 1년도 아니고 3년 5억 엔으로 딱 고액연봉자 커트라인 수준까지 연봉을 대폭 삭감해가면서 카프에 입단한 것이기 때문. 저 정도면 크보 구단도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을 정도의 가격으로 KBO의 전준우와 비슷한 가격이다. 카프가 축소 발표하고 뒷돈을 챙겨줄 만큼 여유가 있는 구단도 아니라 실제 저 금액이 맞을 것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인데, 아무리 열의에 감동했기로서니 한화 수십억 원을 포기한 선택에 일본 야구 팬덤이 떠들썩했다.

입단 당시 인터뷰를 보면 선수생활 연장과 기회 보장이 컸던 듯. 현재 아키야마는 만 34세로 나이가 많은 편인데 기량이 하락하게 된다면 소프트뱅크는 돈이야 많지만 선수진이 워낙 튼튼하기 때문에 남은 500안타로 2,000안타를 채울 때까지 기회를 받는다는 보장이 없고 계약 조건의 대부분이 빡빡한 옵션으로 채워져 있는 경우가 다반사라 실제 보장액은 제시액보다 적을 가능성도 높다. 세이부는 친정팀이긴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사업 부진 등으로 이전보다 재정에 여유가 없어져서 카프보다 못한 2년 2~3억엔 가량의 저가 계약을 제시하며 좋은 인상을 주진 못했다. 그에 반해 카프는 리빌딩 중인 팀이고 또 FA라면 언감생심인 팀이라 또 다른 FA 영입으로 자리를 뺏길 염려가 없는데다 GM이 직접 2,000안타까지 500개 남았다며 기회를 보장해줄 것을 어필했기에 카프 쪽으로 마음이 기운 듯 한데 이러나저러나 수억 단위의 금액을 포기한 선택은 대단한 선택이다.

그런데 입단 직후인 7월 14일 뜬금없이 아키야마가 친정팀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가 모리 토모야야마카와 호타카와의 불화 때문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2019 프리미어 12 때 이 둘이 차출되었으나 컨디션 문제로 거절을 했었는데 이후 모리가 인스타그램에서 풀스윙하는 장면을 찍었고, 야마카와마저 부상을 신경쓰지 않는 이유로 격노했었다고 한다.# 다만 세이부에 복귀하지 않은 건 상술한 계약기간과 총액 문제가 컸던 데다, 해당 기사를 낸 프라이데이는 신빙성 낮은 찌라시를 마구잡이로 내는 것으로 유명한 황색언론이라 다소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추후에 밝히기로는 12월 27일 아키야마는 일본으로 복귀할 때 무조건 세이부 라이온즈로 돌아간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세이부가 터무니없는 조건을 제시하는 바람에 히로시마로 갔었다고 라디오 방송에서 밝혔었다.[8]# 뉘양스를 보면 세이부 이외의 퍼시픽리그 팀에서는 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9]

등번호는 오가타 코이치, 마루 요시히로 등 강타자 외야수들이 사용했던 9번을 받게 되었다.[10]

7월 8일, 주니치 드래곤즈 원정에 콜업되어 복귀전을 치렀다. 첫 타석은 삼구삼진(...)으로 물러났지만, 두 번째 타석에서 바로 복귀 첫 타점을 기록했으며 멀티히트를 기록했다.하지만 팀은 패배 2차전과 3차전은 범타로 물러나면서 힘을 못쓰는 모습을 보였는데, 아직 적응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7월 하순에 접어들어서도 타격감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7월 15~17일 쿄진 원정에서는 첫 홈런을 터뜨리며 스윕에 어느정도 일조하였다. 22일 야쿠르트전에서는 4안타 경기와 8회 극적인 동점 투런으로 역전의 발판을 만들더니, 23일에는 무려 선제 쓰리런 포함 3안타를 기록하며 타율도 2할 8푼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9월에 타격 부진으로 2군에 다녀오는 등 일본 복귀 1년차는 전체적으로 부진한 시즌이었고, 메이저리그에서 먹튀한 게 단순히 리그의 수준 차 때문이 아니라 아예 본인이 에이징 커브를 맞이한 건지 의구심이 들게 되었다.물론 설사 그렇게 가정해도 심하게 망했음을 부정할 순 없지만. 시즌 기록은 타율 .265에 5홈런, OPS는 .746.

2.4.2. 2023년[편집]


작년과 마찬가지로 3번 중견수로 개막 로스터에 합류했다. 리그 전체가 극심한 투고타저 양상을 보이고 있고, 카프 역시 전체적으로 타격의 부진이 심한 와중에도 나홀로 4할을 유지하면서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4월 11일, 주니치 드래곤즈를 상대로 5타수 4안타 2타점 맹타를 휘두르며 정규시즌 33타수 16안타 .485의 타율로 세리그 1위를 기록 중이다. 홈런은 아직 기록하지 못했지만 대신에 3루타가 무려 3개일 정도로 중장거리 장타도 준수한 편.

4월 15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2차전 경기, 4:3 한 점차로 뒤지고 있던 9회말 2사에서 타구치 카즈토의 바깥쪽 슬라이더를 밀어쳐 시즌 1호 홈런을 극적인 끝내기 홈런으로 장식했다.


이튿날 4월 16일에도 3타수 3안타 1볼넷(고의사구) 2득점으로 대활약하며 자신의 생일을 자축했다.


파일:아키야마 쇼고 1500안타.jpg

5월 16일, 요코하마전에서 5타수 4안타 1도루 2타점 1득점으로 시즌 7번째 맹타상을 수상하는 한편, 통산 1500안타를 기록하면서 트레버 바우어를 꺾고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5월말 교류전 들어서는 카프의 교류전이 옮았는지(...) 센트럴 리그 6월 타율 Top3에 드는 사카쿠라 쇼고, 니시카와 료마, 타나카 코스케를 비롯하여 키쿠치 료스케, 노마 타카요시 등도 활약하며 타선을 이끈 반면, 아키야마는 초반의 버닝은 온데간데 없이 6월에는 1/2/2의 처참한 슬래시라인을 기록하였다. 출전 보장 때문인지 휴식조차 없이 풀출장을 이루고 있는데 3번 타순에서 꾸준히 맥을 끊어먹다보니 휴식이나 타순 조정이 필요해 보이는 부분.

7월 들어서는 팀이 연승 가도를 달리면서 상승세에 놓여있지만 아키야마가 6월보다는 나은 수준의 성적을 거두면서 컨디션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고 있다. 7/15~17일 요코하마전 전반기 마지막 시리즈에서도 고향 사랑을 시전하면서 부진하였으나, 마지막 3차전에서 트레버 바우어를 상대로 시리즈 유일한 안타를 기록했지만 이것이 역전 결승 적시타가 되어 수훈 선수가 되었다.

올스타전에 1차 팬투표에서 유일하게 非한신 선수로 뽑히며 1,2차전 모두 선발 중견수로 출장하였으나, 두 경기 합쳐 1안타에 그쳤다.

7월 25일, 야쿠르트전에서 간만의 3안타 맹타상을 기록하면서 수훈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교류전부터 시작된 지독한 타격 부진은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4~5월의 뜨거웠던 타격감은 온데 간데 없어졌고, 최악의 6월을 보낸 이후 7월은 그나마(...) 나아져서 .259/.326/.296에 OPS .622를 기록하였지만, 8월에는 대놓고 득점권 밥상을 계속 뒤엎으며 10경기 .171/.216/.229에 OPS .445라는 도저히 눈뜨고 보기 힘든 성적을 이어나가면서 4할대의 시즌 타율은 .282까지 수직 추락해버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라이 타카히로 감독은 시즌 103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번도 아키야마를 3번에서 빼지 않았으며 대수비 교체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리 아라이 감독이 데이터도 보지 않는 돌대가리(...)라지만 데이터 볼 것도 없이 눈에 띄게 꼬라박을 시전하는 만35세의 중견수를 휴식 차원의 결장이나 교체조차 없으며 몇달 째 이어지는 부진에도 불구하고 타순 조정 한번 없는 것에 대해 팬들이나 유명 블로거와 전문가들조차도 의문을 표하고 있다. 아키야마가 카프로 온 주된 이유가 주전 보장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자신의 2000안타 달성에 유리한) 상위타순과 출전 보장이 계약 내용에 들어가서 아라이가 손댈 수 없는 부분이 아닌가하는 추측이 정설로 받아들여질 정도. 결국, 적지 않은 나이에 출전을 고집하다 8월 11일 주니치 원정 1차전 3회 도중에 교체되어, 익일 경기를 앞두고 오른쪽 종아리 근손상으로 엔트리에서 말소되고 말았다.

재활 끝에 9월 8일 한신전에 1군으로 복귀하였지만 처참한 실력을 뽐내며 복귀 이후 3경기에서 11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였다. 9월 16일 한신전에 복귀 16타석 무안타에 그쳤던 그가 겨우 안타를 기록했지만 팀은 패배.

9월 20일고향팀요코하마전을 앞두고 특례2023으로 말소되었다가 3일 후인 23일 쿄진전에 우에모토 타카시, 키쿠치 료스케 등 다른 부상자들과 함께 복귀하였다. 첫 세 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났던 그가 7회초에는...
5월 31일 이후 무려 115일만의 홈런을 기록하였다! 시즌 4호 투런포인데, 5월 31일은 아키야마가 본격적으로 성적을 박기 시작하던 시기라 묘하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3.1. 2013 일본-대만 친선경기[편집]


오프시즌에는 같은 팀의 아사무라 히데토, 스미타니 긴지로와 함께 일본 국가대표로 뽑혔다.


3.2. 2015 WBSC 프리미어 12[편집]


7월 16일 2015 WBSC 프리미어 12 일본 대표 1차 후보선수로 선발되었다.

시즌 후에는 프리미어 12에 출전하여 일본팀의 주전 외야수로 대회 3위 입상에 기여했다. 2015년 11월 19일 도쿄 돔에서 열린 준결승 대한민국전에서 9회초 2아웃 만루 상황에서 오재원이 날린 큰 타구를 펜스플레이로 잡아내기도 했다.[11]

4. 연도별 기록[편집]



4.1. NPB[편집]


파일:NPB 로고.svg NPB 통산 기록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2011
西

110
313
66
9
6
1
35
21
8
15
63
.232
.285
.317
.602
1.1
2012
107
450
118
17
8
4
50
37
10
28
70
.293
.343
.404
.747
5
2013
144
634
152
25
7
13
89
58
13
49
89
.270
.334
.408
.742
4.4
2014
131
561
123
24
6
4
64
47
3
70
98
.259
.356
.360
.716
5.5
2015
143
675
216
36
10
14
108
47
17
60
78
.359
.419
.522
.941
9.1
2016
143
671
171
32
4
11
98
62
18
77
103
.293
.385
.422
.807
5.5
2017
143
659
185
38
5
25
106
89
16
72
97
.322
.398
.536
.933
8.6
2018
143
685
195
39
8
24
107
82
15
77
96
.323
.403
.534
.937
6.9
2019
143
678
179
31
7
20
112
62
12
78
108
.303
.392
.471
.864
5.5
2022


44
174
41
6
1
5
19
26
0
11
34
.265
.333
.413
.746
0.8
2023
115
483
119
20
6
4
48
38
8
35
81
.274
.333
.376
.709
3.0
NPB 통산
(11시즌)

1366
5983
1565
277
65
125
836
577
120
572
927
.297
.371
.446
.817
55.2


4.2. MLB[편집]


파일:MLB 로고.svg MLB 통산 기록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2020
CIN
54
183
38
6
1
0
16
9
7
25
34
.245
.357
.297
.654
0.5
2021
88
183
33
8
0
0
16
12
2
14
40
.204
.282
.253
.535
-0.5
MLB 통산
(2시즌)
142
366
71
14
1
0
32
21
9
39
74
.224
.320
.274
.594
-0.1

[1] 그러고 12년뒤 2022년 본인이 히로시마로 이적하게 됐다.[2] 그리고 3년 후 아리엘 미란다가 두산 베어스 소속으로 노히트 노런에 도전했었는데 이때 당시 점수도 5:0 이었다. 이때는 9회 2아웃에서 노히트 노런이 깨젔다. 깨트린 선수는 현재 KIA 타이거즈 소속의 김선빈.[3] 한국 대표팀에서 활약한 김광현은 나이가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으나 2019 WBSC 프리미어 12에서의 쇼케이스로 과거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았다.[4] 하지만 현지인들의 예상과는 달리 라쿠텐은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선회하면서 영입전에서 사실상 철수했다.[5] 당초 FA가 된 직후 인터뷰에선 미국에 남겠다는 의사를 밝혔었지만 계약 종료와 일본 복귀 선언을 한 며칠 사이에 오퍼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6] 역대 세이부 출신들 가운데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다 일본으로 복귀한 선수들 중 세이부에 곧바로 다시 돌아온 선수가 없다. 세이부 출신 선수들이 다른팀으로 간 선수들을 보면 마쓰이 가즈오 - 라쿠텐, 마쓰자카 다이스케 - 소프트뱅크, 나카지마 히로유키 - 오릭스, 마키타 가즈히사 - 라쿠텐 이 대표적. 이들 중 마쓰이와 마쓰자카는 황혼기에 잠시 세이부에 몸을 담았었다.[7] 히로시마는 빈약한 재정 탓에 FA를 잡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과거 우치카와 세이이치에게도 오퍼를 제안해본 적은 있었고 최근에는 마루 요시히로 같은 거물급은 놓치지만 준척급 FA 대상자들은 다년 계약으로 그럭저럭 잔류를 잘 시키는 편이다. 거기다 2021시즌 종료 후 스즈키 세이야의 MLB 진출로 14억 엔이 넘는 거액의 포스팅 비용까지 받은 덕에 어느 정도 이름값 있는 선수들을 영입할 만한 여유가 생기며 아키야마 쟁탈전에서 경쟁력이 생겼던 것.[8] 2년 1억 5천만 엔 제시했다고 한다.[9] 과거 팀동료 카타오카 야스유키도 세이부를 엄청 좋아해서 FA 당시 복수년 제시해주면 세이부에 남는다고 얘기를 했었는데 프런트가 단년계약 겸 현상유지랑 ‘너 나가면 누구 영입해야 하니까 빨리 결정해달라‘라는 어이없는 말을 해서 결국엔 정나미가 떨어져 FA로 요미우리로 이적했다.[10] 사실, 구단에서는 마루의 보상 선수로 이적한 초노 히사요시에게 9번을 주기로 했지만, 초노가 "노마가 훗날 9번을 달았으면 한다"라고 거절하며 5번을 달았던 바 있다. 노마 타카요시의 번호가 37번이었는데 그 번호가 오가타 前 감독의 신인 시절 등번호였고, 노마가 더욱이 성장해서 오가타의 전성기 시절의 등번호를 달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11] 못 잡았다면 이미 출발한 주자 세 명이 모두 들어와 사실상 승부가 끝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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