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사조삼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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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천하오절
중완동
동사
서광
남승
북협
주백통
황약사
양과
단지흥
곽정


1. 개요
2. 인물 설정 및 총평
3. 신조협려의 양과
3.1. 어렸을 때
3.2. 도화도 시절
3.3. 고묘파 입문, 소용녀와의 만남
3.4. 소용녀를 찾아서
3.5. 영웅대연
3.6. 절정곡
3.7. 양양성
3.8. 다시 고묘로
3.9. 다시 절정곡으로
3.10. 16년 후
3.11. 결말
4. 의천도룡기의 양과
5. 애정관계
6. 인맥
7. 양과의 무공
8. 양과의 지능
9. 2차 창작물에서의 양과


1. 개요[편집]


楊過

무협소설신조협려》의 주인공. <소오강호>의 영호충과 함께 김용 소설 주인공들 중 인지도가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2. 인물 설정 및 총평[편집]


전작 사조영웅전의 중심 인물 양강의 아들. 반역죄를 지은 아버지와 목염자 사이에서 태어났다.[1]

이름도 양강의 일을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곽정이 좌전의 글(人誰無過, 過而改之, 善莫大焉), 즉 '누구나 잘못은 하지만 고치면 더 훌륭한 일이다'라는 문구에서 따와 이름은 '과(過)', 자는 '개지(改之)'라고 지어줬다. 개정판에서는 곽정이 무식쟁이라는 설정을 상기해서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 황용으로 바뀌었다.

유복자로 태어나서 어머니까지도 아주 어린 시절에 잃었기 때문에 유리걸식과 서리질로 연명하며 험하게 구르다보니 성격이 꽤나 껄렁껄렁하고 가시가 돋쳤다.[2] 그래도 본성은 착해서 이막수가 만행을 저지를 때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선뜻 나서기도 했다.

작중에서는 서열과 배분 파괴의 중심. 따지고 보면 곽정, 황용, 양강 모두의 원수인 구양봉을 의부[3]로 따르기도 했고, 곽정의 의형제인 양강의 아들이면서도 황약사와 친구 사이로 지냈다. 주백통의 후계자 거기에 황약사의 제자인 정영과는 의남매를 맺기도 했다. 그러나 사부인 소용녀와 결혼한 것에 비하면 다른 것들은 별 의미가 없는 수준. 군사부일체로 대표되는 유교적 질서가 지금보다도 훨씬 중요했던 작중 시점에서 사부를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것은 즉 자기 부모를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것을 뜻하며, 즉 근친상간에 버금가는 금기였다. 실제로 작중 굵직한 사건들은 이와 관련이 있으며, 이것 때문에 양과는 정말 온갖 고생을 다 한다.

소속 문파는 소용녀의 제자이기 때문에 고묘파 소속이지만 다른 문파의 무공도 다양하게 익혔다. 구양봉에게 경맥역행을 배웠고, 전진파에서는 전진파 내공심법을[4], 홍칠공과 황용에게 타구봉법을 배웠으며 황약사의 무공을 일부 배우기도 했다. 고묘 안에 있는 구음진경의 일부를 보고 익혔기도 했으며 독고구패의 검총에서 중검술을 수련하는 등 천하의 희귀한 무공은 대부분 한 번쯤은 배웠으며 나중에는 이 모든 지식을 근거로 하여 새로운 무공인 암연소혼장을 스스로 만들어서 사용한다. 사실 양과는 워낙 잡다하게 무술을 배워서 체계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리할 필요도 있었고 또, 여기에 자기자신만의 해석도 곁들여서[5] 만든 무공이 바로 암연소혼장인 셈이다.

훗날 신조대협이라는 이름으로 강호를 횡행하며 명성을 떨치며, 나중에는 거의 무림 맹주 수준의 명성과 공적을 쌓게 된다. 곽양 생일 축하 에피소드를 보면 무림에서의 인맥은 곽정보다 더 넓은 수준.[6] 마지막에선 황약사, 곽정, 단지흥, 주백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천하오절 중 서광(西狂)이란 칭호를 얻었다. 여기에서 광은 미쳤다는 뜻이 아니라 거만하다는 뜻인데, 프라이드가 높고 제멋대로인 양과의 성격에 맞춰서 지어준 칭호이다. 그러나 양과는 이 시점에서 오히려 많이 진중해진 상태다. 과거 중양궁에서의 사건사고들도 자신이 너무 반항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정도.

매우 불운한 생애와 소용녀와의 지고지순한 사랑, 팔이 잘리면서까지 의협과 사랑 사이에 갈등하며 무림고수가 되어가는 과정이 매우 극적이다. 양과의 매력 때문에 신조협려를 읽었다는 이들도 많을 정도이다.

현대에 갖다 놓으면 왠지 고등학교 깡패 만화의 주인공이 됐을 법할 정도로 파격적인 주인공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저자인 김용과 동시에 활동한 또 다른 작가인 고룡은 이 양과를 가리켜 어떠한 위기와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나아가는 인물로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3. 신조협려의 양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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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협려 2014판


3.1. 어렸을 때[편집]


소용녀를 만나기 이전 양과는 문제아에 가깝다. 상대가 진심으로 애정을 가지고 대해주면 마음을 여는 편이나(구양봉, 곽정, 손노파, 소용녀),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있다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패드립 수준의 말과 행동으로 되갚으며 갈등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스타일이었다. 또한 비꼬기에 능했는데 이로 인해 황용과 조지경[7]의 관계가 파탄났다.

11살까지 태호 근처의 장흥(長興) 땅에서 어머니(진남금이든 목염자든)와 함께 살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병에 걸려서 세상을 떠나자, 그 유언에 따라 어머니를 화장하여 아버지 양강이 묻혀 있는 가흥 철장묘에 뿌린다.

임종 때는 어머니에게 양강이 어떻게 죽었는지 물었지만, "절대로 복수할 생각은 하지 말아라."는 말만 남기고 죽어버리는 바람에 진상을 듣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양강에 대해서는 전혀 듣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아버지를 세상에 둘도 없는 완벽한 선인이며 영웅호걸이라고 상상하고 있었다.

원래 곽정을 찾아가서 무공을 배우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들었지만, 나이는 어리지만 성격이 괴팍하고 지는 것을 싫어해서 남의 신세를 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남의 작물이나 가축을 훔쳐서 연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막수육립정 일가를 몰살할 때, 육무쌍정영이 그의 집으로 도망쳐 와서 처음으로 이막수와 만났다. 이막수가 두 사람을 잡아가려 할 때 과감하게 예쁜 아줌마라고 부르면서 뒤에서 끌어안아 버리기도(…).

이때 빙백은침을 장난삼아 주웠다가 독에 중독돼서 죽을 뻔 했는데,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구양봉지나가던 도중 그걸 보고 무시무시한 무공인 합마공을 가르쳐주고 해독법까지 알려주면서 양자로 삼게 된다. 아버지의 원수의 양아들...[8]


3.2. 도화도 시절[편집]


그 후 양과는 육가장을 살피러 온 곽정과 황용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곽정에게 이끌려 도화도로 들어갔다.

하지만 원래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라, 오만한 곽부 및 곽부의 노예 1호/2호(…) 무돈유&무수문 형제와 시비가 붙어 싸움을 벌이게 된다. 곽정은 네 명을 제자로 받아들여 무공을 전수하려 했지만, 황용은 자신 때문에 양강이 죽은 것을 알면 양과가 원한을 가지게 될까 두려워 양과는 자신이 가르치겠다고 하고 무공 대신 글만 가르쳤다.[9] 이게 틀린 것이 아닌 것이, 양과는 성장 과정도 음울하며 성격이 괴팍하고 사도의 기질이 다분해서 옆길로 새나갈 가능성이 충분했기 때문이다.[10] 하지만 이 때문에 무씨 형제와 시비가 붙어도 무공을 몰라 얻어맞거나 하게 되고, 자신에게만 무공을 가르쳐주지 않는 것 때문에 두고두고 황용과 곽정[11]에 대해 불신을 갖게 되었다.[12][13]

그러다가 무씨 형제와 다시 시비가 붙어 싸우게 되었지만, 무공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2:1이라 당하게 된다. 하지만 위기상황에서 구양봉에게 배우고 틈틈히 익혔던 합마공을 사용하여 무수문을 기절시켜 버린다. 그래서 구양봉에게 합마공을 배웠다는 것을 들키게 되자 구양봉을 증오하던 가진악은 양과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었고,[14] 곽정은 할 수 없이 양과를 도화도에서 내보내 전진교에 맡기게 된다.


3.3. 고묘파 입문, 소용녀와의 만남[편집]


구처기는 자신이 양강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양강이 악의 길을 걷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생각해서 양과는 제대로 가르치려고 생각했지만, 하필 소인배 조지경저지경에게 맡긴 탓에 일이 틀어지게 된다. 정확히는 구처기도 어느 정도 원인제공을 한 감이 있는데, 양과는 양강처럼 오냐오냐하며 곱게 키우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구처기가 첫날부터 양과를 엄격하게 훈계했고, 잘못도 없이 훈계를 들은 양과가 서러워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조지경의 말에 곽정이 보고 싶어 울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시작된다. 조지경은 이걸 넘어가지 못하고 양과를 닥달한 게 갈등의 시작이었다. 그 과정에서 조지경은 양과를 폭행하고 양과는 조지경의 손가락을 물어 부러트려 사제관계는 만나자 마자 파탄났다. 조지경은 양과를 괘씸하게 여겨서 전진교 무공의 구결만 가르치고, 수련법은 하나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전진교 제자들이 무공을 겨룰 때, 자신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던 녹청독에게 죽도록 얻어맞다가 합마공을 사용하여 쓰러뜨리고 도망친다.[15]

그리고 조지경과 함께 옥봉(玉蜂)에 쏘여 쓰러졌지만, 손노파를 만나 해독치료를 받게 된다. 그리고 손노파가 죽을때[16] 양과를 돌봐달라고 소용녀에게 유언을 남겨, 고묘파의 제자로 들어간다.

그리고 고묘에서 소용녀에게 무공을 배우면서 듬직한 젊은이로 성장한다. 또한 소용녀가 차갑기는 해도 진심으로 양강을 아낀 탓인지 비록 세속의 법도는 몰라도 비뚤어진 성격이나 지독한 말버릇이 많이 나아져 사람들과 정상적으로 교분을 나누는 것이 가능해졌다.

종남산에 있는 꽃밭에서 소용녀와 옥녀심경의 내공을 수련하다가, 견지병과 조지경에게 들켜서 소용녀가 내상을 입게 되자 견지병과 조지경을 제압하고, 이 일을 발설하지 않도록 맹세를 시킨다. 소용녀를 고묘에 데려다 놓은 후 마을로 내려가 약을 구하려다가 홍능파와 만나게 된다. 바보인 척 하면서 홍능파를 속이다가 소용녀가 걱정되어 홍능파를 데리고 고묘로 돌아간다.

이막수도 따라 들어와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만, 소용녀가 고묘의 기관장치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도망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소용녀가 고묘를 지키고 단용석을 떨어뜨려 이막수와 함께 죽기로 결심하자 자신도 소용녀와 함께 죽기 위해 고묘 안에 갇혀버린다.

그리고 소용녀와 함께 왕중양이 남긴 관 아래의 비밀통로를 찾고, 그 안에서 구음진경의 일부와 단용석이 떨어져도 고묘를 빠져나갈수 있는 또 하나의 통로를 알게 된다. 곧 따라온 이막수에게 제압당했지만, 소용녀가 천장에 새겨진 구음진경을 보고 해혈법을 알려줘서 다시 일어나 이막수와 홍능파와 함께 비밀통로를 따라 고묘를 빠져나온다. 그리고 1년간 계곡에서 소용녀와 함께 지내면서 고묘에 남겨진 구음진경의 일부를 연마했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구양봉이 소용녀의 혈도를 짚어서 내버려두고 양과를 끌고가서, 하룻밤 동안 합마공과 역구음진경의 요결도 배우게 된다.

그날 밤에 소용녀가 견지병[17]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18], 다음날에도 소용녀를 평소처럼 대하다가 소용녀가 화가 나서 어디론가 가버린다.

3.4. 소용녀를 찾아서[편집]


소용녀가 떠나버리자, 그녀를 찾아 이리저리 떠돌면서 '흰 옷을 입은 예쁜 여자'를 찾다가 엉뚱하게도 육무쌍을 찾게 된다. 육무쌍이 개방과 전진교의 제자들에게 공격당하고 있자, 바보 목동인 척 하면서 소를 몰아 육무쌍을 도와준다.

그리고 육무쌍과 함께 다니다가 이막수가 쫓아오자, 변장을 위해 지나가던 혼례 행렬을 습격하여 신랑 신부로 위장한다. 그리고 이막수를 지나쳐보낸 다음, 육무쌍을 쫓던 개방 제자들도 물리친다. 그리고 다음에는 객잔에서 육무쌍을 쫓던 전진교 도사들의 옷을 빼앗아 입어 도사로 위장한다.

이막수가 지나가는 동안 도사로 변장한 채로 육무쌍과 하룻밤을 잠자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잠자던 육무쌍에게 욕정이 솟아 키스를 할 뻔 했지만, 소용녀가 생각이 나 자기 뺨까지 때리며 정신을 챙긴다.

양과와 육무쌍을 알아본 개방 제자들이 다시 시비를 걸고, 마침 이막수가 나타나자 전진교 제자로 위장하기 위해 전진검법과 고묘파의 경공을 써서 개방 제자들을 제압한다. 전진교 도사인 척 하면서 무림에 악명을 떨치는 이막수가 있으니 전진교와 개방이 서로 싸워서는 안 될 것이라 둘러대고 개방 제자들을 물러나게 한다.

하지만 이막수가 사부를 물었을 때, 조지경은 물론이고 손노파를 죽인 학대통 등 전진칠자보다 서열이 낮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에 왕중양이 자기 사부라고 했다가 들켜버린다. 양과의 나이상 도저히 왕중양이 사부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19][20]

눈치를 챈 이막수가 무공을 겨뤄보겠다고 하면서 공격을 하자, 구양봉에게 배운 역구음진경의 무공 대로 물구나무를 서서 이막수의 공격을 막아낸다. 그리고 재빨리 이막수와 홍능파가 타고 온 나귀를 죽이고, 육무쌍과 타고 가기 위해 준비해둔 말에 올라 도망친다. 그리고 객잔에서 야율주와 만나게 된다. 이막수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야율주를 제압하여 자신의 무공을 보여주고 몽고 군관으로 위장한다.

그러다가 완안평의 사연을 알게 되자 그녀에게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껴 야율제가 두 손을 쓰게 할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막수에게 납치된 육무쌍을 구하기 위해 이막수를 쫓아간다.

야율제와 함께 이막수를 공격하다가 곽부와 무씨 형제가 나타나자 그들을 보고 옛날 생각이 나서 자괴감에 빠지고, 또 이막수가 곽부와 무씨 형제와 싸우다 도망치자 곽정이 올까 두려워 도망쳤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곽정을 사사하여 자기보다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막수가 소용녀와 자신이 통정했다고 한 말을 들은 완안평이나 육무쌍, 야율연 등도 그 말을 믿고 자신을 수치스럽게 생각할 것이라고 지레 생각하여, 악당인 이막수의 말을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라는 건 생각하지도 못하고 그저 분통이 터진 나머지 말도 남기지 않고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한달 간 아무 곳이나 닥치는대로 쏘다니다가 화산(華山)에 당도하여, 눈덮힌 화산에서 천변오추(川邊五醜)의 일당을 쫓고 있던 홍칠공을 만나게 된다. 양아버지 구양봉과도 재회하여 구양봉과 홍칠공이 생애 마지막 무공 대결을 펼치는 것을 보고 그들로부터 무공(타구봉법과 그 파해법)을 전수받기도 했다.


3.5. 영웅대연[편집]


구양봉과 홍칠공이 죽은 후, 화산을 내려와 떠돌다가 영웅대연에 가서 곽정과 황용을 다시 만나게 된다.

대회에서 소용녀와 재회하여 노닥거리다가, 달이파가 부러뜨린 점창어은의 철장이 소용녀 쪽으로 날아오자 분노하여 곽도에게 시비를 건다.[21] 교묘한 속임수로 곽도를 농락하며, 타구봉법옥녀심경의 검법으로 싸우다가 옥봉침을 써서 곽도를 중독시킨다.

황용이 조언한 대로 구음진경의 이혼대법으로 달이파를 쓰러뜨리고, 금륜법왕이 소용녀와 싸울때 나서서 금륜법왕의 금륜을 부순다. 그리고 금륜법왕이 곽정의 장력에 충격을 받아 말을 못하는 사이 승리 선언을 해버린다.

소용녀가 자신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하자, 너무나 감동하여 그녀를 받아들인다. 사부와 제자가 결혼할 수 없다는 법도를 중시한 곽정이 쳐죽이려 하는데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소용녀와 함께 그 자리를 떠나게 된다.[22]

곽부가 금륜법왕에게 붙잡히고, 황용이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보자 의기를 참지 못하고 소용녀와 함께 나서서 금륜법왕과 싸운다. 이때 옥녀소심검법의 본래 의미를 깨달아, 자신은 전진검법을, 소용녀는 옥녀검법을 사용하는 식으로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여 금륜법왕을 물리친다. 황용의 충고를 듣고 양과와 함께 있으면 양과가 불행해질 것이라고 생각한 소용녀가 떠나자, 양과도 급히 그녀를 쫓아갔다가 금륜법왕이 다시 황용 일행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황용을 돕게 된다. 황용에게 타구봉법의 구결을 완전히 전수받아 타구봉법의 신묘한 초식으로 금륜법왕에게 선전했지만, 그에게 일장을 맞고 크게 내상을 입었다.

정영에게 구출 받은 다음, 정영이 데리고 있던 육무쌍과도 재회한다. 육무쌍을 노리고 이막수가 공격해왔지만 내상이 심해 싸우지 못하고 있었는데, 황약사가 나타나 그들을 구해준다. 곡령풍의 딸에게 양강이 죽은 사연에 대해서도 약간 듣게 된다.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는 황약사와 친구를 맺은 다음, 그에게 내상을 치료받고 탄지신통과 옥소검법을 전수받는다. 황약사가 떠나자 자신들끼리 이막수를 상대하기로 하고, 이막수의 불진에 대항할 무기를 찾기 위해 풍묵풍의 대장간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풍묵풍과 힘을 합쳐 이막수를 물리친다. 풍묵풍이 떠나고 난 후, 곡령풍의 딸의 이야기를 듣고 양강을 죽인 것이 황용이라는 것을 알고[23][24]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정영, 육무쌍과 헤어져 길을 떠나면서, 곽정과 황용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내상을 치료하고 있는 금륜법왕을 만나고, 양과는 곽정을 위해 금륜법왕과 싸운 것을 후회하여 금륜법왕을 치료해준다. 그리고 금륜법왕과 함께 몽골의 왕자 쿠빌라이와 만나 소상자, 니마성, 마광좌, 윤극서와 만나게 된다.


3.6. 절정곡[편집]


주백통이 쿠빌라이의 군영에서 난동을 부리고, 절정곡에 끌려가자 금륜법왕 등과 함께 그를 쫓아 절정곡으로 가게 된다.

절정곡에서의 양과와 소용녀의 사랑은 김용 월드 전체에서 가장 처절한 부분 중 하나이다.

절정곡에서 소용녀를 만나게 되지만 양과를 위해 그와 헤어지려고 결심하고 있던 소용녀가 자신을 모른 척하자 비통한 마음에 피를 토한다. 하지만 소용녀가 공손지에게 뭔가 협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가로막는 번일옹과 싸워 그를 쓰러뜨린다.

폐혈기공을 익힌 공손지의 몸에 혈도 공격이 통하지 않자, 옥봉침으로 찌르는 기지를 발휘하여 공손지를 한번 물리친다. 이로서 소용녀의 마음을 다시 돌렸으며, 공손지가 억지를 쓰면서 보내주지 않으려 하자 절정곡의 검방에서 군자검을 얻고 소용녀와 함께 옥녀소심검법을 사용해 공손지를 쓰러뜨린다. 하지만 소용녀와 함께 있다가 정화의 독이 발작하여 쓰러지고, 그 틈을 노린 공손지에게 붙잡혀서 정화독에 크게 중독되어 36일이 지나면 독이 발작하여 죽어버리는 몸이 되어버렸다.

공손녹악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후, 그녀가 공손지의 의심을 사 살해당할 위협에 놓이자 그녀를 구하려다가 함께 지하 동굴로 떨어진다. 지하 동굴에서 공격해오는 악어를 쓰러뜨린 후, 주백통이 몰래 자신의 옷 속에 넣어둔[25] 절정단과 영지버섯, 야명주, 절정곡의 지도와 지하통로가 그려진 양피지 등을 발견한다.

절정단은 소용녀를 위해 아껴두고, 영지버섯은 공손녹악과 나눠먹어서 기운을 차린 다음 양피지의 경로를 따라 이동하여 구천척과 만나게 된다. 구천척을 구출하여 동굴 밖으로 나온 다음 다시 소용녀를 만나러 절정곡으로 돌아와 공손지와 싸우게 된다. 싸우다가 도중에 소용녀가 부상을 입어 물러나게 되었지만, 구천척의 조언을 받아 공손지에게 승리한다. 그리고 구천척에게 절정단을 미끼로 하여 곽정과 황용의 목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자신도 곽정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흔쾌히 받아들인다.

구천척에게 받은 절정단의 반쪽을 먹지만, 절정단은 약간만 먹으면 오히려 정화의 독을 모으기 때문에 남은 인생이 18일로 줄어들었다.


3.7. 양양성[편집]


양과는 소용녀와 함께 쿠빌라이의 군대에 포위된 양양성으로 가서, 쿠빌라이에게는 성 안에서 곽정을 치겠다고 둘러댄 후 양양성에 들어간다. 하지만 곽정의 의협심과 자신을 따뜻하게 돌봐주는 모습에 정이 끌려 차마 곽정을 죽이지 못하고 갈등하게 된다.

곽정 부부를 좋아하면서도 자신의 아버지인 양강을 죽였다고 생각해[26] 꺼리고, 함정에 빠트리려다 구해주는 등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무씨 형제가 경솔하게 자기들끼리 쿠빌라이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하여 몽골군의 진영에 잡혀 포로가 되고, 곽정이 몽골군 진영으로 떠나게 되자 자신도 따라 나선다. 처음에는 이 기회에 곽정의 목숨을 빼앗아야 할지 갈등하였지만, 자신을 구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싸우다가 부상까지 입는 곽정을 보고 곽정을 구하기로 마음먹는다.[27][28]

이후 풍묵풍의 도움도 얻고 소상자의 곡상봉에 들어있던 독약을 마침 운 좋게 사용하였으며, 곽정을 구해 양양성으로 돌아온다. 곽정이 쓰러진 틈을 타서 몽골군의 고수들이 공격해오자, 소용녀와 함께 막아낸다. 이막수가 막 태어난 곽양을 데리고 도망치자 이막수를 설득하여 함께 금륜법왕과 니마성을 막아내고 곽양을 지킨다. 그리고 새끼를 가진 암컷 표범을 붙잡아 곽양의 유모로 쓰고, 동굴에서 잠을 자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가 신조를 만난다. 신조를 따라가서 독고구패의 무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무삼통이 우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서, 무씨 형제가 곽부를 놓고 결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무삼통을 보니 애통한 마음이 들어서 자신이 곽부의 정혼자가 되었다는 거짓말을 하고 둘 모두를 제압하여 형제가 서로 죽이는 막장 시추에이션 사태를 막는다. 또 무삼통 부자가 이막수가 있는 것을 눈치채고 싸우다가 이막수는 도망치고 무씨 형제가 빙백은침에 중독되자, 자신이 중독되는 것을 각오하고 독을 빨아내서 목숨을 구해준다.

그리고 자신은 중독되어 쓰러졌으며 원래는 기한이 넘어서 죽게 되었으나, 빙백은침의 독과 정화의 독 사이에 일부 상쇄 효과가 일어나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중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자신이 무씨 형제를 화해 시키느라 곽부와 정혼하게 되었다는 거짓말[29]을 한 것이 곽부를 화나게 해서 말다툼을 하다가 그만 곽부에 의해 팔이 잘리고 만다. 부상을 입은 양과는 양양성을 떠나 도망치다가 신조를 만나 독고구패의 검총(칼무덤)에 가서 현철중검을 얻고, 신조와 함께 독고구패의 검술을 수행하며 신조가 잡아온 뱀의 쓸개를 먹어 내공을 크게 증진시킨다.

수행을 마친후, 도로 양양성으로 돌아가 곽부에게 복수를 하려 했는데 곽정이 곽부에게 네가 양과의 팔을 잘랐다며 자신은 공정한 사람이라 너를 사랑하지만 너의 팔을 잘라 양과에게 용서를 빌어야 겠다고 하다가 곽부가 황용에 의해 도망치는 걸 보고 자기가 따라가서 곽부의 팔을 베는건 쉽지만 곽정의 마음에 상처가 되리라 생각해 그만둔다. 그리고 양양성을 나간 황용과 곽부를 쫓아갔다가 소용녀가 훔쳐 나온 곽양을 보고 잠시 경악했지만 이막수와 황용이 싸우는 틈을 타서 자신의 팔을 잘랐던 것 만큼 아픔을 주기 위해 데리고 도망친다.


3.8. 다시 고묘로[편집]


그리고 몽골 무사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전진교로 가서, 소용녀를 구하고 금륜법왕, 니마성, 윤극서, 소상자 등을 모두 쓰러뜨린다. 그리고 소용녀와 왕중양의 초상 앞에서 혼례를 올린 후, 곽양을 데리고 다시 고묘로 돌아간다. 양과는 소용녀에게 내상을 치료하면 속세에 나가지 않고 고묘에서만 살자고 하고 소용녀는 이를 좋아하는데 소용녀가 그날 꿈을 꾸는데 소용녀와 고묘 생활을 한지 꽤 된 이후의 이야기로 양과가 조용한 고묘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소용녀를 두고 떠나고 소용녀가 울면서 과아 가지마렴 하며 절규하는 내용으로 소용녀는 울면서 깨어나게 되고 소용녀는 양과가 자신을 떠날까 불안해하며 내상을 치료하여 양과와 함께 세상을 돌아다니기 위해 양과에게 내상을 빨리 치료하자고 종용하여 내상을 치료하는데 갑자기 내상을 빨리 치료하고 세상을 돌아다니자는 소용녀의 모습을 보고 양과는 자기가 고모에게 무슨 잘못을 해서 자신을 떠날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불안해한다. 실은 양과도 바깥에서의 풍파를 겪으며 소용녀와 함께한 고묘에서의 생활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평생 소용녀와 함께 고묘에서만 살 생각이었다. 한마디로 양과나 소용녀 둘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을 떠날까봐 불안해 했던 것.

고묘에서 소용녀를 치료하다가 이막수가 나타나 위기에 놓였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오히려 이막수의 장력으로 소용녀의 내상을 단번에 치료한다. 하지만 이막수가 적련신장을 썼기 때문에 소용녀의 몸에 독기가 침범되자, 속임수를 써서 이막수를 석관에 가두고 다시 소용녀와 함께 석관에 숨어 독을 뽑아내려 한다. 그러나 곽부가 석관에 숨은 것이 이막수인 줄 알고 빙백은침을 던진게 소용녀에게 맞아,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버린다. 정말이지 양과 인생에 도움이 하나도 안된다.

다시 화가 나서 소용녀와 곽양을 데리고 먼저 고묘에서 빠져나와 버린다. 이런 피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곽부가 이막수에게 점혈을 당해 쓰러져서, 그대로 몽골군이 종남산에 지른 불에 곽정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구해주었다. 곽부에 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에게 진심을 다해 아껴준 곽백부에게 자식을 잃는 한을 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소용녀와 함께 곽양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가, 단지흥구천인을 만나서 살심이 발동한 구천인을 제압한다. 그리고 그들과 동행하여 절정곡으로 간다.


3.9. 다시 절정곡으로[편집]


양과는 다시 돌아온 절정곡에서 정화 가시밭에 갇혀 이막수와 대결하느라 위기에 빠져 있던 정영과 육무쌍을 구해주고, 구천척이 대추씨를 날려 곽부를 죽이려 한 것도 막아준다.

그리고 공손녹악을 아내로 맞이하지 않으면 절정단의 나머지 반쪽을 주지 않겠다는 구천척의 말에 대해 단호한 태도로 소용녀를 선택한다. 실연당한 공손녹악은 충격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양과를 돕기 위해 그를 모욕하려고 대추씨를 뱉는 척 하면서, 대추씨 안에 주자류천축승이 갇힌 장소를 적은 종이를 넣어두었다.[30]

절정곡에서 절정곡 제자들의 어망진을 현철중검으로 깨뜨려 사람들을 구하고, 소용녀의 활약으로 공손지가 빼앗아 갔던 절정단을 얻지만 소용녀가 죽는데 자신이 살아서는 의미가 없다면서 던져버린다.

절정곡에서의 모든 일이 해결된 후, 소용녀와 하룻밤을 보낸 뒤 소용녀가 16년 후에 만나자는 글을 남겨두고 단장애에 몸을 던져 모습을 감추자 황용이 거짓말로 둘러댄 '남해신니(南海神尼)'에 관한 말을 믿고 16년 후에 소용녀를 만나기 위해 살기로 결심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정화의 독을 치료하는 약초인 단장초를 먹어 목숨을 건지며 정영과 육무쌍과 함께 절정곡에서 중독을 치료한다. 정영과 육무쌍과 의남매를 맺은 후, 사악한 꽃인 정화를 모두 불태워서 이 세상에서 없애버린다. 육무쌍에게는 옥녀심경을 전수해주고, 절정곡을 떠난다.

하지만 양과는 소용녀와의 관계를 생각하며 깊은 고뇌에 빠졌고 너무 고뇌한 나머지 세월이 흐르자 머리가 일부 백발이 되게 되었다.


3.10. 16년 후[편집]


강호를 떠돌다가 신조와 재회하여 6년간 바다의 파도와 싸우며 무공을 쌓아 절정의 무공을 이루게 된다.

이미 현철중검을 자유자재로 쓴 양과는 그 이후 단계인 목검승철검을 수련하고 마침내 목검으로도 중검을 다루는 것만큼의 경력을 보여준다.[31]

또한 자신이 그 동안 배운 여러가지 무학을 집대성하고 소용녀를 향한 그리운 마음과 슬픈 마음을 담은 암연소혼장을 만들게 된다. 이로서 양과의 무공은 세상에 당할 자가 드문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다.

신조와 함께 강호를 다니면서, 의협심을 발휘하여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을 도왔기 때문에 신조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다. 또한 이 과정에서 강호의 여러 고수들과 교분을 가지게 되어 그 인맥도 정파사파를 가리지 않고 널리 퍼지게 되었다.

정영, 육무쌍, 공손녹악이 자신을 사랑하게 되어 불행한 결과가 나온 것를 반성해서인지, 더 이상 다른 여성이 자신에게 정을 붙이는 것을 막으려고 준수한 얼굴은 인피면구로 가려서 추하게 보이게 만들었으며 예전과는 달리 농담도 잘 하지 않고 과묵하게 필요한 말만 하게 되었다.

16년이 지난 후, 서산 일굴귀만수산장의 싸움을 중재하고 만수상장의 셋째 사숙강을 위해 구미영호의 피를 구하러 흑룡담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의 소문을 들은 곽정의 딸 곽양에게 동경에 가까운 사랑을 받게 되었다.

이때 쫓아오는 곽양과 함께 영고를 만난다. 그리고 단지흥의 부탁에 따라, 영고가 늪 밖으로 나오게 하여 사죄를 바라는 구천인을 만나게 한다. 하지만 영고가 용서해주지 않자 그녀의 한을 들어 주백통을 불러와 단지흥과 영고, 주백통 세 사람의 오래 얽힌 은원을 풀게 하고 구천인이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구미영호를 얻어 만수산장의 사숙강을 구해주고, 그들과 함께 잔치를 벌인다. 곽부가 곽양을 찾아 잔치장에 쳐들어오자 그 목소리를 듣고 곽양이 16년 전의 아기라는 것을 눈치챈다. 그리고 곽양에게 3개의 금침을 주면서, 자신이 할 수 있다면 금침 하나당 1개씩 3개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가면을 벗어서 보여달라는 부탁과 올해 9월 24일 생일날에 양양에 와 달라는 곽양의 부탁을 들어준다.

단순히 생일에 참석했을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여러 무림 고수들을 움직여서 곽양을 위해 여러가지 선물들을 준비해준다. 양양성을 공격하는 몽골군의 선봉대를 처치한다든가, 몽골군의 군량과 병기를 불태운다든가, 곽양과 친하던 노유각을 살해한 곽도를 달이파를 보내 작살내는 것으로 복수한다든가.

또 양양성에서 마침 황약사와 만나 남해신니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그를 쫓는다. 하지만 윤극서와 소상자를 농락한 다음, 황약사에게 남해신니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황약사가 "그게 누군가?"라고 해서 황용이 16년간 해온 거짓말이 탄로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멘탈붕괴를 일으키고 만다.

그 후 정처없이 쏘다니다가 돌연 가흥의 철창묘로 가서 30년 만에 아버지 양강의 묘지를 방문하게 된다.[32] 이 때 구처기가 세운 '불초제자 양강의 묘'라는 묘비를 보고 자신의 부친은 이미 죽었는데 왜 고인모욕까지 하냐며 분노[33], 묘비를 부수려던 찰나에 사통천 일행이 오는 것을 보고 뭘하는지 숨어서 지켜본다. 뒤이어 강남칠괴의 중에서 홀로 살아남은 가진악이 사통천 일당에 의해 위기에 처했는데, 사통천이 '30년 전에 양강이 여기에서 죽었듯이 너도 여기에서 죽게 되었으니 업보를 제대로 받게 되는구나'라고 말하자 가진악이 '양강은 매국노에 소인배인데 어떻게 나를 그런놈과 비교하냐'며 받아친다. 이를 들은 양과는 일단 가진악을 구해준 뒤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왜 자신의 아버지를 배후에서 욕하냐며 따진다. 이 틈을 타서 현장을 탈출하려는 사통천 일행을 양과가 제압하고 사실을 말하기 전엔 누구도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자 사통천 일행은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한다. 하지만 가진악은 여전히 위축되지 않고 강짜를 부리자[34] 자세를 낮추어 물어본 끝에 양강이 대역불효한 죄인이었다는 사실과 사통천 일당의 증언을 듣고[35] 충격에 빠진다. 그러는 양과를 가진악이 자네가 양양성에서 공로를 세웠으니 아버지의 죄과를 씻기에 충분하다며 격려하고, 양과는 왜서 황용이 자신을 경계했고 여러가지 오해가 생겼는지를 알게 된다.[36] 또 곽양이 몽골 군영에 있다는 말을 듣고, 군영에 갔지만 그가 찾아간 곳은 몽케 칸이 머무는 북대영이고 곽양이 잡혀 있는 곳은 쿠빌라이가 머무는 남대영이라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소용녀가 적어둔 16년의 세월이 다가오자 급히 절정곡으로 간다. 하지만 소용녀가 오지 않자, 절망감에 곽양의 눈 앞에서 소용녀가 떨어졌던 단장애로 몸을 던져버린다. 마침 단장애 아래에 큰 연못에 떨어진 덕분에 죽지는 않았고, 뒤쫓아 뛰어내린 곽양을 만나, 곽양의 마지막 소원으로 자살하지 말라는 부탁을 듣는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기로 결심하고, 곽양을 큰 수리에 태워서 올려보낸다.

그리고 단장애의 아래에서 사람의 흔적을 찾아내고, 소용녀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여 단장애의 연못 밑바닥으로 잠수하여 얼음 동굴을 지나 소용녀가 살고 있는 곳으로 나와서 16년만에 그녀와 재회하게 된다. 사실상 신조협려의 하이라이트.


3.11. 결말[편집]


소용녀와 재회한 후에는 양양성으로 달려가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금륜법왕을 물리치고 곽양을 구출한다. 그리고 위기에 빠진 야율제를 구출해서 곽부와의 앙금도 털어내고, 대칸 몽케를 추격하여 돌을 던져 살해한다.[37] 대칸이 사망하자 전의를 상실한 몽골군은 송군의 반격에 밀려 퇴각하였고, 쿠빌라이는 대칸 계승권 쟁탈전을 위해 남송전선에서 이탈하게 되어 몽골은 13년간 송을 노리지 못하게 되었다.

제3차 화산논검에 참석하여 구양봉의 뒤를 이어 천하오절에 오르게 되는데 칭호는 서광(西狂). 서독인 구양봉의 양자기에 "서"를 계승했으며, 얼굴이 수려하여 빛난다는 뜻과 스승만큼 "독"하지는 않으나 행동에 광기가 서렸다하는 중의적인 의미에서 광狂자를 부여받았다.

윤극서, 소상자가 소림사에서 구양진경이 써있는 능가경을 훔쳐서 화산까지 도망오자, 그들을 쫓아온 각원대사장군보를 만났다. 윤극서와 싸우게 된 장군보에게 3가지 초식을 알려주고, 그들이 쓰러지자 몸을 뒤지지만 두 명은 미리 새끼 원숭이의 뱃속에 구양진경을 숨겨두었기 때문에 들키지 않고 도망치게 됐다.

이렇게 일사천리로 밀린 일들을 처리한 후, 무림에서 물러나 소용녀와 같이 은거한다. 곽양이 40세가 될때까지 그들의 소식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출가하여 비구니가 된 것으로 보아 이후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연락을 끊은 듯 하다.[38]


4. 의천도룡기의 양과[편집]


의천도룡기 극초반 곽양이 양과와 소용녀 부부를 찾으며 스토리가 시작되는데, 곽양의 독백 '용언니 같은 인물이어야만이 그분과 짝지을 자격이 있지.....'라고 말하는 걸 봐선 역시 곽양에게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듯하다.[39][40]

곽양은 화산에서 헤어진 뒤 3년간 두 사람의 소식이 끊기자 한번 종남산 고묘를 방문했으나, 고묘에서는 몸종 두 명만 나와서 양과 내외가 바깥세상으로 나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만 해주었고 사흘간 기다렸으나 만날 수 없었다.

100년 뒤 의천도룡기 본편의 시대에도, 몽케 칸을 죽이고 양양성의 포위를 풀었던 '신조대협 양과'의 이름은 원나라의 압제에 대항하는 강호의 무림인들에게 신화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의천검도룡도는 사실 양과의 검인 현철중검군자검, 숙녀검을 재료로 해서 만든 것이다. 양과가 강호에서 사라지기 전에 현철중검을 곽양에게 선물하는데, 황용은 대장장이를 초빙해 양과의 무기들로 의천검과 도룡도를 만들게 된 것이다.

본편에서는 양과와 소용녀의 자손인 황삼미녀가 잠시 등장하기도 했다.


5. 애정관계[편집]


무슨 하렘물 주인공 같이 여자들도 많다. 하도 여자들이 꼬인 나머지 신조협려 후반부에는 양과가 신조와 함께 수련을 마치고 '이제부터는 행실을 조심해야지.'하고 다짐한 다음 보험으로 인피면구까지 뒤집어쓰고 강호로 출두한다. 근데 그래도 곽양이 꼬였다... 게다가 게임판 2부에서는 역목용이라는 몽고 공주가 갑툭튀해서 또 꼬인다.

의남매 플래그를 세운 완안평과 양과를 못 잊어서 결혼 안하고 사는 게 세 명(곽양은 출가, 정영과 육무쌍은 수절)에, 양과를 위해 죽은 공손녹악, 애증으로 팔 자른 곽부 등 수많은 여자들을 울리고 다녔다.[41]

육전원을 제외하고 이막수를 안아본 남자의 한 명이기도 해서[42], 현대였으면 에로게 주인공 감, 위소보, 장무기, 단예와 함께 김용월드의 카사노바. 사실 얘네들 말고도 김용의 유명 작품 주인공들은 2~3명의 여자들이 꼬이는 게 예삿일이다. 우직하기로 유명한 곽정에게조차도 황용, 화쟁, 정요가 3명이 꼬이고[43], 여자에 크게 관심없는 호걸인 소봉에게도 아주, 아자, 강민 3명이 꼬이며, 영호충이나 적운 같은 주인공들도 최소 2명은 꼬인다. 역시 성품이 강직한 원승지도 온청청 외에 장평공주 아구, 오독교주 하척수가 꼬였다.

노루표 무협지였다면 삼처사첩을 거느리고도 남았겠지만, 본인은 끝까지 일편단심으로 소용녀만 사랑하는 절개를 보여주었다. 윤리적으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곧 부자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된 것은 '패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강호에 나온 뒤로 이 일 때문에 온갖 지탄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사랑을 키워간다.

최초 판본인 연재판에서는 겨드랑이에서 뭔가 특별한 냄새가 나서 페로몬처럼 여자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설정이 있다. 황용조차도 초면에 이 냄새를 맡고 얼굴을 붉힐 정도.[44]

미연시 풍으로 정의하자면….

  • 소용녀: 여신, 천연, 쿨데레, NTR 이외에도 정말 많은 모에 요소가 있다. 항목 참조. 말 그대로 양과에게 있어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할만한 여성으로, 지극한 불행을 겪던 양과를 마침내 행복한 인생으로 이끌어낸 존재였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정분이라는 불륜에 거듭된 불운으로 인하여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심한 고난과 아픔을 겪었지만, 결국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였다. 마지막에는 대업을 이루고 양과를 데리고 속세를 완전히 떠나 선인이 되었다.
  • 정영: 현모양처, 치유계. 소용녀는 무협소설에서는 약간 비전형적인 히로인이고, 정영은 일반적인 무협소설의 정통파 히로인에 더 가깝다. 미모나 재주는 소용녀나 곽부에 못미치지만 작은 부분까지 정성을 들이는 세심함과 봄햇살처럼 온화한 성품이 그것을 훌륭하게 보완해준다. 다소 극단적인 성격을 가진 여성들과 만났던 양과에게 있어 타고난 성품으로 조건없이 따뜻하게 대해준 가장 착한 여성이었고, 소용녀와의 따스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작중에서도 양과가 '소용녀만 아니었어도 괜찮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정영도 양과를 매우 사랑하여 그의 일이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도와주려고 했다. 최종적으로는 의남매.
  • 육무쌍: 소꿉친구, 츤데레. 어렸을 때 만나기도 했고 농담 겸 장난이었지만 양과와 처음으로 '가시버시'한 사이. 그 뒤로도 양과와 서로 색시, 신랑으로 부르다가 정영이 말려서 겨우 그만둔다. 이처럼 발랄하고 순수하게 친근한 남녀관계는 신조협려에서는 보기 드물다. 양과가 집안이 망하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했다면 이와 같은 사랑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 양과가 호감을 느낀 것은 그녀가 화내는 모습이 소용녀와 닮았기 때문이라고..
  • 곽양: 여동생계. 사춘기 소녀다운 연상의 남자에의 순수한 동경과 연모, 상대가 이미 임자 있는 남자라는 고민이 뒤엉켜 있는 복잡한 관계. 사실 나이 차이로 치면 혹은 키잡에 속하기도 한다. 곽양이 태어났을때 양과는 소용녀랑 죽네 사네하고 있었으니. 게다가 이막수랑 같이 실제로 키우기도 했다.
  • 공손녹악: 순애계. 양과를 위해서 목숨까지 버린 지고지순한 사랑. 여러 여성 중에서도 특히 양과를 위해 모든걸 희생하여 가슴에 깊이 남았다.
  • 곽부: 곽씨 일가와 양씨 집안에 있던 전통, 부모를 여의고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양과의 불행을 지워주려는 곽정의 뜻 등등 원래대로라면 결혼해야했던 여인. 그러나 어릴 적부터 양과와는 악연이 깊었고, 그런 바람에 제대로 사랑을 쌓을 여지가 없었다. 더욱이 곽부의 행보는 그야말로 얀데레의 진수. 양과 뿐 아니라, 소용녀에게 있어서도 그녀의 사랑을 가로막는 최대의 방해자라고 할 수 있다. 항목 참조.
  • 완안평: 청순가련계. 금나라 황족 출신으로, 양과의 과거와 관계가 있는 여성으로 초반에 제법 비중있게 나왔다. 양과의 다정한 모습에 반해 상당한 호감을 가졌지만, 중반부에 등장이 사라지면서 이후 양과에 대한 감정이 묘사되지 않았다. 이후에는 야율연과 함께 무돈유 무수문 형제와 혼인한다.
  • 이막수: 연상, 처녀, 역키잡? 이막수도 여러가지 속성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다. 그래도 일단은 처녀의 몸으로 어린 양과한테 안겼을 때 혹하기도 하고, 곽양을 양과와 소용녀의 딸로 오인하여 납치했을때만 해도 자신에게 젖이 나오지 않으니 표범 젖을 물리고 양과와 함께 이 아이를 키우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45] 사실 이막수가 소용녀에게 했던 해코지에, 무고한 인명살상 때문에 평판이 바닥을 쳐서 그렇지 마음 속 깊숙히 양과를 동문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양과의 소용녀에 대한 사랑에 보고 그의 순정에 감동을 받은 것도 한 부분. 제인 쇼어 같은 느낌이 들기도.
  • 홍능파: 적과의 동침 자신이 죽을 것 같자, 안으로 양과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친 나머지 함께 자진하려 하는 소용녀에게 죽을 위기에 처하고 가까스로 도망한 후에 만난 여성. 워낙 놀라고 상심한 상태인지라 갑자기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예쁜 여자의 유혹에 걸려들었다. 소용녀 이후로 이성으로서 인식하는 감정을 갖고 만난 첫 번째 여성이 그녀를 해치려는 적이라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대목. 홍능파는 여기서 양과에게 조금 호감을 느꼈다고...
  • 황용: 원수,인처, 선생님? 원작을 생각해보면 상상하기 힘든 관계라 어이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의외로 중국 동인 소설 쪽에서는 양과×황용이 압도적으로 인기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황용의 동인설정이 워낙에 그쪽에서는 써먹기 좋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곽부와 곽양의 모녀덮밥이나, 최음제 먹고 오락가락 하는거 해소시켜 준다던가, 소용녀 생이별 시킨 보상으로 16년 노예로 부려 먹히던가 하는 등의 설정으로 능욕계 히로인으로 활약 중... 유교적 관점으로 봤을때 스승님하고도 해먹은 놈이 의백모라고 못해먹을 건 뭔가 싶은 걸지도.

6. 인맥[편집]


신조협으로 이름을 떨치기 전부터 비범한 인맥을 자랑한다. 일단 구양봉이 의부, 황약사가 친구.[46] 대협 곽정이 의백부, 개방 방주로 이름높은 황용이 의백모.[47] 북개 홍칠공과는 화산에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깊이 존중하며 교분을 맺었고, 남제 일등대사와도 여러 차례 마주치며 인연을 쌓았다. 젊은 시절의 양과는 소용녀와의 사랑으로 인해 온갖 평지풍파를 겪었지만 아직 활달한 기질이 강하게 드러나던 터라, 만나는 사람마다 스스럼없이 사귀었다. 여기에는 국사에 무심하고 개인적인 마음에 치우쳐 있는 당시의 기질이 한 몫을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쿠빌라이의 병영에 머무르며 몽골 제국이 불러들인 고수들과 인연을 맺지는 않았을 것.

여기까지는 개인적인 배경이 화려한 정도겠지만, 소용녀와 이별하고 신조협으로 활동하면서부터 강호의 인맥이 팽창한다. 나란히 추앙받는 대협인 곽정이 양양성에 오랜 세월 동안 머무르며 몽골과 싸움으로써 충(忠)의 본보기를 보였다면, 신조협 양과는 천하를 자유로이 주유하며 내키는 만큼 의(義)를 행하고 다녀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강호의 인사들에게 미치는 영향력만을 생각한다면 곽정을 훨씬 뛰어넘는다! 곽정만 해도 영웅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할 만큼 명성이 드높았지만, 오랜 세월 강호로 나가지 않은데다 양양성을 지키는 일에 전념하다 보니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겨를은 없었다.[48] 하지만 양과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 강호를 설치고 돌아다니면서 얻은 위명을 존중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예로 곽양의 생일 축하 이벤트를 들 수 있다. 양과가 불러모은 고수들 중에는 곽정이 불렀어도 사양한 인물들, 곽정이 부를 생각도 않았던 인물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곽정의 초대에도 오지 않은 사람들 중에는 작위를 받은 신분이라 일반 무림계 인사들과 잘 교류하지 않는 이도 있었고, 귀머거리에 벙어리인 사람도 있었다. 또한 사파의 인물들도 다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은 직접 대면해서 교분을 쌓은 양과 정도. 또 정파인지 사파인지 구분이 애매모호한 사람들, 사람을 죽이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흑도의 인사들도 모두 신조협의 위명을 존중해 움직였다. 그 숫자만 해도 수백 명이 거뜬히 넘어서, 몽고군의 병참을 불태우고 2천 명의 적병을 몰살한 다음 귀까지 자르고도 유유히 빠져나갈 정도였다. 양과가 고수들 사이에 쌓아 놓은 친분과 강호에서 누리는 위세 모두를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양과가 나랑 아는 여자애 생일파티를 뻑적지근하게 해 줄 거니까 모일 수 있는 놈들 죄다 모여라고 했을 뿐인데 예의 그 사단이 일어난 것이다(...).[49]


7. 양과의 무공[편집]


곽정과 더불어 1대 천하오절 이래로 가장 뛰어난 무공을 가진 고수로, 의천도룡기 시절에도 무림인들에게 회자되어 있을 정도로 명성이 높다. 곽정이 항룡십팔장 한 가지를 최대의 장기로 삼아 수련하여 최고의 고수의 반열에 오른 반면에[50][51], 양과는 타고난 총명함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호방한 성품으로 실로 다양한 절기와 절학을 익혔다. 배운 것들도 하나같이 천하오절을 비롯하여 당대 최고수들의 절기와 절학들인데다가, 그 경지도 놀라울 정도라서 무림역사상 손꼽히는 기재라고 할 만하다.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익힌 독고구검과 암연소혼장은 그의 대표적인 무공.

무협지 주인공답게 익힌 무공도 매우 다양한데, 구양봉에게 합마공과 경맥역행을 배운 것을 비롯해, 소용녀에게 고묘파의 무공과 옥녀심경을, 고묘 안에서 구음진경의 일부를, 내공, 검법을 비롯한 전진파 무공을[52], 홍칠공과 황용으로부터 타구봉법을[53], 황약사로부터 그의 절기인 탄지신통옥소검법을 배웠다. 이것은 남제 단지흥을 제외하고 오절의 유명한 절기를 대부분 익힌 것이었다.[54] 물론 하나의 절기를 평생 수련한 다른 오절들에 비하면 오묘한 경지는 떨어지겠지만, 양과의 무공이 이미 경지에 올랐고 내력도 충만하기 때문에 기술을 전수한 오절 못지 않은 위용을 보여줄 때가 있다. 이를테면 황약사와 양과가 각자 떨어진 위치에서 동시에 탄지신통을 발해 곽도를 죽여버리자, 황용은 천하에 이런 암기술은 아버지의 탄지신통뿐인데 어떻게 동시에 떨어진 곳에서 날아오는가를 의아해했다. 물론 평생 무궁무진하게 탄지신통을 애용한 황약사에 비할까마는, 무공의 경지에 오른 양과의 탄지신통 일초식은 그 강맹한 기세와 위력만큼은 황약사를 방불케 했던 것이다.

다양한 무공에 능통하지만 그의 최대의 장기는 단연 검술이다. 독자들 사이에서 검술로는 김용 소설 전체 전체에 나오는 주인공들 가운데서 독보적인 최고라고 꼽히고 있다. 특히 현철중검을 활용한 중검술과 이후 파도수련을 통한 강한 내력을 실은 검술은 가공할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천하오절급의 고수인 금륜국사를 대적하여 중검술로 완전히 꺾어버리기도 했다. 똑같이 독고구패의 검을 익힌 소오강호의 주인공인 영호충이 독고구검이라는 체계적인 검법을 이었다면, 양과는 비록 사람에게 배우지 못하여 일부분이 부족하다 할 수 있으나 순수한 검의를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55] 아닌게 아니라 양과의 존재 때문에 김용의 모든 무협소설들 중 소오강호와 더불어 검법이 가장 화려하게 묘사되는 수준이다.

어릴 적에 어머니에게 약간 배웠다는 묘사가 있는데, 그 어머니의 무공 자체가 시원찮았고(진남금/목염자) 그나마 조실부모한지라 실질적으로 모친에게 배운 '무공'은 없다고 봐도 된다. 그저 몸이나 지키게 싸움박질이나 알려줬다고 보면 된다. 이후 도화도에서 곽정 부부 아래서 자랄 때는 양강의 교활함을 이어받은 것을 우려한 황용이 그에게 성현의 말씀만 가르쳤고, 이후 불화로 도화도를 떠나 정식으로 전진파에서 배우게 했는데 사부를 잘못 만나 구결만 외울 뿐 실제 초식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천재치고는 출발이 대단히 버벅거린 편(...). 그러나 이 때도 어린 나이에 실성한 구양봉이 일러 준 합마공의 비결을 운용해서 몇몇 사람을 크게 다치게 한다.[56]

무공을 정식적으로, 체계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소용녀의 제자가 되어 고묘파의 진전을 이어받으면서 부터이다. 이 고묘파의 기본 무공과 전진 무공의 정수를 파악하고 이에 대처하는 옥녀심경이 양과 무공의 근본을 이룬다. 고묘파의 창시자인 임조영이 여성인지라 고묘파의 무공은 전체적으로 여성적이며 민첩함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양과는 남자인 자신이 그대로 쓰기에는 너무 섬세하다고 여겨 그 자신이 적들과 무공을 겨룰 때는 전진파 무공을 많이 사용하고, 고묘파 무공도 여성스러움을 줄이고 경쾌하고 민첩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바꾼다. 가령 역대 중화 미인들을 본뜬 미녀권법이라거나, 천하 검법 중 둘도 없이 섬세하고 선녀 같은 옥녀검법이라거나...... 곽정이 우직한 반복 훈련을 통해 항룡십팔장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면 양과의 이러한 변용은 본인의 재치와 응용력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20세도 안된 어린 아이 임에도 타고난 기지와 재능으로 임기응변으로 자신에게 맞추는 것을 보면 확실히 기재는 기재다. 고묘파의 비전 내공심법인 옥녀심경을 완전히 익혔고, 또한 옥녀심경을 수련하던 사이에 조지경과 윤지평 때문에 소용녀가 내상을 입은 사이에 쳐들어 온 이막수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다가 관에 쓰여진 구음진경도 익혔다. 이후에는 하나만 먹어도 혈맥이 타통되는 사담까지 밥먹듯이 먹으며 엄청난 고난도의 경력수련을 쌓아서 내공이 사조삼부곡을 통틀어 최상의 수준에 달하게 된다. 일등대사가 평하기를, 내력의 정순함은 자신만 못해도 강맹한 기세를 논하자면[57] 양과가 한 수 위라고. 양과보다 젊은 나이에 이렇게 강한 내공을 쌓은 이는 천룡팔부 시대의 단예허죽을 제외하면, 의천도룡기 시대의 장무기 뿐이다.

이후 동사 황약사, 북개 홍칠공과의 인연 등을 통해 옥소검법, 탄지신통, 타구봉법 등 과거 오절들의 무공의 정수들을 전수받게 된다. 대부분을 완전히 전수받았으며 그 내용도 모두 핵심적이고 중요한 부분에 속한다. 특히 타구봉법은 평생을 사용한 황용을 제외한다면 작중의 누구보다도 완전한 형태로 전수받았다고 할 수 있다. 홍칠공의 지도로 직접 모든 초식의 동작을 재현해야 했고 황용에게 속성 구결을 전수받고 마지막에는 모자란 부분을 즉석이나마 보충받았기 때문에... 아무튼 똑같이 정말로 다양한 무공을 배웠지만 결국 구음진경과 항룡십팔장으로 무공의 맥이 대표되는 곽정과는 달리, 양과는 특유의 뛰어난 자질로 다양한 일류 무공들을 섭렵했지만 하나를 골라 끝까지 파보지는 못했다. 이는 작중에서 양과도 고민하는 내용인데, 금륜법왕이 양과에게 배운 재주가 극히 다양하고 오묘하지만 그 중 어느 것으로 곽정을 상대하겠냐고 묻자 말문이 막히고 만다. 이후 며칠 동안이나 자신이 배운 무공들을 어떻게든 조화시켜 보려고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필요할 때 필요한 걸 골라 쓰자'라는 식으로 넘어가게 된다. 결국 이러한 무학들의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진정으로 조화시키는 경지는 소용녀와 이별한 동안 수련에 매진하여 암연소혼장을 완성함으로 이루어진다.

양과는 젊은 나이에 극히 다양한 종류의 무공을 섭렵했고, 이들 대부분은 민첩함과 오묘한 변화를 중시하는 것들이었다. 젊은 나이에 여러 차례 강적을 만난 양과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배운 무공이 너무 민첩함을 중시하다보니 중후감과 무게감이 떨어지고, 초식의 유려한 변화와 기교를 강조하다보니 오히려 단순한 공격보다 위력이 부족한 때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이 밝고 손발이 빠른 양과는 소싯적에 만난 어떤 강적이라도 무공의 초수로 밀리는 일은 적었으나, 상대와의 공력 차로 인해 궁지에 몰리는 경우는 오히려 잦았던 것이다.[58][59][60]

그래서 딸리는 내공과 내력을 초식의 변화와 민첩함과 재치와 기민함으로 보충하던 양과는 오히려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심후한 내력을 이용해 간결하고 단순하게 초식을 구사하게 된다. 이것은 독고구패의 중검 수련을 통해 단순한 동작으로 복잡한 동작을 이길 수 있는 원리를 터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법에 있어서는 암연소혼장이라는 당대에 둘도 없이 독특한 초식과 위력을 가진 무공이 있었지만, 평상시에는 좀처럼 안 쓰고 주로 심후막측한 내력과 고강한 검법으로 적을 물리쳤다.[61] 작품 내에서도 신조협이라 불리우게 된 이후 양과의 전투는 대체로 그냥 철검으로 뙇! 주먹으로 뙇! 하면 대부분의 적이 일패도지하는 그런 전개가 되었다.[62] 게다가 심지어 대성한 경지에 이른 중년에는 내력을 실은 외침만으로 여간한 상대는 제압해버릴 정도. 니마성을 일초에 죽음에 이르게 한 수법의 경우 곽정이 나중에 니마성의 시신을 살펴보고서 이러한 수법은 순전히 강맹한 힘에 의존한 것으로 천하에 두 명뿐인 경지라고 한다. 하나는 곽정, 다른 하나는 홍칠공. 이미 고인이 된 홍칠공은 워낙 강맹한 외가무공의 달인이었고, 그 제자인 곽정 역시 항룡십팔장의 전수를 통해 이러한 내력에 깊이 영향을 받았다. 양과의 내력은 구음진경을 깊이 수련한 곽정이나 오랜 수양을 통해 가다듬은 일등대사에 비하면 거칠지만 그만큼 순수하고 뒷심이 강했다. 중년이 된 이후의 양과의 공력을 본 일등대사가 정순함은 자기만 못하지만 그 강맹한 기세는 오히려 자신이 따라갈 수 없다고 느낄 정도.[63]

화려한 기교 위주의 초식을 펼치던 양과는 한 팔이 잘리고 64근(40kg 정도)이나 되는 현철중검을 무기로 쓸 때를 기점으로 완전히 심후한 내공 위주의 무공으로 바뀐다. 현철중검은 그 엄청난 무게와 무시무시한 내구도로 인해 보물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지만, 사실 날이 둔해서 베기도 그렇고 찌르기도 그런 쇳덩어리다. 하지만 그런 중검을 마음먹은 대로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의 손에 들린다면 그 무게와 강도 자체가 대적이 불가능한 무적의 요소가 된다. 신조와의 훈련과 식이요법을 통해 내력과 근력이 크게 증강된 양과가 현철중검을 사용할 때 그 위력은 정말 무시무시하다. 양과가 본신에 익힌 타구봉법, 옥녀검법 등이 섬세한 초식의 변화를 추구한다면 현철중검의 경지는 그러한 천변만화하는 초식들을 묵직한 기세로 눌러버리는 것. 이는 검총에 중검을 남긴 독고구패의 검술관과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직접 초식을 전수받지 않았지만 양과는 독고구패와 동일한 수련을 통해 독고구패의 진전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다. 독고구패가 중검을 통해 깨달은 것은 어차피 초식이 아니라 검의였으니까.

대표적으로 몽고의 고수들이 현철중검을 든 양과에게 크게 패배했다. 니마성은 10여근이나 되는 철지팡이를 가지고 양과에게 달려들었다가 양과가 현철중검을 단 한번 휘두르자 쇠지팡이는 저 멀리 날아가고 몸 반쪽이 마비됐다. 소상자는 곡상봉을 들고 달려들었다가 단 한번의 무기 교차로 곡상봉이 산산조각 났고, 양과가 다시 좌우로 한번씩 휘두르자 (왕복 한번) 두 팔이 끊어졌다. 윤극서는 현철중검을 금룡편(채찍 비스므리)으로 휘감아 빼앗는 데에는 성공했는데, 무기의 무게와 강함을 과소평가 했는지 스스로 빼앗은 칼에 맞아 떡실신했다. 싸운 것도 아니다. 물론 금룡편도 당연히 산산조각이 났다.

이후 금륜법왕 역시 양과에게 싸움을 걸고 패배했지만, 그래도 다른 고수들과 비교하면 나름대로 점잖게 깨졌다. 하긴 접근전으로 무기 교차 형식의 전투였다면 어떻게 생각해도 금륜법왕 역시 앞서 언급된 몽고 고수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관광을 당했겠지만, 다행히도 금륜법왕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오륜을 주무기로 삼고 있어서 상성상 크게 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륜이 하나 하나 부서지고 결국 남은 두개의 륜(금륜, 은륜)으로 버티다가, 소용녀가 던진 옥봉침에 깜짝 놀라 피하다가 양과가 휘두른 현철중검에 크게 부상당하고 패배했다.[64] 프라이드가 강한 금륜법왕 본인에게는 이 전투가 일생의 가장 비참하고 처참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듯. 정리하자면, 원거리 무기가 아니고 근접무기를 잡고 감히 양과의 현철중검에 맞서려면 몇 합 안에 양팔이 으스러질 각오를 하고 덤벼야 한다.

여담으로 양과가 현철중검을 잡고 여러 몽고 고수들을 개발살내자 현철중검이 먼치킨급 무기로 여겨지는데, 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왜냐면 현철의 특성상 내구도가 뛰어나고 위력이 다른 철에 비해 엄청나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철중검 자체는 너무 무겁고 날이 둔탁해서 통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좋은 무기가 아니다. 즉 현철중검 자체가 갖기만 하면 사용자의 무공 수위를 보완할 수 있는 신병이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현철중검의 진수는 현철중검을 무기로 쓸 수 있는 사람의 손에서 비로소 발휘된다(...).[65] 양과가 현철중검으로 인해 자신에게 뒤지지 않는 금륜법왕을 눌러버릴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양과가 내력이 약했다거나 중검의 원리에 깜깜했더라면 그만한 위력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훗날의 양과가 자신이 배운 무공들을 자기 식으로 소화해 새롭게 창조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암연소혼장이다. 암연소혼장의 독특한 초식들은 오절의 다양한 절기들의 영향을 뚜렷하게 받았지만, 그 진정한 정수와 초식의 오묘함은 양과만의 독창적인 경지에 이르러 있다. 그렇기에 무학 수련이라면 밥 먹고 잠 자기보다 반기는 주백통도 암연소혼장에 담긴 슬픔과 복잡한 심경의 묘미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무상전생? 하여튼 이 암연소혼장의 위력이 참 대단해서 황약사는 곽정의 항룡십팔장에 뒤지지 않는다 평하고(!) 주백통은 암연소혼장이 배우고 싶어서 양과에게 절까지 할 정도.

단 슬프고 쓸쓸한 심경의 변화가 고스란히 정수와 연결된 무공인지라, 최후의 결전에 이르러서는 소용녀와 재회해서 슬픈 마음이 사라진 나머지 암연소혼장이 잘 구사되지 않는다는 약점이 발견되기도 했다(...). 덕분에 금륜국사에게 죽음 직전까지 몰렸다가 그 순간 소용녀와 헤어져야 한다는 슬프고 비참한 마음에 암연소혼장이 발동되어 국사를 제압해 버리는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안정성이라는 면에서 다른 절기들만 못하지만, 그만큼 감정이 격해질 때 보다 매끄럽게 구사된다는 장점도 있다. 작중 고수들끼리의 싸움은 정말 쉽사리 결판이 나지 않는 편인데, 막바지에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암연소혼장의 절기들이 터져나오자 금륜국사가 명백히 제압당하는 모습에서 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이 상황은 암연소혼장의 약점 때문이 아닌 금륜국사가 곽양을 본격적으로 인질로 잡고 난 이후에 상황이 불리해져 위기를 맡게 된 것이지 그 이전까지 금륜국사에게 밀리지 않았다.

참고로 곽정의 큰딸 곽부의 츤데레끼가 좀 지나친 나머지 한쪽 팔이 잘려 외팔이가 되었으며, 양과빠들은 '양과가 양팔 다 있었으면 우주최강임'이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기도 하다. 양팔 다 있었으면 확실히 강해지긴 하겠지만 많이 차이가 나지는 않았을 듯. 양양성 지키느라 무공 수련을 제대로 못 했던 곽정 vs 양팔이 모두 있는 양과 그래도 확실히 암연소혼장이 장법인 무공이라 양팔이 다 있었다면 더 강해지는 것은 맞을 것이다. 독고구검을 사용하는것도 더 용이했을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주백통이 한 팔을 쓰지 않고 양과와 싸울 때도 여전히 뛰어난 공력으로 크게 밀리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김용월드에서 팔의 개수는 옵션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오히려 암연소혼장이 무학의 이치를 크게 벗어난 파격성을 지니는 비결도 양과가 한 팔이 잘리자 기존 무학의 이치를 벗어난 발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언급이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양과가 한 팔이 잘린 것은 장점으로 승화되었다고 볼 정도.[66]

굳이 중검술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양과는 독고구패의 중검 이후 경지를 이어받아 목검에 강한 내력을 실어 왠만한 것들은 모두 눌러버리는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아무 잡검이나 들어도 여전히 고강한 실력을 자랑할 것이다. 심지어 목검 수련을 다 마쳐갈 무렵 양과는 '아 이런 검술이 있으면 천하에 상대가 없겠다. 독고구패 선배의 심정이 이해간다'는 독백으로 그의 무공이 상당히 강해졌음을 나타낸다.[67]


8. 양과의 지능[편집]


김용의 작품에 나오는 모든 주인공들 중에서 가장 재기발랄한 인물이다. 머리 좋기로는 천하에 손꼽히는 황용과 머리싸움이 가능한 몇 안되는 인물이다. 소오강호의 주인공 영호충이나 녹정기의 주인공 위소보도 머리가 좋고 잔꾀가 많은 인물이지만, 양과는 단순히 머리만 좋은 것을 넘어 기억력, 임기응변과 재치, 입담, 무공에 대한 자질까지도 이들을 상회할 뿐 아니라, 아예 김용 작품 전체를 통틀어 손꼽힐 정도로 뛰어나다. 곽정, 황용부터 금륜국사에 이르기까지 양과를 만나는 인물들마다 그의 지능과 무공에 감탄하여 천하의 기재라고 평할 정도. 양과의 지능과 자질은 작가 시점에서 다른 인물들과의 비교로 많이 드러나는데, 무돈유, 무수문보다 자질이 10배는 뛰어나다던가, 노유각보다 머리가 백 배는 총명하다던가 하는 식. 그런데 무돈유, 무수문은 양과 같은 특이케이스를 제외하면 동년배 중에서는 나름 뛰어난 수준의 고수고, 노유각은 곽정 황용이 어렸던 시절부터 개방 장로였다가 방주까지 오르는 인물이다. 무씨형제가 하도 찌질하다보니 독자나 작중 인물들에게 얕보이기는 해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재능이 엄청나게 뛰어난 건 아닐지언정 반대로 천룡팔부유탄지처럼 엄청 덜떨어지는 것은 또 아닌데(황용의 평가를 보면 곽부의 재능은 그냥 평범 그 자체고 무씨형제는 그래도 곽부보다는 나은 수준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반대로 양과의 머리는 보통 뛰어난 수준이 아니라는 소리가 된다. 사실 대승관 영웅대회부터가 황용조차 일시에 답을 못 찾을 정도로 일이 꼬인 것을 양과의 기지로 인해 무사히 마쳤으니 머리 좋은 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양과의 재능을 잘 보여주는 예시로 절정곡주 공손지와의 싸움을 들 수 있다. 일전에 양과는 주자류가 서법과 일양지를 조합해 독창적인 무공을 창안하여 그것으로 곽도를 격파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양과는 이를 모방하여 법왕에게 당한 상처를 치유하는 동안에 읽었던 책에 실린 사언시들을 고작 며칠 만에 자신의 검법에 조합해 공손지와의 대결에서 써먹는다. 심지어 이걸로 공손지를 잠시 몰아붙이기까지 한다. 알다시피 공손지는 황용과 이막수가 힘을 합쳐도 당해내기 힘들 정도의 고수고 양과는 이때 소용녀가 다친 일로 분노한 상태라 구천척의 조언을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물론 양과의 이러한 무공은 공손지도 파훼법 자체는 바로 눈치를 챘고 학문에도 조예가 깊은 법왕은 아예 양과의 다음 수를 예측하고는 공손지에게 슬쩍 알려줬을만큼 주자류에 비하면 그냥 조잡한 수준이지만, 양과가 한 글공부라는 것이 도화도에서 몇 달 지내는 동안 황용이 가르쳐준 것이 전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약한 기반을 이정도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그 재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양과의 재능은 위에서 나왔듯 그가 익힌 여러 가지 무공을 암연소혼장으로 집대성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작중 묘사상 황용과 대등한 지력을 지닌 유일무이한 맞수 수준이지만, 정작 양과는 실제 머리싸움에서 황용을 이겨본 적이 없다.[68] 심지어 양과 본인도 자신이 황용을 지모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시종일관 인정하고 있다. 애초에 황용도 천재 황약사와 비상한 지모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외동딸로, 본인이 집중력이 없어 대충대충 했다지만 이미 십대 시절부터 전직 대리국 재상에 장원급제 경력자 주자류를 재치와 지식으로 꺾어버릴 만큼 천재였다.[69] 그에 비하면 양과는 13세까지는 거지꼴로 살다가 황용에게 글을 좀 배운 정도였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불공평한 부분이 있다. 단 양과가 '곽백모를 지모로 이길 사람은 없다'라고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것과 별개로, 황용 역시 '양과는 머리가 좋은데다 감정이 격해서 도저히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라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작중 최후반부가 되기 전까지 황용은 양과에게 늘 켕기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


9. 2차 창작물에서의 양과[편집]



9.1. 화산논검[편집]


한국의 동광출판사에서 만든 '김용 저'라고는 되어 있으나, 전혀 확인되지 않아서 2차 창작물 정도로 확인되는 소설. 19권부터 22권까지가 양과후전이며 양과가 주인공이다. 이 양과후전에서는 소용녀가 절정곡에 뛰어내린 직후의 원작에서 나오지 않는 양과의 행적을 그리고 있다.(원작은 16년 뒤로 바로 넘어가고, 곽양이 성장한 상태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양과의 '양효비'라는 숨겨진 형이 있고, 그 형은 아버지 양강을 빼닮아서 악인이었다는 이 작품 내의 고유 설정이 존재한다.


9.2. 신조협려 외전[편집]


원작을 2차 창작한 대만의 야설. 바로 위 화산논검과 마찬가지로 소용녀가 절정곡에 뛰어내린 직후의 원작에서 나오지 않는 양과의 행적을 그리고 있다.


9.3. 쿵푸허슬[편집]


주성치 주연의 영화 쿵푸허슬에서는 이 인물을 패러디한 캐릭터가 나오는데, 중늙은이로 바람 피우다 아내(소용녀)의 폭행에 시달리는 무공 고수로 등장하며 주인공 싱의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친다. 원작의 양과와는 은둔한다는 설정과 괴팍하다는 설정 외에 연관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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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판에서는 어머니가 진남금이었고 양강에게 강간을 당해 낳게 된 것이었으나, 신판에서는 어머니가 목염자로 바뀐다. 구판에서 목염자는 양강과 함께 자살했으나 신판에서는 죽지 않고 신조협려까지 살아남는 것으로 수정되며 진남금 관련 분량은 통째로 삭제된다. 원작의 목염자 스토리가 소설 내 대표 비극이었으며 진남금 역시 의미있는 분량을 차지했었기에, 이 수정은 지지하지 않는 팬들이 꽤 있는 편이며 특히 중국 현지에서 비판이 많았다.[2] 곽정 일행과 처음 만났을 때 양과는 빙백은침에 중독된 상태였는데 곽정이 괜찮냐고 묻자 괜히 자존심이 상해서 곽정한테 패드립을 시전했을 정도다.[3] 그런데 양과의 아버지 양강은 구양봉의 조카(사실은 구양봉이 형수와 사통해서 낳은 아들) 구양극을 살해한 원수다.[4] 사부였던 조지경이 양과를 미워했기 때문에 실제 무공은 가르쳐주지 않고 구결만 외우게 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전진파 무공은 전혀 사용하지 못했지만 고묘 안에서 소용녀로부터 해설을 받으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고묘파의 창시자 임조영은 왕중양과 함께 하던 시절부터 그의 무공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진파의 외공만큼은 고묘파 내에서 제대로 보존되어 있었다.[5] 양과는 한 팔이 없다보니 기존에 있었던 무공의 금기가 지신에게는 완전히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고 기존의 금기에 구애받지 않고 만들었다. 또, 암연소혼장은 이 무공을 만들때 느꼈던 양과의 감정들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도 있다.[6] 곽정 부부가 몽고의 침입에 맞서는 대협으로서 천하의 경외심을 얻었다면, 양과는 의협심으로 강호를 종횡하면서 괴팍한 사람, 사파에 속하는 사람까지 포함해서 넓고도 직접적인 관계망을 구축한 셈이다. 여기에는 곽정과 달리 호쾌하면서도 섬세하고 비틀린 인격도 한 몫을 했다. 만일 곽정이 양과처럼 강호를 누비고 다녔더라면 강직한 성격상 녹림이나 사파의 고수들과 친교를 맺지는 못했을 것이다.[7] 황용에게 이 비꼬기는 양강을 연상시켰고, 구처기의 얼굴을 봐서 갈등을 넘기려 했던 조지경은 양과에게 앙심을 품게 된다.[8] 사실 양강은 황용을 죽이려다가 황용이 입은 연위갑에 묻은 구양봉의 독에 당해서 죽은 것이니 구양봉은 양강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 단지 양강이 죽을 때 돕지 않았지만 이미 양강은 구양봉의 조카를 죽였으니 자업자득이다. 물론 달리 따진다면 양과의 친아버지는 양과의 의붓형제인 구양극을 살해한 원수가 된다.[9] 황용은 먼저 성현의 말씀을 공부하게 해서 사람부터 만들고 무공을 배우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황용의 이런 넓은 오지랖은 이후 양과의 인생을 여러차례 건드린다. 너무 똑똑해도 문제. 사실 황용은 양과 뿐 아니라 자기 딸내미 교육도 그리 잘한 편은 아니었다. 그나마 머리가 좋은 사람이기는 해서 곽파로와 곽양을 교육할 때는 오지랖을 덜 떤 것도 있어서 꽤 잘 한 편이다. 다만 곽부는 어린 시절부터 짐승을 죽이고 괴롭히는 등 이상 성격 기질이 다분했다.[10] 양과는 타고난 반항아라서 우등생 타입의 곽정과는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주위에 본받을 만한 영웅협객들이 가득했던 곽정과는 달리 양과는 아버지 양강과 마찬가지로 본받을 어른이 없었다. 물론 나중에 대협인 곽정이 나타나 멘토가 되어주었고 작중 곽정은 워낙 거대한 인물이라 다행히 양과도 곽정에게 영향을 받고 그를 본받으려 했다. 물론 나중에 소용녀가 양과를 사랑해주긴 하지만 소용녀는 원래 선악이나 인간 세계의 이치에 대해 무지한 인간이라 양과가 사람구실을 하는 데는 그리 도움을 주지는 못 했다.[11] 곽정에 대해서는 황용보다는 신뢰하고 있었다. 워낙 곽정이 공명정대한데다 자신에게도 비교적 잘 대해주었기 때문. 또한 곽정은 양과를 가르치지 않았다.[12]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곽정과 황용이 양강의 진실에 대해 입을 꼭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사실부터 알리고 봤어야 했고 설령 그 결과가 어떤 것이라도 두 사람이 책임을 졌어야 했는데 무엇보다 곽정은 양강의 일에 죄책감을 갖고 있어서 꼭 양과를 바르게 키우고 싶어해서 양과가 자신의 친부가 매국노인걸 알면 어긋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곽정은 양과에게 친부 양강과 그의 죽음에 대해서 알리고 싶어했으나 이걸 얘기하려고 하니 황용이 양과가 지금 알면 오히려 엇나갈 수 있다고 만류해서 알리지 않은 것으로 양과를 위해 알리지 않은 것이었다. 다만 황용이 곽정을 만류한 것은 양과가 친부인 양강이 매국노인 걸 알아도 결과적으로 황용 자신을 공격하다 양강이 죽었기에 자신에게 복수심을 품을까 염려했기 때문이지 곽정에게 말한 것처럼 양과를 위한 결정은 아니었다.[13] 황용에게 맡기기 보다는 양과의 반항이나 비꼬기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아둔한(...) 곽정 본인이나 모든 것을 장난으로 승화시키는 성격의 주백통이라면 나았을 것이다.[14] 양과 본인을 증오한 것은 아니지만(만약 그랬으면 양과를 때려죽였을 것이다) 자신의 형제를 죽인 구양봉의 전인과 한곳에서 산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하지 못했다.[15] 사실 전진교 내부에서도 양과를 동정하고 조지경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양과가 하필이면 탈주를 하는 바람에 동정론이 사그러들고, 양과는 양과대로 전진교 전체에 한을 품게 된다.[16] 전진칠자 중 한 명인 학대통이 실수로 손노파에게 과다하게 손을 써서 죽게 되었다.[17] 본래는 실존했던 인물인 윤지평이었지만, 실존 인물이 (당연히 하지도 않은)강간(...) 사건에 연루되다니... 결국 문제가 돼서 이후 개정판에서는 견지병이라는 가상의 인물로 바뀐다.[18] 사실 소용녀도 몰랐다. 소용녀는 양과와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 당시 소용녀는 마침 구양봉에게 혈도를 찔려서 움직일 수 없었고 눈도 가려졌던 데다가 당시 근처에 다른 누군가가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또 직전에 양과에게 좋아한다고 고백까지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양과와 했다고 생각했던 것.[19] 왕중양은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 이미 사조영웅전 시절 이전에 죽은 사람이었으니...[20] 사실 거짓말이라고도 보기 힘든 것이 양과가 배운 것이 정말로 왕중양의 그것이었기 때문.[21] 2006년 드라마판에서는 점창어은의 존재가 생략되어 주자류의 붓이 날아와 소용녀의 옷을 더럽혀 분노한 것으로 나온다.[22] 곽정은 이때 완전히 멘탈이 터져버렸는데 그도 그럴 것이 사도로 빠져버린 자신의 옛 동료의 아들만큼은 꼭 제대로 기르겠다 다짐했지만 홀연히 사라져버려 생사불명이 되어 죄책감에 시달리며 있었는데 어디선가 무공을 수련하고 어엿한 어른이 되어 와 그렇게 반가웠건만 갑자기 자신의 사부와 결혼하겠다는 웬만한 사파조차 경악할 만한 일을 만천하에 공표해 버리고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인연도 끊어버리겠다고 선언했으니... 실제로 작중에서 곽정이 죄책감과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양과를 죽여버린다고 말을 하고 손을 들었으나 아끼는 조카인 양과를 차마 죽일 수는 없었고 자신이 죽어버리겠다며 침통해 했다. 사조삼부곡 걸쳐 곽정이 이 정도로 멘탈이 나간 건 이번 뿐.[23] 양강이 철장묘에서 강남칠괴 중 오괴를 죽인 것을 폭로당하던 중 구양봉의 조카로 알려졌으나 실은 친자인 구양극을 살해한 것까지 폭로당하자 황용을 공격하다가 연위갑의 가시에 찔렸는데 하필 가시에 구양봉의 독이 묻어 있었다.[24] 다만 이건 양강의 자업자득이었으며 구양봉에게 강남오괴를 죽이자고 제안한 것도 양강이었다. 이때 양과는 곡령풍의 딸에게 단편적으로 아버지 양강이 죽은 것을 들어 영웅인 자기 아버지 양강을 곽정과 황용이 살해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소용녀와 헤어지고 16년 뒤 가진악에게서 자기 아버지 양강이 친부모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부귀영화를 위해 원수를 아버지로 삼고 나라까지 배신한 매국노라는 것을 듣고는 자기 아버지의 죽음도 황용을 공격하다 죽기는 했으나 자업자득인 것을 알고 자신이 곽정, 황용 부부를 오해했다며 복수심을 완전히 내려놓게 된다. 그전에도 여러번 곽정, 황용을 죽일 기회가 여러번 있었으나 복수를 하려면 비겁하게 뒤에서 암살하기 보다 당당히 승부하려는 마음과 양양성을 수호하는 이들 부부를 영웅으로 보고 왜 영웅인 이들이 영웅인 자기 아버지를 죽게 한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으며 이들 부부의 애국심에 감명받아 죽이지 않았었다.[25] 주백통은 공손지가 절정곡의 물건을 훔쳐갔다는 추궁을 하자, 거기에에 반박하려고 옷을 훌훌 벗으면서 양과의 옷 속에 자기가 훔친 물건들을 슬쩍 넣어두었다.[26] 양강이 어떤 사람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기에 악당인 줄 몰랐다. 십여년 후에도 신조협이라 불리게 되었을 때도 모두 양과의 체면을 생각해 양강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다가 곽정의 옛 사부 강남칠괴 가진악을 통해 겨우 자기 아버지가 인간말종 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27] 양과는 곽정의 등 뒤에서 양강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싸우느라 정신없던 곽정은 생각할 겨를도 없어 양강은 반역자라 모두가 그를 죽이려 했다고 답한다. 이 대답을 들은 양과가 자기 아버지를 영웅으로 생각했는데 곽정의 말에 아버지를 모욕했다고 생각하여 곽정을 죽이려고 뒤에서 칼질을 하나 양과에게 공을 빼앗기기 싫었던 소상자가 계속해서 방해하는 바람에 실패한다. 이후 양과가 헌신적으로 자기를 지키려 하는 곽정을 보고 개심하였으니 몽고 입장에서는 이만한 삽질이 없고 곽정과 양과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의미로 이만한 위기도 없었다고 볼 수 있다.[28] 이때 소상자가 방해하지 않고 양과가 곽정을 죽였다면 결과는 어찌되었을지 뻔한게 그렇게 곽정이 죽으면 그동안 곽정을 봐서 양강에 대해서 함구하던 이들이 양과에게 집단으로 폭로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며 아버지인 양강이 영웅이 아닌 인간말종이라는 양과가 알게되어 곽정을 죽인 죄책감에 자살해버렸을 것이다. 실제로 양과는 나중에 가진악에 의해서 아버지인 양강이 인간말종이라는 사실을 전해듣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동안 백부인 곽정을 여러번 죽이려고 했던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29] 무씨형제는 곽부를 놓고 결투하다가 양과가 자신이 곽부의 정혼자가 되었다는 거짓말을 하고 둘 모두를 제압하고 이막수에 의해 자신들이 빙백은침에 중독되었을 때 양과가 독을 빨아서 구해준 것에 감명받아 곽부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았고 곽부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자 형제 사이는 다시 좋아졌고 이후 이들 형제는 야율연, 완안평과 혼인하게 된다.[30] 양과를 짝사랑하고 있던 공손녹악은 후에 아버지인 공손지에게 인질로 잡히는 상황이 발생한다. 양과는 그녀의 목숨을 위해 절정단을 포기하는데 양과가 유일한 해약마저 포기하며 자신을 위하는 모습에 감격한 공손녹악은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31] 완전한 목검승철검의 경지에 오른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신조와의 수련에서 신조가 목검을 피하는 장면으로 중검을 다루는 것만큼의 경력을 보여준 것은 맞으나 중검을 두고 왔다는 것에서 후회한 양과의 모습에서 완전한 목검승철검의 경지엔 이르지 못했다고 의견을 내는 쪽도 있다.[32] 알고간 것은 아니었고 양과는 자기 아버지 양강이 어디에 묻혔는지도 몰랐다. 우연히 방문한 곳이 철창묘인데 거기에 자기 아버지 양강의 묘가 있었던 것[33] 게다가 묘비를 세운이는 구처기로 적혀있는데 양과는 원래에도 전진교에 대한 악감정이 있었다.[34] 네 무공이 아무리 높아도 목숨을 아끼는 겁쟁이들에게나 통할 뿐, 강남칠괴는 협박에 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35] 사실 사통천 일행도 딱히 거짓말은 안하고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수준으로 최대한 양강의 좋은 말만 했다. 그러다가 양과가 사실이냐며 묻자 딱히 아니라고 부정은 못하고 딴소리만 했다.[36] 직후 자신도 묘비를 하나 세워준다. 내용은 아버지 양강을 위해 불초자 양과가 비를 세운다는 것으로 아버지의 오명을 자신이 협객의 길을 걸어가며 갚겠다는 것으로 가진악은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겠다는 양과를 격려한다.[37] 게임판에서는 금륜법왕과 몽케가 계속 변신(...)한다. 특히 몽케 2차 변신이 압권. 싸우던 곳이 무너져내려서 같이 추락한다. 그리고 무슨 사막같은 곳에 착지하자 몸이 빛나더니 몽케 안에서 날개 달린 금색 거인이 튀어나온다.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생각을 했어요?[38] 사실 양과의 공이 너무나도 크고 세월도 많이 지나 잊혀졌지만 양과는 엄연히 스승인 소용녀와 결혼해 무림의 규율을 깨뜨렸다.[39] 본래 이 부분은 신조협려의 마지막 부분이다. 고려원에서 의천도룡기를 출간하면서 의천도룡기의 복선이 되는 이 부분을 의천도룡기 쪽에 편입시킨 것. 고려원 말고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의천도룡기에는 이 부분이 없다. 원래 의천도룡기에서는 양과는 과거의 인물로 언급만 될 뿐이다.[40] 그런데 고려원 쪽의 마무리가 워낙 깔끔하고 또, 소상자와 윤극서, 각원과 장군보가 등장하는 장면은 신조협려의 내용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데다가 오히려 의천도룡기 부분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내용도 이어지는 부분이라 신조협려에서 빼서 의천도룡기에 넣은 듯하다.[41] 곽부는 뼛속까지 이기주의자로, 남편인 야율제가 죽을 위기에 처한 뒤 그것을 양과가 구하러 달려가자 비로소 자신이 평생 양과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42] 싸우다 못 당하겠어서 부둥켜 안은 것뿐이다. 그런데 이막수는 당황한 나머지 다 이겨놓고 도망을 간다...[43] 구판에서는 진남금도 꼬였다.[44] 그나마 양과에게 직접 호감이 생기거나 한 건 아니고 곽정과 갓 결혼했을 때를 떠올렸다.[45] 양과와 함께 곽양을 키우며 살겠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마두로 살면서 억눌려 있던 여성성과 모성이 드러난 부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막수가 양과에게 남녀로서 감정을 가졌다고 보기는 힘들다.[46] 다만 이건 황약사가 사부인 소용녀와 결혼할거라는 양과의 말에 자네는 동사인 내 벗으로 삼아도 좋다고 친구 하자고 한 것이고 양과도 곽정의 장인인 황약사가 친구 맺자고 하자 난감해했으나 사부와 결혼하는 금기를 깨는 사람이 나와 친구도 못맺냐는 말에 양과도 호기롭게 황약사와 친구 사이가 된다. 이를두고 의형제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으나 둘 사이는 의형제가 아닌 친구 사이다. 황약사는 의형제 소리를 듣고 '나는 주백통이 아니다'라며 대노했다.[47] 참고로 족보를 타지면 개판이다. 일단 의부인 구양봉은 의백부, 의백모인 곽정 황용과는 서로 불구대천 수준의 원수고 의백부의 장인인 황약사와는 친구 사이이며 주백통이 곽정과 의형제를 하면서 날려버린 족보 이상의 개족보를 보여준다. 애초에 친부 양강은 의부 구양봉과도 그의 아들 구양극을 죽인 원수이며 의백모 황용은 본의 아니게 연위갑에 묻은 구양봉의 독으로 양강을 죽게했다...[48] 물론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의협이니만큼, 곽정이 본인 이름을 걸고 뭔가 하려고 하면 많은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고결한 명성에만 의지한 것으로, 양과는 직접 은인이라고 일컫는 사람만 한 트럭은 될 만큼 강호를 설치고 다녔기에 직접적인 커넥션이 더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 차이가 잘 드러난 것이 양양성의 영웅대회로, 곽정이 불러도 안 온 사람들이 양과가 불렀더니 왔다![49] 물론 이는 양과가 문자 그대로 인맥을 총동원하는 강수를 두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양과가 곽양에게 선물한 금침은 그걸 주면서 부탁하면 불길 속에라도 뛰어들어 준다는 정도로 강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그런데 곽양이 첫 번째로 쌩얼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두 번째로 올해 생일에 찾아와서 축하해달라는 정도로 금침을 두 개나 써 버린 것이다. 이쯤 되면 남은 금침을 허투루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신조협이 부탁을 들어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생일 축하한다는 핑계로 몽골의 선봉군을 공격하고 보급품을 불태우며 개방의 음모를 파헤치는 일은 중원 고수들에게도 기꺼운 일이었을 것이다. 애초에 곽양 본인은 이게 생일선물이라는 말을 들었을때 상황파악이 안돼서 어리둥절해했고 정작 기뻐한건 곽정 등 지금 송나라가 처한 상황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즉, 단순히 생일축하만 하려고 동원한건 아니고 국가를 위한 대의라는 명목으로도 움직인것.[50] 단 곽정은 구음진경을 깊이 수련하여 후일에는 일법통만법통으로 다양한 무공에 통달할 경지에 이르렀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신조협려의 묘사에는 곽정이 월녀검법을 시전했다면 경천동지할 위력이었을 것이라는 묘사가 있을 정도이다(...). 사조영웅전 마지막까지도 검술에 대한 조예가 모자랐던 곽정임을 상기한다면 그가 대성하여 경지에 오른 뒤로는 그간 배운 무공들을 남김없이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증거가 되기도. 소싯적에 마옥과 함께 절벽을 오르내리며 익힌 상천제의 경공술도 무림 최고 수준이다. 발 딛을 틈도 없는 성벽을 수직으로(...) 올라가는 무시무시한 위엄을 보여준다. 전날에 양과의 운공을 돕느라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면 금륜국사가 화살을 쏘건 어쩌건 그냥 올라갈 수 있었다는 묘사까지 나올 지경. 물론 곽정의 으뜸가는 특기는 항룡십팔장이다. 개방 방주도 아닌데 방주보다 항룡십팔장의 고수... 물론 타구봉법이 방주의 상징이지만 항룡십팔장은 안그런가... 사실 항룡십팔장은 원래 개방과는 상관없는 홍칠공의 독자창안 무공이었다. 다만 천룡팔부를 대필하면서 대필가가 멋대로 개방의 절기로 바꾸면서 할수없이 후대의 이야기인 사조삼부곡의 내용도 개편할 수밖에 없었던것.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것이다. 원래 구판에서의 개방의 절기는 타구봉법뿐이다. 이를 확실히 할 수 있는것이 황용이 후임방주인 노유각에게 타구봉법을 전수한다는 내용은 있지만, 곽정이 노유각에게 항룡십팔장을 전수한다는 내용은 없는것.[51] 사실 곽정도 양과 못잖게 다양한 무공을 섭렵한 편이다. 몽골에서 궁술과 씨름을 배웠고 스승인 강남칠괴의 무공을 비롯해서 마옥에게 전진파 내굥을, 홍칠공으로부터 항룡십팔장을 배웠고 주백통에게도 쌍수호박과 구음진경을 배우는 등 배운 무공 숫자로는 결코 양과에게 뒤지지 않는다. 다만 양과와의 차이는 양과는 그가 배운 것이 하나의 무공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무공의 극의만을 필요할 때마다 따로 떼서 배운 것이 많았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 정리할 필요가 있었지만 곽정은 배운 무공의 대부분이 정식 절차를 거쳐서 배운 것이기 때문에 따로 정리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곽정은 주력이 항룡십팔장이긴 하지만 다른 무공도 필요할 때면 잘만 사용한다.[52] 옥녀심경 수련을 위해서는 반드시 전진파 무공을 익혀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전진파 무공을 숙지한 이후에야 그것을 파훼하는 옥녀심경 상승 무공을 익힐 수 있다.[53] 추가로 구양봉한테 타구봉법 파해법까지 배웠다.[54] 천하에서 손꼽힌다는 절기에 신공은 죄다 배웠다. 양과가 익힌 무공 중에 하나만 잘 익혀도 일대 종사 소리를 듣는 무공들이 대부분이다.[55] 작가의 인터뷰 2개를 축약하자면 양과나 영호충 모두 독고구검을 익힌 것은 맞으나 영호충은 체계적으로 배웠으나 수련기간이 짧고, 양과는 사람이 아닌 것에게 배웠기 때문에 일부분이 부족하여 검술이 매우 강하지는 않으나 수련기간이 길고 내력이 월등하게 높아 영호충보다 강하다고 답변하였다.[56] 그나마 어린 나이에 이 합마공은 정식으로 익힌다.[57] 니마성의 지팡이에 곽양의 장신구를 박아넣은 양과의 공력을 나중에 곽정이 보고서 이러한 내력은 오직 강맹함을 위주로 하는 것인데 천하에 이런 게 가능한 사람은 두 사람뿐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 두 사람이란 다름아닌 곽정 자신과 죽은 홍칠공. 양과의 내력의 강맹함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의미다![58] 고묘파 무공의 초수만 따지면 이막수보다 양과가 더 많이 배웠지만, 이막수는 경험도 풍부하고 내력도 심후해 전체적인 공력 면에서 양과를 누를 수 있었던 것이다. 사고가 오직 찔러들어가는 차법 하나로 이막수의 오묘한 초식을 깨뜨린 것도 이런 원리에 속한다. 하지만 이 점을 들어 공력의 심후함>초식의 월등함으로 단순히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 단순한 공격을 천변만화하는 초식으로 제어하는 것 역시 대등한 무학의 경지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고묘파 무공은 창시자부터가 여성이다보니 내력의 깊음이 초수의 빠름으로 이어지고, 천라지망세나 옥녀검법 등은 모두 극도로 신속하면서도 유려한 초식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이 또한 무학의 심오한 이치임은 왕중양과 어깨를 나란히 한 임조영의 활약에서 잘 드러난다. 단지 양과의 경우는 아무래도 초식에 치우쳤다는 것이 문제로 원래 무공은 공력을 베이스로 깔고 그 위에 초식을 익혀야 하는데, 익힌 무공들에 비해 내공이 다소 부족한 편이다보니 진짜 강적들과 상대하기에는 다소 역부족인 경우가 많았다.[59] 사실 양과의 내공 자체만 봐도 결코 떨어지는 수준이 아닌데, 작중 최고로 다재다능한 천재인 황약사와 비교해서도 내공만 놓고 보면 진도가 10년은 빠른 수준이라고 한다(!). 황약사뿐만 아니라 홍칠공 역시 '내공이 제법이다'라고 감탄했으며, 이막수는 산 너머에서 양과가 공력이 충만해 토해내는 장소를 듣고 황약사인갑지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즉 양과가 동년배에 비해 내공이 약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천재적으로 강하다고 봐야 한다. 천하오절이 정해진 1차 화산논검에서 황약사는 혼인 전의 젊은이에 불과했지만 당당히 오절의 일좌를 차지했는데, 바로 그 황약사에게서 젊은 시절의 자신에 비견할 레벨이면 절대로 낮은 내공은 아니다. 다만 작중 등장한 주요 적들이 워낙 무공이 강하고 경륜도 있어 양과의 딸리는 내공과 초수를 통한 재치가 두드러졌을 뿐이다. 레벨 대비 축캐인데 상대는 다 만렙 다만 좋게 말하면 그렇지만 나쁘게 말하면 본신의 실력보다는 꼼수로 적을 상대했다고 할 수 있다.[60] 근본적으로 양과가 독고구검을 익히기 전까지 배운 무공들은 소용녀 밑에서 배운 고묘파 무공과 이후 여러 거장들로부터 속성으로 배운 무공이 있는데 문제는 양쪽 다 민첩과 초식을 우선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고묘파 무공이야 원래 초식과 민첩이 우선이었고 고묘파 내공을 배우기 위해서는 옥녀심경을 수행해야 했는데 사실 이쪽은 양과는 거의 완성하지도 못했다. 또한 속성으로 익한 무공들은 소화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내공보다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초식과 민첩 위주의 무공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탓이 컸다.[61] 강적을 만날 때마다 암연소혼장으로 물리쳐 왔다는 묘사가 있지만, 천하오절급의 경지에 오른 양과에게 무림계의 강적이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것이다.[62] 중검은 신조협이라 불리기 전인 17년전까지만 차고 다녔고, 파도수련 이후에는 무기를 따로 챙기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냥 검 들고 내력만 휘둘러도 상당히 강한 수준이기에...[63] 반대로 양과 역시 일등대사의 입신의 경지에 이른 전음술을 듣고 자신의 연마가 일등대사에 미치지 못한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단 이는 양자간의 내력의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근거는 아니다. 주백통과 양과의 대결만 하더라도 주백통이 강한 기세로는 양과에 미치지 못했지만 내력의 운용이 정순했기에 미처 승부를 가리지 못한 바 있다.[64] 사실 이때 양과의 운이 좋은 것으로 원래는 양과가 아직 금륜법왕과 싸워 이길 정도는 아니었고 금륜법왕은 양과에게 역습을 먹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근데 하필 이순간에 그것도 비몽사몽중이던 소용녀가 그것도 한참 양과와 내공 싸움을 벌이던 법왕이 부릅뜬 눈이 꼴보기 싫다고 다짜고짜 옥봉침을 던지는 바람에 내공이 엉키게 되어서 패배한 것이다. 물론 소용녀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상황 자체가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법왕의 오륜을 현철중검으로 쑥떡쑥떡 잘라낼 정도였으니...[65] 축구에 비유하면 나카무라가 플립플랩을 사용하면 효율성은 커녕 저놈 뭔짓하냐는 조롱을 받지만, 호나우딩요가 플립플랩을 사용할 경우 화려한데다가 상대방까지 완전히 교란시키잖아! 라는 후덜덜한 반응이 나오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할 수 있겠다.[66] 애초에 팔이 잘려 도망치지 않았다면 신조를 만나지도 못했을테고.[67] 다만 팬덤사이에서 금륜법왕을 상대할때 중검을 두고 온 것을 후회하는 장면을 보고 목검승철검의 경지에 완전히 도달하지는 못했다라고 평가하는 측과 목검승철검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측의 의견 대립이 있다. 그러나 상대가 금륜법왕급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목검승철검을 실제로 실행가능한 높은 수준임에는 틀림없다.[68] 이미 황용은 구양봉이나 구천인 등 자기보다 강한 인물들을 지모로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만큼 두뇌라면 몰라도 경험 면에서 양과는 상대가 안되었다.[69] 물론 황용 지식의 상당부분은 황약사의 지식을 수박 겉핥기로 베낀 정도였지만, 그 많은 지식을 공부도 안 하면서 수박 겉핥기로 베껴놨다는 점부터가 이미 기초가 튼튼하고 머리가 비상하다는 증거다. 황약사의 제자였던 육승풍과도 시, 서화를 논하면서 그 수박 겉핥기로 주워들은 지식만으로 막힘이 없이 좔좔좔 썰을 풀고 의기투합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