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인/선수 경력/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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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원태인/선수 경력

1. 개요
2. 통산 성적
3. 연도별 대회



1. 개요[편집]



파일:원태인 국대.jpg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시절
10G 24⅔이닝 2승 0패 ERA 3.28 32K

삼성 라이온즈 소속 우완 투수 원태인의 국가대표 활약상을 정리하는 문서.


2. 통산 성적[편집]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 2.svg


경기
선발
이닝


홀드
세이브
피안타
피홈런
실점
자책점
탈삼진
사사구
ERA
10
5
24⅔
1
0
0
0
21
3
10
9
32
2
3.28
※ 청소년 국가대표 대회 성적은 미 포함.


3. 연도별 대회[편집]



3.1. 청소년 국가대표[편집]



3.1.1. 제12회 U-18 BFA 야구선수권대회[편집]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피홈런
실점
자책점
볼넷
삼진
상세
3
0
5⅓
1.69
0
0
0
0
2
0
2
1
2
6
##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면서 제12회 U-18 BFA 야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였다.

예선 라운드 홍콩전에서 41:0으로 앞선 4회에 등판하여 1이닝 0피안타 0볼넷 3K 무실점을 기록하며 콜드 게임으로 경기를 종료하였고 경기의 승리 투수가 되었다.

예선 라운드 일본전에서 3:0으로 앞선 6회에 등판하여 초반에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1실점 하였으나 이후 제구를 잡고 뛰어난 구위로 상대 타자들을 찍어누르며 2⅓이닝 2피안타 1볼넷 2K 1실점을 기록하였다.

결승전 대만전에 2:1로 앞선 4회에 정구범의 뒤를 이어 등판하여 2이닝 0피안타 1볼넷 1K 1실점(0자책)을 기록하며 좋은 피칭을 보여줬고 팀은 5:7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3.2. 성인 국가대표[편집]



3.2.1. 2020 도쿄 올림픽[편집]



파일:국대태인.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피홈런
실점
자책점
볼넷
삼진
4
1
5⅓
8.44
0
0
0
0
9
1
5
5
0
8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선발됐다. 자신의 커리어 첫 A대표팀 선발이자 어린 나이에 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팀 메이트인 강민호, 오재일, 박해민, 오승환[1]과 함께 선발됐기 때문에 대표팀 적응이 한결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등번호는 46번이 아닌 고교시절 달았던 18번을 달았다.

7월 29일 이스라엘과의 오프닝 라운드 1차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국가대표 A팀 경험이 전무한 어린 선수임에도 리그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내고 있기에 기회를 받았다. 원태인은 1회부터 전직 메이저리거 올스타인 이안 킨슬러를 포함해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냈다. 2회는 2루타 1개를 내주었지만, 무실점으로 잘 넘겼다. 하지만 범타로 기록된 타구들도 전부 정타였기에 슬슬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3회 이안 킨슬러에게 2점 홈런을 맞으며 선제점을 헌납했다. 이후 4회에도 올라왔지만 선두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최원준과 교체됐다. 다행히 최원준이 승계주자를 실점하지 않고 이닝을 마쳤고, 이후 4회말에 터진 오지환의 동점 투런 홈런으로 패전 투수는 면할 수 있었다. 여담으로 해당 경기로 인해 유태인이라는 별명이 잠시 붙기도 했다.

8월 1일 이스라엘과의 녹아웃 스테이지 2차전은 불펜 투수로서 등판했다. 이번 대한민국 대표팀의 에이스인 원태인이 10:1로 크게 앞선 가비지 이닝에 등판한 점에 대해 많은 이들이 놀랐다. 아마도 다음 등판까지 텀이 있기에 불펜 투구 겸 컨디션 확인용으로 등판한 것으로 보인다. 이 날 1⅓이닝 3K 무실점을 기록하며 지난 이스라엘과의 1차전에서의 부진을 만회했다.

결승전 내지는 동메달 결정전 선발이 예측되었으나 이스라엘 전 부진 이후 감독, 코치진들의 신임을 잃었는지 불펜으로 강등된 모습이며, 8월 5일 미국과의 패자준결승전에서 1:2으로 한 점 뒤진 6회 1사 주자 1루에 차우찬의 뒤를 이어 등판했다. 그러나 두 타자 연속 안타를 얻어맞아 최원준의 책임주자를 분식해먹은 걸로도 모자라 볼넷까지 내주며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한 채 만루를 채우고 강판되었고, 결국 전날까지 5⅔이닝 90구를 던지며 지칠 대로 지쳐버린 조상우가 또 올라와 얻어맞으면서 추격의 불씨마저 꺼지게 만드는 경기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2]

동메달 결정전인 도미니카 공화국전에서는 10:6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 불펜으로 등판해 이번에는 추가실점 없이 잘 막았으나 이미 경기는 오승환의 방화로 기울어진 뒤였고, 결국 후속타 불발로 그대로 게임이 끝나며 빈손으로 귀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귀국 후 어깨 통증 때문에 로테이션을 거르게 됐고, 정황상 올림픽에도 어깨 통증을 안고 등판한 것으로 보인다.[3]

국대 1선발로까지 거론되던 기대치에 비해 영 부진한 성적으로 본인에게나 대표팀에게나 아쉬움을 남긴 대회가 되었다.


3.2.2.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편집]



파일:5876936_high.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 2.svg


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실점
자책점
4구
삼진
상세
3
1
4⅓
6.23
0
0
0
0
5
4
3
2
5
-
이강철호의 50인 관심명단에 들어가 대표팀 소집 기회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영건 선발 중에서는 좋은 성적을 기록 중이기 때문에, 과연 올림픽의 치욕을 씻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후 2023년 1월 4일 발표된 최종 엔트리에 뽑히면서 다시 한번 기회를 받게 되었다. 삼성 선수 중 유일하게 최종 엔트리에 승선했다.[4] 이번에는 정우영의 존재로 인해 반대로 46번을 달기로 했다.[5]

3월 7일 오사카 돔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연습경기에서 3회에 구창모의 뒤를 이어 구원 등판했다. 등판하자마자 사토 테루아키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득점권 위기에서 탈출했고, 다음 이닝 선두타자 하라구치 후미히토에게 안타를 허용했으나 이노우에 코타를 헛스윙 삼진, 시마다 카이리사카모토 세이시로를 내야 땅볼로 잡아내면서 실점을 막았다. 5회에도 마운드에 올라와서 우에다 카이타카야마 슌을 내야 땅볼로 잡았고, 오바타 류헤이에게 안타를 허용한 이후 교체됐다.[6] 2이닝 2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3월 9일 도쿄 돔에서 열린 호주와의 경기에서 1⅓이닝 1탈삼진 1볼넷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최고 구속은 148km/h까지 나왔다.

3월 10일 일본전에서는 3회 무사 만루 상황에 등판해서 무라카미 무네타카를 유격수 뜬공으로 처리했다. 이후 요시다 마사타카에게 안타를 맞아 김광현의 승계주자 두 명을 분식회계했지만 무사 만루에서 등판하여 2점을 내준 것이고 오카모토 카즈마는 투수 직선타로, 마키 슈고는 투수 땅볼로 처리하며 분위기를 내주는 것까지는 막았다. 4회에도 등판하여 나카노 타쿠무[7]를 1루 땅볼, 나카무라 유헤이를 헛스윙 삼진, 라스 눗바를 중견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삼자범퇴로 일본 타선을 봉쇄했다. 그러나 5회에도 등판했는데, 곤도 겐스케에게 체인지업이 몰려 솔로포를 맞고 강판되었다. 최종 성적은 2이닝 2피안타 1탈삼진 1볼넷 1실점. 분식회계와 솔로포가 있긴 하지만 3회 등판은 역대급 하이 레버리지 상황이었는 데다가[8] 5회 등판 자체가 한국 벤치의 판단 미스였다는 의견이 많고[9] 이후에 나온 대부분의 투수들이 워낙에 역사적인 빅똥을 싸지른 탓에 원태인은 이번 국가대표 투수들 중 그나마 사람다운 활약을 한다는 평을 받았고, 김광현[10], 박세웅[11]과 함께 이번 경기 그나마 제일 좋았던 투수로 까방권을 획득하며 지난 대회에서의 부진을 어느정도 만회했다.[12]

더욱이 원태인은 구속과 구위 보강을 위해 미국으로 개인 훈련을 떠났던 바 있는데, 직전 시즌 일본의 홈런왕인 무라카미를 직구로 내야 플라이 처리하고 메이저에서 중상위권의 파워 포텐셜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눗바를 하이 패스트볼로 뜬공 처리하는 등, 파워 한가닥 하는 선수들을 구위로 누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훈련의 성과를 증명했다. 2피안타는 모두 체인지업이 몰려서 맞은 결과다.[13]

한술 더 떠서 이날 직구 최고 구속이 92.2마일, 회전수는 2253RPM까지 나왔다. 아직 3월인 데다가 공인구 적응이 완벽히 되지 않았음에도 준수한 편이며 본인이 계속해서 스텝업하는 선수임을 증명 중이다.

4일(3경기) 동안 계투로만 나와서 80구를 넘게 던지는 혹사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전 선발이 확정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야구팬들은 깊은 충격에 빠졌으며 당연하게도 이강철은 삼성 팬들에게 천하의 개쌍놈 취급을 받는 중이다. 게다가 WBC는 투수 혹사를 막기 위한 투구수 제한 규정이 있는데, 이걸 지키는 선에서 최악의 혹사를 하는 중이다. 따라서 시범경기에는 등판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시즌 초반 로테이션도 거를 가능성이 있다. 6월에 최채흥이 전역하고 나면 최채흥과 5선발을 로테이션에 포함시키고 원태인에게 휴식을 줄 수도 있다. 또한 원태인의 2023년 목표가 구위 향상인데, 구위를 향상시키기도 전에 이강철의 혹사로 인해 당장 드러눕게 생겼다.

결국 예상대로 힘이 잔뜩 빠져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속구의 구속은 최고 150km/h까지 나왔으나 체력이 고갈되어 대부분의 속구는 고작 130km/h대에 그쳤고, 제구가 되지 않고 공이 날리는 모습을 보여줬고 1이닝 3피안타 1볼넷 3탈삼진 2실점을 기록하며 부진하고 강판됐다. 이번 WBC에서 던진 총 투구수는 81구로, 대표팀 내 최다 투구수를 기록했다. 연습경기까지 포함하면 무려 108구나 던졌다. 커리어 내내 선발투수로 뛴 선수가 불펜투수로 3일 연속으로 등판해 82구를 던진 것도 모자라 이틀쉬고 또 26구를 던져댄거다. 도쿄 올림픽의 조상우, 이번 대회의 정철원, 박세웅, 김원중과 함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역사에 남을 만한 혹사를 당했기 때문에 여론은 원태인의 부진보다는 이강철 감독의 심각한 혹사를 비판하는 분위기다. 게다가 뒤를 이어 등판한 소형준이 무려 150km/h를 찍는 준수한 컨디션을 보여주면서[14] 이럴 거면 대체 왜 원태인을 선발로 내보낸 거냐는 비판이 매우 강하다. 컨디션이 좋은데다 혹사도 안 당한 소형준 대신에 누가 봐도 체력적으로 지친 원태인을 선발로 내보낸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 경기 등판 전에 벤치에서 찍힌 사진이 퍼졌는데, 광대뼈 라인이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로 과하게 살이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야구 팬들 사이에서 이강철 감독이 원태인을 혹사시킨 것에 대해 이강철이 삼성에 원한이 있어서라는 여론이 존재하나, 이강철 감독은 과거 원태인을 매우 뛰어난 투수라 평가한 바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강철이 대표팀 내에서 우수하다고 평가한 원태인을 많이 기용한 것이라는 반대 여론도 존재한다. 5연투라는 충격적인 혹사를 당한 정철원, 김원중 역시 그러한 맥락으로 추정되나 KT, LG 소속 투수들이 부진했더라도 비교적 덜 출장한 것에 대한 의문점은 WBC 이후로도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혹사로 인한 중국전 2실점의 여파로 최종 성적은 좋지 않지만 도쿄 올림픽 성적에 비해 투구 내용 면에서도 발전했고 좀 더 나은 성적을 기록하였기에 이번 WBC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내에서 괜찮은 성적을 낸 투수로 평가받는다. 이로 인해, 차후 국제대회에서 에이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받고 있는 한편, 2020 도쿄 올림픽 당시 조상우가 당한 수준의 혹사로 인해 이번 시즌은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존재했다. 이러한 우려대로 시즌 초에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뛰어난 내구성을 지닌 선수답게 시즌을 거듭날수록 안정감을 되찾고 리그 탑급의 토종선발로 활약하며 이러한 걱정을 떨쳐냈다.

3.2.3.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편집]



파일:원태인 아시안게임.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 2.svg


경기
선발
이닝


홀드
세이브
피안타
피홈런
실점
자책점
탈삼진
사사구
ERA
투구수
2
2
10
1
0
0
0
4
0
0
0
14
0
0.00
115

2023년 6월 10일 김지찬과 함께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다.[15] 2023 시즌 리그에서는 발탁 당시 퐁당퐁당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동나이대 선수 중 가장 풍부한 국대 경험과 지난 WBC에서의 괜찮은 활약 덕분에 무난히 선발되었다. 현재 대표팀 선발 자원 중 가장 폼이 좋은 상태인 만큼 박세웅, 곽빈과 함께 선발 투수의 중책을 맡을 듯 하다.


3.2.3.1. 10월 1일: 사오싱 홍콩전 [N/D][편집]

10월 1일 등판 기록
결과
이닝
피안타/피홈런
탈삼진
볼넷/사구
실점(자책점)
투구수
N/D
4
1/0
8
0
0
47
10월 1일 사오싱 홍콩전 B조 1경기 선발 등판했다. 4이닝동안 47구 1피안타 무사사구 8탈삼진을 기록하여 그야말로 완벽한 호투를 보여준 경기이었다. 다만 승리요건인 최소 5이닝을 채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승리 투수는 되지는 못하였다.

여담으로, 이 경기에서 원태인이 던진 23구째 패스트볼 구속이 1km/h가 뜨는 바람에, 초전도체를 던졌냐라는 드립부터 시작해서 1태인, ONE태인 같은 온갖 별명이 생겨났다. 정현욱코칭 때문에 구속이 줄었다는 드립은 덤. 여담으로 홍콩의 두번째 투수[16][17] 구속은 무려 194km/h가 떴는데, 이를 본 SBS 정우영 캐스터는 지구 최강의 구속이라는 드립을 쳤다.

한편 다음 날 대만전에 0:4 완패를 당하면서 올림픽과 WBC에서 준수한 투구를 보여준 원태인을 홍콩전이 아닌 대만전 선발로 내세워야 했다는 일부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애초에 코치진에서 9월 26일 진행된 상무와의 평가전을 기점으로 문동주가 현 시점 대표팀에서 구위가 가장 좋다고 평가하여 대만전 선발로 낙점하였다고 한다. 또한 홍콩전에 곽빈이 선발투수로 등판하고, 대만전에는 원태인을 비롯한 모든 투수들이 불펜으로 대기하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으나 불가피하게 곽빈이 경기 당일 등 담 증세로 출장을 못하는 바람에 투수 로테이션이 꼬여버려 대만전 등판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18] 특히 원태인은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등판을 통보받아 급히 선발투수를 준비했다고 한다.[19]


3.2.3.2. 10월 6일: 사오싱 중국전 [승리][편집]

10월 6일 등판 기록
결과
이닝
피안타/피홈런
탈삼진
볼넷/사구
실점(자책점)
투구수
승리
6
3/0
6
0
0
68
10월 6일 슈퍼라운드 2차전 중국과의 경기에 선발 투수로 내정되었다. 연 초에 있었던 WBC에서도 중국전 선발로 나온 것에 이어 또 한 번 중국 상대로 선발 등판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연 초에 비해 컨디션이 괜찮은 편이므로 훨씬 더 좋은 투구가 기대되고 있다.

그리고 현장 코칭스태프와 야구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멋진 피칭을 선보이며 6이닝 3피안타 6K 무실점을 기록, 금메달 결정전으로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20]

이후 결승전에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혜택을 받음과 동시에 도쿄 올림픽에서의 아쉬움을 만회했다.

3.2.4. 2023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편집]



파일:2023 APBC 원태인.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 2.svg


경기
선발
이닝


홀드
세이브
피안타
피홈런
실점
자책점
탈삼진
사사구
ERA
투구수
1
1
5
1
0
0
0
3
1
1
1
5
0
1.80
84

김성윤과 상무 복무 중인 박승규와 함께 삼성 소속으로 2023 APBC 명단에 발탁되었다.

한편 이 대회까지 원태인은 1시즌 3국대라는 기록을 달성해 많은 팬들이 걱정하고 있다.


3.2.4.1. 11월 18일: 도쿄 대만전 [승리][편집]

11월 18일 등판 기록
결과
이닝
피안타/피홈런
탈삼진
볼넷/사구
실점(자책점)
투구수
승리
5
3/1
5
0
1
84

1승 1패로 대만과 동률인 상황에서 결승전행 티켓을 쥐기 위해 선발 등판한다.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팀의 결승 진출의 발판을 만들어주었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1] 한현희의 대표팀 자진 하차로 인한 대체 선발.[2] 사실 이 부분은 김경문 감독의 잘못도 큰데, 애초에 원태인은 1회 피안타율이 가장 높다. 즉 불펜으로 안 어울리는 선수이다. 스탯티즈만 뒤져봐도 나오는 기록들을 감독이란 사람이 데이터도 안보고 원태인을 올려서 게임을 터트린 것이다.[3] 평상시 140 중후반을 가뿐히 던지던 원태인이 145km도 간신히 나오는 모습이었다. 계속 원태인의 경기를 봐왔던 삼성 팬이라면 당연히 뭔가 이상이 있는 걸 눈치챘겠지만...[4] 삼성 소속으로는 정현욱 코치와 함께 발탁되었다.[5] 실제로 정우영과 원태인은 친한 사이다.[6] 저중에 사토랑 시마다를 뺀 나머지 선수들은 1군 백업/유틸리티나 2군 자원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투구 내용 자체는 일본에서도 충분히 통할 거란 희망을 줬다.[7] 3회말 일본 공격 중 도루하다 손목에 불편을 느낀 겐다 소스케를 대신해 4회부터 유격수 대수비로 들어왔다.[8] 무사 만루 상황에서 3번타자 오타니 쇼헤이, 4번타자 무라카미 무네타카, 5번타자 요시다 마사타카. 특히 이 날 요시다 타격감이 오타니 뛰어넘을 정도로 절정이었다.[9] 더군다나 전문 불펜도 아닌 커리어 내내 선발로 뛴 투수를 한신 연습경기까지 포함해 멀티이닝으로 3연투를 시켰기 때문이다.[10] 3회에 털리는 바람에 기록은 2이닝 4자책으로 한국 투수들 중 제일 나쁘지만 2회까지 5삼진을 잡고 오타니 쇼헤이를 삼진으로 돌아세우며 순수 투구 내용만 따지면 한국 투수들 중 압도적으로 좋았다.[11] 이번 경기에 나온 한국 투수들 중 유일하게 단 한 명의 일본 타자도 출루시키지 않았다. 물론 박세웅 등판 시점에서는 이미 경기가 일본 쪽으로 크게 기울었기에 일본 타자들이 굳이 힘을 들일 필요가 없었겠지만. 물론 그걸 감안해도 볼질하던 이전투수들과 달리 호투했으며, 무엇보다 공인구 적응이 완벽하게 된 모습이었다.[12] 다만 이쪽도 공이 몇번 정도 아예 빠지거나 패대기되는 걸 봐서는 구창모급은 아니더라도 공인구 적응을 완벽하게 하지는 못한 듯 하다. 특히 슬라이더는 아예 봉인하고 속구와 체인지업 투피치로 버티고 있는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막는 모습을 보여주며 공인구 적응이 아예 안 된 다른 선수들이 까이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13] 무라카미는 아예 빗맞기는 했지만, 눗바는 직구에 제대로 타이밍을 맞췄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중견수 플라이에 그쳤다. 원태인의 구위가 성장했다는 걸 증명하는 부분.[14] 며칠 전 경기들까지만 해도 구속이 140km/h대 초중반에 그쳤었다.[15] 이후 김성윤이 대체 선수로 합류하면서 삼성은 총 3명이 차출되었다.[16] 묘하게 롯데 자이언츠 김진욱을 닮았다.[17] 이 경기에서 유희관보다 느린 110km/h대의 패스트볼과 89km/h 슬로우 커브를 던졌다. 다만 해당 경기에서 스피드던 오류로 인해 전반적인 투수들의 구속이 10km/h 가량 느리게 나오는 모습이 포착되긴 했다.[18] 물론 이 경기는 투수진이 문제가 아니라 침묵했던 타자들이 문제였던 경기이긴하다.[19]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1회초 상대 타자에게 큼지막한 2루타를 허용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타자들은 모두 범타 처리하며 감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20] 현장 스피드건으로는 최고구속 152km/h이 찍혔다고는 하나 대회 내내 스피드건에 대한 신뢰가 다소 떨어져 완전 믿기는 힘들지만 리그에서 보던 베스트 컨디션 이상으로 힘을 내어 던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직구들이 많이 보였다. 본인도 "아드레날린이 나왔다"라면서 연 초의 WBC 중국전의 아쉬웠던 부진투를 의식하면서 "중국에 복수를 하고 싶었다"고 한 것을 보아 확실히 좀 더 세게 던진 것은 확실해보인 명품 투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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