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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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식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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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등번호 15번
구대성
(2006~2010)

유창식
(2011~2014)


이용규
(2015~2019)
{{{#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1번}}}
이용규
(2014)

유창식
(2015~2015.5.5.)


박성호
(2015.5.6.~2015)
KIA 타이거즈 등번호 49번
박성호
(2015~2015.5.5.)

유창식
(2015.5.6~2015)


김윤동
(2016)
KIA 타이거즈 등번호 11번
김광수
(2015.5.6.~2015)

유창식
(2016)


김진우
(2017)




파일:1KZ062YKSF_1.jpg

유창식
柳昌植 | Yoo Chang-Sik

출생
1992년 5월 15일 (31세)
전라남도 함평군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광주화정초 - 무등중 - 광주제일고
신체
186cm, 110kg#
포지션
투수외야수[1]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11년 1라운드 (전체 1번,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11~2015)
KIA 타이거즈 (2015~2017)
저니맨 외인구단 (2017)[2]
범죄 유형
승부조작 및 성폭행

1. 개요
3. 성씨
4. 피칭 스타일
5. 논란 및 사건사고
5.1. 승부조작
6. 연도별 주요 성적
7. 기타 사항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한화 이글스, KIA 타이거즈의 투수. KIA에서 뛰었던 김현준의 이종사촌이기도 하다.

고교야구 시절 0점대 방어율로 대활약 하면서 유망주 0순위로 주목 받았고 2011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한화 이글스에 지명됐다. 계약금은 무려 역대 3번째(계약 당시는 2위)로 많은 7억 원으로 2006년 5억 5천만 원을 받았던 유원상을 뛰어넘어서 한화 이글스 역사상 신인 계약금 최고액이며, KBO 리그 역사 전체를 따져봐도 임선동(1992년 LG 1차 지명), 김진우(2002년 KIA 1차 지명)와 함께 공동 3위에 해당한다.[3] 한화 이글스가 유창식 선수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걸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4] 그러나 프로 진출 후 그닥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 했고 구위도 점차 하락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다가 이후 당시 전권을 휘두르던 김성근 감독의 선수보강 요청 일환으로 2015년 KIA와 한화의 3대4 트레이드로 고향팀인 KIA로 오게 되었다. 트레이드 이후 한화를 후회하게 해주겠다는 발언으로 비난을 받긴 했다. 그래도 고향 KIA에 온 만큼 재기를 꿈꿨지만 제구력은 별 달라진 모습 없이 KIA에서도 강렬하게 불을 질렀다. 그래도 2군에서 성실히 훈련을 하고 공을 던져 팬들에게 언젠가 제2의 양현종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주었다.

하지만 유창식은 이미 승부조작을 저지른 상태였고 트레이드 이후엔 성폭행 까지 저질렀을정도로 추락하였다.

2014 시즌 두 번의 승부조작을 시행하였다. 2016년 7월 24일 승부조작을 시인하며 자백을 하였고 결국 25일 KBO에 참가활동 정지 처분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경찰 수사 중 유창식은 기존 자백을 번복하고 한 차례 더 승부조작이 있었음을 자백했다. ##

당연히 팬들은 유창식에게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더구나 전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까지 되면서 프로구단들은 지금까지의 성적과 논란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사실상 선수 생활이 끝났다. 게다가 승부조작의 보수가 3~4백만원어치임이 밝혀지자 소탐대실의 표본으로 올랐다.


2. 선수 경력[편집]


유창식의 선수 경력



3. 성씨[편집]


참고로 실제 성은 '(柳)'씨라고 한다. 그래서 원래는 류씨로 하는게 맞지만 우리나라 행정상 공문서에 류씨를 유씨로 기록하던 관례로 학교다닐 때부터 성인된 이후까지 유씨로 계속 등록되어 와서 본인도 그냥 유씨로 살았다고 한다.[5]


4. 피칭 스타일[편집]


지명 당시 최고 150km/h의 구속을 가지고 있고 좋은 구위와 함께 완급 조절이 뛰어난 투수로 평가받다.

고교시절 이런 좋은 구위와 완급조절 능력 덕에 많은 주목을 받던 투수였었고 최고구속 150km/h였으니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육성 후 더 좋아질 가능성을 봤기에 오퍼를 넣었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당시 스카우트 리포트에서 입단 후 바로 즉전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리포트도 많았다.

그러나 유창식의 큰 단점으로 꾸준히 지적되는 것이 제구력인데, 거의 롤러코스터 제구다. 유창식의 제구는 커리어 내내 좋지 않았고[6] 팔꿈치 통증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수준의 제구는 문제가 있다. 소위 긁히는 날은 제구력이 훌륭해서 유망주 1순위급 포텐력을 보이나 그렇지 않은 날은 그저 배팅볼, 볼넷자판기가 되어버린다.

제구 외에도 유창식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멘탈 부분이다. 제일 큰 문제가 한 번 흔들리면 아예 그 경기를 망친다는 것인데, 한 번 안 풀리면 스트라이크를 넣는 경우가 없고 볼 카운트를 불리하게 가져가 볼넷을 많이 내주게 되고 투구 수가 많아지게 되면서 경기를 망치게 되어 조기 강판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2015년 15구 연속 볼. 잔부상과 멘탈 문제를 극복한다면 포텐을 폭발시킬 수도 있었겠지만 후술할 사건으로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이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의미없게 되었다.


5.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5.1. 승부조작[편집]


2016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 문서 참고.


6.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1
한화
26
39
1
3
0
1
0.250
6.69
47
2
25
27
39
29
1.85
2012
27
111⅓
6
8
0
1
0.429
4.77
101
13
80
82
61
59
1.62
2013
25
71⅔
5
10
0
2
0.333
6.78
89
4
59
47
56
54
2.00
2014
21
91⅓
4
4
0
0
0.500
4.14
100
2
75
53
54
42
1.88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5
KIA
27
54⅔
0
8
0
0
0.000
7.90
67
9
43
34
53
48
1.96
2016
1
1⅓
0
0
0
0
0.000
20.25
2
1
6
0
3
3
6.00
KBO 통산
(6시즌)
127
369⅓
16
33
0
4
0.327
5.73
406
31
288
243
266
235
1.85


7. 기타 사항[편집]


파일:external/img.sbs.co.kr/30000054566_700.jpg

  • 류현진을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다고 밝혀 팬들이 많은 기대를 했지만, 몇 년이 지난 후 류현진과 공통점이라곤 본관은 다르지만 같은 柳씨란 것만 드러났다.[7] 아울러, 포텐이 아직 터지지 않은 탓에 대선배님 등번호 받아놓고 그것밖에 못하냐는 비난도 들었다.[8]


  • 2012 미야자키 교육리그를 한화 프런트에서 아프리카TV 중계를 해줬는데, 저녁식사 도중 새우를 더 달라고 한다는 것이 "새우데스"라고 말했다는 것이 중계를 통해 밝혀지면서 새우라는 별명이 추가.
  • 파일:external/pds26.egloos.com/e0105208_51740306d6cb4.jpg
한화에 전체 1순위로 지명되면서 양키스메츠가 너무 귀찮게 하더라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막상 거액을 받고 프로에와서 말아먹자 비꼬는 의미로 양메귀라는 별명이 생겼다.

  • 파일:external/img.sbs.co.kr/30000250490_700.jpg
마운드에서 혀를 낼름낼름 대거나 입을 삐쭉대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 유독 LG 트윈스를 상대로 강했던 걸로 유명하다. 통산 16승 중 딱 절반인 8승이 LG전이다. 2012 시즌 평균자책점이 그나마 준수한 건 순전히 LG와의 상대전적 덕분으로, LG전을 제외하고 계산하면 평균자책점이 수직 상승한다. 특히 삼성을 상대로는 LG와의 상대전적에 비해 극과 극으로 상당히 약하며, 2013년에는 삼성을 상대로 평균자책점이 10점대였다.[9] 2013 시즌에서도 시즌 초반 연패 때를 제외하면 (구위가 완전 새털이 되었음에도) LG전에서만 유딸 포스를 보였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가정 사정을 이유로 메이저리그 제의를 거절하고 국내 잔류를 선언했을 적에는 LG 트윈스에 가고 싶다고 말했었다.#

  • 파일:attachment/dbdidthd.png
한화 이글스에서 같이 뛰었던 가 언뜻 상당히 닮았다. 얼굴이 딱히 노안도 아니고 나름대로 귀염상인 반면, 최훈 카툰에서는 노안으로 그려졌다.

  • 2014년 9월 14일 다큐 3일 엔딩에서 먹보 돼지로 출연했다.(...) 한상훈"야 아까 먹고, 또먹고? 시합 전에 또먹고?"라고 일침 놓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꿋꿋히 먹는 것이 포인트.(...) 경기 장면이나 훈련 장면이 전혀 나오지 않고 먹는 모습만 나온 덕에 'C컵 좌완(...)이 되기 위해 꾸준히 X먹는 유창식'으로 불렸다.[10]참고로 승부 조작을 한 이후 찍은 다큐이다.

  • 2014년 12월 이용규와 등번호를 맞바꾼 사실이 알려져 팬들에게 까였다.[11] 한화의 15번은 원래 구대성의 등번호로 KBO 영구결번급의 등번호이지만, 당시 막장짓을 일삼던 프런트에 의해 후배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최고 기대주였던 유창식에게 준 것인데, 이 등번호를 그것도 자신이 먼저 이용규에게 바꾸자고 제의한 사실이 알려져 영결급 등번호를 이적생과 바꾼 것도 모자라서 자신이 먼저 바꾸자고 제의했냐고 더 까였다.
그런데 빙그레를 포함해서 한화에서 1번을 잠깐이라도 달았던 주요 선수로는 이광길, 송진우, 이상목, 조성민, 조규수, 장성호 등이 있는데, 송진우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1번 시절엔 딱히 특출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이용규마저도 본래 번호인 15번으로 바꾼 후 날아다닌 뒤 이런 일을 벌였다.

  • 5살 아래의 외사촌 동생이자 우완투수 김현준도 유창식과 같은 광주일고 출신 야구선수로, 고향 팀 KIA에 2016년 1차 지명을 받아 외사촌 형과 잠시 같은 팀에 뛰었다.

  • 한화 이글스KIA 타이거즈에게는 들의 등번호를 더럽히는 행동을 벌인 천하의 개쌍놈이다.[12]

  • 2020년 12월, 박명환이 진행하는 박명환야구TV에서 박동희가 오랜만에 언급하였다. 한화 스카우트진들의 단점을 지적했는데 이 투수를 지명할 때 '(지명된) 투수의 경기운영능력이 좋아서 지명했다'는 말을 비판하면서 그 예시로 유창식을 들었다.[13]

8. 관련 문서[편집]


[1] 저니맨 외인구단에서 타자로 전향했다.[2] 성폭행 혐의 연루로 합류가 불투명해졌으나, 경기에 정상적으로 참여하였지만....[3] 역대 1위는 2006년 KIA의 1차 지명을 받은 뒤 10억원을 받았던 한기주, 2위는 9억원의 장재영.[4] 프로 지명 당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도 유창식에게 관심을 보였으나, 유창식은 홀어머니 두고 떠나기 싫다며 국내에 잔류했다. 참고로 유창식의 아버지는 유창식이 6살 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당시 유창식은 한화 이글스와의 계약 이후, 뉴욕 양키스뉴욕 메츠가 너무 귀찮게 했다는 인터뷰를 했다. 이로 인해 붙은 별명이 양메귀.[5] 실제로 한국에는 많은 류씨들이 행정상 유씨로 살고 있다. 류현진의 경우에도 과거 데뷔 초 언론에서 '유현진'이라고 표기한 적이 많았다. 2007년 법이 개정되어 대법원이 호적예규 변경을 통해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성(姓)에 예외를 둠에 따라 '류'씨로 정정신청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신청한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신청할 때 아버지 호적까지 류씨로 바꿔야 하는 규정이 있어 행정상 복잡한 부분도 있고 하기에 대부분의 류씨들이 안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류현진의 경우에는 이를 신청하여 이후 언론에서 유현진이 아닌 류현진으로 표기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세한 사항은 문서 내에 관계된 내용을 찾아 보면 알 수 있다. 이게 다 윗 동네 때문이다.[6] 커리어 통산 9이닝 당 볼넷 허용개수 6.6개[7] 투구는 왼손으로 하지만 글씨를 쓰거나 할 때는 오른손을 쓴다.[8] 덕분에 한화 팬들 사이에서 구대성의 15번을 KBO 영구결번하지 않은 한화 프런트를 안 좋은 의미로 재평가되었으며 그가 까일 때 심심하면 같이 까인다.[9] 다만 이때 삼성이 왕조시절이어서 유망주가 강팀 상대로 약한 것은 이해가 되긴 하다.[10] 류현진이 체구가 큰지라 못하는 날에 C컵 좌완 내지는 C급 좌완이라고 불리던 것에서 유래한 듯.[11] 한화에서는 1번을 달았지만 KIA 시절 이용규의 등번호가 15번.[12] 한화 시절에는 15번을 달았고, KIA 시절에는 이적하자마자는 49번을 달았지만 11을 달고 뛰었다. 특히 구대성과 김성한이 각 구단에서 영구결번도 가능했던걸 생각하면 제대로 먹칠을 했다고 볼 수 있다.[13] 박명환도 이 점에서 동감하는 모습이었다. 고등학생 선수들의 변화구 구사력이나 경기운영능력이라고 해봤자 고교야구 레벨에서만 통하지 어차피 프로야구에 들어와서 다시 배우고 갈고 닦아야 하는 것들임을 지적했다.과연 한화는 유창식만 해당될까..이 선수도 생각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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