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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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반응
4. 여담


1. 개요[편집]


조선보병대는 대한제국일제강점기 당시에 대한제국 황실을 수비하는 역할을 한 부대이다. 즉, 일종의 황실 근위대라고 보면 된다.


2. 역사[편집]


근원은 대한제국군 해산 당시 남은 시위대 2연대 2대대를 개편한 근위 보병대를 주축으로 한다. 12월에 창설된 근위기병대와 더불어 경술국치 이후 조선보병대와 조선기병대로 격하된다.

1907년 당시 이들의 규모는 644명이었는데 기병은 93명이었다. 1913년 일본은 돈이 많이 드는 기병대를 폐지하고 보병대만 유지했다. 1920년에 규모가 다시 축소되어 1개 중대 228명 수준으로 유지됐다.

1931년 4월 해체되었다. 당시 인원은 202명으로, 장교는 6명, 부사관은 21명, 은 175명 수준이었다. 이 중 199명이 조선 주둔 일본군 육군헌병사령부[1]경찰[2], 교도관 등으로 재취업했다. 해산 직전에는 대공황으로 인해 조선보병대에라도 들어가려는 사람이 많았다.

모병제로 복무기간은 2년이었다. 주둔지는 현재의 정부서울청사 자리다.


3. 반응[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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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 당시의 조선보병대.

그 당시 지식인들은 "침묵의 덕으로 사해를 평정하는 세계 유일의 절대평화군대"라는 말로 비꼬았다. 관련기사 망국의 근위대였고 사실상 의장대 역할이 전부여서 실질적으로 군대의 역할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기탄약 관리도 일본군이 담당했다. #

당시 동아일보(1930년 11월 9일자)에서는 "은 메었으되 사람은 해칠 줄 모르고 탄약갑은 찼으되 탄환은 가지지 않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평화군대 조선보병대가 해산된다. (중략) 조선인 군인의 잔해가 조선에서 사라지고 외국에서나 조선인 군인들을 찾아 볼 수밖에 없게 될 터이니 마지막 닫히는 평화의 군대 만세나 불러볼까"라며 비꼼보다는 회한이 느껴지는 기사를 썼다.


4. 여담[편집]


조선보병대 출신 독립운동가들이 여럿 있는데,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투척했던 장진홍 의사가 1914년부터 1916년까지 조선보병대에서 복무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원식을 처단한 양근환 의사도 1910년대 중반 조선보병대에서 복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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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로 장교부사관들이 해당됐다.[2] 창덕궁 경찰서에 50명이나 취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