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군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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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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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6121100462_1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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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朝鮮人民軍
Korean People's Army
Корейская народная армия

파일:조선 인민군 기.svg
상징
국가
파일:북한 국기.svg


지위
[[조선로동당|

파일:조선로동당_로고.svg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의 정규군
]]
통수권자[1]
김정은(최고사령관)
군령권자
리태섭(총참모장)
군정권자 (행정적)
리영길(국방상)[2]
군정권자 (정치적)
정경택(총정치국장)[3]
상비군
128만명(대한민국 국방부 추정치, 2020년 12월 기준) [4]
예비군
7,620,000명[5]
병역제도
징병제(여성 징병제 병행)
육군력

[ 펼치기 · 접기 ]
전차 총합
4,300여 대
장갑차(APCs/IFVs)
2,600대
야포
8,800여 문
다연장로켓
5,500문
수송 차량
8,000대
지대지유도무기
발사대 100여 기

해군력

[ 펼치기 · 접기 ]
전투함정
430여 척
상륙함정
250여 척
기뢰전 함정
20여 척
지원함정
40여 척
잠수함정
70여 척

공군력

[ 펼치기 · 접기 ]
스텔스기
0기
전투임무기
810여 대
전자전(SIGINT/ISTAR)
0기
공중급유기
0기
감시통제기
30여 대
공중기동기
350여 대
훈련기
80여 대
헬리콥터
290여 대

2020 국방백서

파일:1098px-Emblem_of_the_Korean_People's_Army_(1948).svg.png
조선인민군의 창군 직후의 구 상징.
지금과 달리 태극 문양이 들어가 있다.[6]

1. 개요
2. 상세
2.1. 군사적 전술
3. 역사
4. 수뇌부
7. 대외 참전 / 지원 경력
7.1. 직접적인 참전
7.2. 무기 수출
7.3. 군사 훈련
7.4. 기술 이전
7.5. 외국과의 조약/관계
12. 남한 주도의 평화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13. 관련 문서
14. 출처 목록
15. 대중매체에서의 북한군
15.1. 영화 및 드라마
15.2. 만화 및 애니메이션
15.3. 게임
1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 조선인민군은 국가방위의 기본력량, 혁명의 주력군으로서 사회주의조국과 당과 혁명을 무장으로 옹호보위하고 당의 령도를 앞장에서 받들어나가는 조선로동당의 혁명적무장력이다.
* 조선인민군은 모든 군사정치활동을 당의 령도밑에 진행한다.

<조선로동당 규약 47조 (2021년 1월 개정)>

조선인민군조선로동당당군이며 북한의 실질적인 국군이라 볼수있다.[7]

1948년 2월 8일에 창설되었으나, 1978년부터는 항일 빨치산전통을 이어받았다고 강조하기 위해 김일성이 항일유격대를 창설했다는 날인 1932년 4월 25일로 창설 시기를 앞당겼고, 해당 날짜를 '건군절'로 지정해 공식화한다. 그런데 2018년 1월 22일 북한 정부 발표를 통해 건군절을 둘로 분리하여 4월 25일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로, 2월 8일은 조선인민군 창건일로 나누고 2018년 2월 8일 열병식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2월 8일이 평창 올림픽 개막 하루 전날로 남북한 합동 전야제가 있는 날인데 이와 연계하여 북한 체제 선전을 하려는 목적인 듯하다.

주요 전술로는 총력전, 배합전, 대량 선제 기습 공격 전략, 속전속결 전략이 있다.# 총력전은 우리가 아는 총력전의 의미를 넘어 국가의 모든 분야를 전쟁에 종속시키는 전술이고, 배합전은 전면에서 주력이 남한을 공격하면서 특수부대후방을 교란함으로써 상대 전선의 안팎에서 동시에 전쟁을 치르는 전술이며, 선제 기습 공격 전략과 속전속결 전략은 전쟁 발발 시 빠른 기동력으로 적을 공격하여 전쟁을 빨리 끝내는 전술로 4차 중동전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8] 군 자체에서 "조선인민군"이라는 신문을 발행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주로 북한군이나 인민군이라고 불리며, 남북간 대립이 한창 심했던 냉전 시대에는 북한괴뢰군이나 북한 공산군, 북괴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2. 상세[편집]


조선인민군은 설립 초기부터 김정은 시대 이전까지는 북한 전체의 군대가 아닌, 조선로동당이 소유한 군대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북한이라는 집단의 국군 기능을 하였다. 이러한 시스템은 공산주의 국가의 당군(黨軍)이나 인민군의 개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데,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는 '국가 수준의 군대는 부르주아지와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는 압제의 도구에 속한다'는 카를 마르크스의 오랜 이론에 근거하여 국군의 개념을 부정했다. 그 대신 혁명의 전위주체인 공산당을 수호하기 위해 노동자인민들이 자발적으로 무력집단을 결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이 당군이나 인민군의 개념이다.

이건 다르게 보면 이론상으로는 모든 정당들이 자신들만의 군대를 소유할 수 있다는 뜻이긴 하지만 대체로 공산 국가들은 공산당 일당 체제로 굴러간 탓에 다른 야당이 자신들만의 군대를 소유하기는 커녕 야당이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기껏 있어봐야 사실상 '우리는 일당 독재 체제가 아니다'라고 보여줄 목적으로 만든 가짜 야당인 관제야당 정도나 존재했을뿐.

북한도 마찬가지여서 조선인민군은 원래는 북한의 공산당인 조선로동당에 속해있었다. 정확히는 북한의 내각 구조 중 국방을 담당하는 부서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를 만들고 그 조선로동당의 당원 중 하나인 김일성이 국방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으면서 김일성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조선로동당의 일원으로 엮여있는 구조였다. 즉 원래대로라면 김일성은 북한 정권에서 군사 부분만 담당하는 당원 중 하나여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하지만 혼란한 사회에서 군사권을 손에 쥔 사람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법인지라 이후 김일성이 정권을 휘어잡으면서 내각의 주요 자리들을 '겸임'하는 식으로 북한 정권을 장악하면서 조선로동당 전체가 김일성의 수족이 되었고 조선인민군도 사실상 김일성의 사병 조직이 되었다.

이런 '명목상으로만 조선로동당의 군대이고 실질적으로는 김씨 일가의 사병 조직인' 구조는 김정일 시절까지는 유지되었다가 김정은 시대에 국방위원회를 해산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를 신설하여 모든 업무를 이관함으로서 그 구조가 크게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국방위원회가 실질적으로는 이미 북한의 최고 기관이지만 명목상으로는 어디까지나 조선로동당의 하위 부서 중 하나일 뿐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명목상으로도 공개적으로 조선로동당과 아예 별개의 조직으로 독립시키는 의도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동안 유지하고 있던 '인민군은 조선로동당의 하위 부서이지 최고권력자의 개인 사병이 아니다'라는 가면조차 완전히 벗어던진셈. 이것이 시사하는바는 그동안은 김씨 일가가 국방위원회 대표가 되는 과정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조선로동당의 거수 투표를 거쳐야 했던 것을, 이제는 그럴 필요조차 없이 김씨 일가의 후계자는 다이렉트로 국무위원회 대표 자리를 세습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동안 자신들은 세습 국가가 아니라는 가식도 완전히 탈피하고 점점 더 세습 왕조로 변해버렸음을 입증한 셈. 다르게 본다면 군을 이제는 김씨 일가가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변화가 닥쳤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현대 한국에서 한국전쟁을 다룰 때 조선인민군을 인민군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 전쟁 당시에는 공산군이라고도 불렸으며, 이후 냉전 시기에는 소련 혹은 중공의 꼭두각시 군대라는 멸칭으로 북한 괴뢰군[9], 줄여서 북괴군(北傀軍)이나 아예 괴뢰군이라고 주로 불렀었다. 이 북괴군이란 용어는 1980년대에는 국민학교 1학년 교과서에서도 등장한다. 군사정권 때까지는 이것이 한국 정부나 한국의 언론 한국군에서 공식적으로 쓰이는 명칭이었으나 현재는 공식적으로도 비공식적으로도 일반적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의외로 북한 주민들도 인민군을 공산군이라는 멸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하지만 점점 이런저런 역사적 특성들이 바래지면서 이제는 '북한군'이라는 호칭이 일반적으로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이상할 정도로 장성급 장교강등이 자주 발생한다. 장성택, 최룡해, 황병서 등 최고위 장령들조차 조선인민군 차수대장 사이에서 진급과 강등을 반복했다.

2.1. 군사적 전술[편집]



  • 12대 전투원칙: 사실 상당히 뒤떨어진 원칙이다. 화력을 압도하고, 지형을 활용하는 등 한국전쟁,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나 사용했던 작전으로 현대전에서는 '영공을 점령하는 것'이 승리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공군력이 상당히 처참한 수준이라... 그나마 북한 입장에서 쓸만한 건 항공기의 물량이 대한민국보다 많기에 화력압도와 후방 교란 정도...그래서 북한이 지금까지도 열심히 특수부대와 방사포에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전멸소탕: 한미연합군의 후퇴로 부대재편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
    • 기습돌파: 야간, 악천후를 틈타 기습한다.
    • 화력압도: 장사정포 미사일 화력을 전투 초반에 집중적으로 투입해 수도권 주민들의 혼란과 공포심 조장을 위한 목적
    • 기동력: 국군이 기동을 중지한 틈을 타 공격한다.
    • 후방방어: 전투 부대를 지원하기 위한 안전 지대 확보 목적
    • 후방교란: 남한 전력의 분산을 위해 후방을 교란시켜 특수군의 전력을 극대화한다.
    • 협동작전: 육해공군의 협동 작전
    • 전투편성: 사다리꼴 모양으로 편성한다. (제1선 5/9전방, 제2선 3/9후방, 제3선 1/9예비) 개전 초반에 전력을 집중화하기 위한 목적
    • 연합작전: 대한민국 국군의 '소부대 훈련'과 비슷한 개념이다. 대대, 중대, 소대 모든 부대의 통합 작전
    • 병참확보: 전쟁에 있어서는 병참 문제가 제일 크기 때문에 병참부대의 병참선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
    • 지형활용: 산악전을 중시한다.
    • 사전정찰: 한미연합군 현황을 사전에 정찰한다.


  • 침투축선
주침투로
축선명
작전부대
침투경로
비고
개성북방

3번 국도
철원
제5군단[10]
세종시강원도 고성군
43번 국도
철원서방

3번 국도
우회침투로
김포
제4군단
김포반도
48번 국도
서해도서
특수부대

공기 부양정, 반잠수정 이용
공중침투
제1항공육전대

주요 공항 점령, An-2, 500MD 이용 후방 침투
해안침투
특수부대

동해, 서해 1개 여단 상륙 감행, 공기부양정, 반잠수정 이용
땅굴침투



  • 투입전력
    • 전방지역: 전력의 70% 이상 배치
    • 후방지역: 병력 770만 명의 준군사조직 배치
    • 전시체제: 집단군 전환
제대
배치부대
역할
인원
1제대
4개 군단
한미연합군 돌파, 후속 부대의 돌파구 확보
병력 40만 명, 특수군 병력 12만 명
2제대
1개 포병군단, 1개 기갑군단, 2개 기계화군단
수도권 우회 지방 점령
병력 12만 명
3제대
2개 기계화군단
공세 시 전력 투입, 후퇴 시 평양 방어
병력 6만 명
4제대
6개 군단
호위사령부, 평양 방어, 국경 경비
병력 12만 명, 건설 병력 30만 명


3. 역사[편집]


파일:북한군기1.png
파일:북한군기 3-좌깃대.png
조선인민군 구 상징물[11]

인민군은 남한의 한국군과 마찬가지로 광복 이전으로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조직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설립된 의병 조직들에서 시작해서 점차 규모가 커지고 조직화되면서 생긴 의병 조직들 중 주로 좌파 계열 의병 집단[12]이 그 기원으로 북한이 세워지기 전부터 역사를 지닌 조직이다. 지금은 열약한 제식 장비를 지닌 군대지만 그래도 1950년대에는 미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자마자 몇 차례 패퇴시키며 경남까지 쫓아낸 경험이 있었다.[13] 창설 초기 인원들 중에 일본군, 중국 국민당군[14], 그리고 독소전쟁에도 참전해 나름대로 실전 경험도 있었던 데다 북한군이 쓰던 무기는 소련에서 지원받은 강력한 무기였다.[15] 또한, 남침을 위해 수년간 소련 고문관이 파견되어 체계적인 훈련과 소련제 제식 장비를 지원받았으니 한국전쟁 초창기 북한군이 보여준 전광석화같은 남침 속도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녔다. 당장 미국도 초창기 북한군의 훈련 수준과 장비 수준을 얕보고 최초 전투를 벌인 스미스 특임대가 오산에서 박살나고 뒤이어 천안에서 M24 채피 경전차로 T-34 중형 전차[16]를 맞상대하려고 했다가 그야말로 참패를 당하고 T-34 쇼크에 빠지기도 했다. 당시 극동아시아에서 T-34 수준의 기갑 전력을 체계적으로 제식화하여 보유한 국가는 북한이 유일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갑 병력이라고 부르기도 초라한 그레이하운드 장갑차에 일본은 미국에게 박살난 직후라서 군대 자체가 와해된 상황이었고 중국의 경우 국공내전으로 인해 체계적인 기갑 병력 육성을 못했던 상황이었다.

1945년 10월 21일 소련 제25군 사령부의 명령으로 보안대가 창설되고 이 과정에서 조선의용군이 배제된다. 보안대의 임무가 철도안전을 포함한 형태의 임무확대가 되어서 철도보안대가 추가로 창설되는 1946년 1월 16일에 철도보안대에 합류하게 됨으로써 북한군의 기초가 된다. 현재도 조선인민군 군인들의 신분은 철도보안원을 겸임할 정도로 이 철도보안대가 북한군의 전신이다. 그리고 군내 정치사상 교육과 군사 분야의 간부양성을 위해 1946년 2월 평양학원[17]과 6월 중앙 보안간부학교[18] 등의 군사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1946년 8월 15일 규모가 확대된 보안대를 통합·지도하기 위해 평양에 보안간부 훈련대대부를 창설했고, 9월에는 인민집단군 총사령부로 개칭했다. 1948년 2월 4일에는 민족보위국이 설립되었고, 마침내 북한 정부수립 7개월 전인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이 창설되었다.



1948년 2월 8일, 평양역 앞 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창설식에서 연설하는 김일성과 군악대에 의해 연주되는 올드 랭 사인 애국가.

조선의용군은 1949년 7~8월에 2만 명이 북한으로 들어옴으로써 북한군에 최초로 합류하게 되며, 1950년 5월에 추가로 약 2만 명 가량이 입북한다. 이로 인하여 중국 공산당과 함께 활동한 군대 출신인 경우가 많게 된다. 먼저 김원봉조선의용대에서 이탈해 중국 연안 지방으로 간 군대인 조선의용군이 있다. 또 조선의용군과 함께 태항산에서 결성된 화북 조선 독립동맹의 일부 인원도 포함된다. 그리고 만주에서 활동했던 동북항일연군도 조선인민군에 포함되는데, 이 동북항일연군은 완벽히 통일된 군대는 아니었고 만주 일대의 공산주의 계열 유격대들을 공산당 주도로 통합한 일종의 통일전선 연합체 성격을 띄었다고 한다. 김일성이 제1로군 2군 6사의 대장이었다. 김일성은 이후 만주에서 활동할 수 없는 수준으로 탄압을 받자, 소련으로 넘어가서 소련 극동군 제88 국제여단에 합류한다. 여기에 추가로 소련에서 활동하던 소련 유학파 등이 모여서 형성되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동북항일연군의 김일성부대의 모태가 되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조선인민군의 뿌리로 소급하기도 한다.

이들은 처음에는 느슨한 분위기의 군사조직 연합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점을 두고 북한에서는 '민족적 단결을 통한 인민의 군대 창설'로 평가한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이 점령되고 나서 북한군이 서울에 주둔할 때 야전병원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한 간호사나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소위 말하는 연안파, 다시 말해 조선의용대 출신 인원들이 김일성과 그의 직통 라인인 소련 극동군 88여단 출신 인물들보다 상당히 푸대접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연안파 군인들은 공공연히 이러한 불만을 표출했다고 전해진다.

이후로도 북한의 무식한 군국주의 정책으로 70년대 초반까지 남한과 1대1로 이길 가능성이 남는 상태의 군사력을 유지해왔으나[19], 70년대 중후반부터 균형이 서서히 바뀌어 80년대에는 북한이 승리를 거두는 것이 어렵게 되었고, 서울불바다 발언을 마지막으로 고난의 행군과 함께 남한을 군사력으로 이길 수 있다는 북한군 입장의 희망이 꺾이게 되었다.[20]

현재 정규군 약 128만명과 예비전력 762만명[21] 총합 약 990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 병력 규모만으론 세계 3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인구수 2,700만 명과 대비하면 대략 35%로 군국주의의 궁극적 표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군인의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하지만 그 인원도 그저 부족한 전투력을 메꾸기 위한 조치로 생각될 정도로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춘 것은 아니다. 세계에서 4위의 병력을 가지고 있는 그 북한군의 군사력 순위는 기껏해야 20위 후반이었는데 40여 개의 나라가 추가되면서 35위로 또 떨어졌다. 평가된 나라가 68개국에서 106개국으로 늘었다만 세계 상위권 군사력을 가진 국가들은 오래전부터 포함되어 있었기에 국가 비율만큼 순위가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전쟁 당시의 조선인민군과 조선의용군을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인민군은 북한의 정규군이고 의용군은 한국전쟁 당시 남한 지역에서 자원 또는 징집된 인원으로 편성된 군대를 이야기한다. 당연하게도 이 의용군은 북한 정규군에 비해 차별을 받았고, 휴전 후 포로 교환을 할 때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남한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다수라고 한다.[22]

4. 수뇌부[편집]


파일:2021년도 조선인민군 지휘체계.png

파일:로동신문김정은.jpg
최고사령관[24]
원수 김정은
파일:북한 박정천.jpg
파일:북한리병철원수.jpg
파일:총정치국장 정경택.bmp
파일:총참모장 리태섭.bmp
파일:/image/023/2016/05/10/2016051001169_0_99_20160510140404.jpg
파일:정찰총국장 리창호.jpg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국방상
정찰총국장
원수 박정천
원수 리병철
대장 정경택
대장 리태섭
차수 리영길
중장 리창호
파일:북한김명식.jpg
파일:북한김광혁.jpg
파일:북김정길.jpg
파일:북한김영복.jpg
파일:사회안전상 박수일.jpg
파일:국가보위상 리창대.jpg
해군사령관
항공 및 반항공군사령관
전략군사령관
특수작전군사령관
사회안전상
국가보위상
대장 김명식
대장 김광혁
상장 김정길
상장 김영복
대장 박수일
상장 리창대


파일:북한 국기.png [[틀:조선인민군의 주요 지휘관|{{{#FFF 조선인민군의 주요 지휘관}}}]]
최고사령관
김정은
최고사령부
제1부사령관

리명수
총정치국장
권영진
총참모장
림광일
인민무력상
리영길
해군사령관
리용주
항공 및 반항공군사령관
김광혁
전략군사령관
김락겸
인민보안상
장정남
국가보위상
정경택
주: 조선인민군 육군은 별도의 지휘관 없이 총참모부의 지휘를 받는다.


조선인민군은 조선로동당의 군대이다. 현재 통수권자는 조선로동당 총비서 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자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 김정은이다.

그 외 군 간부들은 조선인민군/장관급 장교 문서를 참조.

5. 열악한 내부 사정[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조선인민군/열악한 현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여성 징집[편집]


2015년부터 이스라엘처럼 여성들에게도 병역 의무가 주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 여성들은 모두 2년 국방의 의무가 주어진다고 했지만 이것은 루머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만 해도 북한 여성들은 일주일 군사 훈련을 받은 게 전부였다. 예비군에 준하는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25] 사실 2003년 제정된 군사복무법으로 인해 남성 10년, 여성 7년의 복무기간이 명문화되긴 했으나, 기존의 남성들만 징집해도 120만 대군을 유지할 수 있어서 사실상 여성은 징집이 아닌 지원제에 가까웠다. 그러나 후술할 1995년 닥친 고난의 행군의 여파로 인해 여성징병제가 본격 실시된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전면적으로 여성들을 징병 대상으로 바꾸었으므로 이제 북한은 일반 여성들도 남자들처럼 신체검사를 받고 군에 입대하게 되어 7년의 의무 병역(...)을 마쳐야 한다.[26]물론 여전히 남군(男軍)에 비해 비율은 낮겠지만 기존의 25%라는 수치에서 훨씬 더 높아진다는 것은 분명하고 그 비율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거의 유례 없는 군국(軍國)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27]

이런 무자비한 징병제 덕분에, 북한은 전세계 인구 대비 군인 비율 1위(5%), 전세계 군 내부 여군 비율 1위(30%)라는 세계적 기록을 세웠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와 버린 가장 큰 원인은 고난의 행군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 당시 전례없는 기근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굶어죽어 인구수가 격감했던데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극심한 영양 부족을 겪었다. 그런데 하필 이 세대의 남자들이 입대할 시기가 되면서 병력 부족과 신체기준 미달 등 온갖 문제가 속출하자 남자만으로는 120만여 명이라는 상비군의 숫자를 충당하기 어려워진 것이 제일 큰 원인으로 보인다. 이런 탓에 입대 기준을 대폭 낮추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복무 기한을 다 채우고 제대해야 할 병사들조차 도로 붙잡아 놓는(!!) 무시무시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북한에서는 이런 명백한 불합리에조차 항의할 수 없다.

남자의 병역 의무를 13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이미 실패한 전례가 있어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방향이 됐다고 한다. 현재는 이미 2020년대이므로 이 정책이 진짜 시행되었다면 상당수 여군이 입대하여 이미 복무 중일 것이다. 여담으로 북한은 보통 만 17세에 입대하므로, 2022년 기준 신병들은 주로 04 ~ 05년생일 것이다.

아시아프레스의 조사에서는 2020년 기준으로 군 복무가 남자는 11년, 여자는 7년이라고 한다.북한군의 병역 의무
2021년 2월에는 남자 8년, 여자 5년으로 군 복무 기간을 대대적으로 감축했는데 [28] 먹여살릴 입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는 것과 더불어 인력이 크게 부족한 북한 내 3D업종인 탄광, 건설노무대, 기타 열악한 직종에 더 빨리 배치시키기 위함이다. 원래도 북한군은 전역자들을 이런 데 자주 집단배치시켰으나 전반적인 저출산과 인구 감소로 인하여 시기를 앞당긴 것. 군인들이 좋아할 것 같지만 여군들을 제외하면[29] 오히려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는데, 그 이유는 군 복무 10년차 이상이 되어야 로동당 추천을 받을 자격이 주어지는 등 군복무에 따른 혜택을 본격적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3년 만에 빨리 전역시키는 것도 아니고 어중간하게 8년 전역으로 별다른 혜택도 없이 3D업종에서 일하라고 강요하면 반발이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 당연히 배치된 곳에서 될대로 되라고 막나가는 전역자들이 많은데 사회안전원들도 답이 없다 보니 대놓고 체제를 거스르는 행위를 하거나 김정은을 욕하는 수준까지만 아니라면 사실상 내버려둔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무리한 징병이 오히려 북한 스스로의 숨통을 조이는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남자를 8년 이상이나 군대에 가둬 두는 탓에, 가뜩이나 국력도 바닥인데 그나마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일손들을 전부 군대로 내던져 버리니 악순환이 가속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그렇게 발악하며 긁어모은 군인들조차 신체기준을 왕창 낮춰 억지로 군에 들여놓은 사람들이다 보니 인적 자원의 질이 형편없다.

더구나 기존의 북한군조차 원활한 보급을 받지 못해 극심한 식량난과 영양실조를 겪고 있는 판에, 유지비가 훨씬 많이 드는 여군이 제대로 된 보급을 받을 수 있을지는 굉장히 의문이다. 다만 북한 여군들은 신체조건 탓에 보통 비전투 병과에 배치하는 편이라곤 한다. 사실 남군들도 체력이 바닥인데 여군들을 전투병과에 배치하는 건 그 북한군 수뇌부도 불가능하단 것을 알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남자들만 끌고 갔던 이전과는 달리, 이제는 아예 여자들까지 징병하겠다고 게거품을 무니 말 그대로 청년층 전부가 군대에 끌려가서 시간을 허비함으로써 국가 경제력은 이제 완전히 바닥을 뚫고 들어가게 생겼다. 남성만 징병하는 일반적인 징병제조차도 모병제 국가에 비해 남성의 사회진출이 늦어져 사회의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하는 판에, 청년층의 나머지 절반인 여성마저 전면 징병한다면 생산성이 어디까지 떨어질지는 불보듯 뻔하다.[30] 이 떨어지는 생산성을 그나마 상쇄하기 위해서는 아직 젊을 때 빨리 사회에 복귀해 일을 할 수 있도록 복무기간이 짧아야 하는데[31], 북한은 여자조차도 기본 5년, 심하게는 그 이상 ~ 무기한으로 징병해 굴린다는 점에서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7. 대외 참전 / 지원 경력[편집]



7.1. 직접적인 참전[편집]


조선인민군 첫 참전 전쟁으로 북베트남을 소극적으로 지원했다. 당시 북한의 슬로건은 '월남(베트남)에서 미군이 100명 죽으면 남조선에 있는 미군이 100명 죽는 것이나 같으므로 베트콩을 도와주어야 한다'였다. 1967년에는 전투기 조종사[32], 1972년에는 공작원을 베트남에 파견해 게릴라 활동을 지원하였다. 기타 수송병, 화학병, 공병 등의 형태로 소규모 참전하였다. 북베트남은 훗날 조선인민군이 요구한 서방진영 군수품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전쟁이 끝난 후 베트남은 중국과 사이가 벌어졌는데, 이때 친중국 정책을 취하던 북한과도 사이가 벌어졌다.
다만 F-5A-37 등의 공군 항공기와 M48 전차, M16 소총 등 각종 육군 무기가 북베트남군에 노획되었고, 이 중 일부는 공산국가로 흘러들어간 점 등을 봤을 때[33] 소량이라도 노획품을 제공했을 것이다. 폴란드의 경우 북베트남에게 인계받은 F-5와 A-37을 국영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으며, 96년에 귀순한 조선인민군 출신 전투기 조종사는 F-5를 조종한 선임을 맞이했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
전투기 조종사 지원 말고도 심리전 요원 등이 활동한 것으로도 추정되고 있다.

1973년 10월에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34] 당시 이집트에 미사일 요원 30명과 전투기 조종사 및 정비사 50명을 파견했다. 이때 파견된 사람 중 하나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미국을 방문한 조명록 차수(당시 대좌). 이때 북한 조종사와 군사고문단들은 큰 활약을 했다고 한다. 당시 공군 사령관이었던 호스니 무바라크는 대통령이 된 후 은혜를 갚기 위해 "김일성이 사망할 때까지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겠다"고 했고 이를 끝까지 지켜 김일성이 죽고 난 다음해인 95년 수교 협정에 서명한다.

다수의 특수부대원과 군사고문단, 기갑 승무원들이 파병되어 있다. 일부는 전투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바샤르 알 아사드의 군대 편을 들고 있다.

비동맹회의에 가입한 아프리카제3세계의 여러 국가에 80년대부터 군사고문단을 파견했다. 리비아에도 북한의 군사고문단이 파견되었다. 프란스 알버트 레네 대통령 치하의 세이셸에 전투기 조종사를 파견했다. 동남아시아 브루나이캄보디아에서 저격여단 요원들이 경호 업무를 수행했다. 파나마그레나다에서도 북한 군사고문관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미확인.

7.2. 무기 수출[편집]


북한은 1960년대부터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 등 전 세계적으로 무기를 수출(내지 밀매)하고 있다. 1980년대의 전성기 때는 연간 5억 달러 가량을 벌었으나, 2000년대부터 국제 사회의 감시가 심해지자 연간 1억 달러 정도로 수입이 줄어들었다. 뉴욕 타임스는 "북한의 무기는 저렴하면서도 위력적이기에 경제가 어려운 제3세계 국가들에게 딱 맞다"고 평하였다. 러시아제도 싸지 않냐는 말이 있지만 이런 것은 러시아군 감축의 부산물인 폐기병기를 밀수한 것이 대부분이다. 제대로 규격에 맞춰 생산한 소련/러시아제 무기들은 절대 생각만큼 저렴하지 않다. 러시아도 한때 미국과 대립할 정도의 국가였으니 만큼 제대로 만들면 절대 허접하지 않다. 소련 시절에 혁명수출 차원에서 싸게 넘겨준 사례가 많았을 뿐...

북한이 수출하고 있는 무기들은 딱히 첨단 기술이 크게 필요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적어도 가난한 제3세계 국가들에게 판매할 정도의 성능은 되는 듯하다. 애초에 제3세계 국가들 대부분은 무기의 질까지 따질 정도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는 않은 경우가 많다. 북한제 무기가 아무리 최하급이라 해도, 어쨌든 근본은 제대로 검증된 소련제 설계도를 이용해 공장에서 만들어진 공산품이니 급조 총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성능이 좋을 것이고, 또한 그런 공산품치고 전 세계에서 최고로 싼 가격을 자랑하니 제3세계 입장에서는 매우 좋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에서는, 디디에 라치라카 대통령 치하의 마다가스카르에 고사기관총 등의 무기들을 대여하거나 수출했다. 2007년 1월 비로봉호를 통해 3,400여t의 무기를 콩고민주공화국에 수출했다. 2009년콩고를 향하던 화물선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임검당해 T-55 전차 부품 등을 압류당했다.

중동에서는,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스커드 미사일, 곡산형 자주포[35]이란에 수출했다. 곡산형 자주포 중 일부는 이라크군에 노획되어 이라크 전쟁에 사용되었으며, 최소 2문 이상이 밀수를 통해 한국군에게 넘어갔다. 1987년 4월 이란에 차호급 경비정(80t대) 3척을 수출하였다. 1990년 11월경 타막골호를 통해 시리아에 스커드 C 미사일 80여 기를 수출했다. 레바논팔레스타인에 M-1985 240mm 다연장로켓을 수출하였으며, 이는 이스라엘군과의 전쟁에 사용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아프가니스탄군이 북한제 140mm 다연장로켓 BM-14를 사용했다. 2009년 미얀마에 M-1991 240mm 다연장로켓을 최소 14문 이상 수출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런 '알려진' 수출 행위 외에도 비밀리에 '수출'을 행하는 경우도 빈번히 있다. 2009년 무기를 수출하려다가 태국군에 의해 압수되었다. 목적지는 이란, 스리랑카, 우크라이나 등으로 추측되고 있다. RPG-7, 맨패즈, M-1985 240mm 다연장로켓, 대포동 2호의 부품 등이 발견되었다.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 당시 벌어진 리비아 내전 도중 리비아 정부군이 퇴각하면서 놓고 간 북한산 무기가 잔뜩 발견되었다. 불도저 부품이라는 식으로 위장 포장을 해서 들여온 건데 포장지에 당당하게 북한의 국명이 영문으로 적혀있는 데다가(...) 완제품 무기에도 한글이 적혀있어서(...) 의심의 여지도 없게 되었다.

또한 북한이 헤즈볼라, 하마스를 대상으로 무기 장사를 한다는 게 확인됐다. 기사.

미국의 대북제재가 심화된 근래 상황에서 무기 수출로가 막히자 소말리아 해적에게 연어급 잠수정을 팔아먹으려던 정황도 포착되었다. 판매는 못했지만 가능성이 확인된 셈. 연어급 잠수정은 나름 천안함을 격침시킨 놈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잠복이다.

7.3. 군사 훈련[편집]


디디에 라치라카 대통령 치하의 마다가스카르에서 대통령경호여단을 훈련시켰다.

1983년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 치하의 짐바브웨에 교관 130명을 파견해 대통령경호여단[36]을 훈련시켰다. 이 여단이 무가베의 반대 정파에 대한 대규모의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전과 때문에, 2010년에는 일부 짐바브웨 국민들은 북한을 증오하고 있다. 무가베는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2위)와 김정일(3위)보다 더한 세계 최고의 독재자로 선정된 인물로, 짐바브웨의 인플레이션을 세계 1위로 만들었다. 짐바브웨는 끝내주는 친북 국가로, 관공서에는 주체사상 전집이 놓여 있다든가 무가베의 사진과 김일성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다든가라는 흠좀무한 국가다. 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부통령을 위원장에 임명하여 추모위원회를 만들었고, 심지어 매년 김일성이 사망한 달을 애도 기간으로 지정해놓고 행사를 연다고 한다.

IRA, 하마스헤즈볼라, 소말리아 군벌 등의 무장단체를 훈련시켰다.

2007년 5월 콩고민주공화국의 정부군을 훈련시켰다.

현재에도 캄보디아의 왕궁 경호원들을 훈련시키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7.4. 기술 이전[편집]


1994년~1998년경 이란은 북한의 '로동 1호' 개발비 전액과 부품을 제공했다. 그 대가로 기술 이전을 통해 이란의 탄도미사일 'Shahab-3', 파키스탄의 탄도미사일 'Gauri'가 만들어졌다. 다른 제3세계 국가들에게도 미사일 기술을 전파하고 있다.

7.5. 외국과의 조약/관계[편집]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은 전쟁 상태에 놓일 때 중국이 자동개입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중국으로서도 미국과의 전면적 대립은 피하고 싶은 상황인 만큼 북한이 핵이나 생화학 무기등을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에 사용할 시에는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 계속되는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도발로 인해 북중관계가 나날이 악화되어 중국 내부에서도 "북한을 포기하라" "군사개입 조항을 삭제하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조약에 의거하여 중국 인민해방군의 교육기관에서 북한군 장교들이 교육 이수를 받는 등 인적교류를 하고 있으며 공공연한 비밀로서 중국의 비공식적인 군사원조 혹은 지원을 받고있다.

특히, 2조 조항의 의미를 많이 상실을 했는데, 제2조는 “체약 일방이 어떠한 한 개의 국가 또는 몇 개 국가들의 연합으로부터 무력 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인줘(尹卓)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소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한·미·일 동맹과 달리 북·중 동맹은 군사 동맹이 아니라는 뜻을 밝히는 등 이 조항은 이미 중국 정부 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인줘 소장은 당시 “중국이 북한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느냐. 중국이 북한 인민군을 지휘하느냐”고 반문했다.

1조에서 ‘조약 당사국 쌍방은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각국 인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글대로 계속되는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으로 인해 접경지역 주민들이 짜증이 가득하며, 조약에 위배되는 사항이다.

기타로 모잠비크, 리비아[37], 쿠바, 몽골 등과 협력 조약을 체결했다.

그 외에도 미얀마 군사정부와 모종의 관계를 설립했다. 두 국가 모두 서방권과는 왕따된 형편.

러시아는 과거, 소련시절에 조소우호협력및상호원조조약을 맺었지만 보리스 옐친이 김일성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38] 대한민국과의 외교 관계 개선으로 소련-북한간 조약을 무효화 시켰다.

7.6. 북한의 핵개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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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망명한 황장엽은 회견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이미 북한 내부에서 핵무기 보유는 상식화되어 있고 지난 85년 소련 측이 핵개발을 문제 삼자 김일성 부자가 이를 무시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혀, 북한의 핵 개발계획이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자신은 핵관련 시설을 직접 본 적은 없으나 92년 국제 원자력 기구의 특별 사찰을 피하기 위해 핵 확산 방지조약에서 탈퇴하는 것을 보면서 조선로동당의 비서들은 모두 핵 보유를 믿게 됐다"고 밝혀, "북한의 핵 개발계획이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고 이미 북한이 핵무기까지 보유했다는 것(1997년 당시)으로 북한에서는 모두들 이렇게 알고(믿고) 있다"고 폭로하여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KBS, MBC, 조선일보, 또한 당시 김정일은 "북한이 없는 지구는 존재할 필요가 없으며 북한이 망하면 세계와 함께 자폭하겠다는" 극언을 내뱉었다고 황장엽은 증언했다. 또한 당시 북한 당국에서는 "지금까지의 전쟁에서는 미국에 포탄하나 떨어진 적 없지만 앞으로 북한과의 전쟁에서는 다르다"라며 "미국에도 북한군이 상륙할 수 있다"라고 주민들에게 선동하고 있다며 증언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경향신문

1985년 당시 소련 측이 북한의 핵개발을 문제삼은 이 내용은 지난 1994년 러시아 관계자들에게도 나온 이야기였다. 1994년 러시아 국가안보 연구소 블라디미르 쿠마초프 고문에 의하면 "북한은 그들 미사일의 사정거리를 늘리기 위해 독자적으로 완성한 발사 차량을 가지고 있으며 전체주의 체제하에서 특정한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북한이 그러한 핵실험을 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소련도 85년부터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음을 알았고 그로 인해서 북한에 있던 핵전문가들을 본국으로 송환했다"고 밝혔다.(조선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1994년 7월 27일, 북한에는 이미 핵무기를 5개나 보유하고 있으며 핵무기를 5개나 더 개발한 뒤 이를 국제사회에 발표하고 미국에 알릴 예정이라고 북한 정무원 교원 강명도씨와 김일성대학 상급교원 조명철 씨가 귀순기자회견에서 밝혀 큰 충격을 안겼다. 그들은 북한은 핵탄두개발과 함께 핵탄두를 탑재할 로켓개발에 열중하고 양산체제로 들어갈 것이며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난을 타개할 방법은 핵무기의 완성뿐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핵무기 5개로는 북한에 충분하지 않으며 공개될 경우 국제적 압력으로 더 이상의 핵개발이 불가능해질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KBS, MBC, 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이러한 강씨의 회견에서 국내 언론들은 믿을 수 없었으나, 북한이 5개나 보유한 것이 가능한가라는 반응을 보였고 미국과 일본도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조선일보, 경향신문1, KBS, MBC, 경향신문2)

당시 회견에 대해 월리엄 페리 미국 국방장관은 "북한이 핵무기를 1개~2개 즈음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발표하고 미국 PBS와의 인터뷰에서도 이같이 밝혔다.(MBC, 조선일보, 동아일보)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북한 핵 개발에 대해서 미국 정부는 아주 단호하고도 강경한 입장을 취하겠다고 경고하면서 결코 묵인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어 북한은 핵무기를 손에 쥐면 이를 써버릴 위험이 높은 정권이기 때문에 북한의 핵 개발은 엄청난 악몽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 대통령은 머지않아 이란과 이라크가 핵 개발에 성공해 미국에 대항할 것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북한의 핵 개발이 최악의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이 핵개발의 가능성만 보이더라도 곧 일본이 재무장을 하게 돼 이 지역의 안정이 크게 위험해 지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KBS, MBC)

빌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사용하려 할 경우 북한의 최후가 될 것"이라며 강력 경고했다.(KBS, MBC)

8. 군복[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군복/조선인민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군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군장/조선인민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계급[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조선인민군/계급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편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조선인민군/편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1. 륙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조선인민군 육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2. 해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조선인민군 해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3. 항공및반항공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4. 전략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조선인민군 전략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5. 특수작전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6. 여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조선인민군/여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7. 준군사조직[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조선인민군 준군사조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8. 예술단[편집]


  • 조선인민군협주단
  •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
  • 조선인민군군악단[39]

군가 목록에 대해서는 군가/북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 남한 주도의 평화 통일이 이루어진다면?[편집]


자세한 내용은 남북통일/군사 문제 참고.

반국가단체인 조선로동당과 그의 수장 김정은을 보위하는 군사집단이기에 당연히 해체를 면치 못할 것이다. 치안 유지를 위해 소화기와 대검 등 개인장구는 모두 몰수 폐기처분되거나 해외 총기시장이나 전시장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며 북한군을 구성하던 인력은 국군으로 편입할 인력, 전역시킬 인력으로 분류되어 정리될 것이다.

흡수 통일을 가정하고 통일독일의 예를 들면 동독군의 영관급 이상 장교는 예외없이 제대조치 하였고, 위관급의 경우 계속 복무를 원하는 경우에 심사를 거쳐 등용하였으며 부사관이하 병사의 경우 역시 자원자만 군에 남기고 모두 전역시켰다. 위관급 역시 대부분 10년이내에 퇴출 되었으며 반인륜범죄를 확인된 경우 처벌을 면치 못했다. 예를들어 동독국경경비대는 서독으로 월경하는 도주자를 사살하는 업무에 대해 동독의 법령과 상관의 명령임을 들어 변호했지만 통일 후 독일법정에서는 부당한 명령은 거부할 의무가 있다[40]고 판정하고 처벌했다.[41]

영양실조로 인해 기준 미달의 신체를 지닌 북한군인데다가 5년 ~ 8년간 장기 병사복무를 하기 때문에 짧게는 1년 6개월에서 길게는 2년 이상 복무자는 제대 후 귀향조치 될 것이고 지원자에 한하여 사관급이하 장병들에게 복무가 선별적으로 허용될 것이며 조선로동당에 입당해야 임관하는 군관 계급은 거의 예외없이 강제제대 당하고 정치장교는 특히 100% 제대 후 보안관찰법에 따른 감시대상 확정이다.

북한 특수전병력은 애초에 특수부대의 특성상 장비와 훈련이 중요하기에 아무짝에 쓸모없는 약장수 차력쇼, 똥군기식 훈련을 받은 북한군 특수부대 병력은 그다지 활용가치가 높지 않다. 그냥 전역시킬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방 정찰대나 대남 침투 임무를 수행하는 공작부대, 호위사령부 소속 특수부대 등은 실제로 전투력과 장비를 모두 갖춘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은 통일한국에 대한 충성을 확실하게 서약한다는 전제하에 어떤 형태로건 복무할 가능성이 높다.[42]

비법 월경을 단속한다는 미명으로 민간인을 향해 뇌물을 뜯고 국경연선에서 가차없이 발포 총살했던 국가보위부 소속 국경경비대나 조선사회안전군, 죄없는 인민을 탄압한 북한 정치범수용소 경비부대나 보위지도원, 악질 안전원 등 정권을 위해 인권탄압에 앞장선 인원들은 반인륜범죄자로 분류되어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이나 보스니아 전쟁처럼 국군 군검찰, 대한민국의 사법체계와 국제형사재판소에 의해 처벌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완전한 평화 흡수통일이라면 일정부분 이들의 저항을 막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타협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북한 기준으로 봐도 처벌해도 할 말 없을 정도의 악질들을 제외하고는 적당히 덮을 가능성도 있다.

조선인민군 전략군 산하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는 대량살상무기라면 아연실색하는 미국IAEA의 감시 아래에 전량 폐기될 것이다. 다만 탑재 수단인 탄도미사일은 이미 한국도 미사일 사거리 제한이 없어진 지 오래이고, 또한 북한의 로켓 기술은 생각보다 많이 발전한 편이기 때문에 그냥 가져갈 가능성도 있다. 같은 이유로 전략군 내 과학기술자들은 재채용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재래식 전력도 매우 낙후된 전력들이고 이에 따라 국군의 군사력 증강에 하등 도움도 안될 것이 명확하기에 마찬가지로 폐기되고 일부 상태가 좋은 장비만이 박물관 소장 및 적성물자 연구용으로 남아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군 소유 기업소 및 사업소 등 국방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조직들은 대거 정리되어 법인이 해산되거나 자산과 함께 남측 대기업 또는 현지의 우량 향토기업에 불하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특혜 논란으로 진통을 빚을것으로 보인다. 예술단 역시 군복을 벗고 민간인으로 돌아갈 것이나 대부분 하던 게 있기 때문에 오디션을 통해 통일 한국의 연예계에 재진출하지 못하더라도 여캠으로 인터넷 방송을 하는 등 비슷한 일을 계속 할 것으로 보인다.

13. 관련 문서[편집]



14. 출처 목록[편집]


  • 단행본
    • 이정연, 2007,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 플래닛미디어.[43]
    • 강명도, 1995, 『평양은 망명을 꿈꾼다』, 중앙M&B.[44]
    • 2012 국방백서

  • 논문
    • 함택영, 1997, 「남북한의 군사력 - 사실과 평가방법」, 국제정치논총.
    • 최성빈 외, 2005. <북한 군수 산업 개황 보러가기

15. 대중매체에서의 북한군 [편집]


의외로 세계 미디어물에서 자주 나온다. 대부분 악의 축으로 등장하며,[45] 각 국가의 높으신 분들의 사정으로 인해 중국군이 북한군으로 대체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46] 현대를 배경으로 등장해 전투를 벌일 경우 엄청난 강군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47] 앞에서 말했듯이 사실 미국이나 서방세계의 가장 큰 적국은 러시아와 중국인데, 러시아는 독재국가지만 민주주의나 자유가 제한적으로나마 있고, 그래도 서양답게 좀 널널한 구석이 있어 자기들이 악으로 묘사되어도 관대하고 그걸 또 수입하기도 하며, 독일과 일본도 2차대전을 다룬 미디어를 잘 수입하나, 중국은 조금이라도 거슬리게 자신들이 묘사되면 수입 금지를 때린다.[48] 그래서 다 만들어놓고 스킨이나 설정, 이름만 바로 북한으로 바꾸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국내에서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여성향 드라마, 영화 등지에서 잘생긴 미남 조선인민군과 남한 여성이 이어지는 이야기가 클리셰화되었다. 기존에는 남남북녀라는 이미지 성향이 강했다. 이런 멜로 이야기까진 아니더라도, 사실 소련 등 구 공산권 국가 출신의 등장인물이 등장할 때는 선/악역을 막론하고 말쑥하고 유능한 미남/미녀로 묘사한 사례는 흔하다. 007 시리즈가 그 예.[49]

^표시는 타국에서 북한으로 설정변경된 작품이다.


15.1. 영화 및 드라마[편집]


한국전쟁 시기의 북한군을 묘사하는 영상물에서는 전통적으로 케피 형태의 전투모를 쓰고 PPSh-41, 통칭 따발총으로 무장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바로 한국인들이 북한군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그러나 실제로 북한군이 철모 없이 전투모만 쓰고 다니고 거의 전 병력이 PPSh-41만으로 무장한 것은 아닌데, 이런 이미지가 생긴 것에는 사정이 있다.

첫째는 독재정권 시기 만들어지던 흑백 반공 영화에서의 피아식별 문제. 흑백영화에서는 군복의 색으로 소속을 구별하기 어렵다. 북한군을 소련제 СШ-40 철모를 쓰고 모신나강 소총을 든 모습으로 묘사할 경우에는 미국제 M1 철모를 쓰고 M1 개런드 소총을 든 국군과 구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때문에 국군과 딱 봐도 다르게 생긴 전투모를 쓰고 PPSh-41로 무장한 모습으로 북한군을 묘사하게 되었고, 이런 반공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것이 북한군의 이미지로 고착화되어 컬러 영상물에까지 이어지게 된 것.

둘째는 실제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기억하는 북한군의 이미지가 전투모와 따발총이었다는 것. 전쟁 초기 북한군 사진을 보면 소련제 СШ-40 철모 혹은 일본제 90식 철모를 착용했으나, 전쟁 기간의 대부분이었던 1951년 이후의 사진들을 보면 철모를 쓴 북한군이 거의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주력군이 박살나면서 보유 중이던 철모 대부분을 손실했고, 이후 주력이었던 중국 인민지원군조차 철모를 못 쓰는 마당에 북한군의 철모는 보급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렸을 것으로 보인다. 즉 전쟁 후반의 북한군 묘사가 전투모를 쓴 모습이라면 고증에 맞지만 전쟁 초반부터 전원이 전투모만 쓰고다니는 것은 틀린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제작비 문제로, 국내에 넘치는 M1 철모와 달리 북한군 엑스트라들에게 구하기 어려운 СШ-40 철모를 씌워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로는 이러한 클리셰도 어느정도 깨지고 있어 제대로 철모를 쓰고 따발총 외의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는 북한군들이 등장하고 있다.



15.2. 만화 및 애니메이션[편집]



15.3. 게임[편집]


  • 홈프론트^
  • 홈프론트: 더 레볼루션
  • 크라이시스^
  • 콜 오브 듀티: 어드밴스드 워페어
  • 워게임: 레드 드래곤
  • 로그 워리어
  • DMZ North Korea
  • 모던 컴뱃 3: 몰락한 제국 - 명목상으로는 러시아 군벌과 파키스탄 테러리스트와 함께 연맹군을 맺고 미국을 침공한 건데 사실상 북한군의 비율이 압도적이라 사실상 북한이다.
  • 워 썬더 - 조선인민군이 직접 등장하는건 아니지만 중국이 북한에 판매한 선양 F5가 등장한다.[50]

1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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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 헌법, 제 103조[2] 국무위원회 산하. 구 인민무력성,현 국방성의 수장. 얼핏 보면 한국 국방부에 대응되는 포지션 같지만, 군령권과 군정권을 모두 지닌 국방부와 동등한 수준의 권한과 위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세한 것은 해당문서 참고. 군 관련 대외업무, 행정통제, 후방사업(보급 등) 다만, 군사건설, 교육-훈련, 후방사업과 외화벌이는 조선인민국 총참모부는 물론 총정치국 보위국에서도 따로 수행하고 있다. 때문에 일반행정통제권만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3]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중앙위 산하 조직지도부, 군정지도부 및 중앙군사위원회의 통제. 인민군 내 당조직 및 정치사업 관장, 인사권 담당[4] 다만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탈북자 출신의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는 북한군의 실제 병력은 많이 쳐주어야 70만 정도라고 주장한다.# 정확히는 북한 정부의 인구 부풀리기에 대해 폭로하면서 함께 언급했다. # 특히 학자들의 추정치도 주성하의 주장과 비슷하다. 게다가 2021년 2월 들어 북한은 군 의무 복무 기간을 감축했다. 남성 10년에서 8년으로, 여성 7년에서 5년으로 줄였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도 군대의 규모가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MBC 뉴스(5분 17초부터 확인 가능): # 아시아프레스는 김정은 정권이 70만 북한군 병력 중 14만명을 제대시켜서 북한군 규모가 56만명으로 줄어들었다는 취지로 보도하였다. #[5] 어마어마한 규모 같지만 이 역시 사실상 과장된 수치로 실제 전시에 전투 가능한 전력은 60~70만 정도 밖에 안 된다.[6] 북한군 창건 이전인 1946년경에 제정되어 태극기가 폐지되고 인공기로 국기가 변경된 시기인 1948년 7월까지 사용된 군사휘장으로, 당시 인민군의 휘장, 인민군모의 모표, 만경대혁명학원의 전신인 혁명자 유가족학원의 모표로 사용되었으나, 태극무늬가 비과학적이라는 소련의 판단으로 태극기와 함께 폐지되었다.[7] 당 규약 49조에서 "전군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 당중앙의 유일적 령군체계를 철저히 세우라"라고 되어 있어 북한 실제 당의 군대보다는 수령을 지키는 개인 병사에 가깝다.[8] 이상우 『북한 40년: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특성과 변천』, 을유문화사, 1990, p337[9] 한자로 풀이하면 北韓 傀儡軍[10] 공교롭게도 이들과 대치 중인 국군 또한 5군단이다. [11] 각각 창건 직전인 1947년 12월부터 1948년, 1948년부터 1981년 1월 7일까지 사용된 깃발이다. 인공기 도안을 바탕으로 하여 별 대신 북조선인민위원회(당시는 북한 건국 이전) 및 북한의 국장이 그려진 형태이며, 당시에는 근위대를 제외하면 육군, 해군, 공군 3군 공통으로 해당 도안의 군기를 사용하였다.[12] 반대로 우파 계열 의병 집단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산하로 들어가 광복군이 되어 오늘날의 국군의 기원이 된다.[13] 주의해야 하는 것이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연이어서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으로 군 조직을 축소시켰다. 이에 50년 당시 주한미군은 규모가 상당히 축소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한국에 지형도 모르는 불상사까지 겹치면서 낙동강까지 밀렸다. 이후 다시 재건된 부대들이 투입되면서 제대로 된 전쟁을 하나 싶었지만 중공군의 공격에 또 다시 굴욕적인 상황을 맞이하였다.[14] 화북에 있던 조선의용군 출신과 만주에 숨어서 저항하던 소수의 독립군들은 소련군에게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들어왔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은 이들로만 구성되지는 않았다.[15] 다만 북한군이 정말로 소련제 무기만 100퍼센트 사용한건 절대 아니다. 중국으로부터 지원받은 중국제 무기도 많이 사용하였으며, 심지어 일본군이 두고간 무기를 접수해서 쓰기도 했다. 통념과는 달리 북한도 남한처럼 일본의 잔재를 청산하는것은 실패하여 친일파 중에서도 잽싸게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지원을 꼬박꼬박 제공한 친일파들은 잘먹고 잘살았고, 북한이 열심히 때려잡았다는 친일파들은 촌동네 지주 같은 만만한 중소 친일파들을 골라서 보여주기식으로 때려잡은 쑈에 지나지 않았다. 단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서 그런 쑈조차 못한 남한인들 입장에서는 그거라도 대단하게 보였을뿐.[16] 정확히는 1944년에 업그레이드 된 T-34/85[17] 1949년 1월 인민군 제2 군관학교로 개편되었다.[18] 1948년 12월 제1 군관학교로 개편되었다.[19] 6.25때처럼 대승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군사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20] 북한군의 장비를 살펴보면 김일성 사후 김정일 시대에는 핵폭탄과 미사일을 제외한 재래식 무기의 개발과 배치가 김일성 시대나 이후 김정은 시대와 비교해 봐도 현저히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2-94년이 북한군이 재래식 군사력의 기둥뿌리나마 유지하고 있던 마지막 시기이기 때문. 김정은 시대에 들어 재래식 병종에도 신무기가 배치되고 있지만 90년대에 이미 남쪽으로 기울어버린 재래식 군사력의 균형을 뒤집을 가능성은 요원하다.[21] 교도대 60만여 명, 노농적위군 570만여 명, 붉은청년근위대 100만여 명, 기타 호위사령부, 사회안전성 및 기타 준군사조직 32만여 명.[22] 물론 그 이전에도 김원봉이 이끌던 조선의용대를 뿌리로 하는 조선의용군이 존재했지만 이건 다른 군대다. 이들이 광복 후 북한에 돌아와서 연안파를 형성한다. 조선의용군의 주요 인물들이 바로 김두봉김무정이다.[23]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겸직[24] 최고사령관 직책과 더불어 조선로동당 내 군부 통제기관인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직도 겸한다. 2020년 10월 10일 열병식 때 직함을 총사령관[23]으로 사용하기도 했다.[25] 의무가 아니라는 것뿐 군대를 다녀와야지만 공산당에 입당 자격이 생기고, 출세를 하든 시집을 잘 가든 뭘 좀 하려면 당원 자격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원입대하는 여자들이 꾸준히 존재하긴 했다.[26] 지금은 5년으로 줄긴 했다.[27] 흔히 세계사의 군국주의 국가라고 하면 떠오르는 고대 스파르타나치 독일, 일본 제국도 여성까지 징집하지는 않았다.[28] 동아일보의 주성하 기자도 유튜브로 보도했다.#[29] 전역 후 집단배치는 남자들만 해당된다. 여성들도 공산국가에서는 일자리를 강제배정해주지만 남자들처럼 철저하게 집단으로 돌아가는 수준은 아니고 어느 정도는 봐주는 편인데 북한도 여군 전역자들은 그냥 집으로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30] 한국도 모병제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는 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31] 같은 남녀징병제인 이스라엘은 복무 기간이 남자는 32개월, 여자는 18~24개월 가량이고 이나마도 전체 징병 가능 인구의 50% 수준만 징집하기에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이 조건이 널널하다.[32] 비행 연대 2개[33] M16 소총은 입수 루트가 워낙 다양하긴 하지만 북한도 상당량을 가지고 있다. 국군으로 위장해 침투했다가 703 연대와 조우했을 때 위장한 부대가 갖고 있지 않은 M16으로 무장했던 탓에 공비라는 것이 들통나 실패했던 적도 있을 정도...[34] 욤 키푸르 전쟁[35] M-1978, M-1989[36] 폭풍여단 또는 짐바브웨 제5여단.[37] 폐기하고 이란이나 터키랑 체결했을 수도 있다.[38] 옐친은 개인적으로 북한을 굉장히 싫어했으며 남한에 호의적이었다. 이상할 것도 없는 게, 옐친은 젊은 시절부터 북한이 어떤 뻘짓을 해댔고, 그 적인 남한은 어떻게 성장해 나갔는지 다 지켜본 인물이다. 북한이 하는 꼬라지를 수십년간 지켜보다 못해 정나미가 떨어진 셈.[39] 그 외에 해군과 공군의 사령부 직속인 해군사령부협주단과 공군사령부협주단이 있으며, 준군사조직 중에서도 인민보안부와 조선인민내무군 직속의 협주단과 취주악단이 활동하고 있다. 기타 군단, 사단급 부대에도 약간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예술소조-한국의 동아리 개념-활동을 겸하는 공연 단체를 두고 있으며, 각 단위의 경비소대/중대에는 소규모 군악대가 조직되어 의장대 역할도 겸하고 있다.[40] 서독과 그 후신인 현행 독일연방공화국은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대한 저항을 대폭 보장하고 있다. 나치 독일 시절 상부의 부당한 명령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가 어떠한 참극이 벌어졌는지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41] 다만 엄벌보다는 범죄로 규정하는 것 자체에 의의를 뒀다. 대부분 집유를 선고받았고 징역형을 받은 자들은 주로 명령권자들이거나 누가 봐도 상급자의 명시적인 지시 없이 자발적으로 도주자를 사살한 자들이었는데 이들도 얼마 안 가서 다 풀려났다. 물론 원래부터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고 대부분 1980년대 말 복무중이라 빼도박도 못하는 일부만 처벌대상이 되면서 이들이 억울함을 호소했고, 또 명령에 따른 군인들을 처벌하는 것에 대한 구 동독 주민들의 불만이 상당했기 때문이다.[42] 사실 이런 사람들은 일반 군인들과 달리 사회와의 관계가 이미 끊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군대 말고 갈 곳도 없으므로 무작정 전역시키면 오히려 사회문제가 되기 십상이다. 믿을 수 없어도 대놓고 적대의지를 보이거나 배신할 가능성이 확실한게 아니면 적당히 괜찮은 자리를 주는 게 이득이다.[43] 문제는 '폭풍호' 떡밥 등을 볼 때 이 책에 대한 신빙성이 0에 가깝다. 일단 저자부터가 사기 치고 중국으로 도망친 양반. 따라서 포병, 기갑 부분의 상당 부분은 제외했으며, 북한군 내에서 상식적일 것 같은 부분만 게재했다.[44] 김정일 유모이던 강보비의 조카. 김일성의 외사촌 친척이며 강성산 정무원 총리의 사위이기도 했다. 장성택 실각설 이후에 교수 직함으로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비롯한 종편에 자주 출연하고 있다.[45] 사실 당장 미국의 대통령들이 공화/민주 안 가리고 북한을 악으로 묘사한 바가 적지 않다. 트럼프를 제외하면 미국의 최근 대통령들은 북한을 항상 비판하고 경계했었기 때문. 그 트럼프마저도 2018년에 북한이 갑자기 화해무드로 돌아서기 이전인 집권 초기에는 다른 대통령과 비슷했다.[46] 중국을 악당으로 묘사하면 중국 시장 수출길에 아예 닫혀버리거나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홈프론트처럼 무리수를 둬서라도 바꾸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47] 현실의 열악한 북한군을 그대로 반영해 등장시키면 쉽게 털릴 것이 뻔하기에 긴장감을 위해 일부러 1류 군대도 쩔쩔매는 강군으로 묘사하는 것. 크라이시스에선 미국이나 개발할 만한 첨단 강화복을 만드는 사기국가로 묘사된다..[48] 사실 이는 한국 전쟁을 다룬 미디어가 세계적으로 잘 나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엔 잊혀진 전쟁으로 취급했다가 현재는 존재감이 커졌지만, 한국 전쟁은 시작은 남한VS북한이었지만 점차 미국+UN VS 중국+소련으로 옮겨가며, 현대 중국이 서방국가랑 대놓고 싸운 전쟁인데다, 중국은 현재 UN 상임이사국 소속인데 한국 전쟁은 당시 중국이 UN을 어기고 침략국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역사왜곡 및 미화에 걸림돌이 된다.[49] 007의 경우 대부분 적국 첩보요원과 상대했다는 점도 이유의 하나. 그 가운데에서도 고골 장군이나 로자 클렙 같은 고위급들의 경우는 나이도 많고 전혀 잘 생기지 않았다[50] 원본이 중국제이여서 중국 트리에 배치되어있지만 운용국가가 북한으로 표시되기에 조선인민군 항공군 소속 기체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