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오좡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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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중국 산둥성 남부의 지급시. 한국 한자음으로는 '조장'이다. 지닝과 린이시에서 각각 동남쪽과 서쪽으로 80km, 쉬저우에서 북쪽으로 50km 떨어진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관할 인구 370만명 중 도시 자체에는 160만명이 거주한다. 이는 기존 도심인 쉐청구와 점차 연담도시화가 되고 있는 동쪽의 쉬쭝, 이청구의 인구를 합한 것이다. 북쪽과 동쪽 구릉지대의 탄광 덕에 산둥 지방의 주요 석탄 생산지로 번영하였으나 자원이 고갈되고, 지속된 채굴로 지반이 침하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시인민정부는 쉐청구에 있으나, 향후 쉬쭝구로 이전될 예정이다. 석탄 관련 산업 외에도 전력, 금속, 면직, 도예 공업 등이 발달하였다. 한국의 양평군과 자매결연 도시이다. 중국의 지급시치고는 면적이 5천km2도 안 되어서 상당히 좁은 편이다.
2. 역사[편집]
시가지 북쪽 외곽에 해당하는 텅저우는 춘추전국시대의 국가 중 하나인 등나라의 수도 등주 (滕州)[1] 였다. 제자백가 중 하나인 묵자와 사군자의 일원인 맹상군이 바로 등주 출신이다. 춘추전국기 등나라, 노나라, 초나라를 거쳐 한나라 때에는 오초칠국의 난의 원인이 된 동해군에 린이시와 함께 소속되었다. 동해군은 다시 서주에 귀속되었고, 5세기에는 남조와 북조의 쟁탈전이 이어졌다. 당나라 대에 들어 일대는 기주에 편성되었고, 더 구체적으로는 현 이청구의 유래가 된 이현에 속하였다. 그 서부의 마을에는 웨이샨 호수를 따라 대추나무가 많았기에 조장촌이라 불리게 되었고, 현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중세 들어 지닝과 이어지는 대운하가 웨이샨 호수와 루오얀 호수 사이에 개설되며 점차 인구가 늘었고, 타이얼좡 일대가 발전하였다.
명대 초엽 조장촌 주변 언덕에서 석탄이 발견되었고, 청대 말엽 이현 조장 석탄 채굴 회사가 세워졌다. 중일전쟁 당시 중화민국의 첫번째 주요 승전인 타이얼좡 전투가 벌어졌고, 1940년부터는 중국 공산당의 빨치산 부대가 철도를 중심으로 일본군과 전투하였다. 이를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 있다. 전쟁 도중 시가지와 채굴 시설이 크게 파괴되었지만 복구되어 1954년부터 생산량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석탄 산업과 함께 채굴 회사의 본사가 위치한 짜오좡이 알려지게 되었고, 1950년 신설된 텅현시에 편성되었다. 1958년에 이현의 치소가 이전되며 짜오좡은 현급시가 되었고, 1961년 지급시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기존의 중심이던 텅저우 역시 1979년 짜오좡에 편성되었다. 그럼에도 산둥성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지급시이다.
3. 교통[편집]
쉐청구의 짜오좡역에는 징후고속철도 지난-쉬저우 방면 열차가 지난다. 그 외 재래선 노선인 징후철도(京沪铁路)와 짜오린 철도(枣临铁路)는 짜오좡시역(枣庄西站)을 지나며 짜오린 철도는 짜오좡둥역(枣庄东站)도 지난다.
관할 현급시인 탕저우시에는 텅저우둥역이 위치한다.
항공편의 경우, 주변 도시인 지난시의 지난 야오창 국제공항과 거리가 가깝고 쉬저우 관인 국제공항(徐州观音国际机场)과도 거리가 적당해서 이 둘을 이용하며, 짜오좡 자체의 공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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