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뮬러 1/1955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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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5년 그랑프리[편집]
1955년 포뮬러 원 시즌은 6번째 FIA 포뮬러 원 시즌이다. 이 시즌은 1월 16일 아르헨티나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9월 11일 이탈리아 그랑프리 까지 총 7경기로 치러졌다. 이 시즌은 던롭, 콘티넨탈 AG, 파이어스톤, 피렐리, 잉글버트가 타이어를 공급하였다. 후안 마누엘 판지오가 드라이버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였다. 스털링 모스가 2위, 에우게니오 카스텔로티가 3위를 차지했다.
메르세데스가 사실상 압도한 시즌으로 그 소속이었던 판지오와 모스가 1/2위를 차지했다. 아스카리가 시즌 도중 사망했다. 하지만 이 시즌에 가장 중요한 사건은 르망 24시 중에 일어난 르망 참사[1] 로 그로 인해 수많은 경기가 취소되고 만다. 메르세데스가 그 사건의 장본인 르벡의 소속팀이었으므로 그들은 이 시즌을 끝으로 F1을 나가 이후 제대로 돌아오기까지는 50년이 넘게 걸렸다. 소위 '팩토리' 팀이었던(페라리처럼 F1 팀으로 출발한 게 아니라, 자동차 회사가 F1에 참전하는 형태의 팀) 란시아와 메르세데스(그리고 이전에 나간 알파 로메오)가 모두 빠져나가며 이런 팀들은 이후 오래도록 F1의 주연에서 벗어난다.
2. 시즌 전 이적시장 & 소식[편집]
지난 시즌 마세라티 소속으로 좋은 인상을 보인 스털링 모스가 시즌 종료 후 메르세데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페라리 팀은 지난 시즌 부상으로부터 회복한 주세페 파리나가 복귀하며 긍정적인 전망을 보였고, 프랑스 출신의 모리스 트린티냥이 풀타임으로 이번 시즌을 소화할 예정이다. 마이크 호손은 반면에 5-7라운드만 출전한다.
마세라티 팀에도 변화가 있었다. 프랑스 출신의 장 베라가 지난 시즌 고디니 팀에서 보여준 좋은 모습을 바탕으로 완전 영입된 것이다. 아울러, 스털링 모스와 함께 좋은 모습을 보인 로베르토 미에레스 역시 이번 시즌 풀 타임을 소화하게 되며, 루이지 무소도 메인 풀타임 드라이버로 이번 시즌 함께 한다.
란치아는 지난시즌 최종전과 같이 알베르토 아스카리와 루이지 빌로레시가 풀타임을 소화할 예정이며, 고디니 팀은 여러 드라이버가 부분 출전을 할 예정이다.
3. 1955시즌 라인업[편집]
4. 포인트 규정 변화[편집]
지난 시즌과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지만, 이번 시즌의 경우 드라이버 스왑이 이루어진 경우에 설령 지나치게 한 쪽이 적게 달렸더라도, 두 드라이버 모두 균등하게 나누어 포인트가 부여된다.
5. 1955년 캘린더[편집]
6. 시즌 상세[편집]
6.1. 1R: 1955 아르헨티나 그랑프리 (아르헨티나 GP)[편집]
6.1.1. 퀄리파잉[편집]
호세 프로일란 곤잘레스가 홈 그랑프리를 맞이하여 폴 포지션을 차지하였다.
6.1.2. 레이스[편집]
후안 마누엘 판지오가 1955시즌 개막전 우승을 차지하였다. 2위와 3위는 페라리 팀의 여러명의 드라이버가 내구 레이스처럼 서로 드라이버 스왑을 이어나가며 완주하는 형태를 가졌는데, 그 이유는 당일 아르헨티나의 날씨가 지나치게 더웠기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더운 날씨는 차체에 그대로 열기가 전달되었고, 트랙을 달리는 모든 드라이버들은 더위에 지쳐 서로 드라이버 스왑을 이루며 달려야만 했다. 이 때문에 트랙의 많은 드라이버가 서로 드라이버 스왑을 이루며 완주하는 풍경을 연출하였다.
우승을 차지한 판지오 역시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달리는 중간에 열기로 인해 콕핏의 온도가 지나치게 높아졌고, 레이스 중에 화상을 입어가면서도 꿋꿋이 96랩을 완주하여 우승하였다. 하지만 이 결과로 인해 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어 그는 3개월 간 치료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으며, 이날 화상으로 인해 생긴 흉터는 그의 생애동안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6.2. 2R: 1955 모나코 그랑프리 (모나코 GP)[편집]
연습주행 도중, 메르세데스의 한스 헤르만이 사고로 부상을 입어 안드레 시몬과 교체되는 일이 있었다.
6.2.1. 퀄리파잉[편집]
메르세데스의 지배적인 퍼포먼스와 함께 판지오와 모스가 프런트 로우를 차지하였다. 아스카리가 고군분투하며 판지오와 비슷한 기록을 낸 것 외에는 큰 적수가 없었다.
6.2.2. 레이스[편집]
최강자들의 리타이어, 트린티냥에게 데뷔 첫 우승을 안겨주다
레이스는 메르세데스의 판지오-모스 듀오의 쾌조의 스타트와 함께 시작되었다. 두 메르세데스 듀오는 일찌감치 랩당 0.5초씩 벌려가며 리드하였고, 그 뒤를 란치아의 아스카리와 카스텔로티가 맹추격하였다. 그런데 레이스 중반부에 접어들자, 큰 이변이 발생하였다. 선두였던 판지오가 트랜스미션 문제로 리타이어하였고, 리더 자리는 스털링 모스에게 돌아갔다. 그렇게 모스가 F1 데뷔 첫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이 다가오는 듯 싶었지만, 완주까지 20여랩을 앞둔 80랩 째에, 엔진이 퍼지며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이제 새로운 레이스 리더는 알베르토 아스카리였다. 아스카리는 터널을 지나 시케인[2] 을 지나려다 실수하며 벽을 들이받고 바다에 빠지는 사고로 리타이어하였다. 다행히 그는 수영하여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승을 차지한 드라이버는 페라리의 모리스 트린티냥이었다. F1 출범 이후 6번째 시즌만에 차지한 첫 그랑프리 우승이며 프랑스인의 첫 F1 우승자가 되었다.
한편 이 경기에서도 여러 기록이 나왔다. 이번 GP에서 첫 데뷔전을 치룬 마세라티의 체사레 페르디사가 3위로 들어와 데뷔 경기 포디움을 달성하였고, 에우제니오 카스텔로티 역시 2위로 들어오며 데뷔 첫 포디움을 달성하였다. 한편, 이 경기는 알베르토 아스카리의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6.3. 3R: 1955 인디애나폴리스 500 (인디 500)[편집]
연습 주행 도중에 사망 사고가 발생하였다. 커티스 크래프트 차량을 몰고 출전한 매니 아율로가 1번 코너를 돌던 도중 스티어링 휠이 부러지는 일이 발생하였고, 그대로 벽에 충돌하며 큰 충격이 그에게 가해졌다. 결국 그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6.3.1. 퀄리파잉[편집]
6.3.2. 레이스[편집]
제 39회 인디 500의 우승자는 밥 스웨이커트가 차지하였다.
하지만, 인디 500 2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는 실력자 빌 부코비치가 레이스 도중의 사고로 사망하면서 이 경기는 빌 부코비치의 사망사고로 많이 기억되고 있다. 그는 레이스를 리드하던 중, 2번 코너에서 사고가 난 차들과의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그의 차량이 트랙을 이탈하여 차가 여러번 굴렀다. 설상가상 차에 화재까지 발생하고 말았고, 이 사고로 인해 그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6.4. 4R: 1955 벨기에 그랑프리 (벨기에 GP)[편집]
레이스가 열리기 약 1주일 전인 5월 26일, 2회 챔피언인 알베르토 아스카리가 몬차 서킷에서 진행한 페라리 신차 테스트 도중의 사고로 사망하는 비보가 전해졌다.
6.4.1. 퀄리파잉[편집]
란치아 소속으로 유일하게 출전한 카스텔로티가 판지오를 0.5초 차로 누르고 F1 데뷔 첫 폴 포지션을 차지하였다.
6.4.2. 레이스[편집]
메르세데스 듀오가 일찌감치 라이벌 팀들과의 격차를 벌려가며 독주를 하였고, 그대로 1-2위로 들어오며 오랜만에 원투 피니쉬를 기록하였다. 폴 포지션을 차지했던 카스텔로티는 16랩 째에 기어박스 문제로 리타이어하였고, 마세라티의 장 베라는 충돌로, 반월 소속으로 출전한 마이크 호손은 오일 누수 문제로 리타이어하였다. 3위는 주세페 파리나가 차지하며 포디움을 구성하였다.
6.5. 5R: 1955 네덜란드 그랑프리 (네덜란드 GP)[편집]
페라리에 여러모로 큰 소식들이 전해졌다. 주세페 파리나가 시즌 도중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그는 레이스 커리어를 이어가며 잔부상을 지닌 채 경기를 해왔고, 통증이 심해져 은퇴를 결정한 것이라고 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48세였기에 납득이 갈 수 있다. 또한, 부가적으로는 동료 드라이버였던 알베르토 아스카리의 죽음이 그의 은퇴에 대한 결정을 확고케 하였다고 한다.
그의 이탈로 페라리 팀은 란치아에서 활약했던 에우제니오 카스텔로티를 대타로 영입한다. 추가로, 반월에서 뛰었던 마이크 호손을 오랜만에 다시 복귀시키게 되었다.
6.5.1. 퀄리파잉[편집]
메르세데스 트리오가 프런트 로우를 독점하는 최상의 결과를 내었다.
6.5.2. 레이스[편집]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의 트랙은 먼지와 돌들이 가득한 최악의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모든 드라이버들은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이며 아랑곳하지 않고 좋은 경기를 보여주었다. 판지오가 연승가도를 이어갔고, 스털링 모스가 레이스 마지막에 판지오를 몰아붙였으나 0.3초 차이로 아쉬운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6.6. 6R: 1955 영국 그랑프리 (영국 GP)[편집]
이번 시즌 영국 GP는 기존까지 열린 실버스톤 서킷이 아닌 리버풀 주에 있는 에인트리 모터 레이싱 서킷에서 진행된다. 아울러, 이번 영국 GP에 호주 출신의 잭 브라밤이 데뷔한다.
6.6.1. 퀄리파잉[편집]
메르세데스 4대가 톱5를 거의 휩쓸며 퀄리파잉을 마쳤다. 홈그랑프리를 맞이한 스털링 모스가 팀메이트인 판지오를 누르고 F1 데뷔 첫 승을 이룰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6.6.2. 레이스[편집]
조국에서 맞이한 데뷔 첫 승
스털링 모스가 F1 데뷔 후 4년만에 첫 우승을 달성하였다. 레이스 초반부터 메르세데스 4대가 치고 나가며 독주 체제를 형성하였고, 그 중에서도 관중들이 주목한 경쟁은 모스와 판지오의 우승 경쟁이었다. 레이스 초반은 판지오와 1위 자리를 주고받으며 치열한 경쟁을 이어갔고, 중반부터는 모스가 1위를 잘 유지하며 판지오를 잘 묶어두며 레이스를 이어갔다. 좁은 간격을 유지하며 90랩을 돌파하고, 모스는 단 0.2초 차이로 판지오보다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며 1955 영국 GP의 우승자가 되었다.
일각에서는 판지오가 모스의 홈에서 첫 우승을 위해 봐준 느낌이 있다고 제기하였고, 모스 역시 일부 동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판지오는 "그날은 모스가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이 경기가 끝난 이후에 예정되었던 독일, 스위스, 스페인 그랑프리가 1955년 르망 24시 참사 사건으로 인해 줄줄이 취소되며 F1은 이탈리아 GP만을 남겨두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챔피언십 포인트 격차를 넉넉하게 형성한 후안 마누엘 판지오가 1955시즌 월드 챔피언을 확정지으며 본인의 F1 통산 3번째 타이틀을 얻게 됨으로써 최다 챔피언에 오르게 되었다.
6.7. 7R: 1955 이탈리아 그랑프리 (이탈리아 GP)[편집]
기존에 예정대로면 7R는 독일 GP가 예정되어있었고, 이탈리아 GP는 10R 최종전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앞서 서술한 1955년 르망 24시 참사 사건으로 인해 F1 그랑프리들을 비롯한 여러 레이스들이 대거 취소되었고, 사고를 일으킨 팀인 메르세데스는 이 그랑프리 레이스를 마지막으로 F1을 비롯한 여러 모터스포츠에서 수십년간 발자취를 감추었다.
한편, 최종전 이탈리아 GP가 열리는 몬차 서킷에 레이아웃 변경이 있었다. 기존에 달린 코스에서 서킷 안쪽의 오벌 코스를 추가한 긴 레이아웃이 사용된다. 또한, 주세페 파리나가 갑작스레 복귀하여 놀라움을 주었다. 그는 스쿠데리아 페라리 소속으로 출전하지만, 페라리 섀시와 엔진이 아닌 란치아의 엔진과 섀시로 출전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조차 연습 세션 도중에 일어난 타이어 문제로 인해 스핀하여 크게 충돌하였고, 차량은 반파되어 스타트하지 못하고 그는 1955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6.7.1. 퀄리파잉[편집]
갑작스럽게 맞이한 최종전인 이탈리아 GP의 폴 포지션은 후안 마누엘 판지오가 차지하였다.
6.7.2. 레이스[편집]
이번 경기에서 메르세데스 드라이버들은 각기 다른 섀시를 사용하였다. 판지오와 모스는 바퀴가 덮인 메르세데스 W196 섀시로, 클링과 타루피는 오픈 휠 섀시로 출전하였다. 판지오가 거의 모든 랩을 리드하며 손쉽게 폴투윈을 달성하였고, 오픈휠로 출전한 타루피가 홈 그랑프리에서 2위, 그리고 페라리의 카스텔로티는 3위를 차지하며 1955시즌을 마무리하였다. 스털링 모스는 패스티스트 랩을 세우며 판지오를 맹추격하였으나, 27랩 째에 엔진 문제로 리타이어하며 아쉬움을 삼켜야만 했다.
한편, 판지오와 메르세데스의 이번 GP 우승은 메르세데스가 이번 경기를 끝으로 F1에서 철수함에 따라 여러 기록이 만들어졌다. 이 경기로 메르세데스 엔진을 사용하는 팀이 그랑프리에서 우승하는 것은 1997 호주 GP에서 데이빗 쿨싸드가 우승하기까지 42년간 깨지지 않았으며, 메르세데스 팀이 F1에서 우승하는 것은 2012 중국 GP에서 니코 로즈버그가 우승하기까지 57년간 없었다. 추가적으로, 메르세데스 팀의 1-2 피니쉬는 2014 말레이시아 GP에서 루이스 해밀턴과 니코 로즈버그가 우승하기까지 59년간 깨지지 않았다.
7. 챔피언십 포인트 순위[편집]
8. 총평[편집]
메르세데스의 연속된 챔피언십 독주 시즌이었다. 판지오는 7경기 중 4경기를 우승하며[5]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고, 영국 GP에서 첫 우승을 기록한 스털링 모스의 화려한 빅팀 데뷔가 엿보인 시즌이었다.
하지만 여러 참사와 비극이 터진 시즌이기도 하였다. 1952, 1953시즌을 점령한 2회 챔피언 알베르토 아스카리가 페라리 차량 테스트 도중 사망하였고, 논-챔피언십(Non-Championship) 그랑프리 레이스인 파우 그랑프리에서는 마리오 알보르게티(Mario Alborghetti)가, 인디 500에서는 2연속 우승자인 빌 부코비치가 사망하며 어수선해져만 갔다. 설상가상, F1은 아니지만 르망 24시에서는 레전드 드라이버인 피에르 레베(Pierre Levegh)와 수많은 관중들이 사망한 1955년 르망 24시 참사 사건 역시 이번 시즌에 모두 터지고 말았다.
이 영향으로 사고를 일으킨 팀인 메르세데스는 F1에서 2010시즌 전까지 컨스트럭터 팀으로 나타나지 않았고, 그들의 그랑프리 우승 역시 2012년 중국 그랑프리에서 니코 로즈버그가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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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르세데스-벤츠 소속의 피에르 르벡이 몰던 차량이 추돌 후 관중석을 덮쳐 폭발, 르벡과 관중 84명이 숨지고 120여명이 중상을 입는 대형 참사였다.[F] A B C D E F G 패스티스트 랩 달성으로 인한 1포인트 부여[H]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시트 공유로 포인트 나누어 부여.[2] 당시 시케인은 현재 모나코 서킷의 시케인과는 달리 잘못 돌아나갈 시 벽에 충돌하여 중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3] 세션 도중 차량 반파로 레이스 참가 철회[4] 1955 인디 500 레이스를 리드하던 중, 2번 코너에서 사고가 난 차들과의 연쇄 추돌 과정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트랙을 이탈하여 차가 여러번 굴렀고, 설상가상 차에 화재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그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5] 인디 500을 제외하면 승률이 무려 66.7%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