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폰 마린도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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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폰 마린도르프
Franz von Mariendorf · フランツ・フォン・マリーンドル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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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프란츠 폰 마린도르프.은하영웅전설 DNT.jpg
OVA
DNT

인물 정보
신체 정보
남성, ???cm, ?형
생몰년
SE ? ~[1]
가족 관계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딸), 하인리히 폰 큄멜(조카),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사위)
알렉산더 지크프리트 폰 로엔그람(외손자)
국적 및 소속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은하제국 로엔그람 왕조
최종 직책
은하제국 국무상서
최종 작위
백작
미디어 믹스 정보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 OVA 나카무라 타다시[2]
파일:일본 국기.svg DNT 타나카 마사히코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OVA 이봉준
파일:미국 국기.svg DNT 제리 주얼
배우
파일:일본 국기.svg 다카라즈카 연극 아마카제 이부키, 루미 쥰, 호시즈키 리오
파일:일본 국기.svg DNT 연극 다이리
1. 소개
2. 작중 행적 행적
3. 성격
4. 명대사
5. 둘러보기



1. 소개[편집]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로 백작 작위를 가진, 은하제국의 명문귀족이다.

잘 키운 딸 덕분에 립슈타트 전역에서 완전히 몰락한 다른 문벌귀족들과 달리 가문을 보전할 수 있었고,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일파 귀족들을 대표하는 입장이 됐다. 그리고 훌륭한 인품으로 인망도 높아 로엔그람 왕조 초대 국무상서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딸 힐데가르트가 황제 라인하르트와 결혼하면서 황실의 외척이 되었다.

사별한 아내에 대한 언급은 작중에서 거의 없으나, 하인리히 폰 큄멜 남작의 사례를 보면 큄멜 가의 여성으로 추측된다. 또한 마린도르프 백작 본인이 친척이 큄멜 남작뿐이라 언급한 것을 보면 다른 형제나 조카는 없는 듯하다.


2. 작중 행적 행적[편집]



2.1. 카스트로프 동란[편집]


카스트로프 동란에서 처음으로 언급된다. 막시밀리안 폰 카스트로프아버지의 부정축재에 대해 조사하고 부당이득을 환수하겠다고 나선 제국정부의 관리들을 모욕했고, 이 때문에 제국정부에서 엄중한 책임을 물으려 하고 있었다.

원작과 OVA에서는 카스트로프 공작가의 친족들이 이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판단해 중재를 시도했고, 이 때 인격자로 불리는 마린도르프 백작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이미 눈이 뒤집힌 막시밀리안은 백작의 말을 듣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감금해버렸고, 정부군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면서 자만심에 찌든 막시밀리안은 배은망덕하게도 마린도르프 백작령까지 병합하려 들었다.[3] 다행히 백작령 경비대가 최선을 다해 버티는 사이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가 지휘하는 정부군이 반란을 진압하면서 백작령도 구원받았고, 백작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후지사키 류의 코믹스에서는 카스트로프의 공격을 방어하다가 마린도르프 가문을 제거하려던 플레겔의 음모, 자신이 중재할테니 말로 설득하라는 거짓말에 속아 막시밀리안에게 갔다가 붙잡혀 가혹하게 다루어졌다. 그러나 마린도르프의 사병들은 여전히 저항을 지속하였고 이후에 토벌을 맡은 키르히아이스와 아버지를 구하려던 힐데가르트에 의해 난이 진압되고 그 역시 구출된다.

DNT에서는 카스트로프 공작가의 친족이라는 언급은 없다. 다만 재무성 관리들 중에서 대표로 막시밀리안 폰 카스트로프 앞으로 구속된 채로 끌려나온 것으로 봐서는 그가 재무성에서 중책을 맡고 있던 엘리트 관료임을 추정해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자식 잘 만나서 잘 살게 된 인물이 아닌 개인적으로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관료였음을 보여주기 위한 복선으로 판단된다(#). 이후 구출되었다는 말은 없지만 정황상 키르히아이스에 의해서 구출된 것 같다.


2.2. 립슈타트 전역[편집]


이후 프리드리히 4세가 사망하고 제위계승권을 놓고 암투가 벌어지는 시점에 다시 등장한다. 백작은 가급적이면 이 전쟁에 끼어들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쪽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만약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친다면 제국귀족으로서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지지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딘에서 돌아온 딸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골덴바움 왕조의 수명은 다했으며 문벌귀족 연합이 라인하르트에게 질 네 가지 이유를 열거하여 마린도르프 백작을 설득했다. 그리고 충성의 증거로 영지와 함께 인질을 제공해서라도 라인하르트에게 붙어야 한다고 했는데 프란츠는 영지는 몰라도 인질, 특히 힐다가 인질이 되는 건 절대 안 된다고 말렸다. 하지만 힐다의 설득 끝에 결국 힐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마린도르프 가문을 위해 희생할 필요가 없으며 가문을 도구로 삼아 살아갈 길을 열라고 작별인사를 했다.[4]

그렇게 마린도르프 백작가는 라인하르트를 지지한 1호 귀족이 됐고,[5] 그 대가로 가문의 재산과 신변 보장을 약속받았다. 이 시기 공식적으로 대외활동은 힐다가 하고 있었지만, 백작 자신도 주변 귀족들을 설득하는 일에 어느 정도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내전이 발발하고 미처 탈출하지 못한 반대파 귀족들이 대거 체포되는 과정에서, 그나마 머리가 좀 돌아가는 귀족들은 잽싸게 마린도르프 백작가에 연줄을 대어 보호를 요청하거나 제발 라인하르트와 연결해 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립슈타트 전역문벌귀족 일파의 패배로 끝났고, 많은 귀족들이 재산을 몰수당하고 그동안 누려 온 특권까지 박탈당했다. 반면 마린도르프 백작가를 중심으로 한 라인하르트파 귀족들은 재산과 모든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2.3. 로엔그람 왕조 국무상서[편집]


한동안 등장이 없다가 로엔그람 왕조가 건국되자 초대 국무상서에 임명되어, 국가의례를 관장하고 각료들의 관계를 조정하며 행사와 제도를 과부족 없이 운영하고 관료들이 능력을 발휘할 환경을 마련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따라서 굳이 비범한 인물이 맡을 필요가 없고 지나치게 자기주장을 펴지 않는 사람이 적합했는데 별다른 정치적 야심이 없고 공명정대하며 성실한 인격자로 정평이 난 마린도르프 백작은 국무상서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국무상서가 된 마린도르프 백작은 가장 먼저 라인하르트의 즉위식을 주관하고, 라인하르트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혼인하여 후계자를 얻으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이걸 들은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은 2시간 뒤로 예정된 정례내각회의 직전 "폐하께 혼인을 권한 이유는 무엇이냐", "황후 후보자는 국무상서의 딸이냐"고 매우 냉철한 눈빛으로 캐물었다. 거의 얼어붙었던 마린도르프는 힐다는 독립정신이 강해서 궁정에 조신하게 앉아 귀부인 노릇은 하지 못한다고 손사래쳤고, 오베르슈타인은 그제서야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귀가한 뒤 힐다가 군무상서의 발언은 자신과 마린도르프 백작이 황제를 홀려 국정을 독차지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라고 말했고, 아연실색한 마린도르프 백작은 힐다에게 황제가 온정을 베풀어주신다 해도 공사를 혼동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황제 즉위식 무렵 하인리히 폰 큄멜 남작이 마린도르프에게 황제가 자택에 행차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고, 마린도르프는 혼인 이야기를 꺼낸 뒤 라인하르트에게 큄멜의 뜻을 전했다. 라인하르트는 순순히 승낙하여 큄멜 저택에 방문했는데 큄멜 남작은 지구교와 손잡고 황제를 암살하려고 했다. 마린도르프 백작 자신은 행차에 따라가지 않았고 암살 시도가 불발되면서 딸 힐다도 무사했지만 이 사건으로 두 사람은 대역죄인의 친척이 되어 졸지에 실각 위기에 몰린다. 골덴바움 왕조의 관행에 따르면 두 사람 모두 사형 또는 유배를 면치 못했겠지만 라인하르트는 두 사람의 죄를 묻지 않고 출사할 것을 명했으며 이 사건의 책임을 마린도르프 부녀에게 묻는다면 황명을 어긴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이후 라인하르트가 페잔 천도령을 발표하면서 제국군 총본영을 페잔으로 옮기자 마린도르프 백작은 황제 대신 오딘을 통치했다. 그리고 자유행성동맹을 무너뜨린 뒤 총력을 기울여 양 웬리를 쓰러뜨리려는 라인하르트에게 굳이 전쟁을 벌일 것 없이 이제르론 회랑을 봉쇄하여 그들을 고립시킨다면 언젠가 항복할 것이니 수도로 돌아오라고 진언했다. 그리고 정식으로 페잔이 수도가 되자 페잔으로 왔으며 제국 본토에서 굶어죽어가는 문벌귀족들을 두고만 볼 수 없어 몰수당한 재산에 대해 미미하게나마 보상을 해 주었다. 그러나 경제관념이 없는 귀족들은 몇 안되는 보상금마저 금세 써버려 마린도르프 백작도 더 이상 도와줄 수 없었고 라인하르트는 굳이 마린도르프 백작의 호의를 막지 않았지만 굶어죽어가는 귀족들에게 "살고 싶으면 500년간 평민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일을 하라"고 차갑게 대꾸했다.


2.4. 황제의 장인이 되다[편집]


우주력 800년,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2차 암살미수사건이 발발하면서 라인하르트와 힐데가르트의 관계는 급속히 가까워졌다. 베스터란트 학살사건 희생자의 유족이 외친 통렬한 비판에 라인하르트는 멘탈이 붕괴되었고, 그렇게 힐데가르트와 하룻밤을 함께 보낸 것이다. 힐다는 일을 감추려고 했지만 마린도르프 백작은 단번에 딸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파악했다. 라인하르트는 뒤늦게 일을 깨닫고 골덴바움 왕조 황제들처럼 음탕한 사람이 될 수 없으니 꽃다발을 들고 힐다에게 청혼하려고 했다. 마린도르프 백작은 황제가 천재일지는 몰라도 남녀 사이의 문제에는 둔감한 '천재소년'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좋은 말로 라인하르트를 돌려보냈다.

이후 마린도르프 백작은 스웨덴 제국의 전쟁군주 칼 12세[6] 고사를 들어 라인하르트도 비슷한 부류라고 추측했으며,[7] 황제를 향한 힐다의 진심을 물었다. 하지만 힐다 역시 마음을 정하지 못했고, 마린도르프 백작은 자신이 국무상서에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출근했다.

백작의 예견대로 황제의 아이를 임신한 힐다는 황제의 청혼을 승낙하려고 했다. 딸의 임신 사실을 들은 마린도르프 백작은 황제의 외척이 재상급 지위에 있어서 좋은 결과를 보인 사례는 없다는 이유로 이듬해 초에 국무상서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그리고 후임으로 볼프강 미터마이어를 추천하려고 했는데 마린도르프 백작이 보기에 미터마이어는 군무상서보다 국무상서에 올라 각료들의 수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듬해 라인하르트와 힐다가 결혼하자 마린도르프 백작은 1월 3일 정식으로 사임 의사를 표시했지만 라인하르트는 후임자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국무상서 자리를 비워둘 수 없다는 이유로 마린도르프 백작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라인하르트가 죽을 때까지 국무상서직을 수행했고, 벨제데 임시 황궁 습격사건에서 황제인 사위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사위가 죽은 후 외손자 알렉이 새 황제가 되지만 아직 아기라서 섭정으로서 딸과 함께 행동할 듯.


3. 성격[편집]


작중에서 매우 양심적이고 상식적인데다 권력욕이나 물욕, 명예욕도 전혀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8] 막장 수준으로 타락한 당대의 문벌귀족들을 보면 오히려 이쪽이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며, 작중에 보여준 여러 모습을 보고 소시민적 인물이라 평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훌륭한 인품에 관한 일화는 자주 등장한다. 선천적으로 병약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조카 하인리히 폰 큄멜 남작을 후견인으로서 잘 돌봐주었고, 조카의 재산을 단 한 푼도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큄멜 남작을 대신해 관리까지 해 주었다. 한번은 본인 소유의 광산에서 사고가 발생하여 백작이 피해를 보았을 때도, 이와 상관없이 큄멜의 재산은 잘 보존하여 도리어 늘어났을 정도였다.[9] 그 외에도 앞서 언급된 것처럼, 립슈타트 전역에서 몰락한 귀족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이 헐값으로 재산을 처분할 때 이를 막고 적어도 제값으로 팔 수 있게끔 도왔으며, 전 재산을 날리고 굶주리는 문벌귀족은 적어도 끼니라도 때울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10] 또한 양심적인 영지 경영으로 영지 내 백성들에게도 존경받는 인물이었다.[11]

주변 사람들에 대한 포용력도 대단하다고 평할 수 있는데, 마린도르프 백작의 적이라 할 사람이 없다. 구체제 귀족이라면 일단 삐딱하게 바라보는 라인하르트 휘하 장군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정도였다.[12] 라인하르트 휘하 장군들에게 반감을 사 몰락한 하이드리히 랑의 사례를 봐도 견적이 나온다. 라인하르트도 이런 백작을 굉장히 신뢰했던 모양이다.[13] 큄멜 사건으로 백작과 힐다가 자진해서 근신하고 있었을 때, 라인하르트는 "지구교 놈들은 짐의 목숨만이 아니라 짐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두 사람까지 빼앗으려 한 것"이라며 연좌제를 절대 적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14]

심지어 냉혹하기 그지없는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조차 그의 인품을 인정했다. 라인하르트에게 결혼을 권한 일로 황비 후보자 중 하나는 마린도르프 백작 영애가 아니냐는 오베르슈타인의 말에 허허 웃으며 '힐다는 궁정에서 귀부인 노릇에 만족할 아이가 아니다'라 답하자, 오베르슈타인이 "국무상서는 양식이 있으시오"라 할 정도.[15] 그리고 큄멜 사건 이후 라인하르트가 마린도르프의 복귀를 명하자 아무 딴지도 걸지 않았다. 사람 따지기 참 깐깐한 오베르슈타인의 모습을 보면 마린도르프 부녀는 그의 위험인물 블랙리스트에 없었으며 유능한 인물 축에 속했던 모양이다.[16]

어쨌든 본의는 아니지만 딸 힐데가르트가 황후 후보 0순위라는 것 때문에 조심히 처신하고 있었다. 백작이 '라인하르트가 빨리 황비를 맞이해야 할 텐데'라고 말하며 걱정하는 걸 본 오베르슈타인이 무표정하게 "당신의 딸이 황비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던진 말에 흠칫 놀라며 '이 자가 내 딸이 황비가 되어 제국을 좌우하는 걸 견제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결국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당대의 귀족들과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매우 깨어있는 사람이다. 당대의 대다수 문벌귀족들은 딸을 정략결혼의 도구 정도로 여겼으나, 그는 힐다가 라인하르트 지지를 주장했을 때, "너는 마린도르프 가문의 계승자다. 너의 가문이니 네 뜻대로 해라. 가문을 위해 희생하겠다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마린도르프 가문을 도구 삼아 네 앞길을 열거라. 무슨 일이 있어도 난 후회하지 않겠다."라고까지 한 것을 보면 단순히 양심적이기만 한 평범한 사람이라고 평할 수는 없다. 딸 힐다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꼈으며, 또한 딸의 재능을 알고서 이를 최대한 살릴 수 있게 해 준 훌륭한 아버지다.

이런 면면을 살펴보면 단순히 잘 키운 딸 덕분에 출세했다고 평할 수는 없으나, 사위 라인하르트와 딸 힐다가 워낙 빛이 났던지라 다소 가려진 인물.[17]

여담으로 라인하르트가 힐다와 하룻밤을 보내고 난 다음날, 청혼하겠다며 커다란 꽃다발을 안고서 집에 찾아온 은하제국 황제를 문앞에서 내쫓는(...) 업적을 쌓았다. 그 곁에서 집사가 경악하고 있었다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었다면 숙청크리 실사 쫓아냈다기보다는 좀 부드럽게 달래고 설득해서 돌려보낸거지만.

다만 그의 성격과 깨는 모습도 보이는데 OVA에선 카스트로프 동란 당시 행성 라파트에 설치된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보고는 그 목걸이가 어디서 났는지 알아내자 막시밀리안이 그를 감금조치했는데 끌려가면서 "어리석은... 페잔의 꼬임에 속았구나!" 라며 보기 드물게 화를 내고 힐다의 설득 중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이 승리하면 마린도르프 가문이 앉을 자리가 있을까요."가 있었는데 상당히 당황하는 표정이었다.[18]

그리고 능력은 그다지 돋보이는 수준이 아닌 것 같다. 하이드리히 랑은 프란츠를 성실하기만 한 무능력자라고 깎아내렸으며, 몇몇 사람들도 성실하기만 한 사람이고 오직 딸 덕분에 출세했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힐다는 프란츠의 성실함은 깊은 지성과 통찰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4. 명대사[편집]


(라인하르트에게 가담할 것을 주장하는 딸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에게)"마린도르프 가를 위해서 네가 희생할 필요는 없단다. 오히려 마린도르프 가를 도구로 삼아, 네가 살아갈 길을 열 궁리를 하려무나."


5. 둘러보기[편집]



파일:lion02_s.png 로엔그람 왕조 파일:lion02_s.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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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베르슈타인의 풀베기 당시 50대 중반이었다고 하니 우주력 740년대생으로 보인다.[2] 1929년생의 원로 성우. 도쿄 배우 생활협동조합의 창립멤버다.[3] 아예 주변 성계들을 점령해 지방 왕국을 세워버리겠다고 선언했다. 참 꿈도 크다[4] 이 때 백작과 딸의 대화는 삼국지연의에서 가후장수를 설득하는 장면을 모티브로 한 듯 하다.[5] 립슈타트 귀족연합이 탄생하기 직전 마린도르프 가문을 대표해 힐데가르트가 라인하르트를 찾아가 충성을 맹세했다. 여담으로 이것이 어느정도 라인하르트에게 도움이 되었는데 라인하르트는 귀족들이 다 단합해도 자신의 군대에게 상대도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모두 단합하면 재력과 병력에서는 우세하다는 것은 동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린도르프 백작가를 비롯한 일부 귀족 가문들이 라인하르트를 지지하니 그 재력과 병력의 규모가 약화된 셈.[6] 작중에서는 '유성왕(流星王)'이라고 나오는데, 유성왕은 일본에서만 쓰이는 칼 12세의 별칭이다.[7] 칼 12세는 전쟁 천재였지만 육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8] 작중 문벌귀족 일원이면서 이 정도로 권력욕과 물욕이 없는 인물은 란즈베르크 백작 정도일 것이다. 다만 란즈베르크는 그 낭만주의적 성격 때문에 립슈타트 귀족연합에 가담했다.[9] 반대로 관리를 핑계로 친인척의 재산을 빼앗은 귀족들의 사례는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다고 언급된다.[10] 라인하르트는 비참한 처지에 놓인 귀족들에 대해 "5세기 가까이 대다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벌어먹어라. 짐에게는 귀족 하나가 죽고 백성 1만명이 살 수 있다면 그게 정의다. 저것들에게는 인정도 아깝다"고 냉소했으나, 백작이 개인적인 선의로 그들을 돕는 것을 굳이 막지는 않았다.[11] 카스트로프 동란 당시 카스트로프의 군대가 마린도르프의 영지로 쳐들어왔을 때, 마린도르프 백작이 카스트로프에게 구금당해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도 마린도르프 영지의 병사들은 열심히 싸워 자기 주군의 영지를 지켜냈다.[12] 힐다와 라인하르트가 결혼하게 되자 반대하는 이가 없었고, 라인하르트 휘하의 장성들 중 필두라 할 수 있는 볼프강 미터마이어는 자기 아내 에반젤린에게 "나한테 권한만 있다면 프로이라인 마린도르프를 황후 후보로 추천하겠다"고 언급했을 정도다.[13] 골덴바움 왕조와 문벌귀족에 대한 깊은 적대감을 생각하면 의외일 수 있지만, 라인하르트가 문벌귀족을 혐오한 이유는 그들의 부패하고 타락한 모습 때문이었다. 그저 귀족이라는 이유로 덮어놓고 싫어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신분만 귀족이지 타락과 무관한 마린도르프 백작을 싫어할 이유가 없다. 라인하르트 본인도 자기 편에 선 귀족들에게는 관용을 베풀었고, 능력만 있으면 상서같은 정부 요직도 줬다.[14] 당시 힐다는 황후가 아니었으므로, 백작과 힐다 모두 연좌제 적용 대상이었다.[15] 오베르슈타인이 처음 말을 꺼낸 것도, 마린도르프 백작이 황제의 외척 노릇을 하려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 때문이다. 마린도르프 백작에게 그런 마음이 보였다면, 오베르슈타인은 어떤 식으로든 숙청하려 들었을 것이다. 심지어 딸인 힐다와의 대화에서도 힐다가 "제가 황비가 되어 아버님이 국정을 농단할까봐 그런 것 같군요."라고 하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군무상서와 권력다툼을 할 생각은 없다. 혹시 네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지?"라고 되물었을 정도다.[16] 물론 본인은 권력에 관심이 없던지 힐다와 대화하면서 "폐하의 관용에 기대어 공사를 혼동해선 안 된다." 라는 말을 했다.[17] 전쟁 위주로 스토리가 돌아가기에 그의 비중이나 역할은 크지 않지만, 전쟁이 연례행사라고 봐도 될 정도의 상황 속에서 특출나지는 않으나 국무상서로서 역할을 잘 해내는 점에서 보면 라인하르트의 간손미라 봐도 될지도.[18] 다만 본인이 고위직에 별 관심이 없던걸 보면 이는 자리에 앉느냐 마느냐 보다는 아무래도 중립 귀족으로 남거나 브라운슈바이크를 편들어도 쩌리에 불과하면 빵셔틀밖에 더 할게 없을거라는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중립 귀족이라면 "우리가 목숨바쳐 금발 애송이놈이라 싸웠는데 너님은 뭐한거임?" 이라고 하면서 영지를 축소시키거나 아예 작위를 낮출 수도 있고, 설령 브라운슈바이크의 편을 든다 한들 그가 과연 은혜를 알고 갚을까 아니면 오히려 마린도르프 가문을 자기 셔틀로 부려먹으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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