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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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중국 동북부 랴오닝 성의 지급시이다. 인구는 2015년 기준으로 171만 9,000명. 성도인 선양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분지에 입지해 있으며, 랴오허의 지류인 베이샤 강이 시가지를 관통한다. 풍부한 철과 석탄을 기반으로 한 산업 도시인데, 중국의 여느 산업 도시가 그렇듯 대기오염이 심각하다. 다만 만족(만주족)자치현 두 곳은 청정 지역인데 만족 자치현은 산악지대인지라 개발을 하기 힘들기는 하다.
2. 역사[편집]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전국시대에는 연나라의 영토였으며 한나라 시기에는 현도군 소속이었다. 다만 이는 시가지 이야기고, 환런 지역은 중국이 지배하지 않고 고조선, 부여 등이 지배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고구려의 초기 수도였던 졸본성이 환런에 위치하였다. 이후 고구려의 영토확장으로 인해 번시 지역 전체를 고구려가 통치하다가 당나라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안동도호부 소속으로 들어갔으며, 발해가 건국된 이후 발해의 영토로 들어선다. 발해 멸망 이후에는 잠시동안 동란국이 통치하다가 요나라와 금나라가 잇따라 통치하였으며 청나라 시기까지 요나라부터 청나라 시기까지 요양부(辽阳府) 소속으로 존재하였다.
1906년, 번시 지역에는 펑톈부(奉天府) 산하 번시현(本溪县)과 환런현(桓仁县)이 설치되었고 중화민국 시기에도 펑톈성(奉天省) 산하로 지속되다가 만주국이 이 지역을 랴오닝성 산하 번시후시(本渓湖市)로 일괄 편입시킨다.
만주국 시대인 1942년에 번시의 한 탄광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1,500명이 넘는 광부들이 사망하는 참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일본인 간부들이 매몰된 광부들을 구조하지 않고 탄광을 폐쇄하여 피해가 컸던 겄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에는 1953년 직할시로 승격되었다가 이듬해 랴오닝성 산하로 들어선다.
3. 관광[편집]
지명이 환인인 것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환런만주족자치현(桓仁满族自治县)에는 고구려의 첫 수도인 졸본(오녀산성)이 위치하여 한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단군신화의 환인은 桓仁이 아닌 桓因이라서 한민족의 하늘신인 환인과는 관련이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하늘신 환인(桓因)의 별호가 환인(桓仁)이므로 한자 표기가 달라서 관련이 없다는 주장은 성립이 될 수 없다. 다만 환런(桓仁)은 중화민국 시대에 등장한 지명이다.
인하대 복기대 교수가 명사 이원명열전의 기록이나 고려사에 기록된 공요군의 진군 경로를 들어 고려 말의 철령위(鐵嶺衛)의 실제 위치를 기존의 통설인 원산 지역이 아니라 이곳이었다고 비정했다. 물론 한국 학계의 정설은 아니다.
번시는 선양시와 가까워서 공항은 없고 선양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4. 기타[편집]
고우영 화백이 이곳 출신이다. 한중 수교로 중국 여행이 가능해지면서 어린 시절 살던 동네를 직접 찾아가 봤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이었기 때문인지 과거의 모습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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