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노첸시오 7세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제204대 교황.
2. 생애[편집]
그는 1404년 콘클라베로 선출되었으나, 그의 선출 소식이 알려지자 기벨린파에서 콘클라베 결과에 대한 반발로 폭동을 일으켰으나[1] 나폴리 왕국의 라디슬라오 왕이 급히 로마로 군대를 파견해 폭동을 진압했다.
인노첸시오 7세는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 휘하의 콘도티에로[2] 였던 자신의 조카 루도비코 미글리오라티를 자신의 측근으로 앉혔는데, 이는 훗날 교황의 큰 실책이 된다. 1405년 루도비코는 교황과의 회담이 끝나고 자신의 밑에 있는 용병들을 이용해 기벨린파의 열렬한 지지자 11명을 자신의 집에서 살해한 뒤 시체들을 산토스피리토 병원 앞의 거리에 유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살인 사건은 로마에서 엄청난 논란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루도비코는 물론 미글리오라티 가문과 연관된 교황청 관계자들과 심지어 인노첸시오 7세마저도 잠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피신을 하는 와중에 약 30명 정도의 구엘프파 지지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인노첸시오 7세는 또다시 나폴리 왕국의 라디슬라오 왕에게 도움을 청했고, 라디슬라오 왕은 1406년 1월에 교황 관계자들을 추격하던 기벨린파들을 진압했다.
한편 인노첸시오 7세는 아비뇽 유수로 말미암아 발생된 서방교회 대분열을 끝내고자 프랑스 왕국의 왕과 유명 신학자들, 그리고 아비뇽의 대립교황 베네딕토 13세까지 초청해 서로 협의를 하는 의회를 계획했으나 1405년 루도비코의 만행으로 인해 연기할 수 밖에 없었다. 베네딕토 13세는 인노첸시오 7세의 목적에 동감해 자신과 인노첸시오 7세가 동시에 퇴위를 해 새로운 단일 교황을 선출하자고 제안했으나 인노첸시오 7세는 온갖 핑계를 둘러대며 이를 거절했다. 베네딕토 13세는 대분열의 걸림돌은 인노첸시오 7세의 의지박약이라고 비판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4 20:49:42에 나무위키 인노첸시오 7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