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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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인식
2.1. 서양
2.2. 동양
2.2.1. 대한민국
2.2.2. 중화권
2.2.3. 일본
2.2.4. 기타
3. 마장동 축산물시장[1]
4. 기타
5. 창작물
6.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cx.aos.ask.com/someone-start-butcher-shop_78aaf1ab3663be13.jpg
도축업자(, Butcher)는 축산물도축을 담당하는 업종으로, 동물을 고기로 바꿔 내는 첫 단계를 맡는 사람들이다. 관련한 국가 자격이 1995년부터 시행하는 식육처리기능사이며 엄연히 전문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직종이다. 10여년 전 정도 기준으로는, 여성들 중에서 이 자격이 있는 사람이 식품영양학과 교수 한 사람뿐이었을 정도로 굉장한 남초 직업이다.

이 자격이란 게 단순히 소나 돼지를 죽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몸통을 부위별로 세세하게 나눠야 하므로 해부학적 지식과 숙달된 기술과 근력 그리고 체력이 모두 필요하다. 물론 도축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자격이 있어야 하나 실제 도축 인원보다 발골, 정형에 종사하는 인원이 훨씬 많다. 그러므로, 이 문서에서는 도축에 직접 종사하는 인원과 발골/정형 관련 기술자 모두를 포함한다.


2. 인식[편집]



2.1. 서양[편집]


현대의 서양에서는 한국과는 인식이 정반대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다르다. 서양에서 도축업자들은 엄연한 스페셜리스트로 대우받는다. 도살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진득하고 고어한 이미지 탓에 대중문화에서 빌런으로 자주 등장하는 등, 살가운 인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천하다는 인상은 없다.[2] 사냥한 동물을 해체하거나 요리한 뒤 나누어 주는 일을 집단의 우두머리가 맡았던 전통이 있어, 오히려 도축업자는 생각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업이다. 이러한 전통의 영향으로 지금도 서양에서는 바비큐 파티 등을 할 때 고기를 굽고 나누어주는 역할은 연장자나 보스가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3]

오히려 PETA 같은 단체나 채식주의자들의 비판이나 등쌀에 장사하기 더 힘들다고 한다. 이베리아 반도의 전통적인 천민 계층이었던 카고는 도축업자를 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한국과 반대라고 보면 된다.

미국의 경우 바비큐스테이크가 일상이라 고기 자르고 소세지햄버거 패티까지 만드는 가게가 동네마다 하나씩 있을 뿐더러, 도심지 위주로 점점 도시 인근에서 생산된 유기농 식품 및 동물의 삶의 질을 따지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인근 농가들과 계약을 맺고 직접 에이징까지 하는 등, 고급화, 로컬화와 인식의 변화가 맞물려 이들의 사회적 위상이 상당히 높아진 편이다.

한국은 보통 사는 부위가 거기서 거기지만 미국은 반 마리씩 끌고와 정형한다. 손님이 어떤 부위를 추천받아서 사겠다고 하면 특정 부위를 그 자리에서 썰어주는 게 기본이라 칼솜씨와 해부학 지식뿐만 아니라 요리까지 박식해야 한다. 그래서 Butcher shop에 가면 온 김에 다 사라고 에이징 재료나 소스, 심지어 사이드로 먹을 채소와 기타 식재료까지 팔기도 한다. 손님이 미어터지지 않는다면 부위 예약도 친절하게 받아서 예약한 날에 맞춰 썰어준다! 미국도 KBBQ (한국식 고기 요리) 인기가 최근 부쩍 늘어서 코리안 컷 달라고 하면 알아서 해주는 집도 많다. 아니면 그냥 부위 집어서 두께 0.5인치 정도 썰어달라하면 해준다.

게다가 민간에까지 사냥 문화가 발달해 있기에 도축업자랑 접할 일이 많으므로 거부감도 딱히 없다. 일례로 유튜브 가서 Butchery까지만 쳐도 아래에 연관 검색어가 줄줄이 뜬다. 아예 요리 학원 수업에서 선생이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발골 정형해 버리는 영상이 HD 화질로 올라와 있다. 도살장 도축 과정은 대통령이 보여달라고 해도 안 보여준다고까지 하는 국내 문화랑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또한 서양에서는 도축 과정이 요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고기를 통째로 쓰는 일이 많은 바비큐의 경우, 고기를 원하는 모양과 크기로 다듬는 정형과 발골 기술은 필수적으로 해야 되는 작업이다. 즉, 절간 조리사거나 채식만 조리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축과 발골, 정형은 양식 요리사의 기본기라고 할 수 있다. 바비큐 쪽의 유명 조리사인 스티븐 라이클렌의 '바비큐 바이블'이란 베스트 셀러에서도 발골, 정형 기술 부분까지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아는 스타 요리사 솔트 배 또한 도축업자 출신으로 부와 명예를 동시에 쌓았다. 그러니까 이쪽 문화권에서 도축은 일은 험하지만 전문직으로 대우받으며 돈도 많이 꽤 벌 수 있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2.2. 동양[편집]



2.2.1. 대한민국[편집]


과거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도축업은 과거 백정이 하던 일이었지만, 현 세대의 업종의 차원에서 논하자면 업계 종사자들에게 크나큰 실례가 되는 말이다.[4] 젊은 세대에서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는 엄청나게 경직되어 있었고 차별에 대한 인식도 약했다. 엄연히 신분제가 철폐된 평등사회임에도 도축업자를 백정이라고 부르며 무시하기도 했고[5], 자식까지도 도축업자의 직업을 이유로 차별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인식 때문에 과거부터 도축업자들은 초상권이 철저하고 얼굴을 공개하는 인터뷰를 거절하며, 이와 관련된 일화가 식객에서 소개되어 젊은 세대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애초에 부모님 직장 같은 걸 오만군데서 물어보는 한국 사회에서 막연하게 차별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 것 자체가 무리다. 다행히 90년대 이후로 이런 인식은 서서히 개선되어 가고 있는데, 하술할 내용처럼 상당수의 도축업자들이 고소득자인 것과 더불어, 대중들의 인권 의식의 향상 및 각종 요리 프로그램의 유행으로 인해 식재료를 다루는 이들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하면서, 도축업자들의 사회적 위상은 서구권과 크게 다르지않은 수준으로 변했다[6].

일이 굉장히 거칠고 힘든 일이기 때문에 막노동마냥 일을 배울 때도 구타와 욕설이 난무할 것[7] 같지만, 정말 의외로 대부분 그렇지 않다. 따라서 가혹행위가 있는 경우는 보기 드물며, 같은 이유로 조직문화는 상당히 수평적이다. 관련 업종인 요리사들 사이에서 똥군기가 만연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첫 번째로 사용하는 칼의 위험성이 식칼보다 훨씬 무시무시할 뿐더러 스승도 제자도 모두 피지컬이 만만치 않은 데다 매 순간 칼을 휘두르며 일하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순간 욱해서 이성을 잃으면 어느 쪽이든 누군가의 인생이 그 자리에서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8]

실제로 도축 및 정형에 쓰이는 칼의 날카로움은 여타 주방용 식칼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주방에서 쓰이는 칼은 이미 가공을 거친 재료를 썰어 내는 용도이지만 정형 과정에 사용되는 칼은 죽인 지 얼마 안 된 가축을 잘라내고, 살과 뼈 사이를 파고 들어가서 발골을 하게끔 만들어졌기 때문이다.[9] 즉, 동물의 몸통을 자르기에 적합하다는 거고, 바꿔 말하면 동물보다 연약한 사람의 몸뚱아리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 칼이 사람에게 향한다면... 말 그대로 사람을 썰어 버릴 수 있다. 이런 만큼 안전하고 주의깊게 다뤄야 한다. 장난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다. 다시 말하지만, 실수든 고의든 장난이든 이 칼이 사람에게 향하는 순간 그 사람 인생은 박살난다. 운 좋아도 심한 자상이고, 과다출혈 정도는 정말 막말로라도 드물다고 못한다.[10] 그렇게 되면 상해죄, 살인죄 등은 피해갈 수 없다. 때문에 현직 기술자들도 조심해서 다루는 것은 물론 가르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그만 배우고 다른 길 찾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정중하게 말하지, 뭘 이런 것도 못하냐고 고함지르고 욕하지는 않는다.

큼지막한 고깃덩이를 이리저리 뒤집고 누르면서 발골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힘이 매우 좋아야 하므로 근력이 약한 사람들은 배우는 단계에서 쉽게 떨어져 나간다. 애초에 도축작업을 할 때 드는 갈비 한 짝이 수십 kg은 우습게 나가는 무게인 데다 도축장 안에서 평균 2~4도 정도의 저온 저장하는 고기는 자연스레 단단해져서 써는 데에도 상당한 근력이 요구된다. 참고로 한국 돼지 평균 무게가 115kg이다. 내장을 다 뺀다 해도 100kg은 된다는 소리이며, 절반으로 나눠도 50kg이다. 보통 무거운 게 아니다. 소는 당연히 더 무거워서 500 ~ 700kg(...)이다. 이 경우엔 기계가 없으면 움직일 엄두도 못낸다. 그나마 을 포함한 가금류가 가벼운 축에 속하지만 이쪽은 그 작은 덩치 때문에 도리어 작업량이 더 많아서 이것대로 골치다. 그래서 경험있는 현직 종사자들은 자연스레 몸이 근육질이 되는 것은 물론 소나 돼지를 발골하는 과정에서 손이 기형적으로 뒤틀리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육체노동이 주가 되다 보니 몸이 힘든 건 피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육류라는 고급 식재를 다루는 직업이다보니 수입은 괜찮은 편이다. 애초에 백정이라고 천대받던 과거 시절에도 능력껏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직업이었다.

정형 기술자는 대부분 고기 유통업이나 식당을 겸하는 경우가 많고 고기를 파는 요식업은 다른 업종과는 수입에 있어 그 차원을 달리한다. 실제로 마장동 점주들은 상당수가 자산가 및 건물주들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일은 100% 기계화를 할 수가 없고,[11] 대한민국의 육류 소비량은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즉,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한 꾸준한 수요가 있는 유망 직종이며, 마찬가지로 기계화가 완벽하게 되지 않고 식재료 소비 증가로 각광받고 있는 조리사의 연장선(전단계)에 있는 직업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일이 매우 고되기 때문에 조리사보다는 경쟁률이 덜하다. 작업 현장은 기본적으로 피와 내장이 많기 때문에 미끄러우며 냄새가 심하게 나는 데 이런 환경에서 무거운 고기덩어리를 들고 움직이거나 칼을 쓰는 위험하고 힘든 일이라는 제약이 있어 여성이 진출하기 어렵다. 물론 엄연히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는 국가 기능사 자격이기 때문에 아예 법으로 진입 자체를 막는 광부와 달리 연령과 성별에 따른 진입장벽은 없다.


2.2.2. 중화권[편집]


중국의 경우 서양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인식이 꽤 좋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좋았으며 현재도 한중일 중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가장 좋은 편이다. 고대 중국에서부터 제례에 바치는 희생은 군주에 의해 주관 및 분배되었고, 포인이라고 불렸던 왕실 요리사들은 직접 도축을 집행했으며 심복 대우를 받았다. 장자에 나온 일화인 포정해우가 아주 좋은 예로, 군주가 도축업자의 신들린 칼솜씨를 보고 감탄하며 묻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중국에 북방 유목민족의 정복왕조가 많이 들어섰던 만큼 그들의 영향으로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좋은 것도 있는데, 그러한 정복왕조에 해당하는 북위, 요나라, 서하,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는 도축업자를 기술자로 존중해주었다. 한족 왕조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한족과 선비족의 혼혈왕조였던 수나라당나라 또한 유목민족인 선비족의 영향으로 도축업자가 좋은 대우를 받았다.

대표적으로 삼국지하진은 일개 백정이었지만 도축업을 통해 상당히 많은 돈을 벌어들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장군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다.[12] 오늘날로 치자면 도축업자로 시작해서 장성급 장교까지 진출한 셈이다.

하지만 중국의 고전문학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도축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소설 삼국지의 하태후만 해도 시어머니인 동태후에게 "개돼지나 잡고 살던 천한 것들이 어딜 감히 나랏일에 참견하려 하느냐!"라며 모욕을 받았고, 수호전의 주인공들 중 한 명인 노지심은 자기가 사는 동네의 진관서(鎮關西)라는 이름을 가지고 거들먹거리는 자의 정체가 도축업자인 정도호(鄭屠戶)라는 사실을 알자 "도축이나 하는 천한 것이 무슨 진관서라고 건방지게 까부느냐?"라고 화를 내며 그를 죽여버렸다. 그리고 청나라 시대의 소설 유림외사에서는 도축업을 하는 백정 호씨를 가리켜 마을 사람이 "당신은 매일 돼지를 잡으며 살고 있으니, 죽으면 지옥에 떨어져 염라대왕한테 몇 천 몇 만 대의 철퇴를 맞고 살 것이오!"라고 조롱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래도 도축업 자체가 힘든 직업이다 보니 힘든 직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서 그런 모습도 보였던 듯하다. 대체로 유목 문화의 영향이 강했던 중국 북부 지역에서는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좋았던 반면 농경 문화의 영향이 강했던 중국 남부 지역에서는 도축업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의외로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만의 경우 북방 한족계 외성인만주족 등 북중국계 소수민족 그리고 대만 원주민은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인 반면, 남방 한족계 외성인과 본성인 그리고 일본계 대만인은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경향이 있다.

홍콩마카오는 각각 영국과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영국의 영향도 있지만 한때 말레이시아령이었고 현재도 말레이인이 최대 소수민족이며 마인어권 국가들(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과의 교류가 활발하기 때문에, 도축업자를 긍정적으로 보는 말레이계 무슬림들의 영향으로 다수의 중국계(남방 한족) 주민들도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 않다.


2.2.3. 일본[편집]


인식이 끝내주게 나쁘다. 일본은 덴무 덴노가 제정한 육식금지령메이지 유신 때 폐지될 때까지 1,200년이나 지속되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고기는 드물게 약으로 먹거나 "이것은 고기가 아니다"라고 우기면서 야생동물 고기(고래, 멧돼지, 오리 등)를 종종 섭취하는 정도였다. 이렇게 육식 자체가 금기시되는 상황에서 도축업자의 대우가 좋을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조선도 백정들을 천대했지만 여기엔 다른 문화적인 원인도 개입해 있었고, 어쨌든 조선은 농사일에 써야 되니 소 잡아먹지 말라고 하자 일부러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소를 기어이 잡아먹고야 말 정도로[13] 육식에 대한 욕구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일본은 육식 자체가 법적, 문화적으로 금기였기 때문에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빴다.

부라쿠민재일 한국인이 기대어 종사해 온 업종 중 하나가 바로 이 도축업이다. 가업을 물려받는 문화가 상당히 강한 일본에서는 도축업에 대한 편견이 부라쿠민,[14] 재일 조선인에 대한 편견과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개항 이후 일본인들은 금지되었던 고기를 먹느라 고기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부흥과 경제적 위상 때문에 온 사회의 고기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와규처럼 대중적인 고기를 길러내는 데도 성공했다. 그런데도 도축업에 대한 인식 개선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모든 지역에서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극단적으로 나쁜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오키나와, 가고시마현, 구마모토현, 홋카이도를 들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 본토와 같은 뿌리를 가졌으면서도 일본 본토와는 별개의 나라로 지내왔던 오키나와의 경우 일본 본토에 비해 불교의 영향력이 약했던 관계로 전근대부터 육류 요리가 발달했기 때문에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다.

가고시마현 또한 전통적으로 돼지 사육 및 돼지고기 섭취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일본 본토만큼 나빠지기는 힘들었다. 전근대 일본의 육식금지령마저 당당히 어기고 육식을 즐긴 이들이 오늘날 가고시마현 주민들의 조상인 사쓰마 사람들이었다.

구마모토현의 경우 울산성 전투 당시 전투식량이 부족해진 탓에 어쩔 수 없이 군마를 도축하여 말고기를 먹었던 가토 기요마사가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도 말고기맛을 잊지 못하여 계속 말고기를 먹으면서 가토 기요마사가 번주로 있던 구마모토가 말고기 요리로 유명해졌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덜 나쁘다.

그리고 아이누족을 포함한 홋카이도의 원주민들도 수렵민족이었던 영향으로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대체로 긍정적이다. 게다가 홋카이도는 일본판 강원도라는 별칭에 걸맞게 다른 도도부현에 비해 농사 짓기 힘든 척박한 땅이 많은 데다가 혹한기가 훨씬 더 긴 동네라 농사를 짓고 싶어도 지을 수가 없다.[15]

해당 지역들은 육식에 관대했던 역사가 일본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길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일본인들 대부분이 육식에 관대해진 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고도성장기에 들면서부터였던 반면, 오키나와와 가고시마현 그리고 홋카이도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계속 육식 문화가 발달해왔고 구마모토현은 정유재란이 막 끝난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말기 때부터 점차 육식(정확히는 말고기)에 관대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들마냥 도축업자를 천박한 직업으로 여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2.2.4. 기타[편집]


유대인이나 아랍인, 몽골인 같은 유목민족들은 깨끗한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종교인이 정육점을 운영하거나 백정이 나라에서 벼슬을 받는 등 상당한 대접을 받았다.

이슬람도 마찬가지라서 솜씨 좋은 도축업자에게 술탄이 후한 보상을 하던 것도 흔했다. 성직자인 이맘이 도축업을 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천시하는 게 아닌, 하나님의 뜻으로 소중한 고기를 먹게 하는 고맙고 거룩한 직업이라고 여겨 인식이 엄청 좋을 수밖에 없었다.

유대교는 신자들 사이에서 도축업자는 반드시 유대교 신학을 공부한 엘리트들만 했으며, 이맘과 마찬가지로 유태교 성직자 격인 랍비가 도축업자를 겸직한 경우도 있었을 만큼 사회적인 대우도 매우 좋았다.

몽골이라든지 소, 염소, 낙타, 양 등 여러 동물을 기르는 유목민들은 고기를 주식 삼기에 가축 도살하는 일이 흔한 일상이라, 어린이들도 새끼양 한 마리 잡아 요리하는 것을 라면 끓이듯 간단하게 한다고 한다. 도축을 전문업자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 남녀노소가 구별없이 가정일의 일환으로 매일같이 하니, 인식이 나쁠 수가 없다.

인도는 대체로 카스트 신분제에서 가장 높은 브라만 계급이 도축업을 하기 때문에,[16] 도축업자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편이다. 옛 신분제에서 도축업자의 신분이 낮았던 한국사와는 정반대인 셈이다. 현대 인도인의 기원이 된 세 민족들 중 하나인 아리아인[17]이 본래 유목민이었던 것도 있고, 중세 이후에 유입된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인해 도축업자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이게 된 것도 있다. 게다가 카스트 문제로 인해 낮은 카스트가 도축하거나 요리한 음식을 먹으면 부정탄다고 여겼으므로, 브라만 같은 높은 카스트들이 요리사 등의 식재료를 취급하는 직종을 독점했기 때문에, 이런 직종들에 대한 처우가 좋은 것도 있다.[18]

살생을 멀리하는 불교 문화가 뿌리깊은 동남아시아 지대에서는 다소 인식이 좋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큰 돈을 벌거나 일부는 벼슬을 하던 경우가 있었기에 꼭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다. 심지어 불교 일화에서 도축업자가 짐승을 죽이는 게 괴롭다고 하니 꿈에 부처가 나타나 고통없이 내세를 끝내주고 사람에게 큰 도움을 주는 일을 하는데 그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이야기하여 도축업자는 괴로운 마음을 접고 열심히 일했는데 그 사람이 죽어서 화장하니 사리가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마인어권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는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으며, 가톨릭이 주류 종교인 필리핀동티모르도 서양 문화의 영향으로(부분적으로는 마인어권 국가들처럼 이슬람교의 영향으로)[19]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좋은 편이다.


3. 마장동 축산물시장[20][편집]


서울특별시 성동구 마장동에는 과거에 소, 돼지 도축장이 있어서 그 주변에 정육점이 많이 생겼다.[21] 도축하자마자 바로 먹기 때문에 냉동 → 해동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서 돼지나 소의 특수부위나 곱창 등이 싸고 신선하고 맛있다.

이곳도 시대의 변화상 때문인지 과거에 비해선 많이 쇠락했다고 한다. 특히 2010~2011년에 일어난 대규모 구제역 파동 때문에 거의 분위기가 초토화되다시피 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위상을 회복했다. 고기를 다루는 곳인지 주변 상권은 엄청나게 돈이 많으며, 구제역 파동 이후에도 금방 회복했다고 한다. 어차피 고기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는 만큼 일시적으로 타격이 있다해도 회복이 빠른 편이다.


4. 기타[편집]


  • 도축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도축업자와 친하게 지내 호감도를 올리면 간혹 원하는 부위의 고기를 득템할 수도 있다고 한다. 주로 많이 나누어 주는 부위는 천엽이라고 한다. 초식동물들은 내장이 엄청나게 길어서 천엽도 보기보다 양이 많기 때문에 그렇다.

  • 최근에는 일반 가정에서 지역 도축업자와 연락을 터서 직접 식육을 사들이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직거래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명함을 준비하는데, 대개 이 명함에는 도축업자와 황소가 함께 찍은 사진, 그리고 식육처리기능사 직함과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가 들어간다. 식육을 이렇게 구매하면 엄청 저렴하다. 중간 유통단계가 모두 없어지기 때문이다.

  • 살생을 해야 하기에 PTSD가 유행하는 직종이라고도 한다. 안 그래도 워낙에 일이 고된 직종인데, 거기에 생명을 죽여서 해체한다는 부담감까지 더해져 작업하기 전에 많이들 술과 담배를 한다고 한다. 어류 등을 다루는 수산시장에서는 덜하지만, 도축업자는 어찌보면 사람과 엇비슷한 신체구조를 가진 포유류조류[22]를 죽여야 하는 일이라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상당히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축업자는 이번 생에서 도축된 동물이 부디 다음 생에서는 행복한 인생을 살거나 인간으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위령제도 열기도 한다. 그리고 위령제를 제외하고도 많은 문화권에서 도축 직전이나 사냥하기 전에 의식[23]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PTSD를 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만약 배양육이 발전되어 육류 소비량을 맞출 정도로 상용화되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살아남는 업자들은 배양육은 일상용으로 소모하고 비싼 돈을 줘야 먹을 수 있는 고급 식품이 되었을 생육을 취급하는 소수 정도가 될 것이다. 다만 가격이 비싸서 배양육이 자리 잡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배양육 기술은 아직 품질 좋은 고기를 만들 수준까진 아니라서, 질기거나 퍽퍽한 살코기를 배양하는 수준이기에, 적당히 지방이 붙어 부드러운 고기를 만들기엔 부족하기도 하고, 유전자 조작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은 배양육 또한 위험성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견을 내기도 하기에 아직 상용화되긴 어렵다. 사실 고기가 흔해진지 오래인 현재도 가공육은 저렴하지만 레스토랑 스테이크 등의 고기는 비싼데, 배양육이 발전되도 비싼고기를 자주먹는 상류층들이 존재하는 이상 이 업계가 의외로 큰 타격을 받진 않을 가능성도 높다.


5. 창작물[편집]


짐승을 죽이고 칼로 해체해 고기로 만든다는 업무가 대중에게는 꽤나 자극적인 소재여서인지 영화나 게임에서는 짐승이 아닌 사람을 도축하는 살인마 같은 악당으로 곧잘 등장해서 호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한다. 그런 이들은 주로 도살자로 불린다.
도축업자 출신이라고 언급된다.

6.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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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격히 따지면 도축업자가 아니라 정형기술자들이 모인 곳이라 이 카테고리에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2] 서양 매체에서 매드 사이언티스트사이코 의사 등의 빌런이 많다고 저 직업들이 천대받는 건 아닌 것과 같다.[3] 때문에 한국인이 보면 어이가 없을만한 상황도 나오는데, 한국에서 고기 굽기는 나이든 직책이든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굽는게 예의처럼 박혀 있지만, 서양에서 연장자가 고기를 굽는데 아랫사람이 그걸 마다하고 자기가 구우려 하면 '연장자의 권위를 무시하는' 무례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서양권에 갈 일이 있다면 이 점을 숙지해야 한다.[4] 실제 조선시대에 고기를 잡고 파는 백정은 노비만도 못한, 말 그대로 사람 취급도 못 받았으니 도축업자에게 백정이라 하는건 무식한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다. 일단 현대 육가공기술자는 엄청난 숙련도와 기술, 해당 분야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경험이 요구되고, 또 그만큼 보수도 보장되는 고수익 전문직에 속한다.[5] 식객 소고기전쟁 시리즈에서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6] 집밥 백선생에서 진행자인 백종원이 출연자들 앞에서 돼지 반마리를 정형하는 모습을 시연한 바 있으며, 렛츠고 시간탐험대에서도 전문 도축업자가 초빙돼서 한 마리의 정형을 맡은 출연자들의 자문을 해주는 장면이 나온 바 있다. 도축업자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7] 오늘날에는 이런 직업에서도 구타를 하면 경찰서에 끌려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직업은 구타를 해도 된다는 것은 신분제를 옹호하는 악폐습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나쁜 조직, 직장 문화도 인권 운동 등으로 조금씩 개선되어가고는 있다.[8] 굳이 칼만이 아니더라도, 고기를 고정하는 끝이 굉장히 뾰족한 갈고리를 비롯한 칼을 보조하는 도구들도 많은데 하나같이 고기를 베고 뼈를 가르는 도구들이라 사람 살보다 더 질긴 부위도 서걱서걱 베어내는 위험한 도구인데,(무게도 기본 100kg부터 올라간다. 보통 돼지 한 마리가 100kg 초반, 한우 기준 소 한 마리가 0.7톤 까지 올라가는데...) 이런 도구를 들고 작정하면 사람하나 잡는 덴 아무 문제가 없다. 사실 똑같이 위험한 환경에서 구른다는 문제때문에, 경찰 내의 강력계 형사들이나 소방관들 사이에서도 똥군기가 전무한 편이다.[9] 아예 두드리면 쇳소리가 날 정도로 꽝꽝 언 고기나 뼈를 토막치는 육절기 수준으로 들어가면 그냥 톱이다 톱.[10] 자기 칼에 베이면 거친 업종 특성상 혀를 차며 갈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오히려 안 베인 옆사람이 더 기겁하고 병원 가라고 소리친다.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요리사들도 마찬가지라서,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 2 촬영 당시에 한 참가자가 요리 도중에 손가락이 살짝 베이는 사고를 당하자, 심사위원인 강레오가 강제로 요리를 중단시키고 현장 의료진들에게 보낸 바 있다.[11] 숨통을 끊거나 사체를 운반하는 작업이나 가금류처럼 크기가 작은 가축의 도축작업 일부에 기계화가 도입되어 있긴 하지만 돼지나 소와 같이 일반적인 가축을 부위별로 가공하는 섬세한 작업은 아직까진 순전히 사람의 손으로만 가능한 영역이다. 귀찮다고 기계로 해체했다가 고기에 노린내가 베어버릴지도 모른다. 노린내가 벤다고 못먹는건 아니지만 냄새나는 고기를 좋아할 소비자는 없는지라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다. 때문에 고기에 노린내가 안 베게 해체하는 섬세한 작업은 사람의 손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다.[12] 물론 자기 여동생인 하태후의 뛰어난 외모도 한 몫 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하진의 능력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대 매관매직이 엄청 유행했는데 갑부인 하진의 입장이라면 높은 관직에 오르기 굉장히 쉬운 조건이었다.[13] 조선시대에는 원칙적으로 소는 잡아먹을 수 없되, 병들어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소에 한해서 식용을 허가하였기 때문이다.[14] 그 인식의 심각성을 알고 싶다면 부라쿠민 문서로. 단적인 예시를 미리 하나 들려주자면, 아소 다로 자민당 정책조사회장이 노나카 히로무내각관방장관에게 "천한 부라쿠민을 총리로 세울 수 없다."라는 망언을 하는 바람에 노나카 장관이 면전에서 분노하여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있었는데, 문제는 이게 부락지명총람사건이 일어난 1970년대도 아니고 2003년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21세기에 당 정책위 의장씩이나 하고 있고 행안부장관에 내정된 사람이 국가안보실장, 청와대 대변인 + 대통령비서실장, 원내대표를 했던 정계 대선배에게 천민의 후손이니 당 대표 + 대통령 할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망언을 한 셈이다. 아소가 부라쿠민의 후손을 깔본 것에는 그가 오쿠보 도시미치 초대 내무경현손이자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외손으로서 완전히 귀족급 부잣집 도령이라는 강력한 가문 배경을 가졌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다.[15] 그래서 지금도 홋카이도의 주요 1차 산업은 낙농업이 주류이고 농사도 농사보다는 농사를 더 많이 짓는다.[16] 아니면 카스트랑 애초에 상관이 없는 시크교도나 혹은 네팔인 같은 외국인이 맡지, 신분이 낮은 인도인은 거의 맡지 않는다.[17] 나머지는 드라비다인문다인이다.[18] 참고로 같은 이유에서 인도에서는 이발사나 세탁소 직원 같은 직업 역시 브라만이 전담한다.[19] 필리핀은 민다나오섬의 주류 종교가 이슬람교이고 동티모르는 이슬람교가 주류 종교인 인도네시아의 식민지였던 역사가 있다.[20] 엄격히 따지면 도축업자가 아니라 정형기술자들이 모인 곳이라 이 카테고리에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21] 도축장 자체는 도시개발 때문에 1998년 이전했다.[22] 파충류를 식용하는 문화권의 경우 파충류도 포함된다. 열대 지역에서 악어를 도축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동아시아권에서도 자라가 식용된다.[23] 예를 들면 이슬람식 도축법인 다비하(Dhabih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