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마라도나/관련 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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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목록



1. 개요[편집]


디에고 마라도나에 대한 언사를 정리한 문서.


2. 목록[편집]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펠레다. 왜냐하면 디에고 마라도나는 축구의 이니까.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누구냐고 물으면 내놓는 답.


모든 아르헨티나인들에게 디에고는 신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카를로스 테베스


진짜로 나폴리에서 성 야누아리오(나폴리 수호 성인)와 마라도나 중 누가 더 유명하냐 물으면 마라도나가 이깁니다.

젠나로 가투소 (SSC 나폴리 감독 시절 인터뷰)


마라도나와 메시 모두 천재입니다. 하지만 메시는 클럽에서만,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국대까지 두드려졌다는 점에서 딱 반대 상황입니다. 그런 점에서 메시는 월드컵 우승 전까지 마라도나의 그림자 속에 갇혀 살 것입니다.[1]

마라도나는 마법과도 같은 무언가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술가였죠. 과할 정도로 예술가였고 천재였지만, 또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예술가였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그처럼 되고 싶어할 겁니다. 그가 살아오면서 해왔던 모든 어리석은 행동들을 잊어야 한다 해도 말이죠. 그것이 그의 방식이자 모든 것이었고, 그의 진실된 모습이니까요. 메시는 현역 최고지만 월드컵 우승은 못했습니다. 그는 마라도나의 그림자 밑에서 살고 있죠. 재밌는 점은 메시는 외향적인 마라도나와 정확히 반대라는 겁니다.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말이 없죠. 둘 다 천재입니다. 메시는 클럽 레벨에서 더 이겼지만 더 절대적인 인식을 성취해야만 합니다.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에서도 그걸 해냈기 때문이죠.

아르센 벵거


나와 비교가 되려면 왼발, 오른발, 머리로 다 골을 넣을 줄 아는 선수여야 한다. 나는 마라도나가 역대 최고 선수 중 한 명이라고 본다. 마라도나가 메시보다 낫냐고? 그렇다. 훨씬 낫다. 이뿐만 아니라 프란츠 베켄바워, 요한 크루이프 또한 훌륭한 선수들이었다.

펠레, 브라질 일간지 '폴랴 데 상파울루'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선수가 아닌 '축구 황제' 로 유명한 펠레가 이렇게까지 극찬을 한다는 점에서 대단한 평가다.


디에고 마라도나는 아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을 것이다.

디에고 마라도나만큼은 나보다 위. 그는 격이 다르다.

녀석(디에고 마라도나)에겐 선수로서 전혀 대적할 수 없다.

현재 전세계의 모든 현역 선수들은 전성기의 디에고 마라도나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를 제외한 세계 최고의 선수는 로베르토 바조라고 생각한다.

요한 크루이프[2]


내가 펠레보다 못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디에고 마라도나는 다르다. 내가 축구공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는 오렌지로도 할 수 있다.

만약 발롱도르가 처음부터 전 세계 모든 선수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나의 발롱도르 3연속 수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다. 마라도나라면 최소한 5번은 수상했을 것이다

미셸 플라티니


내가 배구공으로 간신히 할 수 있는 볼키핑을 디에고 마라도나는 탁구공으로 하고 있다.

그와 비교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는 외계인이기 때문에.

마라도나의 영상을 보았는데 페널티 지점에서 볼을 차서 크로스바에 맞히고, 튕겨나온 볼을 다시 크로스바에 맞히면서 놀고 있더라. 그런 일은 나로선 해낼 도리가 없다.

지네딘 지단


나는 펠레의 플레이를 보지 못했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이다. 내가 백만년을 플레이 해도 마라도나에게 근접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해도 내가 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는 역대 최고의 선수다.

리오넬 메시


마라도나가 우리를 상대로 두번째 골을 넣었을 때는 나조차도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런 기분이 든 건 처음이었다. 마라도나는 단연코 역대 최고의 선수다. 완벽한 천재다.

마라도나는 차원이 다른 주장이자 미드필더였고 엄청난 오라를 내뿜었죠. 저희 세대 선수들은 기억해요. 학생이 된 것처럼 우러러봤죠. 당신(졸라)처럼 실력이 좋은 선수도요. 말도 안 될 정도로 오라를 내뿜었잖아요? 다들 수군거렸죠. '마라도나야, 마라도나가 왔어!' 신을 본 것처럼요.

나는 1987년에 웸블리에서 열린 영국 1부 리그 올스타 VS 세계 올스타 경기에 참여했었어. 엄청 스타들이 많았지. 지쿠, 플라티니, 푸트레, 마라도나까지. 우리 모두 몸 풀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라도나가 끈이 풀린 축구화를 신더니 볼을 몇 번 툭툭 차다가 있는 힘껏 차올리는거야. 그리고는 공이 떨어지면 또 있는 힘껏 차올리고, 있는 힘껏 차올리고...이걸 12번 반복하더라...진짜 엄청났어. 옆을 보니까 플라티니가 입을 쩍 벌리고 바라보고 있더라. 정말 믿기지가 않더라니까.

게리 리네커 (2007년 12월호 포포투 인터뷰)


그는 지금까지 존재한 선수 중에 최고의 선수다. 펠레조차도 능가한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그를 가까이서 지켜봐왔다. 그는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레벨에 있었다. 그가 하는 것의 일부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보지 않고도 볼을 컨트롤 할 수 있었다.

저에게는 과거에나 현재에도 모두 최고입니다. 당신이 메시와 호날두에 대해 이야기하면 난 이렇게 대답합니다. 메시와 호날두는 드리블을 할 수 있지만 마라도나는 드리블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라도나는 상대 수비수들을 이겨내기 위해 점프를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마라도나의 다리를 부러뜨렸죠. 실제로 빌바오의 도살자, 안도니 고이코에체아는 마라도나의 발목을 부러뜨렸습니다. 그때 공격수들은 규칙으로 보호받지 못했고, 심판은 저같은 선수들이 완전히 박살나야만 파울을 불었습니다. 운좋게도 오늘날은 다릅니다. 메시와 호날두는 이들을 위해 뛰어줄 팀이 있고, 메시와 호날두는 이 조립 라인에 놀라운 마지막 퍼즐입니다. 반면 마라도나는 혼자였고, 그는 상대 수비수들의 먹잇감이었죠. 만약 당신이 마라도나를 쓰러뜨렸다면 그 자체로 영광스러운 뱃지를 단 것입니다.

루드 굴리트


어떤 사람들은 펠레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마라도나가 언제나 가장 위대한 선수로 남을 것이다. 그는 1986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했고, 1990년 결승전에서 아깝게 우승을 놓쳤다. 1994년에 출장 금지당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우승했을 것이다. 마라도나와 펠레의 결정적인 차이를 말하자면, 마라도나는 최고의 선수들을 동료로 가지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팀을 캐리해야만 했다. 만약 마라도나가 없었다면 아르헨티나는 우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브라질은 펠레가 없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여러번 우승을 차지했을 것이다.

에릭 칸토나


나는 천재가 아니다. 천재라는 것은 디에고 마라도나 같은 선수를 말하는 거지.

Q: 리오넬 메시가 당신이 본 가장 위대한 선수인가?

A: 그는 놀라운 선수다. 하지만 최고는 아니다. 그에게는 월드컵 우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상대했던 선수 중 누가 가장 위대한 선수였나?

A: 쉬운 질문이다. 디에고 마라도나다.

마르코 반 바스텐


내가 마라도나에 근접했다고? 그의 수준에 다가갔다거나 어깨를 나란히 했다 같은 비교를 넘어선 지평에 디에고 마라도나가 있다. 그는 축구 그 자체이다.

메시는 마라도나를 잡지 못한다. 내게 있어 마라도나는 최고였다. 마라도나는 축구를 넘어 아르헨티나 그 자체를 상징한다. 그는 우리들에게 나타난 제대로 된 최초의 선수다. 마라도나는 월드컵에서 우승한 카리스마가 있으며 드문 재능과 상상력을 가졌다.

메시는 기술적으로 마라도나와 같거나 더 뛰어나지만, 필적할 수 없다. 메시에게는 마라도나의 카리스마가 없다. 마라도나는 경기장을 지휘할 수 있었고, 모두가 그를 지켜볼 수 있게 했다. 나는 마라도나와 경기를 해봤기 때문에, 그가 팀에 어떠한 존재였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 비록 내가 마라도나의 생활 방식을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나에게 마라도나는 가장 위대한 선수이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나와 디에고 마라도나를 비교하는 것은 실례다.

난 마라도나가 메시보다 더 경쟁력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믿는다. 그는 언제나 맨마킹을 당한 채 플레이했다. 마라도나는 팀에 많은 것을 가져다줬다. 메시도 마찬가지다. 단,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에도 크게 공헌했다.

지쿠


메시는 정말 위대하다. 하지만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는 더 대단했다.

어느 날 나와 디에고는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만났는데, 그 날 디에고가 두 개의 시계를 차고 와서 나에게 그 두 개의 시계들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그는 이 두 개의 시계가 자신의 딸이 준 선물이고, 받은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착용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말하였다. 또한 이 두 개의 시계를 차고 있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자신에겐 마치 분신 같은 존재라고 얘기했다. 그런 감동적인 사연을 알게 된 후 난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식사가 끝나고 우리가 자리를 떠나려고 할 때 디에고가 자신이 차고 있던 두 개의 시계 중 하나를 자신의 손목에서 빼더니 나에게 선물이라고 주었다. 난 마라도나 본인에게 이런 뜻깊은 선물을 내가 갖고 있고 싶지 않아서 당연히 거절 했지만, 그가 되려 화를 내고 속상해해서 사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이 시계를 받았다. 당시에도 그가 그의 딸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기에 이 선물의 소중함을 알았지만,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더욱 더 의미 있는 선물이자 물건인 것 같다. 난 이 시계를 내 남은 여생 동안 소중히 보관하며, 내 친구 디에고와 나의 친분을 기억할 추억으로 남겨두겠다.

호나우두


메시와 마라도나? 나의 선택은 디에고 마라도나다.

다보르 슈케르 (1998 월드컵 득점왕이자 현재 크로아티아 축구협회 회장)


Q: 당신이 생각하는 역대 최고의 선수는?

A: 디에고 마라도나

리오 퍼디난드


마라도나처럼 축구를 할 수 있는 선수를 저는,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프리킥 실력이 그의 발 밑 정도에 근접했을지 모른다. 아니, 그렇게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지안프랑코 졸라


그를 마크하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그와 같은 선수는 이제 다시 나타나지 않을거야.

나의 커리어에서 디에고 마라도나만큼 대단한 선수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는 두 눈을 볼에 고정시키지 않고도 룰렛이나 라보나 킥 같은 고난도 기술을 사용했고, 두 눈으로는 그를 향해 날아오는 백태클을 피하는데에 사용했다. 그 다음은 인테르 시절의 호나우두. 그는 마라도나와 근접해 있었다. 대단한 기백을 보여주었다. 지금의 호나우지뉴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나는 항상 나 스스로를 준수한 수비수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탈리아 세리에A 명예의 전당 시상식에서 마라도나와 내가 나오는 영상을 보고 부끄러웠다. 내가 마라도나에게 끔찍한 파울을 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라도나를 막을 수 없었다. 그는 내 움직임을 다 읽고 있었고, 나는 매번 한발 늦을 수밖에 없었다. 마라도나는 정말 빨리 공을 컨트롤하고 방향을 바꿨고, 내 경력을 산산조각 냈다. 반칙을 쓰지 않고는 마라도나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영상을 보니 그런 장면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고 그에게 사과해야만 한다고 느꼈다. 그는 정말 대단했다.

파올로 말디니


챔피언스리그 우승 혹은 발롱도르를 차지했을 때도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월드컵을 우승했을 때 진정한 레전드가 된다. 메시는 마라도나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이번 브라질 월드컵이 필요하다.

나는 메시를 아주 존중한다. 새로운 세대에서 중 그는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다른 차원의 선수이다. 당시의 축구는 달랐다. 많은 선수들이 마라도나를 걷어차도 그는 항상 상황을 컨트롤을 했고 또 강력했다. 메시는 최고의 선수지만 마라도나는 다른 세상의 선수다. 나는 마라도나를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는다. 나는 펠레의 플레이를 보지 않았지만, 마라도나는 7년 간 매 경기를 지켜봤다. 마라도나는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 아니라 "역사상 가장 최고의 선수"다.

마라도나는 나폴리 사람들에게 신이다. 마라도나는 역사를 바꾸었다. 80년 동안 우리(SSC 나폴리)는 강등되지 않으려고 싸우며 항상 고통받아왔다. 하지만 그가 우리와 함께한 7시즌 동안 우리는 두 번의 리그 우승, 한 번의 UEFA컵 우승, 두 번의 이탈리아 컵 우승을 이루었다. 나 또한 마라도나의 팬이었다. 마라도나가 함께 했던 7년 동안의 삶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다.

파비오 칸나바로


축구에서 한 사람의 힘으로 경기를 승리로 만들어 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직 그것이 가능한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뿐이다.

안드리 셰브첸코


난 축구 역사상 3번째로 뛰어난 선수다. 1위와 2위는 당연히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다.

나와 로베르토 바조스타이긴 하지만, 슈퍼스타의 존재는 아니다. 현대 축구에서 슈퍼스타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디에고 마라도나뿐이다.

사람들이 마라도나, 메시 중 누가 낫냐고 논쟁하는데, 여전히 마라도나가 최고다. 아르헨티나를 위해 그가 한 것(월드컵 우승) 때문이다.

호마리우


메시는 아직 펠레나 마라도나의 체급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Q: 네가 생각하는 역대 최고의 선수 세 명을 말해봐.

A: 마라도나. 그는 나에게 축구에 대한 열정을 심어 주었어. 그 다음은 Ronaldo, 페노메논

Q: 브라질리언 Ronaldo 말하는 거지?

A: 응. 그는 스트라이커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어.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지단. 음... 지단으로 정할게.(후략)[3]

디디에 드록바


마라도나는 유일무이합니다. 그는 역사상 최고입니다. 그의 워밍업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합니다. 그는 자기 앞에서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했습니다.

후안 로만 리켈메


디에고 마라도나는 마르코 반 바스텐보다 위다. 그가 지금의 시대에서 활약할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디에고 마라도나에게는 언제나 당하고 있었다. 당시의 그는 최고로 빛나고 있었다. 최근의 은퇴시합의 그를 보면서 왠지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프랑코 바레시


필드 위에서 그는 마법(Magic)이었다.

80년대에 그는 최고의 선수였다. 개성, 퀄리티, 스피드, 테크닉 등 모든 면에서. 그는 완벽한 선수였다. 팀 플레이어로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신이 대전했던 선수 중 누가 가장 대단했나? 라는 질문에) 가장 대단했던 것은 디에고 마라도나이다. 그는 특별하다. 그 다음은 마르코 반 바스텐. 그리고 조금 더 내려와서 미셸 플라티니다.

마라도나와 메시는 단신에 멈출 수 없는 드리블 능력과 왼발 능력 등 비슷한 면이 많지만 결정적으로 투쟁심에서는 다르다. 마라도나는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늘 경기에 활발하게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플레이가 잘 안 되어도 언제나 열정적으로 관여한다. 반면 메시는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길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사라져 버린다. 동료들이 메시를 필요로 하는 힘든 순간에 팀을 끌어올리지 못한다. 그것이 마라도나와 메시의 차이다.

로타어 마테우스


내가 브라질 사람이기 때문에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의 우상은 디에고다. 물론 펠레도 늘 영웅이었지만, 나는 디에고의 플레이에 언제나 경악했다.

호베르투 카를루스


내게는 메시보다는 마라도나가 더 뛰어난 선수였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물론 우리는 메시에게 그 이상을 바라기는 하지만, 그는 마라도나가 아니고 혼자서 월드컵 우승을 이뤄낼 수 없다. 만약 메시가 월드컵 우승을 한다고 해도 마라도나와 같은 경지에 올라설 수 있을까? 사실 그것도 의문스럽다.

에르난 크레스포


우리는 메시가 마라도나와 비견할 만하다고 평가해왔으나, 아마 그것은 실수였던 것 같다. 마라도나는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마라도나와 메시는 천재성, 플레이면에서 비슷합니다. 차이점은 마라도나 때는 옐로카드를 받기 전까지 60번의 파울도 가능했지만, 메시가 뛰는 지금은 그렇게 했다간 가차 없이 바로 옐로카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천재, 진정한 아티스트,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는 혼자만의 능력으로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혼자만의 능력으로.

옛날, 바르셀로나 시절의 호나우두가 5, 6인을 제치고 득점하는 것을 보았다. 방금전에도 말한 것처럼 그는 경이적이었다. 호마리우도 발군이었지만, 전성기의 디에고 마라도나가 내가 본 중 최고였지. 초일류의 선수다. 그리고 호나우두가 조금의 차이로 2위다 (웃음).

바비 롭슨


메시는 그의 시대에서는 최고이나 역사상 최고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 호나우두가 있기 때문 입니다.

호나우지뉴


역대 최고의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다. 1986년1990년 월드컵을 보며 그를 칭송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에도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이 뛰어난 선수가 있지만, 내가 본 마라도나의 플레이는 축구 역사 전체에서도 없는 것이었다.

라이언 긱스


유벤투스호날두 때문에 강해질까? 한 선수만으로는 그 어떤 것도 우승할 수는 없지. 심지어 세계 최고의 선수라 할지라도 말이야. 만약에 디에고 마라도나가 아니라면, 혼자서는 그 어떤 것도 우승할 수는 없어.

마렉 함식


바이에른에 살고 있는 나의 오랜 친구들은 모두 펠레의 플레이를 보았고 그가 코스모스와 산투스, 그리고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 언제나 팀을 승리로 이끄는 모습을 보았으며 그의 플레이를 좋아했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좀 더 어려운 환경에서 플레이했다. 이탈리아에서 지내는 동안 마라도나는 나폴리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우리는 이미 팀에 뛰어난 선수가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그가 혼자 우리를 우승까지 끌고 갈 줄은 몰랐습니다. 마라도나는 너무나도 강력해서, 존재만으로도 경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걸로 상대팀은 흔들리죠. 상대팀을 위압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1986년이 그에게 가장 위대했던 해입니다.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증명했던 해였죠. 기술적으로 보면, 그는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선수였습니다.

펠레는 천재였다. 엄청난 킥 능력을 양 발에 가지고 있었으며 가슴에 용수철이 있는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공을 잘 받았다. 망치로 치는 듯한 헤더 슈팅 능력도 가지고 있었고, 먼 거리에서도 득점했다. 필드 위의 코치였으며 전략가이자 해결사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선수였다. 그러나 공을 가지고 하는 일에서만큼은 마라도나가 더 뛰어났고, 그러므로 기술적인 면에서는 마라도나가 역대 최고라고 본다.

호르헤 발다노


물론 메시는 센세이셔널합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는 더 천재적이고 극적인 마라도나가 더 뛰어납니다.

카레카 (나폴리 시절 동료)


볼을 취급하는 컨트롤 기술에선, 내가 처음 본 완벽한 선수였다. 마라도나가 볼을 컨트롤 하면서 달릴 때, 혹은 디펜스를 드리블로 제껴나갈 때, 그것은 마치 볼을 다리에 붙이고 있는 느낌이었지. 그건 첫 합동훈련 때였을 거야. 그가 처음으로 볼을 만진 순간 주위의 선수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모든 선수의 눈이 마라도나의 발밑에 고정되어 있었지. 왜냐고? 그가 펼치는 다양한 테크닉을 실제로 처음 직접 목격했으니까. 그런 선수는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을 거야.

로보 카라스코 (바르셀로나 시절 동료)


나는 지쿠, 플라티니, 마라도나와 팀메이트였지만, 최고의 선수는?이라고 질문 받으면 예외 없이 마라도나라고 대답한다. 그는 미팅시 10분 20분 내키는 대로 오렌지레몬으로 리프팅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그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시모 마우로 (나폴리 시절 동료)


지네딘 지단은 세계에서 탑5에 들어가는 대단한 GIOCATORE이지만, 디에고 마라도나는 다른 판타지스타들과는 차원이 다른 유일한 존재. 지단이 멈춰서서 하는 플레이를 그는 톱 스피드에서 정확히 해치워 버린다. 당시 나폴리의 연습에서는 많은 매스컴들이 보러 왔었는데, 거기에서 코치가 마라도나를 향해 강렬히 슛팅한 볼을 그는 어깨로 트래핑, 머리 위로 올려서 반대 어깨로 코치에게 돌려 보냈다. 믿어지나? 이런 광경을 마치 일상다반사처럼 볼 수 있었다.

치로 페라라 (나폴리 시절 동료)


마라도나의 환상적인 기술을 보면 나 자신이 너무 작아졌다. 훈련장에서도 그런 기술들은 본 적이 없었다. 동료들이 본 걸 관중들이 못 봤다는 게 아까울 정도다.

프란체스코 로마노 (나폴리 시절 동료)


나는 메시를 좋아한다. 내 아들이 메시 능력의 1%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마라도나는 독보적이다. 그를 뛰어넘을 수 있는 선수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메시가 세 번 연속으로 월드컵에서 우승하거나 중앙선에서 오버헤드 킥으로 골을 터트려도 마라도나를 넘을 수는 없다.

엑토르 엔리케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대표팀 동료)


마라도나는 펠레보다도 뛰어난 천재였습니다.

프란시스코 바라요 (1930 우루과이 월드컵 참가 선수 중 최후의 생존자)


지금까지 축구를 40년 넘게 봤지만, 그 마라도나의 골보다 더 뛰어난 골은 보지 못했다. 그때 경기장에 있던 게 특권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냥 놀랐던 기억밖에 없다. 60야드(68미터)나 되는 거리를 돌파하려면 한 번의 터치 실수도 없어야 하는데, 끔찍한 잔디 상태에서 빠른 속도로 질주하면서 특출난 잉글랜드 수비수들을 간단하게 따돌리던 모습은 믿을 수가 없었다.

스티브 호지 (8강 상대였던 잉글랜드 미드필더)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11명이 하는 팀 스포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축구의 개념을 벗어난 최초의 선수를 보고 있습니다!

1986 멕시코 월드컵 8강 잉글랜드전, 신의 손 골 이후 그가 터뜨린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을 보며 아르헨티나 해설자가 외친 말


왜 그가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지를 증명하는 골입니다. 슬프지만, 우리 선수들은 그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선수입니다.[4]

8강 상대였던 잉글랜드 해설자


1989년 4월, 뮌헨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한 명의 선수가 시합 전에 워밍업을 하고 있었다. 바이에른 뮌헨 팬들 모두가 야유를 퍼붓는 와중에 그는 축구화 끈도 제대로 묶지 않은 상태에서 걸으면서 리프팅을 시작, 몸 전체 부분을 사용하며 볼을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다루었다. 그것을 본 팬들은 야유를 멈췄다. 야유를 퍼붓다 멈춘 그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이름은 디에고 마라도나. 적의 팬들까지 포로로 잡을 수 있는 천재는 어쩌면 앞으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칼 하인츠 빌트 (키커 부편집장), UEFA컵 준결승전의 바이에른 뮌헨전을 보고 난 뒤의 증언.


'스펙타클'이라고 하면 당연히 마라도나다. 축구공을 그처럼 다룰 수 있는 선수는 동서고금을 통해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안토니오 핀코 (이탈리아 저널리스트)


디에고 마라도나 이외의 이름은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펠레도 위대했지만 펠레는 수준급의 팀메이트들이 받쳐주고 있었고 또한 전성기 시절 브라질을 떠나 국외에서 플레이한 경험이 없다는 점도 집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이라던가, 평범한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끈 나폴리 시절이라던가. 마라도나는 거의 혼자 힘으로 타이틀을 획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오로지 한 사람으로 인해 스타디움을 꽉 메워지게 할 수 있는 선수도 그 이외에는 없다. 무시무시한 스피드로 세계 정점에 오른 마라도나. 그것과 같은 스피드로 파멸을 향해 내리막 길로 내려간 마라도나. 그저 유감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하비엘 아스칼골타 (레알 마드리드 국제스쿨 교장)


나에게 있어서는 그가 세계 축구 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이고 가장 스펙타클한 선수다. 166cm의 작은 체구로 결코 피지컬적으로는 좋은 조건이 아니었지만 마라도나는 신(神)이 선사한 특별한 왼발을 갖고 몇 차례나 기적을 일구어 냈다. 우수한 탤런트들이 모여 있었다고는 할 수 없는 나폴리를 이태리 리그 챔피언 자리에 올려 놓았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우승도 거의 그 혼자의 개인기로 이룬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쉽지만 마라도나의 플레이를 향수(享受)하는 기쁨은 약물 복용에 의해서 돌연 빼앗기고 말았다. 단 그것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도 그 연령(33세)을 생각하면 그의 기술은 특출했으니까.

프란시스코 아기랄 (스페인 엘 문도 부편집장)


혼자의 힘으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의 플레이어. 오락성 면으로 보자면 헝가리의 전설 페렌츠 푸스카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위대한 7번” 바비 찰튼, 천재 조지 베스트, 그리고 네덜란드의 영웅 요한 크루이프조차도 마라도나에게 미치지 못한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잉글랜드와의 8강전. 하프라인 근방에서 드리블을 개시, 수비 라인을 뚫고 골네트를 가른 그 장면. 마라도나가 5명을 제친 그 장면은 틀림없는 ‘구극(究極)의 스펙터클’이었다.

롭 셰퍼드 (잉글랜드 저널리스트)


축구계의 진정한 천재. 조금은 삐뚤어진 선수였지만, 천재였다. 명백하게 다루기 힘든 신체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라도나는 말로서 형용키 어려운 경이로운 느낌을 주고 했다. 심지어는 미학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개인전술이 대단한 선수였을 뿐만 아니라, 팀 스피릿을 갖춘 선수이기도 했다.

아달베르토 보르토로티 (이탈리아 저널리스트, 1997년 역대 최고의 선수 10인을 선정하면서)[5]


압박 축구를 고안해 낸 것은 디에고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서이다.

메시는 현세대 최고 선수지만 나는 마라도나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는 스페인, 이탈리아 등 자신이 있던 모든 장소에서 차이를 만들어 냈다

오렌지 삼총사3 각기 실력을 발휘하고 나서 그와 처음 동등해진다.

로베르토 바조, 루드 굴리트, 레이카르트, 프랑코 바레시 등등 많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반 바스텐이 내가 맡은 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던 선수이다. 그리고 지금껏 봐 온 선수 중에서 가장 대단했던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다. 그는 위대한 선수였다. 그를 영입하려 했지만, 그는 나폴리이 되어 있었다. 두 명의 디에고 마라도나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오렌지 삼총사를 부른 것은, 한 명의 선수로 팀의 승패를 좌우 할 수 있는것은 디에고 마라도나 이외엔 없기 때문이다.

펠레가 여러 차례 월드컵 제패를 이룩함과 동시에 축구의 범대중화를 이끌며 축구계에 첫번째 혁명을, 요한 크루이프토탈 풋볼로서 전술적인 혁신을 일으키며 두번째 혁명을, 지단이 각 대륙의 장점만을 결합시킨 아트 풋볼로서 축구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플레이를 보이며 세번째 혁명을 일으켰다면 마라도나는 경기장에 선 그 자체가 혁명이었다.

디에고 마라도나라는 기적적인 재능에 맞서기 위해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새로운 개념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운 좋게도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플레이를 했다. 그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이탈리아에는 혁신을 포용할 수 있는 토양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밀란의 감독으로 취임했을 때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려는 시점이었다. 더 이상 카테나치오만으로는 마라도나를 봉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것이 혁명이라 불리우는 변화가 일어난 배경이며, 10명의 수비를 붙여도 마라도나는 그 모두를 제쳐버릴 수 있었다. 나는 마라도나 영입을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이 꿈은 밀란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마라도나와 대립하는 축구를 하는 것이었다. 또 한 명의 마라도나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리고 사키


마라도나와 함께했을 때는 이제 막 축구계에 발을 내디뎠을 단계였다. 마라도나는 매너리즘 관점에서 순수한 예술이었다.

로베르토 아얄라 ('폭스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맞닥뜨린 최고의 선수였다. 그는 18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실상 상대할 수 없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앨런 한센


리오넬 메시는 그의 발끝에서 마법을 보여준다. 그러나 내 책에서는 그는 세계적으로 보여준 면에서는 최고가 아니다. 그 영광은 디에고 마라도나로 가야만 한다. 우리는 모두 펠레가 더 많은 골을 넣었고, 메시가 더 많은 우승을 했다는 걸 안다. 그러나 마라도나를 탑에서 끌어내리기에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마라도나는 본능적인 강력함과 천재적인 폭발력을 지녔다. 심지어 그는 코카인, 총격, 여자, 상해 등을 포함한 두드러지는 논란거리들 후에 궁극적으로는 자기 파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메시는 기술과 득점력 관점에서는 뒤에 있지 않지만, 최종적인 분석에서는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는 역대 최고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왜냐면 그의 커리어가 아직 축구적으로 역대 최고가 되기에는 마라도나를 배제할 만큼의 규정짓는 그런 류의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마라도나는 5골 5어시스트 및 절대적이고 경이적인 퍼포먼스와 함께 폭풍을 일으키며 토너먼트를 지배하면서 결국 아르헨티나에 월드컵 우승을 가져왔다. 아마 우리는 이번 여름 월드컵에서 메시로부터 같은 걸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바르셀로나 스타로부터 그런 종류의 영향력을 월드 스테이지에서 볼 때까지는 진짜 논쟁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나를 믿지 못한다면, 메시 스스로 마라도나에 대해 말한 걸 들어보라. "비록 수백만년을 플레이해도, 나는 마라도나에 근접할 수 없을 것이다" 메시는 이미 이렇게 말했었다. "He's the greatest there's ever been."

스티브 베이츠 (데일리 미러 기자)


메시와 마라도나 사이에는 논쟁이 있기에 매우 어렵지만, 마라도나를 고른 이유는 규정 변화 때문이다. 마라도나가 1982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 젠틸레를 상대로 뛰었을때, 젠틸레는 옐로카드를 받기 전까지 마라도나에게 24번의 파울을 범했다. 당시에는 선수들에게 그런 것이 가능했고, 마라도나는 태클을 피하는 것을 넘어서 뛰어넘으면서 내가 축구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태클을 했을 뿐 아니라 다치게 하려고 시도했다. 1986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그냥저냥 괜찮은 팀이었는데, 마라도나는 월드컵을 우승하게끔 만들었다. 그는 나폴리에서도 리그를 두번 우승했고 유럽대회도 한번 우승했다. 나폴리는 마라도나 이전에 리그도 유럽대회도 우승하지 못했으며, 그 이후로도 역시 우승하지 못했다. 마라도나는 나폴리를 다른 레벨의 팀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메시와 호날두는 어떨까? 그들은 환상적인 축구선수지만, 다른 이들이 그들을 위협할 수 있는 시대에 뛰었다면 어땠을지는 항상 의문이 든다. 선수들이 발로 차고, 잔디가 그렇게 좋지 않았을때는 전혀 다른 경기가 된다.

제이미 레드냅


펠레도 버리기 쉽지 않지만 역시 이 사나이가 아닐까. 그처럼 볼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선수를 나는 알지 못한다.

빈센트 듀르크 (프랑스 축구 저널리스트)


디에고 마라도나 이외에 생각할 수 없다. 볼을 가진 그는 우리들의 상상을 훨씬 더 초월하는 마술을 피력했다. 변화무쌍한 드리블로 DF를 제치고, 믿을 수 없는 패스를 하고, 화려한 골을 터뜨렸다. 마법의 그 왼발 앞에서는 펠레요한 크루이프도 침묵할 수 밖에 없다. 거의 혼자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할 수있는 것도 마라도나 뿐. 유일무이, 축구 사상 가장 빛나는 "금자탑”이다.

에드윈 스트라우스 (네덜란드 저널리스트)


내 생각에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역대 최고다.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개인적이면서도 월드컵에서 승리했다.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한 이유였다. 왜냐면 단지 좋은 팀을 거의 혼자만의 능력으로 가장 위대한 경지로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난 호날두를 그 다음으로 놓겠다. 왜냐면 그가 최고일 때는 unstoppable. Just incredible이기 때문에. 만약 메시 위에 호날두를 놓는다면 당신들은 그걸 소수로 치부할 테지만, 뭐 다른 것도 좋다. 그리고 그 다음이 리오넬 메시다. 어메이징한 플레이어고 올타임 베스트 중 한명이지.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의 베스트는 아니다. 나는 이 3명을 피부로 직접 체감했고, 마라도나는 이 중에서도 다른 레벨에 올라있다. 내 관점에서는, 펠레와 현대선수들을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 왜냐면 그때 축구는 너무나 다르니까. 펠레는 그의 시대에서 최고다.

존 크로스 (데일리 미러 기자)


나는 1986년의 디에고 마라도나보다 더 뛰어난 개인 퍼포먼스를 전혀 본 적이 없다. 그때 그는 자신의 힘만으로 월드컵에서 우승을 실천해냈다. 메시는 지금 세대에서 베스트 플레이어지만, 내게 있어 그가 마라도나와 같은 레벨로 판단되기 위해서는 메시는 아르헨티나를 월드컵의 영광으로 이끄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아직 메시는 첼시전 8경기 무득점이다...[6]

닐 맥레만 (데일리 미러 기자)


전성기의 에우제비우펠레의 플레이는 유감스럽게도 직접 체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낳은 천재와 동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행운을 주신 신에게 감사하고 싶다. 디에고 마라도나야 말로 스펙타클이고 완전무결이었다. 나폴리에게 두 번의 스쿠데토와 UEFA컵 우승을 안겨주고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마라도나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안토니오 마가레야스 (포르투갈 저널리스트)


메시는 현세대 최고의 선수지만 마라도나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전지전능한 존재이다. 이 전에도 이후에도 마라도나에 비견할 선수는 찾을 수 없다. 마라도나보다 우위에 있는건 펠레겠지.

클라우디오 카니자


1위 펠레, 2위 마라도나, 3위 크루이프, 4위 메시, 그리고 그와 동급인 디 스테파노

알피오 바실레 감독 (유일하게 메시와 마라도나 모두 지도해본 감독, 최고의 선수들 뽑으라는 질문에)


웃기는 일이죠. 메시는 최고지만, 월드컵에서 우승한 적이 없습니다. 다른 시대의 선수들을 비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예요. 저는 1978년, 마라도나는 1986년에 우승했고 메시는 그러지 못했어요. 이게 현재 상황입니다.

메시의 가장 큰 불행은 그가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직후에 세대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우상화했던 디에고를 능가하기 매우 어렵다. 메시가 마라도나를 뛰어넘기 위해선 월드컵에서 4회 연속 우승을 해야 할 것이다. 그는 결코 그것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며 월드컵에서 4회 연속으로 우승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세계 챔피언이 아니다. 그는 메시가 얼마나 이기든, 무엇을 우승하든, 작년에 세상을 떠난 마라도나와 비교될 수 없다. 디에고가 한 일에 비해서 말이다

마리오 켐페스


축구 역사상 3대 영웅은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 요한 크루이프입니다. 크루이프는 네덜란드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지는 못했지만, 그는 네덜란드와 세계 축구를 변화시킨 매우 특별한 선수였습니다. 메시가 펠레·마라도나·크루이프 수준에 도달하려면 월드컵에서 우승해야 합니다.

카를로스 빌라르도 (1986, 1990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우승, 준우승을 이끈 감독)


마라도나랑 메시 중 누가 더 잘하냐고? 당연히 마라도나지.

알레한드로 고메스


내가 어린 축구팬이었을 때 마라도나는 나폴리에 있었다. 세리에는 당시 가장 어려웠던 리그였다. 선수들은 골대에서 골대까지 걷어차였고, 수비적인 축구가 대세였다. 그 득점하기 어려운 시기에 마라도나는 나폴리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또한 86년에 혼자만의 힘으로 월드컵을 우승시켰다. 당시 아르헨티나에 좋은 선수들이 많다는 걸 알지만, 내 생각에 그들은 월드컵을 우승할 만큼 뛰어나지는 않았다. 마라도나는 내가 보아온 선수 중 최고였고, 그건 지금도 그렇다. 축구가 변했다는 것은 알지만, 당시 마라도나는 골대에서 골대까지 걷어차였다. 그는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냈고, 그렇기에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다.

폴 머슨


모두가 알다시피 발롱도르는 오직 유럽 선수들에게만 수여하는 상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고 있다. 지난 10년간 누가 진정한 넘버원이었는지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업적을 기리고자 특별한 발롱도르를 선물하기로 했다. 그는 이 시대 축구의 이다

드니 쇼미에르 (프랑스 풋볼 편집장)


마라도나는 막는 방법? 그런 건 없었다. 마라도나는 멈출 수 없다. 내 축구 인생 중 단연 최고의 선수다.

카를로 안첼로티


마라도나가 나를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 경기에 초청했고, 스카이박스에서 경기를 봤다. 마라도나가 스카이박스 발코니로 걸어 나가자 사람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마치 이 내려온 것 같았다. 마라도나와 같이 경기를 봤지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별로 없었다. 마라도나는 경기 내내 판정을 이야기하는 등 무척 바빴다. 마라도나는 환상적인 선수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대단한 사람이었다. 마라도나는 많은 유혹(마약·술 등)을 뿌리치지 못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다.

거스 히딩크 (세상을 떠난 디에고 마라도나를 추억하며)


...TV 방송사들이 가끔씩 틀어주는 월드컵 회고 영상이나 <축구의 영웅들> 같은 프로그램에 펠레는 단골로 보여지지만 저를 가슴 뛰게 하거나 ‘축구의 유일한 지존’으로 느껴지기에는 항상 무엇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펠레를 정의할 때 '축구 탄생 이후 1970년대까지만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축구 선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축구를 보기 시작해서 당시 인기있던 서독 분데스리가에 대해서는 박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까지 축구 매니아였던 저에게 마라도나의 플레이 하나하나는 그야말로 뒷통수를 후려친 충격이었습니다. 그것도 오로지 왼발 하나로만... 공이 발에 착착 달라붙는 부드러운 볼터치, 뒷꿈치와 발바닥, 허벅지까지 이용하는 도무지 예측을 할수 없는 패스들, 두세명 사이를 눈깜짝할 사이에 뚫어내는 드리블, 절묘한 휘어차기 프리킥까지, 마라도나의 모든 플레이에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5만명의 일본 관중들도 마라도나가 볼을 잡을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더군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신동(神童)이란 표현은 저런 데 쓰라고 있는거구나.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감동했던 축구 선수들, 이를테면 루메니게, 본호프, 키건, 시몬센, 심지어 크루이프까지도, 마라도나에 비하면 선수도 아니었다고 말입니다. 그 선수들은 재능은 있는지 몰라도 천재는 아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앞으로의 축구 역사에 마라도나 같은 재능을 가진 선수는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신이 특별히 세상에 내려보내는 인간'은 어차피 단 한명뿐이니까요.

송기룡 (대한축구협회 홍보실장)원문


두 골 먹고 나니 갑자기 '광래 준비! 광래 준비!' 하면서 급히 부르시는 거라. 속으로 '전반전은 버티겠지' 했는데, 골 연거푸 먹으면서 급해지신 거지. 다른 선수들 웜업 시작도 안 했는데, 나만 급하게 숨 올려서 들어간 거예요. 원래 훈련할 때는 내가 선발로 뛰기로 돼 있었어요. 주전으로 계속 뛰던 때니까. 그런데 마라도나라는 존재가 워낙 특별하다 보니 김평석을 먼저 마킹시켰죠. 당시 마라도나는 메시 이상의 폭발력이 있었어요. 우리 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맨투맨으로 마라도나를 못 잡았으니까.

조광래


메시도 너무나 득점을 잘하는 세계 최고의 선수이지만 메시가 기술적으로 아주 두드러지는 선수인 반면, 마라도나가 좀 더 잡기 힘든 선수가 아닌가 생각해요. 파워, 스피드, 기술이 아주 특출난 선수였어요. 키가 작은 마라도나가 상대가 아무리 마크해도 뚫고 나가는, 한 마디로 힘이 있는 선수였습니다.

박창선


그때 마라도나를 본 한국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17분 동안 마라도나가 만들어낸 게 차원이 달랐으니까요. 순식간에 3~4골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교를 하자면 '가장 좋은 날의 메시' 정도로 보고 싶어요. 물론 전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메시가 어떤 선수인지 알고, 어떻게 뛸지도 예상을 해요. 하지만 그때는 마라도나를 처음 겪었어요. 자주 볼 수 있는 선수도 아니었고. '가장 좋은 날의 메시'란 알고도 못 막는 놀라운 유형을 가리키는 건데, 마라도나가 당시 그랬어요. 준비가 안 돼 있었으니 충격은 더 컸죠.

한준희


월드컵만 보면 최전성기였던 마라도나가 더 낫죠. 월드컵에서 6명을 제끼고 골 넣고 파울이 아니면 막지를 못하던 게 전성기 마라도나였어요.[7]

마라도나는 1986년 대회 때가 최전성기였다. 상대해 본 선수 중 최고의 공격수였다. 수비수 두세명은 순식간에 따돌렸다. 워낙 개인기가 특출나다 보니 마크가 쉽지 않았다. 태클을 하지 않으면 정말 막기 힘들었다. 당시 태권수비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정당한 마크였다. 무리한 수비였다면 당연히 퇴장을 당했을 것이다.

타임지 표지에 실리면서 유명해졌죠. 그걸 잘 보면 볼이 무릎 부분에 있었어요. 그걸 걷어낸 것으로 고의적인 파울은 아니었어요. 주심도 경고를 안 줬고요. 개인적으로 참 운이 좋아 요한 크루이프, 베켄바우어와 운동장에서 다 맞붙어봤어요. 그런데 마라도나는 솔직히 어떤 한 선수가 마크하는 게 불가능한 선수였어요. 상대방 중심을 역이용할 줄 알았고, 터치나 그런 게 정말 남달랐죠.

내가 반딧불이었다면 마라도나는 태양 같은 선수였다. 같은 시대에 선수 및 지도자 생활을 한 건 큰 행운이자 영광이었다. 마라도나의 생이 짧다면 짧았지만, 선수로서의 업적에는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 내겐 도저히 잡기 힘든 선수였으며, 그걸 겪어보고 지켜 본 한국 축구에도 큰 가르침을 준 선수였다고 생각한다.

허정무


지금 룰이었으면 서너 명은 퇴장당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그렇게라도 버텨야 했어요. 난 당시 수비에 서서 마라도나의 플레이를 정면에서 생생히 봤어요. 이야, 저 정도 갖다 받으면 부러졌겠다 싶었지. 그런데 태클을 피할 때 몸 중심을 살짝 띄우더라고. 그걸 어려서부터 접해왔던 선수다 보니 상대가 들어올 타이밍을 다 알고 충격을 완화하더만. 그리고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게 무슨 종아리가 우리 허벅지만 한 거야. 나도 한 허벅지 했는데. 가만 보니 정강이 보호대를 앞뒤로 했더라고. 얼마나 견제가 심했으면 저렇게까지 했나 싶었지.

조민국


플라티니가 잘한다 잘한다 했어도, 마라도나는 펠레 이후 처음으로 나온 차원이 다른 선수였어요. 갖고 있는 기술부터 천부적이었죠. 나도 당시 유럽에 같이 있었으니 마라도나를 자주 접했거든. 사실 나폴리에서도 나를 원했었는데. 그때 레버쿠젠으로 선회했더니 그 다음에 마라도나가 나폴리로 떡 하니 가 있더라고. 마라도나는 예견대로 특별한 선수였어요. 연습장에서부터 난리가 났죠. 훈련에만 6만 관중이 들어찼다는 얘기가 이탈리아 언론을 통해서 퍼졌어요.

내 생각에 마라도나는 펠레 이후에 등장한 천재적인 월드 스타다. 펠레 이후 그와 같은 선상에 놓인 선수가 마라도나였다고 생각한다. 마라도나와 같은 선수가 다시 나오기는 힘들다. 천부적인 선수다. 모두가 생각하는 플레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생각하지 못한 플레이와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 선수다. 아무나 할 수 없는 플레이다. 유럽에서는 마라도나처럼 축구를 하는 선수가 없었다. 비슷한 테크닉을 가진 선수라면 미셸 플라니티와 지네딘 지단을 꼽을 수 있겠지만, 마라도나와 다르다. 리오넬 메시와도 다르다. 마라도나만이 할 수 있는 플레이가 있었다

차범근


허정무 선배가 그때 몸이 아주 좋았어요. 근성도 있었고. 하물며 별명도 진돗개 아니야.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부딪혔으면 일어나지도 못했을 거예요. 마라도나는 진짜. '악' 소리 지르면서 쓰러지는데, 무슨 곰 한 마리가 누워있는 것 같더라고. 저런 몸을 갖고도 어떻게 그렇게 민첩할까 싶었죠. 후반 20분경부터 이 선수를 마크했는데, 어찌나 힘들던지. 그 옆에 딱 붙어서는 일부러 호흡 참고 그랬다니까요. 그것도 고지대에서 말야. 정말 죽는 줄 알았지. 볼이 반대편으로 가면 그제야 참았던 숨 몰아쉬고요. 왜 그랬냐고요? 힘든 거 들키면 걔가 더 기 살아서 날뛸까봐.

박경훈


진짜 거짓말 아니고, 나는 곰 새끼가 지나가는 줄 알았다니까. 사람이 아니더라고.

마라도나를 상대한 어느 국내 축구인의 회고.[8]


Q: 지, 네가 생각하는 역대 최고의 선수 세 명을 말해봐.

A: 마라도나, 파트리스 에브라, 그리고 이영표.

Q: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말해줘. 왜 마라도나를 1등이라고 생각해?

A: 왜냐하면 내가 어렸을 때, 마라도나의 영상을 봤고 그에 대한 책도 읽었거든.(후략)

박지성, 리오 퍼디난드와의 1:1 인터뷰에서 발췌.


(연습 도중 안토니오 카사노에게) 백힐 패스를 계속하지 마라. 너는 마라도나가 아냐.

파비오 카펠로


사람들은 평생 한번의 기적을 목격하곤 하지만 대부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그 기적을 목격했다. 1969년 비가 오는 토요일에 8살이라는 나이가 믿겨지지 않는 아이가 공을 가지고 내 평생 한번도 본 적 없는 것들을 하는것이다.

프란시스코 코르네효 (마라도나를 발굴한 아르헨티노스 유스 코치)


그는 최고이다. 그는 전지전능한 신이다.

나는 그를 내 아들처럼 사랑했다.

아르헨티나 시민들, 마라도나의 은퇴 경기에서.


가장 재능있는 선수 가운데 하나로 눈부시고, 악명 높고, 특별하고, 천재적이지만 흠결이 있는 축구 영웅으로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았다.

BBC


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것뿐이다. 국민에게 이렇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또 얼마나 될까? 고맙다고 말하고 싶을 뿐.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세상을 떠난 디에고 마라도나를 추모하면서)


그는 공 하나로 나라를 행복하게 한 소년이에요. 정치인들도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는데, 그는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었어요.

15년 전에 아들을 잃었어요. 마치 또 한 명의 아들을 잃은 것 같아요.

마라도나는 많은 기쁨과 행복을 안겨주었습니다. 전 세계 축구계는 위대한 영웅을 잃었습니다.

마라도나를 아버지만큼 사랑했기 때문에 마치 아버지를 잃은 것 같다.

그는 아르헨티나를 전 세계에 알려지게 했다.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준 위대한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세상을 떠난 마라도나를 추모하는 아르헨티나 시민들의 말.


나는 53살이고 마라도나는 내 인생의 전부였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아마도 8,9 또는 10살- 나는 처음으로 그를 보았고 그 당시 그는 16살 또는 17살이었다. 어떤 영상에서든지 그는 공으로 저글링을 하였고 그 순간부터 나에게 있어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였다. 세계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펠레, 마라도나, 리오넬 메시 -한 명의 브라질 선수와 두 명의 아르헨티나 선수- 가 이와 같다고 본다. 그리 멀지 않았던 과거에 나는 그의 다큐멘터리를 봤었다. 디에고는 센세이셔널했지만, 마라도나는 약간 고전했었지. 솔직하게 말하겠다. 난 디에고와 마라도나 둘 다 그리울 것이다.

위르겐 클롭 (현 리버풀 감독), 마라도나의 사망 후 예정된 아탈란타 BC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 전 BT 스포츠와의 인터뷰 중.


조금의 거리를 둔다면, 내 세대 최고의 선수이자, 역대 최고의 선수중 한명인 선수. 축복받았지만, 역경도 많았던 그 삶. 마침내 신의 손위에 올라 평안을 찾길 바란다.

게리 리네커


마라도나에 대해선 나쁘게 말할 수 없죠. 그를 욕한다면 을 욕하는 건데 저 위에 계신 신을 욕할 수는 없잖아요?

나폴리에게 우승을 안겨다준 후, 그에 대한 나폴리팬의 말.


오빠는 열다섯 살 때부터 자기 인생이 없었어요. 다른 사람이 됐죠. 항상 모든 걸 챙겼어요. 그런 명성을 얻는 건 무거운 짐이었죠. 하지만 항상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어요. 가족을 개입시키지 않으려 했죠. 그는 항상 영웅이었어요. 하지만 혼자 다 해낼 순 없었죠.

마리아 마라도나


그의 삶은 대단한 동시에 끔찍했죠. 디에고는 마라도나와 상관없었는데 마라도나는 디에고를 어디든 끌고 다녔죠.

페르난도 시뇨리니 (마라도나의 개인 트레이너)


마라도나는 역사상 최고였다. 난 나이 때문에 그의 플레이를 라이브로 보지 못했지만, 이후 그를 만나서 행운이었다. 그는 많은 소년들이 축구선수가 되길 이끈 선수였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뛰면 마라도나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진다. 그는 아르헨티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람이고 아르헨티나에서 마라도나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단순히 축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로드리고 데 파울 #


나폴리에서의 이야기가 그의 인생 이야기예요. 반항아, 속임수도 쓰고... 영웅, , 아마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였을 거예요.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죠. 이후의 모든 일은 끝이 안 좋았죠. 축구선수로서 마라도나는 끝났고 그의 신화만이 살아남았죠.

다니엘 아르쿠치 (스포츠 기자)


메시와 마라도나를 묘사할 적절한 단어를 찾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메시와 마라도나는 수준이 다른 선수들이다. 메시는 세계 최고 선수 중 한 명이지만 마라도나는 축구 자체를 의미한다.

프란체스코 토티


우주적인 연.

빅토르 우고 모랄레스 (아르헨티나 캐스터)[9]


[1] (2020년 5월 인터뷰에서) 원문[2] 요한 크루이프축구에 대한 이해도는 역사상 따라올 사람이 없고,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마인드로 유명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예외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다.[3] 리오 퍼디난드와의 1:1 인터뷰에서 발췌[4] 월드컵 당시 포클랜드 전쟁으로 인해 아르헨티나에 감정이 전혀 좋을 리가 없는 잉글랜드 사람인데도 마라도나를 최고라고 치켜세우면서 인정했으니 할 말은 다한 셈이다.[5]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지아니 브레라'와 더불어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가장 유명한 저널리스트로 당시 3위에 마라도나를 놓았지만 1999년 같은 주제로 뽑았을 때는 2위에 놓았다.[6] 챔피언스 리그 첼시전 직전의 기사[7] 2010년 8월 무릎팍도사에서 메시의 실력이 마라도나의 전성기를 뛰어넘는 정도?라는 질문에[8] 출처[9] 1986년 당시 세기의 골을 넣을 때 마라도나를 묘사한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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