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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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배영수


1. 개요
2. 코치 경력
2.2.1. 2023년
2.3. SSG 랜더스 투수코치



1. 개요[편집]


배영수의 지도자 경력을 다루는 문서.


2. 코치 경력[편집]



2.1. 두산 베어스 코치[편집]



파일:두산베어스배영수코치.jpg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두산 베어스 코치 시절

2020 시즌부터 두산 베어스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보직은 2군 투수보조코치.

두산의 투수진에 이용찬, 크리스 플렉센, 함덕주 등 부상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홍건희, 김민규, 채지선, 이승진, 권휘 등 여러 유망주들이 빈자리를 채워주면서 중위권 싸움이 계속되자 2군 코치인 배영수를 좋게 평가하는 팬들이 많아졌다.[1]

2020년 플레이오프 시작 전에 김원형 투수코치가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내정되는 바람에 불펜코치였던 정재훈이 투수코치가 되어 1군 불펜코치로 보직을 이동했다.

2021~2022 시즌에도 1군에서 불펜코치를 맡으며 동시에 보조 투수코치 역할을 겸했다. 2021년에는 대체 선발 요원으로 낙점한 박종기, 박정수 등이 부진한 탓에 기존에 불펜에서 이닝 이터를 해주던 김민규, 김명신 등이 애니콜처럼 등판하고 부진한 유희관이 계속 선발로 나오는 등 투수진의 피로와 혹사가 누적되었지만 2022년에는 아리엘 미란다가 부상을 입고 광탈하면서 5선발 자리를 잡게 된 최승용의 선발 전환 훈련을 도와주거나[2] 정철원이 투심을 장착하며 필승조로 1군 등록과 동시에 승격하고[3], 김명신이 결정구로 포크볼을 새롭게 전수하는데 임창민과 함께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4]

두산에서 지도자로 활동하는 동안 최원준, 곽빈, 최승용 등을 선발진에 안착시켜주고 홍건희, 이승진, 정철원, 김명신, 김민규, 권휘, 김동주, 박웅, 전창민, 이병헌 등 다양한 불펜진을 구축하는 데 있어 2군에 있던 권명철[5], 김상진 코치와 함께 큰 기여를 했다. 두산의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지목되던 불펜진을 그럭저럭 안정적인 운용이 가능할 정도[6]까지 보강할 수 있었던 데는 배영수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는 평이다.[7]

2022년 10월 11일, 두산이 김태형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는다는 기사가 뜨고 같은 날 배영수 코치도 재계약하지 않고 팀을 떠난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8][9] 기사 내용에 의하면 타 팀의 코치 제의를 받고 이적을 앞둔 상황이라고 한다. 그리고 두산은 배영수 코치의 빈 자리에 키움에서 활동하던 박정배 코치를 영입했다.[10]

재계약했다면 다른 호세를 만날 뻔 했다.


2.2. 롯데 자이언츠 코치[편집]


2022년 10월 12일, 롯데 자이언츠의 1군 투수코치로 영입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배영수의 칠성초-경복중 1년 후배인 성민규 롯데 단장이 꼭 롯데의 투수코치로 와줬으면 좋겠다며 간절하게 요청하는 바람에 롯데행이 이뤄졌다고 한다.[11] 이후 몇달 지나지 않아 두산에서 방출된 윤명준, 현도훈, 안권수가 롯데에 재영입되면서 재회하게 되었다.

선수생활 동안 롯데를 상대로 유독 강했던데다 호세의 참교육 사건, 한화 시절 부정투구 논란 등 롯데하고 이런저런 악연이 있었다 보니 배영수가 롯데의 코칭스태프로 합류하는 것에 팬들은 오묘한 반응을 보이는 중이지만, 두산에서도 여러 투수들을 키웠다 보니 대부분 환영하는 분위기고, 팀의 여러 유망주 투수, 특히 김진욱이민석, 윤성빈, 이강준을 잘 키워주길 바라고 있다.

한편, 롯데의 투수코치로 합류한 바로 다음 날부터 지옥훈련을 예고했다.#,## 팬들은 롯데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적은 훈련량에 의한 부진한 성적에 지쳐 있던지라 배영수의 방침을 환영하고 좋아하고 있다.

실제로 첫날 마무리 훈련에서 이강준의 불펜피칭을 보고 그렇게 던질 거면 마운드 올라오지 말라는 불호령을 내릴 정도로 고강도의 훈련시키고 있다.3분 49초부터[12] 또한 김진욱 등 유망주들에게 불펜 피칭보다 사직 마운드 위에서의 피칭이 익숙해지도록 주문하면서 선수들의 성장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평을 받았다.

한편 롯데 코치와는 별개로 2022년 11월 4일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대비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불펜코치로 합류했음이 밝혀졌다.#


2.2.1. 2023년[편집]


시즌이 시작되고는 잠깐 욕을 먹다가 호평을 받았었다 . 4월 초반에는 최준용과 이민석이 부상을 당하고 불펜 선발 가리지 않고 난타당하면서 평가가 바닥을 쳤으나, 4월 말에는 나균안을 제외하고 선발진의 성적은 여전히 안좋으나 불펜진들이 호투하기 시작하면서 연승을 이끌어냈다. 이제까지 제구가 들쭉날쭉해 부진했던 김진욱이 갑자기 제구를 잡아가며 안정적으로 호투를 이어나가고 있어 이 부분은 좋은 평가를 받는다.

특히 타 팀에 비해 시원시원한 투수교체로 만루가 되기 전에 빠르게 다음 투수를 올려 조기에 진압해버리는 전략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 투수교체를 배영수가 전담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팬들의 칭찬이 이어지고 있다. 4월 1달간 스트레일리, 반즈의 심각한 부진으로 전반적인 투수 운용 계획이 꼬였지만[13] 특유의 불신야구(...)로 흔들리는 투수는 반 박자 빠르게 내려버리는 방식을 사용 중인데, 이게 잘 먹혀서 4월 30일 롯데의 13년만의 단독 1위에 기여하였다. 투수교체를 삼성한화에서 배워왔다는 드립이 돌고 있다

이후 5월 들어서는 선발투수들이 다소 부침은 있지만 잘 던질 때는 크게 호투하고 5월 말에 스트레일리와 박세웅의 기량까지 돌아오면서 전반적인 투수진 성적 자체가 향상되었다. 계속 불펜야구만 하면 나중에 투수들이 퍼지기 때문에 이 부분을 걱정하는 팬들이 있었는데 선발진을 빠르게 안정시키면서 이러한 논란을 잠재웠다.

5월 21일 SSG전을 앞두고 몸살 증세로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23일 NC전에 복귀 예정이며 대신 강영식 불펜코치가 투수코치를 맡고 김현욱 트레이닝 코치가 불펜코치를 맡았다.

그가 경기에서 제외된 21일 승부처 상황에서 김원중 대신에 이태연을 기용하는 이해할 수 없는 투수 기용을 선보인 끝에 패배하며 투수코치 배영수에 대한 평가가 더욱 올라갔다.

5월 27일에는 당연히 팀의 승리가 확실시되는 6점차 리드에 마지막 9회 말인 상황에, 신인 진승현을 마운드에 올렸다가 진승현이 불을 지르며 결국 윤명준-김원중까지 출격하게 만들었다.

5월까지는 팀성적도 좋았고 5월 내내 투수진들이 선발 불펜 모두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6월 들어서 팀이 크게 부진하고 특히 투수진이 선발 불펜 가리지 않고 흔들리고 있다. 이 위기를 어떻게 넘어가느냐가 평가를 좌우할듯.

6월 11일 삼성전에는 9회에 올라온 김도규를 1점차로 리드중인 10회에도 올려 멀티이닝을 가져가게 하였고, 결국 선두타자에게 2루타를 맞고 이후 번트성공과 안타를 맞아 동점을 허용했다. 어느덧 투구수는 30개를 넘어섰고 직구 구속이 130후반대가 찍히는 상황까지 이르렀지만 서튼과 배영수는 계속해서 방치하였고 결국 강민호에게 역전 2점홈런을 맞고 팀은 패배하게 된다. 남은 불펜투수가 없던것도 아니고 최근 폼이 좋은 진승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연투인 김도규를 멀티이닝을 시키고 투구수가 30개가 넘었는데도 방치해 많은 비판을 받고있다.

6월 19일 KT전에는 경기 초반에 흔들린 이후 안정감을 찾은 스트레일리가 5이닝까지 84구로 끊었음에도 6회에 한현희를 올렸고 곧바로 볼넷과 4안타로 난타당하며 승기를 내주었다. 불신야구를 외쳤음에도 한 이닝에만 5출루를 허용하는 동안 투수 교체를 시도하지 않았고, 결국 동점을 허용한 이후에야 투수를 교체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온 김진욱이 곧바로 적시타를 맞으며 기어코 역전을 허용했다.

6월 27일, 퓨처스 총괄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롯데 측은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고 언급했지만, OSEN에서 서튼 감독과 코치 사이에 보직 이외의 일로 마찰이 있었다는 항명 사태가 있었다고 기사로 내면서 항명 사태를 주도한 인물이 배영수가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14]

7월 14일 사직야구장에서 펼쳐진 퓨처스 올스타전에 남부리그 팀 덕아웃에 자리를 함께하면서 오랜만에 모습을 보였는데, 인터뷰로 "그저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라고 하면서 일단은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현재 팀 분위기가 좋지 않은 와중에 본인 역시 2군에 사실상 징계성으로 내려와 총괄 코치를 하고 있는 만큼 우선 맡은 바 역할을 시즌 끝까지 묵묵히 해낸 후 시즌이 종료되고 나면 그제서야 해당 사태에 대한 코멘트를 할 것으로 보인다.

시즌이 끝난 뒤에도 여론은 꽤 나쁘지 않다. 2군으로 강등된 뒤에도 키운 투수가 없다고 비판하는 팬들도 있으나 갑작스러운 2군 강등이라 참작할 여지가 있다고 보고 유임하기를 바라는 여론이 많다. 특히 10월 들어 김태형 감독의 롯데 부임설이 화제가 되는 와중에 만약 김태형이 롯데 감독으로 부임한다면 1군 코치로 복귀할 확률이 높다.

결국 김태형 감독이 선임됨에 따라 1군에 복귀할 확률이 높아졌다. 다만 야구부장의 크보 핵인싸가 진행한 라이브 방송으로 롯데의 코칭스태프 물갈이와 함께 배영수의 구단 내 평가가 안 좋다는 게 전해지면서 거취가 오리무중에 빠졌다. 일단 시즌 뒤에 진행된 이종운 감독대행을 포함한 코치진 물갈이 과정에서는 살아남았는데 그 과정에서 부임할 때 2년 계약을 맺었다는게 알려졌다.

이후 10월 24일 김태형 감독의 취임식 때 김태형 감독이 88번을 사용하며 등번호를 교체하게 되었다. 또한 주형광이 1군 투수코치로 복귀함에 따라 2024시즌에도 2군 총괄코치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11월 11일, 단독 기사를 통해 스카우트팀으로 이동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스카우트팀 전보와 동시에 자매구단인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는다고 한다.


2.3. SSG 랜더스 투수코치[편집]


하지만 11월 23일 중앙일보에서 SSG 랜더스 1군 투수코치로 이적한다는 단독보도가 나왔다. 당초 롯데에서 스카우트팀 전보 및 일본 연수가 계획되어 있었다 보니 롯데 팬들과 SSG 팬들도 당황스럽다는 여론이다.# 이후 나온 기사에 따르면 이숭용 SSG 신임 감독이 배영수를 투수코치로 영입해 달라고 요청했고, 마침 롯데에서 제안한 스카우트팀 전보 및 지도자 연수를 두고 고민하던 중 코치 경력을 이어나가는 걸 선택했다고 한다. 이에 롯데 측도 배영수 코치의 의사를 존중해주겠다고 하여 SSG로 이적하는 걸 허락해줬고, 두 구단 간 협상과 양해를 통해 최종적으로 선임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한다.

[1] 특히 이승진에게 평균 구속을 10km/h나 올리는 지옥훈련을 부여하면서 이승진을 1군 필승조는 물론 포스트시즌 마무리 투수까지 맡길 수 있는 투수로 키워냈다.[2] 최승용은 스프링캠프에서 선발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전반기와 후반기 미란다, 이영하의 이탈로 인해 구멍이 난 선발진을 그럭저럭 잘 메꿔줬다.[3] 결국 정철원은 데뷔 첫 시즌에 72.2이닝을 소화해 23홀드를 달성하며 12년 만의 두산 소속 신인왕을 거머쥐었다.[4] 김명신은 전반기에는 애니콜 모드였으나 구위의 상승과 결정구 장착이라는 시너지 효과를 통해 후반기 선발진으로 재합류한 최승용의 자리에 올라와 준필승조 역할을 해줬다.[5] 다만 권명철 코치는 1군에서는 평가가 매우 나쁘다. 육성 능력은 좋은데 운영은 못하는 케이스.[6] 김경문의 오랜 혹사로 인해 두산의 최대 약점은 V6를 달성한 2019년까지도 불펜으로 지목될 정도로 뎁스가 영 좋지 못했다.[7] 투수진이 완전히 침몰해버린 22시즌도 사실 시즌 개막 이전까지만 해도 김태형 감독이 시즌 구상을 하면서 투수진 구축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아리엘 미란다가 데드 암으로 누워버리면서 선발진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 자리를 불펜 요원들로 돌려막기를 하다가 김강률, 임창민 등이 5월 이후 부상으로 빠지고 중도 합류한 박치국, 이현승도 오래 활약하지 못하고 부진하는 등 혹사와 이탈이 연달아 발생하는 바람에 결국 투수조에 완전히 구멍이 나버린 것이 함정. 22시즌 두산만큼 선발-불펜 구상이 좋았음에도 폭망한 사례는 두산은 물론 타 팀을 찾아봐도 극히 드물다.[8] 배영수가 롯데로 이적하고 이틀 뒤 삼성 시절 동료이자 대선배인 이승엽이 두산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아쉽게도 이들의 재회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배영수 본인에 의하면 승엽이 형이 두산 감독으로 온다는 말이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며 자신은 이승엽이 두산 감독을 맡는게 확정되기 전에 이미 롯데 코치로 옮기는 게 확정됐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9] 이승엽과 배영수는 경북고 5년 선후배 사이로 고향팀 삼성 라이온즈에서 오랜 기간을 함께하여 친분이 매우 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삼성에서 36번을 달았던 이승엽이 25번을 달고 삼성에서 25번을 달았던 배영수가 36번으로 서로의 번호를 바꿔 달았을 정도로 친하다.[10] 참고로 박정배는 현역 선수 시절 이후 10년 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온 셈.[11] 둘은 서로 욕까지 편하게 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다.[12] 후에 커뮤니케이션 미스로 인한 해프닝이었다고 이강준이 말했다. 본인은 5초 안에 던지란 말이 빨리빨리 던지라는 의미인줄 알았으나 사실은 집중해서 잡생각없이 던지라는 의미였다고.[13] 이 때문에 4월 초반 대량 실점이 많아 4월 종료 기준 1위로 등극했지만 투수진은 꼴찌다.[14] 단, 6월 27일 현재 롯데의 팀 평균자책점이 4.36으로 8위인지라 성적 문제도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이 모든걸 투코 한명에게만 독박 씌우기에는 팀 타선 및 수비 또한 같이 무너지면서 팀 밸런스가 깨진 것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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