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촌야도/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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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1990년대 이후



1. 개요[편집]


대한민국여촌야도(우촌좌도) 현상에 대해 서술한 문서이다.


2. 역사[편집]


한국은 여촌야도의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지만, 미국, 서유럽과 비교 시 여도야촌이 되기도 하며 여촌야도라도 세부적인 사정은 다른 경우도 있다.

8.15 광복 이후 1960년대까지는 서울을 비롯하여 부산, 대구 등 도청 소재지급 대도시에서는 야당이 우세하고, 군 지역에서는 여당이 우세한 지형이 이어졌다. 그래서 지금 정치 지역 구도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물론 한국의 초창기 현대 정치사는 일제강점기로부터의 해방과 6.25 전쟁 이후 강화된 반공 성향과 후진 정치 의식 등으로 인해 정치깡패들이 난립할 정도로 관권 선거와 혼탁 양상이 심한 편이었고, 정당 스펙트럼도 원체 제각각이라 하나로만 설명하긴 어려운 부분도 있긴 했지만, 도시화율이 20~30%대에 머무르던 시기라 농촌을 쥔 여당이 조금이나마 더 유리한 구도를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었다. 이 구도는 1960년 4.19 혁명 직후 치른 이른바 혁명 총선[1]이 터지면서 깨지게 된다.

다만 알다시피 1년만에 쿠데타로 정권이 뒤집어지며 군부정권이 집권하게 되고 형식상으론 민간 정부로 이양되었지만 그래도 박정희 중심의 군부 출신 인사들이 대거 들어온 당시 여당과 야당 정치인들 간의 다툼이 벌어져 1970년대 전반기까지도 여촌야도의 대표적인 표본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이후 이촌향도 현상이 본격화되면서 도시 지역에 농촌 인구가 유입되었고, 이로 인해 도시로 유입된 농촌인구가 보수적인 성향을 그대로 보여줘 도농간 격차가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1973년 총선 당시 공화당의 득표율이 1971년 총선 당시의 48%에서 38%로 10% 가량 폭락해버렸다.

군부독재가 끝나고 민주화가 된 시기에 치러진 1988년 총선에 이르기까지 보수정당의 득표율이 최대 38%대에 그쳤던 점이나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이 많던 도시 지역에서 군부정당이 약세를 나타났다는 점이나 청년 인구의 대대적인 유출로 농촌 지역의 고령화가 훨씬 빠르게 진행되면서 보수 성향이 어느 정도 고착화된 면이 있기에 실상은 세대별 투표구도가 강하게 작용되었다고 보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주요 도시에서 세대구도보다 지역구도가 힘을 크게 발휘하기 시작하며 기존의 도-농 대결 구도에서 민주화와 1990년 3당 합당 시기[2]를 기점으로 경상도vs전라도 대결 구도로 바뀌어 감에 따라, 경상도에서는 부산, 대구 등 대도시에서도 여당이 우세를 점하고 반대로 전라도에서는 농촌 지역에서도 야당이 우세를 점하는 지역주의적 투표가 일어나게 된다.

그나마 수도권은 이전의 세대별 투표경향이 어느정도 유지되었으나 1990년대는 김영삼으로 대표되는 개혁보수 세력이 보수진영의 헤게모니를 쥔 시절이라 도시권에서도 보수정당이 어느정도 세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울, 인천, 수원 등 대도시 지역구들과 여주, 강화, 안성 등 농어촌과 최전방 지역구들에서는 우촌좌도 형태를 봐야한다.


2.1. 1990년대 이후[편집]


사실 한국 정치사는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 봐야 좀 더 상식적인 설명이 될 것이다. 물론 임정 시기대한민국 제2공화국 시기도 있지만 임정 시기에는 중국 대륙에 망명한 신세여서 민주주의 정부지만 총선을 치를 여건이 안 된 상태이고, 대한민국 제2공화국4.19 혁명과 연계되는데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무너져서 예외로 봐야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초창기엔 전라도대구경북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여촌야도가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 이후 초거대여당 민자당이 출연하면서 여촌야도는 희미해지고 김대중의 평민당이 전라도를, 민자당이 나머지를 차지하는 지역주의가 강해진다. 이후 지역구도가 중심이 되고 여촌야도는 지역 내에서 지지율 차이가 약간 나는 수준까지 희미해졌다.

여전히 민주당계는 전라도 도시와 농촌 모두에서 지지율이 높았으며, 보수정당은 경상도 전역에서 지지율이 높았다. 수도권 역시 총선 기준으론 대도시권 내에서는 민주당이 좀 더 유리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선 등을 종합하면 경합 지역 수준이었다.

여촌야도가 1990년 3당 합당 이후 희미해졌던 이유는 당대 정치권이 진보, 보수로 나눌 성질이 아니었기 때문도 크다. 당장 당시 김영삼은 보수정당의 헤게모니를 쥐고 과거 군부 잔재를 청산하는 등 군부 세력과 척을 지고 있었고, 되레 김대중DJP연합 등을 하며 구 군부 세력에 러브콜을 보내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덕분에 1996년 15대 총선에선 구 민중당 출신 이재오 등 성향을 가리지 않는 개혁 신인들을 대거 영입한 신한국당이 서울에서 간만에 승리하고 부산도 압승했지만 오히려 대구에선 자민련과 무소속에게 털리는 등 특기할 만한 행보를 보였다.

2000년대 들어선 민주당이 부산, 울산, 창원, 양산, 거제, 김해 등 부울경 동부 대도시권에서도 반응을 얻기 시작하며 조짐을 보이더니 2010년대 이후로는 지역주의가 완화하고 여촌야도 성향이 다시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그 출발은 17대 총선으로, 당시는 야권[3]이 탄핵의 역풍을 맞아 일부 텃밭을 잃어버렸으며, 일부 경상도 도시와 충청도 농촌에도 열린우리당이 당선자를 냈다. 물론 대구, 경북에서는 보수 정당이 당선되기는 했지만 그 때부터 부울경 동부 지역에서 민주당이 어느 정도 자리잡기 시작했다.

예컨대 지난 2012년 각각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 그리고 2014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농촌과 어촌 지역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도시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우세했다. 또한 이런 여촌야도 현상은, 기존의 경상도, 전라도 중심의 지역 대결 구도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경상도부산, 대구 등 대도시에서 야권 지지율이 크게 높아진 것이 그 예이다.

반면 전라도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이 대결 구도가 희석되었는데, 도시 지역인 순천시 선거구에서 2014년 재보궐 선거와 2016년 20대 총선을 연달아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전라북도 전주시의 한 지역구도 덤으로 얻었다. 물론 이는 지역구에 밀착한 인물들 덕이다.

2016년 총선은 여촌야도 현상이 상당히 두드러진 선거였다. 특히 부울경 대도시권에서 민주당 후보나 진보정당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2012년 총선 때는 잘 드러나지 않았으나 2016년 된 이후 드러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때는 친박 - 비박의 갈등이 심해서 대구경북에서도 새누리당이 사실상 패배한 시점이었다.

2017년 대선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5당 구도하에서 치러진 선거[4]였고, 궐위에 의한 선거였기 때문에 여촌야도로 묶어서 평가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 때는 경북 북부에서도 자유한국당이 2위로 밀리고 더불어민주당이 1위를 차지했던만큼 보수 정당의 입지가 매우 약화된 시점이었다.

물론 보수정당 후보가 민주당계 후보에게 강원과 부울경에서 대선 결과와 비슷한 결과를 도출했고, 대구경북에서는 과반 득표도 실패했지만 이는 중도를 표방하던 국민의당과 보수정당에서 분열되어서 나온 바른정당 등으로 보수표가 갈린 탓도 있었다.

실제 민주당계 후보의 경우 전국 득표율이 40%대 초반에 머물러 어찌 보면 15대 대선의 재림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어차피 그 표들이 제1보수정당 후보에 갈 일은 없었기에 그 때보다 보수정당을 지지하던 사람들의 표가 확실히 줄었다는 것은 눈에 보인 선거였다. 이는 자유한국당+바른정당의 득표율이 전성기 한나라당새누리당에 비교해봐도 매우 적다.

2017년 대선 이후로는 민주당계 정당이 그야말로 독주를 하고 있던 형국이었기 때문에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정계개편으로 인해 다시금 1:1 보민 구도가 이루어질 때 이른바 민주당계 정당의 도시강세와 보수정당의 농촌강세가 두드러지게 될지 함부로 알 수 없는 사안이었다.

선거 결과 도시에서 민주당계 정당이 승리한 것은 물론, 농촌까지 민주당계가 상당수 승리해서 우촌좌도가 무색해졌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이 경상남도 지사 선거에서 김태호의 기반인 거창-합천-함양 등 서부 농촌지역도 어느 정도 득표율을 확보했고 인구가 많은 동부 지역은 아예 싹쓸이 한 셈이다. 그리고 대구-포항-구미-경산 등 경북 남부 대도시권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확보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우촌좌도 성향이 근래 가장 두드러진 선거였다. 전라도 내 농어촌 지역이 혁신 성향의 민주당에 표를 준 것과 대구경북통합당에 표를 준 것을 제외하면 농촌 지역에서는 보수계열 정당에, 특히 수도권, 부울경 등의 도심 지방에서는 민주당계 정당에 표를 주는 경향이 관측되었다.

반면 20대 대선에서는 이 구도가 많이 희미해졌다. 서울경기도보다 보수정당이 우세했고, 대구도 경북 북부 농촌 지역보다 보수 정당이 우세했으며[5], 부산, 울산, 창원 역시 경남 서부 농촌 지역보다 우세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강원도나 경상도, 충청도의 농어촌 지역은 보수가 우세한 경향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서울 강남3구, 양천구, 부산 해운대-수영-동래-남구 등 부촌이나 중산층 거주지에서도 원도심에 비해 보수가 더 많은 표를 득표했다. 부촌과 촌락은 보수정당, 소위 시내 등 중산층-서민 도시는 민주당의 구도가 보인 선거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농어촌 같이 완전한 촌락은 보수정당 지지세가 여전했지만, 도시 내부적으로 보면 상대적으로 더 발전된 지역일수록 보수정당 지지세가 강했다. 예를 들어 원도심인 부산 중구 - 동구동부산 지역보다 국민의힘의 득표율이 낮고 성남 수정구 역시 분당구보다는 더불어민주당이 더 많이 득표했다.

이는 부동산 문제로 인해 집값이 비싸고 고소득층이 많이 사는 지역일수록 보수정당이 유리했다고 보면 된다. 전라도의 경우에도 여촌야도가 반대로 나타나서 광주, 여수, 순천, 광양보다 전남 그 외 지역의 이재명 득표율이 높았는데, 이는 젊은층이 상대적으로 민주당 몰표가 덜했기 때문이다.

이어 치러진 8회 지선에서도 도시인 서울에서 보수여당이 승리하고 오히려 경기도 내 대도시권에서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 반면 충청도, 강원도의 경우 예전처럼 시골일수록 보수여당 지지세가 강했다. 물론 경기도 최전방이나 농어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약하긴 했지만 득표 차이가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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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3.15 부정선거의 영향으로 자유당이 몰락하면서, 농촌을 포함한 전 구역을 민주당이 휩쓸었다. 아무리 여촌야도나 지역주의가 있더라도 국가를 뒤집어 놓은 수준의 문제가 터지면 그런 구도는 크게 약화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다.[2]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구 지역에서도 민주정의당신한민주당의 의석이 같았고, 부산은 야당의 압승이었다. 심지어 관권선거가 판치던 당시였음에도 그랬다.[3] 당시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민련 등.[4] 물론 득표율상으론 1강(더불어민주당), 2중(자유한국당,국민의당) 2약(바른정당, 정의당) 체제긴 했다.[5] 다만 20대 대선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이 지역 출신인 이재명이였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이재명의 고향인 안동시에서는 약세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약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