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동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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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별궁
계동궁
桂洞宮




위치
한성부 북부 관광방 계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75[1])
건축시기
미상
철훼시기
미상


파일:2017-10-08 15-32-24.jpg

《문화컨텐츠닷컴》에서 제작한 〈계동궁 배치도〉. '이재원집'이 계동궁이다.
1. 개요
2. 역대 종주



1. 개요[편집]


조선의 궁가. 이름은 이름에서 따왔다. 사도세자의 서2남이자 연령군의 양손자 은신군제사를 받드는 종손인 완림군 이재원[2] 집이며 이후 사손(嗣孫)들도 계속 이 곳에서 살았었다. 그래서 이 곳이 연령군 가문종가가 되었다.

1884년(고종 21년) 12월 5일, 갑신정변 이튿날에 고종이 잠시 이곳으로 피신했다. 고종은 처음에 경우궁으로 갔다가 겨울철 난방 시설이 변변치 못해 경우궁을 떠나 이 곳으로 다시 옮겼고, 이어 새로운 개화파 정부의 요인 명단을 여기서 발표했다. 집주인 이재원도 이 때 영의정 벼슬을 받았다.

계동궁에는 완림군 이재원, 이기용(이재원의 아들), 이해청(의친왕의 7남으로 이기용의 양자)이 3대에 걸쳐 살았다.

이기용이 언제 계동궁을 떠났는지는 모르나, 1945년 10월 이전인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그해 10월 5일 자 〈매일신보〉 기사에 이기용의 소재지가 정동 18번지로 나왔기 때문이다.[3]

계동궁은 1960년대에 철거되었으며, 그 자리에 현재는 현대건설 사옥이 들어서 있다.

파일:P3260064.jpg

현대건설 사옥 앞에 있는 계동궁 터 알림 표지석


2. 역대 종주[편집]


1. 연령군 이훤(延齡君 李昍)
2. 낙천군 이온(洛川君 李縕)
3. 은신군 이진(恩信君 李禛)[4]
3. 남연군 이구(南延君 李球)
4. 흥녕군 이창응(興寧君 李昌應)[A]
4. 완림군 이재원(完林君 李載元)[5]
5. 이기용(李埼鎔)
6. 이해청(李海淸)[A][6]

이후의 계대는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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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 지번주소로는 종로구 계동 147번지.[2] 쉽게 말해서 흥선대원군의 조카이자 고종의 사촌형.[3]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북촌 11가의 오래된 기억》, 2019. p.35, 67[4] 사후 봉사손 지명.[A] A B 아버지(법적 기준)보다 먼저 죽었다.[5] 여기서부터 계동궁이란 이름을 썼다.[6] 황실 이름은 이광(李鑛), 아명은 이형길(李亨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