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용상
덤프버전 :
분류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관료, 정치인이다. 본관은 능성(綾城).
재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구흥남은 그의 5촌 당숙(堂叔)이다.[3]
2. 생애[편집]
1935년 9월 19일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아버지 구교복(具敎福, 1900 ~ 1983. 1. 30)[4] 과 어머니 담양 국씨(潭陽 鞠氏, 1897. 3. 11 ~ ?) 국부열(鞠富烈)의 딸 사이의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와 레딩 대학교 대학원, 버클리 대학교 대학원, 국방대학교 국방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이후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소속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박정희 정권 말기에는 목포시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전라남도 광주시장을 역임하였다. 그렇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장이었다. 이후 전라북도 부지사를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전라남도 담양군-곡성군-화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고재청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선되기 전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4학년생 이정현으로부터 정치 똑바로 하라라는 취지의 편지를 받았다. 이에 이정현을 자신의 비서관으로 기용하였다. 그리고 한일의원연맹 간사,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위원, 대한민국 국회 내무위원회 간사 등을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전라남도 곡성군-화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평화민주당 홍기훈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민주정의당 당직개편에서 제2사무차장에 임명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홍기훈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3년 말부터 1994년 말까지 관선 전라남도지사를 역임하였다.
그러다가 1995년 12월 30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뇌졸중으로 별세하였다.
위 설명에도 나와있듯이 2014년 재보궐선거 순천곡성에서 당선된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가 그의 비서관 출신이다.[5]
3. 선거 이력[편집]
4. 둘러보기[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4 08:03:19에 나무위키 구용상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시랑중파(侍郞中派) 31세 우(祐) 항렬이나 항렬자를 쓰지 않았다. 다만, 형 구승우(具承祐, 1922 ~ 1951. 1. 4)는 항렬자를 썼다.[2] 1세 구존유(具存裕), 2세 구민첨(具民瞻), 3세 구연(具珚), 4세 구천용(具天容), 5세 구식(具軾), 6세 구록(具祿), 7세 구영량(具英良), 8세 구인미(具仁美), 9세 구득전(具得全), 10세 구효장(具孝長), 11세 구정여(具定如), 12세 구중절(具中節), 13세 구환(具桓), 14세 구영록(具英祿) 15세 구흥의(具興義), 16세 구충(具冲), 17세 구종학(具從學), 18세 구인정(具仁貞), 19세 구사민(具士敏), 20세 구응두(具應斗), 21세 구신업(具信業), 22세 구이기(具爾起), 23세 구천수(具天壽), 24세 구윤장(具潤章), 25세 구양욱(具陽旭), 26세 구정직(具廷稷), 27세 구항록(具恒祿), 28세 구본신(具本愼), 29세 구기모(具琪謨), 30세 구교복(具敎福), 31세 구용상(具龍相) 순으로 이어진다.[3] 막내 종조부 구삼모(具三謨, 1875 ~ 1937. 1. 23)의 차남이다.[4] 족보에 기록된 일명은 구기복(具奇福).[5] 이정현이 8대 지선에 전남지사 후보로 출마하면서 KBC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길, 구 전 지사의 부인은 2022년 기준 91세로 아직 생존해 있는데, 이정현의 그 편지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이정현과는 여전히 교류를 하고 있는 듯하다.[6] 민주한국당 고재청 후보와 동반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