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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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김장열
金長烈


파일:김장열.jpg

출생
1899년 5월 24일
전라남도 완도군
사망
1974년 4월 3일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2. 생애[편집]


1899년 5월 24일 전라남도 완도군에서 태어났다. 경성부 보성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퇴학당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니혼대학 전문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완도군에서 노화학교, 금일학교, 서성학교를 설립하였다. 완도어업조합 이사, 동아일보 지국장, 조선일보 지국장 등을 지냈다. 민족독립운동으로 투옥되었다.

8.15 광복조선건국준비위원회 완도군 위원장을 지냈다가 경찰공무원이 되어 나주경찰서장, 전남경찰청 총무과장을 역임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전라남도 완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재판관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완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국민당 정남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

묘지는 재북인사릉에 있다. 묘비에는 1974년 4월 3일에 별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3. 제헌 국회 활동[편집]


  • 1948년 6월 1일 전라남도를 대표하여 전형위원으로 뽑혔다.
  • 1948년 6월 2일 국회기초위원 15인에 뽑혔다.[1]
  • 1948년 6월 15일 '울릉도어선피습 건'을 10명의 의원들과 함께 대표발의 하였고[2] 상임위원회로 옮겨져 진상조사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 1948년 9월 6일 조병옥유엔 총회에 가는것을 찬성하였으나 가부 끝에 거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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