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드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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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로스 왕국 미트리다테스 왕조 제3,5대 군주
Άσανδρoς | 아산드로스
파일:아산드로스.jpg
제호
한국어
아산드로스
그리스어
Άσανδρoς
라틴어
Asandrus
별명
필로카이사르 필로로마이오스(Philocaesar Philoromaios: 카이사르를 사랑하고 로마를 사랑하는 자)
생몰 년도
기원전 110년 ~ 기원전 17년
재위 기간
기원전 47년(1차 재위)
기원전 44년 ~ 기원전 17년(2차 재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보스포로스 왕국 미트리다테스 왕조 3,5대 군주. 아내 뒤나미스와 함께 보스포로스 왕국을 공동 통치했다.


2. 생애[편집]


페르시아에 거주하는 그리스인으로, 폰토스 왕국 제9대 왕이자 보스포로스 왕국 미트리다테스 왕조 2대 국왕 파르나케스 2세 휘하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첫번째 아내로 글리카레아(Glykarea)를 두었지만 그녀에 대한 기록은 "아산드로스의 아내 글리카레아"라고 명시된 폰토스 비문에서만 전해지며, 그 외의 정보는 전해지지 않는다. 기원전 47년 이전에 파르나케스 2세와 사르마티아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뒤나미스와 재혼했다.

기원전 47년, 파르나케스 2세의 명령을 받들어 보스포로스 왕국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파르나케스 2세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임명한 소아시아 총독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와 전쟁을 치르느라 자신에게 신경 쓰지 못하는 틈을 타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이를 통해 로마인들의 호의를 얻어 보스포로스 왕국의 군주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파르나케스 2세는 칼비누스를 니코폴리스 전투에서 물리친 뒤 그를 진압하려 했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시리아에 이르자 이에 맞서다 젤라 전투에서 참패했다. 이후 1,000명의 기병을 이끌고 시노페로 도주한 뒤 그로부터 보스포로스 해협을 되찾을 생각으로 흑해를 건너가 테오도시아와 판티카파에움을 공략했다. 그는 즉시 군대를 이끌고 공격했고, 파르나케스 2세는 전투에서 패배해 전사했다.

그는 옛 장인의 수급을 카이사르에게 보내 보스포로스 왕으로 인정해달라고 청했지만, 카이사르는 자신의 군주를 시해한 자를 왕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거절하고, 지난날 알렉산드리아 전쟁 때 자신을 구해줬던 미트리다테스 2세(파르나케스 2세의 이복동생)에게 보스포로스 왕의 칭호를 수여했다. 미트리다테스 2세가 군대를 이끌고 보스포로스에 진군하자, 그는 카이사르의 지지를 얻은 자를 상대로 싸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아내 뒤나미스와 함께 도주했다.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사건이 벌어진 후 뒷배가 사라진 미트리다테스를 축출하고 보스포로스 왕위에 아내와 함께 복귀했다. 기원전 27년에서 기원전 17년 사이에 아우구스투스로부터 공식적으로 보스포로스 왕으로 인정받았다. 스트라본에 따르면, 그는 마이오트 호수 근처의 체르소네소스 지협에 360스타티아(53km) 길이의 성벽을 세우고 10개의 탑을 세웠다고 한다. 이 성벽은 그 지역의 조지아인들이 해적 행위를 일삼는 걸 막고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7년, 스크리보니우스라는 인물이 자신을 미트리다테스 6세의 손자라고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루키아누스에 따르면, 당시 93세였던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말이나 도보로 전투에서 누구와도 싸울 수 있음을 신하들에게 과시했지만 신하들이 전투 전날에 스크리보니우스에게 귀순하는 걸 보고 자결했다고 한다. 이후 스크리보니우스는 그의 아내였던 뒤나미스와 결혼하고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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