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승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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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창덕궁 승재정
昌德宮 勝在亭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2-71번지)
건축시기
1830년 ~ 1908년 사이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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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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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영상. 존덕정, 관람정, 폄우사와 같이 소개한다.
1. 개요
2. 이름
3. 역사
4. 구조
5. 여담



1. 개요[편집]


창덕궁 후원 관람지 권역정자이다. 폄우사의 남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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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지 권역. 왼쪽부터 폄우사, 존덕정, 관람정, 승재정이다.[1]

2. 이름[편집]


‘승재(勝在)’ 뜻은 ‘빼어난 경치(勝)가 있다(在)’는 뜻이다. ‘승(勝)’은 원래 ‘이긴다’는 뜻으로, ‘(이겼으니) 뛰어나다’, ‘빼어나다’는 의미도 있다. 그 뜻을 확장하여 ‘아름답고 빼어난 경치나 고적’을 나타낼 때도 쓴다. # 실제로 높은 지대에 있어 여기서 바라보는 경치가 최고라고 한다.


3. 역사[편집]


언제 지었는지 모른다. 1828년(순조 28년) ~ 1830년(순조 30년) 사이에 그린 《동궐도》에는 보이지 않고, 1908년(융희 2년)에 그린 《동궐도형》에는 나타나므로, 그 사이에 지은 듯하다. 건립 후 큰 변화 없이 오늘에 이른다.


4. 구조[편집]


  • 기단은 2단을 쌓았으며 그 위에 다시 장대석 2단을 깔고 건물을 올렸다. 기둥은 원형이나 주춧돌은 사각이다. 출입은 남쪽 칸과 북쪽 칸으로 할 수 있으며, 기단에서 건물로 오르내리는 디딤돌은 5단이다.

  • 현판은 남면 도리장여 가운데에 걸려있으며 흰 바탕에 검은 글씨이다.

  • 지붕은 사모지붕, 처마는 겹처마이다. 공포는 물익공 양식으로, 창방과 장여 사이에 소로를 얹었고 그 위에 도리와 맞물리게 운공을 짜두었다. 용마루와 추녀마루는 기와로 쌓았으며 내림마루 끝에는 막새기와를 얹었다. 추녀마루가 만나는 부분에는 절병통을 올렸다. 단청은 모로단청으로 칠했다.

  • 각 칸마다 화려한 ‘아(亞)’자 살 분합문을 설치했다. 칸의 하단부에는 머름을 두었고, 건물 바깥에는 쪽마루를 깐 뒤 그 가장자리에 난간을 설치했다. 다만, 건물로 들어가는 부분에는 머름과 난간을 두지 않았다. 난간은 풍혈궁판 위에 ‘아(亞)’자 형 살대를 대고, 그 위에 하엽동자 모양의 난간기둥과 돌란대를 얹은 형태이다.

  • 천장에는 우물반자를 설치했다. 실내 바닥은 마루이다.

  • 승재정 동북쪽과 동남쪽에 수석을 두었다.

  • 모든 기둥에 주련을 걸었다. 주련에는 를 적어놓았다. 주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龍蛇亂亂千章木 (용사난획천장목)
용과 뱀은 천 그루 거목(巨木)을 어지러이 휘감았고

環珮爭鳴百道泉 (환패쟁명백도천)
패옥(珮玉)들은 백 갈래 샘물을 울게 하는구나

披香殿上留朱輦 (피향전상류주련)
피향전(披香殿) 위에서 임금 수레 머무니

太液池邊送玉杯 (태액지변송옥배)
태액지(太液池) 연못가에 옥 술잔을 보내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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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승재정과 연결된 다리.png}}} ||
관람지 다리. 왼쪽에 승재정과 승재정 남면에서 다리와 연결된 길이 보인다.[2]
관람지에 다리가 있었던 시절에는 승재정 남쪽으로 다리와 연결된 길이 있었다.

5. 여담[편집]


  • ||{{{#!wiki style="margin: -5px -10px"}}} ||
    〈창덕궁 달빛기행〉 영상
〈창덕궁 달빛기행〉 코스 중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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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사진 출처 - 프랑스 장식미술관 〈Coré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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