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관람정
덤프버전 :
분류
1. 개요[편집]
창덕궁 후원 관람지 권역에 있는 정자이다.
2. 이름[편집]
'관람(觀纜)' 뜻은
3. 역사[편집]
언제 지었는지 모른다. 1828년 ~ 1830년 사이에 그린 《동궐도》에는 안보이고 헌종 때 제작한 《궁궐지》에도 관련 기록이 없는데, 1907년(융희 원년) ~ 1908년(융희 2년)에 만든 《동궐도형》에는 보인다. 그래서 고종 때 후원을 정비할 때인 1903년(광무 7년) 경 아니면 순종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긴 1907년(융희 원년) 무렵에 지었을 것으로 추측한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 이순우 연구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적어도 1901년(광무 5년)에는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인 버턴 홈스(Burton Holmes)가 1901년에 발간한 《The Burton Holmes Lectures》에 관람정 사진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1901년 이전에 지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아직까지는 정확한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4. 관람지[편집]
관람정의 연못은 관람지(觀纜池)이다. 한반도 모양이라 반도지(半島池)로도 부른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 〈동궐도〉를 보면, 사각형 연못 2개와 원형 연못 1개가 나누어져 있었다. 순종 때 제작한 〈동궐도형〉을 보면 저 연못을 합쳐 호리병 모양으로 만들고 그 위에 다리를 놓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모습으로 바꾼 듯 하다.
다리도 형태가 두 가지였다. 현재 남아있는 사진을 보면, 경복궁 향원정의 취향교와 같이 'X'자 난간을 한 다리였는데 어느 순간 'I' 자형 난간 형태로 바뀌었다.
이 다리 서쪽에 승재정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5. 구조[편집]
- 한 단짜리 기단 위에 주춧돌을 올리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기둥과 주춧돌은 원형이다. 연못과 맞닿는 부분에는 세로로 긴 돌기둥을 연못 바닥에 맞닿게 만들었다. 그래서 마치 연못에 발 담그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 지붕은 우진각 지붕이다. 처음 지붕 재질은 동판 비슷한 것이었는데, 순종 즉위 전후로 기와로 바꾼 듯 하다. 처마는 홑처마로, 용마루와 추녀마루는 기와로 마감했으며 용마루 양 끄트머리에 용두를 올렸다.
- 각 기둥 하단부마다 난간을 설치했다. 다만, 건물로 들어가는 부분에는 기둥 양 옆에 짧게 난간을 두었다. 난간의 모양은 풍혈을 뚫은 궁판을 두고 그 위에 난간기둥과 돌란대를 둔 형태이다.
- 기둥의 바깥쪽에 주련을 걸었다. 주련에는 시를 적어놓았다. 주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珠簾繡柱圍黃鵠 (주렴수주위황곡)
구슬 발, 채색 기둥을 고니 떼 둘러싸고
錦纜牙檣起白鷗 (금람아장기백구)
비단 닻줄, 상아 돛대에 갈매기떼 날아오르네
彩鴛靜點銀塘水 (채원정점은당수)
알록달록한 원앙이 은빛 연못물에 고요히 떠다니고
乳燕凉飛玉宇風 (유연량비옥우풍)
어린 제비는 바람을 타고 시원하게 하늘을 나네
橋轉彩虹當綺殿 (교전채홍당기전)
찬란한 무지개다리 돌아드니 전각과 마주했고
艦浮花鷁近蓬萊 (함부화익근봉래)
화려한 익수(鷁首)의 배 떠가니 봉래산이 가까워지네
#
6. 여담[편집]
- ||
{{{#!wiki style="margin: -5px -10px"}}} ||
7. 매체에서[편집]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제1공화국 관람정.png}}}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킹덤 관람정.png}}}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1〉에서 조학주(류승룡 분)와 딸 계비 조씨(김혜준 분)가 대화하는 장소로 등장한다. 관람지는 시신을 넣은 연못으로 나온다. 단, 시신넣는 장면 촬영은 다른 연못에서 한 듯 하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8 10:13:04에 나무위키 창덕궁 관람정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왼쪽 사진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3] 사진 출처 - 프랑스 장식미술관 〈Corée〉.[4]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