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평원루

덤프버전 :

분류



[ 펼치기 · 접기 ]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창덕궁 평원루
昌德宮 平遠樓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2-71번지)
건축시기
1830년 ~ 1849년 사이 (창건)

파일:상량정.png}}}
평원루[1]
}}}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영상
1. 개요
2. 이름과 현판
3. 역사
4. 구조
5. 여담
6. 매체에서



1. 개요[편집]


창덕궁 낙선재 구역에 있는 정자이다. 낙선재의 서북쪽, 승화루의 동쪽에 있다. 한정당, 취운정과 더불어 낙선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2. 이름과 현판[편집]


파일:평원루 현판1.png}}}
파일:상량정 현판.png}}}
평원루 현판[2]
상량정 현판[3]
현재 이름은 '상량정(上凉亭)'이다. '상량(上凉)' 뜻은 '시원한 곳(凉)에 오르다(上)'이다. 높은 지대에 있어 붙은 이름인 듯 하다. 순종 시기에 만든 《동궐도형》에 평원루로 나온 것을 보아 일제강점기에 지금 이름으로 바꾼 듯하다. 일단 이 문서에서는 원래 이름인 '평원루'로 표기했다.

평원루 현판청나라의 서예가, 문인이었던 옹방강의 아들 옹수곤(翁樹崑, 1786 ~ 1815)의 글씨를 모아 만들었으며,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지금 평원루에 걸어 둔 상량정 현판 글씨전통 방식과 다르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여있다.


3. 역사[편집]


파일:조선고적도보 상량정.png}}}
일제강점기에 만든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평원루
언제 지었는지 모른다. 1828년 ~ 1830년 사이에 그린 《동궐도》에는 보이지 않으나, 1849년(헌종 15년)에 낙선재를 방문한 화가 소치 허련이 남긴 기록에는 나오므로, 그 사이에 지은 듯 하다.

이후 큰 변화 없이 몇 번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4. 구조[편집]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상량정 서고.png}}} ||
평원루 서고[4]
건물 북쪽에는 단청을 칠하지 않은 11칸 짜리 창고[5]가 있고 동, 서, 남쪽에 이 있다. 은 동남쪽과 서쪽에 각각 하나씩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만월문과 꽃담.jpg}}} ||
파일:창덕궁_낙선재_꽃담.jpg}}} ||
만월문과 꽃담[6]
그 중 벽돌로 만든 서쪽의 만월문(滿月門)이 유명하다. 다른 궁궐 문과 다른 점이 많기 때문이다. 출입구가 보름달처럼 둥글며 문짝은 미닫이 형식이다. 이런 모습은 현재 궁궐 문 중에서는 유일하다. 또한 양 옆 에 벽돌 문양을 넣어 아름답게 만들어놓았다. 특히 만월문에서 바라본 상량정 풍광은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은 모습이다. 만월문을 지나면 승화루 뒤뜰이 바로 나온다.


5. 여담[편집]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통일정.png}}} ||
통일정[7]
2015년 11월에 독일 베를린 포츠담광장에 세웠던 정자 통일정은 평원루를 본따 만든 것이다. 분단되었던 독일이 통일한 것처럼 한국통일하길 바라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꽃보다 할배 리턴즈 - 감독판》에서도 나왔다.# 2020년 11월에 설치 기한 만료로 주독일 대한민국 대사관 경내로 옮겼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장락문에서 본 평원루.png}}} ||
장락문에서 본 평원루
낙선재 정문 장락문에서 바로 보인다. 장락문 틀을 액자 틀로 생각하고 보면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