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예문관

덤프버전 :

분류



[ 펼치기 · 접기 ]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창덕궁 홍문관
昌德宮 藝文館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2-71)
건축시기
창건시기 미상
1990년대 (복원)

파일:20171118_145445_HDR.jpg}}}
예문관
}}}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영상
1. 개요
2. 구조



1. 개요[편집]


창덕궁 궐내각사 구역에 있는 예문관 청사이다.

예문관은 임금의 말이나 명령문서로 적는 기관이었다. 이외에 외교문서를 쓰고 궁중의식 규율을 관장하는 역할도 했다.

고려 말의 예문춘추관이 전신이다. 조선 건국 직후에도 그대로 이어왔으나, 태종 때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나누었다. 세조집현전을 없앤 후, 인재 양성 및 학술 연구 기능 일부를 예문관으로 옮겼다. 그러다 성종 때는 예전 집현전의 관직을 예문관에 두면서 완전히 집현전 시즌 2가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홍문관으로 집현전의 직제를 옮겼고, 이후 예문관은 본래의 기능만 수행했다.# 1894년(고종 31년) 갑오개혁홍문관, 춘추관 등과 함께 경연청에 합쳐졌다.#


2. 구조[편집]


  • 따로 건물이 있는 게 아니라, 인정전 서행각의 일부로 있다. 북쪽으로 향실, 남쪽으로 숭범문이 붙어있다. 순종 이어 직후 정부에서 인정전 알현실로 바꾸었다가 문화재청에서 1990년대 ~ 2000년대에 복원했다.


  • 지붕은 맞배지붕, 처마는 홑처마, 공포는 초익공이다. 창방과 장여 사이에 소로를 두었다.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는 기와로 마감했다. 용두는 용마루 남쪽 끄트머리에 1개 올렸다. 단청은 모루단청으로 칠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예문관 내부 구조.png}}} ||
예문관 내부 구조
정면 4칸, 측면 2칸, 총 8칸이다. 실내 구조는 윗 그림 참조.

  • 서향이므로 정면은 서쪽면이다. 정면의 왼쪽 칸에는 빗살교창과 나무판문을, 나머지 칸에는 띠살 문과 빗살교창을 달았다. 측면은 붉은 나무판으로 마감한 모습이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예문관 뒷면1.png}}} ||
인정전 마당에서 바라 본 예문관 뒷면
뒷면의 모습은 정면과 다르다. 중인방을 두고 아래엔 붉은 나무판을 설치했다. 그 위에는 문선을 두고 가운데 창문을 두었으며 나머지는 으로 마감했다. 문선을 중인방과 바로 붙이지 않고 살짝 띄어 놓았다. 다만, 북쪽 칸(보는 사람 기준 오른쪽) 모습은 또 다르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 환풍을 위한 창문, 벽, 빗살교창을 두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8 10:15:00에 나무위키 창덕궁 예문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