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네타 다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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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4인조 록밴드 King Gnu에서 보컬, 기타, 키보드, 첼로 등을 맡고 있으며, 동시에 리더 겸 프로듀서이기도 한 일본의 뮤지션이다. 그룹 전곡의 작사작곡 및 아트워크 총괄을 담당하고 있으며, 또한 프로젝트 그룹 millennium parade의 프로듀서로서 여러 뮤지션들과 콜라보를 하며 패션 브랜드, 게임, 애니메이션 등에 곡을 제공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조직 PERIMETRON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2. 스펙 및 생애[편집]
본인에 의하면 '음악이 아주 넘쳐나는' 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어머니는 클래식 피아노 선생님이고, 아버지는 로봇 엔지니어지만 부업으로 재즈 피아니스트로도 활동했다고 한다. 때문에 집에 악기가 이것저것 많았고 어릴때부터 놀이의 연장으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고.
첼로를 5살때부터 시작했는데, 일본에서 조기음악교육으로 유명한 스즈키 메소드 학원도 다녔다.
성장기를 보낸 곳이 나가노의 시골이었던지라 딱히 할만한 게 없었다고 한다. 대신 음반 렌탈샵에 자주 들락날락 했다고 하는데, 구할 수 있는 건 모조리 구해서 들었다고 한다.[1] 그리고 중학생때 본 우드스톡 페스티벌 비디오에 충격을 받아[2] 그때부터 히피사운드와 록에 심취하면서 기타를 시작하고 밴드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3] 또한 이때부터 멀티 트랙 레코더를 이용해 혼자서 작곡을 시작했다. 또 이구치와 함께 학교 합창부에 들어 NHK 전국대회에 나가기도 하였다,[4] 츠네타는 합창부에서 마림바를 담당했다.당시 사진
고등학교 때에는 하루 8시간씩 첼로연습에 매진했다고 하며 그 결과 제20회 일본 클래식 음악 콩쿠르 고교부 첼로부문 3위에 올랐다.
또 베이스도 계속 연습해서 마찬가지로 고교 시절에 일본의 음악잡지 출판사 릿토 뮤직에서 개최한 제20회 최강 플레이어스 콘테스트 베이스 부문에서 준 그랑프리를 수상하였다.대회당시 츠네타의 연주영상 참고로 이 대회의 결과를 알리는 잡지 내용이 인상적인데
경험많은 연주자들과 나란히 하며 베이스재능도 뛰어남을 보였다.[5]그랑프리의 후지타
나이 : 35세
베이스 경력 : 19년 4개월
준 그랑프리의 스티비
나이 : 35세
베이스 경력 : 18년
준 그랑프리의 츠네타
나이 : 17세
베이스 경력 : 1년 6개월
고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도쿄예술대학 기악학과로 진학해 첼로를 전공하였으며, 일본의 명망있는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지휘하는 국제 실내악 아카데미에서 2년간 첼로를 연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회와 접목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대학은 1년만에 중퇴했다.[6] 그래도 오자와 세이지와 함께했던 순간들은 지금도 소중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표정과 움직임만으로 연주자들에게 최고의 소리를 이끌어 낸다며 그의 음악은 지금도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어있다고.[7]
2011년에는 Diddy’s Underground Jam이라는 명의로 곡을 몇 개 내놓기도 하였다.이 때 만들었던 곡들은 여기에서 들어볼 수 있으며, King Gnu의 초기형태가 되는 Mrs.Vinci활동도 시작하게 된다.
언더 시절에는 완전히 J-POP과 동떨어진 포맷의 음악만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가 20살쯤 될 무렵, 자신이 만든 음악을 가지고 메이저 레이블로 찾아갔는데 '멋지긴 한데 이거 돈은 안되겠네' 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 츠네타는 '나는 음악도 악기도 제대로 익혔는데 어째서 사회가 이토록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이 된 걸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의 음악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단 먼저 '대중적으로 성공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2014년에는 재즈 피아니스트 쿠리야 마코토가 개최한 애드립 콘테스트 기타 부문에 참가해 그에게 "「평범한 건 재미없어!」라는 에너지가 가득 전해져 오는 플레이입니다. 아무렇게나 들리지만, 실은 굉장히 컨트롤이 잘된 플레이. 제일의 센스와 개성, 거기에다 가득한 음악애가 느껴졌습니다."라는 평을 받으며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출품 영상
2016년에는 현 millennium parade의 전신인 Daiki Tsuneta Millennium Parade(DTMP)의 명의로 정규 앨범을 내 놓기도 했으며, 같은 해 크리에이티브 조직 PERIMETRON도 설립했다.
Mrs.Vinci는 밴드 네임과 멤버 체인지를 거쳐 2017년 지금의 King Gnu로 정착, 2019년 'sympa'로 메이저 데뷔에 성공한다.
DTMP 역시 멤버 편성과 명의 변경을 거쳐 2019년에 millennium parade로 재출범했다.
King Gnu, millennium parade 활동과 디스코그래피의 자세한 정보는 각 항목을 참고.
3. 음악적 특징[편집]
츠네타 다이키는 지금까지의 「J-POP」의 세계에는 없었던 스케일의 남자다.#
음악 평론가 야마사키 요이치로(山崎洋一郎)
야생적인 부분과 이성적인 부분의 양립 상태가 매우 독특한 느낌이 듭니다. 가끔 '이 녀석 해적 아니야?' 라고 생각할 만한 야생미를 느끼고 한편으로는 굉장히 냉정하게 사물을 판단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 두 가지가 감성을 통해 일관되어 있고 싫은 느낌 없이 품위가 있어요. 그의 음악에서도 같은 것을 느낍니다.[9]
어릴적부터 평생 음악만 해왔고, 그렇다고 한 우물만 판 게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건드려왔기 때문에[10][11] "사운드면에 관해서는 제 서랍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12] 다른 밴드보다 여러 가지를 선택하여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던가 "건방진 소리를 하자면, 어떤 음악이든 만들 수 있거든요. 솔직히."# 라고 스스로 자신있게 말 할 정도로 다룰 수 있는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다.
이러한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바탕으로, 본인이 도쿄 카오틱 사운드라고 자칭하는, 다양한 장르의 사운드가 혼합된 스케일이 큰 사운드가 특징이다. 보통 3~4분 내외의 보컬 곡에는 30~40트랙 정도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킹누의 악곡에는 최소 70트랙 이상이 들어가고[13] , 미레파에서는 이것보다 더 늘어나는데 일례로 미레파의 곡 2992에는 150트랙이 들어갔으며 Fly with me는 300트랙 이상이 들어갔다.
장르들을 섞을 때에도, 서로 대척점에 있어보이는 사운드들 사이에서 어울리는 밸런스를 찾아내 믹스해내는 것이 본인이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하며,[14] '자기가 생각하기에 뻔한' 방식으로 믹스 하는것은 선호하지 않는다. 가령 오케스트라를 쓸 때, 발라드 편곡에 흔히 사용되는 예쁜 보컬 뒤로 약간의 현악기 소리를 넣는다던가 하는 방식은 선호하지 않는다. 일례로 미레파의 곡 Trepanation를 한번 들어보면 거친 질감으로 믹싱된 보컬뒤로 비트와 함께 샘플링한 오케스트라의 사운드[15] 가 동시에 깔리는데 기괴한 느낌을 주면서도 듣다보면 의외로 어울린다.
본인이 자신의 악곡을 7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한 것이다. 본인 말로는 자신의 악곡 모두를 구분짓기에는 작품성이 꽤나 넓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정리해본 거라고. 허나 만들 때에는 '이 부분을 노리고 만들어야겠다' 라는 생각을 처음부터 하고 작곡한다고 한다. 그 예시로 BOY(King Gnu)는 곡을 만드는 단계부터 '아이들을 M스테에 출연시키자'라는 생각을 했다고[16] .
추가로 방송에서 얼터너티브 락에 대하여 이야기하길, 클래식이라던가 서양적으로 아카데믹한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억지로 부순다'는 느낌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특정 파트에서 평범하게 해버리면 너무 평범해져서 촌스럽게 되지만, 거기서 조금 벗어난다면 코드 진행은 복잡해지지만 멜로디와의 밸런스 조절을 통해 팝의 테두리 안에서 사운드를 구축한다고 한다.
음악들을 때 취향이 꽤 확실하다. 음악을 들을 때 장르로 나눠서 가리고 하는 건 없지만 그 음악이 무슨 질감을 가졌느냐는 중요하다고 한다. 노이지, 라우드, 로우파이적인 사운드를 좋아하고 특히 '사이키델릭함'에 환장한다.[17]
클래식에서는 고전 음악가보다는 현대 음악가들을 선호한다고 하며[18] , 락도 라디오헤드[19] , 악틱 몽키즈, 너바나 같은 밴드는 선호하지만 본 조비 같은 밴드는 영 안 맞는다고 한다. 비틀즈의 음악 역시 자기에게는 너무 예쁜 것 같다고 하고.[20] 일본의 유행가요도 거의 안 듣는다고 하는데, 킹누의 대중적 성공에 목말라있을 때 곡 제작에 참고하기 위해서 비로소 일본의 메인스트림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고 한다.[21] 소위 말하는 사운드보다는 멜로디에 의지해 예쁘기만 하거나 뽕삘이 나는 음악은 아오안인듯.
예대를 중퇴한 뒤 활동초기 언더그라운드 시절에는
그러나 Srv.Vinci 멤버가 지금과같은 4인 체제가 되고, 2017년 밴드 명의를 King Gnu로 변경한 이후로는 소위 말하는 '락킹한' 사운드와 사비를 강조하는 대중성을 의식한 곡들을 쏟아내었고, 츠네타와 킹누는 단기간에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된다.
2019년에는 millennium parade의 정규앨범 THE MILLENNIUM PARADE를 발매하는데 난해함 일색이었던 DTMP 시절의 음악과는 다르게 대중성을 어느정도 잡으면서도 참신함은 그대로 유지했다며 호평을 받고 있다.
전체적으로 언더그라운드 시절 쌓아놓았던 독특한 음악성을 토대로하여, 그 위에 대중성을 입혀나가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나가고 있다는 평이다.
만들어놓은 소스를 자주 재활용 한다고 하니 얼핏 "자기복제를 자주한다"로 오해할 수 있는데, 애초에 일부 소스만 남겨두고 처음부터 전혀 다른 접근법을 취해 모티브가 된 곡과 전혀 다른 사운드의 곡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복제라는 것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게다가 츠네타는 오히려 자기복제를 매우 싫어하는 뮤지션이며, 각종 인터뷰만 봐도 그가 자기복제를 얼마나 경계하는지 알 수 있다.[26][27][28][29]
과거에 만들어놓았던 소스나 곡을 이용해 다시 곡을 내놓는 이유는 츠네타에게 있어서 예술이란 '파괴와 창조를 반복하는 행위'라서 그렇다. 고로 현재 킹누와 미레파 명의로 출시되고있는 음악들도 언젠가는 파괴되어 전혀 다른 것으로 다시 재탄생할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다."무언가를 부수고,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아티스트로서의 기본자세 같은 것. 그 자세 없이는 이 시대에서 무언가를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파괴하고 창조한다는 것은 음악이나 영화, 패션같은 아트 이외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고,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과 직결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도 그렇고,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파괴와 창조는 인간의 근원적 행위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음악이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 아닐까"#
곡 만드는 속도가 엄청나다.[30] 킹누와 미레파의 전곡 단독작곡,킹누 전곡 단독작사, 미레파 일부 곡 단독작사를 하고있고 편곡작업에서도 킹누와 미레파 전곡의 편곡작업에 큰 비중으로 참여[31] 하고 있는데도, 2015년부터 정규앨범을 1년에 하나꼴로 내고있다. 보통 이렇게 공장장 급으로 노래를 만들어내는 뮤지션들은 보통 자기복제를 하기 마련인데, 츠네타는 내는 앨범마다 곡마다 분위기가 비슷하지 않다는게 굉장할 따름이다.
여기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츠네타는 사실 애초부터 대중성보다는 예술성 지향이 강한 아티스트이다.[32] 그런데 츠네타의 음악을 대부분이 King Gnu로 입문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를 뿐이다. 츠네타는 상업적으로 성공하기위한 전략으로 J-POP과 록을 전면에 밀은 King Gnu, 그리고 예술성을 마음껏 발휘하는 영역으로 millennium parade, 이 두 팀을 양립시킴으로써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33][34]
3.1.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편집]
"걔는 대부분의 악기를 다룰 수 있어요. 그것도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이 「당연하게 악기가 가능해진다」는 느낌으로. 그 녀석에게는 모든 악기가 레고나 무선 조종 자동차 같은 것이겠지요. 그건 쉽게 말하자면 재능이 아닐까."#
나카노 유타[35]
보컬, 랩, 기타(일렉트릭, 어쿠스틱, 클래식[36] ), 베이스(일렉트릭, 콘트라, 신스) 첼로, 드럼[37] ,건반(피아노, 신시사이저, 키보드, 보코더), 프로그래밍 등... 이걸 혼자서 다 한다."멜로디를 만들 때는 사용하는 악기에 따라서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피아니스트가 만드는 멜로디와 기타리스트가 만드는 멜로디는 달라서, 저는 특수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기 때문에 그만큼 만드는 악곡이나 멜로디가 폭이 넓고 그렇기에 작•편곡에 있어서도 강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킹누와 미레파의 데모곡들은 기본적으로 츠네타 스스로 전 파트를 넣어서 만들어진다. 또한 미레파 크레딧에 보면 늘 All other instruments(기타 악기) : Daiki Tsuneta라고 적혀있다.
그 외 시타르나 발랄라이카[38] 같은 악기나 MPC도 다룰 줄 안다.
악기는 아니지만 모니터 컨트롤러와 믹싱 컨트롤러도 다룰 수 있다. 미레파 라이브를 할 때도 중간에 앉아서 콘솔을 잡고 있다.
3.2. 기타연주 스타일 및 사용장비[편집]
아라이 카즈키에 의하면 츠네타는 첼리스트 출신이라 약지의 사용법이 보통의 기타리스트와는 다르고 현을 누르는 방법이 독특하다고 한다. 또한 츠네타와 친분이 있는 기타리스트 타케노우치 카즈야(竹之内カズヤ)에 의하면 기타의 코드를 누를 때 그의 손가락 모양이 상당히 특이해 마치 재즈와 유사한 방식이라고 한다. 재즈같은 운지로 록의 사운드를 내고 각종 이펙터와 페달, 아밍주법을 적극 사용해 왜곡된 소리를 내는것을 선호하기 때문에[39] 츠네타의 기타는 굉장히 특이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40] 교과서적이고 깔끔한 연주와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깨끗한 소리를 낼 필연성은 나 자신도 별로 느끼지 않아서,모든 대역이 균형 있게 나는 소리라기보다는 거칠고 뒤틀림이 좋은 소리가 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ㅡ Fender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스타일은 음원보다 라이브에서 특히 더 두드러지는데 飛行艇(비행정)라이브를 보면 솔로파트때 암을 매우 격하게 흔드는 걸 볼 수 있다.
참고로 츠네타의 이 시그니쳐 기타는 색상이 매우 수수하고 시그니쳐 모델에 흔히 들어가는 친필사인도 들어가 있지 않다. 같은 시기에 발매된 아라이 카즈키의 시그니쳐 베이스에는 썬버스트 색상이 적용되었고 친필사인이 들어가 있는것과는 대조적이다.[44]
확성기 또한 애용하는 장비중 하나이다. 사실 츠네타 다이키의 제일 상징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라이브 무대 때는 항상 마이크 옆에 새워져 있으며 노래를 부를때도 마이크보다 확성기에 대고 부를때가 많다. 아예 Slumberland를 부를때면 기타는 내려두고 확성기로 노래를 부르며 무대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본인 말로는 자신의 목소리가 확성기 특유의 오버드라이브 걸린 소리와 잘어울리는거 같다고.
3.3. J-POP에 대한 생각[편집]
영 좋지 않다. 자라오면서도 서양음악만 들었지 일본음악은 취향이 아니라 거의 듣지 않았다고 스스로 공언하며[47] , 츠네타가 인터뷰 등에서 J-POP에 대한 생각을 말할 때 '독특하다, 특이하다' 같은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는 '독특해서 좋다'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세계적인 유행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갈라파고스화 되고있다'에 가깝다. 일본 음악 업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데, 2022년 인터뷰를 띠르면 "레코드회사는 다 내 적이었어요. 사실 지금도 다를 건 없지만.. 그런데 좀 팔리고 나서부터는 다들 태세전환을 하더라고요" 라고 밝히기도 하였다.“대부분의 일본 최고의 아티스트들은... 사운드가 다 똑같아요.”#
"저는 일본의 씬이나 음악 양식이 거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J-Pop은 상당히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다양한 장르와 그 문화적 가치를 잘 수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일본의 밴드 씬은 음악에 대한 탐구심이 적죠. 그 점이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본적으로 일본 씬은 새로운 음악은 요구되지 않는 것 같아요. 최근 10년 정도의 차트를 봐도 사실 똑같은 곡들만 히트를 하는 것 같은 인상이라."#
「히트한 음악=뛰어난 음악」이라고 죽어도 생각하지 말아줘
(가끔씩 그런 정신나간 놈이 있어)
(메이저 레이블에도 득실득실하게 있어)
그런 놈이 문화를 죽인다.[45]
"베를린 필 멤버가 전자악기를 도입해서 라이브를 하고 있다는데, 본고장의 사람들이 거기까지 유연하게 음악을 전진시키고 있는데, 일본의 음악계는 보수적이라고 할까 창조력이 부족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일본에서도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패션의 세계는 자유로운 느낌이 들지만, 음악의 세계는 수입 기질에서 오는 것인지 자유가 적은 것 같습니다."#
"켄드릭이 일본에 단독 공연 이라던가 오지 않는것이 몹시 섭섭해서...차일디쉬 감비노도 결국 오지 않고, 챈스도 라이브에 사람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고...그러니까, 이러한 현대의 중요 인물들이 일본에서는 그런 상황이 되어 버린다는 것은, 좋든 나쁘든 일본의 음악 씬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겠지 하고 굉장히 생각하고 있어요."#
"이건 메이저에 발을 들여놓으니까 느끼는 거지만, 일본에는 힙합의 가치관이나 미학이 전혀 뿌리내려있지 않아. 하지만 그걸 국민성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으니까, 역시 나나 아라타[46]
가 힙합의 비트나 언어를 즐기는 방법을 전해가지 않으면 안 돼."#
"여유가 없으면, 아트는 여실히 전위적인 표현이 없어져 가는 거죠. 라고 할까, 지금의 일본, 위험하지 않습니까? 날카로운 얼터너티브한 표현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점점 되고 있어요. 저는 길거리에 건반을 치면서 확성기로 외치고 있었던 그런 놈이기 때문에, 그런 인간이 보면 정말 위험한 상황인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경제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예술 면만 봐도 촌스러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지 않나 싶네요."#
사실 일본은 음악 다양성으로는 세계에서 손 꼽히는 국가로, 인디씬에는 창의적인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도 매우 많다.[48] 언더그라운드 생활을 꽤 오래 했던 츠네타도 그러한 사실을 모를리가 없을테고. 일본밴드 중에서도 미셸 건 엘리펀트, 블랭키 제트 시티같은 밴드나 동세대 밴드 중에서도 Tempalay는 좋아한다고 한 걸 보면[49] 일본음악계 전체를 싫어한다기 보다는 J-POP특유의 비슷한 사운드로 점철된 음악들이 아니면 뜨기 힘든 '일본의 메인스트림 음악시장'에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
그래도 킹누를 하기위해 제이팝을 엄청 듣고, 또 제이팝적인 곡을 만들고 하면서 생각이 어느정도 바뀌어서 이제는 제이팝의 장점도 어느정도 알게 되었다고 하지만, 일본의 메이저 레이블이나 음악업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은 여전한 듯 하다.
4. 디스코그래피[편집]
4.1. King Gnu 명의[편집]
자세한 내용은 King Gnu/디스코그래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millennium parade 명의[편집]
자세한 내용은 millennium parade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3. Daiki Tsuneta 명의[편집]
4.4. 악곡 제공 및 프로덕션 참여[편집]
5. 출연[편집]
6. 여담[편집]
- 츠네타의 아버지는 재즈 피아니스트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는, 그야말로 재즈에 미쳐있는 것 같은 사람이였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집에서는 늘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고 하며 클래식 피아노를 싫어해[55] 츠네타에게 '자신이 왜 클래식을 싫어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주곤 했다고 한다. 츠네타가 인터뷰 등지에서 클래식에 관해서 언급할 때 "나는 클래식은 현대에 만들어진 것이 좋고, 고전주의 음악은 시시하다" 라며 밝히곤 하는데, 이같은 취향은 아마도 아버지의 영향이 있을지도...
- 중학생때부터 음악을 업으로 삼기로 결정했었고 다른 길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고 한다. 고교 시절에는 이미 음악 업계쪽 사람들과 연줄이 닿아 있었다고.
- 츠네타가 졸업한 이나키타 고등학교는 편자치 65~67의 상위고교 였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공부도 꽤 했던 듯. 하지만 고교 진학 후에는 음악만 하느라 공부와는 거의 담 쌓았다고 하며 학교도 잘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 본인에 따르면 자신의 학창시절에 친구가 몇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들과 전혀 가까워지지 못했다고 한다. 친구의 모친에게 종종 미움을 받았다고도 하는데, 친구가 자신과 같이 있는걸 보면 나쁜 물이 들까봐 친구 어머니가 자신을 몹시 노려보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제가 아마 문제아계 였나 봅니다"하고 회고하기도.
~남의 이야기인것 처럼 말한다~
- 앤디 워홀에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워홀의 팩토리가 없었다면 자신도 아마 PERIMETRON이나 millennium parade같은 종합 크리에이티브적인 조직은 시작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 외에도 다양한 팝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받아서 스스로 단순한 음악가가 아닌 팝 아트 아티스트라는 자각이 있다고 한다.[56]
- 상당히 계획적인 성격으로, 자기 활동을 치밀하게 계획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57]#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때문에 킹누의 아레나 투어가 다 연기되어 버리고, 관련된 라이브 스태프들도 금전적으로 어려워지자 처음으로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 츠네타의 형 츠네타 슌타로[58] 는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어릴 때부터 엘리트 음악교육을 받았으며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 고교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5위에 입상한 경력이 있다. 츠네타에 따르면 "공부도 운동도 음악도 모두 잘하는, 나로서는 이길 수가 없는 형이었다"고. 하지만 음악을 전공으로 삼지는 않았고[59] 도쿄대학 공학부로 진학했으며,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다가 나와서 크리에이터와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하는 회사 utoniq을 차렸다. 음악활동도 계속 하고 있으며 King Gnu의 악곡에 간혹 포함된 바이올린과 함께, 츠네타의 첼로 음반 내 바이올린 파트를 연주한 것도 그이며 Vaundy등 다양한 뮤지션들의 작품에 레코딩, 스트링스 편곡으로 참여하고 있다. millennium parade의 정규멤버이기도 하다. 참고로 엠스테 방송에 출연했을 때 동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이에 "역시 이상한 녀석이네요. 보통의 사회에서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타입" 이라고 답했으며(...) 형제의 인터뷰들을 보면...
"동생은 자유로웠어요. 흥미 없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 당기는 것에만 깊이 빠져드는 타입으로, 시간도 식사도 잊고 음악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이 형제는 타고난 기질차이가 커보이는데, 둘의 트위터에 올라오는 글만 비교해봐도 확 체감이 될 정도.[62] 그래서 자라오면서 서로 치고박고 싸우기도 엄청 싸웠다고 한다.
"동생은 대학을 1학년에 그만뒀습니다. 부모님이 슬퍼하실테니까 일단 휴학을 하라고 했는데 듣질 않았어요."[60]
#
"고등학교 1학년 때 일렉트릭 마일스 데이비스에 빠져서, 문화제 때 그걸 하고 싶다고 형에게 말했더니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을테니까 그만 둬'라고 하더라고. 근데 그 당시의 나는 그냥 정말 그걸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고 싶었어."[61]
- 가정에서 따로 예절교육을 시키지 않았을 정도로 집안 분위기가 프리했다고 한다. 밥상머리 교육을 못 받아 젓가락질이 지금도 매우 서투르다고.[66] 그래도 가끔 혼나기도 했다는데 집의 바닥 색깔이 마음에 안들어서 마음대로 페인트칠을 하거나(!) 어머니의 코트가 촌스럽다며 옷에 페인트칠을 했을 때는(!!) 엄청 혼나기도 했다고 한다.#
~혼난걸로 끝난게 다행이다~
- 도쿄예술대학에서 1학년을 수료하기도 전에 관둔 후, 축제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학교에 잠시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에 도쿄예대 학생이었던 이구치 사토루가 축제 노점이었던 와플 가게의 점장을 맡았었는데, 호객을 위해 가게 앞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츠네타와 우연히 재회했다고 한다.[67]
- 이시와카 슌에 따르면, 예대 재학시절의 츠네타는 '첼로를 엄청 잘 하는 위험한(やばい) 녀석' 같은 이미지였다고 한다. 용모복장만 해도 일반 예대생 같지가 않았다고.# 오자와 세이지 오케스트라에 소속되었던 시절 사진을 보면, 혼자 좀 튀긴 한다.
- 예대 자퇴 이후 킹누로 돈을 벌기 전까지의 생활비는 라이브 하우스에서 세션을 뛰거나 다른 아티스트의 서포트를 하거나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 레코딩[68] 등으로 벌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수입이 적었기 때문에 같이 살던 할머니에게 많이 의지한 것으로 보이며 이 시기에 맥도날드를 자주 먹었다고 한다. 또 알바로 돈을 번 적은 없었다는데, 고1때 라멘집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는데 3일만에 잘렸고(...) 그게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알바였다고 한다.
- 스스로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고 밝혔다.[69] 넷플릭스 츠네타 다이키: 혼돈 도쿄에서 츠네타의 곡 제작과정이 꽤 상세하게 나오는데, 이는 그야말로 밥상 뒤집기의 연속으로, 기껏 다 녹음해놓은 소리를 마음에 안든다며 바꿔버리기 일쑤에,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너무 깨끗하다며 소리를 뭉개버리고, 심지어 곡의 완성단계인 믹싱작업에 들어가서까지 변덕이 발동해 소리를 바꾸고 다시 편곡하는 등
~엔지니어 피꺼솟~ 그야말로 강박에 가까울정도로 완성도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걸 볼 수 있다. 또 킹누의 이름이 세 번이나 바뀌었는데[70] 하고자 하는 음악컨셉과 밴드이름이 맞지 않으면 징그러운(...) 기분이 들어서 컨셉이 변화할 때는 똑같이 이름도 바꿔야 했다고.
- 헤비스모커이다. 피우는 담배는 럭키 스트라이크.
- 주로 타고다니는 차는 이스즈 117 쿠페이다.
- 일본 사회가 젊은 세대의 창의성을 제한한다며, 이런 측면에서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듯 하다.[71]
- 킹 크룰을 매우 좋아한다. 그와 같은 새로운 펑크 스타일(펑크+클럽계비트)은 좀처럼 없고 음악에서 느껴지는 런던느낌이 너무 좋다고. 킹 크룰의 곡 dum surfer는 츠네타가 킹누 멤버들이 진행하는 라디오에 게스트로 나와서 청취자들에게 몇 번이나 추천해준 곡이기도 하다.
- 도쿄예대를 중퇴한 직후 인도로 한달간 배낭여행을 갔는데 정말 고생을 엄청 했다고 한다. 특히 위생면이 정말 최악이었다고.. 여행 주제가 인도의 음악을 체험하는 것 이었기 때문에 전통악기인 시타르와 타블라도 샀는데 공항에서 밀수를 의심받았다고(...)
- 하는 운동으로는 어릴때부터 야구를 했으며 중학교때 잠깐 합창부에 든 것을 제외하면 초중고 모두 야구부 소속이었다.[73] 포지션은 유격수를 보았다고 한다. 실력은 본인에 따르면 그럭저럭 잘 했다고. 또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팬이라고 한다.
- 도쿄예대시절 오자와 세이지의 오케스트라에 속해있을때 해외공연도 여러 번 다녔는데 그 중에서 중국 상하이에서 공연했을때는 관객들이 공연을 관람하는 태도가 일본과는 전혀 달라서, 연주 중에 환성을 지르거나 사진을 찍거나 했다고 한다. 그런데 츠네타는 관객들이 캐주얼하게 즐기고 있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좋은 의미로 컬쳐쇼크였다고.
- 워커홀릭 기질이 있는 듯 하다. 킹누, 미레파, PERIMETRON 3개의 조직을 혼자서 책임지고 있는데. 상당히 힘들다고는 말 하지만[74] 일을 줄일 생각은 전혀 없어보인다. 넷플릭스 츠네타 다큐를 보면, 정말로 바쁘게 살고 있는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스토익하게 곡 만들기에 열중하는게 가능하냐는 다큐제작팀의 질문에, "뭔가 강박관념 같은게 있네요. 뭔가에 떠밀리고있는 느낌. 내가 멈추면 모든게 멈춰버리는게 아닌가 하는.. 이런 느낌을 동력으로해서 지금까지 해왔으니까"라고 답하기도.#
- 2021년 4월에는 까르띠에의 엠버서더로 취임하였다.
- 현재 문화산업계에서 가장 창의력있는 업계는 게임업계라고 생각하고 있다.# PERIMETRON 멤버가 가르쳐 준 라스트 오브 어스의 영상을 보고나서 '음악업계의 뮤직비디오는 대체 뭐 하고 있는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렇게 말은 하지만 정작 게임에는 전혀 문외한이다(...)[75] . 인생에서 처음으로 산 게임이 2021년에 산 포켓몬게임이라고 한다.#
~피카츄가 나오자 소리를 질렀다고~
- 고등학교 졸업 후 나고야에서 도쿄로 상경하고 7년간을 할머니와 둘이서 살았다고 한다. 할머니의 집 2층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밴드 멤버들을 불러서 리허설을 하거나 했는데 그럴때마다 할머니는 시끄럽다고 화를 내기는 커녕 동네사람들 들으라는 듯이 일부러 창문을 열어버렸다고..[76] Srv.Vinci시절 곡인 "ロウラヴ" 뮤직비디오를 이 할머니집 2층에서 찍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킹누가 대히트하기를 얼마 남기지 않고 돌아가셔서 스타가 된 손자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 코디가 따로 없고 방송이나 MV등에서 입고나오는 의상은 모두 셀프코디이다. 千両役者 MV에서 입고있는 화려한 빨간의상도 본인의 의상이다. 그 밖에는 빈티지 스포츠웨어 패션을 좋아하는데, 브랜드 중에서는 Adidas를 정말 좋아하며 라이브나 방송에 자주 입고 나온다. 결국 Adidas의 글로벌 앰버서더로 취임했고 광고도 찍었다.[77]
- 2023년에 2월에 생로랑 엠버서더로 취임되었다.
- 츠네타가 쓰는 안경, 선글라스들은 모두 도수가 없는 패션용이다. 본인에 따르면 시력이 빌어먹을만큼 좋다고.
- 요네즈 켄시와는 그의 4집인 bootleg에 프로듀서로서 참여한 인연으로 친한 사이가 되었다. King Gnu가 무명이었을 시절, 그들의 음악을 높이 사준 것도 요네즈였고, "사비같은 건 촌스러워"라고 생각하고 있던 츠네타에게 "사비가 강하지 않으면 일본에서는 팔리지 않을거야"하고 조언해 주기도 하였다고.#
- 요네즈 켄시와의 인연은 2022년까지 이어져 KICK BACK의 공동 프로듀싱, 공동 편곡, 기타, 베이스 레코딩을 맡았다. 츠네타 다이키가 공동 편곡에 참여하게 된 일화가 있는데 전부터 같이 술을 마실 때, 체인소 맨을 칭찬하는 이야기를 했고 오프닝 테마를 맡게 된 후에 같이 마실 기회가 있어 그때 츠네타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하자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 시이나 링고와도 친분이 있다. 그녀에게 생일선물로 프로코 랫을 받은 적도 있고, 시이나가 츠네타에게 음악 토크쇼"세키 잼 완전연소 SHOW"에 같이 나가자고 직접 연락해, 츠네타도 "말이 서툴러서 토크쇼는 그닥이지만, 링고누님이 지명해주셨으니까 거절할 수 없네요"라고 하며 같이 출연하기도 하였다. 2023년에는 애니메이션 지옥락의 주제가 W●RK를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 킹누의 노래 'あなたは蜃気楼' MV에 출연하기도 했던[78] 일본의 혼혈모델 emma와 2021년에 열애설이 났고 거의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둘 다 워낙 바쁘다보니 자주 만나지는 못 하는 듯. 같은 해 8월 23일 emma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확진 되었다고 그녀의 소속사에서 발표 했는데 츠네타는 멀쩡한 걸 보면..
- 문서를 쭉 읽어보면 알겠지만 자신의 음악관,예술관이 워낙 확고하고, 보편적인 일본인의 취향과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자신의 가치관을 가감없이 표현하는데 주저없는 성격이라[79] 열성적인 팬도 많지만 반대로 안티도 꽤 있고 인터넷 등지에서 심심찮게 까이기도 한다.[80] 까이는 레퍼토리는 주로 중2병, 나르시시즘, 白日원툴(...) 이런 것들이다.
- 대표곡과도 같은 白日의 뮤직비디오에서 사용했던 인이어가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는데, 그도 그럴게 영상 속의 KZ AS06은 20달러 남짓하는 아주 저렴한 인이어이다(…)
- 피크민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다.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생김새가 마음에 들어서. 정작 자기는 피크민 게임을 해본적도 없다고. 인스타 라이브 방송에서는 자기가 구매한 피크민 열쇠고리를 자랑하면서 “여러분들이 사준 CD값이 피크민 3박스가 되었네요.” 라고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