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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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영화감독. 배우 손화령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2. 일생[편집]
1952년에 서울특별시 중구 만리동에서 5남 중 넷째로 태어났다. 형제들 중에서 가장 무던한 성격이라 어린 시절 홀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서울봉래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양정중학교에 입학했으나 고교 입시에 실패하여 중동고등학교 야간부에 진학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컸고, 손창호 자신도 어머니에 대한 반발감이 심해져 거리를 두다가 집을 나와[2] 중동고 연극반 선배의 집에서 지내면서 연극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선배인 박은수, 정동환 등으로부터 연기를 배워 1968년 제7회 전국남녀중고교연극대회 때 <놀부전>에서 놀부 역으로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고교 3학년 재학 중인 1970년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데뷔하여 드라마 <왜 그러지>, <제3교실>, <알뜰가족> 등지에서 외모보다 실력을 바탕으로 한 코믹한 연기로 유명세를 날리기 시작했다. 영화에서는 <얄개 행진곡> 등의 하이틴 영화에 출연하여 이승현과 함께 청춘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시원스러운 성격과 재치 있는 언어 구사, 독특한 화술을 바탕으로 어린이 TV프로그램 <꽃나라 별나라>의 MC, <손창호 임예진의 청춘만세> 등지의 라디오 프로에서 DJ를 맡을 정도로 명 MC로 이름나는가 하면, 축제 때마다 MC로 초빙될 정도였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시골 간이역장과 같이 대화하며 묵거나, 트럭을 빌어 타며 운전사들과 대화도 나누는 등 뭇 사람들의 많은 생활을 연구하기도 했다.
1981년 결혼했지만 채 반년도 안 되어 서로 갈라섰다. 이후 1983년에 영화 연출을 배우기 위해 일본 니혼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1987년 귀국, 1990년 영화제작사인 '월촌씨네마'를 차려 <동경 아리랑>이라는 영화를 주연 겸 감독으로 제작했으나 흥행에 참패했다.
1992년 4월19일 방송된 SBS "쇼 서울서울" 프로그램의 일부 코너에서 선생님 역할로 잠시 나왔다. 1993년에는 MBC 일요가족극장 <김가 이가>에 캐스팅되었으나 야생 대마초 재배/흡연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후 한동안 활동이 없다 1995년 목회자가 되었다는 근황이 알려졌으나 전부터 앓던 당뇨병과 만성신부전 장애가 심해져 결국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되었고,[3] 치료비를 못 대서 결국 1997년부터는 서울적십자병원의 행려병자 병실에 머무르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모습이 1998년 2월 MBC <박상원의 아름다운 TV얼굴>과 동년 7월, 그가 세상을 떠나기 한달 전에 방송된 KBS1의 <영상기록 병원 24시>에 공개되면서[4] 손창호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충격과 눈물을 선사했다. 특히 병원 24시에서 손창호가 한 "바다로 가고 싶어..."라는 말은 시청자들에게 애잔함을 주었다.
방송 이후 퇴원하여 서울 삼각산 밀알기도원[5] 에 기거하다가 1998년 8월 5일 새벽 4시 20분 세상을 떠났다. 향년 46세. 정태섭 MBC 탤런트실장과 강남길, 김수미, 박은수, 심양홍 등 동료 연예인들이 조문을 왔고, 화장 후 서울시립승화원에 봉안됐다.
3. 작품 목록[편집]
3.1. 영화[편집]
3.2. 드라마[편집]
3.3. 연극[편집]
- 1968년 놀부전 - 놀부 역
- 1969년 우물안 영도자 - 학생 B 역
- 1978년 날개 - 남자 역
- 1979년 행위를 위한 줄거리 - 남자 역
- 1989년 블루스맨
3.4. 기타 방송 출연[편집]
- 1989년 MBC 신년특집 어린이뮤지컬 <어른이 학교>
- 1992년 SBS 쇼 서울서울
3.5. MC[편집]
- TV
- 꽃나라 별나라 (1978, MBC)
- 일요일 일요일 밤에 (1989, MBC)
- 열전! 달리는 일요일 (1990, KBS1)
- 라디오
- 이밤을 즐겁게 (1979~1980, MBC)
- 손창호 임예진의 청춘만세 (1980~1981, MBC)
- 폭소기동대 (1981~1982, MBC)
- 즐거운 오후 2시 (1988~1989, MBC)
- 백팔가요 (1991, BBS)
- 손창호 노사연의 100분쇼 (1992, MBC)
3.6. CF[편집]
3.7. 저서[편집]
- 바람은 아무도 잠재울 수 없다 - 청암. 1990. 영화 <동경 아리랑>의 소설판이다.
4. 수상 경력[편집]
- 1968년 제7회 전국남녀중고교연극대회 최우수연기상 (놀부전)
- 1980년 MBC 방송연기상 조연상 (알뜰가족)
5. 여담[편집]
- 1991년 MBC <우정의 무대> '이기자부대 편'에서 이계인과 함께 이기자부대에서 복무했다고 밝혔다.
- 젊었을 때 출연한 영화에서는 음식을 먹는 씬이 많았다. 1979년에 개봉됐던 ‘꽃밭에 나비’에서는 라면, 스테이크, 각종 간식 먹방을 맛깔나게 소화하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군침을 돌게 했다. 유튜브에서 먹방을 진행해도 될 정도. 시대를 제대로 만나지 못한게 안타까울 따름.
- 성우 김환진과 고등학교 동창으로 같이 연극을 했다고 한다.
6. 참고 자료[편집]
- TV가이드 1982년 8월 7일자(제55호) '82 탤런트 사전 p153.
- TV가이드 1983년 2월 5일자(제80호) 스타연구: 익살, 괴짜연기로 끝내주는 밉지않은 '돼지여우' 손창호(김현덕 글) p58~61.
- 디시인사이드 게시글 <1998년 사망한 배우 손창호와 마지막 삶의 투쟁> 3부작: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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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우 국정환, 김수미, 김영애, 박영태, 안옥희, 염복순, 허진 등과 동기이다.[2] 다만 대학 진학을 전후해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고,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는 전제로 자신의 진로를 정했다. 거기에 배우로서 자리를 잡아갈 즈음에는 모자 관계가 더욱 다정해졌다.[3] 사진을 봐도 알 수 있듯 고도비만인데다 병마와 싸우기 전은 물론이고 병이 악화된 이후에도 건강 관리를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입원 당시 촬영한 병원 24시를 보면 당뇨병과 신부전으로 입원중이면서도 한밤중에 라면과 함께 김치를 먹고 다음날 신장 투석 직전에는 대놓고 담배를 피우기까지 한다. 그나마 촬영 후반에는 본인도 과거 지인들과 만나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생활습관을 고치려는 모습을 어느 정도는 보여줬다.[4] 사후 9월 8일 추모특집으로 후속작이 나왔다.[5] 이 기도원은 손창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운영되어 왔지만, 결국 2020년 폐원해 사라졌다. 옛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6길 70.[6] 코미디언 이주일이 주연으로 출연.[7] 조경환과 공동 출연.[8] 당시에는 삼강산업.[9] 강부자와 함께 출연.[10] 현 오리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