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다 미키
덤프버전 :
분류
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74년, 도쿄도 시나가와구에서 태어났다. 오인중 · 고등학교[1] 를 거쳐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통상산업성(현재의 경제산업성)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으며, 중도에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로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공무원 퇴사 후에는 보스턴 컨설팅 그룹과 에르메스 재팬 등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했다.
2011년 11월, 자민당 도쿄도 연합의 후보자 공모에 응모해 합격했으며 2012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도쿄도 제1구에 자민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때도 가이에다 반리와 맞붙었는데, 당시 가이에다가 제1야당 민주당 당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꺾고 재선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했다. 가이에다는 당수임에도 불구하고 석패율 구제도 못 받고 낙선하는 굴욕을 겪으면서[3] , 가타야마 데츠 이후 65년 만에 제1야당 당수가 낙선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재선 성공 이후 외무대신 정무관을 역임했다.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가이에다 반리와 맞붙었다. 그러나 이 때는 47회 총선거와는 반대로 가이에다에게 밀려 2위를 기록해 석패율 구제로 당선되면서, 가이에다와의 매치에서 처음으로 1패를 기록했다.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출구조사 결과와 달리 약 9,000여표 차이로 가이에다를 누르고 1위로 당선되며 4년 전 패배를 설욕하였다. 이후 자민당 법무부회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리고 2022년 8월 10일 제2차 기시다 제1차 개조내각의 출범으로 인해 환경성 부대신으로 임명되었다.
3. 정치적 성향[편집]
4. 기타[편집]
-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선거 기간 도중 선거운동원이 교통사고를 일으켰는데, 당시 사고 피해자를 구조하는 현장 인근에서 선거 유세를 해 논란을 빚었다. 이에 다음 날 비서가 피해자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방문했는데, 이 당시 비서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에게 투개표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해 비판을 받았다.#
- 2018년 자민당의 발표에 따르면, 야마다는 자민당 소속 의원들 중 지난 1년 간 모집한 당원 수가 가장 적어 꼴찌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술한 교통사고와 이 기록으로 볼 때 지역구 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듯 하다. 물론 당원 모집 지표는 시골 지역구에게 유리하고 도시 지역구 의원에겐 불리한 지표다. 도쿄도 제1구에 속한 치요다나 미나토같은 도쿄 최고 도심은 그래도 해당지역 토박이라면 비벼볼만한 건덕지는 있는 스미다나 다이토같은 구도심에 비해 지역구 대부분이 업무지구에 토박이는 별로 없고, 주민은 다들 자존심 센 부자들이 많은 곳이기에 그 어려움은 말할것도 없다. 허나 꼴찌는 변명의 여지도 없이 지역구 후원회나 지지자 조직이 심히 부실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세습 의원인 것도 아니고, 돈이 아주 많은 것도 아니고, 그냥 여성 관료 출신 비즈니스인으로서 경력을 쌓아오다가 자민당 지부장 공모를 통해 의원이 된 것이기에 이런 부분에 약할수밖에 없다. 그래도 49회 총선거에서 다시 당선된 걸 보면, 그동안 지역구 관리를 열심히 했거나 선거 운이 좋은 듯 하다.
-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짝눈이다.
- 나이에 비해 노안으로 보인다. 물론 1974년생으로 2021년 기준 40대 중반의 나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나, 동갑인 이시가키 노리코와 야마오 시오리는 말할 것도 없고, 사토 유카리[6] , 마루카와 다마요[7] 와 같이 야마다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 정치인들의 얼굴과 비교해도 더 늙어 보이니 노안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5. 둘러보기[편집]
[A] 석패율 비례대표[1] 일본 최고 명문 사립 여학교로 중고일관교 진학교다. 최고로 공부를 잘하는 남자아이가 카이세이 중고등학교에 간다면 최고로 공부를 잘하는 여자아이는 오인 중고등학교에 가는게 국룰로, 예전 경기고-경기여고 수준의 관계이다. 2020년 도쿄대학에 85명을 진학시켰다.[2] 여담으로 선거 당시 전국 300개 선거구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당락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당시 선거가 민주당 정권에 대한 역풍으로 자민당이 압승했던 선거임을 감안하면 초접전이었던 셈이다.[3] 비례 도쿄블럭의 마지막 한 자리를 놓고 현직 당수와 전직 총리대신이 경쟁(…)했으며, 결국 그 자리는 간이 차지하게 된다.[4] 긴급 사태 조항, 헌법 개정 절차, 환경권[5]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6] 야마다보다 13살 많은 1961년생이다.[7] 야마다보다 3살 많은 1971년생이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8 11:31:09에 나무위키 야마다 미키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