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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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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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姜宇
(? ~ 384)
전진의 인물. 자는 자거(子居). 진주(秦州) 천수군(天水郡) 기북현(冀北縣)
2. 생애[편집]
일찍이 양친을 여의고 집안 또한 빈곤하여 하북의 진불식(陳不識)이라는 사람의 목장에 고용되어 양치기 일을 하였다. 강우가 15세에 이르렀을 때 신장이 7척 9촌에 달했고, 총명하였으며, 용모도 수려하였다. 그는 매일 밤마다 독서에 힘썼는데, 졸음이 오면 줄로 머리를 묶은 다음 대들보에 매달아 고개를 숙일 수 없게 하여 새벽까지 책을 읽었다고 한다.
진불식은 강우가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 생각해 자신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려 하였으나, 진불식의 아내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어느 날, 진불식은 술상을 준비하여 강우를 부르고, 자신의 딸에게 그의 모습을 몰래 관찰하도록 하였다. 강우가 돌아간 후, 진불식이 딸에게 물었다.
딸이 답했다."강우는 문사(文士)의 재능을 지니고 있다. 나는 너를 그의 처로 시집보내고 싶으나, 네 어미가 강우는 그저 우리 집안의 양치기일 뿐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에 진불식은 처의 반대를 무릅쓰고 딸을 강우에게 시집보냈다. 과연 강우는 천왕 부견에게 발탁되어 둔기교위에 임명되었다."강우의 자태와 재능을 보건대, 어찌 그가 끝까지 양치기만 하겠습니까?"
건원 7년(371년) 2월, 양주(涼州) 자사로 승진하였다가, 얼마 뒤에 남파교위로 전임되었다.
건원 15년(379년) 3월, 동진의 우장군 모목지가 30,000 군사를 이끌고 파중(巴中)을 침공하고, 전봉독호 조복(趙福), 장수 원우(袁虞)가 수군 10,000명으로 장강을 타고 파서(巴西)로 진공하였다. 강우는 장수 장소(張紹), 구생(仇生)과 5,000 군사를 거느리고, 수륙으로 진군하여 남현(南縣)에서 동진군을 격파해 7,000여 명을 참수하였다. 패주한 모목지는 마침 군량까지 다 떨어져 파동(巴東)에 머물렀다.
건원 16년(380년) 10월, 녕주(寧州) 자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다시 중앙으로 돌아가 경조윤, 어사중승, 상서를 역임하였다.
건원 20년(384년) 7월, 모용충이 선비족 군대를 거느리고 도읍 장안을 공격하였다. 강우는 전장군에 임명되어 하간공 부림과 더불어 30,000 군사로 모용충을 막기 위해 파상(灞上)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강우는 교전 중에 모용충에게 찔려 전사하였고, 부림 역시 화살에 맞고 전사하는 바람에 그들이 이끄는 전진군은 전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