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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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韓延之
동진, 후진, 북위의 관료로 자는 현종(顯宗). 남양군(南陽郡) 자양현(赭陽縣) 출신으로 조위의 사도 한기의 후손이다.
2. 생애[편집]
처음 동진에서 건위장군(建威將軍), 형주(荊州) 치중(治中)을 역임했고 평서부(平西府) 녹사참군(錄事參軍)으로 전임되었다.
415년, 동진의 권신 유유가 사마휴지를 토벌하고자 강릉으로 출병할 때 몰래 사신을 보내 한연지를 불러들이려고 했지만 한연지는 이를 거절하는 답신을 유유에게 보냈다. 유유는 한연지의 답신을 보고는 탄식하여 측근들에게 한연지의 답신을 보여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의 신하가 되려먼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
한연지는 유유의 아버지 유교의 자인 현종(顯宗)을 자신의 자로 쓰고 아들의 이름을 교(翹)로 정하면서 유유에게 신종하지 않을 뜻을 내비쳤으며, 사마휴지와 함께 후진의 요흥에게로 달아났다. 417년, 유유가 후진을 정벌한 가운데 한연지는 다시 북위에 투항하여 호뢰진장(虎牢鎭將)으로 임명되고 노양후(魯陽侯)에 봉해졌다.
처음 한연지는 일찍이 백곡오(栢谷塢)를 왕래하다가 노종지의 무덤을 보고는 자신의 삶을 마치려고 했다. 그리고 자손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락(河洛)은 3대의 수도인데 틀림없이 이곳에 도읍을 정하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내가 죽으면 고생하지 않고 북쪽에 묻힐테니 여기에 매장하라.
사후 한연지의 자식들은 그의 말을 따라 노종지의 무덤 옆에 장례를 지내주었다. 한연지가 죽고 50여 년 뒤 북위의 효무제가 천도하면서 자손들은 백곡오에 거처하였다. 한연지의 전처 나씨(羅氏)는 아들 한조(韓措)를 낳았으며, 한조는 아버지를 따라 북위로 망명했다. 뒤에 회남왕(淮南王)의 딸에게 장가를 들어 한도인(韓道仁)이 태어났다. 한조는 이복동생인 한도인을 적자로 밀어주었다.
3.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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