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신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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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17호 경복궁
경복궁 신무문
景福宮 神武門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건축시기
1433년 (창건) / 1867년 (중건)


파일:external/news.donga.com/6984601.1.jpg

파일:경복궁_신무문_전경.jpg}}}
신무문[1]
1. 개요
2. 이름과 현판
3. 역사
4. 용도
5. 구조
6. 여담



1. 개요[편집]


경복궁의 북문(北門)이다. 단, 정북(正北)이 아닌 서북쪽으로 치우쳐있다.


2. 이름과 현판[편집]


‘신무’는 ‘신령스러운(神) 현무(武)’라는 뜻이다. 4신현무가 북쪽을 나타내는 동물이므로, 경복궁의 북쪽 문에 ‘무(武)’ 자를 넣은 것이다. #

현판 글씨는 고종 때 관료인 이현직(李顯稷. 1797 ~ ?)이 썼다.#


3. 역사[편집]


1395년(태조 4년)에 경복궁을 창건할 때는 없었다.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 동, 서, 남쪽에만 궁문을 설치했고, 북쪽 궁성은 목책으로 만들어두었다. 그러다 1433년(세종 15년)에 비로소 제대로 된 북문을 지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50702

하지만 문을 세웠어도 이름은 짓지 않았다. 이후 1475년(성종 6년)에 예문관대제학 서거정이 신무문(神武門)이란 이름을 지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불탄 뒤 270여 년간 방치되었다. 1865년(고종 2년)에 중건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성벽의 일부가 무너졌으나 곧 복구되었고 이후 큰 변화 없이 오늘에 이른다.

파일:일제강점기 신무문.png

무너진 신무문 성벽


4. 용도[편집]


평소에는 닫혀있었다.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북쪽에 있는데다 풍수지리적으로 북쪽이 음(陰)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풍수지리적인 이유로 닫혀있었던 것은 한양도성의 북대문이었던 숙정문도 마찬가지였지만, 풍수와 별개로 현실적으로는 드나드는 출입구가 필요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한양도성에 북소문을 여러 개 설치했다. 반면 '한양'이라는 지역과 달리 단순 궁이었던 경복궁은 북쪽에서 오는 통행량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신무문을 제외한 소문을 따로 두지는 않았고 그냥 서문이나 동문을 이용했다. 애초에 신무문 바깥은 인가가 없는 곳이라 들어올 일이 별로 없었다.

다만, 비상시나 나라에 변고가 생겼을 때, 또는 이 비밀리에 밖을 나갈 경우에는 사용했다. 기묘사화 당시 중종이 조광조 일파였던 승지들도 모르게 친위 병력을 들어오게 한 곳이 바로 신무문이다.

조선 중 · 후기에는 문 밖에 신하들의 공훈을 기록한 회맹단(會盟壇)이 있어 임금이 신하들과 회맹제[2]에 참석할 때 이용했다.### 여기서, 조선 후기에는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이 재건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신무문을 이용했나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아마 문루는 없지만 남아있던 석축을 통로로 활용한 듯 하다.

영조가 어머니 숙빈 최씨사당육상궁에 참배할 때에도 신무문을 사용했다.##

1860년대경복궁이 중건된 이후 신무문 밖은 경복궁의 후원이 되었다. 신무문은 후원을 오가는 문으로 기능했다.

5. 구조[편집]


  •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및 서문인 영추문과 구조가 같다. 단, 육축의 높이와 폭이 1자 반[3] 정도 작다.#

  • 아치을 낸 석축 위에 단층짜리 문루(門樓)를 올렸다. 문루 4면의 가장자리 앞에는 벽돌로 쌓은 통여장이 놓여있다.#

  • 통여장의 바로 밑 부분 석축에 석누조 2개가 달려 있다. 이는 비가 올 때 빗물이 빨리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총 6칸이다. 지붕은 우진각 지붕이다. 용마루와 내림마루는 전부 양성바름을 했고 그 위에 취두와 용두, 잡상을 올렸으며, 추녀 끝에는 토수를 끼웠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공포는 이익공이다. 공포 사이마다 화반을 놓았으며 단청은 모루단청으로 칠했다.

  • 문루의 내부는 전부 한 공간으로 트여있다. 가운데칸 천장은 구조가 다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가장자리 쪽 들보 위는 우물반자로 마감하였다. 문루의 바닥은 전부 전돌을 깔았으나 가운데 칸만 마루를 깔았다.

  • 아치은 겉에만 아치를 구성하고 내부의 천장은 반자로 덮어 놓은 모습이다. 반자에는 현무가 그려져 있다. 문짝은 붉은색 나무이며 문짝 위에는 문둔테를 두었다.#

  • 경복궁 안쪽 부분의 석축 양쪽에 문루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을 두었다. 계단에 난간은 설치하지 않았다. 계단과 문루 사이의 통여장 가운데에는 전돌을 쌓은 을 두었다.#


6. 여담[편집]


  • 1519년(중종 14년) 11월에 일어난 기묘사화가 시작된 곳으로 알려져있다. 중종은 한 밤중에 승지들도 모르게 홍경주, 김전, 남곤, 심정 등 훈구 대신들을 불러 신무문을 통해 들어온 걸로 알려져있다. 그렇게 들어온 훈구 대신들은 비밀 회의를 열어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들을 숙청하기로 했다. 그래서 기묘사화를 ‘신무의 난’, ‘북문지화(北門之禍)’라고도 한다. 그런데 실제 조선왕조기록을 보면 중종이 직접 "홍경주들이 신무문에 있었는데 내가 영추문을 통해 불렀다"고 말하고 있다.(중종 14년 11월 17일 기사)

  • 1896년(건양 원년) 2월에 고종러시아 공사관으로 갈 때 신무문을 통해 경복궁을 빠져나갔다.[4]

  • 1954년에 경복궁이 일반에 개방될 때 신무문도 같이 개방되었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군부대가 신무문 안쪽에 주둔하면서 폐쇄되었다. 1990년대에 군부대는 이전했지만 이후로도 근처에 청와대가 있어 보안 상의 이유로 닫혀있다가 2007년 9월 29일 건청궁 복원 공사 완료에 맞추어 45년 만에 일반에 개방되었다. 이후로는 관광객들이 청와대 인증샷을 찍을 때 오가는 문으로 기능한다.
[1] 두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會盟祭. 공신들의 충성을 다짐하는 모임.[3] 약 45cm.[4] 영추문이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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