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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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건축물
※ 관람객 유의. 실질적으로 운용되는 곳은 1층과 지하 시설만이고 월대·계단·목탑 등은 외형뿐이며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다.

1. 개요
2. 역사
3. 관련 법령
4. 건축물 철거·박물관 이전 (2030년 예정)
4.1. 철거 사유
4.1.1. 역사·전통적 사유
4.1.2. 건축·미관적 사유
4.1.3. 실용적 사유
4.2. 박물관 이전 진행 경과
5. 여담
6. 역대 관장



1. 개요[편집]


고유한 민속 자료의 수집·보존·전시와 이와 연관된 체계적인 조사·연구를 위해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 박물관이다. 본관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 (세종로) 경복궁 경내에, 파주관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로 30 (법흥리)에 각각 두며, 휴관일은 국립박물관 관람 규칙에 따라 1월 1일, 설 당일, 추석 당일이다.[1]

본관 안에는 어린이박물관을 산하에 두고 있다.

2. 역사[편집]


본 박물관의 역사는 1924년 일본인 민속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해 창립된 조선민족미술관이 모태다. 그러나 실질적인 박물관의 시작 연도는 1946년으로 미군정 시대에 개관한 국립민족박물관으로 본다. 그 후 1950년 국립민족박물관은 국립박물관에 흡수 통합되어 남산분관이 됐지만 1966년에 한국민속관으로 분리되었는데, 당시에는 독립된 직제나 조직이 없어서 문화재관리국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장주근 상근전문위원이 실질적 운영을 맡았다고 한다. 이후 1975년 한국민속박물관으로 명칭 변경 후 1979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속으로 개편되면서 현 명칭이 됐다.

변천사만큼이나 본 박물관은 그 위상이 바뀔 때마다 박물관의 위치와 사용하는 건물도 계속 바뀌었다. 본 박물관은 1946년 개관 당시에는 남산 구 시정기념관(통감 관저), 1966년부터 1975년까지 수정전, 1975~1992년까지 경복궁 향원정 뒷편 구 국립현대미술관 건물(1998년 철거)을 사용해 오다가 1993년 2월 구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선원전 터)에 자리잡았다. 1999년에는 유물과학과, 2000년 섭외교육과를 각각 신설했고, 2003년 어린이박물관을 개설하여 2009년엔 제2차 소속기관 '국립어린이박물관'으로 개편했으나, 2010년 폐지 후 어린이박물관과로 또 개편했다. 2021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로에 분관을 열었다.

이처럼 국립중앙박물관(현재 용산구 이촌동 소재)이 썼던 건물이지만, 1992년 10월 소관업무가 국중박에서 문화부 제1차 소속으로 개편되면서 이듬해부터 사용하게 되었다.[2] 경복궁 동편에 있고, 입구도 동쪽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맞은편 궁궐 벽을 뚫고 나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경복궁 서남쪽에 있는 경복궁역 앞 구 중앙청 후생관에 위치해 있으므로 착각하지 않도록 한다. 현 건물도 경복궁 2차 복원 정비 사업에 따라 2030년전까지 철거되고 추후 박물관은 세종시로 이전할 예정이다.

3. 관련 법령[편집]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10조(설립과 운영)
②민속 자료의 수집·보존·전시와 이의 체계적인 조사·연구를 위하여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소속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을 둔다.
④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문화 유산의 균형 있고 효율적인 수집·보존·조사·연구·전시 및 문화 향유의 균형적인 증진을 꾀하기 위하여 필요한 곳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지방박물관 및 지방미술관을 둘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제65조(직무) 국립민속박물관(이하 "민속박물관"이라 한다)은 우리 민족과 세계 각국의 생활 양식·풍속 및 관습과 이에 사용된 도구 및 자료의 수집·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 및 교류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홈페이지 위에 나온 것처럼 관장은 고위공무원단 나등급에 속하는 학예 연구관으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임명한다.

4. 건축물 철거·박물관 이전 (2030년 예정)[편집]


국립민속박물관의 외관만 보면 유구한 전통을 자랑할 것 같지만, 사실 이 건축물은 전통적·역사적 뿌리, 조화를 모두 해친다.[3] 때문에 아래 사유로 서술했듯이 여러 가지 복잡한 까닭으로 이 건물은 2030년까지 철거하기로 결정하였다. 일제가 의도적으로 훼손한 경복궁의 건축물들이 순차적으로 복원되고 있는데, 이전에 여기에 자리했던 경복궁 선원전이 2030년 이후에 복원될 예정이므로 2031년 이전에는 무조건 이전이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다.

4.1. 철거 사유[편집]



4.1.1. 역사·전통적 사유[편집]


이 박물관 터는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어진들을 모신 건물인 선원전, 그리고 경안당, 정훈당, 대향당 등 9동 106칸에 달하는 여러 부수적인 전각들이 있었던 곳이다. 이곳은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다행히 살아남았는데, 어이없게도 이렇게 살아남은 여러 전각들은 궁궐이라는 역사적 맥락을 깨는 박물관 공사를 이유로 대한민국의 손에 철거되고 말았다.[4] 1990년 기준 경복궁에 남아있던 전각이 36동이었으므로, 그나마 남아 있던 전각의 20%가 어처구니 없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즉 일제가 아닌 대한민국에 의해, 우리 손으로 훼손한 우리 문화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선원전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장충단에 있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위령하고자 세운 사찰 박문사로 팔려나갔으나 유구만은 제자리에 온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 박물관을 짓는 과정에서 유구가 훼손되는 바람에 현재로서는 선원전의 정확한 구조와 위치에 대해서도 알 길이 없어졌다.

  • 조선 왕조의 유교 이념과의 부조화
조선 왕조는 숭유억불을 국시로 삼았으므로 궁궐에 불교식 건축은커녕, 승려사대문 안에 들어가는 것도 금지되었다. 일부 왕실 인사가 개인적으로 불교에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승려가 출입한 사례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금지된 사항이었다. 그런데도 조선의 정궁 안에 불교 양식 건축이 거대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떡하니 들어선 것도 모자라, 그나마도 불교 양식이 근본없이 엉망으로 짬뽕되어 추하기 이를 데 없는 혼종 건축물이라 전통적 궁궐 전각들과의 부조화가 극심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2000년대 들어서는 건물을 철거하고 박물관을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고, 실제로 2001년 문화관광부는 이전 용역 보고서를 내기도 하였다.[5]

경복궁 부지 내 광화문 서측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도 원래 마방(내사복시)이 있었던 곳이라는 점 때문에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쪽은 현재 복원 계획이 없고 여론도 조용하다. 사실 위치 때문인지 고궁박물관과 달리 민속박물관 쪽은 유동인구도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다.

4.1.2. 건축·미관적 사유[편집]


1966년 당시 문화재 관리국은 국립중앙박물관 설계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규정한 적이 있다.

“건물 자체가 어떤 문화재의 외형을 모방함으로써 그 조합과 질감이 그대로 나타나게 할 것이며 여러 동이 조화된 문화재 건축을 모방해도 좋다.”

당연히 이러한 규정은 당시 건축계에서도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건축계와 문화계에서는 건축의 창의성을 무시하는 일이며 단순한 모방은 전통을 계승하기는커녕 왜곡할 수 있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당시 주요 건축가들은 정부의 이러한 처사를 문화적 만행이라 규탄하며 설계 공모 자체를 거부했고, 결국 응모된 10여 개의 설계안 중에 강봉진의 설계안이 당선되었다. 디자인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보면 김중업 건축가가 지은 주한프랑스대사관처럼 반드시 기단 만들고 기와 올리지 않은 건물이라도 한국 전통 건축의 미를 계승할 수 있고, 그게 오히려 더 발전적인 방향이다. 하지만 속전속결을 강조하던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는 이런 고려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하여 건물의 계단은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제23호), 상부의 5층 건물은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 난간 위의 평면과 부속 건물은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난간 아랫 부분과 건물 측면은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2호), 상륜부 난간은 경복궁 근정전(국보 제223호)에서 따온 모양이 되었다. 앞서 밝혔듯이 말이 좋아서 따온 거지 사실상 짜깁기한 것으로, 각각의 요소들은 각각 국보들에서 핵심이 되며 아름다운 부분이지만 이것들을 맥락 없이 무작정 조합한 결과 근본없는 엉망진창의 모습이 탄생해 버렸다.


4.1.3. 실용적 사유[편집]


꽤 규모가 크고 외부에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 많아 보이는 건축물이지만, 정작 그곳에는 출입할 수 없는 구역이 대다수로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공간은 고작 10%도 채 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부피만 차지하는 큰 석상이나 다름없다. 내부 전시관만 둘러볼 수 있을 뿐, 건물 기단 윗부분에 있는 드넓은 외부 공간에는 관람객이 아예 출입금지되어 있다. 사실 현대에 와서 호평받는 여럿 랜드마크들 중에 처음 등장 시에는 추하다고 욕을 잔뜩 먹었던 사례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랜드마크들이 처음에는 욕을 먹었을지언정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계속 방문하고 거닐면서 풍경에 동화되고 결국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립민속박물관은 일반인의 외부 구역 출입을 통제하는 바람에 이렇게 자연스러워질 기회마저도 없어졌으며, 그저 규모만 거대할 뿐 맥락없는 석상으로 남아버렸다.


4.2. 박물관 이전 진행 경과[편집]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이 건축물이 2030년에 철거된다고 국립민속박물관 자체가 폐관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어디론가 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와 관련하여 굉장한 난항을 겪고 있다.

초기에는 이촌동 쪽의 부지를 매입해 새로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을 지을 예정이었고, 실제로도 용산으로 이전 가능성이 가장 컸던 상황이었다. 이전 계획 초기 거론되었던 여러 부지 중 가장 가능성이 높았던 곳은 광화문 앞 문화체육관광부 청사 부지와[6]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옆 문화체육관광부 부지였는데, 안 그래도 좁아 터진 지금의 박물관보다도 협소하고 민속촌 같은 별도의 야외체험공간 등이 필요하다는 등의 문제가 있어서 여러 곳의 후보지를 택해서 장기적으로 선택할 예정이었다.[7]

이에 따라 단계적 이전 건립 계획에 의해 1단계로 2020년까지 지원 시설인 개방형 수장고와 정보 센터를 우선 건립하고, 2단계로 2024년부터 2030년까지 핵심 시설인 본관 이전 건립을 추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후술할 여러가지 이유로 기존의 후보지가 아닌 행정수도인 세종특별자치시로의 이전이 유력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1단계 계획인 개방형 수장고 및 정보센터는 21년 7월부로 경기도 파주시 법흥리에 완공되어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8]

문재인 정부 초대 문체부 장관인 도종환이 취임할 때부터 국립중앙박물관 옆 부지에 국립한국문학관 설립[9]에 주도적으로 나섰다는 점. 또한 용산의 문체부 소유부지가 협소하다는 점. 그 때문에 용산 미군 기지 이전 부지 중 일부를 매입해서 박물관 짓는 방안은 서울시의 반대가 심하다는 점. 기획재정부가 용산 기존 계획 부지와 세종시의 박물관 단지 외의 다른 방안은 사유지 매입에 따른 과도한 예산 집행 문제로 반대한다는 점을 들어서 세종시 박물관단지로의 이전이 가장 유력하게 추진되었다.

그러나 국립민속박물관의 주 관람객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임을 감안하면 접근성이 나쁜 세종시로의 이전을 극력하게 반대하는 문화계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시사in 기사[10] 이 때문에 서울시와 용산구, 세종시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여기에 박원순 前 서울시장이 박물관의 세종 이전을 반대하며 경복궁 인근 대한항공이 호텔을 지으려다 실패한 舊 미국 대사관 숙소 부지에 이전을 해야 한다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후 2019년 2월, 대한항공에서 舊 미국 대사관 숙소 부지를 연내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여러 회사들이 눈독 들이고 있지만 서울시 허가 없이는 대부분 개발이 불가능하고, 서울시에서 상업과 주거용으로 개발하는 안에 대해서 부정적이기 때문에 정부와 서울시가 공동으로 부지를 인수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 부지를 정부와 서울시가 인수하면 국립민속박물관이 여기로 이전할 가능성이 컸다. 세종시로 이전하기에는 서울시의 반발[11]과 문화계의 반발 모두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세종시 국립 민속박물관 이전은 위와 같은 격렬한 반대로 이전 타당성 연구용역 발주 자체가 철회되었다. 2019년 2월 22일 세종시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국립민속박물관을 세종시로 이전하고 국립자연사박물관도 세종시에 건립해달라고 건의했지만 문화계 반발이 심해 가능할지가 미지수였다.

그러나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과밀화 해소, 지방분권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부각되면서 정부안이 힘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속박물관을 세종으로 옮기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고, 국립민속박물관을 세종시로 이전하고자 정부예산안 반영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종환 前 문체부 장관은 2017년 6월 취임과 함께 민속박물관 이전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고[12], 다음의 박양우 前 장관 역시 이전에 긍정적이었다. 이 때문에 민속박물관은 행복도시 S-1생활권 국립박물관단지 2단계(11만 5천㎡) 부지 내 4만 5815㎡에 1551억 원(국비 100%)을 들여 이전하는 안이 유력시되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의원이 국립민속박물관 세종 이전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윤성용 당시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접근성만 본다면 사대문 안에 있는 것이 유리하다"면서도 "더 넓은 전시 공간과 교육시설 등을 확보하고, 침체한 민속학을 살리려면 확장 이전이 필요하다." 하며 세종 이전이 사실상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하여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종로구 후보 이낙연송현동 부지에 이전계획을 밝혔고, 황교안은 국립민속박물관 세종 이전에 반대하면서 세종 이전이 무산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결국 송현동 부지는 개발 규제의 문제와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를 공원화하기로 하여 현실적으로 이전이 쉽지 않았고, 결국 송현동 부지에는 이건희 기증관이 들어오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또한 윤석열 정부에서도 지방시대 지역문화정책 추진전략에 따라 국립민속박물관의 세종시 이전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혀 국립민속박물관은 최종적으로 세종시로 이전할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초기에는 위의 용산/세종안 이외에도 제3의 지자체로 옮기거나,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처럼 본관은 허브로 작용하되 기관 자체는 전국 각지에 소분화하여 여러 분관을 세우는 안 등도 제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지나 비용, 지자체간 협의 등의 현실적인 제약 등으로 인해 철회된 것 같다. 분관 설립은 파주관을 세우는 선에서 타협을 본 듯.

5. 여담[편집]


  • 민속학과 졸업생들에겐 꿈의 직장이지만 오히려 역사학과, 고고학과, 인류학과, 문화재학과, 미술사학과 등 다른 학과 출신들이 더 많다. 안그래도 인문학이 힘을 잃고 있는데, 특히 민속학은 상기한 메이저 학문들을 극복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명맥이 끊겨가는 심각한 상황이다. 2023년 기준 한국 대학에서 민속학과는 전멸하였으며,[13] 민속 박물관에 민속학 전공자가 사라질 날도 머지 않았다.[14]
  • 박물관이 위치한 경복궁과 박물관의 주제가 생각해보면 참 묘하다. 조선의 최상류층이라 할 수 있는 조선 왕실이 존재했던 고궁에, '민속'이라는 일반 민중들의 가장 평범한 모습을 담은 문화재들이 모여 있는 것이 아이러니한 점.
  • 사실 국립민속박물관뿐만 아니라 국립고궁박물관을 세운 것도, 지하도나 주차장이 설치된 것도 엄연히 심각한 훼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민속박물관과 마찬가지 이유로 이에 대해 탐탁치 않아 하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국립민속박물관과는 달리 이 시설물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뚜렷한 후속 조치나 계획이 나온 바는 없다. 궁궐 구석에 작게 위치하기도 하였거니와, 궁이라는 특성에 어울리기도 해서인 듯 하다.
  • 야외 전시관에 꾸려진 '추억의 거리'는 1999년에 개최되었던 '추억의 세기에서 꿈의 세기로'라는 특별 전시회의 일환으로 조성됐으나, 폐막 이후에도 한동안 유지되다가 2009년부터 리뉴얼되었다.
  • 본 박물관의 모태인 조선민족미술관의 설립에는 상술한 야나기 무네요시와 더불어 아사카와 다쿠미가 큰 기여를 하였다. 조선의 공예품을 예찬하던 아사카와의 수집품을 본 야나기가 미술관 설립 과정에서 기증을 요청했고, 아사카와가 이에 동의하였다고 전해진다.
  • KOF 97에서는 한국 스테이지를 소개할 때 화면에 등장한다.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1의 아시아 문화권 마을 회관은 여기를 모델로 했다.
파일:attachment/국립민속박물관/img01.jpg

6. 역대 관장[편집]


  • 국립민족박물관장
    • 송석하 (1945 ~ 1948)
    • 김호탁 (1948 ~ 1950)

  • 국립박물관 남산분관장
    • 김호탁 (1950 ~ 1952)
    • 김정학 (1952 ~ 1954)

  • 국립민속박물관장
    • 최종채 (1975)
    • 맹인재 (1975 ~ 1978)
    • 장건상 (1978 ~ 1979)
    • 김광언 (1979 ~ 1981)
    • 지건길 (1981 ~ 1982)
    • 하효길 (1982 ~ 1986)
    • 이종철 (1986 ~ 1994 / 1998 ~ 2003)
    • 조유전 (1994 ~ 1998)
    • 김홍남 (2003 ~ 2006)
    • 신광섭 (2006 ~ 2011)
    • 천진기 (2011 ~ 2018)
    • 김종민 직무대행 (2018)
    • 윤성용 (2018 ~ 2021)
    • 김종대 (2021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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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6년에 휴관일 없는 박물관이 시행되어 화요일 정기 휴관일이 있었지만 폐지되었다.[2] 여담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주 건물로 사용하던 조선총독부 청사가 김영삼 정권의 역사바로세우기 계획에 의해 철거되고 용산에 이전되기까지 한동안 거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3] 실제로 아래에 기술된 사유로 인해 2013년 월간 SPACE 선정 한국 현대건축 태작20위 중 15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4] 이 건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용도로 쓰기 위해 세워졌다.[5] 당시 이전 후보지로는 서울의 용산 미군기지 이전 부지, 소격동 국군기무사령부 부지, 정독도서관, 의릉, 방배동, 뚝섬, 상암동 DMC 부지가 제시되었고, 경기 지역에서는 포천, 부천, 용인, 파주가 후보에 올랐다.[6] 그러나 공간이 협소하다는 단점과, 당시 이명박 정부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추진으로 인해 무산되었다.[7] 대신 그 자리에는 국립한글박물관이 조성되었다.[8] 헤이리 예술마을 인근 대지 6만 5416㎥에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건물로 박물관의 대부분 소장품을 이전하였다.[9] 결국 은평구 기자촌에 설립 공사 중이고 2024년 완공 예정이다.[10] 코로나 시국 이전까지만 해도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은 경복궁을 관람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전형적인 관광코스로 한국인보다도 외국인들이 미어터지는 곳이었다.[11] 사실 국립민속박물관이 세종으로 쫒겨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용산부지 이용을 서울시가 반대했기 때문이었다.[12] 물론 이는 국립한국문학관 설립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민속박물관을 경쟁 부지에서 쫒아내야 했기 때문이었다.[13] 중앙대는 이미 13년도에 폐과되었으며 민속학의 본산인 안동대 민속학과 역시 2023년 문화유산학과로 학과명칭이 변경되고 커리큘럼이 조정되면서 사실상 폐과되었다.[14] 다만 대학원에서는 세부 전공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학력 인플레로 인하여 석사 이상 인력이 넘쳐나는 상황인데다, 박물관 미술관에서는 업계 특성상 석사 이상 인력 채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민속학 전공자가 아예 박멸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