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벡호/U-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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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제6대 감독인 핌 베어벡이 이끄는 U-23 대표팀에 다룬 문서이다. 이 시기에 핌 베어벡 감독이 지위한 국가 대표팀에 대한 내용은 베어벡호 문서에 독립하여 서술하였다. 따라서 이 문서는 U-23 대표팀에 해당하는 내용[1] 만 포함하였으며,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대표팀과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으로 나눠 기술하였다.
2. 선임 과정[편집]
대한축구협회는 2006년 6월 26일에 계약이 만료된 딕 아드보카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후임자로 수석코치 핌 베어벡을 감독으로 승격시켜 2년 계약을 맺었다. 기존 국가대표팀 감독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게 신임 감독에게 국가대표팀과 U-23대표팀 감독직을 겸임하도록 했다. 즉, 국가대표팀 감독으론 2007 AFC 아시안컵을 지휘하고, U-23대표팀 감독으론 2006 도하 아시안 게임과 2008 베이징 올림픽에 나설 남자 축구대표팀을 지휘하게 된다.
U-21은 따로 대표팀을 두지 않고 보통 U-23대표팀에서 관할하기 때문에, 베어벡 체제에서 U-23 대표팀은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 나설 U-23팀(2006년 기준, 1983년 이후 출생자)[2] 과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지역예선에 나설 U-21팀(2006년 기준, 1985년 이후 출생자)[3] 으로 이원화하여 운영할 것으로 예상된다. 취임 후 곧바로 23세 이하 선수들로 아시안 게임에 출전해야 하며, 아시안 게임을 마치고서 21세 이하 선수로 2년 동안 올림픽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국가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모두 맡음에 따라 A↔U-23↔U-21로 각 급 대표간 유기적인 협력 또한 가능해진다. 실제로, 베어벡 감독은 아시안컵 예선에서 도하와 인접한 이란 원정에 아시안 게임 대표팀 선수를 국가대표팀에 뽑아서 중동 현지적응, 성인 대표팀 경험 부여, 아시안 게임 대비 평가전 등의 목적으로 A매치를 운용하기도 했다. 또한, U-23 대표팀(아시안 게임 대표팀)에서 부족한 포지션을 기존 A대표팀 선수 중에서 와일드카드로 수혈하기도 했다. 이때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를 와일드카드로 한 자리씩 보강하였는데 이천수, 김두현, 김동진이 각각 뽑혔다. 이 선수들은 U-23 대표팀 경험이 풍부한 선수이며 어린 선수들에게 각 포지션 별로 구심점을 잡아줄 역할을 수행하였다. 당시 예술체육요원으로 병역을 수행 중이었던 이천수를 제외한 와일드카드 2인은 병역 미필 상태였기 때문에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다면 병역특례를 따낼 수 있어서 동기부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있었다.
3. 활동[편집]
3.1.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대표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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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팀은 베어벡호(U-23)가 2006년 6월에 출범하고 나서, 12월에 있었던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 출전한 아시안 게임 대표팀이다. 도하 아시안 게임 동메달 결정전이 치러진 2006년 12월 15일까지 약 6개월간 존속하였으며, 2006년 당시 만 23세 이하였던 1983년 이후 출생자를 주축으로 구성되었다. 이 대표팀에는 2003년 당시 만 20세 이하였던 2003 FIFA U-20 월드컵 아랍에미리트에 출전한 선수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3.1.1. 아시안 게임 이전[편집]
- 굵은 글씨는 2006년 9월 26일 A매치 명단에 포함된 선수
2006년 9월 27일에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 나설 남자축구 대표팀 명단이 발표되었다.# 2003년과 2005년에 FIFA U-20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를 중심으로 발탁하였으며, 와일드카드로 U-23 대표팀 경험이 풍부한 이천수, 김동진, 김두현를 뽑았다. 청소년 대표팀 경험과 U-23 대표팀 경험이 없는 선수는 염기훈이 유일하다.[5] 이 중에서 컨디션 난조를 보이고 있는 박주영과 러시아 진출 이후 적응기를 거치고 있는 김동현을 제외하고, 하루 전에 발표된 가나 평가전 및 아시안컵 예선전에 출전할 A매치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9월 26일 처음 발표된 A매치 엔트리에 정인환이 포함되었지만, 이후 10월 2일에 부상 중인 정인환을 제외하고 대체 자원으로 아시안 게임 대표팀 명단에 포함된 김동현을 선택하였다.#
3.1.1.1. UAE 2:0 승 (평가전)[편집]
아시안 게임 대표팀 경기로서는 첫 경기였지만 이 멤버로 지난 11월 15일에 있었던 A매치인 2007 AFC 아시안게컵 예선 최종전에 나선적이 있기 때문에 비공식적으로는 두 번째 경기이다. 김두현, 백지훈, 조원희, 김동진, 이호, 김진규 등 6명은 소속팀 일정으로 추후 합류 예정이었고, 이천수는 부상으로 경기에 나설 수 없었다. 게다가 정인환과 김동현은 뒤늦게 합류하여 제 컨디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즉 20명 엔트리 중에서 7명은 이 경기에 나설 수 없었고, 선발 출전하는 11명을 빼면 교체선수도 2명 밖에 활용할 수 없었던 셈이다. 게다가 그 2명 마저도 뒤늦게 합류하여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티자원을 활용하여 베스트 11을 추려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며 전반전에 골문을 가르는 데 실패했지만, 후반전에 들어 오장은-염기훈의 릴레이 골로 2:0 완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아시안 게임 조별예선 1차전을 치루게 되면서 아시안 게임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3.1.2. 아시안 게임[편집]
3.1.2.1. 엔트리[편집]
3.1.2.2. 방글라데시 3:0 승 (조별리그 B조 1차전)[편집]
이천수의 선취 득점이 경기 초반에 터져 앞서나갔지만, 이후 약팀만 만나면 상대 밀집 수비를 뚫지 못하는 고질병으로 이후 추가 득점을 하지 못하다가 후반전에 투입된 박주영의 연속골로 2골을 더하여 3:0으로 완승하였다. 첫 경기에 승리하며 산뜻한 출발을 하였지만, 최약체를 상대로 3득점 밖에 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3.1.2.3. 베트남 2:0 승 (조별리그 B조 2차전)[편집]
첫 경기 방글라데시전과 마찬가지로 경기 초반에 선취 득점엔 성공하였으나, 상대 밀집 수비에 추가 득점을 올리지 못한 채 답답한 경기를 보이다가 경기 종료 직전 추가 득점에 성공하여 2:0으로 승리하였다. 2연승으로 토너먼트 진출이 유력해졌으며, 최종전에서 승리하면 1위가 확정된다.#
3.1.2.4. 바레인 1:0 승 (조별리그 B조 3차전)[편집]
무기력한 경기력을 보이며 오히려 바레인에 끌려다니다가, 오범석의 결승골로 경기를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이 한 득점을 잘 지켜 1:0으로 신승하였다. 이 경기 승리로 B조 1위를 자력으로 확정지으며 8강에 진출하였다.# 박주영은 베트남전과 이번 바레인전에 연속으로 경고를 받아 누적되어 8강전에는 뛸 수 없다. 이후 8강전 상대는 F조 1위 북한으로 결정되었다.#
3.1.2.5. 북한 3:0 승 (8강전)[편집]
지난 세 경기에서 4-2-3-1 포메이션을 가동하였지만 이번 8강전에선 3-4-3 포메이션을 가동하였다. 남북대결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어려운 경기가 예상되었으나 3:0으로 무난한 승리를 거두며 준결승전에 진출하였다. 이 경기 승리로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남자축구 조별리그 3차전부터 이 경기까지 아시안 게임에서 8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3.1.2.6. 이라크 0:1 패 (준결승전)[편집]
경기 초반에 내준 실점이 결승점이 되면서 0:1으로 패배하였다. 이로 인해 아시안 게임 연속 무실점은 8경기에서 마감하였으며, 20년 만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 도전에 실패하였다.# 오범석은 지난 8강전부터 이번 준결승전까지 연속 2경기 경고를 받는 바람에 경고누적으로 동메달 결정전에 나설 수 없게 되었다. 여담으로 연령대는 다르지만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은 1년 뒤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대한민국을 승부차기 끝에 제압하며 또 다시 베어벡 감독의 발목을 잡는다.
3.1.2.7. 이란 0:1 패 (동메달 결정전)[편집]
4년 전에 홈에서 결승 진출을 좌절시켰던 이란과 동메달을 놓고 일전을 벌였다. 핌 베어벡 감독은 한 달전에 이 멤버로 이란과 A매치를 치룬 적이 있었다. 그 때 선발로 나선 11명 중에서 무려 6명이나 다시 선발 출전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날은 주장 이천수가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함에 따라 이호가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다.# 시종 일관 답답한 경기력으로 고전하다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내주며 노메달의 수모를 당했다.# 이 경기 종료와 함께 베어벡호는 약 6개월 간의 아시안 게임 여정을 마쳤다. 이후로 기존의 U-21 대표팀을 U-23 대표팀으로 구성하여 올림픽 예선에 출전할 예정이다.
3.2.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편집]
이 대표팀은 베어벡호(U-23)가 2006년 6월에 출범하고 나서, 2008 베이징 올림픽을 대비한 올림픽 대표팀이다. 베어벡 감독이 자진 사퇴한 2007년 7월 28일까지 약 13개월간 존속하였으며, 2006년 당시 만 21세 이하였던 1985년 이후 출생자를 주축으로 구성되었다. 이 대표팀에는 2005년 당시 만 20세 이하였던 2005 FIFA U-20 월드컵 네덜란드에 출전한 선수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3.2.1. 올림픽 예선 이전[편집]
3.2.1.1. 일본 1:1 무 (평가전)[편집]
U-21 대표팀에서 첫 소집은 한일 올림픽 대표 간 홈&어웨이 평가전이었다. 하루 차이로 이란 테헤란에서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예선 최종전이 치뤄지는 관계로 핌 베어벡 감독은 A매치 지휘차 이란으로 갔기에 이 경기는 홍명보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으로서 이 경기를 대신 지휘하였다.[9] 즉, 베어벡 감독의 올림픽 대표팀 데뷔전을 감독대행인 홍명보 코치가 치루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핌 베어벡 감독은 A매치를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대표팀 선수로 치뤘고, 홍명보 코치는 U-21 선수를 주축으로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을 지휘하였다. 게다가 이때 뽑힌 박주영, 백지훈, 오장은, 정인환, 정성룡 등은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도 뽑힌 상황이었다. # 홍명보 코치는 이 경기에서 양동현과 이근호를 투톱으로 세우고, 박주영을 왼쪽 미드필더로 배치하는 등 4-4-2 포메이션을 가동하였다. # 또한 주로 톱이나 윙을 보는 김승용을 오장은과 짝을 지어 중앙 미드필더로 활용하여 프리키커를 맡겼다. # 경기는 박주영이 경기 초반 선취골을 넣었으나, 안태은이 후반전에 자책골을 헌납하며 1:1로 비겼다. #
3.2.1.2. 일본 1:1 무 (평가전)[편집]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을 위해 아시안 게임 대표팀을 이끌고 두바이에서 현지 적응 중이었던 베어벡 감독은 이 경기를 위해 일본으로 이동하였으며 5일간 대표팀을 맡이 이 경기를 치루면서 비로소 감독 본인이 올림픽 대표팀 데뷔전을 두 번째 경기 만에 치루게 되었다. 베어벡 감독은 지난 홈 평가전에서 홍명보 코치가 가동했던 4-4-2 포메이션 대신에 자신이 A대표팀에서 주로 활용하는 4-2-3-1 포메이션을 가동하였다. 양동현을 최전방에 두고 좌우 윙으로 이근호와 이승현을 놓고 지난 경기에서 중앙 미드필더와 중앙 수비수로 나섰던 김승용과 이요한을 각각 공격형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변화를 줬다.# 경기는 활발한 측면 공격과 포스트 플레이를 앞세워 일본을 압도하였으나 지난 평가전과 마찬가지로 집중력 저하로 인한 통한의 실점으로 경기를 또 다시 1:1 무승부를 거두게 되었다. 비록 승리하진 못했지만 일본은 히라야마 소타 등 정예 멤버를 모두 차출하였고, 대한민국은 주요 자원이 다수 빠진 상황에서도 대등한 경기를 거뒀다는 점에서 분명 수확은 있었다.# 이 경기 이후 베어벡 감독은 다시 아시안 게임 대표팀 베이스 캠프가 차려진 두바이로 출국하였다.# 여담으로 이날 동점골을 넣은 마스다 치카시는 훗날 울산 현대(2013~2016)와 서울 이랜드 FC(2019) 소속으로 K리그 1-2부리그를 경험하기도 했다.
3.2.2. 올림픽 예선[편집]
2006년 12월에 아시안 게임이 폐막하며 기존의 U-21 대표팀을 U-23 대표팀으로 전환하여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축구에 출전할 대표팀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3.2.2.1. 예멘 1:0 승 (2차예선 1차전)[편집]
예멘의 극단적인 수비 축구에 고전하다가 양동현이 간신히 한 골을 넣어 1:0으로 신승하였다.# 박주영이 이 경기에서 자신에게 파울을 한 상대 선수에게 배치기로 보복하여 비신사적 플레이로 다이렉트 퇴장을 당하는 바람에 다음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되었다. 이후 FIFA는 추가 심의 결과 박주영에게 추가로 2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내려 올림픽 2차 예선 4차전까지 출전 정지를 받았다.#
3.2.2.2. UAE 3:1 승 (2차예선 2차전)[편집]
1차전에서 졸전을 보였으나 예멘보다 비교적 강팀으로 분류되는 UAE를 상대로 3골을 집어 넣으며 3:1로 승리하였다.# 여담으로 이 당시 만 18세로 유망주였던 기성용은 백지훈과 59분에 교체되면서 경기에 투입되어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뤘다.
3.2.2.3. 우즈베키스탄 2:0 승 (2차예선 3차전)[편집]
한동원이 두 경기 연속 멀티골을 집어넣으며 이에 힘입어 3연승을 하였다.#
3.2.2.4. 우즈베키스탄 1:0 승 (2차예선 4차전)[편집]
백지훈의 그림같은 프리킥 골로 4연승을 수확하였다. 이 날의 승리로 최종예선 진출을 조기에 확정하였다.# 그러나 지난 3차전에 이어 4차전에서도 옐로 카드를 받은 백지훈은 경고 누적으로 인해 다음 경기에는 뛸 수 없다.
3.2.2.5. 예멘 0:1 패 (2차예선 5차전)[편집]
박주영과 백지훈이 각각 징계와 경고누적으로 출전 정지를 받아 전력에 누수가 생겼으나, 최종예선이 확정된 상황이라 그동안 벤치를 지키던 멤버들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정성룡 대신 송유걸이, 김진규 대신 김태윤이, 이승현 대신 백승민이, 양동현 대신 심우연이 선발 기회를 받았다. 그리고 우측 풀백 자원인 김창수를 좌측으로 보내고 그 자리에 박희철을 기용하는 파격 실험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통한의 결승골을 얻어맞고 0:1로 패배하였다.#
3.2.2.6. UAE 3:1 승 (2차예선 6차전)[편집]
지난 예멘전에서 가동했던 김창수-박희철을 좌우 풀백으로, 최전방 심우연, 왼쪽 윙어 이근호, 쉐도우 스트라이커 한동원도 또 다시 선발 기회를 부여받았다. 경고누적 징계에서 복귀한 백지훈이 선발로 복귀하였다. 지난 경기에서 중원을 맡겼던 김승용은 이번 경기에서 오른쪽 윙어로 나섰다. 박주영은 징계 이후 교체 명단에 포함되었지만 경기에 나서진 못했다.# 최종전에서 오랜만에 다득점에 성공하며 3:1로 승리하였다.# 4차전에서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지은 대한민국은 이 경기 승리로 조 1위에 올랐다. 이후 6월 13일에 조 편성이 진행되었다. 대한민국은 바레인, 시리아, 우즈베키스탄과 B조로 편성되었다. 그러나 A대표팀을 겸직하고 있던 핌 베어벡 감독이 한달 뒤인 7월 28일에 2007 AFC 아시안컵 3·4위전을 마치고 A대표팀과 U-23대표팀에서 자진사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6월 6일에 있었던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축구 아시아 지역 2차예선 6차전이 U-23 대표팀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4. 전적[편집]
15전 10승 2무 3패 23득점 7실점
5. 총평[편집]
베어벡호 A대표팀처럼 포백 수비를 정착시켰다. 그리고 베어벡 감독과 코치진이 U-23(아시안 게임, 올림픽) 대표팀을 겸직하였기 때문에, 양 대표팀 간 유기적인 협력이 가능했고 올림픽 대표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선수들을 국가 대표팀으로 콜업하여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이 시기에 A대표팀에 발탁된 경험이 있는 올림픽 대표팀 멤버는 강민수, 기성용, 김창수, 오장은, 이근호, 정성룡 등이다. 이 중에서 강민수, 오장은, 이근호는 이 시기에 A매치 데뷔전까지 치뤘다. 이 때부터 대표팀에서 두각을 보인 선수가 바로 올림픽 대표팀에서 맹활약하던 이근호이다. 이근호는 베어벡호 올림픽 대표팀이 치룬 2006년 11월 14일 일본과의 홈 평가전부터 2007년 6월 6일 예멘과의 2008 베이징 올림픽 2차예선 6차전까지 총 8경기에 모두 발탁되어 주로 왼쪽 윙포워드로 나서며 주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후 핌 베어벡 감독이 겸직하고 있는 A대표팀에 발탁되는 겹경사를 누렸다. 게다가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골까지 넣게 되었으며, 2007 AFC 아시안컵에도 출전하게 된다. 이후로도 국가대표 공격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편 기성용이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기 시작됐을 시점이 바로 이 시기이다.[13] 이 시기에 유망주였던 선수들을 A대표팀에 발탁하여 대표팀을 이끌어 갈 선수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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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당초 계약 기간은 2008 베이징 올림픽(U-23)까지 2년동안에다가, 성적이 좋으면 2년 추가하는 옵션이 있었다. 기사(SBS)[1] U-21 포함[2] 2003 FIFA U-20 월드컵 아랍에미리트 본선에 출전한 선수들이 이 연령대이다.[3] 2005 FIFA U-20 월드컵 네덜란드 본선에 출전한 선수들이 이 연령대이다.[A] 골키퍼인 경우, 실점[B] A B 추후 부상으로 병역을 면제 받았다.[C] A B 추후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입상으로 예술체육요원에 편입되었다.[추정] A B 병역을 어떻게 수행했는지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지만, 해당 선수의 문서를 보면 부상이나 질병으로 면제 판정을 받은 듯한 언급이 존재한다.[D] A B C D E F G 추후 국군체육부대에서 병역을 수행하였다.[E] A B C D 추후 경찰 축구단에서 병역을 수행하였다.[4] 2002 FIFA 월드컵으로 예술체육요원 편입 자격을 얻었다. 이천수는 2005년 4월 11일자로 기초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입소하였는데, 통상적으로 2년 10개월(34개월) 동안 544시간의 봉사활동을 해야 병역을 마치기 때문에 이 당시 아시안 게임이 치러진 날짜 기준으로 복무를 마치지 않았다.[영구제명] A B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5] 다만 염기훈은 정인환과 함께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 발탁되어 2005년 이즈미르 유니버시아드에 출전한 경력은 있다.[6] 알 가라파 SC 홈 구장[7] 알 아라비 SC 홈 구장[8] 알 라이얀 SC 홈 구장[9] 이 경기는 2006년 11월 14일 화요일 20:00에 킥오프하며, A대표팀의 2007 AFC 아시안컵 예선은 11월 15:30(한국시간 21:00)에 킥오프 한다. 두 경기가 23시간 간격이고 같은 코칭스태프로 운영하고 있는 두 팀이 연속 이틀을 다른 장소에서 경기를 치루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벌어지는 일본과의 평가전을 홍명보 수석코치가 지휘한 것이다.[10] 알 와흐다 FC 홈 구장[11] 파흐타코르 타슈켄트 FK 홈 구장[12] 홍명보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지휘하였다.[13] 기성용은 이근호처럼 주전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니었고, 백업 미드필더로 활용되었지만 이 시기부터 차츰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사실 베어벡이 재직했던 당시 주로 청소년 대표팀 자원이었고, 2007 FIFA U-20 월드컵 출전을 목전에 둔 상황이어서 올림픽 대표팀에 자주 뽑히기엔 한계가 있었다. U-20 월드컵이 끝나고 후임 감독인 박성화가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에서 비로소 선발 기회를 부여받으며 중용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