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티아 크리스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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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로마 제국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로마 황제 콤모두스의 황후.
2. 생애[편집]
164년경 로마 제국 로마 또는 볼케이(현재 부치노)에서 집정관을 역임한 아버지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센스와 어머니 발레리아의 딸로 출생했다. 오빠 루키우스 브루티우스 킨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역시 집정관을 역임했다. 그녀의 가문은 이탈리아 루카니아 주 볼케이 출신으로,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와 밀접한 관계였다. 부친 브루티우스는 도나우 강변에서 벌어진 게르만족과의 전투에서 활약하는 등, 최전선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든든한 심복으로 활약했다. 마르쿠스 황제는 그런 그가 장인이 되면 콤모두스를 든든히 지켜줄 거라고 믿고, 178년 여름 크리스피나와 콤모두스를 결혼시켰다. 이 결혼식은 상당히 소박하게 이뤄졌고, 콤모두스는 신혼을 즐길 겨를도 없이 본국 이탈리아의 북부 국경으로 향하여 아버지를 보필했다.
남편인 콤모두스가 부친과 함께 공동 황제였기 때문에, 그녀는 결혼하자마자 아우구스타 칭호를 받았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에 선량한 성품의 소유자라서 사람들의 호감을 쉽게 샀다고 한다. 그러나 콤모두스의 큰누나 루킬라가 그녀를 질투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루킬라는 아우구스타 칭호는 자신만이 누려야 하는데, 크리스피나가 그걸 가로챘다고 믿었다. 결국 콤모두스가 즉위한지 2년이 지난 182년, 루킬라는 콤모두스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콤모두스는 이 사건에 심한 충격을 받았고, 이로 인해 폭군으로 변모하고 만다.
루킬라의 황제 암살 미수 사건 후 남편이 폭주하는 동안, 크리스피나는 별다른 행적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188년경, 여자 노예 마르키아를 총애한 콤모두스에 의해 간통 혐의를 뒤집어쓰고 카프리 섬으로 강제 추방되었다. 그 후 남편이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녀의 이름은 191년까지 비문에 언급되는데, 이로 볼 때 사망 날짜는 191년 전후인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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