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넬리아 살로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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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코르넬리아 살로니나.jpg
이름
율리아 코르넬리아 살로니나
(Julia Cornelia Salonina)
출생
미상
사망
268년 로마 제국 로마
남편
갈리에누스
자녀
발레리아누스 2세, 살로니누스, 마리니아누스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로마 제국 군인 황제 시대아우구스타, 로마 황제 갈리에누스의 황후.


2. 생애[편집]


출신지와 가계는 기록이 부족해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이름에서 드러나듯 그 혈통은 라틴 계통이 아닌 그리스인이다.

지중해 동부 출신의 그리스 혈통 로마 원로원 의원의 딸로 태어났다. 그리스인이라는 설과 소아시아 비티니아 출신이라는 설이 병립하나, 어느 쪽이 맞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현대 학자들은 그 주장 중 후자를 주장하고 있으며, 그녀가 비티니아 지방 중 흑해 연안의 옛 폰투스 출신 그리스인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브레이와 같은 학자들은 그녀가 비티니아 그리스인 출신 로마귀족의 딸이 맞더라도, 비티니아가 고향인지는 불명확하다고 지적한다.

갈리에누스가 황위에 오르기 10여년 전에 정략혼으로 결혼하였고, 발레리아누스 2세, 살로니누스, 마리니아누스를 낳았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외모가 평범하고 매력이 크게 없었지만 남편 갈리에누스가 로마 귀족들 중 눈에 띌 정도로 헬라 문화를 사랑해, 그녀를 존중해줬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은 갈리에누스는 그녀를 데리고 공식행사를 주최하는 일이 거의 없었을 정도로 지극히 정치적이고 형식적인 관계였다. 갈리에누스는 코르넬리아 살로니나와는 정치적인 이유로 이혼하지 않았고, 결혼관계 역시 어디까지나 후계자 생산 외에는 큰 의미는 없었을 정도로 그녀에게 다정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록펠러 고고학 박물관에 코르넬리아 살로니나 실제주의 조각상이 있는데, 코르넬리아 살로니나 실제 외모는 해당문서 조각상과 비슷함에도 차이가 많이 난다. 코르넬리아 살로니나를 사실주의적으로 만든 이 조각을 보면, 그녀는 우울하고, 억울해보이는 우중충한 표정에 작은 눈, 일자 눈썹, 마르고 긴 얼굴을 가지고 있고, 돌출된 입과 좁은 이마, 목이 가늘고 짧으면서도 어깨가 상당히 넓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야리야리한 모습으로 조각된 대표 초상화와 이목구비가 비슷함에도 미화됐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차이가 많이 난다는 평을 듣는다. 물론 미화해서 만든 조각상과 마찬가지로 전반적인 느낌은 비슷한데, 이렇다고 해도 노년의 리비아 드루실라, 노년의 옥타비아 조각상 등 사실주의적으로 만든 황후, 여자 황족들의 조각상들과 달리 그 차이가 심하다는 평을 듣는다. 따라서 고대기록에서 갈리에누스가 그녀를 존중했다는 표현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이 역시 좋게 포장해 기술한 표현이라고 말한다.

실제 갈리에누스는 코르넬리아 살로니나가 있음에도, 마르코만니 족장 아탈루스의 딸 피파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피파를 만나기 전에도 따로 애인을 구해 만났을 정도로 아내 코르넬리아 살로니나를 정치적, 사회적으로만 내세우면서 존중만 해줬다. 따라서 갈리에누스는 피파를 애인으로 삼거나 첩실로 두지 않고, 별도로 결혼식을 올렸고 피파를 위해 노랗게 머리를 염색하기도 했다. 그래서 당대 로마 역사가들이 갈리에누스와 피파의 관계에 깊은 관심을 둔데 비해, 살로니나는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 했다고 평가했는데, 이를 증명하듯 황제와 황후가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많지 않았다.

268년 그동안 갈리에누스와 함께 반란 진압을 진두지휘했던 기병대 지휘관 아우레올루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을 포스투무스의 대리인으로 칭했다. 이에 갈리에누스는 진압에 나섰고 밀라노 근처의 폰티롤로 누에보에서 격전 끝에 아우레올루스의 군대를 격파하고 아우레올루스를 밀라노에 가둬놓고 포위했다. 그런데 갈리에누스는 포위 공격 후 승리를 앞둔 시점에 자신의 장교들에게 살해당했다. 이때 갈리에누스의 이복동생 소 발레리아누스도 함께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소 발레리아누스의 경우에는 갈리에누스가 죽은 뒤 로마에서 살해됐다는 기록도 있어 어느 곳에서 암살됐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새 황제가 된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가 소 발레리아누스의 친모에게서 황제 휘장을 받기 전, 새 황제는 원로원을 설득해 그녀와 소 발레리아누스 가족들에 대한 보복을 금지했다. 이때 서민들과 귀족, 군인들은 소 발레리아누스가 못난 형 때문에 억울하게 피살됐다고 그 죽음을 안타깝게 여겼고, 원로원은 소 발레리아누스의 남은 가족들에게 연좌제를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갈리에누스의 아내 살로니나는 동정 대신 질타를 받았고, 아우구스타 직위가 박탈됐다. 원로원은 명령을 내려 그녀를 끌어냈고, 어린 아들 마리니아누스와 그녀를 처형했다. 이때 갈리에누스의 외사촌 에그나티우스 형제 등도 함께 처형됐는데, 정황상 그녀의 친정 식구들도 이때 원로원에게 처형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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