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란퀼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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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트란퀼리나.jpg
이름
푸리아 사비니아 트란퀼리나
(Furia Sabinia Tranquillina)
출생
226년 미상
사망
미상
아버지
가이우스 푸리우스 사비니우스 아퀼라 티메시테우스
남편
고르디아누스 3세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로마 제국 군인 황제 시대아우구스타, 로마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의 황후. 아버지는 고르디아누스 3세 정부 아래에서 실권자인 근위대장 티메시테우스다.


2. 생애[편집]


226년경 가이우스 푸리우스 사비니우스 아퀼라 티메시테우스의 딸로 태어났다. 티메시테우스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그리스 혈통의 로마인으로 기사계급이다. 다만, 그리스 본토 태생의 그리스인은 아니며 헬레니즘 시대 아래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 혹은 디아도코이들의 근동 진출 당시 이주한 시리아 속주의 그리스인의 후손이다. 리옹에서 발굴된 비문에 따르면 부모가 이 일대에서 매우 부유해 어릴 적부터 그리스, 로마 엘리트들이 갖춰야 할 수사학 교육을 숙달했고, 다양한 고전 문학을 배워 제국의 여러 공용어에도 능했다고 한다. 그는 영리한데다 눈치가 빠르고 언변이 화려했다. 따라서 관료 생활 내내 광대한 제국 안의 다양한 문화, 풍습을 누구보다 빠르게 익힐 수 있었고, 본래부터 예의바르고 맡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해 평가가 좋았다. 이런 이유로 트란퀼리나 아버지는 일찍부터 민간행정, 군사행정을 오가며 제국 관료로 활약했다. 갓 공직을 시작하게 된 20대 초반인 세베루스 왕조 시대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말기부터 알렉산데르 세베루스까지 행정관료로 제국 서방과 동방을 두루 오갔다. 처음 공직을 맡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카라칼라, 게타 공동통치 무렵에는 히스파니아에서, 카라칼라 단독 통치기에는 히스파니아, 아라비아-페트라, 벨기카,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 갈리아에서 재정 관리, 회계, 징세, 병참 물자 관리, 부상자 및 입대, 전역자 관리 등을 담당했다고 한다. 이후,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시대에는 율리아 마이사, 율리아 마마이아 밑에서 에메사 왕가 여인들의 금고지기 역할을 맡으면서도, 행정관료로 민간, 군대를 오가며 맹활약했다.

대개의 능력 좋은 행정관료처럼 세베루스 왕조가 무너지자,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밑에서 근무했다. 이때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의 명령으로 흑해 연안의 비티니아, 폰투스 등 소아시아 주요 속주들의 회계 및 영토, 세금 관리 총책임자로 활동했다. 허나 238년 고르디아누스 1세고르디아누스 2세가 막시미누스에 맞서 봉기하고 원로원이 이에 호응해 막시미누스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자,티메시테우스는 두 계급 이상을 강등당하는 징계와 함께 공직을 떠나야 했다. 어떻게 보면 관료 생활을 성실히 수행하다가 제대로 경력이 꼬이게 된 케이스.

하지만 그는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갈고 닦은 그리스-로마식 수사교육 등을 이용해, 갈리아 일대 유력자들을 교육하며 곧 재기했다. 이는 리옹에서 발굴된 티메시테우스 비문에 잘 나오는데, 아마도 그와 가족들은 갈리아 지방의 루그두눔(오늘날의 리옹)에서 생활했던 것 같고 트란퀼리나 역시 리옹에서 어릴 적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티메시테우스는 갈리아인들의 도움으로, 푸피에누스와 발비누스가 몰락하기 전 로마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는 그가 막시미누스 밑에서 근무한 까닭에 징계를 받고 관료생활이 꼬였음에도, 행정 능력과 인품 모두에서 딱히 건덕지도 없고 애당초 막시미누스 최측근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한 케이스다. 이런 배경 때문에 티메시테우스는 가족들을 데리고 로마에서 살 수 있었는데, 이때 그는 여러 원로원 인사들과 교류를 하면서 갓 즉위한 고르디아누스 3세 쪽과 연을 맺게 된다. 본래부터 수사학 재능이 뛰어나고, 능력이 워낙 뛰어난 행정관료인 까닭에 티메시테우스는 안토니아 고르디아나의 눈에 들었고, 이를 기회삼아 악연일 수도 있는 고르디아누스 가문과 푸닉, 아나톨리아 출신 인사들에게 호감을 얻게 된다.

241년, 티메시테우스는 여러 원로원 의원들의 추천과 소년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와 두터운 친분을 쌓은 것을 배경삼아, 자신의 딸 트란퀼리나를 고르디아누스 3세와 결혼시킨다. 이때 안토니아 고르디아나, 고르디아누스 3세는 고르디아누스 1세, 고르디아누스 2세가 소유했던 로마 근교의 아름다운 고르디아누스 별장을 리모델링하고 재증축해, 화려한 결혼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이때 트란퀼리나의 아버지 티메시테우스는 자신의 일생일대 꿈으로 울피아누스가 누렸던 근위대장 자리와 임페리움(전직집정관 행정권)을 손에 넣게 된다.

티메시테우스는 울피아누스처럼 근위대장이면서도 임페리움까지 차지하자, 고르디아누스 3세 정부의 실권을 완전히 집어 삼킨다. 그의 곁에는 같은 시리아 속주 사람인 율리우스 프리스쿠스, 필리푸스 아라부스 형제와 같은 근위대 장교들이 함께 했고 고르디아누스 3세 정부는 그리스, 푸닉, 시리아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 과정에서 트란퀼리나는 아버지 티메시테우스가 근위대장 직을 손에 넣고, 고르디아누스 가문과 유대관계를 돈독히 쌓게 한 상징이었다. 따라서 241~243년 동안 근위대장에 있던 티메시테우스는 딸 트란퀼리나와 사위 고르디아누스 3세를 고결하고 아름답고 자상한 소년, 소녀 부부로 포장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다. 하지만 이런 인위적인 프로파간다는 취약점이 많은 고르디아누스 3세의 정통성을 끌어올려줌에도 곧 잡음을 일게 했다. 따라서 241년 아프리카 속주에서 고르디아누스 3세, 티메시테우스 축출을 명분 삼은 반란이 터지자, 티메시테우스는 이를 꼬투리 삼아 옛 푸피에누스, 발비누스 지자자로 아퀼레이아 공방전의 영웅으로 불린, 존경받는 원로원 의원이자 명장 툴루스 메노필루스에게 죄를 덮어 씌운다. 티메시테우스는 이때 메노필루스를 처형한 뒤, 아예 기록말살형에 처하게 했다. 이는 툴루스 메노필루스가 푸닉에서 벌어진 반란과 무관함에도 눈엣가시였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티메시테우스의 능력이 워낙 뛰어나고 후속대처도 유연해 넘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1년 후인 242년 사산 왕조샤푸르 1세가 동방 영토를 침략하자, 고르디아누스 3세는 장인 티메시테우스, 아내 트란퀼리나와 함께 출정했다.

티메시테우스는 부대 내에 물자를 충분히 비축하고 전방의 모든 도시들에 식초, 베이컨, 밀짚, 보리, 밀 등의 창고를 짓게 하는 등 원정 준비를 철저히 해두었고, 로마군은 이에 힘입어 레세나 전투에서 사산 왕조 군을 격파하고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은 뒤, 적의 수도 크세노폰을 향해 진격했다. 그런데 243년, 티메시테우스는 돌연 사망했다. 이질 때문에 사망했다고 하는데, 갑자기 병세가 악화돼 사망한 까닭에 향간에서는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티메시테우스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에 정부의 2인자로 고르디아누스 3세의 또 다른 총신이며 티메시테우스의 오른팔 율리우스 프리스쿠스는 근위대를 통솔하고 정치공작에 능한 필리푸스 아라부스를 후임으로 추천했고, 로마군은 티메시테우스 부하들 지휘 아래 안정을 되찾는다. 이후 고르디아누스 3세는 군을 이끌고 다시 전쟁을 수행한다. 허나 고르디아누스 2세 역시 244년 2월 필리푸스 아라부스 일당에게 암살되거나(로마 측 기록) 사산 왕조군과의 전투 중 전사했다.(사산 왕조 측 기록).

이후 필리푸스 아라부스가 제위에 오르는데, 이때 트란퀼리나는 자연스레 아우구스타 직위가 박탈된다. 사별 후, 마르쿠스 마르키우스 오르피토와 재혼했고 딸 푸리아 안토니아를 낳았다고 전해지나,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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