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무고샤/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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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스테판 무고사의 선수 경력을 다룬 문서.


2. 클럽 경력[편집]



2.1. K리그 이전[편집]



2.1.1. 프르바 CFL[편집]


무고사는 포드고리차에서 태어나 그 지역 고향 팀인 FK 부두치노스트 포드고리차에서 축구를 배우며 자랐다. 몬테네그로 청소년 대표로 소집될 정도로 재능이 입증된 무고사는 프로에 입성하여 가능성을 점차 보여주었고, 2013~2014 시즌에는 29경기 15골을 기록하며 몬테네그로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2.1.2. 2. 분데스리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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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V 1860 뮌헨 시절 무고사

무고사는 몬테네그로 리그에서의 활약을 통해 2014년에 2. 분데스리가1.FC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했다. 그러나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는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서 2경기 출전에 그쳤고, 후반기에 하위권 팀인 FC 에르츠게비르게 아우에로 임대되었다. 아우에에서는 반 시즌 간 15경기 4골을 기록하면서 생각 이상의 활약을 보여줬지만, 팀은 결국 3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무고사는 임대 만료 이후 TSV 1860 뮌헨으로 이적했고, 한 시즌 반 동안 리그 30경기 무득점을 기록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다.[1] DFB-포칼에서 골을 맛본 것이 위안거리였다. 2017년 겨울에는 카를스루어 SC로 임대되어 12경기 2골을 기록했다.


2.1.3. 디비지아 나치오날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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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분데스리가에서의 성적이 영 시원치 않자 결국 임대가 종료된 뒤, 무고사는 몰도바 리그의 FC 셰리프 티라스폴로 합류하며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셰리프에서는 반 시즌 동안 13경기 7골이라는 좋은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팀이 2017-18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본선에 진출했기 때문에 무고사도 유로파 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 조별 리그 상대 팀들은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FC 코펜하겐, 그리고 체코 리그의 FC 파스타프 즐린이었으며, 비록 여기서 득점은 없었지만 4경기에 출전하여 귀중한 경험을 했다.


2.2. 인천 유나이티드 FC[편집]


파검의 피니셔

소개 멘트


문학유병수
숭의는 무고사


2.2.1. 2018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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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태어날 딸에게 아버지가 다음 시즌에도 인천과 1부 리그에서 뛴다는 말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 언론에서 인천팬들에게 사실상 종신 선언


2018년 2월 8일, K리그1인천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다는 공식 오피셜이 나왔다. 인천은 엔조 마이다나웨슬리 아우베스를 내보낸 이후 새로운 공격수를 찾았고, 그 과정에서 몰도바 리그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무고사에 관심을 가졌었다고 한다. 합류 이후 프리시즌 경기에서 3골 1도움을 기록, 김보섭과 함께 팀 내 득점 1위로 올라섰다. 게다가 그가 득점한 상대 팀들인 안산 그리너스, 부산 아이파크, 산둥 루넝이 모두 프로 구단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개막전에 강원 FC를 상대로 선발로 출전, 7개의 슈팅을 기록했고 데뷔 골까지 신고하면서 팬들을 만족시켰다. 거의 이효균이 한 해동안 한 슈팅을 하루에 다 한 셈. 움직임, 슈팅 능력, 제공권 등 다방면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서 홈 개막전인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도 선발로 출전하여 여전히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였고, 두 경기 연속 골까지 기록하며 팀의 극적인 승리에 기여했다. 팬들도 무고사의 미친 활약에 몇 년간 인천에서 보지 못하던 유형의 스트라이커를 얻게 되었다는 평을 내리며 즐거워 하고 있고, 벌써부터 제난 라돈치치데얀 다미아노비치의 뒤를 이을 선수로 기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의 팔꿈치 반칙으로 인해 사후 징계를 받아 두 경기 결장이 확정됐다.

징계가 끝난 후 복귀한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에서도 전반전과 후반전에 1골씩 멀티골을 쓸어담으며 인천의 득점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종료 직전 안타깝게 동점골을 먹히며 복귀전 승리는 무산되었다. 그래도 제 몫은 충분히 해줬다는 평. 5R MVP까지 수상하면서 활약을 인정받았다. 상주 상무 전에는 득점에 실패했지만, 제주 유나이티드 전에는 엘리아스 아길라르의 패스를 득점으로 연결하여 3 : 2로 따라붙는 추격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김용환을 비롯한 수비 지역의 안일한 플레이로 한 골을 더 실점하며 팀은 완패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전에서는 연계 플레이를 적절히 수행하면서 상대를 위협했고, 도중에 상대 수비를 드리블로 뚫고 1대1 찬스를 얻기도 했다. 아쉽게 득점에는 실패했고, 수비진의 호러쇼가 이어지며 팀은 패배했다. 울산 현대 원정에서는 세트피스 상황에서 불운한 자책골을 기록했지만, 이후 후반에 높은 타점으로 쿠비의 크로스를 헤딩 슛으로 연결, 시즌 6호 득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팀은 분위기를 잡았음에도 마무리를 못 해서 또 패배.

월드컵 휴식기 종료 이후 전북 현대 모터스 원정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 환상적인 개인 기량으로 수비를 따돌리고 득점하면서 8호 골을 달성했다. 이 날 문선민이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둘은 8골로 동률을 이루었다. 아쉽게도 후반에 잡은 찬스에서는 과도하게 양보하다가 기회를 놓쳤고, 이후 김보섭과 교체되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에서는 소중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동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팀은 답이 없는 수비진으로 5 : 2로 패배했다. FC 서울을 상대로는 열심히 뛰었지만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고, 후반에 들어간 문선민이 득점하면서 간만에 인천이 승리했다. 이후 전남 드래곤즈 원정 경기에 선발로 출전했고, 전반 중순 남준재의 패스를 받아 동점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후반전 결정적인 찬스를 잡아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는데, 침투하던 박종진이 먼저 슛을 때려 골을 넣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 때 다소 아쉬워하면서도 팀의 역전은 기뻐했다. 그리고 아길라르가 로빙 패스를 올려준 것을 마무리하면서 멀티 골을 기록, 팀의 3 : 1 역전승의 1등 공신이 됐다.

한동안 강행군으로 인해 컨디션이 떨어진 플레이를 보여줬지만, 강원 FC 원정 7 : 0 참사 이후 선수단 전체가 각성해서 치른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에서 고슬기의 커팅에 이은 문선민의 패스를 이어받아 센스 있는 슈팅으로 간만에 득점을 기록했다. 팀은 3 : 1로 간만에 승리를 챙기면서 다시 탈꼴찌에 성공. 그리고 울산 현대와의 홈 경기에서 정동윤이 올린 크로스를 높은 타점의 헤딩 슛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팀도 3 : 2 승리에 성공.

이후 상당히 지쳤는지 그렇게 큰 활약은 하지 못하다가 경남 FC와의 경기에서 시종일관 위협적인 슈팅과 드리블로 상대를 위협하더니 후반 35분 드리블로 2명을 뚫고 돌파해서 얻어낸 프리킥을 아길라르가 성공시켰고 후반 40분 문선민의 패스를 받아 시즌 14호골이자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그 다음 경기인 32라운드 대구 FC 원정에서는 많이 지쳤는지 폼이 상당히 떨어진 모습이였고 부정확한 패스 및 슈팅으로 안타까움을 샀다. 세트피스에서는 위협적인 슈팅도 선보였지만 골대에 맞거나 조현우한테 막히며 기회가 무산되었다. 그러나 결국 후반에 김진야가 준 컷백을 그대로 강한 슛으로 넣으면서 팀의 승리를 결정지었다. 이로써 리그 15호골을 기록하여 인천 소속 외국인 선수 중 단일 시즌 리그 최다 골의 주인공이 되었다.[2]

이후 전북 현대 모터스를 상대로 전반 9분만에 남준재의 크로스가 최보경에 굴절된 것을 밀어넣으면서 16호 골을 신고했다. 아쉽게 인천은 승점을 얻는 데 실패했고 그 다음 대구 FC를 상대로는 득점에 실패했으나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서 남준재의 골을 어시스트하고 후반에는 고슬기의 헤딩 어시스트를 받아 17호 골까지 성공시켜 승리의 1등 공신이 됐다. 그 다음 강원 FC 원정에서는 아길라르와의 멋있는 패턴 플레이를 통해 세트피스에서 전반 3분만에 원더 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전반 막판 어깨 부상을 당한 이후 체력이 급속도로 저하되었고, 결국 후반에 김정호와 교체되었다. 부상의 여파도 있고 국가대표팀 경기 참여로 인한 피로도도 고려해서 FC 서울 원정에서는 선발에서 제외되었는데, 한석종의 결승골을 인천이 지켜내면서 승리를 거두었고 무고사 본인은 후반에 투입되어 잠시 활약하였다.

리그 최종전에서 다시 선발로 나선 무고사는 남준재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마무리하면서 시즌 19호 득점에 성공했다. 그리고 후반에는 뒤에서 넘어온 공을 바로 전방으로 찔러 문선민의 득점을 어시스트하였다. 그 결과 무고사는 리그 19골 4도움, 공격포인트 23개로 22골 0어시를 기록한 유병수의 인천 소속으로 한 시즌 최다 공격포인트 기록을 경신하는 데 성공했다.

시즌 기록은 35경기 19골 5어시로 인천 역대 외국인 선수 중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하였고 제리치가 초~중반기에 엄청난 기세를 보이다가 후반기에 잠수를 타거나 말컹이 후반기에 거의 나오지 못한것에 비해 무고사는 주니오와 함께 시즌 내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활약상으로 문선민과 함께 2018년 시즌 베스트 11 포워드 부문 후보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말컹과 주니오에게 밀려 수상은 실패하였다. 또한 인천과 국대에서의 활약상으로 2018년 몬테네그로 올해의 선수상 2위도 같이 수상하며 무고사 개인에게는 최고의 한 해가 되었다.

2018 시즌 35경기 19골 5도움
K리그1: 34경기 19골 4도움
FA컵: 1경기 1도움


2.2.2. 2019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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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시즌이 종료 후 이적 루머가 오르내리는 와중에 프랑스 리그앙 이적설까지 돌았다. 그러나 결국 2021년까지 인천과의 재계약에 합의했다.

개막전에서 선발로 출전했으나 중원이 고전함에 따라 무고사도 전방에서 고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공을 받으러 아래까지 많이 오느라 정작 최전방에 필요할 때 자리를 비울 때도 있었고 주변 선수의 지원이 부족하여 고립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최전방에서 어떻게든 버티려는 노력을 했고 결국 본인이 찬 슈팅이 박진포의 손에 맞아 얻어낸 PK를 정확하게 성공시키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승점 1점 획득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셈.

2라운드인 경남 FC전에서도 선발 출장해 전반 22분, 남준재의 침투를 보고 과감한 패스를 넣어 선제골을 어시스트했고 전반 30분대에는 질로안 하마드의 컷백을 받아 득점을 기록하며 1골 1도움을 기록, 가장 빛나는 활약을 했다. 초반 두 라운드에서의 페이스가 좋았으나 그 이후로 강행군 속에서 체력이 고갈되었고 상대의 집중 견제에 시달리고 있다. 결국 5라운드 경기 막판에 부상까지 당하면서 전력에서 이탈, 당분간은 김보섭, 허용준, 응우옌꽁프엉, 김근환 등이 무고사의 자리를 메울 전망이다.

10라운드 강원 FC전에서 62분 김보섭과 교체되어 복귀하였다. 위협적인 슈팅을 여러 번 날렸으나 팀의 0:1 패배와 최하위 추락을 막지 못했다. 11라운드 포항전에서 복귀 이후 처음으로 풀타임을 소화하였다. 전반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으나 마무리가 아쉬웠고, 결국 인천은 이 날도 득점 없이 패배했다. 13라운드 상주전에서 전반 8분 김경재의 공을 빼앗아 1:1 찬스를 잡은 후 깔끔한 슈팅으로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후반전에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교체 아웃되었고, 팀은 1:2 역전패를 당했다.

확실히 인천에 빼놓을 수 없는 선수는 맞지만, 작년에 비해 폼이 많이 내려오기는 했다. 특히 부상에 시달리면서 컨디션을 정상으로 회복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 팀 내에서 가장 많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는 등 인천의 에이스임은 확실하지만, 주변 선수들의 지원도, 본인의 컨디션도 아쉬움이 남기는 한다. 시즌 중반으로 흘러가면서도 공격포인트는 여전히 지속적으로 기록해주고 있다. 침투하는 하마드에게 좋은 패스를 주면서 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했고, 지언학이 찔러준 패스를 잡은 뒤 정확한 슈팅으로 득점을 하기도 했다. 빈공에 시달리는 인천에서 그래도 꾸준히 공격 포인트를 만들고 있고, 폼도 다시금 끌어올리는 중.

22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해 후반 1분에 곽해성의 높은 크로스를 받아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 절묘한 헤더로 팀의 선제골을 득점했다. 이외에도 좋은 움직임을 통해 때린 강력한 슈팅을 강현무가 선방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며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다. 시즌 내내 어려운 상황에 시달렸던 무고사였는데, 이 날 경기력은 2019 시즌 무고사 개인으로 보여준 최고의 경기력이나 다름없었다.

그 이후 랑레 케힌데가 영입되면서 케힌데와 함께 투톱 파트너로 출전하고 있다. 다만 4-4-2 전환 이후 초반에는 서로의 호흡이 다소 아쉬운 상황. 유상철은 무고사에게 플레이 메이킹 역할까지 전담시키고, 케힌데를 올려 경합에 힘쓰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플레이가 무고사에게 부담을 가중시켜서 무고사가 압박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쉽다.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파트너쉽이 괜찮아지고 있고, 이 두 선수에게 이목이 쏠리는 현상을 김호남 등 다른 자원들이 잘 활용하고 있는 부분이 긍정적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무고사가 케힌데에 비해 너무 많은 역할을 맡아 지쳐가는 상황이 초래되었고, 이 점이 발목을 잡아 팀에게도 악영향이 되기도 했다.

27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선발로 출전했으나 전반까지는 케힌데와의 조합 문제로 고생했다. 그러다가 3 : 1로 뒤진 후반전에 정훈성의 크로스가 수비 맞고 굴절된 것을 골키퍼가 나온 틈으로 밀어넣으며 추격의 골을 기록했다. 이어서 명준재가 넘겨준 패스를 논스톱 감아차기로 연결했는데 이것이 골문 구석에 꽂히며 기막힌 동점골이 되었다.[3] 하지만 팀은 이후 이미 한 골을 기록했던 완델손에게 또 두 골을 추가 허용하며 패했다. 해당 경기에서는 무고사의 폼이 다시 살아나는 기미가 보였고, 케힌데가 빠지고 문창진이 들어와 후반에 4-2-3-1로 전환한 이후 특히 좋은 모습을 보여줘 투톱 무용론이 대두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무고사가 거의 본인의 힘으로 만들어낸 동점 상황을 수비가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도 많이 나왔다. 특히 포항은 스타니슬라브 일류첸코과 퇴장당한 상태였으니 더더욱 그렇다.

28라운드 울산 현대전에서도 역시나 선발로 출전했지만, 이번에는 케힌데가 아닌 부상에서 복귀한 지언학과 함께 투톱을 구성했다. 그리고 지언학은 활발한 움직임을 가져가며 때에 따라 투톱이 아닌 다른 포메이션처럼 움직이기도 했고, 무고사에게 가는 압박을 분산시키며 한결 좋은 경기력을 이끌어냈다. 그럼에도 수비진이 잘 버티지 못하면서 주니오에게 두 골을 내주었고, 인천은 후반전까지 2 : 0으로 뒤져있었다. 그러던 순간 지언학이 침투한 이후 정확하게 내준 짧은 크로스를 받아 만회골을 기록하면서 분위기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케힌데가 투입된 이후 공중볼을 따면서 분위기가 전환되었고, 이어 87분 경 김도혁의 코너킥을 강력한 헤더로 마무리하며 동점골을 기록했다. 그렇게 혼자 멱살잡고 팀을 살려냈으나, 수비가 안일한 모습을 보이면서 이근호가 다시 골을 기록해 인천은 다시 3 : 2로 뒤지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인천 팬들은 다시금 좌절과 분노를 표시했는데... 이어진 후반 추가시간에 여성해로부터 이어받은 공을 엄청난 슈팅으로 연결했고, 이것이 골대 맞고 들어가며 인천 소속으로 자신의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해트트릭과 동시에 인천도 경기를 3 : 3으로 쫓아가는 데 성공하며 승점 1점을 얻었고, 팀의 꼴찌 재탈출의 1등공신이 되었다. 무고사의 해트트릭은 제난 라돈치치, 유병수 외의 다른 선수가 인천 소속으로 기록한 첫 해트트릭이며, 2010년 이후 9년만에 나온 기록이기도 하다. 시즌 내내 고생하던 무고사였으나 두 경기에서 순식간에 다섯 골을 몰아치면서 10득점의 고지를 다시 달성했고, 페이스가 좋아진 만큼 남은 후반기 기간에도 득점 행진이 기대되는 상황.

31라운드 상주 상무전에서 선발출전해 경기 초반에 페널티킥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선제골을 기록했고 이어 김호남이 흘려준 패스를 골문 구석으로 향하는 중거리슛으로 연결하며 추가골을 기록했다. 이 멀티골로 인천은 간만에 승점 3점을 거머쥐며 탈꼴찌를 기록했다. 이어서 32라운드 강원 FC 원정에서는 팀이 부진하는 가운데 수차례 슈팅을 기록하며 고군분투를 했다. 코너킥 상황에서 유효슈팅을 만들어 내며 마하지의 득점에 기여를 하였고, 결국 막판에 동점골을 기록하며 인천이 10위로 올라서도록 만들었다. 시즌 초반에는 고전했지만 8월부터 엄청난 득점 페이스를 회복하며 순식간에 13골로 올라섰고, 아담 타가트주니오르 네그랑이 벌이던 득점왕 경쟁에 합류했다.

파이널 라운드의 첫 경기인 34라운드 성남 FC 원정에서는 국가대표 차출에서 돌아온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바로 선발로 투입되었다. 피곤할 수 있는 조건임에도 전방에서 고전하면서 풀리지 않는 팀의 공격 활로를 찾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후반 29분, 본인이 얻어낸 프리킥을 벽 아래로 깔아차며 결승골을 기록했다. 인천은 무고사의 한방으로 귀중한 승점 3점을 챙기며 다시 10위로 도약하였다. 36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 원정에서는 PK를 실축[4]하는 등 아쉬운 모습을 보였으나, 이후 37라운드 상주 상무전에서 선발 출전해 문창진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이 날 전반적으로 골 운은 따라주지 않았지만 혼자서 공격을 이끄는 모습을 보여줬고, 덕분에 팀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최종전에서는 다소 결정력이 아쉬웠으나 앞에서 열심히 뛰어주면서 마침내 잔류를 확정지었다.

시즌 기록은 32경기 14골 4도움으로 득점 순위는 5위. 19년 인천 전체 기록이 33골이라는 것을 볼 때 그냥 올시즌 인천의 공격은 무사고 혼자서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시즌 초중반에는 인천이 문선민과 아길라르의 공백을 메우지 못했기에 본인도 활약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골을 넣어 주었으며 후반으로 갈 수록 점점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며 인천의 잔류를 이끌어 내었다. 또한 골 뿐만 아니라 내려와서 플메역할도 했다는 것을 볼때 엄청난 활약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시즌 종료 후인 12월 26일, 몬테네그로 축구 협회 주관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이 상은 그 동안 미르코 부치니치, 스테반 요베티치, 스테판 사비치 등 몬테네그로 선수 중 최고의 시즌을 보낸 선수가 수여받는 상이었으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음을 입증하였다.

2019 시즌 32경기 14골 4도움
K리그1: 32경기 14골 4도움


2.2.3. 2020 시즌[편집]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시즌 종료 후 이적설에 종종 휩싸였는데, 특히 전북 현대 모터스주제 모라이스 감독이 그를 원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왔었다. 그러나 인천이 무고사를 국내 구단에 파는 것 만큼은 완강히 거부했고, 무고사 본인도 이적을 하려는 의지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전북은 라스 벨트비크 영입으로 노선을 틀게 되었다. 이후 2020년 1월 15일 본격적으로 인천의 전지훈련에 합류하며 새 시즌 준비를 시작했다.

훈련에 잘 참여하고 있었으나 중간에 A매치에 소집되는 바람에 힘든 일이 생겼다. 소집되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정작 A매치는 취소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올 비행기를 구하기조차 힘든 상황에 처한 것. 간신히 한국에 돌아왔으나 해외에서 입국했기 때문에 2주 간 자가격리까지 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개막전에는 선발로 나서지 않고 후반에 교체로 들어왔다. 인천이 빈공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무고사의 폼 회복이 중요한 시점.

하지만 6라운드까지 득점은커녕 공격포인트 소식도 없다. 개인의 경기력만 보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무고사는 여전히 전방에서 좋은 찬스를 만들고 또 마무리도 시도하고 있으나, 한끗차이로 빗나가거나 막히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다만 무고사 본인도 움직임이 너무 줄어들었고, 예전이면 넣었을 장면에서도 찬스를 놓쳐 아쉬움을 사는 경우도 있었다. 전 시즌에도 무고사에 대한 득점 의존도가 컸던 인천은 6라운드까지 2골[5]에 그치고 있다.

6월 13일 전북전에서 골대 앞에서 각도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꽤 좋은 슈팅을 날려 이번시즌 첫 득점을 만들어 내는 듯 싶었으나, 송범근의 슈퍼 세이브에 막혀 아쉬움을 삼키게 되었다. 확실히 폼은 올라오고 있으나 아직까지 감각이 다 살아나지 않아서 아쉬운 편.

6월 17일 광주전에서 마하지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잘 처리하며 후반 추가시간 7분에 추격의 득점을 기록했다.

7월 4일 울산전에서 김준엽의 크로스를 달려들며 마무리해 추격의 득점을 기록했다.

7월 26일 포항전에서 지언학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8월 16일 대구전에서 이준석의 크로스를 원터치로 밀어넣으며 팀의 첫 승을 이끄는 결승골을 기록했다.

8월 29일 상주 상무전에서 김준엽의 패스를 받은 이후 박스 바깥에서 완벽한 슈팅으로 추격골을 기록했다.

9월 6일 강원전에서 후반전에 포텐이 터지고 말았다. 50분 PK골, 61분 지언학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마무리했으며 64분에는 감각적인 힐킥으로 자신의 인천 소속으로 2번째 해트트릭을 달성함과 동시에 인천 최다득점자 1위에 올라갔다. 그러나 강원의 김지현이호인이 골을 넣으면서 혹시 모를 불안감 속에서 경기를 이어가야 했다. 다행히도 3:2 승리를 거두며 승점 3점 추가에 성공했다.

9월 27일, 스플릿 라운드 첫 경기 성남전에서 3골 1어시스트라는 말도 안되는 대활약을 펼치며 팀의 꼴찌 탈출에 공헌했다. 그리고 이번 경기에서의 득점으로 44골을 기록, 43골의 유병수를 넘어 인천 프랜차이즈 역대 최다 득점자로 올라섰다.

이러한 활약상에 힘입어, 본인 커리어 사상 첫 K리그 9월의 선수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10월 6일 강원전에서 김도혁이 넘겨준 공을 과감하게 때렸고, 이것이 수비수 발 맞고 들어가며 만회골을 기록했다.

10월 24일 부산전에서 훌륭한 크로스로 김대중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그리고 추가시간에 1대1 찬스를 맞았으나 아쉽게 슛이 빗나가고 말았다.

10월 31일 서울과의 K리그1 마지막 경기에서는 전반 38분 서울 수비의 패스 미스를 탈취하여 1:1 찬스를 맞았으나, 빚맞은 슈팅으로 득점에 실패하였다. 전반 42분 지언학의 패스로 다시 한번 좋은 기회를 맞이했으나 상대 수비를 벗겨내려는 과정에서 몸의 밸런스가 무너지며 찬스가 무산되었다. 후반 32분 김대중과 교체 아웃 되었다.

2020시즌 K리그1 최종 기록은 24경기 12골 2도움.

인천이 2020시즌 리그에서 기록한 25득점 중 무고사가 거의 팀 득점의 절반을 책임졌다. 특이하게도 본인의 12득점은 전부 원정 경기에서 터뜨렸다. 이것도 대단한거면 충분히 대단한 일이다.

시즌이 끝나고 12월 24일, 인천 구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무고사와 2023년까지 계약 연장을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쯤 되면 인천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이자 레전드이며 현재 인천의 희망이다.


2.2.4. 2021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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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내게 있어 제2의 고향이다. 우리 가족들도 마찬가지고, 이곳에서 받은 사랑과 팬들의 서포트가 우리 가족이 왜 오랜 기간 인천에 머물러야 하는지 보여주는 이유이다."

- 인천과의 재계약 사실을 발표하며.#

인천과의 3년짜리 재계약을 체결하고 첫번째로 맞는 시즌이다. 시즌 시작 전인 2021년 1월 인터뷰에서 인천과 K리그를 호평하며 "K리그 자체가 매우 좋은 리그"라면서 "매우 우수한 선수가 많고 시스템이나 미디어도 잘 조직됐다. 한국에 더 머무르기로 한 것 역시 고민할 필요가 없는 쉬운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2021년 1월 9일 자가격리가 해제되면서 거제시에서 진행중인 팀의 전지훈련에 합류했고, 격리 기간 동안 자가에서 퍼스널 트레이너로부터 홈트레이닝을 받으며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또한, 2023년까지 재계약을 진행하면서 작년까지 살던 주상복합 오피스텔에서 나와 큰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한다. 장모님, 자식 및 부인 등 가족들이 작년부터 대한민국으로 함께 이주했기에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분명 한국에 입국하고도 프리시즌 연습경기 명단에서 보이지 않길래 팬들 사이에서도 무슨 일이 있나 불안한 의견이 오가곤 했는데, 2021년 2월 21일 기사에 따르면 입국 후 자가격리 도중 코로나19 확진을 받았었다고 한다.# 전말은 이렇다. 무고사는 겨울에 인천과 재계약을 체결한 후 전지훈련에 합류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몬테네그로에 있던 아버지가 간암으로 인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10일간의 고향행을 허락받았다. 이후 인천으로 돌아와 첫 검사에서는 음성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를 하던 중 한국에 함께 온 가족들이 양성 반응을 보이자 재검 후 양성판정을 받았고, 바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불행중 다행으로, 입국후 자가격리 도중에 양성 판정을 받은 것이라 선수단이나 스태프중 추가 확진자는 없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본인의 코로나19 치료 도중인 2월 25일에 아버지는 결국 별세하였고, 리그 개막전에서 인천의 선수들은 무고사의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유니폼에 검은 리본을 달고 출장했다. 팀은 엘리아스 아길라르의 선제골로 앞서나갔지만 무고사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면서 2:1로 역전패를 당했다. 3월 1일에는 치료를 마치고 격리에서 해제되어 팀 훈련에 합류하였지만, 정확한 출전가능 시점은 불명이다.#

3월 20일 코로나 검사결과 음성판정을 받았다.#

FA컵 3라운드 안양전에서 교체로 출전하며 복귀했으나, 팀을 구해내진 못했다. 아직 폼이 안 올라왔는지 제주전에선 결장했다.

탄천에서 열린 리그 11라운드 성남과의 원정경기에 83분 골을 넣은 아길라르와 교체 출전하며 리그 첫 경기를 치뤘다. 이후 12라운드 울산과의 홈경기에선 벤치에서 끝내 출전하지 못했고, 강원과의 홈경기에서는 약 30분을 뛰며 예열을 마쳤다.

14라운드 대구 원정경기에 시즌 첫 선발로 나와 풀타임을 뛰었고 연이어 15라운드 포항과의 홈경기에도 선발 출전해 80분을 뛰었다. 16라운드 광주와의 홈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여 강윤구의 크로스를 헤더로 꽂아넣는 시즌 첫 골을 터트리며 완벽하게 복귀했다. 이후 역전골의 시발점이 된 패스를 해준건 덤이다.

18라운드 수원 FC 원정에서는 후반 추가시간 6분에 극적으로 얻어낸 PK를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팀이 승점 1점을 챙겨가는 것을 도왔다.

7월 14일에 진행된 FC 서울과의 17라운드 순연경기에서는 전반전에 엘리아스 아길라르의 패스를 받아 골문 구석을 찌르는 날카로운 슈팅으로 인천 입단 후 처음으로 경인 더비에서 득점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골은 결승골이 되며 원정에서 팀은 0 : 1 승리를 거두었다.


7월 23일에 진행된 리그 21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수인선 더비에서는 본인의 K리그 통산 100번째 경기를 치뤘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김준엽이 만든 PK를 깔끔하게 후반 59분에 성공시켜 동점을 만들었고, 후반 87분 네게바의 패스를 받아 두번의 터치로 역전 원더골을 작렬시키며 인천의 2:1 역전승에 크게 기여했다. 이 경기로 무고사는 인천 유나이티드 통산 50골을 기록하였다. 인천 입단 이후 리그 100경기 출전만에 달성하며 경기당 정확히 0.5골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운 건 덤이다. 이날의 실력을 인정받아 라운드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리그 22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 원정에서는 전반 19분에 홍준호가 범한 치명적인 백패스 실수를 놓치지 않고 득점으로 연결지으며 선제골을 가져왔으며, 후반 83분에는 직접 프리킥으로 추가골까지 기록하면서 제주를 신명나게 두들겨팼다. 이 득점으로 K리그 통산 52골을 기록, 히카르두 로페스와 함께 2013년 K리그 1 개편 이후 통산 득점 공동 8위에 올랐다.

리그 28라운드 울산 현대 원정에서는 팀이 3-0으로 뒤지던 79분에 패스를 받으며 가벼운 움직임으로 불투이스를 벗겨내고 수비 두명을 단 채 슛을 때려 만회골을 성공시켰다. 이후 후반 추가시간 6분에도 PK를 성공시키며 한 골을 더 추가했으나, 스코어를 뒤집지는 못했다.

29라운드 제주와의 홈경기에선 국대에 다녀왔다 돌아와서 휴식 차원으로 명단에서 제외됐다.

2021시즌의 성적을 인정받아 2021 K리그1 베스트 11 FW부문 후보중 1명으로 선정되었다. 2021시즌 인천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합쳐 21경기 출전 9골.

코로나의 여파로 인해 무고사의 21년은 본인에게 있어 많이 아쉬운 시즌이었다.


2.2.5. 2022 시즌[편집]


2월 19일 K리그1 개막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1분에 이용재가 페널티 박스 오른쪽에서 상대의 태클을 이겨내고 간신히 올려준 크로스를 환상적인 다이빙 헤더로 때려박으며 결승골을 챙겨오면서 작년과는 다르게 기분 좋게 시즌을 시작했다.# 이로서 인천은 12년간 지긋지긋하게 이어졌던 홈 개막전 무승 징크스를 깨는 것에 성공했다. 이 골로 1라운드 베스트 11에 선정됐다.

3월 13일 5라운드 김천 상무 FC와의 홈경기에 선발 출전해 전반 16분 정현철의 패스 미스를 인터셉트해 선취 득점을 기록했다. 무고사 개인으로서는 시즌 2호골이자 인천의 홈경기 통산 400호 골이다. 이 골로 인천의 1:0 승리를 이끌었다.이 골로 경기 MOM 및 라운드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됐다.

3월 20일 6라운드 성남 FC 원정에서는 아길라르가 얻어낸 페널티킥의 키커를 맡아 골대 좌상단으로 강력하게 걷어차면서 시즌 3호골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 좋은 활약을 인정받아 EA 이달의 선수상 2-3월 부문 후보에 올랐다.

7라운드 울산 현대와의 홈경기에서도 1실점을 당해 끌려가는 상황에서 김동민의 크로스를 받아 헤더로 동점골을 넣어 팀을 패배에서 구하면서 다시 1번 이진법 스코어를 만들었다.

8라운드 대구 FC 원정에서 PK로 2골을 적립하면서 팀의 시즌 첫 멀티골을 만들어 내고 10명이라는 불리한 조건으로 2 : 1 승리를 가져왔다. 이 경기에서 개인기를 보여주면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조규성을 따돌리고 득점 선두를 달리는건 덤.

결국 4월 7일, 22년 최초인 2-3월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2020년 9월 이후 통산 2번째 수상이다. 또한, 8라운드 멀티골에 대한 보상으로 라운드 베스트 11에 선정돼 하루에 두 가지 상에 선정됐다. 이것도 모자라서 K리그 최초로 이달의 선수상을 연속으로 수상하면서 바로 세징야와 주니오랑 타이 기록을 세워버린건 덤.[6]

10라운드 수원 FC 원정에선 후반 추가시간 막바지에 세트피스에서 유현이 펀칭한 공을 그대로 차서 골망을 흔들며 팀을 패배에서 구했다.[7]

11라운드 울산 현대 원정에서 조현우가 앞으로 나온걸보고 왼발 칩샷으로 선제골을 만들어냈으나 팀은 2 : 2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래도 이 골로 벌써 시즌 9호골을 기록하면서 여전히 득점 선두를 유지했다.

13라운드 대구 FC와의 홈경기에서 멀티골을 만들어내면서 팀을 패배에서 구해냈고 2 : 2 무승부를 거두었다.

14라운드 11골을 퍼부으며 공격루트를 책임졌지만, 후술하는 대로 유로네이션스리그 참가로 6월 18일 예정된 하나원큐 K리그1 2022 16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전을 그 없이 치를 가능성이 크다. 최근 14경기 11골을 기록하는 주 득점원이기에 공백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17라운드 강원 FC와의 홈경기에서 전반 환상적인 터닝 발리슛으로 선제골을 기록하더니, 후반 연속으로 왼발 멀티골을 성공시키며 개인 통산 4호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현재 17경기 14골 을 기록하며 절정의 폼을 과시 중이다.

NEVER FORGET OUR MEMORIES

Good Luck#9

팬들의 작별 문구

그러던 중 6월 24일, J1리그비셀 고베로 바이아웃 100만 달러(약 13억원)에 이적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 인천 측도 어떻게든 무고사를 잡기 위해 연봉 상향을 제안하였으나,[8] 라쿠텐이라는 거대한 기업을 등에 업은 고베가 내세운 조건[9]에는 모자랐고[10] 결국 거부할 수 없는 조건에 무고사 본인도 이적으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당연히 인천팬들 반응은 초상집 그 자체다. 원정을 간 인천 팬들에게 눈물을 보이며 작별 인사를 했다.

7월 2일 오후 3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송별회 무고사의 유니폼을 가저오는 팬들에게 싸인회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비셀 고베의 요청으로 취소되었다. 인천의 SNS에는 무고사의 J1리그 득점왕과 고베의 J2리그로의 강등을 기원하는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어떤 댓글에는 "6개월 워킹 홀리데이 가는 셈치고 겨울에는 인천으로 복귀할 듯"이라며 고베의 강등을 더욱 바라고있다.

"인천은 내 두 번째 집이다. 이곳에서 아이 두 명을 낳았다. 그저 단순히 클럽이 아닌 내 삶의 일부다. 나는 내 평생 이곳을 기억할 거고 우리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이곳에 계속 머무르면서 나의 1,000%를 매 경기에 쏟을 거다. 내가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다."

- 2022.4.26 베스트일레븐 인터뷰 中 #



2.3. 비셀 고베[편집]


2022년 7월, 트란스페르마르크트에 오피셜이 뜨면서 비셀 고베로 이적하였다.

J리그 22라운드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경기에서 후반 44분 교체투입되어 짧은 시간 그라운드를 밟았다.

23라운드는 선발 출전 하였으나 득점 없이 전반 종료 후 교체되었으며 24,25 라운드는 후반 20분 이후 교체 출장하였다.

전북 현대와의 ACL 8강에서 선발로 나와 연장 후반까지 풀 타임을 뛰었으나 큰 활약 없이 팀의 1:3 패배를 막지 못했다.

거액의 바이아웃을 쏟아부으면서까지 이적을 추진했지만 인천에서의 명성에 전혀 걸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현지 고베 팬들에게도 큰 비판을 받고 있다. 다만 이는 무고사 개인의 부진이라기보다는 팀 전술의 문제가 크기 때문에[11] 무고사를 탓하는 K리그 팬들은 없으며, 오히려 계속 맞지 않는 옷을 입을 바에는 시즌이 끝나자마자 인천으로 돌아오는 것이 좋겠다며 안타까워하는 팬들도 많다.

25라운드 이후로는 벤치에조차 앉지 못하고 있어 사실상 고베의 전력 구상에서 제외되었으며, J리그 혹은 K리그로의 임대 이적이 추진된다는 루머가 있다.

사실상 9월 네이션스리그 두 경기 출전 이후로는 경기 출장 기록이 전혀 없으며 명단에도 들지 못했고, 팀은 32라운드 기준 순위상으로는 10위로 강등권과 벗어나있지만 점수차로는 불과 7점차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매우 부진한 상황이며 무고사 자체도 본인의 의지던 아니던 간에 고베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것은 분명하기에 시즌이 종료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팀을 떠날 것으로 보인다.[12]

이와중에 무고사가 인천에 복귀한다는 루머가 돌고 있고 실제로 인천 구단에서도 무고사의 재영입을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13] 무고사가 받는 연봉이 매우 높기도 해서 고베가 무고사를 아예 방출하면 인천 유나이티드에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그뒤에 전해지는 루머에 따르면 모두가 무고사의 인천행을 바라지만 비셀 고베의 구단주가 무고사를 잡고있다고한다. 만약 고베 구단주가 OK한다면 무고사의 인천행이 확정된다고 보면된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몬테네그로 청소년 대표로 꾸준히 소집되었고, 몬테네그로 득점왕을 차지하게 되면서 2014년 처음으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로 가끔씩 국가대표에 모습을 비추는 정도였는데, 2017년 들어 몰도바 리그에서 활약하며 폼이 오르고 국가대표에서도 데뷔 골을 기록하는 등 성장을 보여주었다. 그의 국가대표 데뷔 득점은 폴란드를 상대로 나왔고, 그 다음 득점도 마찬가지로 폴란드를 상대로 기록했다.

2018년 3월에 또 국가대표에 뽑혔으며, 터키를 상대로 멋진 득점을 성공시켰다.

그 이후 대표팀에서 득점 소식이 잠잠하다가 2018 10월, UEFA 네이션스 리그에서 라투아니아를 상대로 멀티골을 뽑아내며 경쟁력을 입증하였다. 11월 17일 네이션스리그에서 강호인 세르비아를 상대로 내내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 골까지 득점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활약을 인정받아 2018년 몬테네그로 올해의 최고의 선수로 뽑힌 4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이후로 국가대표에서의 입지와 활약상이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2019년에도 부동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면서 몬테네그로 올해의 최고의 선수 자리에 올랐다.

이런 활약 때문에 몬테네그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때문에 아시아에서 뛰고 있음에도 매번 꾸준히 A매치때마다 대표팀에 소집되며 인천 팬들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전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대륙간 이동이 꺼려지는 상황에서도 몬테네그로 대표팀은 매번 무고사를 대표팀 경기때마다 소집하고 있으며, 9월과 10월에는 UEFA 네이션스 리그에 출전하는 대표팀 명단에 무고사를 올려놨다가 FIFA의 자가격리 관련 규정에 막혀 소집이 좌절되기도 했다. 강등권싸움에 한창인 인천으로써는 정말 다행이었지만, 그만큼 몬테네그로 대표팀에서 현 공격진의 에이스는 무고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해프닝.

그리고 K리그1이 종료된 11월에는 무사히 몬테네그로 대표팀에 소집이 되었고, 키프로스와의 네이션스리그 경기에선 쐐기골까지 넣었다. 팀은 4-0 승리.

2021년 9월에도 몬테네그로 축구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고, 현지시간 기준 9월 4일에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유럽지역 최종예선 네덜란드 전에 선발출전했다. 10월의 최종예선 소집명단에도 다시 포함되었다.

2022년 몬테네그로축구협회(FSCG)는 5월 16일(이하 한국 시간) 2022-2023 유럽축구연맹(UEFA) 네이션스리그(UNL) 리그 B 4연전을 앞두고 25인 소집명단을 발표했다. 무고사는 스테판 요베티치·니콜라 크르스토비치·우로스 조르제비치·우로스 주라노비치 등과 함께 공격수 네 명 중 하나로 선발됐다. 몬테네그로는 루마니아·핀란드·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함께 리그 B 3조에 묶였다. 6월 5일 루마니아전을 시작으로, 8일 핀란드전, 11일 보스니아전, 15일 다시 루마니아전을 치르기에 3주 이상을 떠나게 되었다. 소집된 이후 첫경기인 6월 5일 루마니아전에서 득점을 기록했고, 팀도 2:0으로 승리했다.

6월 15일 루마니아전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3:0대승을 이끌었다.
[1] 주로 로테이션 멤버로 출전했기 때문에 경기 시간은 917분에 불과하긴 했으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부진한 기록이었다.[2] 이전 기록은 데얀 다미아노비치의 14골. 시즌 전체로 따질 경우 데얀 다미아노비치가 리그컵, FA컵까지 포함하여 20골을 넣었다. 국내 선수까지 포함 시 유병수가 2010년 22골(시즌 25골)을 넣은 것이 최다 기록.[3] 무고사가 K리그 데뷔 이후 처음으로 박스 바깥에서 넣은 골이다.[4] 무고사의 K리그 데뷔 이후 첫 PK 실축이다.[5] 전부 김호남이 넣었다.[6] 한 해에 2번이나 받은 그 주니오도 연속 수상은 못했다.[7] 당시 인천은 자신과 송시우가 골망을 흔들었으나 둘 다 오프사이드로 인해 취소된 상황이었던지라 더욱 값진 득점이었다.[8] 현재 K리그 연봉 1위 세징야를 훨씬 능가하는 연봉을 준비했다고 전해졌다. 일부 기사에서는 연봉 150만달러 한화 19억까지 제안했다 한다.[9] 인천에서 받는 90만 달러의 2배 이상을 제안했다고 한다.[10] 그리고 돈과는 별개로 고베의 성적도 영항을 끼쳤는데, 고베는 이적 기사가 나온 6월 24일 기준으로 2승 5무 10패로 J1리그 꼴찌를 기록 중이라 강등권 탈출을 위해 공격수 보강이 절실한 상황에 처해 있다. 연봉 인상에 더해 거액의 바이아웃을 지불하면서까지 무고사를 데려가려는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이 된다.[11] 무고사는 기본적으로 컴플리트 포워드긴 이지만 공중볼 경합보다는 발밑을 활용한 플레이에 더 특화되어 있는데, 고베에서는 이런 무고사를 최전방 헤딩 셔틀, 즉 타겟형 스트라이커로만 쓰고 있다.[12]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부상이 있어 명단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으니 어떤지는 모르지만 고베에서 겨우 7경기 밖에 뛰지 못해 감독의 구상에 애초에 없던 선수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모기업이 돈은 넉넉하지만 성적이 좋지 않은 경우 왓포드 FC처럼 감독을 마구잡이로 갈아치우거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처럼 감독 구상에 없는 선수를 비싸게 사오는 경우가 더러 있다.[13] 전달수 인천 유나이티드 대표가 몬테네그로까지 직접 날아가서 무고사에게 영입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스포츠지니어스에 의하면 무고사 본인도 에이전트에게 K리그 이적을 추진한다면 인천과만 협상하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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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02-26 06:13:44에 나무위키 스테판 무고샤/선수 경력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