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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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 본기(本紀) ]

||<-2><tablewidth=100%><tablebgcolor=#3D414D><width=33%> 1권 「오제기(五帝紀)」 ||<-2><width=33%> 2권 「하본기(夏本紀)」 ||<-2><width=33%> 3권 「은본기(殷本紀)」 ||
||<-2><rowbgcolor=#fff,#191919> 공손헌원 · 전욱 · 제곡 · 방훈 · 중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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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권 「주본기(周本紀)」 ||<-2> 5권 「진본기(秦本紀)」 ||<-2> 6권 「진시황기(秦始皇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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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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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 진후 · 공백 · 진중
장공 · 양공 · 문공 · 헌공(憲公)
출자 · 무공 · 덕공 · 선공
성공 · 목공 · 강공 · 공공
환공 · 경공 · 애공 · 혜공
도공 · 여공공 · 조공 · 회공
영공 · 간공 · 후혜공 · 출공
헌공(獻公) · 효공 · 혜문왕 · 무왕
소양왕 · 효문왕 · 장양왕 }}} ||<-2> 시황제 · 이세황제 · [[영자영|{{{#000,#e5e5e5 진왕 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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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7권 「항우기(項羽紀)」 ||<-2> 8권 「고조기(高祖紀)」 ||<-2> 9권 「여후기(呂后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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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width=1000> 보사기(補史記) 「삼황본기(三皇本紀)」 ||
||<-6><bgcolor=#fff,#191919> 복희 · 여와 · 신농 ||
※ 13권 ~ 22권은 表에 해당, 23권 ~ 30권은 書에 해당. 사기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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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가(世家) ]

||<-2><tablewidth=100%><tablebgcolor=#3D414D><width=33%> 31권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2><width=33%> 32권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 ||<-2><width=33%> 33권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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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4권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2> 35권 「관채세가(管蔡世家)」 ||<-2> 36권 「진기세가(陳杞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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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7권 「위강숙세가(衛康叔世家)」 ||<-2> 38권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2> 39권 「진세가(晉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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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성 위씨(姬姓 衛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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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 · 강백 · 고백 · 사백 · 첩백 · 정백
기백 · 경후 · 희후 · 공백 · 무공
장공 · 환공 · 주우 · 선공 · 혜공
검모 · 의공 · 대공 · 문공 · 성공(成公)
위군 하 · 목공 · 정공 · 헌공 · 상공
양공 · 영공 · 출공 · 후장공 · 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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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 · 성공(聲公) · 위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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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성 자남씨(姬姓 子南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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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후 · 사군 · 희군 · 원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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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0권 「초세가(楚世家)」 ||<-2> 41권 「월왕구천세가(越王勾踐世家)」 ||<-2> 42권 「정세가(鄭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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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3권 「조세가(趙世家)」 ||<-2> 44권 「위세가(魏世家)」 ||<-2> 45권 「한세가(韓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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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분립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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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 · 성자 · 선자 · 장자 · 문자
경자 · 간자 · 양자 · 환자 · 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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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분립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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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후 · 무후 · 경후 · 성후 · 숙후
무령왕 · 혜문왕 · 효성왕 · 도양왕 · 유목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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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라(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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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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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분립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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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필만 · 위망계 · 무자 · 도자
장자 · 헌자 · 간자 · 양자 ·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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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분립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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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후 · 무후 · 혜왕 · 양왕
소왕 · 안희왕 · 경민왕 · 위왕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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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분립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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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 · 구백 · 정백 · 자여
헌자 · 선자 · 정자 · 간자
장자 · 강자 · 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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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분립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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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후 · 열후 · 문후 · 애후
의후 · 소후 · 선혜왕 · 양왕
희왕 · 환혜왕 · 한왕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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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6권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家)」 ||<-2> 47권 「공자세가(孔子世家)」 ||<-2> 48권 「진섭세가(陳涉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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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성 전씨(嬀姓 田氏)

진완 · 전맹이 · 전맹장 · 전문자
전환자 · 전희자 · 전성자 · 전양자
전장자 · 전도자 · 태공 · 제후섬
환공 · 위왕 · 선왕 · 민왕
양왕 · 제왕 건}}} ||<-2> 공자 ||<-2> 진승 · [[오광(초한쟁패기)|{{{#black,#e5e5e5 오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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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rowbgcolor=#fff,#191919> 박태후 · 두태후 · 왕태후 · 위황후 · 구익부인 ||<-2> 유교 · 유수 ||<-2> 유고 · 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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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rowbgcolor=#fff,#191919> 장량 ||<-2> 진평 · 왕릉 · 심이기 ||<-2> 주발 ||
||<-6><width=1000> 58권 「양효왕세가(梁孝王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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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9권 「오종세가(五宗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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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0권 「삼왕세가(三王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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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1권 「백이전(伯夷傳)」
62권 「관안전(管晏傳)」
63권 「노자한비전(老子韓非傳)」
백이 · 숙제
관중 · 안영
노자 · 장자 · 신불해 · 한비
64권 「사마양저전(司馬穰苴傳)」
65권 「손자오기전(孫子吳起傳)」
66권 「오자서전(伍子胥傳)」
사마양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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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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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권 「상군전(商君傳)」
69권 「소진전(蘇秦傳)」
70권 「장의전(張儀傳)」
상앙
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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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권 「저리자감무전(樗里子甘茂傳)」
72권 「양후전(穰侯傳)」
73권 「백기왕전전(白起王翦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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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염
백기 · 왕전
74권 「맹자순경전(孟子荀卿傳)」
75권 「맹상군전(孟嘗君傳)」
76권 「평원군우경전(平原君虞卿傳)」
맹가 · 순경
전문
조승 · 우경
77권 「위공자전(魏公子傳)」
78권 「춘신군전(春申君傳)」
79권 「범수채택전(范睢蔡澤傳)」
위무기
황헐
범수 · 채택
80권 「악의전(樂毅傳)」
81권 「염파인상여전(廉頗藺相如傳)」
82권 「전단전(田單傳)」
악의
염파 · 인상여
전단
83권 「노중련추양전(魯仲連鄒陽傳)」
84권 「굴원가생전(屈原賈生傳)」
85권 「여불위전(呂不韋傳)」
노중련 · 추양
굴원 · 가의
여불위
86권 「자객전(刺客傳)」
87권 「이사전(李斯傳)」
88권 「몽염전(蒙恬傳)」
조말 · 전저 · 예양 · 섭정 · 형가
이사
몽염
89권 「장이진여전(張耳陳餘傳)」
90권 「위표팽월전(魏豹彭越傳)」
91권 「경포전(鯨布傳)」
장이 · 진여
위표 · 팽월
영포
92권 「회음후전(淮陰侯傳)」
93권 「한신노관전(韓信盧綰傳)」
94권 「전담전(田儋傳)」
한신
한신 · 노관 · 진희
전담
95권 「번역등관전(樊酈滕灌傳)」
번쾌 · 역상 · 하후영 · 관영
96권 「장승상전(張丞相傳)」
장창 · 주창 · 임오 · 왕릉 · 신도가 · 위현 · 병길 · 전문 · 황패 · 위현성 · 광형
97권 「역생육가전(酈生陸賈傳)」
98권 「부근굉사전(傅靳蒯成傳)」
99권 「유경숙손통전(劉敬叔孫通傳)」
역이기 · 육가 · 주건
부관 · 근흡 · 주설
유경 · 숙손통
100권 「계포난포전(季布欒布傳)」
101권 「원앙조조전(袁盎鼂錯傳)」
102권 「장석지풍당전(張釋之馮唐傳)」
계포 · 난포
원앙 · 조조
장석지 · 풍당
103권 「만석장숙전(萬石張叔傳)」
104권 「전숙전(田叔傳)」
105권 「편작창공전(扁鵲倉公傳)」
석분 · 장숙
전숙
진월인 · 순우의
106권 「오왕비전(吳王濞傳)」
107권 「위기무안후전(魏其武安侯傳)」
108권 「한장유전(韓長孺傳)」
유비(劉濞)
두영 · 전분
한안국
109권 「이장군전(李將軍傳)」
이광
110권 「흉노전(匈奴傳)」
흉노
111권 「위장군표기전(衛將軍驃騎傳)」
112권 「평진후주부전(平津侯主父傳)」
위청 · 곽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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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권 「남월전(南越傳)」
114권 「동월전(東越傳)」
115권 「조선전(朝鮮傳)」
조타
추무제 · 추요
위만
116권 「서남이전(西南夷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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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권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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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권 「회남형산전(淮南衡山傳)」
119권 「순리전(循吏傳)」
120권 「급정전(汲鄭傳)」
유장 · 유안 · 유사
손숙오 · 자산 · 공의휴 · 석사 · 이리
급암 · 정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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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 · 원고생 · 한생 · 복생 · 동중서 · 호무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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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대완전(大宛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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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권 「유협전(遊俠傳)」
125권 「영행전(佞幸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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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통 · 한언 · 이연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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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권 「일자전(日者傳)」
128권 「귀책전(龜策傳)」
129권 「화식전(貨殖傳)」
사마계주
점복
범려 · 자공 · 백규 · 의돈 · 정정 · 도한
130권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사마천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豫讓
(생년 미상 ~ 기원전 451년)

춘추시대 말기, 전국시대 초기에 유명한 협객. 형가와 더불어 협객의 시초로 분류되는 인물로, 사마천사기 중 <자객열전>에 수록된 인물이다. 복수귀로서도 전설적인 실존 인물이다.


2. 생애[편집]


(晉)나라에서 여섯 가문[1]이 싸웠는데 그는 맨처음에 범씨, 순씨를 섬기다가 지씨를 섬겼다. 후에 그가 밝히기로는 범길사, 순인[2]은 그를 보통 사람으로 대하였고, 반면에 지백(智伯)[3]은 심복으로 놔두어 자신을 알아주었다는 이유로 지백을 섬겼다.

한, 위, 조 세 가문을 멸하려 한 지씨의 수장인 지백이 역관광좆망테크를 타고 그 두개골이 옻칠, 금칠되어 조씨의 수장인 조양자(趙襄子)의 술잔[4]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에 분개하여 그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예양은 죄인으로 가장해 변소의 벽을 칠하는 일을 하며 조양자를 암살할 기회를 노렸으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조양자가 예양을 수색하자 곧 붙잡히고 말았다. 조양자는 그 충성심에 감탄하며 주위 가신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예양을 풀어줬다.

풀려난 예양은 포기하지 않고 숯을 먹어 목소리를 바꿨으며, 얼굴엔 옻칠을 하여 얼굴을 변형시켰다. 이러한 차림으로 구걸하는 그를 아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우연히 그를 알아보게 된 친우가 그렇게까지 행동하는 이유를 묻자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한다(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고 답했다.[5] 또, 이로 인해 복수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괴롭게 함을 칠신탄탄(漆身呑炭)이라고 하게 되었다.

또한 당신의 재주면 능히 조양자의 총애를 받으며 심복이 될 수 있으니 조양자의 심복이 되어 가까이 모시다가 조양자를 죽이는 것이 더 쉬운 길인데 왜 어려운 방법을 고집하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이미 그의 신하가 되었으면서 또 그를 죽이고자 하면 이는 두 마음을 품는 것이네. 내가 극히 어려운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장차 천하 후세의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어서 두 마음을 품은 자를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당시 조의 수도 한단에 새롭게 지어지는 다리를 조양자가 첫번째로 지나가게 되어 있었는데 이를 안 예양은 시체로 분장하고 다리 밑에 숨어 조양자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조양자가 탄 말이 살기를 느끼자 다리를 지나가지 않고 멈추어 섰다. 이에 의아함을 느낀 조양자가 새로 지어진 다리 밑에 시체가 있는 것을 보고는 이상한 낌새를 느껴 병사들을 보내 다리 밑을 수색하였고, 결국 예양의 두번째 암살시도는 실패한다.

일전에 살려줬던 예양이 아직도 자신을 노린다는 것을 안 조양자는 짜증이 나서 "너는 옛날에 다른 이들을 섬겼는데 그들을 죽인 것은 지백이었다. 그런데 너는 왜 그의 신하가 되어 나를 노리는 것이냐(혹은 '왜 옛 주인들을 죽인 지백에겐 관대하고, 지백을 죽인 나에겐 이렇게 가혹하게 대하느냐')"고 예양에게 물었다. 그러자 예양은 "맞다. 나는 범씨와 중항씨를 섬긴 일이 있다. 범씨와 중항씨는 모두 나를 보통 사람으로 여겼다. 하지만 지백은 나를 선비로 여겼으니, 나도 마땅히 선비로서 그에게 보답하려는 것이다(國士遇之國士報之)"라고 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조양자는 예양의 충의에 감탄하며 눈물을 흘리며 "예자(豫子)[6]여! 그대가 지백을 위해 충절을 다한 명예는 이미 이루어졌고, 내가 그대를 용서함도 충분하였으니 응당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제 나는 너를 놓아주지 않으리라(혹은 '그대는 이제 스스로 살 길을 구하라')"며 병사들로 하여금 그를 포위했다.[7] 그러자 예양은 "당신은 (臣)[8]을 이미 관대히 용서하였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당신의 어짊을 칭송한다.[9][10] 이제 죽어 마땅하나 당신의 옷이라도 벨 수 있게 해주길 청한다[11]"고 하였다. 이에 조양자가 겉옷을 벗어 바닥에 놓아 그의 옷을 벨 기회를 주자 이쯤 되면 조양자도 굉장한 대인배 세 번 뛰어 그 옷을 베었으며 "내가 비로소 지하에 계신 지백께 보답할 수 있게 되었노라!"란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칼에 엎어져 목숨을 끊었다. 예양이 죽자 삼진의 식자들은 애통해하였다고 한다.[12]

옷에 맺힌 선혈에 충격을 받아 조양자는 얼마 되지 않아 병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기와 자치통감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여태후본기〉에서 여후의 옆구리를 치고 간 개의 이야기나 〈위기후·무안후 열전〉에서 귀신이 씌어 비참하게 죽은 이야기까지 적었던 사마천이 굳이 조양자의 이야기를 누락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놀란 조양자가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는 기술은 후대의 소설인 열국지에만 등장한다. 한편 열국지에선 위에 언급한 다리의 이름을 조양자가 예양을 기리기 위해 '예양교'라고 붙였다는 내용도 나온다.

참고로 이문열은 삼국지를 평역하면서 예양의 고사를 인용한 것을 예와 양 땅의 사람들이라는 희대의 오역을 저질렀다. 개정판에서는 수정했다.[13]

일본에서 그려진 만화(해적판으로도 나왔고 황금가지에서도 정발된 바 있다.)에선 2번째로 조양자를 노리던 예양을 조양자의 부하들이 제압한다. 맨 몸에 칼 하나만 있는 예양으로선 방패와 창으로 무장한 이들에겐 밀렸기 때문이다. 팔에 창을 맞고 다쳐 쓰러진 그를 부하 하나가 결정타를 날리려고 할때, 조양자가 막게한다. 부하들이 당황해하면서도 굳건히 "안됩니다! 나리! 이놈은 나리께서 특별히 살려주셨음에도 또 2번씩이나 나리를 노리려 했습니다! 살려준다고 해도 그 후로도 계속 노릴 것이옵니다! 이 기회에 숨을 끊어야 하옵니다!"라고 간청하자 안다면서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고 말하며 이전 모시던 군주들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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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경(六卿)이라고도 한다. 진나라의 유력 가문으로 범씨(范氏), 위씨(魏氏), 한씨(韓氏), 조씨(趙氏), 중항씨(中行氏)=순씨(荀氏), 지씨(智氏).[2] 순(荀)씨와 중항(仲行)씨는 같은 집안이기에 중항인이라고도 한다.[3] 본명은 지요. 성은 희, 씨가 지, 명은 요(瑤)다. 지양자(智襄子)로 부르기도 한다.[4] 어떤 학자는 술잔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학자는 소변통이라 하기도 한다. 자치통감에는 술잔으로 되어있고, 여씨춘추에는 소변통이라 되어있다.[5] 이게 그 유명한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이다. 이 발언이 워낙 간지나는지라 이후로 "OO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라는 말이 관용어처럼 쓰이게 된다. OO안에는 충신, 사나이, 기타 등등 다양한 대명사가 들어간다.[6] 예양을 존중하는 의미로 성 뒤에 '子'를 붙인 것이다. 오늘날에 정확히 대응될 단어는 찾기 힘들겠으나 굳이 있다면 '선생'(현대에는 학문이 뛰어나거나 위인인 사람에게 붙여진다.) 정도?예양 선생[7] 현대어로 풀이하면 "네 충성심은 인정한다. 그러나 나를 또 노렸으니 (군주로서의 책임 때문에) 이제 그냥 놓아줄 수는 없겠구나. 그러니 너는 스스로 살아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거라." 정도 의미가 된다. 뭐 '스스로 살 길을 찾으라'고 해봤자 조양자의 호위병들에게 포위당한 상항에서는 '자결'이나 '전사'밖에 남은 선택지가 없겠지만, '암살범으로 처형'하는 것보다 명예로운 최후를 제공할 용의 정도는 충분히 있음을 시사한다(좀 더 급진적으로 접근해보면 조양자에게 귀순하여 섬기는 것도 '살 길'이 될 수 있다. 방금 전까지 죽이려던 상대를 섬기는 것은 우스워 보이지만, 예양이 지백에게 지극히 충성을 다한 것은 결국 지백이 예양을 인정해주었기 때문인데, 후술된 것처럼 조양자 역시 지백 못지 않게 예양을 인정해 준 인물이었으니). 즉, 조양자의 발언은 예양의 충성을 높게 평가하는 입장에서 예양의 입장에 공감하여 최대한 배려하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8] "(비록 죽여야 할 대상이지만) 당신은 나의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9] 조양자가 한 '모두가 너의 충성을 알 것'이라는 말의 답례. 신하의 최고 덕목이 충성이니 군주로서의 최고 덕목인 인(仁)을 들어 칭송한 것.[10] 흥미롭게도 아버지인 조간자도 한때 어질다는 평을 들어서 공자가 그를 찾아가려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공자는 그를 찾아가지 않았는데 이유는 조간자가 휘하의 선비 둘을 죽였기 때문인데 공자는 어진 선비인 그들의 도움을 받아 정치한 사람이 권세가 강해지자 그들을 죽였으니 어찌 의로운 사람이겠냐 말했다.[11] 이 역시 여러 의미를 함축적으로 내포한다. 사실 조양자도 (자신을 죽이려는 적인데도 불구하고) 지백 못지 않게 예양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게 대우했으므로 예양은 이에 보답해야 하지, 조양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는 뭣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충성을 돌릴 수는 없으므로(즉 지백을 위해 조양자를 죽이겠다는 입장 자체를 바꿀 순 없으므로), 그것이 못내 아쉬웠던 예양은 "님이 이렇게까지 해 줄 의무도 책임도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제가 이걸 요청하는 것이 무례하다는 것도 잘 압니다만…순수한 호의로써 마지막 부탁 딱 하나만 더 들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라고 정중히 요청한 것이다.[12] 상기된 것처럼 이 에피소드 자체가 거의 단어 하나하나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할 정도로 강렬한 함축성이 있다. 사기는 결국 사마천이 자신이 취합한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므로 사마천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문장을 재구성했다고 생각할 만한 부분.[13] 더 웃기는 것은 이를 고치지 않던 시절에 참조한 판본의 오류 때문인지 교묘하게 고쳤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예(豫)는 그대로 써놓고서는 양(讓)은 양(襄)이라 써놓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