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 자이언츠/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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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업 관련 정보
모기업 파일:요미우리 신문 로고.svg 요미우리 신문
일본시리즈 우승
★★★★★★★★★★
★★★★★★★★★★
★★

1951 · 1952 · 1953 · 1955 · 1961 · 1963 ·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1970 · 1971 · 1972 · 1973
1981 · 1989 · 1994 · 2000 · 2002 · 2009 · 2012

리그 우승
(47회)

1936 추계 · 1937 춘계 · 1938 추계 · 1939 · 1940 · 1941 · 1942 · 1943 · 1949 · 1951 · 1952 · 1953 · 1955
1956 · 1957 · 1958 · 1959 · 1961 · 1963 ·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1970 · 1971 · 1972 · 1973
1976 · 1977 · 1981 · 1983 · 1987 · 1989 · 1990 · 1994 · 1996 · 2000 · 2002 · 2007 · 2008 · 2009 · 2012
2013 · 2014 · 2019 · 2020
클라이맥스 시리즈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8 · 2019 · 2021
시즌별 요약
2011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현역 선수 경력
사카모토 하야토/선수 경력 · 토고 쇼세이/선수 경력 · 마루 요시히로/선수 경력
경기장
1군 도쿄 돔 · 2군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장 · 지방 홈구장 선 마린 스타디움 미야자키 | 과거 고라쿠엔 스타디움
홈 중계 채널
파일:닛폰 테레비 로고.svg 닛폰 테레비
주요 인물
감독 아베 신노스케 · 선수회장 스가노 토모유키 · 주장 오카모토 카즈마
구단 상세 정보
역사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과거 응원가 · 유니폼 · 순혈주의 · 전통의 일전 · 10.8 결전 · 도쿄 시리즈
2022년 센트럴 리그 3위
틀 문서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육성 선수역대 감독영구 결번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1. 오프시즌
2. 정규시즌



1. 오프시즌[편집]


2016년 시즌 반환점을 돌 무렵 타카하시 감독이 중간보고를 왔을 때 와타나베 츠네오 전 구단주 겸 요미우리 신문 주필이 타카하시 감독을 두둔하면서 "전력 보강을 소홀히한 프런트의 잘못", "그 전력으로 우승을 요구하는 게 무리"라고 했던 발언에서 암시한대로 시즌 끝나자마자 폭풍 돈질에 나섰다. 역시 물러난다는 건 형식 상이었다.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에서 선발로테이션의 축이던 아마구치 슌을 3년 7억엔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로 활약했던 모리후쿠 마사히코를 2년 4억엔에 계약하는데 성공했고,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서 FA를 선언한 양다이강에게도 손을 뻗치고 있다. 한편 용병에서도 3년전 일본시리즈에서 상대 팀의 중심타자였다가 메이저 리그로 복귀했던 케이시 맥기를 1년 200만달러에 영입하는 등 2016년 시즌이 끝나자마자 폭풍 돈질에 나서고 있는 중이다.[1] 12월 14일 양 다이강과 5년 15억엔에 계약이 성사되면서 구단 사상 처음으로 한 해에 FA 3명을 영입하게 된다. 또한 마무리 보강을 위해 2016시즌 메이저리그에서 시속 100마일을 던지던 투수, 아르키메데스 카미네로까지 영입을 시도하고 있다. 결국 12월 17일 카미네로가 시애틀에서 방출되면서 영입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이튿날, 18일 1년 115만 달러에 계약했다. 트레이드로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애증의 만년 유망주 오타 다이시와 왼손 불펜 쿠몬 카츠히코를 내주고 2012년 한정 에이스였던 좌완 선발 요시카와 미츠오와 외야수 이시카와 신고를 받아 왔다.[2][3]

마음을 먹어도 단단히 먹은 모양이긴 한데, 작년까지만 해도 장기적 안목에서 육성모드로 들어가겠다고 하던 팀이 불과 1년만에 바로 다시 방향을 뒤집어 폭풍 돈질에 나서는 것을 보면 구단의 체질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돈을 들여서 대형보강을 했음에도 시범경기에서는 5승 14패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주축인 스가노와 사카모토가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으로 차출된 것도 있지만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팀타율 .196, 팀방어율 4.26으로 앞날이 우려되는 성적. 특히 투고타저의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일본프로야구에서 4.26의 팀방어율은 심히 우려스럽다. 다만 가장 최근에 시범경기 최하위를 기록한 해가 2008년인데 그 해에는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일본시리즈까지 진출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2017시즌 어떤 성적을 낼 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을 듯 하다.

2. 정규시즌[편집]


오프시즌 동안의 보강이 무색하게 FA 3인 중에 2명인 야마구치 슌과 양다이강은 시즌 시작과 동시에 드러누워 버렸다.[4] 그러나 스가노, 마이콜라스, 우쓰미의 기존 선발진이 분전하고, 사카모토와 용병 맥기히가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키는 하이페이스를 보여주는데다 완전히 포수 마스크를 벗고 1루수로 전향한 아베 신노스케의 타격이 부활하면서 개막과 동시에 5연승. 5연승 후에 1패로 숨고르기를 하더니 다시 한신 타이거스에게 승리를 거두며 6승 1패로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그러나 이 후 카프와의 홈 3연전에서 폭풍 3연패(...)를 당하며 2위로 추락했고, 한신과의 4월 21일~23일 3연전을 1승 2패로 매조지하면서 3위까지 추락했다.

지난 해에는 신임 감독 취임을 전후해서 팀 분위기도 어수선했고 나베츠네 본인이 제대로 된 전력을 갖춰주지 못했다면서 두둔했으나 거액의 보강을 했는데도 성적은 여전히 승률 5할을 조금 넘는 3위에 머물고 있어 "그 성적 찍으라고 해준 돈질이 아닐텐데?"라는 얘기가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투수진은 스가노-마이콜라스-타구치의 3선발이 건재하고 불펜의 매시슨, 야마구치, 카미네로가 그럭저럭 막아주고 있기는 하지만 요시카와, 오타케 등 하위 선발들이 물음표로 남아있는데다 타선은 여전히 사카모토-맥기히-아베 정도를 빼면 식물 상태인 것이 문제. 특히 2루수 라인은 몇년 전 FA로 사온 카타오카를 포함해 나카이, 와키야 등 수많은 후보 선수들이 있는 가운데 모두 사이좋게 멘도사 라인을 치고 있고 중견수 역시 타테오카, 하시모토 등이 모두 메롱한 상태인데, 이 두 포지션의 선수들이 주구장창 테이블 세터로 기용되고 있으니 사카모토-맥기히-아베의 클린업 트리오가 잘 쳐도 점수가 잘 날 턱이 없다. 이들을 받춰져야 할 쵸노 히사요시, 무라타 슈이치, 카메이 요시유키 등 코너 내외야 포지션의 베테랑들의 상태도 좋은 게 아니라 별달리 대안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눈에 띄는 것은 규정타석 1할 타자인 주전포수 고바야시 세이지인데, WBC에서 보인 좋은 타격 페이스는 어디갔나 싶게 하는 부진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2015년 시즌에 성장을 못한다고 까였던 미완의 대기 오타는 미련을 접고 닛폰햄으로 트레이드했더니 거기가서 포텐이 터지면서 탈G효과의 대표주자가 되면서 더더욱 빡치게 하고 있다.

물론 기껏 보강이라고 해놨더니 세 명중 두명이나 부상으로 뻗으면서 먹튀질을 해서 돈질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 상황이긴 했지만, 그 돈을 더 부은 올해도 지난해와 별반 차이가 없는 성적이라면 현 감독의 지도력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를 것은 확실하다. 더구나 간사이의 라이벌 팀이 똑같이 작년에 초짜 감독을 기용했고 작년의 요미우리보다 더 참혹한 성적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환골탈태하면서 잘 나가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비교가 될 것은 자명한 이치라 갈수록 입지가 좁아질 듯 하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상대로 5월 말까지 1승 10패를 거두고 있으며 이것과 위에 기재된 현재 상황 때문에 3위 사수도 힘들어질 수도 있다. 더군다나 1위 한신과 2위 히로시마와는 4.5게임차, 4위 요코하마와는 1.5게임차이기 때문에 아차하다가 더 내려갈수도 있다. 결국 26~28일 히로시마와의 홈 3연전에서 스윕패를 당하며 히로시마의 선두 복귀의 1등공신 역할을 해주었고 교류전을 센트럴리그 3위로 맞이했다. 그리고 직전 한신전 3번째 경기 패배부터 시작해 전설이 다가오고 있었다. 4위 요코하마와의 게임차는 0.5게임차까지 좁혀진 상황.

그리고 라쿠텐과의 교류전 개막전에서 에이스 스가노 도모유키를 선발로 예고하며 배수진을 쳤으나, 믿었던 스가노가 5회에만 8실점하며 5-13으로 참패, 결국 4위까지 추락했다(...). 이틀 뒤인 라쿠텐과의 교류전 개막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는 상대팀 선발 투수 노리모토 다카히로에게 8이닝동안 12개의 삼진을 헌납하며 연속경기 두자릿수 삼진의 일본신기록을 세워주는 굴욕을 당하는 한편 6회 타하라 세이지와 모리후쿠 마사히코의 화려한 불질로 2대3으로 역전패. 교류전 개막 시리즈에서 피스윕과 동시에 7연패를 기록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상대가 2017 시즌 12개 구단 최고 승률을 자랑하는 라쿠텐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봐줄 수 있었으나...

3연전 싹쓸이를 당한 라쿠텐의 다음 상대는 초장 끗발이 개끗발임을 증명하며 올해도 어김없이 DTD를 시전 중인 오릭스 버팔로즈. 오릭스와의 첫 경기에서 9회 2사까지 4-1로 앞서며 드디어 지긋지긋한 연패 터널을 벗어나나 했는데 타력을 보강한답시고 크루즈를 등록하고 13세이브를 기록한 카미네로를 말소한 덕분에 대체 마무리로 올라온 매시슨이 9회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4연타를 허용하는 화려한 불쇼를 펼치며 순식간에 3실점으로 동점을 허용했다. 그리고 연장 11회초에 추가로 2실점하며 패색이 짙어진 가운데 최후의 공격이 된 11회말 1사후 초노 히사요시의 홈런으로 1점을 쫓아가고 시게노부 신노스케가 8구까지 버틴 끝에 출루하며 동점기회를 만들었다. 이어진 대타 데라우치가 투 스트라이크에서 번트 실패로 허무하게 아웃되었으나 다음 타자 사카모토 하야토의 2루타로 2사 2, 3루를 만들며 필사적으로 역전 찬스를 만들었다. 그러나 후속타자 가메이 요시유키가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나며 연패 탈출에 실패. 2006년 이후 11년만에 8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그 다음날도 방어율 1점대의 다구치 가즈토를 선발로 내세웠으나 1회초부터 T-오카다에게 쓰리런 홈런을 맞는 등 초반에 5실점 하면서 끌려갔다. 경기 중반 무라타 슈이치의 만루홈런으로 1점차까지 쫓아갔으나 더 이상의 추격에 실패한채로 연패를 9로 늘렸다. 라쿠텐에게 스윕당한 것은 봐줄 수 있어도 퍼시픽 리그에서 노답에 가까운 오릭스에게조차 무기력하게 연패한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 참고로 팀 역사상 최다 연패는 11연패로 선수에서 은퇴한 나가시마 시게오가 감독을 맡아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우왕좌왕하다가 팀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최하위를 기록한 1975년 시즌의 일이다. 두자릿수 연패 기록도 2006년이 가장 최근으로 호리우치 츠네오 시절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았던 하라 다쓰노리 복귀 첫해 + 이승엽과 아이들 시절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다. 6월 4일 오릭스에게 3-1로 패하며 결국 2006년 이후로 11년만의 10연패를 달성했다. 모독×3+1 이 날 상대팀 오릭스는 8안타 3사사구로 겨우 3점을 내는 득점권 물야구를 보여줬지만 요미우리는 그 오릭스보다 더한 물야구였다(...)...

그리고 다가온 메트라이프 돔 3연전 첫 경기에서 타선이 5점으로 물타선은 벗어났으나 투수진들이 제대로 불내며 5-8로 패배. 투타들이 돌아가며 가지가지 한다. 기어이 42년만의 11연패를 찍었다. 심지어 주니치가 지바롯데를 상대로 2연승을 거두면서 4위를 탈환, 2주일만에 3위에서 5위까지 굴러 떨어져버렸다. 그리고 6월 7일 경기에서 9명의 주자를 출루시키고도 무득점에 그치며 0-3으로 패배, 팀 최다연패 기록12연패를 기록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6월 8일은 투수진이 3회부터 6회까지 12점을 내리 퍼주며 흠씬 두들겨 맞은 끝에 2-13으로 대패하고 말았다. 이로써 연패는 13으로 늘어났으며 교류전 성적은 0승 9패로 당당히 교류전 최하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교진의 부진으로 인해 똑같이 교류전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하던 야쿠르트가 묻히고 있을 정도.

6월 9일 경기에서 선발 마이콜라스의 호투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를 2대1로 누르고 마침내 연패행진을 멈췄다. 10경기 째만에 교류전 첫승리를 거두면서 교류전 시작하고 10경기 째 무승행진을 하고 있는 야쿠르트를 제치고 교류전 무승 클럽에서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다시 2연패를 하면서 그 사이에 연패를 끊은 야쿠르트와 다시 자리를 맞바꾸고 교류전 최하위로 추락했다. 거기나 여기나 도긴개긴. 특히 가능성이 없다고 방출했던 2007년 드래프트 1순위 지명자인 무라타 토오루[5]와 미련을 접고 포기했던 오타 타이시의 맹활약이 루징 시리즈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덕분에 씁쓸함이 배가되었다.

그리고 나서 맞이한 팀은 교류전 최강자. 상대 팀이 이번 시즌에도 3연전 시리즈 전까지 교류전 선두를 달이며 쾌조의 진격을 하고 있는 중이라 양 팀의 분위기 상 당연히 기본 스윕패, 정말로 운이 좋아야 루징이라고 생각되었으나... 교류전 팀타율 1위를 달리던 상대팀 타선을[6] 첫 경기에서 1실점으로 틀어막고 5대1로 완승을 거두더니 두번째 경기에서는 FA 계약 이후 줄곧 먹튀짓만 하다가 그제 와서 시즌 첫 1군 등판을 한 야마구치 슌을 선발로 내세우고 센트럴 리그 사상 최초의 합작 노히트 노런 승리를 거두며 위닝 시리즈를 확정,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이어진 롯데와의 3연전을 싹쓸이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교류전 마지막 주를 5승1패로 마무리했다. 그래봐야 초반에 너무 못해서 교류전 성적은 6승12패로 최하위 야쿠르트와 반게임, 11위 치바 롯데와 동률인[7] 10위로 교류전을 마쳤다. 올시즌 투타 모두 완전히 폭망하며 최악의 시즌을 보낸 롯데와의 경기이니만큼 교류전 막판 3연전은 참고가 되기 어렵고 앞으로의 리그전도 험난한 앞길이 예고되어 있다.

리그전이 재개되기 직전에 타카하시 감독이 승률 5할에서 7승이 빠지는 성적을 의식해서 "(승패 차이를) 한경기 한경기씩 차근차근 줄여나가겠다"라고 입을 털었다. 그러나 줄여나가기는 커녕 첫 상대인 주니치를 맞아 연패로 스타트를 끊으면서 승패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순위도 다시 주니치에게 4위자리를 뺏기고 5위로 추락. 6월 마지막 경기인 요코하마 전에서는 에이스인 스가노가 단 2안타만 내줬음에도 1대3으로 패하면서 운도 안 따라주고 있다. 이어진 7월 1일 경기에서는 9회초 2사까지 2점을 앞섰으나 구와하라에게 역전 만루홈런을 얻어맞고 역전패. 그 다음날 경기에선 요코하마에서 FA로 이적해온 야마구치 슌을 선발로 냈다가 상대팀 타선의 분노의 몰아치기로 조기 강판 당하며 1대9로 대패하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의 마지노선인 3위 자리에 있는 요코하마와의 3연전을 스윕당했다. 이로써 승패차이를 줄이기는 커녕 3위 요코하마와의 승차도 6.5게임으로 벌어지면서 남은 시즌의 전망을 더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그러고 맞이한 히로시마와의 3연전에서 첫 두경기를 따내면서 위닝시리즈를 확정지었다. 여전히 히로시마와의 맞대결은 3승10패지만 예전의 대책없는 모습에서는 조금 벗어났다. 그러나 히로시마전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 에이스 스가노를 당겨쓰는 등 무리수를 두기 시작하고 있다. 일단 스가노의 역투로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눈앞의 승리를 위해서 등판간격을 줄이는 등의 무리수가 나중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심히 우려되는 상황.

전반기 막판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야쿠르트와의 3연전을 싹쓸이하면서 시즌 두번째 10연패의 굴욕을 안김과 동시에 주니치를 제치고 4위로 올라서면서 전반기를 마무리 했다. 3위와의 승차도 4게임차이로 우승은 무리더라도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할 수 있는 A클래스는 아직 희망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건 겉보기일 뿐이고 실상은 교류전 막판 롯데와의 3연전을 싹쓸이 하면서 그럭저럭 할만해 보였던 것처럼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야쿠르트와의 3연전 싹쓸이로 분식회계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전력 상으로는 후반기에 뾰족한 대책이 없다면 최하위는 면하더라도 B클래스를 벗어나기는 힘들 가능성이 높다. 리그 ERA 상위 5명 중 3명을 보유하고 그 3명이 도합 24승 10패의 매우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음에도 그 성적인 것은 그만큼 타선이 얼마나 물타선이었는지를 증명하는 수치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팀 타격지표는 거의 최악에 가까워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도 3명 밖에 안 되고 타선에서 사카모토 하야토와 케이시 맥기를 제외하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는 타자가 없다. 특히 쓸만한 테이블 세터진의 부재와 아베 신노스케가 뚜렷한 노쇠화의 징후를 보이는데도 이에 대한 대책이 없는 것이 문제의 심각성을 부채질하고 있다.

후반기 들어와서 우승은 무리지만 A클래스라도 어떻게든 노리기 위해서 전력을 추스르는 가운데 FA로 데려와서 전혀 밥값을 못하고 있던 야마구치 슌이 거하게 또 한 건을 올리셨다. 올스타전 직전인 7월 11일 자신의 생일이라고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다가 실수로 유리에 손을 베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까이고도 남는데 손을 치료하기 위해서 간 병원에서 만취 상태에서 병원의 문을 박살을 내고 말리는 경비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등의 행위로 경찰에 고발장이 제출됐고 이 때문에 7월 18일로 예정되어 있던 선발등판도 취소되고 자숙 처분을 받았다. 덕분에 예정에 없이 갑작스럽게 선발로 등판하게 된 다카기 하야토가 주니치에게 털리면서 기껏 4연승으로 살아나던 분위기에 다시 찬물을 끼얹었다. 비싼 돈 주고 데려왔더니 하라는 야구는 안 하고 가지가지 한다. 결국 야마구치는 시즌 종료까지 출전 정지에 1억엔에 상당하는 벌금을 부과하는 자체징계를 내리고 2017년 전력에서 제외시켰다. 한 때는 계약을 해지하고 방출설도 있었으나 일단 쏟아부은 돈이 아까와서 올해는 본인의 행동에 대해서 반성과 자숙의 시간을 보내고 내년에 재기를 노리는 방향으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다만 야마구치가 사고를 친 이후로는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야금야금 승률을 올려가고 있다. 8월 중순까지 3위인 요코하마와의 게임차를 4게임차 이상 벌리지 않으면서 끈질기게 따라붙었고, 8월 18~20일 요코하마와 맞붙은 3연전을 싹쓸이하면서 승차를 바싹 좁혔다. 13연패를 할 때는 더이상 회복이 불가능해 보였던 승률도 어느새 5할 턱 밑까지 치고 올라와서(정확하게는 5할을 찍었다가 한발 후퇴) 교류전 이후 조금씩 승패차이를 줄여나가겠다는 타카하시 감독의 말이 빈말이 아니게 되었다. 특히 올스타전 이후 상위권 진입을 위한 당면의 장애물인 요코하마와의 맞대결에서 6승1무1패를 거두는 호조를 보이는 것도 고무적이다. 적어도 스가노, 마이콜라스, 다구치 가즈토라는 확실한 선발투수 카드 3장을 보유하고 있어서 잡아야 할 경기와 포기할 경기의 구분만 잘하면 투수력이 불안한 요코하마를 뛰어넘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 팀이 A클래스로 만족할 팀은 절대 아니지만 시즌 중반에 보여줬던 참상을 생각하면 2017시즌은 그거라도 감지덕지해야 할 듯. 양다이강이 복귀한 뒤 1번 타자-중견수 자리에 믿을만한 타자가 생기고, 좌완투수가 등판할 경우 본 포지션이 3루수인 맥기히를 2번 타자-2루수로 옮겨 노답이었던 테이블 세터진이 강화되고 무라타 슈이치를 3루에 배치할 수 있게 되었다. 몇년간의 2루수 육성 방침을 전면적으로 뒤집는 극약처방에 가깝지만, 이후 득점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옆 리그에서도 라쿠텐의 카를로스 페게로가 2번타자로 좋은 활약을 보이는 올 시즌은 강한 2번타자가 일본에서도 유행을 타기 시작한 해로 보아도 될 것이다. 겨우겨우 버티는 요코하마를 1.5게임차까지 추격하여 완전히 사정권에 둔 상태에서 9월에 돌입했다. 과연 기적의 역전극은 일어날 것인가. 이제 요코하마와의 남은 맞대결은 9월 15, 16일 홈에서 벌어지는 2연전이다. 만약 이 2연전을 쓸어담을 수만 있다면 시즌 중반만 하더라도 아무도 가능할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역전극도 기대할 수 있다.

2017년 8월 말부터 뜬금없이 홈경기에 한해서 일본 외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인터넷을 통하여 유료 라이브 중계를 시작했다. 요미우리의 홈경기 한정이며 언어는 일본어로만 돼 있으므로 일본어를 필수적으로 해독할 수 있어야 한다.[8]

9월9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 에이스 스가노의 완투승리로 마침내 요코하마에게 1게임차이로 따라붙었고 9월 10일 경기의 승리 + 요코하마가 한신과의 3연전에서 싹쓸이 3연패로 마침내 3위와의 게임차를 없앴다(다만 승률관계로 여전히 4위이다.). 이제 A클래스 복귀가 눈앞이다. 그리고 9월 13일 경기 한신전의 승리로 같은 날 히로시마에게 대패한 요코하마를 제치고 기어이 3위 자리를 탈환했다. 센트럴리그의 마지막 한 장 남은 포스트시즌 진출 티켓 다툼이 점입가경인 가운데 위에서 말한 막강 선발진을 보유한 요미우리의 우세를 조심스럽게 점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클래스는 어디가지 않는다. 9월 14일 한신과의 경기를 비기면서 요코하마와의 승차를 1게임으로 벌렸다. 그러나 9월 16일 요코하마와의 시즌 최후의 맞대결 2연전 첫 경기에서 선발투수 마이콜라스의 7이닝 1실점 역투에도 0대1로 패하면서 공동3위 자리를 허용했다. 그러나 다음날 경기에서 모처럼 건진 쓸만한 루키 하타케 세이슈의 역투로 6대1의 완승을 거두면서 다시 요코하마와의 게임차를 1게임으로 벌려놨다. 일정도 2위 한신과 5게임, 1위 히로시마와 2게임이나 남아있는 요코하마와는 달리 남은 경기의 절반이 5, 6위인 주니치, 야쿠르트와의 경기라서 요코하마보다 편한 편. 정말로 기적은 일어날 것인가?

그런데 9월 18일 경기에서 5위 주니치를 상대로 고질적인 물타선이 또다시 고개를 들면서 2대0으로 영봉패, 같은 날 도쿄 야쿠르트에게 4대2로 승리한 요코하마 디엔에이에게 다시 동률 3위를 허용하고 말았다. 다음날은 닛폰햄에서 트레이드로 데려온 요시카와 미쓰오가 퐈이야를 시전하고 2대10으로 대패하면서 잡고 갔어야 할 5위 주니치를 상대로 루징을 기록하고 4위로 떨어졌다. 그 다음날은 2위 한신을 상대로 에이스 스가노 도모유키가 완봉승을 거두면서 요코하마와 승차없이 승률에서 뒤진 4위로 접근하는 등 요코하마가 쉬는 동안 혼자 올라갔다 내려갔다 생쇼를 하고 있다. 9월 22~23일 히로시마 원정에서 연패를 하면서 요코하마와의 승차가 1.5게임으로 벌어졌다. 아직 희망은 있지만 게임수가 차츰차츰 줄어드는 상황에서 3위 확보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라 점점 상황이 버겁게 돌아가고 있다.

일단 진구 구장-도쿄돔 으로 이어진 야쿠르트와의 시리즈 3연전을 싹쓸이 하면서 버티고는 있지만 여전히 버거운 건 변함없다. 게다가 이제는 남은 경기 수도 요코하마보다 적게 남아서 상황이 역전됐다. 오로지 바랄 것이라고는 요코하마 스타디움으로 자리를 옮기는 한신-요코하마 3연전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히로시마-요코하마 2연전에서 한신과 히로시마가 요코하마를 잡으면서 도와주는 것 뿐인데 이미 고시엔에서 요코하마에게 2연속 영봉패를 당한 한신이라 믿음이 안 간다. 한편 9월 26일 야쿠르트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7번 타자 나카이 다이스케가 구단 사상 10,000 번째 홈런을 기록했다.

9월 27일 주니치전에서는 마이콜라스를 4일 휴식후 등판시키는 모험수까지 강행하면서 2대1로 신승했다. 한편 요코하마는 그 전까지 7승13패라는 한신과의 전적이 무색하게 이날 경기도 초반에 4대0으로 앞서나갔다. 그러나 9회초 요코하마의 마무리 야마사키 야스아키의 퐈이야로 경기가 무승부가 되면서 요코하마와의 승차는 0.5게임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한신과도 멀어지며 사실상 한신을 앞지르는 건 불가능해졌다. 한신 전패와 자이언츠 전승이여야 앞서는데 한신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맞대결이 아직 남아있어 말만 쉽다.

그리고 다음날 DeNA 투수진이 떡이 되며 3위와 가까워졌다. 그러나 한신 클린치넘버도 지워지며 한신을 끌어내리는 건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다음날 맞은 한신전에서 장렬히 패배...[9] 남은 경기는 2경기로, 어느새 트래직 넘버가 2까지 다가왔다. 당장 10월 1일 경기를 패하고 요코하마가 승리하면 클라이맥스 시리즈 시작 이후 유일하게 지켜왔던 연속 출전 기록이 끊어지게 된다.

그렇게 궁지에 몰린 10월 첫경기에서 한신에게 5대4로 패하면서 거인은 멸망했다. 5대2로 끌려가는 게임을 9회 2점을 내면서 안간힘을 썼으나 결국 한끗 차이로 패배. 같은날 벌어진 요코하마와 히로시마의 경기에서도 요코하마가 13대 7로 승리를 거둠으로써 2007년부터 계속되던 10년연속 A클래스의 기록과 유일하게 지켜오던 클라이맥스 시리즈 개근의 기록이 끊기고 말았다. 스가노, 마이콜라스, 다구치라는 확실한 선발투수 3명에 팀 ERA 1위를 찍고도 타력 부진과 세대교체 실패 등으로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한 것은 물건너 KBO 리그의 역시 수도를 연고로 하는 모 팀과 매우 흡사하다. 특히 선발투수 3명은 전부 센트럴리그 ERA 5위 안에 들어갔으며 셋의 합작 성적이 무려 44승 17패, 승패마진 +27. 나머지 경기에서 반타작만 했어도 우승은 몰라도 2위는 여유있게 할 수 있는 성적이었다. 이 세 명과 필승조 매시슨, 마무리 카미네로를 제외하면 도대체 나머지 선수들은 뭘 했길래 이 지경이 됐는지 묻고 싶을 지경.

10월 3일 시즌 최종전에서 야쿠르트에게 역전승을 거두면서 최종 성적은 72승 68패 3, 승률 .514. 히로시마와 교류전만 빼면 센트럴리그 다른 네 팀과의 맞대결은 우위였고 득점과 실점으로 따진 피타고리안 승률도 요코하마보다 우수하게 나오는 등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내상이 심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다, 중반 최악의 상황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최종 성적자체는 준수하나 우승 아니면 실패라는 팀 분위기상 그런 걸 알아줄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이 해 요미우리를 따돌리고 가까스로 3위를 차지한 요코하마가 한신과 히로시마를 차례대로 꺾고 일본시리즈까지 진출을 했으니(전적은 2승4패로 우승은 못했다) 요미우리만 더욱 초라해졌다.
[1] 모리후쿠의 경우에는 원 소속팀도 돈질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정도지만 본인이 소속팀의 두터운 선수층으로 인한 역할의 제한에 불만이 있는 상황이라 금전보다는 기회를 찾아서 떠난 측면이 강하다.[2] 그리고 닛폰햄과의 트레이드는 오타와 쿠몬이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이시카와, 요시카와가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요미우리와 닛폰햄의 윈윈 트레이드로 평가되는 추세. 특히 오타의 경우 끊임없이 압박을 주는 요미우리 코칭스태프들의 분위기와는 180도 다른 닛폰햄의 자유로운 구단 분위기가 성적향상에 도움이 되었다. 이시카와의 경우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는 동시에 요미우리에서 얼마 없는 미남 선수로 여성팬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 중.[3] 진짜 문제는 FA 3인방. 양다이강은 후반기에 회복하긴 했지만 시즌 개막부터 부상으로 날려먹어서 FA선수가 3군에 내려가는 대굴욕의 주인공이 되었다. 모리후쿠 마사히코는 요미우리에서 심각한 우상바 기질을 보이는 동시에 2군 경기에서 포수 타나카 타카야를 글러브로 때리며 갈구는 등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고 야마구치 슌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4] 시즌 시작 전 투수 사와무라 히로카즈가 부상으로 1군에 콜업되지 못했는데 9월에 가서야 구단 트레이너에게 침술 시술을 잘못 받은 것으로 드러나 결국 사와무라 앞에서 구단 사장과 GM이 사과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증상이 장흉신경마비였는데, 구단 사장과 GM까지 직접 선수 본인에게 사과했다는 건 선수생명이 끝날 위기에 처할 만큼 심각한 사태였다는 것. 이 사건으로 인해 세간에서 침술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9월 25일 전일본침구학회가 진단경위 및 상세 시술과정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요미우리 구단 측에 보냈다.[5] 무라타는 2017년 교류전에서 프로 커리어 첫 승을 거뒀다.[6] 팀 타선을 이끌던 우치카와와 데스파이네가 부상으로 빠진 영향은 있다.[7] 치바 롯데와의 3연전에서 요미우리가 싹쓸이 승을 했으므로 승자승 원칙에 따라서 요미우리가 위.[8] 가격은 1달에 11200원으로 꽤 비싸다. 그래도 요미우리 팬이고 토쟁이 사이트에서 불법으로 시청하는 게 싫은 사람에게는 희소식일 수도. 구글에서 海外専用巨人戦完全中継 를 입력하면 주소가 나온다.[9] 이 경기에서 선발 하타케 세이슈가 4구만에 우에모토 히로키에게 헤드샷을 날려 퇴장되었다. 불펜 부담이 심해진 건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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