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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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국시대 초나라의 마지막 군주 昌平君
1.1. 개요
1.2. 대중 매체에서
2. 전라남도의 행정구역 昌平郡



1. 전국시대 초나라의 마지막 군주 昌平君[편집]


초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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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羋)

웅(熊)?

계(啟)?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222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223년 ~ 기원전 222년



1.1. 개요[편집]


진(秦)나라상방(相邦)으로 본래는 초(楚)나라의 왕자이자 초나라의 마지막 왕인 부추(負芻)의 이복 동생이다.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나, 중국의 역사학자 리카이위옌은 《진시황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진나라의 상국에 대한 기록과 진나라 시대의 동과 유물에 적힌 명문에 따라 이름이 웅계(熊啟)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진나라의 상방에 임명되었다.

기원전 238년에는 창문군(昌文君)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노애(嫪毐)를 공격하여 함양에서 수백 명의 머리를 베었다.

기원전 226년에는 진시황의 명령으로 영 땅으로 옮겨 살았다

기원전 223년에는 초나라의 장수인 항연(項燕)에게 옹립되어 초왕이 되면서 반기를 들었다가 다음 해에 진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해 사망했다.

최근의 연구로는, 창평군의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기원전 271년 진나라에서 인질로 잡혀 있던 초나라의 태자[1]진 소양왕의 서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진나라 사람으로 쭉 살다가 진시황에 의해 옛 초나라 수도 영으로 옮겨진 후에 초나라 사람이라는 의식이 생겨 초나라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고 한다.


1.2. 대중 매체에서[편집]



1.2.1. 대진부[편집]


초나라 공족이며, 진나라에서 태어나 진나라의 승상[2]까지 지낸 복잡한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다. 양천군[3], 창문군[4] 등 미성 일족들과 함께 화양태후의 초나라 파벌의 주역이다. [5] 또한 시황제의 두 부인 중 한 명인 미씨의 아버지라는 설정이다. 영정의 이복동생 영성교를 즉위시키려한 화양 부인의 계획이 실패한 후 미성 일족은 화양부인이 계획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으로 영정에게 붙도록 시킨 미계와 미진을 제외하면 찬밥신세가 된다. 진왕 정의 친정 이전까지는 여불위조희의 압박에 숨죽이고 있다가, 화양부인의 계략으로 미계가 우연을 가장해 딸인 미화를 영정과 만나게 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이게 조금 코믹하게 묘사되는데 우연을 가장한다면서 딸을 질질 손잡고 끌고 가서 자기가 넘어뜨리고 '아니, 괜찮냐 내 딸!' 하고 외치고 나중에 또 '아니, 다리가 삐어 못걷겠다니 곤란하네!' 하고 자기 입으로 크게 말하며 연기하는 티를 팍팍 낸다. 때문에 영정 본인도 이게 다 연기고 화양부인의 작전이란 걸 알면서도 미화에게 반해서 사랑에 빠진다. 영정을 호위하던 번오기도 연기란 게 보이는지 쓸데없는 짓 말라며 미계에게 핀잔을 준다. 물론, 화양부인과 안좋은 일이 있었던 조희는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하며 아들에게 제나라 공주 오추와 결혼하라고 강요한다. 영정의 큰 아버지 사차서장 위양군과 여불위도 이전에 초나라의 미성 일족이 영성교를 옹립하려고 깽판을 친 일을 거론하며 반대 의사를 밝힌다. 미화와의 혼인을 강하게 원하는 영정은 자신이 위양군을 설득하고 이사에게 여불위를 설득하도록 시켜서 자신의 뜻대로 미화와의 결혼을 성공시킨다. 이후로 딸을 부인으로 꽂으며 정계에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노애의 난 이후로는 미성들의 반란 진압에 대한 공로로 창평군으로 봉해지며 실제 역사처럼 진 승상 자리에 오른다. 위양군 영혜를 위시한 영성 일족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으나[6]나름 유능하게 국정을 잘 이끌어간다.[7]

이후 계속 진나라 최고위 관리로 얼굴을 비추다가 조나라와 한나라, 위나라가 차례로 멸망한 후 진나라가 본격적으로 초나라와 전쟁을 시작하면서 중요 인물로 급부상한다. 웅부추가 초 공자 경함과 항연의 설득으로 이원과 초 애왕을 죽이고 초왕으로 즉위하자[8] 진나라는 초 고열왕의 아들이자 적통 미성인 미계를 진영으로 보내 초나라의 불만 귀족세력들을 규합하게 한다.[9]

하지만 여기서도 본인의 예상대로 초나라 귀족들은 분봉을 해달라고 미계를 조르는데 봉건제를 단념한 진왕과 초나라 귀족들 사이를 조율하느라 매우 고생한다. 게다가 창평군과 진나라의 속셈은 초나라 조정과 귀족층을 싸움 붙여 공멸시키고 어부지리로 초나라를 널름 먹을 생각이었는데, 봉지를 준다는 명확한 약속 없이 질질 시간만 끌고 있으니 불만세력도 결속력이 약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경함이 선수를 쳐 귀족들이 진군 군량 2만 석을 불태우게 하는 사보타주를 해버리고, 미계에게 혜문왕의 예를 들며[10] 진나라 놈들의 법은 가혹하기 짝이 없는데 군량을 태워먹은 걸 진왕이 알면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며 설득하여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고 만다.

그렇게 진나라의 통수를 치며 몽염이신의 20만 대군을 궤멸시켰으나 진나라는 왕전을 복귀시켜 초나라의 수도인 영에 폭탄드랍을 하며 웅부추를 죽이고 초나라를 멸망시킨다.[11] 선택지가 없어진 항연과 경함, 미계는 멀리 광릉까지 도주해 새로 초나라 조정을 다시 세우고 미계를 왕으로 옹립한다. 하지만 즉위식이 끝나자마자 왕전의 진군이 들이닥쳤고, 경함과 초왕 미계는 대피하다가 진군의 화살을 맞고 사망한다. 그리고 항연은 진군에 맞서다가 자결하면서 초나라 역시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1.2.2. 킹덤[편집]




1.2.3.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편집]


파일:조온_창평군.png
고대무장으로 등장. 병종은 현자계고 성우는 김지율이다. 연의나 pvp 컨텐츠에는 안 나오고 주로 몽매의 시련이나 사신전에서 사용한다.


2. 전라남도의 행정구역 昌平郡[편집]





1914년까지 존재했던 전라남도의 행정 구역이다. 1908년 옥과군을 흡수하였으나, 1914년에 옥과 지역은 곡성군으로, 나머지는 담양군에 흡수되며 폐지되었다.
[1] 고열왕[2] 기록에 따라서는 상국까지[3] 영성교를 죽위시키려고 한 화양태후의 난 이후 죄를 물어 유배되었다가 여불위가 화양태후가 영성교의 죽음을 묵인해주는 대가로 그를 사면하여 함양에 돌아오고 이후 화양태후의 지시로 이사에게 진시황에 대한 미성 일족의 지원을 보장하기도 했다.[4] 본작에서 창문군의 성은 미이며, 창문군 미전은 창평군 미계의 동생이라는 설정이다.[5] 진나라에는 크게 3개의 파벌이 있었는데 영성 일족, 객경세력, 그리고 왕비족 세력(진시황의 고조모인 선태후, 소양왕 영직의 정실부인, 효문왕의 정실부인 화양태후, 진시황의 부인중 한명인 미화가 미성이었다)인 미성 사람들이었다. 이사가 진시황의 즉위 후 여불위에게 스승인 순자가 해준 돼지와 이 세마리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3개의 세력을 이 세 마리로 비유하면서 세 파벌이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육국이 그 기회를 노려 공격하면 진나라만 손해를 본다고 말한 걸 볼 때 화양태후의 난 이후에도 어느정도의 세력은 유지하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6] 피흘리며 노애 일당과 싸운 영성 일족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진시황이 물질적인 보상은 후하게 줬다. 근데, 문제는 나랏일을 하는 관직은 진나라에서 기본적으로 능력중심주의로 인원을 배치하는데 영성일족 중에 관직을 맡을 만한 능력과 경험이 되는 인간들이 적어서 벼슬을 받은 영성이 극히 적어서 이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진시황도 딱히 영성 일족을 홀대할 생각은 없었고 영성일족도 진시황이 친정하면 자신들이 요직에 대거 등용될 거라 기대했지만 진시황 친정 후 공직을 맡기 위한 준비와 노력을 전혀 안했기 때문에 영성 일족들을 대거 요직에 배치하려면 원칙을 손상시켜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기회가 오는 것만 기다리고 기회가 왔을 때 그걸 쟁취할 준비가 안되있었던 게 문제였다. 실제로도 객경들이 축출되고 영성 일족이 그 자리를 차지할 때 재판과 수로공사에서 병크를 터뜨리며 어이가 승천하는 웃픈 장면들이 여러번 나온다. 재판에서는 누가 도둑인지 가려내려고 할 때 용의자 두명을 달리기시켜서 이긴 놈을 도둑으로 간주한다는 터무니없는 판결을 내려 사건 관계자들이 얼탱이가 없다는 표정이 되고, 수로공사도 전문가인 수리학자가 없는 상황에서 속도전만 강조하다가 수해가 터져서 영씨일족들 자신의 농지가 물에 잠겨서 서로 불만을 터뜨리며 책임을 떠넘겨 시청자가 실소가 터지게 만든다.[7] 다만, 여불위보단 못한 인물이라는 게 처음부터 강조된다. 화양태후도 정치적 식견은 뛰어나지만 장양왕이 도량이 좁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미계 역시 진시황이 능력은 여불위 못지 않지만 도량이 좁은 게 단점이라고 말한다.[8] 이 때 미계의 미래가 아시되는 장면이 그가 진왕 정에게 계책을 상주하면서 초나라는 웅부추의 찬탈로 혼란해져 있고 굴, 경, 소 가문 등 귀족들이 이를 갈고 있으니 이들을 식읍으로 회유하면 병사 없이도 초나라를 흡수할 수 있다고 진언하나, 이미 봉건제를 폐지하기로 마음먹고 군현제의 시행을 간보고 있던 영정은 정색하며 그를 질책한다.[9] 오해를 방지하게 위해 적어두자면 초나라 공족들의 성이 미성인 것도 맞고, 씨가 웅인 것도 맞다. 즉 역성혁명이 일어난 것은 아니고 미계 쪽이 정통성이 더 높다는 것.[10] 태자 시절 상앙의 변법을 지키지 않아서 본인 대신 태자부(태자의 스승)인 공손가가 대신 코가 잘리고(의형) 문신을 당하는 형벌(묵형)을 받았다. 혜문왕은 이것 때문에 상앙을 매우 증오하여 즉위한 후에 죄를 씌워 상앙을 거열형에 처해 죽인다.[11] 이 와중에 창문군 미전은 미계를 찾아와 그의 배반을 지탄하면서 미화가 냉궁에 유폐되고 평생 부소를 못 보게 된 것은 아냐며 그를 맹비난한다. 그리고 당신때문에 진나라의 미성 일족은 얼굴을 들 수가 없게 됐다며 양심이 있으면 자신을 따라오라고 일갈한 뒤 미계의 청동검을 뽑아 자기 목을 그으며 자결한다. 안 그래도 할 말이 없는 상황에서 친동생의 죽음을 목격한 미계는 미전의 시신을 안고 오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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