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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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 데뷔 이전[편집]


초등학교 3학년 때 동네 클럽팀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5학년이 되어 성남중앙초등학교로 전학가며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성남중앙초를 졸업한 뒤에는 자연스럽게 당시 성남 일화 천마 팀의 유스 팀인 풍생중, 풍생고등학교로 진학하며 성남의 로컬 보이가 됐다. 풍생고 재학시절부터 두각을 보였고, 특히 3학년에는 왼쪽 윙어로 출전하며 동기 김덕일과 함께 풍생고 공격을 이끌었다. 플레이 스타일이나 포지션이 학교 선배인 김치우와 비슷해 제 2의 김치우라 불리기도 했다.

2009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성남 일화 천마에 우선 지명된 후, 김치우처럼 단국대학교 09학번 운동처방재활학과에 입학했다. 신연호 감독이 이끄는 단국대에 입학하자마자 김치우처럼 왼쪽 풀백으로 포지션을 바꾸었다.[1]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팀 내 주전으로 뛰었고, 김대열, 배일환, 윤영선 등과 함께 팀의 U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당시 활약을 인정받아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는 등, 유망한 풀백 자원으로 성장했다.


2. 성남 일화 천마[편집]


1학년을 마치자마자 대행 꼬리표를 뗀 신태용 감독이 장학영의 군입대를 대비해 그를 1군으로 콜업시켰다.

2.1. 2010 시즌[편집]


등번호는 단국대에서 달던 22번.

초반에는 장학영의 존재로 출전하지 못했지만, 이내 기회를 잡고 고등학교 시절처럼 왼쪽 윙어로 출전하며 기회를 받았다. 이후 여름에 장학영이 공익근무요원 복무로 인해 팀을 떠나자, 주전 왼쪽 풀백 자리를 차지한다. 이후에도 풀백과 윙어를 오가며 거의 모든 경기에서 중용을 받았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팀은 2010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했다. 비록 홍철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명단에 뽑히며 결승전에 출전하진 못했지만, 팀이 우승하며 프로 데뷔 시즌에 ACL 우승 커리어를 쌓게 되었다. 그러나 팀 동료 조재철에 밀리며 신인상 후보에도 선발되지 못했다.

2010시즌 K리그 18경기 1골, 리그컵 4경기 1골, FA컵 3경기, ACL 9경기 출전. 총 34경기 2골.


2.2. 2011 시즌[편집]


시즌 개막을 앞두고 등번호를 자신이 존경하는 장학영의 번호인 33번으로 옮겼다.

2010 시즌 이후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는 등, 윤석영과 함께 제 2의 이영표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렇듯 데뷔 1년 만에 모든 축구 팬이 주목하는 선수로 급성장했다.

개막을 앞두고 겨울 전지훈련 중 부상을 당해 개막전에 뛰지 못했지만, 작년과는 달라진 위상을 반영하듯 거의 매경기에 풀타임 출전하고 있다. 특히, 팀내 윙어들이 줄부상을 당해 4월부터는 윙어로 출전하며 리그와 리그컵에서 연달아 득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5월 18일 FA컵 3라운드 목포시청 축구단과의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전반 36분만에 빠졌고, 이후 약 6주 간 결장했다. 가장 중요한 5월부터 6월까지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홍철은 결국 2012 런던 올림픽 명단에서 윤석영에게 밀리며 올림픽 진출이 좌절됐다.

이후 잔부상을 달고 경기에 뛰었고, 공격력과 대비되는 불안한 수비력이 단점으로 지적되며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대한축구협회 FA컵 결승전 코너킥 상황에서 조동건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FA컵 우승을 이끌었고, 2년 차에도 트로피를 들며 다음 시즌 ACL로 복귀하게 됐다.


2.3. 2012 시즌[편집]


등번호를 국가대표팀에서 다는 12번으로 변경했다.

시즌 초반 팀이 연패에 빠지며 부진에 빠졌고, 수비력으로 인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다 팬과 트위터에서 설전하다가 사과문을 게제하고 삭발하는 전형적인 부진하는 팀 선수의 루틴을 겪는 등 어려움에 빠졌다.

결국 시즌 막판엔 충수염에 걸리기까지 했다.

시즌 내내 홍철의 수비력에 대한 지적이 끊이질 않았은데다, 시즌 초반 엄청난 투자에 비해 팀이 성적을 거두지 못하자, 시즌이 끝나고 신태용 감독 경질과 함께 선수단의 대대적 개편이 시작됐다. 그중에서도 국가대표팀 주전급 자원이었던 홍철은 높은 이적료를 받을 수 있는 선수였기 때문에, 구단은 서둘러 홍철을 이적시장에 내놓는다. 당시 홍철은 12년 동안 성남에 있었던 것에 비해 팀이 쉽게 팔아버리려하자, 굉장히 서운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이 구단과 갈등을 자초한 것도 있는지라 욕을 먹고 있다.


3. 수원 삼성 블루윙즈[편집]


승리를 향한 폭풍질주

빅버드 소개 멘트


2013 시즌 양상민의 입대로 왼쪽 풀백 자리가 빈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홍철 영입을 희망하였고, 3년 계약으로 수원에 영입되었다. 수원 팬들은 꽤 좋은 영입이라고 평가했다.

3.1. 2013 시즌[편집]


등번호는 17번을 달았다.

2013 시즌 수원에서는 왼쪽 풀백으로 위치시키고 최재수와의 스위칭을 통해 순간적으로 공격적으로 올라가는 편이었다가 2013 시즌 중반 임대와 방출, 부상 등으로 인해 스쿼드에 공백이 커지자 아예 윙어로 뛰며 맹활약, 정확한 크로스와 슈팅으로 여러 차례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이른바 가레스 홍철. 사실상 산토스 영입 이전까지 수원을 먹여 살린 소년 가장.

가을에 염기훈이 전역한 후에는 왼쪽 윙 염기훈, 왼쪽 풀백 최재수에게 밀려 오른쪽 풀백으로 포지션을 바꿨지만 왼발 편향이 심한 편인지라 오른쪽에서 뛰는 게 적응하기 힘들었는지[2] 시즌 막판에 다시 왼쪽으로 돌아왔다.


3.2. 2014 시즌[편집]


2014년에는 염기훈이 중앙에 설 때는 왼쪽 윙어로 출전하고, 왼쪽 윙으로 출전할 때는 왼쪽 윙백이나 오른쪽 윙백으로 출전하는 등 염기훈의 위치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최재수와 번갈아 가며 왼쪽 윙백으로 출전 중. 결국 주 포지션인 레프트백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고, 기복도 크게 줄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팀은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하여 2014 시즌 개인 통산 첫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3.3. 2015 시즌[편집]


시즌 시작을 앞두고 자신이 가장 선호하던 33번으로 등번호를 바꿨다.

2012년 성남에서 지적받았던 수비력이 크게 문제로 두각돼 완벽하게 헬이 되었다. 빠른 윙어가 치고 들어오면 속수무책으로 뚫리리기 일쑤에, 수비 집중력은 산만 그 자체가 되었고 장점이던 킥 정확도마저 크게 떨어졌다. 거의 매 경기마다 실점에 관여하고 있는데 도대체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를 지경.

그래서 양상민최재수에게 왼쪽 풀백 자리를 주고 윙어로 나서며 경기감각을 익혔고, 6월 17일 제주전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부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양상민은 센터백으로 더 안정감이 크다는 중론 하에 주로 센터백으로 나오고 있고, 최재수는 트레이드 카드로서 포항으로 임대가며 다시 왼쪽 풀백으로 뛰기 시작했다.

결국, 2015 시즌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에 다시 한 번 이름을 올렸다.


3.4. 2016 시즌[편집]


지난 2년 간 우수한 모습을 올해도 보여주나 했으나, 안타깝게도 2016 시즌이 개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월에 부상을 당했던 오른쪽 발목을 수술하게 되면서 수술 종료 후 최소 6개월은 결장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무리 빨리 복귀한다 해도 가을이니, 사실상 시즌 아웃 판정을 받은 셈. 결국 주전 풀백을 잃은 수원으로서는 부담이 상당히 커지게 되었다.

수원은 시즌 내내 홍철의 공백과 득점원의 부재로 부진을 면치 못했는데, 9월에 복귀하고 나서 여름에 이적해 온 조나탄과 함께 공격에 활력을 불어 넣으며 팀의 FA컵 우승과 잔류 확정에 크게 기여했다.

2016 시즌 종료 후 상주 상무 입대가 확정되었다.


3.5. 상주 상무 (군 복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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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5일 신세계와 동반 입대하였다. 2018년 9월 4일 전역 예정.

2017 시즌에 27경기 1골 5도움을 기록하였다.

2018 시즌에도 1골 5도움을 기록하고 전반기 베스트 11에 드는 등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3.6. 2018 시즌[편집]


2018년 9월 4일, 무사히 전역하여 곧바로 벤투호 1기 대표팀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신세계와 더불어 무너져 가는 팀을 구해야 하는 중책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전역이 끝이 아니었다

시즌 최종 기록은 상주 상무 기록 포함하여 30경기 1골 8도움, 2018 시즌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3.7. 2019 시즌[편집]


8라운드 경남 FC전에서 2:2로 비기고 있던 후반 42분 사리치의 로빙 패스를 받은 후 측면에서 배기종을 제치고 구석으로 정확히 꽂히는 기가 막힌 원더골[3]을 넣었지만, 배기종에게 극장골을 허용하며 승점 2점을 날렸다. 그래도 양쪽 풀백 신세계와 홍철이 시즌 첫 골을 성공시켰다는 점, 사리치가 완벽하게 부활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김기희의 소속팀이기도 한 MLS 시애틀 사운더스 FC에서 사리치와 홍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하며, 직접 스카우터를 파견한 후 만족했다고 한다. 수원 입장에서는 최소한 올 시즌까지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고, 이 선수들이 이적할 경우 그 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도 세밀한 계획을 짜야 할 것이다.

14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전반 13분 사리치의 침투 패스를 받아 측면 컷백으로 한의권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고, 79분 프리킥으로 최성근의 헤딩 쐐기골을 어시스트하면서 2도움을 기록하였다. 이날 폼이 완전히 돌아온 모습을 보이며 포항의 측면을 마치 칼날로 사정없이 베는 듯한 모습으로 무쌍을 찍었고, K리그 최정상급 풀백의 부활을 알렸다.

15라운드 강원 FC전에서 한의권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면서 2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였다.


3.8. 2020 시즌[편집]


1라운드 전북 현대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했다.

2라운드 울산 현대전에서도 선발 출전하여 70분가량 뛰고 교체되었다.

이후 부상 및 컨디션 저하로 5월 중순부터는 아예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교체 명단에도 들지 않으면서 2개월 가량 쉬었다.


4. 울산 현대[편집]


파일:울산 현대 홍철.jpg

수비와 크로스 모두 최강, 강철 풀백

울산 현대 장내 아나운서 소개 멘트

2020년 6월 16일, 이적료 6-7억 규모로 울산 현대로의 이적하는 것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왔다.[4]

7월 1일 오피셜이 뜨면서 울산에 합류했다. #

4.1. 2020 시즌[편집]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달았던 등번호 33번을 선호하나 기존 울산 선수인 박하빈이 이미 등번호 33번을 사용하고 있는 관계로 2020시즌에는 32번을 달게 되었다. 선수 소개 멘트는 이제는 울산의 왼쪽 날개, 강철 풀백.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 후반 53분 김성준과 교체되며 데뷔전을 치렀다. 팀은 4-1로 승리하였고, 부상 복귀와 이적으로 인해 몸이 완전히 올라오지 않은 상황에서 긍정적인 경기력을 펼쳤다는 평.

14라운드 부산 아이파크 전에서 울산 이적 후 첫번째로 리그에서 선발 출전했다. 페널티 박스 바깥쪽과 안쪽 경계에서 파울을 범해 페널티킥에 가까운 프리킥을 내준 것 외에는 무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16라운드 동해안 더비에서 선발 출전했다, 후반 53분 왼쪽 측면에서 고명진의 약간 길어보였던 전진 패스를 어마무시한 스피드로 살려 낸 뒤에 권완규를 환상적인 드리블 돌파로 제친 다음 김인성에게 컷백을 내주어 어시스트를 기록, 울산 입단 후 첫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게 되었다.

17라운드 성남전에서도 완벽한 땅볼 크로스로 주니오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FA컵 4강 동해안 더비에 선발 출전했으나 경기력은 경기 내내 그다지 좋지 못했다. 허나 후반 초반 날카로운 프리킥이 골대를 맞고 튀어나와 세컨볼을 김인성이 밀어넣어 동점골에 적잖은 관여를 했고, 승부차기에서도 8번 키커로 나와 성공시켰다.[5]

24라운드 상주 상무전에 선발출전했다. 전반 32분 프리킥 상황에서 날카로운 크로스로 정승현의 헤딩골을 어시스트했고, 후반 59분 절묘한 땅볼 크로스로 비욘존슨의 쐐기골까지 어시스트하면서 본인의 진가를 제대로 증명하였다.

FA컵 2차전 전북과의 경기에서 전반 3분 얻어낸 프리킥에서 날카로운 크로스로 주니오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하지만 후반 6분 갑작스런 무릎 부상이 도져 설영우와 교체되어 울산 수비진들 사이 분위기가 약간 어수선해졌는데, 전북이 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순식간에 두 골을 넣어 울산은 역전패로 전북에게 더블을 내주게 되었다.

ACL 4강전 고베와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투입됐는데, 연장 후반이 시작하자마자 상대 선수에게 환상적인 스루패스를 넣어주며 엄청난 위기 상황을 초래했으나 다행히 조수혁의 침착한 대처와 더글라스의 역대급 삽질로 위기를 넘겼다. 경기 후 인스타그램 개시글로 조수혁에게 재치있게 사과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ACL 결승전에서도 후반 교체투입되어 울산의 두 번째 ACL 무패우승을 함께 하였다. 성남 일화 시절에 이어 본인 프로 커리어 두번째 ACL 우승이다.

전체적으로 놓고 보았을때, 출전했을 때는 번뜩이는 모습을 몇 번 보여주긴 했으나 여러 잔부상과 컨디션 하락으로 2020년 시즌 전체를 정상적으로 치르지는 못하였다.


4.2. 2021 시즌[편집]


파일:2021홍철.png

등번호를 본인이 가장 선호하는 33번으로 변경하였다. 선수 소개 멘트도 수비와 크로스 모두 최강, 강철 풀백로 바뀌었다. 부상 재활훈련 때문에 2020 클럽 월드컵에는 불참하였다.

이후 부상 복귀에 전념하다 3R 인천전에 선발로 나왔다. 허나 부상의 여파인지 크로스가 약간은 부정확했고 전반 44분 치명적인 패스미스가 네게바에게 연결되어 1:1 상황을 내줬으나 조현우의 슈퍼세이브로 위기를 넘겼다. 아직 폼이 완전히 올라오기엔 시간이 필요할 듯.

4R 포항과의 동해안 더비에서도 경기 내내 팔라시오스한테 시종일관 털리며 좋지 못한 폼을 보였다. 결국 5R 제주전과 6R 대구전에는 설영우에게 밀려 선발로는 나오지 못했다.

A매치 한일전 이후 폼이 올라왔는지 7R 성남전에 선발로 나왔고, 몇몇 크로스가 부정확하긴 했으나 시즌 극초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이며 울산의 1:0 승리에 일조하였다.

10R 친정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에서 두 차례 날카로운 프리킥을 보여줬으나 아쉽게 득점에는 실패했다. 이날 엉망인 경기력을 선보이는 울산 현대 선수들 사이에서 신형민과 함께 유이하게 까방권을 얻어낸 선수. 경기 후 수원 서포터즈 사이로 인사를 가기도 했다.

11R 전북 현대와의 현대가 더비에서도 상대 윙어 한교원을 막아내는 등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허나 후반 21분 공을 걷어내는 과정에서 햄스트링이 올라와 설영우와 교체되고 말았다. 그리고 한 달가량을 또 쉬게 되었다.

그 뒤 좌측풀백 자리는 설영우가 맡고 있다가 5월 26일, FA컵 경남 FC와의 16강전에서 복귀전을 치뤘고, 전반 41분 코너킥 상황에서의 날카로운 크로스로 이동준의 헤딩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5월 29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19R에서도 선발 출장하며 6월 대표팀 소집 직전, 몸상태를 끌어올렸다.

태국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 리그 F조 예선에서 3차전까지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하고 있다. 7월 2일 3차전 카야 FC 일로일로전 전반 40분 프리킥 상황에서 오세훈의 헤더 골을 어시스트했다.

허나 리그가 재개된 뒤로는 번뜩이는 모습을 좀처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대표팀에서는 여전히 붙박이 왼쪽 풀백으로 출전하고 있지만, 울산에서는 설영우와 주전 경쟁을 하고 있으며 ACL 8강에선 벤치에 머물렀고 4강전에서도 후반 40분이 돼서야 출전하는 등, 주요 경기에서는 설영우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후술할 여성편력 논란이 터지며 울산 팬들에게도 이미지가 다소 안 좋아졌다.

10월 24일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인 리그 24라운드 순연경기 성남 FC 전에서는 크로스의 부정확성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57분에 김태환의 크로스가 박스 안에서 상대 수비에 맞고 흘렀고, 이 흐른 세컨볼을 강하고 정확한 슈팅으로 때려넣으며 동점골을 챙겨왔다. 시즌 첫 골이자 울산 데뷔골임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친정팀이기도 하고, 최근 논란을 의식한 듯 세레머니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FA컵 4강 전남전에 선발로 나왔지만 크로스의 영점이 최악이였다. 거기다 후반 3분 위험지역에서 공을 빨리 클리어링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굳이 상대가 압박을 걸기 위해 잔뜩 노리고 있던 신형민에게 패스를 주는 판단미스를 범했고, 상대의 압박이 성공하며 두번째 실점에 크게 관여했다.

2021년 2월에 코로나 19 방역지침 위반을 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점점 더 팬들의 반응은 싸늘해져만 가고 있다. 심지어 시즌이 끝난 뒤 홍명보 감독의 인터뷰에서 후반기에 설영우의 경기력이 홍철보다 좋았기에 설영우를 주전으로 기용했다는 말이 나오면서 빼도 박도 못하게 주전 경쟁에서 밀렸음을 인증받았다.[6]

2021시즌 울산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 ACL을 포함해 도합 31경기 출전 1골 4도움.

12월 28일, 대구 FC 행이라는 단독 기사가 떴다.#


5. 대구 FC[편집]



파일:홍철_대구FC_오피셜 .jpg

2022년 1월 3일 오후 2시에 대구 FC로의 이적 오피셜이 떴다. 자신을 국가대표 선수로 만든 조광래 사장의 존재가 이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조원희의 채널에서 나온 홍철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5.1. 2022 시즌[편집]


이적 직후 남해 전지 훈련에 참여했다. 비록 국가대표 소집 때문에 금방 해외로 떠났지만 그 잠깐 사이에 남해의 한 카페에서 커피와 간식을 사서 선수단에 돌렸다.

FC 서울과의 리그 개막전에 선발 출전했다. 하지만, 상대 우측 매치업인 윤종규강성진에게 어려움을 겪으며 팀의 실점을 막지 못했고, 결국 후반 35분 케이타와 교체 아웃되었다.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리그 2라운드에 선발출전했지만 전반 10분만에 최철순과 경합 도중 부상으로 아웃됐고, 3월 2일 대구는 홍철은 부상으로 약 한달간 결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약 한 달 뒤인 4월 9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펼쳐진 울산 현대와의 원정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뤘다.

태국 부리람에서 개최된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에 참가하였고, 1차전 산둥 타이산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해 후반 48분 대구가 골문앞에서 수차례 슈팅 시도를 하면서 나온 리바운드 볼을 홍철이 오른발 슛으로 득점을 만들어내며 대구에서의 첫 골을 기록하였다.

2차전 라이언 시티 세일러스경기에서 후반 막판 수비과정중 송의영에게 날라치기 파울을 저질러 다이렉트 퇴장을 당하였고 그러면서 5차전까지 3경기 퇴장징계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퇴장 징계가 끝난 6차전 라이언 시티 세일러스전에 선발로 다시 한번 나와 후반 54분 왼쪽 사이드에서 올린 크로스를 이근호가 헤더로 방향만 바꿔 동점골을 어시스트 하였다. 그리고 이 골을 기점으로 대구는 승리를 거둬 AFC 챔피언스 리그 16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26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에서 패배한 후, 정승원이 SNS에서 팀을 조롱하는 글을 올리자 이를 디스하는 글을 올렸는데, 울산 및 성남을 떠날 때 본인도 워낙 나쁘게 나가서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36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원정 경기에서 후반 80분, 왼쪽 구석에서 올린 크로스를 세징야가 헤더로 골문으로 밀어넣어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이번시즌 리그에서 첫 도움을 기록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해당 라운드 베스트11에 선정되었다.

22시즌 리그와 FA컵 ACL경기를 포함해 35경기 1득점 2도움을 기록하였다.

5.2. 2023 시즌[편집]


리그 개막전인 포항과의 경북 더비 원정에 선발 출전했지만 전반 10분 만에 오베르단과 데드볼 경합 상황에서 태클을 당해 넘어졌다. 무릎을 감싸 쥔 채 한참을 그라운드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후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금 잔디를 밟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저앉았고, 결국 들것에 실려 나가며 장성원과 교체됐다. 왼쪽 무릎은 이전에도 홍철을 자주 괴롭한 부위라 또 다시 장기 결장이 우려된다.

휴식이 끝나고 8라운드 대전전에서 벤치에 들었으며, 9라운드 수원 FC 원정에서 후반에 케이타와 교체되며 복귀전을 치렀다. 그러다 75분 코너킥 때 에드가의 헤더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며 시즌 첫 도움을 기록했고, 팀의 패배도 함께 막아냈다.

12라운드 포항과의 홈경기에서 기존 레프트백인 케이타가 위로 올라가며 아주 오랜만에 선발로 나왔다.

13라운드 광주 원정에서도 선발로 나와 28분에 결정적인 수비를 보여줬다. 이후 63분에 박세진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며 시즌 두번째 도움을 기록했다. 이 골이 결승골이 되며 결국 승리에 기여했다.

14라운드 대전 원정에서도 선발로 출전, 풀타임을 소화했다. 팀은 고재현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었다.

15라운드 인천과의 홈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 후반 86분 바셀루스와 교체되었다. 최근 경기에 비해서는 조금 폼이 떨어진 모습이었다.

16라운드 서울과의 홈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 풀타임을 소화했다. 팀은 세징야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었다.

17라운드 전북 원정에서 선발로 출전, 풀타임을 소화했다. 전체적으로 폼이 올라온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팀은 송민규에게 실점하며 아쉽게 0:1로 패했다.

18라운드 수원 FC와의 홈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여 65분을 소화하고 케이타와 교체되었다. 팀은 세징야, 황재원의 활약으로 3:1 승리를 거두었다.

19라운드 울산 원정에서 선발로 출전, 66분을 소화하고 케이타와 교체되었다. 팀은 이른 시간 실점에 이어 에드가까지 퇴장당하며 어려운 경기를 했고 결국 1:3으로 패하였다.

20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여 풀타임을 소화하였다. 동점골을 기록한 세징야와 어시스트를 기록한 장성원에 이어 팀내 세 번째로 높은 평점을 받았으며 활약했다. 후반전 박희준이 쓰러지자 등에 공을 차고 머리에 공을 던지다가 고명석에게 저지당했다. 아마 수원 출신이라 선수들과 친분이 있기도 하고 0:1로 지고 있는데 시간을 지연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정승원과도 정승원의 태클 이후 짜증내는 듯한 모습을 보여 홍정운이 말리는 모습이 나왔는데 언제나 그렇듯 경기 끝나고는 다시 인사하고 박수치며 마무리했다. 경기가 끝나고 대구 FC 인스타그램에 조진우의 눈물 사진이 올라오자 만원 관중 앞에서 울어봐서 부럽다며(...) 팬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고 이후 오승훈과 홍철의 사진이 함께 올라오자 오승훈은 제발 얘랑 그만 엮어달라고 하고 홍철은 넌 내꺼라며 응수했다.

21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선발로 출전하여 13분 코너킥으로 동점골을 기록하며 시즌 첫 골이자 대구에서의 리그 첫 골을 기록했다.[7] 그러나 전반 21분 핸드볼 파울로 PK를 내주었고 이것을 오승훈이 막아내며 위기를 넘겼다. 이 외에도 잔실수가 많았다. 다행히 팀은 89분 장성원의 역전골로 2:1 역전승을 거두며 제주 원정에서 8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게 되었다.

22라운드 강원 FC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해 75분을 소화하고 장성원과 교체되었다. 팀은 이광연의 선방에 유효 슈팅이 모두 막히고, 여러 불운이 따르며 0:0 무승부를 거두었다.

26라운드 인천전 코너킥 상황에서 문지환의 헤더를 거둬내려다 옆구리에 맞으며 결국 자책골 같은 실점을 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경쟁자인 케이타가 후반전 희번뜩한 움직임과 PK를 얻어낸 활약으로 서로 희비가 교차하게 되었다.

29라운드 강원 FC와의 홈경기에서 전반 13분 정확한 롱패스로 세징야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며 시즌 3번째 도움을 기록했다.

강원전에서 세징야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이후 경기에서 부주장인 이근호와 오승훈이 경기에 나서지 않으면 사실상 3주장으로서 주장 완장을 달고 출전하고 있다.

32라운드 전북 원정에선 10초도 안되어 자로 잰듯한 정확한 롱패스로 고재현의 선제골의 기점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후반 12분에 자기가 얻어낸 프리킥을 직접 차서 고재현의 멀티골의 기점이 되는등 아주 맹활약을 해주었다.

36라운드 홈에서의 달빛 더비에서 선발로 출전했으며, 전반 40분에 코너킥으로 김강산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며 시즌 4번째 도움을 기록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인 38라운드 인천과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했으며, 전반 40분에 오른발로 크로스를 올려 에드가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그리고 후반 11분에 이번엔 왼발로 크로스를 올려 에드가의 추가골을 또 어시스트하며 순식간에 2도움을 적립하며 팀내 최다 도움 기록을 가져갔다. 공격포인트 외에도 훌륭한 움직임과 연계로 팀의 스플릿 첫승이자 마지막 승리에 기여하며 유종의 미를 아름답게 장식했다.

시즌 기록은 29경기 1골 6도움으로, 활약을 바탕으로 베스트 일레븐 레프트백 후보에 선정됐다.
[1] 고등학교 은사가 김치우를 지도했던 인연이 있으며 홍철에게 너는 제 2의 김치우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줬다고 한다. 이에 홍철도 윙어에서 풀백으로 포지션을 바꾸고 싶다고 감독에게 요청했으나 팀 사정으로 안된다고 다만 단국대학교에 이야기 해놨으니 진학하고 포지션을 바꾸라고 했다고 하며 이러한 이유로 홍철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풀백이 되었다.[2] 왼발 크로스가 장점이던 선수인데 오른쪽에 서다 보니 크로스를 올리기 전에 한 번 접고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크로스 전에 한 번 접는 동안 수비들은 놀고 있는 게 아닌지라 평소보다 크로스 템포가 늦어져서 성공률이 현저히 떨어지고 말았다.[3] 심지어 본인의 주발도 아닌 오른발로 완벽하게 성공시켰다.[4] 볼만찬 기자들 채널에서 밝힌 바로는 이청용을 영입하는 바람에 울산은 2020 시즌 운영자금이 간당간당해서 영입하는데 약간 무리가 있는 상황이였는데, 구단 측에서 김도훈 감독에게 홍철까지 데려오면 리그 우승을 할 수 있냐는 질문을 던졌고, 김도훈 감독의 "반드시 할 수 있다." 라는 그 말 한마디를 믿고 영입했다 한다. 비록 이번에도 리그 우승은 못했으나 더 큰 대회를 우승하면서 이 약속은 어느 정도 지켜졌고, 겨울 이적 시장에서 K리그 상위권 팀이 풀백 기근에 시달리면서 미리 여름 이적시장에 홍철을 낚아챈 울산의 이 영입은 성공적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 여담으로 이 PK 직전에 자신이 없었는지 조현우에게 대신 차달라는 농담성 부탁을 했고, 당연히 조현우 본인도 기겁하며 거절했다.[6] 물론 울산은 순혈주의가 강해 유스 성골 중에서도 성골인 설영우를 중용한 것도 있다.[7] 처음에는 홍철의 시즌 첫 골로 기록되었으나 김동준의 손에 맞고 궤적이 변경되었다고 판단하여 자책골로 정정되었다. 하지만 경기 종료 후 다시 홍철의 골로 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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