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쇼 진품명품/방영 목록/1995~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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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5년[편집]
2. 1996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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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98년[편집]
5. 1999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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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풍기 40만원, 암모나이트 화석 70만원, 소반 65만원[2] 김좌진 장군의 손녀인 김을동이 직접 의뢰했다.[3] 애국지사의 유품을 객관적으로 가격을 매길 수가 없다고 하며 무한의 가치를 가지기에 감정가를 책정하지 못했다.[4] 지금은 탄허스님의 글씨는 떠도는 이야기로는 국제경매시장에서는 최소 5백만원이다.[5] 남한강 상류[6] 1955년에 해당은행에 예금인출 했어야하는데 잊으거 같다.[7] 당시 가격은 장당 10만원이지만 당시 은행이 기증차원으로 실비으로 5만원 지급하겠다고 하는데 그 다음에는 어찌되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8] 일반 서민층들이 많이 사용했던 반닫이[9] 같은 말로는 휴대용 부적도끼[10]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남북한의 근현대 유물은 세계적으로 귀한 편[11] 학습용으로 독일공장에서 제작[12] 황해도에서 만들어진 지방요이지만 영국 골동품 로드쇼에서 같은 시기에 똑같은 문양으로 만들어진 같은 지역의 지방요인데 영국 7,000파운드가 나왔다.[13] 임금과 신하들의 글과 그림을 옳긴것[14] 별전은 최근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15] 복권은 1981년 발행[16] 모방품[17] 미국 FRB 발행[18] 小琳 趙錫晉, 1853~1920, 일본식민지 시대의 화가이며 본관은 함양이며 오원 장승업이 아낀 애제자[19] 당시의 위조품이지만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서 만든 것이지만 높은 가격이다.[20] 개당 50만원[21] 국내 감정사가 메이지 초기이라고 했지만 일본 현지에서 재감정 통해서는 에도시대 중기 일본 황실에서 제작된 것 밝혀진것[22] 몇년후 일본 현지에서 재감정 통해서 진품으로 밝혀졌고 경매에서 엄청나게 고가에 낙찰되었다는 것이 국내 신문에 알려졌고 당시의 국내 감정사는 비웃음거리으로 남아았다고 들어본바가 있다. [23] 이당 김은호 선생의 그림으로 추정한 작품으로 전원주가 의뢰했다.[24] 감정결과 진품이 아니었다.[25] 지방요[26] 모방품[27] 사서오경, 사서삼경의 내용들을 대나무 막대에 쓰고 그 막대들을 경통에 꽂아둬서 사대부 선비들이 뽑아보면서 사서오경과 사서삼경을 외울 수 있도록하는 도구였다.[28] 사찰에서 관상용으로 제작된 것[29] 활석 특성으로 인해 제작이 쉽다.당시 석조공 인건비를 감안한 것.[30] 해학적인 그림[31] 당시 재활용된 서양 종이으로 제작되었고 원래는 병풍으로 제작되었고 8폭이었다. 그림은 도원결의, 삼고초려, 적벽대전, 여포 토벌전,관도대전, 장판파 전투 [32] 중국, 일본 도자기/토기 감정사[33] 당시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34] 운석 충돌에 의하여 형성된 작고 검은 유리질 조각으로 구성된 광물[35] 주황색 1종, 붉은 색 2종[36] 요르단 사막이 출처[37] 죽창(竹窓)은 호이며 심정주(沈廷胄) 생몰은 1678 ∼1750, 본관은 청송이며 화가이지만 그의 아버지의 잘못으로 인하여 관직도 진출도 못했다.[38] 우표 감정가 10만+ 편지글과 편지봉투 20만 + 우표 소인과 봉인도장 2,270만[39] 보관상태 불량[40] 표주박은 강희 5년(간분(寬文) 6년, 1666년)에 수리했다는 글이 표주박에 적혀있다.[41] 수마노 갓끈은 150만원 강희5년에 수리가 명문화된 표주박은 300만원[42] 같은 것이지만 TV도쿄에서 같은 물건이지만 200만엔 감정가 나온적이 있다.[43] 지도 감정[44] 높이 3.5m에 팔공산 갓바위에 가다가 주운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 조사으로 의하여 공산 전투의해서 잃어버린 고려왕실 봉인도장이라고 한다.[45]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도장이 의외로 현대시대까지 남은 것이 많다고 한다.[46] 크기가 작고 훼손이 심하기 때문에 그 가격이 나온 것[47] 어해도 3종, 화조도 2종, 장생도, 책거리도, 호귀도[48] 공신책봉문서 맨끝에 만력 41년(게이초 18년) 3월에 작성 기록이 있다.[49] 우표 330만원 + 소인 569만원 + 독립신문 1면 1만원[50] 50+70[51] 허백련, 심향 박승무(深香 朴勝武. 1893~1980), 변관식, 김은호(화가), 이상범(화가), 심산 노수현(心汕 盧壽鉉,1899~1978) 이중에는 김은호, 노수현, 이상범는 명백한 친일화가[52] 각 화가별으로 한폭 또는 두 폭씩 그려서 합친 병풍[53] 심향 박승무 작품 700만+ 소정 변관식 작품 800만 + 허백련 작품 250만 [54] 경성일보 발행[55] 서사의 공덕을 위한 목적에서 제작된 책[56] 누군가 자른 흔적인한 가치 하락[57] 기계으로 대량으로 생산하여 당시이나 지금도 수량이 많이 남아있다.[58] 관복함 130만 + 각대 30만 + 각대 30만 + 금관 120만 + 상투관 20만 + 조복 80만 + 접상의 100만 + 신발 130만[59] 송준길과 송시열의 평가가 현저히 떨어지기 값어치 또한 2023년 7월 기준으로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60] 인두로 지져 그린 그림[61] 박창규(1783 ~ ) 손자 박병수(? ~ ?)의 그림[62] 보관상태 불량[63] 필통과 먹통 결합된 것은 중국 명말청초때 제작되었지만 의외로 전세계적으로 퍼진것이 많기 때문에 10만, 먹통은 조선 말으로 10만, 문진은 구한 말으로 10만, 휴대용 나침반은 19세기에 제작되었고 70만원, 필갑은 명말청초때 제작되었지만 의외로 전세계적으로 퍼진것이 많기 때문에 두 점은 20만원, 점통 15만, 소형 벼루는 20세기 중반에 제작되었고 5만원, 3만원, 침통은 19세기 말에 제작되었고 50만, 휴대용 필기구 19세기 말엽에 제작되었고 30만원[64] 보관상태 불량, 편지 작성 시기가 사라짐[65] 천문도 목판본으로 2023년 7월 기준 수정일으로 의외로 남은 것이 많다. [66] 물, 술, 간장을 담거나 농사용으로 분변 뿌릴때 사용[67] 궁중이나 사찰에서 사용된 조명등으로 피나무, 놋쇠, 대나무, 종이으로 조합하여 옻칠하여 만든 것[68] 당시 경희대 한의과 교수[69] 둘다 액체류 담는데 사용[70] 건륭33년이라고 기입되어 있고 일본 연호으로 메이와(明和) 5년[71] 연적 50만 + 망건집 40 [72] 조선시대 제사때 사용되는 짐승모양의 술항아리[73] 침이나 가래를 뱉는 그릇[74] 당시 무형문화재인[75] 화살촉이나 쇠붙이를 빼고 붙이는데 사용한 것[76] 화폐와 외국물품 감정[77] 변기 담는데 사용[78] 부엌에 붙이는 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한 그림[79] 1929년에 창립된 상업회랑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1941년 폐관되었지만 동양화와 서예를 전시 및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곳으로 한국사 최초의 상업적인 갤러리 창업자는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오도광(1936 ~ 2012)의 아버지인 오도빈이 창설[80] 관재 이도영(1884 ~ 1933), 오세창, 금강산인 김진우(? ~ ?), 우하 민형식(1875 ~ 1947), 동주 심인섭(1875 ~ 1935), 무호 이한복(1897 ~ 1940), 영운 김용진(1878 ~ 1968), 김은호(화가),석종 안종원(1874 ~ 1951), 이상범(화가), 심산 노수현(1899 ~ 1978), 성당 김돈희(1871 ~ 1936), 정재 오일영(1890 ~ 1960), 지운영의 작품들[81] 이도영/김은호 작품 100만 + 오세창 작품 80만+ 김진우/이한복/김용진/김돈인/오일영 작품 50만 + 민형식/심인섭 작품 30만 + 안종원 작품 40만 + 이상범 작품 400만 + 노수현 작품 300만 + 지운영 작품 250만[82] 금속 전문 감정위원[83] 도자기 전문 감정위원[84] 민속 전문 감정위원[85] 고서 전문 감정위원[86] 이명준 죽음에 애도한 글[87] 수정일 기준으로도 의외로 남은 것이 많다.[88] 모조품[89] 1851 ~ 1921, 함경북도 무산(茂山)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서화가이지만 무엇을 했던 사람인지 불명인 사람[90] 실다리 안경과 일반형 안경[91] 실다리 안경과 피나무으로 만든 안경집[92] 일반형 안경, 오동나무으로 만든 안경집[93] 17세기에 제작되었고 떡이나 밥 등 뜨거운 음식 담고 다용도 사용[94] 산화철이나 산화구리를 안료로 사용한 것[95] 연적으로 제작되었고 20세기 초[96] 기생집에서 사용한 것으로 바늘을 이용한 실습용으로 제작[97] 회화 전문 감정위원[98] 도자기 전문 감정위원[99] 고서 전문 감정위원[100] 1999년 신년특집으로 오후 4시 45분 ~ 5시 40분에 편성되어 방영[101] 金在魯, 1682 ~ 1759, 호는 허주자(虛舟子), 본관은 청풍김씨[102] 중국의 궁정 화가 시옥(施玉)에게 그려 받은 것이다. 올이 치밀하고 얇은 통견의 중국 비단에 중국풍으로 그린 초상화으로 1738년작[103] 1시간 30분 진행[104] 李寅文, 조선시대 궁중화가이다. 생몰은 1745 ~ ?[105] 단원 김홍도와 이인문[104] 합작품 또는 이에 버금가는 화가가 그린 궁중민화도[106] 유럽 근현대 물품감정[107] = 간찰[108] 명승지를 적어낸 놀이도[109] 승람도와 있어야 도구인 윤목이 사라졌다.[110] 나이키초정 한,브라질 축구 국가대표 친선경기로 20분 앞당겨 오후 4시 40분 부터 5시 30분에 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