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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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榮秀
1950년 9월 1일 ~ (73세)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가수 출신 코미디언.
2. 상세[편집]
1950년 9월 1일 서울 태생이며[1] 중앙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
처음에는 가수로 출발하여, 음악다방 무대 등에서 노래하며 막간에 재담을 선보이다 가수 조영남의 추천으로 방송사에 스카우트되어 코미디언, DJ, MC 등으로 폭넓게 활동하였다. 1970년대 초반 전유성 등과 함께 나타난 대학생 출신[2] 코미디 신흥 세력의 한 명. 통기타 가수의 마지막 세대이자 1세대 개그맨으로 부를 수 있다.
애초에 고영수는 가수를 희망했고 사철바람, 감기 등의 곡도 발표했지만, 별이 빛나는 밤에 DJ이던 이종환이 "너는 재담을 해야 한다"며 고영수의 통기타를 빼앗을 정도로 그를 개그맨으로 밀어주었고, 그는 슬랩스틱 류의 몸개그 없이 빠른 머리회전과 재치넘치는 순발력을 바탕으로 한 입담으로 안방을 주름잡았다. 이주일과 콤비 개그를 하기도 했고, 라디오 DJ로도 유명했다.[3]
3. 라디오[편집]
- TBC FM 밤의 다이얼[4]
- MBC 별이 빛나는 밤에
- MBC 라디오 즐거운 오후 두시
- CBS 가요산책- 1991년 3- 8월까지 지미애,1991년 9월~1992년 3월까지 강희선과 함께 진행
- CBS 꿈과 음악 사이에
- CBS 올 나이트 팝스
- TBS 가요운전석
- TBN 한국교통방송 차차차
- 원음방송 오늘같은 밤 고영수입니다.
4. TV[편집]
- MBC 유쾌한 스튜디오
- MBC 청춘만만세
- KBS 유머 1번지
- KBS 코미디 하이웨이
- MBC 별난가족 별난학교
- KBS 녹색신기루
- KBS TV쇼 진품명품
- KBS 여유만만
- MBN 아궁이
5. 여담[편집]
- 부친은 서울 중앙방송국 기자로 일한 언론인인데 고영수가 국민학교 1학년이던 1957년 아버지의 연줄로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 단원이 되어 라디오 방송에 수 차례 출연하였다. 당시 신입 아나운서 이던 강영숙[5] 은 퇴근길에 고영수의 손을 잡고 그의 집 근처이던 탑골공원까지 데려다주곤 했는데 세월이 지나 개그맨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어느 날 방송 출연차 정동 MBC에 갔다가 엘레베이터에서 MBC 중역이던 강영숙과 마주쳤다. 강영숙은 고영수에게 방송 잘 보고 있다며 인사를 건네자 고영수는 "선생님 저 기억 안나세요? KBS 외신부 고아무개 기자 아들입니다" 라고 말했다. 강영숙은 고영수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어머! 어머!"라고 깜짝 놀라며 눈물을 흘렸고, 자신의 집무실로 데려가서 "그 고사리손 꼬맹이가 이렇게 훌륭하게 자랐느냐. 아버님은 건강하시고?" 라면서 감격에 젖어 옛날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 HD현대 총수이자 전 대한축구협회 회장인 정몽준과는 중앙중학교, 중앙고등학교 동창이다. 중앙중학교 시절 소풍 장기자랑 시간에 정몽준과 친구들이 우스운 춤을 춰서 1등상을 가져갈 듯하자, 고영수는 축배의 노래를 "마누라~ 마누라 마누라~ 나좀 그만 때려줘~" 라는 식으로 코믹하게 개사한 가짜 오페라 아리아를 불러 학생과 선생들을 포복절도 시키면서 1등을 차지하였다.
- 최양락이 가장 좋아하던 코미디언이었다고 한다. 당시 전유성보다 TV에 더 많이 나왔기 때문에.. 사석에서 고영수보다 웃긴 개그맨은 없다고 한다. 2021년에 관련 일화를 본인 유튜브 채널에서 풀었다.##
- 최양락의 말에 의하면 해병대 출신이라 한다. 다만 만기전역이 아니라 당시 심했던 구타 때문에 다쳐서 의병 전역을 했다고 한다. 해병대 274기였다고 한다.
- 고영수가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 자유인이란 노래를 만들었는데 대략 "날 보고 가라고, 날 보고 오라고,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라는 저항적 의식이 담긴 가사였다. 당시는 웬만큼 삐딱한 노래는 금지곡을 뻥뻥 때리던 박정희 정권 시절인지라 발표해봤자 방송도 못탈거 같아서 묻어버렸는데, 1978년 대학생이던 동생 고영선이 MBC 대학가요제에 나가려는데 곡 하나 있으면 달라고 조르자 고영수는 그 자유인의 가사를 "내 마음도 하나요,
응?내 뜻도 하나요, 어젯밤의 꿈도 하나요" 라는 식으로 발랄하게 고치고 제목도 한마음으로 바꿔서 주었다. 고영선은 친구인 임백천과 듀엣으로 한마음을 불러 장려상을 받았다.
- 2010년 12월 24일 KBS 2TV 여유만만에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출연했다. 여기에서 DJ 시절 있었던 일화를 밝혔다. 한동안 방송이 끝나고 5분간 캠페인이 있었기 때문에 55분 무렵에 평소 때처럼 "네, 지금까지 제작 XXX, 기술 XXX..."라며 스탭들을 소개하고 엔딩을 치려는데 부스 밖에서 방송 진행요원이 갑자기 "캠페인 방송 없어졌다! 미안하지만 5분만 더 끌어달라!!" 라고 종이에 써서 흔들며 사정을 하자 고영수는 순간적으로 재치를 발휘했다.
제작 XXX, 기술 XXX... 두분이 오늘 수고 많이 하셨구요... 두분만 수고하신 게 아니고... 두분을 키우신 부모님들... 두분이 오늘같이 훌륭한 PD, 엔지니어가 될 수 있게 도와주신 스승님들... 국민학교 선생님, 고등학교 체육선생님...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면서... 그리고 이 CBS 건물을 짓는 데 도와주신... 벽돌공 여러분들, 시멘트를 날라주신 분들, 미장공사를 해주신 분들... 또 공사하실 때 밥을 날라주신 분들... 그런 분들께 오늘 새삼스럽게 감사를 드리고... 특히 추운 겨울날 안테나 세울 적에 산소용접 해주신 분들, 특히 철탑 위에 어지러운데도 불구하고 올라가서 맨끝에 십자가 달아주신 분들,[7] 또 이 분들이 내려올 때 사다리 잡아 주신 분들...당연히 부스 밖은 완전히 뒤집어졌고, 오히려 시간이 부족하여 다 소개를 못할 정도로 훌륭하게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방송국 음지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고 한다.[6]
- "청와대에서 부부싸움을 하면? 육박전이다." 라고 당시 삼엄하던 군부독재시절 육영수 박정희 얘기를 농담으로 하는 바람에 국가안전기획부에 끌려가서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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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로구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김두한, 임화수, 이정재를 예사로 봤고 5.16 군사정변 당시 조리돌림 당하던 이정재의 모습을 기억한다고 한다.[2] 당시는 대학 진학률도 매우 낮았고 대학생 출신 연예인은 더욱 드물어서 대학을 나온 가수라면 학사 가수라고 따로 호칭하였고, 이종환처럼 대학 중퇴만 해도 연예계에서 고학력으로 대접받았다. 고영수와 친구이며 같이 개그 프로그램도 나왔던 양희은이 대표적 인물.[3] 대표 프로그램 으로 <밤의 다이얼>이 있었는데, 신군부 독재 정권이 방송통폐합을 단행하여 강제 폐지되었다.[4] 신군부를 앞세운 전두환 정부의 언론통폐합 정책에 의해 강제로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마지막 방송에서 울먹이며 방송을 하였다.[5] 아나운서 은퇴 후 예지원 원장으로 재직하였다.[6] 이 에피소드는 2022년 12월 송승환의 유튜브 채널 원더풀 라이프에서 재현되었는데, 송승환은 얘기를 다 듣고 자신도 라디오 방송을 해봐서 알지만 생방송을 갑자기 30초 늘리는 것도 절대 쉽지 않은데 어떻게 무려 5분을 늘렸느냐며 감탄하였다.[7] 그 방송국이 기독교방송 이어서 그런 애드립을 쳤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