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지역별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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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편집]
지역별 최초의 유치원들 및 현황.
- 특별시와 광역시의 자치구를 모두 적기에는 너무 많으므로, 다른 도에서 편입된 군이 아닌 자치구는 모두 특별시와 광역시로 통합한다.
- 같은 해에 여러 개의 시군에서 유치원이 설립된 경우, 도별로 최초 설립된 1개의 군에만 연도 링크를 단다.
- 유치원 이전으로 인한 주소지 변동은 해당 지역 최초의 유치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처음 설립된 지역만 인정한다.
2. 수도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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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관동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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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호서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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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호남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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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영남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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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주권[편집]
제주도는 부산광역시 영도 다음으로 유치원이 일찍 들어온 섬이다. 현재 제주도에는 공립유치원이 96곳, 사립유치원이 22곳 있다.
7.1. 제주시[편집]
1924년 지금의 제주시 일도이동에 성내교회 부설로 설립된 중앙유치원이 최초이다. 제주도가 전라남도 제주도였던 시절에 세워졌으며, 제주도 최초의 유치원이자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치원이다.[1] 구제주에 있으며, 정확한 소재지는 제주시 일도2동[2] 이다. 1918년~1920년생이 첫 원생이었는데, 첫 번째 졸업생들은 대부분 사망했고, 살아 있더라도 105~106세이다. 중앙유치원은 현재 역사가 100주년이나 되었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제주시 일도일동, 일도이동, 건입동, 이도일동, 이도이동, 용담동, 삼도일동, 삼도이동, 오라일동, 오라이동, 오라삼동에 살았고 거의 대부분이 외국어 수준으로 매우 심한 제주어를 사용했다.[3]
한편, 애월읍 정도를 제외하면 제주시에서도 시골인 지역이 제법 남아 있는 옛 북제주군 지역[4] 에는 중앙유치원을 설립한 지 55년이 지난 1979년에야 유치원이 설립됐다. 그 전에는 북제주군 지역에 살던 아이들이 제주시의 유치원으로, 신제주에 살던 아이들이 구제주의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했는데, 주로 애월읍[5] 이나 조천읍[6] 에 살던 아이들이 그렇게 원정 통학을 했고[7] , 구좌읍[8] , 한림읍[9] , 한경면[10] , 추자면[11] , 우도면[12] 은 제주시와의 거리가 멀고 제주 시내로 향하는 교통편이 부실해서 원정 통학을 하는 수가 많지 않았다. 제주도에는 철도가 없는[13] 탓에 당시 원정 통학을 하던 아이들은 모두 버스를 타고 갔다고 한다.[14]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이면 전국에 공립유치원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15] 이후에도 병설유치원들이 생겨남으로써 제주시의 공립유치원 수는 2019년 현재 57곳이 되었다. 신제주 지역[16] 역시 유치원이 늦게 들어온 편이다. 그나마 분당신도시보다는 빠른 편.
- 옛 북제주군 지역: 1979년 한림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3년~1975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0~51세이다.
- 신제주 지역: 1982년 연동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6년~1978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7~48세이다.
지리적인 이유로 태풍에 의한 휴원이 상대적으로 잦다.
사립유치원은 17곳(시내 15곳, 한림읍 2곳) 있다. 또한 제주도에 중국인과 수도권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늘면서 제주시 유치원에 중국인 원아나, 수도권의 유치원을 다니다가 제주로 이사 오면서 중간에 들어온 원아가 있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1960년대 20만 5,210명이던 인구가 2021년 49만 2,466명으로 늘면서[17] ,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과거에는 원생과 교사들이 대부분 제주어를 사용했으나, 표준어 보급과 외지인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제주어 억양은 많이 희석되었다. 오죽하면 스펀지에서 ‘사투리를 사용하는 아이들도 소꿉놀이를 할 때는 표준어를 사용한다’는 문제도 냈을 정도. 현재 제주시의 유치원에서는 교사들은 주로 표준어를 쓰고, 원생들은 제주어가 섞인 표준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드물게 제주어를 사용하는 원생이 보인다.[18] 다만, 중앙유치원을 다녔다는 어르신들은 거의 외국어 수준의 제주어를 사용했다. 이런 사람들은 거의 80대를 넘은 사람들이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젊은 시절에 다른 지역 사람과 대화하다가 사투리가 심해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일본어로 대화하기도 했다고 한다.
제주도의 성씨 분포 특성상 제주시의 유치원에서는 박씨, 최씨보다 고씨[19] 들을 더 보기 쉽다. 실제 제주도에서 유치원을 다닌 사람 중에는 자신이 유치원을 다니는 동안 자신의 담임교사가 모두 고씨였다는 말을 할 정도이다. 고씨 외에도 강씨[20] , 변씨[21] , 부씨[22] , 좌씨[23] , 현씨[24] 성을 가진 원생들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한다. 실제 제주도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고, 강(姜), 박, 양, 오, 문, 정, 강(康)씨인 셈. 심지어 제주도의 일부 유치원은 고씨가 김씨보다 많은 반도 있다.
축구선수 지동원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25] 제주도 최초의 금메달리스트인 야구선수 강민호 역시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26]
7.2. 서귀포시[편집]
1935년 전라남도 제주도 대정면 하모리[27] 소재의 모슬포교회 부설로 세워진 모슬포유치원이 최초이다. 제주도민에 의해 설립된 유치원이며, 역시 제주도가 전라남도 소속이었던 시절에 세워졌다. 첫 졸업생들은 벌써 90세에 가까워졌고, 현재 상태는 불명이다. 서귀포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9년~1931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94~95세이다.
특이하게 시내보다 대정읍에 먼저 유치원이 들어왔는데, 당시 서귀포 시내 (옛 서귀읍[28] +중문면[29] , 1935년 이전에는 서귀읍이 우면, 중문면이 좌면이었다.)보다 대정읍이 더 발전된 곳이었기 때문이다.[30] 그로 인해 지금의 서귀포 시내에는 유치원이 늦게 들어온 것이고, 남원읍[31] , 표선면[32] , 성산읍[33] , 안덕면[34] 에는 전국적인 공립유치원 붐이 일고 나서야[35] 유치원이 들어왔다.
- 옛 서귀포시 지역: 1967년 해성유치원. 시내 최초의 유치원으로, 서귀포시가 아직 제주도 남제주군 서귀읍이었던 시절에 송산동[36] 에 천주교 제주교구 서귀복자성당 부설로 설립되었다. 첫 입학생은 1961년~1963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62~63세이다.
- 옛 중문면 지역: 1981년 예래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지리적 특성상 태풍으로 인한 휴원이 잦은 편이다.[37] 관광지 천국인 서귀포시의 특성상 지역 유치원에서는 해당 지역의 관광지들로 소풍을 간다.
서귀포시에 있는 예원유치원은 국내 최남단 사립유치원이고, 국내 최남단 유치원이자 국내 최남단 공립유치원은 마라도[38] 에 있는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장 병설유치원이다. 참고로 서귀포시는 2002 한일 월드컵의 경기장이 있는 도시들 중 유치원이 가장 늦게 들어왔다. 2002 한일 월드컵 경기장이 있는 도시들을 유치원 설립 순서대로 나열하면 부산 (1897년), 서울 (1900년), 인천 (1900년), 대구 (1910년), 대전 (1913년), 광주 (1920년), 전주 (1921년), 수원 (1928년), 울산 (1930년), 서귀포 (1935년)이라 한일월드컵 경기장이 있는 도시들 중 서귀포가 유치원 교육의 혜택을 가장 늦게 받은 도시가 된다.[39] 그나마 월드컵 경기장을 유치하려고 했다가 탈락한 도시인 부천 (1962년)보다는 빠르다.
사립유치원은 5곳 있는데, 서귀포시의 사립유치원은 시내에만 몰려 있지 않고 안덕면, 남원읍, 성산읍 등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1960년대 13만 1,839명이던 인구가 2021년 18만 2,169명으로 늘면서[40] ,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제주도 지역 특성상 제주도 출신자들은 유치원 시절 통학버스에서 봤던 자동차 번호판들 중 대부분이 하•허•호 등 렌터카 기호를 달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다만, 유명인들의 유치원 시절에는 렌터카 용도기호가 '허' 하나뿐이라 유치원 시절 길거리에서 본 자동차들 중 대부분이 '허'를 달고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 어촌이었다가 도시로 바뀐 지역 특성상 이 지역 유치원생들은 대부분 어민의 자녀였으나 도시화와 함께 원생들의 학부모의 직업이 다양해졌다. 또한 수도권에서 서귀포로 오는 경우도 생기면서 수도권의 유치원을 다니다가 중간에 들어온 원생도 있을 정도이다. 역시 제주도의 성씨 분포 특성상 원생과 교사들의 성씨 중 김씨, 이씨 다음으로 많은 성이 고씨일 정도이다. 어느 정도냐면, 제주도의 유치원에 박씨가 1명 있으면 고씨는 5~6명일 정도. 또한 현씨가 최씨보다 많다. 이는 서귀포시의 성씨 순위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서귀포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오-고-강(康)-강(姜)-박-양-현-정씨 순서이며 최씨는 13위에 머물러 있다. 이는 제주 고씨가 제주도에 많은 집성촌을 가지고 있기 때문. 또한 부씨와 좌씨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부씨는 제주 부씨, 좌씨는 제주 좌씨 하나뿐이기 때문.
축구선수 오장은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2021년 5월 1일 효돈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원아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5월 3일부터 14일까지 원격수업으로 전환되었고 7월 7일에는 서귀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원아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8. 시도별 공/사립유치원 수[편집]
8.1. 시군구별 공/사립유치원 수[편집]
9. 북한[편집]
1909년 함경북도 청진시에 설립된 나남유치원을 북한 지역 최초의 유치원으로 친다. 이는 서울과 대구[42] 는 물론, 남한에 있는 웬만한 도시들에 비해서 상당히 유치원이 빨리 설립된 것이다. 첫 입학생은 1903년~1905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120~121세이다.
북한은 주체사상을 제외한 모든 종교가 금지돼 있어[43] 종교계 유치원은 아예 없다. 또한 모든 유치원이 국가 소유이다.
낮은반(4세)과 높은반(5세)으로 나뉜다. 북한의 일부 부모들은 아이가 4세 미만인데도 유치원에 입학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모두 낮은반으로 간다. 즉, 이 아이들은 낮은반 생활을 최소 1년 더 하는 셈이다. (높은반은 똑같이 1년) 교사에게 뇌물을 주면 나이가 되지 않아도 일찍 받아준다고 한다.
북한도 일본처럼 4월에 입학식을 하는데, 이 때문에 1~3월에 태어난 아이들은 전년도 4~12월에 태어난 아이들과 같은 해에 입학한다. 과거에는 9월 입학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1~8월에 태어난 아이들이 전년도 9~12월에 태어난 아이들과 같은 해에 입학했다.
높은반은 법제적으로는 의무교육에 들어간다. 다만 1974년까지는 높은반도 의무교육이 아니었다.[44] 낮은반은 노래, 춤, 놀이, 종이접기 등을 위주로 배우며, 높은반은 우리말(한글), 셈세기(수학), 체육,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의 어린 시절 등을 배운다. 체제 특성상 유치원에서부터 김씨조선과 북한 체제 등에 대한 세뇌 및 우상화 교육을 받는 것이다. 김부자 교과서 문서도 같이 참조하면 좋다.
유치원 교사 출신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하루 수업시간 중에 3시간을 사상 교육에 할애하며, 김씨조선 일가의 생일 행사[45] 에 유치원생까지 동원하고 있으며, 지도자 생일 행사를 위해 오랜 기간 연습한다고(…) 한다.
또한 북한의 모든 유치원에는 김씨 3대 연구실이 있고, 백두산 밀영[46] 의 모형도 있는데, 김씨 일가에 대한 세뇌 및 우상화 교육에 이 백두산 밀영의 모형이 사용된다고 한다.
유치원에 입학하면서부터 전국적으로 통일된 제복(원복)을 입는데[47] ,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경제사정이 나빠져서 원복 무상 배급이 중단되면서 사복을 입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교사 출신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2011년 이후로 건강상의 문제나 경제적·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유치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도 명문 유치원이 존재한다. 이런 명문 유치원들은 수도인 평양에 있으며, 수업의 질도 당연히 좋다고 한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창광유치원과 경상유치원이 대표적인 북한의 명문 유치원이며, 경상유치원은 김정은이 2번이나 방문했던 곳이다. 특권층들은 아이를 명문 유치원에 보내려고 하고 있다.
여담으로 북한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바로 전쟁수업(!!!)이라고 한다.
남한 유치원에 비해 계씨, 궁씨, 선우씨, 동씨, 독고씨, 동방씨, 승씨, 현씨, 탁씨 성을 가진 원생이 많은데, 이는 계씨, 궁씨, 독고씨, 동씨, 동방씨, 선우씨, 승씨, 현씨, 탁씨가 북한에 더 많이 살기 때문이다. 특히 계씨가 이런데, 상위 200여 개 성씨들 중 유독 북한 쏠림 현상이 심한 성씨가 계씨, 궁씨일 정도로 전체의 97%, 99%가 북한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50] 이는 과거에도 마찬가지라 1930~40년대 유치원에서 계씨, 동씨, 승씨, 현씨, 탁씨, 독고씨, 동방씨, 선우씨 성을 가진 원생은 북부 지방의 유치원에서 많이 볼 수 있었고 중부나 남부 지방에서는 이러한 성을 가진 원생을 보기 힘들었다. 특히 계씨와 선우씨는 평안도, 동씨는 함경도에 많이 살았으므로 해당 지역에서는 한 반에 이런 성을 가진 원생이 꼭 있다고 한다.
야구선수 백인천은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유치원을 다닌 뒤 월남했다.[51] 이외 지성호, 유현주, 강나라 등은 북한에서 유치원을 다니고 탈북했다.
[1] 게다가 제주특별자치도보다 유치원이 늦게 들어온 광역자치단체도 2곳이나 있다. 울산광역시(1930년), 세종특별자치시(1970년)가 그 주인공이다. 심지어 청주시, 수원시보다도 빠르다. 제주도는 1924년, 청주시는 1929년, 수원시는 1928년에 유치원이 들어왔으니 이건 맞는 말이다. 다만, 1946년부터 1997년 6월까지 제주도는 유치원이 가장 늦게 들어온 광역자치단체였다.[2] 당시 전라남도 제주도 제주면. 제주면은 1931년에 제주읍으로, 1955년에는 제주시로 승격됐다. 이 때문에 제주도에 오래 사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제주시(의 동 지역)를 이를 때 ‘시’라고만 부른다고 한다.[3] 현재도 일부 제주도 유치원생이 제주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 시절의 유치원생보다는 강도가 많이 약해졌다. 거의 몇몇 단어들만 제주어 표현을 사용하는 수준.[4] 애월읍, 한림읍, 한경면, 추자면, 구좌읍, 조천읍, 우도면.[5] 인구 3만 6,333명으로 제주시의 읍면 가운데는 인구가 가장 많지만 (심지어 일도2동보다도 많다.) 이상하게 사립유치원은 없다. ‘애월’이라는 이름은 1935년 전라남도 제주도 신우면이 면 소재지 이름을 따서 개칭하면서 생겼다.[6] 인구 2만 4,937명으로 제주시의 읍면 중에서는 애월읍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읍인데도 사립유치원은 없다. ‘조천’이라는 이름은 1935년 전라남도 제주도 신좌면이 면 소재지 이름을 따서 개칭하면서 생겼다. 다만, 조천읍 동부는 그 지역의 가장 큰 마을인 함덕리에서 따 온 '함덕'이라고 많이 부르는 편.[7] 특히 애월읍 하귀리, 광령리와 조천읍 신촌리, 대흘리, 와흘리, 교래리는 아예 제주시 시내와 붙어 있다.[8] 별방진이 있는 그 곳이며, 인구는 1만 5,554명이다. 현지인들은 이 곳을 주로 ‘세화’라고 부르며 (구좌읍 서부는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인 김녕리에서 유래한 '김녕'이라고 부른다.), 유치원은 1980년대에 들어왔다.[9] 한림공원이 있는 그 곳이다. 1935년 이전에는 구우면이었으나 개칭됐고, 1956년에 한경면을 분리했다. 흔히 한림이라고 하면 한림읍 한림리 일대를 뜻하며, 협재리 일대는 '협재'라고도 많이 불린다. 유치원은 1970년대에 들어왔으나, 인구가 2만 1,365명으로 늘면서 유치원도 많이 들어와 2019년 현재는 사립유치원이 있다.[10] 제주현대미술관이 있는 그 곳이며, 제주도 내에서도 상당히 시골이라 인구도 9,045명밖에 안 되고, 유치원도 늦게 들어왔다. 한경면 주민들은 자녀를 사립유치원을 보내고 싶으면 한림읍까지 가야 한다.[11] 제주시에서도 상태가 가장 열악한 곳이며, 인구도 1,729명으로 가장 적다. 또한 제주시와는 배편으로만 연결되고, 유치원은 1980년대 이후에 들어왔다. 참고로 축구선수 지동원이 이 곳에서 태어났다.[12] 과거 구좌읍이었다가 별도로 분리됐다. 인구는 1,843명으로 추자면보다는 많고, 유치원은 1980년대 이후에야 들어왔다.[13]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제주도순환궤도가 있었지만 얼마 못 가서 폐선됐다.[14] 제주도를 여행하다 보면 도내 차량들 대부분이 ‘하’, ‘허’, ‘호’를 달고 있는데, ‘하허호’ 번호판이 아닌 차량들은 거의 버스나 지역 주민의 차량이다.[15] 참고로 이 시절이면 한석원과 한석만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다. 한석원과 한석만이 유치원을 다녔다면 한석원은 1964년생이므로 1968~1970년에, 한석만은 1970년생이므로 1974~1976년 사이에 다녔을 것이다.[16] 제주시 노형동과 연동으로 이루어진 시가지. 일도동, 이도동, 삼도동 등은 구제주이다.[17] 옛 제주시 지역은 1960년대 8만 7,369명에서 2021년 38만 973명으로 엄청나게 늘었으나 옛 북제주군 지역은 11만 7,841명에서 11만 1,493명으로 감소해 시내 집중도는 42.6%에서 77.4%로 높아졌다. 제주시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38만 973명, 애월읍 3만 6,913명, 조천읍 2만 5,339명, 한림읍 2만 1,249명, 구좌읍 1만 5,546명, 한경면 9,029명, 우도면 1,740명, 추자면 1,687명으로, 추자면 인구는 노형동 인구의 31분의 1 수준이다. 거의 서울 도심의 소규모 법정동 인구 수준인 셈.[18] 제주어가 섞인 표준어를 쓰는 경우는 대부분 몇몇 단어 정도만 제주어 단어를 쓴다. 제주도가 고향인 노년층 중 유치원을 다닌 사람들은 원생과 교사가 모두 외국어 수준으로 심한 제주어를 사용했고 세대가 지나면서 그 강도가 점점 약해졌다.[19] 전국 고씨 인구가 47만 1,396명인데 그 중 3만 3,539명이 제주시, 8,396명이 서귀포시에 살고 있었다. 어느 정도냐면 제주도 상위 성씨 3개가 ‘김이고’, 5대 성씨는 ‘김이고강박’, 10대 성씨가 ‘김이고강박양오정문현’일 정도. (게다가 제주도에서 최씨, 조씨, 윤씨, 장씨 인구는 10위권 밖이다.) 이는 고씨가 사실상 제주 고씨 단본인 영향이 크다.[20] 여기서 말하는 강씨는 한자가 康이다. 전국 인구가 9만 1,265명인데 그 중 제주시에 1만 793명, 서귀포시에 7,554명이 살아 康씨 9명 중 1명은 제주도민일 정도. 심지어 제주도에서는 康씨는 정씨, 문씨, 송씨, 한씨, 홍씨, 최씨, 윤씨, 조씨, 장씨, 황씨보다 많다.[21] 이 변씨는 한자가 '성 변'인 변씨이다. 6만 633명 중 1,853명이 제주시에 살고 있었다.[22] 전국 부씨 인구가 1만 596명인데 그 중 4,574명이 제주시, 561명이 서귀포시에 살아 부씨 둘 중에 하나는 제주도민일 정도. 이는 부씨가 사실상 제주 부씨 단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주도에서 부씨 인구는 권씨보다도 많다.[23] 전국 좌씨 인구가 3,378명인데 그 중 1,803명이 제주시, 145명이 서귀포시에 살아 좌씨 둘 중에 하나는 제주도민일 정도. 이는 사실상 좌씨가 제주 좌씨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배씨, 성씨, 채씨, 차씨보다도 많다.[24] 전국 현씨 인구가 8만 8,824명인데, 그 중 제주시에 8,197명, 서귀포시에 5,362명이 살아 현씨 8명 중 1명이 제주도에 살고 있을 정도. 물론 현씨 자체도 남한보다 북한에 더 많이 산다. 제주도에서는 현씨가 한씨, 최씨, 윤씨보다 많이 사는 셈.[25] 지동원은 1991년 5월 28일생(32세)이라 1994~1997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유치원 시절 에버랜드에서 판다 밍밍(明明)과 리리(莉莉)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두 자리 번호판을 처음으로 보고, 악명 높은 IMF 금융위기 사태를 유치원 시기 말미에 겪은 셈. 당시 추자도는 제주도 북제주군 추자면이었다. 제주 시내에 사립유치원이 몰려 있고 추자면에 사립유치원이 없는 정황상 추자면 유일의 유치원인 추자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녔거나 시내로 이사 와서 다녔을 것이다. 그 시절이면 9급 공무원 시험은 고졸들이 주로 치는 시험이라며 대졸자들 사이에서는 무시를 받았고 (이렇게 9급 공무원 시험이 대졸자들 사이에서 무시받은 데는 행정학 등 전문과목이 없고 모두 고교 과목이었던 점도 있다.), 이하영, 이지영, 이다지, 고아름 등이 아직 유치원생이거나 초등학생이었고 1960~70년대생들이 대학생이었던 시절인데 (이 때문에 1976년생 박봄, 조은정 등은 물론 1971년생 이기상, 1970년생 전한길이 1991년생들이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에 대학생이었다.) 이 공식대로라면 지동원은 무려 이기상, 전한길의 대학 시절에 유치원생이었던 셈이다.[26] 강민호는 1985년 8월 18일생(38세)이라 1989~199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적에는 북제주군, 남제주군이 있는 건 물론 1960년대생들이 아직 대학교에 남아 있던 시절이었으며, 강민호는 이다지 (1985년 3월 11일생)와 같은 시기에 유치원 생활을 했다. 그래서 1987년 7월 19일생인 고아름은 1990년부터 1993년 사이에 유치원생이었으므로 강민호가 유치원 3년차일 때 유치원 입학 대상이 됐다고 하며, 고아름과 강민호는 유치원생 시기가 1년만 겹친다.[27] 現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28] 서귀포시에서 대천동, 예래동, 중문동을 뺀 나머지 동들.[29] 현재의 서귀포시 대천동, 예래동, 중문동.[30] 심지어 서귀포 시내보다 대정읍이 먼저 인구 5만 명대를 찍었다. 1955년 대정읍의 인구는 58,000명이었는데 과거 이 지역에 주문했던 제1훈련소의 영향이었다. 현재 인구는 2만 1,329명으로 그 절반도 안 된다. 참고로 마라도가 여기 소속이다.[31] 전라북도의 남원시는 南原, 제주도의 남원읍은 南元으로 한자가 다르다. 과거 전라남도 제주도 시절에는 서중면이었다가 개칭된 것이었다. 현재 인구는 1만 8,854명이고 유치원은 늦게 들어왔지만 사립유치원도 있다.[32] 제주도 현지인들이 흔히 ‘성읍’이라고 부르는 그 곳이며, 성읍민속마을과 정석비행장이 이 곳에 있다. 과거 전라남도 제주도 시절에는 동중면이었으나 개칭됐다. 인구는 1만 2,252명이며 사립유치원은 없다.[33] 성산일출봉이 있는 그 곳이며, 제주 신공항이 설립되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 전라남도 제주도 시절에는 정의면이었다. 인구는 1만 5,434명으로 적지만 사립유치원이 있다.[34] 신화테마파크가 있는 그 곳이다. 과거 전라남도 제주도 시절에는 중면이었다. 현재는 인구가 1만 2,046명으로 적은데도 사립유치원이 있지만, 과거 이 지역에 살던 아이들은 버스 타고 서귀포 시내의 유치원에 다녔다.[35] 이렇게 되어 서귀포시의 공립유치원은 39곳까지 늘어났다.[36] 당시 남제주군 서귀읍 송산리.[37] 2000년대 이후 서귀포에서는 겨울이 사실상 아예 없어져, 이 동네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은 가을, 설날은 봄, 추석은 여름이 돼 버렸다.[38] 마라도의 소재지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행정리 마라리)이다.[39] 심지어 유치를 신청했다가 탈락한 천안 (1921년), 청주 (1929년), 목포 (1921년), 강릉 (1923년), 창원 (1926년)보다도 늦었다.[40] 옛 서귀포시 지역의 인구는 1960년대 3만 3,491명 (중문면을 포함하면 47,491명)에서 2020년 10만 1,923명으로 늘었으나 옛 남제주군 지역의 인구는 8만 4,348명에서 8만 246명으로 줄어 시내 비중은 36%에서 55.8%로 높아졌다. 서귀포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10만 1,923명, 대정읍 2만 1,761명, 남원읍 1만 8,766명, 성산읍 1만 5,412명, 표선면 1만 2,325명, 안덕면 1만 1,982명이다.[41] 구성·마북·동백1·동백2·동백3·상하·보정동[42] 대구광역시 최초의 유치원은 1910년 설립된 대구유치원이지만, 한국인을 위한 것은 1921년 설립된 달성유치원이 최초이다.[43] 특히 기독교는 신자들이 대부분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는 판국이다. 다만, 평양시에 어용인 교회와 성당은 있다. (장충성당, 칠골교회, 봉수교회 등)[44] 21대 국회에서 탈북자 출신 당선인은 2명인데, 태영호와 같은 세대는 유치원이 의무교육이 아니었으나 (탈북자 최초의 국회의원인 조명철 포함), 지성호와 같은 세대는 유치원이 의무교육이다. 지성호, 강나라 등 탈북자들의 대부분이 북한에서 유치원을 다니고 온 것은 이 때문이다.[45]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 김정일의 생일인 광명성절(2월 16일), 김정은의 생일인 은하절(1월 8일) 등등.[46]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구라치고선전하고 있다. 실제로는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태어났다.[47] 한국의 원복은 원마다 다르다. 남아의 원복은 비슷비슷하나 여아의 것은 원피스인 곳도 있고, 일반 치마인 곳도 있을 정도로 다르다.[48] 당연히 이 전쟁수업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즐겁게 뛰어노는 체육 시간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없다.[49] 실제 북한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의 키가 남한 유치원생 수준인 경우도 있다.[50] 독고씨, 동씨, 승씨, 선우씨는 80% 이상, 현씨와 탁씨 등은 70% 이상이 북한에 살고 있다.[51] 백인천은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1945년 귀국해서 철산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1942년 9월 27일생(81세)이므로 유치원은 1946~1948년 사이에 다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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