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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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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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王洛生
생몰연도 불명
후조의 인물. 자는 불명.
2. 생애[편집]
석륵이 한나라 소속이던 시절, 왕낙생은 그의 부장이 되어 유주(幽州)에서 할거하던 군벌 왕준 토벌에 종군하였다. 왕준은 석륵이 온다는 소리에 자신을 받들려는 줄로만 알고 계(薊)에서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렸는데, 석륵은 그런 왕준의 기대와는 달리 계로 입성하자마자 병사들을 풀어 약탈을 자행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석륵은 왕준의 청사로 진입해 당황해 도망치려던 왕준을 붙잡고, 왕낙생에게 기병 500기를 주어 그를 양국(襄國)까지 호송하게 하였다. 왕준은 도중에 묶인 채로 물에 빠져 자결하려 했으나 실패하였고, 결국 양국에 이르러서 참수된 뒤 저자에 효수되었다.
왕낙생은 본래 날래고 사나운 인물이라 석륵은 그 용맹스러운 기세를 꺾을 생각으로 왕낙생을 감옥에 유폐시켰다. 그러나 왕낙생은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숨겨두었던 5촌 길이의 칼을 꺼내 감옥에서 자신의 배를 가르고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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