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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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관
2. 상세
2.1. 주소의 비공개
2.2. 수형자의 구분
2.2.1. 수형자(기결수)
2.2.2. 미결수
2.2.3. 사형수
2.3. 수감
2.4. 출소
2.5. 건물 구조


1. 개관[편집]


대한민국에서는 법무부장관 직속으로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주관하는 기관은 법무부 직속기관 교정본부이다. 법무부의 외청이 아니다. 각 교도소에는 소장을 두며 소장 아래에 교정직 공무원들을 두어 각 소를 관리한다.

여기서 형기를 다 채우기 전에 무단으로 탈출하는 것을 탈옥이라고 하며, 법률용어로는 도주죄라고 한다.


2. 상세[편집]



2.1. 주소의 비공개[편집]


교도소는 국가중요시설이라[1] 웹 지도, 항공사진, 내비게이션 등에서 일절 검색 및 표시가 되지 않는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도록 짙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거나 산, 숲 등의 장애물 사진이 합성되어 가려져 있다.[2][3] 직접 찾아간다 해도 당연히 입구 앞에서도 본 건물을 찾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다. 심지어 교도관들이 수용자 이송을 위해 이송차를 몰고 가도 경로 탐색이 되지 않아서, 이전에 가봤던 직원의 기억력에 의존하거나 해당 교도소에 전화로 길을 물어가며 찾는 일도 있다.[4] 내비게이션에 의존할 경우 목적지 인근의 공개된 주소를 하나 따뒀다 찍어 길을 안내받는 식으로 가기도 한다. 이는 구치소도 마찬가지다.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것인데 외부에서 탈옥을 도와주지 못하게 하려고 이렇게 만든 것이다.

교정본부 홈페이지에 가면 면회객등을 위해 대놓고 교도소 주소를 공개하고 있지만, 이미 해당 주소로 검색하는 것 자체가 막혀 있다. 위성사진으로 그 위치를 찾아봐도 교도소는 노출되지 않는다. 교도소가 있는 곳은 대충 땜질하면 짙은 모자이크 처리, 잘 땜질하면 으로 완전히 가려져 있다. 물론 근처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택시 기사, 버스 기사들은 다 안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이나 주유소 이름을 근처에 있는 교도소에서 따온 경우도 많다.

소년원은 교도소가 아니다. 소년교도소와 다르다. 소년원도 교정 시설이지만 범죄 수위가 비교적 낮은 청소년들을 수용하는 시설이기에 기본적으로 학교로 되어 있고, 전과 기록에도 남지 않아 본인이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물론 감금 생활인만큼 소년원 생활이 결코 편하지는 않다. 소년원은 교도소와는 달리 중요시설이 아니라서, 지도에서 검색이 잘만 되며, 위성사진에도 다 드러난다. 그러나 소년분류심사원은 주소만 검색될 뿐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는다. 하지만 외출이 금지되어 있고,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학교와는 다르다.


2.2. 수형자의 구분[편집]


기본적으로 한국 형법은 법률의 부지(不知)에 관대하지 않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집행유예선고유예를 내릴지언정 실형을 강하게 넣지는 않는다. 과실죄로 실형이 나오는 경우는 말 그대로 수 명 이상의 사람을 실수로 죽인 정도로 질 나쁜 과실이기 때문에 실형을 살게 되는 경우이다. 법의 맹점을 이용하는 것은 절대다수가 피고인이지, 실체적 진실을 추구할 의무를 지는 검사나 판사가 이용하는 행태는 이후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서슬 퍼렇던 독재 시절에는 검사들이 나서서 법의 맹점을 이용하기도 했다. 전격기소를 이용해서 구속적부심을 무력화한다든가.[5]


2.2.1. 수형자(기결수)[편집]


미결수와 구분하기 위해 기결수라는 용어를 쓰긴 하지만 정식 용어는 아니다. 법적인 용어는 수형자이다.

실형 선고 이후 기결수들은 분류처우업무지침에 따라 등급 분류 심사를 받는데, 보통 한두 달 정도 걸리며 매월 10일에 심사 결과가 발표된다. 흔히 말하는 등급은 S1부터 S4에 이르는 경비처우급이다. 어떠한 대우를 받는지는 교정시설 경비등급별 수형자의 처우 등에 관한 지침을 참고하면 된다.

무기징역을 가끔 종신형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종신(終身)할 때까지, 즉 죽을 때까지 교도소에서 구금하는 형벌이 바로 무기징역이다. 다만, 한국의 형법전에는 종신형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고 무기징역이라는 표현을 쓴다. 반면, 국내언론에서는 외국의 뉴스를 전하면서 무기징역 대신 종신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에 일반인들은 양자를 달리 인식하기도 한다. 무기징역에는 가석방이 절대로 불가능한 절대적 무기징역과, 일정 기간이상 복역하고 행상(行狀)이 얌전한 자(교도소에서 문제를 잘 일으키지 않는 수형자)인 경우에는 가석방이 가능한 상대적 무기징역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상대적 무기징역만 인정하고 있다.[6]

단 요즘은 유기징역 상한선의 상향으로 사실상 종신형화되는 추세다. 가석방이 간혹 되긴 하는데, 대상은 2010년 10월 이전에 선고받거나, 선고는 2011년 이후인데 죄는 그 이전에 지은 무기수들이다. 한국은 소급입법을 거의 인정하지 않기에, 이들은 기존의 20년 안팎 수감기간이 그대로 적용된다. 대신 이후 무기징역 대상자들은 개전의 소지가 있는 경우에 한해 25~35년 징역으로 대체하고 있어, 무기 선고 자체가 기존의 80~90건에서 2011년 이후 20여 건으로 급감하였다.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의 경우 사형제를 대체하기 위하여 가석방이 불가능한 절대적 무기징역형을 인정한다. 종신형이 사형에 비하면 약하다고 생각하는데, 교도소에 한번 살아보면 절대 약한 게 아니다. 자유를 박탈당한 채로 사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므로 교도소에서 6개월이나 1년을 복역한 후 출소해도 악몽같이 여기는데, 6년 이상의 장기 수감과 죽을 때까지 수감되는 종신형은 어떤 것인지 안 봐도 뻔하다. 장기수들과 무기수들 중에서 괜히 자살자가 나오는 게 아니다.


2.2.2. 미결수[편집]


미결(未決)과 기결(旣決)을 구분하는 기준은 피고사건에 대하여 유죄의 확정판결 여부로, 정확히는 형집행지휘서를 받은 시점에 미결과 기결이 구분된다. 구치소에 가는 것이 원칙인 미결수를 제외한 일반 수용자들은 모두 범죄자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범죄자라고 해서 다 같은 범죄자가 아니다. 미결수인 상황에선 1일 1면회가 가능하며, 변호사 접견이 자유롭다. 이 때문에 돈이 많은 사람들은 변호사 접견을 매일 신청해 집사처럼 변호사를 만나기도 한다. 노역의 경우 나가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2.2.3. 사형수[편집]


사형수의 경우 그 신분이 좀 복잡하다. 죽여야 형이 집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미결로 볼 수도 있지만 이미 확정 판결을 받았으므로 기결수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관련법에서도 사형수는 미결도 기결(수형자)도 아닌 사형확정자로 별도 분류하고 있다.

사형수가 징역형을 선고 받은 죄수와 다른 점으로는, 징역형을 선고 받은 죄수는 교도소에 구금된 동안 확정판결을 통해 선고 받은 형을 복역 중인 사람이라는 것이고, 사형수는 그에게 선고된 형, 즉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사형수는 살아있는 동안은 자신의 형을 복역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다. 당연하겠지만 사형수는 가석방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가석방 대상은 '징역 또는 금고의 집행 중에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형수가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동안 얌전히 지내서 무기징역형 또는 20년 이상 50년 이하의 유기징역형으로 감형 받는 경우 감형 받은 시점부터 형기를 기산한다. 예를 들자면 20세에 살인한 사형수가 40세가 되어 감형을 받아 20년의 유기징역형으로 바뀌었다면, 60세에 석방된다.

언급했듯 사형집행을 대기중인 신분인지라 원칙적으로 사형장이 있는 곳에서만 수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노후 교도소를 이전하면서 사형장을 만들지 않는 추세로 인해 점차 사형수를 수용할 곳이 줄어들고 있다. 이 때문에 구치소에 수감하기도 하지만 구치소는 항상 만원상태라 사형수를 마냥 수용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2.3. 수감[편집]


한국은 기본적으로 교화(敎化), 교정주의(矯正主義) 이념을 따르고 있으며, 교도소 안에는 각종 교육시설을 둬서 범법자 교화 및 갱생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교도소 측에서는 범죄자를 교화하기 위해서 일반인이 인식하는 것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사회 통념상 아무리 반성을 철저히 하고 심각한 범죄를 짓지 않았다 해도, 그 자체로 사회에서 생매장시켜 버리는 경우가 허다해서 의욕을 잃는 전과자들이 많은 점이 문제다. 이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비슷하다.

정말 희귀하지만 일부러 들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개 큰 범죄(살인, 강간 등)를 저지른 사람이 은폐를 위해 작은 범죄(절도, 탈세 등)로 들어가거나, 신변이 위험해진 조직폭력배가 일부러 들어가는[7][8] 경우도 있었다. 또한 사채업자를 피해 도망치기 위해 일부러 징역 3~4개월 미만의 작은 범죄를 짓고 교도소에 수감되는 경우도 있다.

혹은 노숙인 보호 시설에서 안 받아주는 노숙자이거나 생활고, 혹은 가정불화 때문에 '차라리 교도소에 들어가면 먹을 것, 잘 곳, 입을 것은 주겠지.'하는 생각으로 일부러 형량 1년 미만 정도의 범죄를 저질러서 교도소로 들어가도록 의도한 사람도 없지는 않다.[9] 하지만 대부분은 들어간 뒤 후회하는데, 신체적 자유를 박탈 당한 채로 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가난하고 삶이 힘들어서 사회보다 교도소 생활이 더 낫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으므로[10] 사회진출에 실패하여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과와 자유 박탈을 감수하고 교도소에 들어가기 위해서 자잘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11]

그 외에도 소수이기는 하지만 인생 자체를 포기하고 수감→출소→재수감을 반복하며 교도소를 수십 년씩 들락거리는 별종이나[12], 반영구적인 격리가 반드시 필요한 악질 흉악범도 있으며, 심지어는 정말로 반성하고 뉘우치며 출소했지만 범죄 욕구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범죄를 저질러 잡혀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 특히 절도, 강도, 도박, 마약, 성폭력[13] 등이 범죄 욕구가 강한 대표적인 범죄 행위이다.

만 14세 미만일 경우 법적으로 감옥에 수감되지 않는데, 과거와 달리 아동의 지적 수준과 정신연령이 크게 상향 조정된 점을 고려, 만 10세에서 12세 정도로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심지어 만 7세까지 내리자거나 성인과 비슷하게 처리하자는 주장도 상당히 많다. 미성년 흉악범죄가 증가하면서 더더욱 이런 여론이 강해졌다.

교도소에는 작업장이 있어서 재소자들이 작업도 하고 직업훈련도 받는데, 이를 교도작업(출역)이라고 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먹이고 재우고 놀리느니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도 시킬 겸, 또 수감자의 갱생 겸 기술 전수 좀 해줘서 사회에 나가면 써먹으라는, 재소자에 대한 수혜를 목적으로 일을 시키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교도작업의 일차적인 의도는 징역형, 즉 강제 노역을 하는 형벌을 이행 중이라 강제로 일을 시키는 것이다. 과거 각급 학교에 들어가는 책걸상이 대표적인 교도작업품이었지만, 요즘은 단순한 가정용 도구나 사무용품 등 다양한 물건을 만든다. 하지만 말이 징역이지, 이들이 노역으로 발생시키는 부가가치에 비해 교도소 유지비용 및 노역중 재소자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더 많으므로, 어찌 보면 교도작업은 상징적 의미 및 직업 교육의 목적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교도소 내 비품이나 교도관의 근무복/기동복, 수감자 자신들이 입을 죄수복 등을 이들이 만들게 하여 비용 절감 효과를 조금이나마 거두려 한다. 게다가 같은 재소자라도, 노역을 죽어라고 하는 건 오히려 모범수들이고, 중죄인일수록 노역을 안 시키고 감시만 철저하게 한다. 즉, 형벌로서의 징역형은 교도소에 가두고 사회 복귀를 불허하는 것 자체인 셈이다. 특히 미국에서 이런 경향을 엿볼 수 있는데, 주마다 다르긴 하지만 장소에 따라 벌에 중점을 두어 죄인의 사회복귀를 늦추기 위해 법관들이 형기를 질질 끌려고 시도하는 일이 은근히 많다. 특급 중죄인들은 ADX 플로렌스 교도소 독방 같은 곳에 하루 23시간 가둬두는데, 노역은 자동면제에 모든 물품이 교도소에서 무료로 지급되지만 차라리 열악한 교도소에서 노역을 하면 했지, 아무도 거기 가려 들지 않는다.

상술한 교도작업으로 만든 물건을 판매하는 교도소 쇼핑몰도 있다. 교도소에서 교도작업을 거쳐 만든 물건을 파는데, 물건을 보고 그 물건을 제조하는 관할 교도소에 전화를 걸어서 주문하면 된다. 가격도 저렴하다.[14] 참고로 스펀지에서도 이 부분을 다룬 적이 있었다. 홍보관 쇼핑몰

영치금(領置金)이라 하여 그 금액 이내로 교도소 안에서 판매하는 물품을 구매하거나 교도소 밖의 물건을 반입할 수 있다. 돈을 내고 원하는 물건을 신청하면 교도관이 대신 구매해서 해당 수용자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다. 이로 인한 분쟁이 은근히 많다. 영치금이 많은 수용자가 조폭 등의 배경이 없는 경우, 조폭 똘마니 등에 의해 영치금을 갈취당하는 사례도 있다. 그래서 교도소에서는 1인당 1회 구매액과 수량에 한도를 정해두고 있으며, [15]구매신청서[16]에는 반드시 본인의 지문날인을 요구한다. 또한 공동구매가 금지되어 있고, 구매한 물품의 양도를 금하고 있으며, 시계 등 고가의 물품은 뒷면에 기계로 이름을 새겨서 주어 주기적인 검사를 통해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경우 압수하거나 처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단속은 구치소에선 유명무실하다. 수용자들이 협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치금이 많아서 넘쳐나는 수용자를 보통 '범털'이라 부르고, 말 그대로 빈털터리인 경우는 '개털'이라고 부른다. 개털이 범털의 빨래를 대신 해준다든지, 구매한 이불이나 침낭 등을 바느질하여 좋은 매트리스를 만들어주는 등의 일을 해주면, 범털은 개털인 수용자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대신 신청해주는 등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일도 많다. 또한 방에서 식사를 공동으로 함께 하고 설거지도 함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때 자신이 구매한 반찬 등을 혼자 먹기란 쉽지 않다. 그러려면 설거지도 자기가 먹은 것은 따로 해야 되는데 과연 가능할까? 여유시간에 개인이 구매한 간식을 혼자 먹는 행위가 공동생활에서 가능할까? 차라리 돈이 좀 여유가 있는 수용자가 수용거실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구매해주고, 자신은 방의 잡일 등에서 제외되는 등의 혜택을 받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다. 그래서 경비교도대 출신이나 교도관, 경험자(?) 등의 말에 따르면 구매신청서는 각 수용거실에서 대부분 정해놓는 배식반장 등이 일괄적으로 작성하고, 지문날인도 배식반장 등이 한꺼번에 날인하곤 한다. 그리고 담당자들도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다.

군대 문화에 의해 굴러가는 구치소가 아닌, 속칭 빵잽이[17]들이 즐비한 교도소에서는 '내건 내거, 네건 네거'가 철저하다. 범털의 숫자가 현저히 적은데다가, 빵잽이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소칙들을 잘 이용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일이지만 무죄 판결을 받을 수도 있고, 막 수감생활 맛을 보는 구치소는 군대 문화의 영향이 커서 재소자들끼리의 불합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반면 어릴 적부터 교도소에 들락날락해서 규범에 빠삭하고, 군대에 가지도 않았으며, 잃을 것도 없는 빵잽이들이 즐비한 교도소에선 불합리한 일은 상대적으로 적게 일어난다. 서로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2.4. 출소[편집]


형기 만료로 출소할 때 출소 시각은 일반적으로 새벽 5시이다. 원래 0시였지만 새벽 시간에 출소자가 돌아다니면 주민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민원 때문에 5시로 바뀌었다.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는 전자발찌 작업에 시간이 오래 걸려 오전 9시 정도에 출소한다.

출소 전날 밤에는 설레서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새벽 4시 무렵이 되면 교도관들이 출소 대상자를 깨우고 출소시킬 준비를 하는 소리에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린다고 한다. 새벽 5시가 되면 수용실 문이 덜컹 하고 열리는 소리가 꽤 커서 같은 수용실과 옆 수용실에서 자고 있던 수감자들이 대부분 깨어나 출소자에게 인사를 해 준다. 출소자는 영치금과 영치품을 돌려받고 죄수복에서 일반 옷으로 갈아입은 후 문을 열어 주는 교도관들과 함께 긴 복도와 수십 개의 철문을 지나 교도소 밖으로 나간다.

한국은 교도소에서 형기 만료 등으로 인하여 출소할 때, 피석방자가 귀가에 필요한 여비 또는 의류가 없을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126조에 의거하여 소장은 법무부장관이 정하는 범위에서 이를 지급하거나 빌려줄 수 있다. 수용자는 일반인에 비하여 가족 관계가 열악하고, 경제적으로 곤궁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많은 편이며, 형기를 마치거나 출소 사유가 생겨 사회로 나가는 피석방자에게 가족도 없고 차비도 없으며 당장의 끼니조차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으면 금세 절도재범의 유혹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률에 모든 출소자가 아닌, 꼭 필요한 피석방자에게 필요한 만큼의 여비나 의류 지급을 해주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밖에도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등과 협력하여 숙식제공, 긴급원호, 취업지원 등의 조치도 병행하고 있으며 집도 재산도 없고 취업도 불가능한 고령자에 한해서지만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는 것도 가능하다. 즉, 출소자의 재범을 막아 국민이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에서 살도록 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18]

교도소에서 출소하였을 때 곤란한 문제는 크게 5가지가 있다.

  1. 취업 문제: 기업체에서는 전과자가 해외여행에 제한이 많다는 걸[19] 이용해 '해외여행 결격 사유가 없어야 할 것'이라는 조항을 붙여 넣기 때문에 기업체 취업이 어렵다. 공무원의 경우, 국가정보원을 포함하여 일부 특정직 공무원 임용을 제외하고는 출소일을 기준으로 3년 후에는 전과 기록이 말소되는 제도가 있기 때문에, 기간만 지나면 응시에 제한이 없긴 하지만, 흔히 흉악범으로 간주되는 강력 범죄[20]는 제한이 심한 데다가 상습범이거나 죄질이 나쁘면 면접에서 걸러지는 경우가 많으니 역시 녹록하지 않다.
  2. 전과 문제: 전과가 말소될 경우, 누구도 법적 근거 없이 본인의 전과 기록을 열람할 수 없고 소문이 난다 쳐도 그 사람들이 밥먹여 주는 것도 아니며 몇 년 전 타인의 전과에 대해 한가하게 신경 쓸 할일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보충역 육군훈련소신병교육대 등지에서 꼭 몇 명은 전과자 공익들이 섞여있는데, 이들은 직접 자기 입으로 전과 내역을 일일이 서술한다. 다만 범죄의 죄질이 나쁜 경우, 이전 지인들과의 인간관계가 대거 끊기는 경우들도 종종 있다. 그 정도는 아니라도 인망을 잃는 경우는 허다하다.
  3. 결혼 문제: 결혼 시 배우자에게 본인의 전과 사실을 알리는 것이 원칙이고 해당 사유를 거짓말을 하면 이혼 및 혼인 취소 사유가 되기는 한다. 그러나 결혼 시 배우자가 전과 사실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고 해도 이혼 및 혼인 취소 소송 제기 여부, 전과 사실을 뒤늦게 알아도 혼인 관계 유지 여부는 전적으로 배우자 본인의 마음이며 친족법 및 상속법은 가이드라인도 안 된다. 그리고 이미 결혼한 상태에서 교도소로 가게 되면 대부분 재판상 이혼[21] 확정이다.
  4. 잘못된 인맥 문제: 그곳에서 만나는 인간들과 엮이는 문제 때문에 교도소에 가면 인생이 망할 가능성이 높다. 교도관들이나 판사가 해당 수감자의 인생을 망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님에도 교도소에 다녀온 사람들의 상당수가 인생이 망가지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동료 수감자가 "한탕"이니 "건수"니 하는 것으로 꼬드기거나 힘으로 공갈협박을 쳐서 재범을 저지르도록 유도하기도 하고 조직폭력배의 경우 자기 조직에 가담하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심지어 동료 수감자나 본인 스스로가 범죄를 저지르면서 범죄인지 인식을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본적인 상식이 결여되어 있고, 잘못된 판단을 가진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 이런 온갖 더러운 인간 군상과 엮이는 곳이 교도소이다.
  5. 사회 부적응 문제: 몇 년 이상 수감된 장기수들은 사회 복귀에 어려움을 껶는 경우가 많다.


2.5. 건물 구조[편집]


파일:교도소 운동장.jpg

일반적으로 위 사진처럼 벽으로 둘러싸인 운동장을 한가운데에 두고 ㄱ, ㄷ자 형태로 고층화된 건물이 늘어서 있다. 건물의 창문 배치도 정교하게 설치 되어 있는데 벽으로 막혀 있는 부분에만 창문이 달려 있어서 바깥 풍경을 전혀 볼 수 없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절대로 알 수 없게 만들어서 탈옥을 꿈도 꾸지 못하게 원천봉쇄 하려고 이런 구조로 만든 것이다. 교도소는 국가중요시설이므로 구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지 않다.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건물이라는 특징 때문에 건물 구조가 굉장히 특이하다. 1차로 주위의 언덕 능선을 휘감는 철조망이 있으며, 철조망 뒤로 참호가 있고, 2차로 일반적인 울타리, 3차로 주벽이라고 부르는 높고 두터운 담벼락이 있다. 이 '주벽'은 그 높이가 10m가 넘으며 주벽 곳곳에는 감시초소가 설치되어 있다. 감시초소는 주벽보다 훨씬 높으며, 주벽 내부에서 교도소 안을 모두 들여다 볼 수 있다. 그 안으로 다시 동작감지 센서지대→동작감지 울타리가 있으며, 그 안에 다시 여러 구역으로 분획된 담벼락이 있고, 그 안에 수용자들이 생활하는 사동(舍棟)이 있다.

여러 구역으로 분획된 담벼락엔 철문으로 된 통용문이 있는데, 과거에는 교정시설경비교도대가 그 곳에서 보초를 서며 문을 여닫곤 했으나, 교정시설경비교도대의 완전폐지로 현대에는 대부분이 지문 인식형의 전자식 자동문으로 바뀌었다. 이미 2000년에 건설된 여주교도소를 시작으로, 수형자들이 생활하는 방문까지 전자동화가 진행 중이다. 교도소의 상징은 높은 담벼락과 감시대, 그리고 그 감시대를 순찰하는 무장 경비원들인데, 교정시설경비교도대의 폐지로 현대에는 감시 카메라로 대체되어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다. 그 외 일부교정시설은 빌딩형태로 지어서 건물 자체가 주벽, 울타리 등의 기능을 하게 하기도 한다.

이런 복잡한 구조 때문에 처음 근무하는 직원들은 헤매기 일쑤라, 일부 교도소는 원칙적으로 소유를 금지하는 지도를[22] 암암리에 교도관들에게 주면서 길을 익히게 한다. 수형자의 경우는 아무리 오래 생활해도 사동→접견실→운동장→공장→사동 루트인 자신의 구역 외에는 갈 일 자체가 없어서, 단독 보행으로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여기에 새로 부임하는 보안과장은 항상 보안에 취약하다며 담벼락에 철조망을 추가로 올리라고 한다든지, 새로운 울타리나 철문을 만들라는 지시를 하게 되는데, 이게 누적되면 교도소는 그야말로 철조망과 철문으로 수두룩 빽빽해진다. 오래된 교도소의 경우 마다 열쇠가 다 달라서 직원들이 열쇠꾸러미를 가지고 다니는데, 보안상 열쇠에는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열쇠 꾸러미에는 아무 문도 열지 못하는 가짜 열쇠 몇 개를 섞어놓기도 한다. 열쇠 꾸러미가 수감자의 손에 들어갔을 경우 탈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오래 걸리게 만들어 수감자를 추적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이다.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클리셰이지만, 수형자는 이 열쇠꾸러미를 주워도 맞는 열쇠를 찾느라고 수십 개의 열쇠들을 열쇠구멍에 하나하나 넣어 보면서 헤매게 된다. 요즘 교도소의 경우, 교도소 입구부터 수용자 방까지의 7~8개 정도 설치된 문을 전부 지문인식기와 보안카드+비밀번호로 열고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복잡한 구조 때문에 화재에 취약할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교도소는 이 날 만한 물건을 절대 놔두지 않는다. 사무실의 경우에도 화기 배치 승인을 받아야 화기를 놓을 수 있다. 목조건물이나 나무로 된 제품이 없으며, 전부 다 불연재료로 구성되어 있다. 심지어 외국인보호관찰소에서 베개를 이용한 화재사건이 일어나자 베개마저 전부 회수하고 불연성 메모리폼으로 바꿔주었다. 취사장의 경우도 화재의 위험성 때문에 화기를 사용하지 않고, 압력으로 찌는 음식만 조리한다. 교도소 차원에서 소방 전담 직원을 두고 수시로 전 직원 소방훈련[23]을 하지만, 교도소에서 불이 잘 나지 않는 데는 그럴 만한 요소가 없다는 점이 더 크게 작용한다. 반대로 탈 것이 많은 산림 지역은, 아무리 전담 산불 감시요원들이 있어도 건조기에는 쉽게 화재가 난다.

교도소 구조 하면 가장 유명한 말이 벤담이 주장한 파놉티콘식 교도소인데, 건물을 원형으로 만든 뒤 벽을 따라 수감실을 두고, 중심에 관리실을 두어 한 사람의 교도관이 모든 방을 감시하는 구조이다. 일부 북유럽 국가의 경우, 인권차원의 목적으로 사동 하나가 작고 2인실 위주이거나, 1개 사동에 겨우 6명이 있는 구조의 호텔식으로 지어지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국가는 전주(電柱)형[24] 사동으로, 100명 정도 수용된 사동이 전주식(일정한 간격)으로 나열되어 있다. 즉 교도소 구조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권 의식과 예산문제인데, 한국은 그래도 중간은 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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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유는 간단하다. 교도소 구조를 아는 누군가가 탈옥을 도와서 재소자들을 방생해버리면 헬게이트 열리는 건 시간 문제기 때문. 특히 전시에 북한이 사회 혼란을 야기할 목적으로 이런 일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가 썼던 수기에 따르면 1968년 1·21 사태 후 교정당국은 무장공비의 침투에 대비해 전국 교도소에 흩어진 비전향수들을 광주교도소로 일괄 수용시킨 바 있다.[2] 그러나 구글 지도구글 어스는 검색이 되고 위성 사진도 숲으로 덮지 않는다.[3] 현재는 내비게이션에서 검색하면 근처 버스정류장이나 사거리가 검색된다.[4] 해당 교도소에 전화로 길을 물을 경우 해당 교도소에 재직중인 교도관 중 1명을 지정 장소에 파견해서 데려오기도 한다.[5] 구속적부심은 피의자가 청구하는 것이고, 기소를 하면 신분이 '피고인'으로 바뀐다. 구속적부심 청구권자가 아닌 것으로 바뀌어서 구속적부심이 기각되는 점을 노린 것이다. 형사소송법 개정을 거쳐 제214조의2 제4항 후단에 "심사청구후 피의자에 대하여 공소제기가 있는 경우에도 또한 같다"라는 단서가 생긴 이유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2002헌바104)과 함께 전격기소를 방지하기 위한 법 개정 때문이다.[6] 사형제가 사실상 폐지된 2010년대 이후부터는 사형이 절대적 무기징역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견해가 있다.[7] 조직폭력배들은 라이벌 조직에게 납치되어 살해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다른 나라 조폭 중에도 꽤 있다. 이와 관련된 작품으로 올드보이가 있는데, 한국 영화에서는 설정을 없애 표현이 안되지만, 원작 일본 만화에서는 그 사람 가두는 사설 감옥이 원래 주로 다른 조직에게 죽게 생긴 야쿠자가 자기가 돈내고 신청해서 몇개월 들어갔다가 나오는 곳으로 시작되었다는 설정이 대사로 명시되어 나온다. 남에 의해 의뢰되어 납치된 주인공이 예외적인 상황인 것.[8] 폭력조직에서 중학생 같은 애들을 일부러 조직원으로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징역 셔틀 용도이다. 두목이나 조직 내 고위 간부가 죄를 지었을 때 그 고위 인사 대신 징역을 사는 역할이다. 물론, 미성년자는 성인에 비해 형이 다소 가벼워진다는 맹점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는 것이다.[9] 해당 사례는 모 다큐에서 다뤄진 적이 있다.[10] 흉악범들이 수용되는 교도소(청송교도소 등)를 제외하고는 시설도 나쁘지 않고 규율도 관대한 편이다.[11] 미국에선 노숙자 중 일부가 겨울에만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형량 3~4개월 정도 범죄를 고의로 저지른다. 하지만 미국 교도소는 한국 교도소에 비해 훨씬 열악하여 분위기가 공포영화처럼 매우 몽환적이기 때문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12] 중범죄를 저지르면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욕을 먹고 절교를 당해 인간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취업을 하는 것도 매우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며, 아무리 철저하게 숨겨도 완벽한 과거세탁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소문이 퍼져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는다. 이렇게 사회에서 매장을 당한 좌절감 때문에 '어차피 망한 인생인데 그냥 막 살아야지' 하는 마음을 먹어 갱생을 거부하고 자신의 욕구대로 행동하면서 끊임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13] 성폭력은 아예 처벌을 받을 것을 감수하고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섹시한 여성과 성적 접촉을 할 수 있다면 징역 몇 개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14] 단, 국고사업인 만큼 현찰거래만 가능하며 신용카드, 체크카드의 사용은 불가능하다.[15] 예를 들어, 식품은 1회에 4만원어치만 구매가 가능하다[16] 학교 시험에 사용되는 OMR카드와 같은 종이이다. 펜으로 자신의 수번과 구매하고 싶은 물품의 고유 코드를 마킹하면 된다.[17] 수감 경험자를 뜻하는 은어.[18] 조두순이 대표적인데, 12년 복역 후 만기출소하여 사회로 복귀하였으나 극악 흉악범이라는 게 이미 수감중에 사회 전체에 퍼졌기 때문에 출소후에도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되어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하게 됐다. 결국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고 국가가 소유한 재산이 없고 취업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받아들였다.[19] 보통 국내 출국이 아닌 해외 입국 시 제한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미국[20] 살인, 강간, 강도, 유괴 및 납치 및 인신매매, 특수폭행, 상해죄, 방화죄, 협박죄, 공갈죄.[21] 이 경우 범죄를 저지른 배우자(=감방에 가있는 사람)가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극소수지만 합의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 사례는 안희정.[22] 교도관의 실수로 지도가 수형자의 손에 들어가면 탈옥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23] 화재같은 재난시 수감자들을 대피수용하는 대피사동을 위에 설명한 보안 구역 내에 준비해두는 경우도 많다.[24] Telephone Pole Design, 즉 전봇대처럼 일정하게 배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