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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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의 2023 시즌에 대한 내용은 김진성/선수 경력/2023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편집]
LG 트윈스 소속 우완 투수.
2. 선수 경력[편집]
3. 피칭 스타일[편집]
포심 패스트볼 최고 구속 149km/h에 평균은 140km/h 초중반의 평범한 구속을 가진 투수 같아 보이지만, 2회의 팔꿈치 수술 경력과 그로 인해 험난했던 수술 후 재활 과정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높은 악력과 강견으로 구속 이상으로 회전이 좋은 무거운 공을 던지며 구위로 찍어 누르는 돌직구형 투수이다. 여기에 포크볼을 주로 구사한다.
다양한 구종을 던질 수 있으나, LG 트윈스에서 뛰고 있는 2022년과 2023년엔 포크볼과 직구만을 활용하는 투피치 유형이다. NC 다이노스에서 뛰던 2014년[4] 부터 2021년까지 그의 구종구사율[5] 을 두 부분으로 분할하여 살펴보면 2014년에서 2016년까지는 직구의 비율이 50%를 넘고 슬라이더는 10% 중후반을 기록했으며 포크볼의 비율은 20% 초반 정도였다. 그러나 2017년부터 2021년까지는 직구의 비율은 40%, 슬라이더의 비율을 10% 내외로 낮추고 포크볼의 비율을 30%에서 40% 정도까지 끌어올렸다. LG 트윈스에서 뛰고 있는 2022년과 2023년을 보면 슬라이더는 거의 던지지 않고 직구는 50%, 포크볼은 40% 중반의 비율을 유지하며 투피치 유형의 피칭을 보여주고 있다 .
구속에 비해 구위가 좋은 패스트볼과 종적인 궤적을 가진 포크볼의 조합으로 탈삼진을 노리는 전형적인 파워피처로 실제로 통산 K/9가 9를 넘는다. 이 통산 K/9는 40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역대 5위의 기록이다. 그 위로는 오승환, 심창민, 구대성, 신철인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통산 500이닝 이상 던진 현역 투수 중에서 K/9 9를 넘긴 투수는 두 명밖에 없는데 역대 한국야구 최고의 마무리 오승환과 김진성이다. 김진성의 탈삼진을 잡는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위기상황에서 강한 면모도 갖추고 있어 마무리로 뛰었던 2014 시즌에는 유독 터프세이브를 많이 올렸던 바 있으며 무사 만루같은 상황에서 제일 먼저 불려나와서 얕은 플라이와 연속 삼진으로 선행주자를 지워버리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약점은 제구에 기복이 있다는 것과 멘탈. 팔 동작으로 강약조절을 잘 못하고 힘으로 찍어누르는 투구를 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제구가 높은 편이고, 컨디션에 따라 스플리터가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로 몰리는 날이면 필연적으로 큰 장타를 맞는다.[6] 이렇게 포크볼이 가운데로 몰려서 홈런을 맞는 모습은 2015~2016 시즌 김진성에게 NC 팬들이 가장 잘 기억하는 모습 중 하나일 정도다.[7]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놓은 상태에서는 나름대로 타자를 요리할 줄 아는 투수이지만 볼카운트가 불리할 때는 타자를 그대로 거르거나 볼넷을 허용하는 비율이 높다.
전체적으로 보면 풀릴 때에는 체감 상 아웃카운트의 태반이 삼진일 정도로 압도적인 투구를 보여줄 수 있는 선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결정적인 한방을 허용하는 타입이다. 대체로 삼진 아니면 장타를 허용하는 투수. 2020년 후반기 인터뷰에 따르면 '볼넷을 줄 바엔 차라리 안타를 주자'는 마음을 가질 때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런 자세가 플레이 스타일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연투 시 성적도 괜찮은 편이라 많은 경기에 등판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김진성은 선발 등판이 전무했던 투수 중 통산 다승 3위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8]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의 기량보다는 김경문 감독의 고질적 불펜 혹사를 우려하는 팬들이 대부분이었다. 비슷한 상황의 원종현과 함께 KILL 라인처럼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적잖이 샀고, 결국 2018 시즌 임창민, 원종현, 김진성이 모두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9] 하지만 2020 시즌 후반 투구 시 몸의 중심 이동을 미세하게 조정한 뒤 9월 이후 홈런을 내주지 않았고,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 6경기 6⅔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부활하는 모습을 보여 팀의 창단 첫 우승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4. 연도별 성적[편집]
5. 별명[편집]
- 2014시즌 팀의 마무리 투수로 뛰던 시절, 세이브상황이 아닐 때 등판했을 경우에는 성적이 상대적으로 안 좋은 편인 것이 부각되면서[10] 귀족 마무리라 불리기 시작하다, 계속해서 호투를 이어가자 신분이 상승해 황제 마무리라 불렸고, 종장엔 호투하는 날마다 황제 폐하라고 불렸다. 원래는 하고 싶은 일만 한다는 식의 부정적인 의미였으나, 호투를 거듭하며 이제는 그런 의미로 부르지 않고, 긍정적인 의미의 애칭이 되었다.[11] 선수 본인도 알 정도로 유명한 별명.# 황제라는 별명에 빗대어, 2014년 6월 최훈 돌직구 101화에서 황제 마무리로 그려졌다.
- 투수치곤 약한 멘탈과 내성적인 성격 탓에 마무리에서 중간계투로 보직을 옮긴 2015 시즌 이후부터는 특히 부진할 때 찐따성, 찐따형으로 불렸다. 역시 비하의 의미보단 팬들의 애칭에 가까운 별명.
- 2023시즌 위기 상황 혹은 불펜이 부족한 상황마다 등판해서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모습에 킹진성이라고 불린다. 실제로도 2점 초반대의 평균자책점과 1이 안되는 WHIP를 자랑하며 킹진성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A]
- 나이가 많아 그런지 노인이라는 별명으로 많이 불리고 있다. 멀티이닝을 던지거나 연투를 하는 날에는 노인 학대를 한다는 드립이 빗발친다. 실제로 2023시즌 투수 중 가장 많은 경기에 등판하였다. 많은 등판과 관련된 별명으로는 또진성이 있다.
6. 말말말[편집]
야구란 제 인생 같아요. 야구가 없었으면 할아버지와의 추억도 없었을 것이고, 야구가 없었다면 제 가족도 못 만났을 것이고, 야구가 없었다면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이나 이렇게 인터뷰하는 자리도 없었겠죠. 제 삶에 있어서 야구가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줬어요. 그래서 야구는 제 인생 그 자체입니다.
2020년 12월, 창단 첫 통합우승의 주역으로서 가진 인터뷰에서 '김진성에게 야구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내가 1군에 자리잡은 건 전혀 아니다. 나는 아직도 간절하게 야구를 한다. 주변에서는 ‘그래도 1군 선수인데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운동을 하느냐’고 묻는다. 솔직히 그런 얘기를 해주시는 분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지금 이 시간에도 좋은 기량을 가진 후배들이 어디선가 공을 던지고 있다는 거다. ‘내 자리’라는 것은 원래 프로에 없다. 젊고 어린 투수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지금도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 나는 ‘여유 있는’ 선수가 아니다. 그런 선수도 없다고 보지만 나는 특히 더 부족한 선수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어느덧 NC에서 5년을 보냈는데 이제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냐는 질문에
시련을 느낄 때마다 욕심을 버리고 그 자리에 간절함을 채운다.
--2017년 8년만의 순수 구원 10승 달성 후 인터뷰에서
야구 훈련을 할 때 만큼은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간절하게 임해야 좋은 결과가 와요.‘야구를 잘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기량을 발전시킬 수 있어요. 2군에 있을 때 젊은 선수들을 지켜볼 기회가 많았는데 “야구 안 된다",“못 하겠다”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그럴 때 제가 “너 훈련할 때 죽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해봤냐. 스스로한테 부끄럽지 않고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냐”라고 물어보니 한 명도 대답을 못 하더라고요. 열심히 하면 분명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해줬습니다. 후배들이 본인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간절하게 훈련해서 자신의 기량을 더욱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쉽게 포기하지 말고요.
2021년 1월, 후배나 동료 선수들에게 응원과 조언 한마디를 해보자는 말에
7. 여담[편집]
7.1. 야구 관련[편집]
- 선수 생활이 매우 순탄하지 않았다. 사실 인생 자체가 순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조부모님 아래에서 성장했다. 조부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하여 서울고에서 2학년까지 활약하다 본인이 따르던 코치를 따라 성남서고로 전학을 갔다. 전학 후 팔꿈치 부상을 입고 아예 등판을 하지 못했지만 2004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의 2차 6순위(전체 42순위) 지명을 받았다. 그러나 진상봉과 민경삼으로부터 팔 부상이 있으니까 계약금 없이 계약하겠다며 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12] 이럴 경우에 선수협에 도움을 요청하면 되지만 그럴 생각조차 못했다고 한다. [13] 하지만 프로에 와서도 부상으로 첫 방출을 겪었다. [14] 2010년 넥센 히어로즈의 신고선수로 입단했지만 또다시 부상으로 방출되었다. NC 다이노스 트라이아웃으로 입단 후 단디 4 필승조 일원으로서 활약했지만 2021년의 부진으로 임창민과 방출되었다. 다른 구단에 기회를 달라고 요청 후 LG 트윈스에 입단하면서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2023시즌 29년 만의 정규시즌 우승의 자타공인 1등 공신으로 커리어하이를 다시 써 상술한 인간승리의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그의 야구는 현재 진행형이다.
- 2013년 시즌 부담감에 시달려 대인기피증까지 겪은 적이 있는데, 2014년에 팀에 합류한 선배 박명환과 손민한에게 조언을 받으며 극복했다.[15][16] 그래서인지 인터뷰마다 본받고 싶은 투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박명환과 손민한을 언급하곤 했다. 2020년 후반기 맹활약한 비결 역시 손민한과 김수경 코치의 세부적인 코칭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인터뷰 한 적이 있다.[17]
- 본인 스스로도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로 구단 관계자나 코치들 모두가 인정하는 노력파다. 김경문 전 감독도 워낙 열심히 하는 성실한 선수라 기회를 안 줄 수 없다고 했을 정도.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계속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다고 말했다. 다른 선수들의 말에 의하면 아침 8시, 9시에 나와서 운동을 하고 야구장에서 준비하고 연습하는 건 1등이라고 한다. 22년 인터뷰에 의하면 본인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유형의 선수이기 때문에 더 성실히 훈련하는 것이라고.[18]
- 2015년 부상당한 그의 재활을 위해 구단에서 고압산소치료기란 의료기기를 들여왔다. 일명 ‘산소탱크’로 불리는 이 기계로 산소를 쐬면 적혈구가 증가하고 백혈구가 감소하여 피로 회복이 빨라지는 효과가 있어서 선수들에게 인기폭발이라고 한다. 본의 아니게 동료들에게 큰 선물을 안긴 셈이며 김진성 본인도 이 기계 덕분에 복귀가 2주 정도 빨라졌다고 한다.
- 잠실 야구장에서 상당히 강한데 2014~2019년 사이 잠실에서의 평균자책점이 2.30이다. 특히 2016 시즌에는 무려 0점대일 정도다. 잠실 야구장이 외야가 넓고 투수 친화적인 것과 김진성이 뜬공형 투수인 것, 구위로 윽박지르는 스타일이 합쳐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듯 하다. 그리고 2021년 12월 잠실 야구장을 쓰는 구단인 LG 트윈스에 입단하게 되었는데, 잠실 덕을 본건지 2022시즌부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 LG 트윈스 이적 이후 새로운 야구 인생을 써내려가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22시즌 초반 필승조 이정용과 함께 엄청난 이닝수를 소화하며 노예라는 평과 함께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선수였는데, 시즌 중반을 기점으로 위기상황, 혹은 연장전까지 끌고 나가야 하는 동점 상황 등에 등판[19] 하며 제 역할을 충실히 해줬다.[20] 현재는 필승조와 LG 불펜의 믿을맨 그 자체이다.
- 선수 시절의 황혼기에 인연이 닿았지만 NC에서 방출되어 어려울 때 자신을 받아준 LG 트윈스에 어마어마한 충성도와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9개 구단에 직접 전화를 돌리며 입단 테스트라도 보게 해달라고 통사정할 때 차명석 단장의 "네가 김진성인데 테스트는 무슨 테스트냐. 오면 그냥 오는 거지"라는 말 한마디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격했다고 한다.# 2022년에 LG와 연봉 1억[21] 에 계약했을 때 옵션이라도 좀 넣지 그랬냐는 주위에서 농반진반으로 한 이야기에 LG에서 뛰는 것 자체가 옵션이라고 답했고 지금은 이름을 바꾸고 비공개로 돌렸지만 LG 입단 후 개설한 본인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도 lg.no42, 이름은 I ♡ LG였다.[22] 팀이 승리하고 돌아갈 때 듣는 노래도 LG 트윈스의 대표 응원가인 서울의 아리아라고 인터뷰[23] 했을 정도다. 그에 걸맞게 LG 팬들도 커피차를 보내주는 등 김진성에게 큰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
7.2. 야구 외[편집]
- 야구부장의 10개 구단의 착한 선수를 소개해주는 영상에서 나온 NC 관계자에 따르면 굉장히 착하고 멋진 남자의 표본이라고 한다. 성격이 내성적인 편인데, 29살에 처음 1군에 데뷔한 날 스타 선수들을 보면 괜히 주눅이 들어 피해다녔다고 한다. 또 2013년 양의지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역전패했을 때 내가 그렇게 열심히 해봤는데 1군의 벽이 너무 높구나 하는 생각에 새벽 3시까지 울었다 밝혔고, 2020년 연봉 협상이 끝난 뒤에도 방에서 너무 억울한 마음에 울었다고 한다. 2021년 12월 LG 입단 테스트를 위해 차명석 단장과 전화통화를 한 후에도 눈물이 났다고 한다. 2023년 한국시리즈 우승 확정 후에도 펑펑 울었다고..
- 야구를 안 했으면 무슨 일을 했을 것 같냐는 질문에 미술을 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초등학교 때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탄 적도 있고, 성격이 섬세한 편이라 어릴 때는 야구보다 미술을 좋아했다고 한다.
- 꾸준히 사회공헌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7년부터 모교인 성남중 후배들에게 글러브, 언더셔츠, 배팅 장갑 등 600만원 상당의 야구용품들을 매년 기부하고 있으며[25] 2020년 5월에는 코로나19 창원지역 지정병원인 마산의료원 의료진 170명에게 샌드위치와 음료를 기부했고 12월에는 미혼모자 보호시설에 기저귀와 아기용 물티슈를 기부했다.[26] 2021년 1월에는 마산의료원 의료진에게 다시 한번 빵과 우유를 기부했다.#
- 2015 시즌이 끝난 후 결혼했고 아들 둘이 있다. 둘째 아들은 그동안 공개된 적이 없었는데 2021 시즌 다이노스 멤버십 홍보촬영을 하면서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날 첫째 김민찬 군의 돋보이는 외모가 NC 팬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스톡킹에서 밝히길 부모님이 이혼하고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고 가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야구선수로 성공하자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구단에 항의전화를 하고, 구단 홈페이지에 욕설과 음해글을 게시하고 야구를 못 하게 하겠다고 면전에서 협박도 했었다고...[27] 아직도 용서가 안되고 부모 양측 모두 현재까지도 남남으로 지낸다고 한다.[28] 이런 아픈 가정사와 힘겨운 무명시기를 딛고 성공한 뒷이야기가 공개되면서 많은 야구팬들에게 인간 승리라는 찬사를 받았다.
- 구단 유튜브 컨텐츠에서 가장 유치한 선수를 뽑을 때 이우찬과 함께 투표 공동 1위를 할 정도로 후배들에게 유치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22시즌에는 아침마다 이우찬에게 벨튀(...)를 했다고 한다. 또 백승현이 김진성을 놀리는 게 경기장 루틴이라고 하며 최성훈과 이우찬이 페리카나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등[29] 후배들에게 유난히 놀림받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 LG 트윈스의 외인 투수 애덤 플럿코에게 깍듯한 대접을 받는 동시에 놀림을 받고 있다. 플럿코는 자신이 항상 김진성을 위해 바닥을 닦는다며, 김진성이 항상 ‘앵그리맨’이다. 라고 연신 강조한 끝에 구단 유튜브 카메라 앞에서 김진성을 쩔쩔매게 만들었다.[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