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엔리케/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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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루이스 엔리케의 지도자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FC 바르셀로나 B[편집]


2004년 은퇴 후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등 축구와는 거리를 두고 개인 생활을 보내다가 2007년 6월 바르셀로나 B팀의 감독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마침 지도자 수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지도자길을 택한 펩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 B의 감독직을 원해 임명이 취소되었다.[1]

2008년 6월 바르셀로나 1군감독으로 임명된 펩 과르디올라의 후임으로 원래 예정되어 있던 FC 바르셀로나 B의 감독을 맡게 된다. 2008-09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팀과의 연장 계약을 맺었다. 이후 2009-10 시즌 3부 리그에서 2위를 차지해 11년만에 팀의 2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으며, 2010-11 시즌에는 2부 리그에서도 3위를 차지하며 팀 창단 이후 가장 높은 성적을 올렸다.[2]


3. AS 로마[편집]


시즌 종료 이후 아직 구단과 2년 계약 기간이 남아있던 상황에서 구단과의 결별을 선언했으며, 그 해 6월 AS 로마로 팀을 옮기는 데 합의했다.[3] 계약 조건은 160만 유로의 연봉과 2년의 계약 기간이며, 자신을 보좌할 수석코치로 이반 데 라 페냐를 임명했다.[4] 그러나 시즌 초반 유로파 리그에서 예선 탈락을 하면서 안좋은 출발을 보인 루이스 엔리케는, AS 로마에 바르셀로나식 4-3-3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성적이 부진하자 12시즌 종료 이후 자진 사임했다. 후임 감독으로는 2-8 포메이션의 장인 즈데넥 제만이 취임했다. 로마에서의 실패는 당시 열병처럼 불었던 바르셀로나식 티키타카를 적용하는데 대한 실패였다. 엔리케는 덕분에 감독수업을 제대로 하게 되고 로마는 망했어요


4. RC 셀타 데 비고[편집]


이후 한 시즌을 야인으로 보내다 13-14 시즌부터 전시즌 극적으로 라 리가 잔류에 성공한 셀타 비고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계약기간은 2년으로 감독으로서는 라 리가 데뷔하며 바르셀로나 B시절 호흡을 맞췄던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을 불러 모으며 명예회복을 꾀하고 있는데 시즌 시작 직전 건강 문제로 사임한 티토 빌라노바 감독의 후임으로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갈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루이스 엔리케를 믿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을 데려온 셀타 비고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 하지만 단지 루머였는지 바르셀로나 감독으론 타타 마르티노가 영입됐다.

그렇게 맡은 셀타 비고 감독 첫 시즌은 리그 9위를 기록. 그동안 강등권을 겨우 벗어나는 수준이었던 팀을 생각하면 괜찮은 성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5. FC 바르셀로나[편집]



5.1. 2014-15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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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우승 더블을 기록한 마르티노 감독이 사임하자 2014년 5월 20일 바르셀로나 새 감독으로 2년 계약기간에 선임되었다. 시즌 초반 리그에서 연승 행진을 달리며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엘 클라시코 패배, 끊임없는 로테이션 때문에 나타나는 일정하지 못한 경기력으로 비판 받았다. 특히 팀의 에이스인 리오넬 메시와 훈련 도중 다퉜다는 루머가 돌면서 메시의 이적설까지 파생되는 등 바람잘 날 없는 바르셀로나 1년차를 보내고 있었으나...

2015년 들어 무시무시한 성적을 내고 있다. 2015년 첫 경기였던 풋볼 지니어스레알 소시에다드전에서 0:1로 패한 이후 승률이 무려 28승 1무 1패, 승률 93.3%라는 정신나간 성적을 거둔 것.[5] 비판 받던 로테이션 문제는 전화위복으로 돌아와 시즌 막바지에도 큰 전력 누수 없이 트레블에 도전하는 힘이 되고 있으며, 경기력 문제도 바르셀로나 특유의 미드필더 플레이를 간소화한 뒤 MSN의 남미 3대장 트리오의 자유도를 극대화함으로써 성적을 내고 있다.[6] 친구인 펩 과르디올라와의 재회로 주목을 받은 챔피언스 리그 4강 1차전에서는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는 운영을 보이며[7] 3:0으로 완승, 전세계를 경악에 빠트렸다.[8]

리그에서 우승을 확정지었으며 코파 델 레이도 우승을 확정지었다. 챔스 4강 2차전 뮌헨 원정에서는 2-3으로 패배했으나, 4강 1차전 캄프 누 홈에서 3-0으로 뮌헨을 이겼었기 때문에 총합 스코어 5-3으로 챔스 결승전에 올라갔다. 결승전에서 유벤투스를 꺾으면 트레블 금자탑을 쌓게 된다. 바르셀로나는 2008/09시즌 챔피언스리그, 라리가, 코파 델 레이를 우승하여 이미 트레블 全(6)관왕을 기록한 적이 있는데 만일 이번에 우승하면 세계 최초로 트레블 2회를 달성하게 된다.

5월 17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37라운드 원정경기에서 리오넬 메시의 결승골로 1:0 승리하며 팀의 23번째이자 자신의 감독 커리어 첫 라리가 우승을 안게 되었다.

그리고 5월 30일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3:1로 승리하며 더블을 달성했다. 이후 6월 7일 유벤투스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역시 3:1로 승리하며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부임한 첫 해에 트레블을 기록하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5.2. 2015-16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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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 시즌에는 프리 시즌부터 영 좋지 않더니, 초반 슈퍼컵 3연전에서 9실점이나 하는 졸전을 벌이며 다시 루광래로 평가가 회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시즌 초 메시가 부상을 당하면서 이젠 진짜 노답인가, 메시빨 없는 루초의 본모습을 볼 수 있는가 했는데... 메시 이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는 통에 제대로 된 베스트 멤버를 꾸리기 힘든 상황 속에도 꾸역꾸역 승점을 쌓고 있다. 메시가 없음에도 수아레즈와 네이마르가 환상의 호흡을 보이며 리그에서 선두를 내달린다. 그리고 리가 12라운드 엘 클라시코에서 위기에 놓인 베니테즈의 중원이 실종된 레알 마드리드를 4:0으로 완파하며 슬슬 명장으로 인정 받아도 될 만한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진 3인방을 갖고 있지만, 선수빨도 아무나 받는 게 아님을 증명하는 중.

2016년 2월 초인 현재 바르셀로나에서의 100경기째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99경기의 기록을 보자면 79승 11무 9패 골기록은 280득점 72실점에 클린시트 경기만 절반에 가까운 50경기로, 대충 헤아려봐도 승률 80%의 미치광이 기록이다!!! 거기다 코파 델 레이에서 발렌시아를 상대로 거둔 대승으로 27경기 무패 기록을 달성했는데 이는 크루이프 시절의 드림팀 체제당시 기록과 더불어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다 연속 무패 공동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참고로 1위는 펩 과르디올라 체제에서의 28경기 무패로 다음 레반테 전의 승패 여부에 따라 잘만하면 기록 경신도 가능한 상황. 그리고 레반테 원정에서 레반테에 가패당하는 [9] 상황에서도 기어이 2:0으로 승리(?!)하며 28경기 연속 무패 및 100경기 승률 80%를 찍었다. 팀 역대 2위 기록이 엘레니오 에레라의 73%이고,[10][11] 라이벌팀 레알 마드리드의 역대 최고 기록이 카를로 안첼로티의 78%인데[12] 이조차도 뛰어넘은 승률.

2016년 4월 초 레알 마드리드와의 엘 클라시코를 앞둔 현재 39경기 연속 무패라는 기록을 세우고있다. 엘 클라시코에서 승리하면 1977-1978시즌 노팅엄 포레스트가 기록한 40경기 무패 기록과 타이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엘 클라시코에서 1:2로 패배했고,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리그 경기에서도 졸전을 보이면서 우려가 커지다가 결국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챔스 8강전에서는 전술도, 플랜B도 없이 MSN만 주야장천 돌리다가 탈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수단이 A매치와 클럽 월드컵으로 인해 체력이 바닥이었다고 할지언정 지친 선수들을 미친듯이 돌렸던 게 누구인지 생각하면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보인다. [13]


5.3. 2016-17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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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 시즌 들어 이적 시장에서 파코 알카세르. 안드레 고메스, 사뮈엘 움티티 등 각 포지션 별로 대대적인 로테이션 자원 영입에 성공하며 지난 시즌의 후반기에 나타난 주전 멤버들의 체력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즌이 시작과 동시에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의 우승컵을 차지하며 상당히 좋은 스타트를 끊었으나 리그 3라운드 알라베스전에서 A매치 바이러스와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를 너무도 신경쓴 나머지 제대로 짜맞춰지지도 않은 스쿼드로 승격팀을 상대 했다가 홈에서 그야말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리그 7라운드가 끝난 현재까지 조별 리그에서의 패배는 아직 없으나 루이스 수아레스네이마르가 기복있는 모습을 보였고 테어 슈테겐 역시 브라보가 떠난 자리를 완벽히 채우지 못하며 셀타 원정에서 4:3의 대패를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 한번 경험했다. 이니에스타나 마스체라노와 같은 주전 선수들의 부상도 있었고 현재는 메시나 움티티, 라키티치 등 각 포메이션의 주요 선수들이 부상으로 부재하고 있다곤 하나 시즌 초반 4승 1무 2패로 바르셀로나 치곤 다소 부진[14]하고 있어 걱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례적인 3-4-3 포메이션을 쓰거나 이번 시즌 투란의 폼이 살아나면서 용별술 등으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모습도 보여줬지만 로테이션 멤버를 잘 영입한 만큼 각 포지션 별 특성과 선수 특성을 잘 파악해 선발 출전을 시켜야하는데 철저히 감독의 책임인 이 부분에 있어서 시즌 초반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이 점에 있어선 지난 시즌 역시 로테이션을 적절히 잘 써가면서 얇고 체력 안배가 어려운 스쿼드에서도 더블을 이룩해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아직은 더 지켜봐야하는 부분이다.

시즌 전반기의 리그에서의 지지부진한 성적과 계속해서 삐걱대는 스쿼드의 불안함 때문인지 경질설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 물론 당장 경질 해봤자 클럽에 득이 될 것도 없을 뿐더러 부임 이후 트레블과 더블을 달성하는 성과가 있기에 아직은 더 지켜봐야하지만 겨울 이적 시장과 맞물려 재계약에 관련되어 구단과 꽤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지난 시즌 주전 선수들이 혹사로 인해 2년 연속 트레블 달성을 눈앞에서 놓쳤던 탓인지 챔피언스 리그에 상당히 취중된 모습과 새로이 기대를 품고 영입해온 알카세르와 고메스의 부진, 기존 주전들의 노쇠화로 인한 폼 저하 등등 세대교체의 과도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바르셀로나에게 나타나는 문제점들이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으나 제대로 해결하고 있지 못하는 모습에 팬덤에게 상당히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포메이션 변화라든지 내부에서 약간의 변화를 취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주요 선수들에게 의지하는 전술때문인지 이렇다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비판은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파리 생제르망에게 4-0 대패를 당하자 정점에 달했다. 결국 2017년 3월 2일 스포르팅 히혼과의 경기 후 사임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캄프 누에서 열린 16강 2차전에서 3-4-3 전술을 들고 나와 파리를 6-1로 대파, 무전술이라는 별명이 쑥 들어가버리게 만들었다.[15]

그리고 쓰리백 약발도 몇주만에 다 달아 리그에서도 삽을 푸고 챔스 8강 1차전에서도 유벤투스에게 3-0으로 털렸다. 역시 무전술이 맞ㅇ...

놀랍게도 이어지는 엘 클라시코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승리했다. 이 경기에선 마르셀루를 봉쇄하는 전술이 제대로 먹혔다.여러모로 명장인지 운장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감독이다.

위의 엘 클라시코에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16-17시즌은 챔피언스리그 우승실패와 더불어 라리가 우승마저 실패하였다. 뿐만 아니라 시즌 중후반엔 15-16시즌 때도 돌았던 보드진과의, 선수들과의 불화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엔리케는 이에 대해 휴식이 필요하다 말했고, 이에 사임을 결정하면서 이는 엔리케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무관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으나, 다행히 코파 델 레이를 우승하여 그나마 유종의 미를 거두고 감독직을 마무리하였다. Gràcies Lucho!


5.4. 바르셀로나에서의 스타일 및 평가[편집]


공격진에 MSN을 배치한 후에 "아브라카다브라!"라고 외칩니다.

루이스 엔리케[16]


잘 풀릴 때는 로테왕 갓루초, 안 풀릴 때는 선수빨 루광래.

2014-15 시즌 바르사 감독 부임 첫 시즌만에 트레블이라는 대업을 달성한 엔리케는 당시 친구이기도 한 펩 과르디올라 감독 시절 바르셀로나의 위엄을 재현하며 일각에선 세계 최고의 감독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시즌이 지날수록 평가가 하락하며 2016-17 시즌 종료 이후엔 결국 바르셀로나를 떠나게 된다. 그래도 데뷔 시즌은 트레블, 다음 시즌은 더블, 그다음 시즌은 우승컵을 하나 들어올리며 무관은 귀신같이 피해갔다.

그래서 여러가지로 꾸레들에겐 애증을 동시에 준 감독이었으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나 장단점이 매우 갈리는 편이었다. 비판측은 본인의 고집과 무전술[17], 유스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하고 쓰는 선수만 쓰는 인색한 기용 문제[18], 부진한 경우가 많았던 시즌 초반기 페이스 등을 비판하는 편이었다. 이에 옹호측은 슬로우 스타터스런 시즌 중후반기의 미친 성적과 2010년대 바르셀로나&유럽축구 최초의 2번째 트레블처럼 전성기를 이끌고, 팬들에게 아름다운 기적도 보여주고, 필요할땐 팀을 위해 보드진과 맞짱도 뜰 줄 아는 깡 등을 고려하면 그가 최고는 아니었음에도 최악 역시 아니었던 나름 중상위권 감독이란 의견을 표하기도 한다. 특히 이는 루이스 엔리케 이후 바르셀로나를 맡은 이 한동안 원체 안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엔리케가 재평가 받은 탓도 있을 것이다. 물론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 바르셀 암흑기의 시작 비스무리한 지점이 엔리케였다고 보기도 한다.

절친인 이 편집증적일 정도로 미드필드에서 경기 주도권을 잡고 상대 빈틈을 노리며 공격을 외치는 것과는 달리, 적당히 실리적으로 운영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편이었다. 미드필드의 장악력을 비롯해서 전체적인 팀 완성도는 떨어졌지만, 유연하게 변화에 대처하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수준. 이런 면모에 더해 선수 시절 본인 역시 훌륭한 멀티 자원이었던 점 때문인지 여러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에 대한 선호가 높은 편이었다. 백승호가 1군 훈련에 소집되어서 훈련할 때도 멀티성을 강화하기 위한 훈련을 했다고 알려져있다.

대개 바르사에서의 루초를 평가할 때 화두가 되는 건 다음과 같다.


5.4.1. 로테이션[편집]


매니징 측면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로테이션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베니테스 수준으로 마구마구 베스트 11을 갈아대는 정도는 아니지만, 매 경기 조금씩 선수 구성을 바꾸면서 선수들의 체력, 경기 감각을 관리한다. 피지컬 강화를 중시하는 트레이닝 세션과 맞물려 비교적 얇은 스쿼드임에도 그럭저럭 시즌을 꾸려가는 데에 도움을 주는 듯. 그의 바르셀로나가 시즌 초반보다는 중반이나 후반에 더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특히나 트레블을 이끈 2014/15 시즌의 경우, 장기 부상 중이던 토마스 베르마엘렌이 복귀하면서 시즌 중후반에도 풀 스쿼드를 가동할 수 있었다. 챔피언스 리그 4강 상대였던 전 바르셀로나 감독인 펩 과르디올라의 뮌헨이 부상자로 인하여 최정예 멤버로 경기를 하기 어려웠던 부분과는 다소 비교가 되는 부분. 라인업에 주전 선수를 복붙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휴식을 주는 로테이션 때문에 트레블, 더블 등의 성적을 거뒀다는 평가가 많아 엔리케 하면 로테이션부터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단점이라던가 의문도 많다. 일단 첫째로 타이밍에 대해서, 굳이 로테이션을 돌렸어야 했는가, 왜 돌리지 않았는가 싶은 때가 있다. 전자는 주로 시즌 초반에 무리하게 로테이션을 강행하다 승격팀이나 하위팀에게 고춧가루를 맞는 경우. 아직 손발이 맞지 않고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지 못한 상황에서 단순히 체력 안배를 위해 로테이션을 돌리다 두들겨 맞는 경우가 제법 됐다. 2016-17 시즌 알라베스전은 승격팀을 상대로 얻어맞은데다 전반전에 점수가 밀리자 후반에 결국 메시, 이니에스타를 투입해 로테이션은 로테이션대로 무용지물이고 승점도 까먹는 이중고를 겪었다.

후자는 후반기에 주로 보이는데 초반에 적당히 휴식을 부여하는 것과 달리 후반기로 갈수록 주전 선수들을 미친듯이 굴려대는 경향이 있다. 이걸로 폼이 작살난 게 이반 라키티치. 2년 동안 51-57경기를 뛰며 혹사당했고 그 여파로 3년차에 무너져 4-3-3의 엔진과도 같던 라키티치의 부진은 2016-17 시즌 성적에 큰 영향을 줬다.

비단 라키티치 뿐만 아니라 MSN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은 상황에서 클럽 월드컵 이후 지옥의 일정 속에 A매치까지 겹쳤음에도 휴식을 주지 않아 결국 챔스도 날리고 리그 성적도 하락하곤 했다. 2015-16 시즌은 간신히 리그 우승을 지켜냈지만 2016-17 시즌은 결국 챔스는 챔스대로 버리고 리그도 내주며 코파 델 레이 하나만 건지면서 시즌을 종치고 말았다. 특히 후자는 유벤투스에게 1차전을 내줬으면서 챔스를 코앞에 둔 주말 리그 홈 경기에 메시, 수아레스를 투입했던 바 있다.


5.4.2. 선수 기용[편집]


세 얼간이가 저무는 해가 될 것이라는 1년차 때의 예상과 달리 공미에 플레이 메이커였던 이반 라키티치를 성공적으로 하드워커 중앙 미드필더로 변화시켰다. 그 덕에 차비 에르난데스와의 로테이션이 가능해졌고 피보테 역할도 가능해 세르지오 부스케츠와의 교대도 가능했다. 하피냐 알칸타라를 잘 기용하면서 중원에 힘이 생겼다.

세르지 로베르토는 멀티 플레이어로서 바르사가 가장 시급한 우풀백과 미들 자리를 훌륭하게 대체해줬고 그 덕에 레전드인 다니 아우베스를 내보내고도 그 여파가 덜했으며 사무엘 움티티는 당시로서 적은 금액은 아니었으나 유망주나 다름없는 선수를 데려와서 때마침 부진한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대체 임무를 완수했으니 이들은 충분히 엔리케의 유산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리빌딩이 지지부진했고 이적 시장 징계 후 호구딜이 문제였다. 징계를 받은 거야 본인의 잘못이 아니니 문제 삼을 이유가 없으나 그 기간동안 데려온 선수가 문제다. 제레미 마티유는 암 그 자체고 토마스 베르마엘렌은 유리몸(심지어 이적할 때 부상당해있었다), 알레시 비달은 풀백이든 윙이든 땜빵으로 적절히 사용하지 못했고 아르다 투란이야 오히려 말년에 그럭저럭 잘 써먹었지만 윙어인 선수를 괜히 미드필더로 써먹다가 (그것도 징계로 한동안 경기도 못 뛰었는데) 구멍이라고 욕받이로 만든 바 있다.

2016-17 시즌 안드레 고메스는 더 말할 필요 없는 최악의 기용. 바이백하며 데려온 유망주에 실력도 더 나았던 데니스 수아레스를 두고 앙고를 주야장천 기용해 얼빠라는 비아냥까지 들었을 정도. 파코 알카세르무니르 엘아다디를 임대보내며 데려왔으나 경기력이 더 구렸다.

B팀 선수를 기용하는 방식도 이상해서 무니르랑 산드로 라미레스 중 무니르를 택했지만 산드로는 말라가에서 두 자릿 수 골을 넣으며 활약했다. 알렉스 그리말도는 왼쪽 풀백에서 충분히 재능이 있는데도 기용되지 않자 결국 벤피카로 떠나 거기서 주전 풀백으로 활약한 반면 팀에 남은 아드리아누 코헤이아조르디 알바의 백업을 보기도 턱없이 부족한 선수였음을 감안하면 완전 호구딜. 아드리아누를 내보내고 데려온 뤼카 디뉴도 스타일상 공격적인 풀백은 아닌데다 그리말도와 비교하는데도 한계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미래는 몰라도 현재로서는 대 실책이다.

세르지 삼페르는 부스케츠의 후계자 소리를 듣는데도 임대를 전전하는 반면 B팀에서도 써먹지 못해 방출되는 굼바우를 부스케츠 롤로 써먹고 선수 기용에 대해서는 비판할 게 천지다.

정리해보면 백업 선수 기용에 대해 의문이 많이 남고 결과적으로 엔리케 부임 기간 동안 유스나 2군 쪽에서 손해를 너무 봤고 이는 기존에 정해져있던 주전을 제외한 엔리케가 맡은 선수들 중에 로베르토와 움티티를 제외하곤 죄다 실패 투성이란 소리다. 발베르데 부임 후 엔리케가 영입한 선수들을 어떻게든 살려내려고 하고 실익도 있으나 그게 엔리케를 쉴드 칠 여건은 되지 않는다.

이후 데수지나 샴페르, 산드로 등이 타 상위권 클럽들이나 발베르데 밑에서도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19] 마냥 루초를 까기는 애매해 보일 수 있는데 분명히 루초가 선수 기용에 있어서 까여야 하는 것은 맞으나, 루초 입장에서 그들이 과연 로테이션을 할 만한 레벨의 선수들인가에 대해서는 확실히 의문이 들었을 확률이 높아서다. 발베르데도 시즌 중반부터 저들을 선호하지 않으면서 루초의 선택이 나름 합리적이기는 했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선수 개개인의 폼을 봤을 때 이야기고 루초의 선수 기용에 대해서 비판이 나오는 건 좀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중원이다. 이니에스타의 노쇠화나 라키티치가 혹사로 폼이 저하됨에도 대체자를 못 구한 것은 재능 있는 선수의 부재라던가 여러 이유를 들며 옹호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후임 감독 발베르데도 그만큼 굴려먹고 있고. 그러나 그건 부임한지 얼마 안되는 감독에게 통하는 말이지 햇수로 3년을 부임한 감독이 중원의 핵심 선수 체력 안배해줄 로테 자원을 제대로 안 구한 건 문제가 크다.

15-16 시즌은 이적시장 징계가 크게 작용하긴 했으나 징계 전 투란을 중미로 쓰려고 데려와서 실패했다. 문제는 투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백업 자리를 대체하지 못했고 그 결과가 라키티치의 혹사로 이어졌다. 쓸 선수가 없었다고 하기엔 코파 델 레이에서 3부 리그 팀인 에르쿨레스와의 경기에서도 풀타임 출장시킨 바 있어서 무의미하다. 3년차인 16-17 시즌 앙고-데니스 사가도 발렌시아 시절 앙고는 전진력이 좋아 공격 전개를 위주로 해서 인혜의 대체자처럼 써먹을 수 있어 보였으나 가장 중요한 패스 전개에 약점이 있었던 선수다. 그렇다고 기술력이 인혜만큼 나오는 것도 아니고 라키티치처럼 헌신적인 하드 워커로도 기대 이하다.[20]

엔리케가 이런 약점을 잘 극복시켰으면 모르겠으나 그것도 아니면서 주야장천 기용하며 팀에 암을 선사해준 게 문제. 아직 젊은 선수라 미래가 어떻게 될진 몰라도 이적료만 35 + 옵션 20m을 들여 데려와서는 서브로도 기대 이하라면 빼도 박도 못할 먹튀다. 거기다 선수 본인이 압박, 부담을 이겨내지 못해 고충을 토로하는 등 멘탈 문제도 보였다. 데수지의 기용을 바란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일단 멀티 플레이어에 싸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메짤라로 써도 되고 레프트윙으로 써도 되며 둘다 기대 이하라 할 지라도 유스 출신에 이적료가 바이백 옵션 발동한 거라 겨우 3.2m이다.

서브로 땜빵이나 하면서 하위권 팀 경기에 로테용으로 돌리고 방출해버려도 문제없으며 선수 본인이 남길 원해 남아도 팀에 불화를 일으키는 게 아니고서야 상관이 없다. 실제로 데수지는 발베르데 체제 하에서 9경기 정도를 명단 제외됨에도 바르사에서 성공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며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고 한 바 있다. 팀에 손해될 게 없는 셈.

중원이 황폐화 되어가는 와중에 연이은 이적 시장에서의 실패는 인혜의 노쇠화, 라키티치의 부진으로 인해 멀쩡하던 부스케츠에게까지 부담을 안겨줬다. 발베르데야 본인이 사온 것도 아닌데 당연히 더 나은 쪽을 기용할 수밖에 없다. 데수지를 키울 책임도 없고, 로테이션을 강요당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루초는 본인 시즌에 데려왔고 중원에 문제가 심각해져가는 만큼 데니스를 터트리든 앙고를 주전으로 발돋움 시키든 할 의무가 있었다. 정 안되겠으면 땜빵으로라도 쓰면서 주전 체력 안배라도 해주던가 어느 쪽도 하지 못했고 결과는 로테이션은 로테이션대로 없고 성적은 성적대로 안 나왔다.

포워드 백업도 마찬가지 논리인데 무니르, 산드로가 기량 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체자가 잘한다는 가정 하에 통할 말이고 데려온 파코의 활약상은 분명히 기대 이하였다. 무니르가 발렌시아 임대 가서 잘했던 것도 아니고 산드로도 말라가에서 잘했지만 에버튼에서 한계를 드러냈으니 도찐개찐이다 싶지만 문제는 파코를 돈 주고 사온 게 바르사라는 거. 이런 식으로 호구딜하며 B팀은 의미없어지고 이탈이 가속화되는데 팀에 적폐는 쌓이게 된 게 3년차였다.

결국 선수 기용에 대해 비판받는 근본적인 문제는 주전 선수단이 30대에 접어들게 되는 와중에도 마땅한 대체자나 백업을 구하지 못해 피로가 가중되고 선수단 포화를 유발해 장기적인 시즌 운영에 문제가 됐다는 점이다. 후임인 발베르데 체제 하에서 나름 공평하게 기회를 주며 실속도 챙겨보고 유망주 검증도 하며 옥석을 가린다고 해서 이게 루초를 감쌀 논리가 되진 않는다. 애초에 그걸 루초가 했어야 하고, 중원의 황폐화와 유망주의 이탈 문제는 지금도 계속 바르사를 괴롭히고 있다. 17-18 시즌 초 네이마르까지 이적해버리는 바람에 무관은 물론이고 팀에 암흑기가 도래할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은 벗어났으나 아직도 정리할 선수가 많고 약해진 중원은 골칫덩이로 남았다.


5.4.3. 전술[편집]


2선과 1선 공격수 위주의 범 4-3-3 계열 전술을 주로 선호한다. 그리고 MSN이 막강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를 무작정 비난하기도 어렵다.

중원을 사이드로 벌리되 이반 라키티치가 좀더 많이 뛰어주고 세르지오 부스케츠가 센터백과 양 풀백까지 과감히 전진할 수 있도록 해주면서 풀백 - 미들 - 격수로 이어지는 연계가 탁월할 때가 많다. 수비가 불안해보인 적이 많으나 압도적인 공격력이 그걸 상쇄했고 펩 시절 티키타카를 포기하고 중원을 상대에게 내주지만 패싱 플레이는 포기하지 않으면서 MSN을 통한 역습, 철퇴 축구로 상쇄했다. 라키티치의 포변이나 부스케츠가 티키타카 빨이란 오명에서 벗어난 것에서 알 수 있듯 현 선수들의 능력에 맞는 전술을 사용했다고 보면 되겠다.

문제는 공격력을 살리기 위해 전술을 몰빵하다보니 수비 가담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미, 특히 라키티치가 굉장히 혹사를 당했다. 메시, 아우베스와의 연계를 위해 오른쪽으로도 자주 이동하곤 하는 선수를 수비를 위해 밑으로 내려가게까지 하니 어마어마한 활동량이 요구됐고 이런 식으로 수비 문제가 발생하니 부스케츠의 전술적 중요도까지 상승, 부담이 커지게 된다. 이 선수들이 30대에 접어들 때였고 마땅한 대체자를 구하지 않다보니 폼이 떨어지면 팀의 근간이 흔들리는 위험이 닥친다는 건 불보듯 뻔했고 제일 먼저 인혜가 노쇠화로 부진하자 라키티치가 이쪽 저쪽 다 커버하다 혹사로 망가지고 부스케츠가 빈번히 올라갈 때가 많아져 라인이 높은 바르사 전술 특성상 수비가 바람 앞의 등불이 됐다.

이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잘 조정했으면 좋았겠지만 가장 큰 문제가 세부 전술에 대한 조정이 미미하단 것이다. 매번 복사 붙여넣기 소리를 들었고 이 와중에 왼쪽에서 조르디 알바와 네이마르 간의 연계가 원활하지 않음에도 방치해서 알바의 폼까지 떨어트리는 원인이 됐다. 사적으로도 둘은 친하긴커녕 사이가 안 좋아 네이마르의 경우 알바에게 일방적으로 쌍욕을 퍼부을 정도인데 피치 내에서도 네이마르가 굳이 밑으로 내려와 볼을 받아 플레이메이킹하는 건 좋으나 그 와중에 알바에게 공을 절대 내주지 않고 혼자 몰고 가는 플레이를 자주 보여 오버래핑과 주력의 강점을 지닌 알바를 써먹는 방법이 고작해야 오른쪽에서 메시가 롱패스로 찔러줄 때 받아먹는 정도가 끝. 이런 식으로 전술 자체가 특정 선수들에게 과도하게 몰빵시키는, 토탈 풋볼과는 굉장히 거리가 먼 운용이다.

결국 틀에 박혀 있단 게 크다. 꼭 한 포메이션만 고집한다고 해서 욕할 이유는 없다. 실제로 빅클럽 명장들이라고 여러 포메이션을 두루두루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포메이션이란 게 현대 축구에서 의미가 퇴색된 감도 많이 있고.

루초의 바르사가 가졌던 문제는 포메이션 뿐만 아니라 세부 운용에서도 틀에 박힐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3-4-3처럼 미들 수를 조금 늘리던가 혹은 다른 선수들이 커버를 하게 해줘[21] 라키티치의 활동 반경을 줄여준다던가, 알바와 네이마르의 연계를 원활하게 만든다던가 등 세부적인 변화가 필요한데도 관망할 때가 많았다.

이렇다보니 로테이션의 감독이라는 평가와 달리 MSN은 로테이션과 거리가 있다. 세 시즌간 MSN의 기록을 살펴봐도 그렇다.

메시(57-49-53경기)는 2년차 무릎 부상으로 2달, 3년차 햄스트링으로 한달을 빠진 기간을 생각하면 의미가 없다. 발베르데가 메시 혹사시킨다고 욕먹는데 굴린 경기 수가 53경기에 15-16 때보다 200분 정도 더 뛰었다. 리그 37, 38라운드를 포함한다 해도 55경기다.

수아레스(43-53-51경기)는 징계로 빠진 1년차 제외하면 거기서 거기니 실질적으로 로테이션을 돌렸다 싶은 건 네이마르 한명(51-49-45경기)인데 그나마도 네이마르는 퇴장으로 인한 징계가 많았고 MSN의 로테이션 대다수가 전반기 때 행해지는 걸 감안하면 후반기에 미끄러진 2, 3년차 시즌이 절대 이상하지가 않다.

1년차의 경우 차비, 페드로, 하피냐가 건재했으나 각각 은퇴, 이적, 장기 부상으로 이탈한 후 뎁스가 얇아지자 본격적으로 루초의 역량이 평가받기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할 듯.

말년의 3-4-3 전술을 두고 무전술이 아니라느니 운운하지만 한 시즌이 채 가기도 전에 약빨이 떨어진 것에서 알 수 있듯 엔리케가 뛰어난 전술 역량으로 커버한 것이 아니다. 파리전 대승이나 엘 클라시코 원정 승리만을 두고 이런 말이 나오지만 실패한 시즌에 몇 경기 좀 잘했다고 찬양하는 건 어불성설.


5.4.4. 총평[편집]


정리해보자면 엔리케가 1년차에 거둔 트레블은 분명 큰 성과였다.[22][23] 전술 면에서 답답할 수는 있으나 가진 자원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감독이었다. 그러나 말년의 성적은 바르셀로나의 명성에 턱없이 부족한 성적이었고 성적을 위해 MS와 라키티치를 혹사시키고 알토란 같은 백업들을 줄줄이 내보내고 호구딜까지 행한 걸 감안하면 영광과 함께 큰 숙제를 안겨주고 떠난 감독이다. 성향만을 보면 축구계에 웬 야구감독이 있는 셈.[24]

확실한 것은 펩 과르디올라처럼 전술로서 경기를 지배했다기보다는, 기존 자원들의 재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끌어내는 식의 전술로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25] 결국, 바르사급 이외의 구단을 가게 돼도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둘 수 있냐에 대한 의문이 바로 거기에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게 가지고 있는 전술로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는 능력은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그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대표 경기는 로테이션에 연연할 필요가 없기 때문. 실제로 9월 A매치에선 어린 선수들을 주축으로 해서 월드컵 준우승 팀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6:0이라는 대승을 거두면서 가지고 있는 자원 활용만큼은 잘 한다는 점이 다시 화자되기 시작됐다. 하지만 월드컵에서 일본에게 패배하는 굴욕을 당했고[26] 모로코를 상대로 애무축구만 하다가 8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옛말이 되었다.


6.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아무리 무전술이니 선수빨이니 뭐니해도 트레블을 달성했다는 업적 덕분에 17-18 시즌부터 그를 데려오려는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가장 강력히 링크가 뜨고 있는 팀은 첼시 FC로 벌써 18-19 시즌 때 오기로 사전협의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첼시 팬들 입장에선 "무전술 엔리케보다는 그래도 콘테가 낫다" 라는 입장과 "그래도 트레블을 해본 감독이고 선수단과 불화만 일으키는 콘테는 하루빨리 경질해야 한다" 라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그 외에도 파리 생제르맹 FC아스널 FC와도 링크가 났다.

2018년 7월 9일 페르난도 이에로의 후임으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다. 기사 협상이 급진전되어 엔리케가 후임감독으로 내정되었으며 발표만 남았다는 기사가 떴다. 기사 그리고 얼마 안 지나 2년 계약으로 유로 2020까지 스페인 대표팀 감독을 맡기로 했다는 공식 발표가 떴다. 기사 팬들 사이에서는 무전술이라는 오명은 둘째 치더라도 16-17 시즌 때 바르사 세대 교체를 말아먹었던 엔리케가 스페인 국대의 세대 교체[27]를 잘 수행해낼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본인의 말로 깜짝 선발이 있을 예정이라고.

레알 마드리드에 있다가 바르셀로나에서 주장 및 감독직까지 해본 사람이라 정치적으로 위험한 발언이나 지역감정에 의한 엔트리 차별 논란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본인은 이에 대해 자신은 히혼 출신이라 그런 건 신경쓰지 않고 정치적인 의견은 표출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실제로 9월 A매치 때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만 6명을 차출해가고 오히려 스페인 주전이였던 바르셀로나의 선수인 조르디 알바를 차출하지 않으면서 전혀 다른 쪽으로 논란이 생겼다.[28]

첫 A매치를 앞두고 스페인 국가대표 선수들을 방탈출 카페로 데려갔다고 한다.#

첫 A매치 2연전을 전부 이기며 기분좋은 출발을 알렸다. 특히 월드컵 준우승을 한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젊은 선수가 주축인 된 스쿼드를 사용해서 6:0으로 대승했는데, 이는 크로아티아에게 A매치 최다 점수차 패배가 되었다.

그 이후에도 상당히 좋은 성적을 유지했으나 2019년 6월 19일, 갑자기 스페인 국가대표 감독직을 사임했다. 이유는 개인 가족 문제. 사임하기 전에도 가족 문제로 인해 경기에 나오지 못 한 적이 있었다.

2019년 8월 29일 그의 딸이 어린 나이에[29] 골육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딸의 투병으로 인해 스페인 감독직을 일찍 내려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엔리케의 사임 이후, 스페인 감독을 맡은 수석 코치 로베르트 모레노"엔리케가 돌아오면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뜻을 밝혔으며, 그 후 마음을 다시 추스렸는지 2019년 11월 19일에 복귀 선언을 했다.

하지만 복귀 이후 스페인 대표팀을 유로 본선에 올린 모레노와 복귀한 엔리케 사이에 갈등이 생겨 논란이 되고 있다. 모레노는 유로 본선에서도 계속 스페인 대표팀을 맡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는데 엔리케는 그걸 배신 행위로 받아 들인 모양인지 모레노를 수석 코치로도 복귀시키지 않고 내보내버렸다.[30]


6.1. UEFA 네이션스 리그/2020-21 시즌[편집]


그렇게 로베르트 모레노 없이 UEFA 네이션스 리그을 시작했으며 독일, 스위스, 우크라이나를 따돌리고 팀을 최종 결선에 진출시켰다. 특히 독일과의 경기에서 6대0이라는 엄청난 대승을 거두며 요아힘 뢰프 감독에게 비수를 꽂았다.[31]

그러나 지난 유로 때와 마찬가지로 선수 소집에 대하여 현지에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주된 공격 대상은 파블로 가비세르지 로베르토로, 유로 2020부터 레알 마드리드 선수를 발탁하지 않는 것과 맞물려서 FC 바르셀로나 유망주에게 과도하게 기회를 주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엔리케 감독은 이러한 주장에 인터뷰에서 자신이 축구를 더 잘 안다는 발언으로 응수했다.

2021년 10월 6일 네이션스리그 4강을 치렀다. 당시 이탈리아가 유로우승에 무패를 달리는데다가 이탈리아의 홈에서 펼쳐지는 경기이기에 쉽지않을 전망이 많았으나, 37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던 유로 우승팀 이탈리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이탈리아의 무패 행진을 마감시켰으며 유로 2020 4강전 승부차기 패배를 설욕했다. 경기내용에서도 원정팀인 스페인이 특유의 점유율 축구로 이탈리아를 압도했으며 2010년대 이후부터 이탈리아에게 상대전적에서 크게 우위를 보이는 분위기도 이어나갔으며, 이탈리아 원정에서 두 골이나 넣은 것은 1998년 친선전 2:2 무승부 이후 처음이다.

결승전에서는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와 맞붙었는데, 팀 고유 스타일일대로 스페인은 점유율, 프랑스는 역습을 활용한 경기가 이어졌다. 스페인이 선취득점을 먼저 올렸으나 이어 벤제마, 음바페에게 연속골을 허용하며 접전끝에 아쉬운 준우승에 머물렀다.


6.2. UEFA 유로 2020[편집]


UEFA 유로 2020[32] 본선에 나초 페르난데스를 뽑지 않고 에릭 가르시아를 뽑았고, 리그에서 13골 14도움을 한 이아고 아스파스를 거르고 파블로 사라비아, 아다마 트라오레를 뽑았다는 이유로 현지에서 엄청나게 까였다. 또한, 역사상 최초로 레알 마드리드 소속 선수가 단 한 명도 소집되지 않았다.

조별리그에서 2경기 연속 무를 캐며 위기에 빠졌다. 점유율은 두 경기 모두 70% 넘게 가져갔지만 결정력이 부족한 모라타만 주구장창 최전방에 박아놓음으로서 조별리그 탑시드 국가 중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다. 그래도 최종전 상대 슬로바키아를 5대0으로 부숴버려 16강 진출은 성공했다.

16강 상대 크로아티아와의 대결에서는 서로 8골이나 주고받는 난타전 끝에 5대3[33]으로 승리하며 8강에 진출했다.

8강전에서는 한 명이 퇴장당한 스위스를 상대로 1:1로 혈투를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심각한 결정력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다만 승부차기에서 스위스가 무려 3명이 연속으로 실축하며 9년만에 메이저 대회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후 4강에서는 이탈리아와 맞붙었고 경기력은 우위에 있었다는 평을 받았으나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준결승에서 대회를 마쳤다.(3위)

전력이 아래로 평가받는 팀 상대로 무승부나 신승을 거두는 등 경기력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했지만, 2012년 이후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세대 교체에 실패했다는 평을 받던 스페인을 이끌고 어린 선수로 팀을 완전히 개편하여 4강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에 엔리케의 지휘 능력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냉정히 말해 스페인의 스쿼드는 우승권이 아니었다. 주장이자 수비의 핵심인 세르히오 라모스가 부상으로 명단에 들지 못했고 월드클래스 라이트백 다니엘 카르바할도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했다. 이외에도 부상으로 빠진 선수가 워낙 많았던 데다가 핵심 센터백이던 이니고 마르티네스도 휴식에 전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차출을 거부했고, 팀내 코로나 확진자가 갑자기 불어나 급하게 예비 명단을 짜야했다. 이러한 악재 속에서 어린 선수들과 베테랑을 잘 조화시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끌어냈으며 특히 19살의 어린 선수인 페드리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며 새로운 스페인의 마에스트로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했다. 즉 어려운 상황 속에서 3년째 대표팀을 지휘하면서 어린 선수들로 리빌딩에 성공하여 좋은 성적까지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6.3.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편집]



파일:모로코스페인4.jpg


유럽예선에서 스웨덴에게 패하는 등 불안한 모습도 보였지만, 그래도 자국을 12회 연속 본선에 진출시켰다. 특히 본선 직행 여부가 달린 스웨덴과의 단두대 매치에서 17세 유망주 파블로 가비를 선발로 내세우는 신의 한 수를 선보이기도 했다. #

본선[34]에서는 일본, 독일, 코스타리카와 함께 죽음의 E조에 편성되었다. 참고로 같은 조에 속한 독일 대표팀의 감독 한지 플릭도 엔리케와 같이 2010년대에 클럽팀에서 트레블을 달성한 감독이다. 그야말로 두 명장이 만나는 셈이다.

한편 마지막 월드컵을 하는 세르히오 라모스를 최종 명단에 발탁시키지 않았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치른 요르단과의 평가전은 3대1로 완승했다.

그 후 조별 1차전 코스타리카를 7대0 대파했다. 점수도 점수지만 상대인 코스타리카가 슈팅은 커녕 코너킥조차 한번 시도하지 못한 것으로 1차전이지만 엔리케의 스페인이 빈틈이 전혀 없음을 보여주었다.

이후 독일과의 2차전은 1대1 무승부로 경기를 끝냈다.

3차전 일본전에서는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넣고 우세를 이어갔지만 후반에 들어서자마자 일본의 텐백과 게겐 프레싱 전술에 밀려 2:1로 역전당하게 되었는데, 동시에 진행되는 독일과 코스타리카의 경기에서 코스타리카가 잠시동안 독일에 앞서면서 조별리그 탈락 직전까지 갔었다. 그나마 얼마 가지 않아 독일이 동점골을 넣어 한시름 돌렸고, 경기 막판에는 독일이 역전골에 추가골까지 넣으면서 코스타리카의 패배가 유력해지자 조 1위로 진출할 경우 8강에서 만나는 브라질을 피하기 위한 브라질 탈압박 축구(?)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일본에 2:1로 패했고 조 2위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16강에서 모로코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8강 대진을 바라본 브라질 탈압박 축구가 무색하게 모로코의 수비벽에 막히며 90분 동안 한 골은 커녕 유효슈팅이 고작 1번밖에 나오지 않았을 뿐더러[35], 이어진 연장에서도 유효슈팅을 1개 추가하는데 그쳤다. 120분 패스 1050회를 기록할 동안 유효슈팅은 고작 2개를 기록한 것. 결국 승부차기에서도 한 골도 넣지 못하며 16강전에서 탈락(13위)하여, 지난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 이어 두 대회 연속 16강전에서 탈락을 하고 말았다. 또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부터 노출한 패스는 기록적으로 많지만 실속은 전혀 없는 스페인식 축구의 문제점을 여전히 고치지 못했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결국 탈락 직후 스페인 왕립 축구 연맹은 (엔리케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쓸쓸하게 대표팀을 떠났다. 후임은 2020 도쿄 올림픽 남자축구에서 스페인을 준우승시킨 루이스 데 라 푸엔테.


6.4. 전술 스타일[편집]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 유사하게 후방 빌드업 삼각 대형을 유지하며 짧은 패스로 풀어가는 축구를 위주로 하는 전술 베이스를 가지고 있지만 과르디올라 감독과의 큰 차이점은 짧은 패스를 선호하기는 하나 과감한 패스와 빠르고 직선적인 패스를 가미하는 스타일의 감독이다. 즉 엔리케의 스페인 역시 기본 전술은 티키타카다. 좋게 말하면 바르셀로나식 축구를 완성도 있게 선보일 수 있지만,[36] 확실한 득점원이 없으면 무기력하게 공만 돌리는 티키타카의 문제점 역시 고스란히 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드러나 비교적 약체였던 코스타리카전을 제외하면, 점유율은 높지만 확실한 해결사가 없다보니 U자 빌드업만 가져가다 결국 골은 못넣는 악순환을 반복하다 모로코와의 16강에서 승부차기 끝 탈락이란 결과를 낳게 된다.

7. 공백기 (2022 ~ 2023)[편집]


이후 디에고 시메오네의 뒤를 이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차기 감독으로 고려중이라고 한다. 기존 계속해서 링크가 있어왔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고려하였으나, 이는 거절하였다고 한다. 또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도 고려중이라고 한다.

런던에 도착해 그레이엄 포터 감독 후임을 찾는 첼시 FC의 감독직 후보 최상위로 언급되고 있으며, 런던에 방문해서 PPT를 포함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공개 면접을 봤다고 한다. 실제로 다른 감독직 후보군인 율리안 나겔스만과 아이디어에서 큰 차이를 보여서, 파브리지오 로마노에 의하면 이사회에서 이 아이디어를 비교평가하고 결정을 내릴 시간이 필요했을 정도라고 한다. 다만 엔리케 본인도 여름에 부임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결국 첼시에서 램파드를 임시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시즌 중도 부임 가능성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최종적으로 첼시는 엔리케를 후보에서 제외하게 되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엔리케의 요구 조건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던데다가 국가대표 감독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엔리케 사단의 코치들이 여러 클럽으로 흩어진 상태였고, 이 코치들의 계약 문제로 인해 사가가 지나치게 복잡해질 수밖에 없어서 엔리케를 최종 후보에서 포기했다고 한다.

토트넘 홋스퍼 FC의 차기 감독으로도 언급되고 있다. 5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토트넘의 차기 감독 후보 1순위라고는 하지만, 파리 생제르맹 FC도 엔리케를 원한다고 한다.

5월 들어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 후임으로 SSC 나폴리가 노리고 있었으나 결국 접는 수순이며, 여전히 엔리케는 토트넘이나 다른 PL팀 진출을 더욱더 선호한다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6월 1일, PSG의 각 ITK들의 소식에 의하면 파리 생제르맹 FC의 부임이 유력하다고 하며, 계약 기간은 2+1년이라고 알려졌다.

토트넘은 엔지 포스테코글루마르코 실바를 엔리케보다는 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고 한다. 이후 토트넘은 엔지 포스테코글루를 선임하였고 PSG도 나겔스만과 합의가 가까워졌으나 협상에서의 이견 차이로 인하여 결국 나겔스만이 PSG와의 협상이 최종 결렬되면서 토니 후안마르티의 언급에 따르면 엔리케와 티아고 모타 중 한 명이 PSG의 감독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PSG 관련 1티어급 기자인 로익 탄지가 PSG는 엔리케를 선임할 것이라는 보도를 했고, 파브리지오 로마노도 PSG와 엔리케가 협상 중이라는 보도를 하면서 엔리케의 PSG행이 기정사실화됐다. 현재 PSG는 미켈 아르테타, 샤비 알론소 등의 옵션들도 검토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위에 언급된 감독들은 모두 소속팀이 있기 때문에 부임이 어려워 보인다.

결국 6월 19일 르퀴프에 따르면 PSG 감독 부임이 사실상 확정되었다고 한다.

6월 30일 파브리지오 로마노HERE WE GO를 띄우며 PSG 부임이 거의 확정되었다. 2년 계약. 파리 보드진이 영입한 밀란 슈크리니아르, 마르코 아센시오, 뤼카 에르난데스, 이강인, 셰르 은두르, 마누엘 우가르테를 잘 사용해서 챔스 우승에 성공하는것이 관건이다.


8. 파리 생제르맹 FC[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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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5일, PSG 감독 부임 오피셜이 떴다. 계약 기간은 2025년까지.

8.1. 2023-24 시즌[편집]



8.1.1. 프리시즌[편집]


부임 전, 리오넬 메시가 인터 마이에미로 이적하였지만, 여러 선수들이 영입되었다. 밀란 슈크리니아르, 마르코 아센시오, 이강인, 마누엘 우가르테, 뤼카 에르난데스가 영입 되었고, 추가적으로 셰르 은두르가브리 베이가의 영입도 유럭한 상황이다. 이러한 영입들로 미드필더 진과 수비진을 재개편하여 이번 시즌 과연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성공 할 수 있을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프리시즌 경기에서는 전반적으로 엔리케의 단점들이 더 많이 드러나는 아쉬운 모습이 연이어 벌어졌고, 결국 4경기에서 단 1승[37]만 거두면서 걱정거리를 낳고 있다. 그래도 네이마르까지 나온 전북 현대 모터스전은 3:0 승리를 거뒀다.

이후 우스만 뎀벨레를 50m, 곤살루 하무스를 80m에 영입한다는 로마노의 보도가 떴다. 비록 음바페의 이적이 유력하긴 하지만 이 정도 금액을 쓰고도 챔스 우승에 실패한다면 파리 감독으로써의 위기에 놓일것으로 보인다.

8월 4일 파리가 루이스 캄포스와 엔리케 등 보드진들을 자를것이라는 몇몇 보도들이 있었으나 본인이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8월 8일 프리시즌까지의 모습을 보면 한쪽 측면은 직선적인 윙어를 배치하고 반대쪽은 풀백이 높게 올라오고 윙어는 안쪽으로 들어와서 하프 스페이스에서 플레이하는데 이 때 직선적인 윙어를 배치한 쪽의 풀백이 좁혀 들어오면서 변형 백3를 만든다. 문제는 가장 공격적인 풀백인 하키미는 오른쪽에서 뛰고 하프스페이스에서 플레이를 하는 롤에 가장 어울리는 네이마르는 왼쪽에서 뛰는데 이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였는데 결국 그냥 단순하게 하키미를 왼쪽에 배치했다. 좋게 말하면 굉장히 강한 전술적인 신념을 보여준 것이고 나쁘게 보면 굉장히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것.

8월 9일 곤살루 하무스의 영입 오피셜이 떴다. FFP 때문에 1년 임대 이후 80m 필수 바이옵션을 통해 이적한다. 또한 아르나우 테나스사비 시몬스[38]를 영입하면서 미래를 대비했다.


8.1.2. 전반기[편집]


그리고 1R FC 로리앙와의 경기에서도 이러한 고집스러운 모습이 또 나타나며 의미없는 패스만 하다가 공격 찬스도 제대로 못 만드는 상황이 또 발생했고, 결국 그렇게 90분을 내내 허비하다가 홈에서 0:0 무승부를 거두는 졸전을 펼쳤다. 감독으로서 전성기였던 바르셀로나 시절에도 세부 전술에는 약점이 있다는 평가였는데 세부 전술의 중요도가 더 커진 현재에 와서는 그 단점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전형적인 옛날 감독 테크를 타고 있는 걸로 보인다.

그 다음 경기인 2R 툴루즈 FC와의 경기에서도 졸전 끝에 1:1 무승부를 거두며 PSG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초반이긴 하지만 계속해서 이런 모습들을 보여주면 전임자들이었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크리스토프 갈티에보다도 더 평가가 안 좋아질 전망이다.

그나마 이후에 2연승을 거두면서 체면치레는 했으나 5R에서 심각한 졸전 끝에 OGC 니스에게 2:3으로 패배해 벌써부터 첫 패[39]를 쌓으면서 시즌 초반부터 좋지 않은 흐름을 또 이어가기 시작했고 이 경기 후에 팀의 경기력에 만족한다는 망언을 하면서 또 까이고 있다. 그나마 이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1차전에서 2:0으로 승리를 거뒀고, 비록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는 감독이 공석인 상태이긴 했지만 6R 르 클라시크 홈 경기에서는 최전방의 개인 기량을 살려주는 방향으로 조금이나마 전술의 골자를 수정해서 4:0으로 대승을 거두는 등 시즌 초반에 비하면 급한 불을 많이 끄긴 했다.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2차전 뉴캐슬 원정에서 4-2-4 포메이션으로 중원에 미드필더 성향의 자원을 겨우 2명만 놓는 중원 삭제 축구를 함과 동시에 압박에 취약한 수비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며 졸전 끝에 4:1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뉴캐슬을 대놓고 무시해 음바페와 뎀벨레 등의 개인 기량으로 털어먹을 것을 믿고 공격적인 전술을 들고 나왔다가 안일한 수비 전술로 얻어터지고 만 셈. 감독 본인은 비판 여론에 전술 문제라기보단 아직 시즌 초라 선수들의 호흡이 제대로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꾸준히 반복하다보면 경기력이 올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그럴지 아닐지는 지켜볼 일.

리그앙 9라운드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와의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했다. 다만 아직은 여전히 팀 조직력보단 몇몇 선수들의 개인기로 득점하고 있다는 인상이 남아있다. 여담으로 이강인도 국대 일정 이후 오래간만에 팀에 복귀해 선발로 나와 풀타임 소화했다.

[1] 과르디올라의 평전 승리의 길에서 나온 내용을 요약하자면 펩이 당시 4부리그에 있던 바르셀로나 B의 감독을 원하자 클럽의 수뇌부들은 펩을 바르사B 감독으로 임명하면 바르셀로나의 레전드를 4부리그로 보냈다고 사람들이 욕을 할것을 우려해 펩을 만류했으나 펩의 고집대로 결국 바르셀로나 B 감독으로 활동하게 된다.[2] 3위에 올랐기 때문에 본래대로라면 1부 리그로 승격되어야 하겠지만, A팀과 B팀은 같은 리그에 소속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승격하지 못했다.[3] 당초 AS 로마는 AC 키에보 베로나의 감독인 스테파노 피올리를 선임할 예정이었으나, 그가 US 팔레르모의 지휘봉을 잡자 루이스 엔리케로 목표를 바꾸었다.[4]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데 라 페냐가 이전에 AS 로마의 더비 라이벌 팀인 SS 라치오에서 2년 동안 선수로 활약한 경력이 있다는 점이다.[5] 한국 시간 2015년 5월 7일 기준.[6] 더불어 잠깐이나마 제기되던 메시와의 불화설도 어느 정도는 종식시킨 모양새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엔리케가 메시에게 조금 양보해 주는 모양새를 취해 줬다고.[7] 물론 바이에른 뮌헨의 전력 누수가 심각했으나, 준비한 대로 경기를 이끌어간 루초 역시 칭찬 받아 마땅한 경기였다. 그리고, 애초에 바이에른 뮌헨의 전력누수엔 로테이션을 모르는 과르디올라의 강행군의 폐해가 결코 적지 않기 때문에 운이라는 단어는 이 승부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사실 바르샤빠인 펩이 내부 스파이였다카더라[8] 이로써 루이스 엔리케호는 54전 46승 3무 5패, 승률 85.2%라는 시즌 성적을 거뒀는데, 이는 과르디올라 체제에서 가장 높은 승률을 거둔 09/10 시즌의 59전 45승 10무 4패, 76.3%를 아득히 뛰어넘었으며(물론 패는 엔리케가 1패 더 많긴 하다), 12/13 시즌 유프 하인케스바이에른 뮌헨이 거둔 54전 46승 5무 3패와 승률이 같다. 단, 하인케스의 바이에른이 덜 졌기 때문에 경기당 승점으로 환산하면 미세하게나마 하인케스 쪽이 조금 더 나은 성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엔리케 옹호자들은 당시 분데스리가보다 난이도가 높던 라리가 수준 차이를 거론한다. 어찌됐든 자체 최종 시즌 결과 60전 50승 4무 6패로 83.3%의 승률을 기록하였다.[9] 15-16 시즌 들어 워낙 빡빡한 경기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상대팀 전력과 무관하게 상대팀이 거세게 들이대면 가패에 가까운 경기 양상이 심심찮게 나온다.[10] 펩은 71%. 펩의 경우 토너먼트 승률이 썩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성적에 비해서는 승률을 많이(?) 깎아먹은 편.[11] 사실 축구 감독 역시 승률 60%가 넘으면 상당한 고승률을 찍는 것이다.[12] 모리뉴가 77%.[13] 이는 전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이었던 카를로 안첼로티의 사례와도 비슷한 점을 보인다. 주전 선수를 휴식없이 돌리면서 공식 경기 22연승을 달리다가 모드리치 부상과 더불어 주전 선수들의 체력이 바닥나서 결국 타이틀을 놓쳤던 것.[14] 알기쉽게 말하자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그 성적이 동일하다.[15] 다만 이것에 대해선 확실히 해둘 것이 있는데, 바르셀로나가 챔피언스 16강 2차전에서 썼던 쓰리백 전술은 과거 이전에도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던 위기 상황에도 자주 쓰이던 전술이다. 수비라인은 하프라인 끝까지 올리는 정말 잃을 것이 없을 때만 쓸 수 있는 리스크가 큰 바르사의 전통적 전술이기 때문에 엔리케는 감독으로써 전술을 짰다기 보단 팀의 과거의 전술을 본인이 이용한 것 뿐이다. 어디까지나 선수들이 제 몫을 해준 것이지 엔리케 본인의 힘이 작용하여 캄프 누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은 절대 아니다.[16] 농담같지만 엄연히 실제로 한 인터뷰다. 물론 자신의 능력이 선수빨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MSN의 위대함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에서 한 말이다.[17] 당연히 무전술까진 아니었지만, 사실 엔리케는 매니지먼트에 강점이 있었지 전술에 강점이 있는 감독은 아니었다.[18] 양아들 문제도 있었다. 특히 제레미 마티유안드레 고메스. 마티유의 실력은 꾸레들의 눈을 썩게 하고도 남았는데, 요상하게도 마티유보다 괜찮았던 마르크 바르트라는 거의 쓰지 않았다. 고메스의 경우엔 항목에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바르사의 스타일과도 맞지 않았고, 그를 총애하면서도 정작 선수의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포메이션과 역할을 부여해, 고메스는 바르사에서 애매했을 뿐만 아니라,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19] 데수지는 메짤라, 레프트 윙으로 써먹으려 했는데 잘 안됐고 다른 미들 자리에선 앙고에게도 밀렸다. 삼페르는 그라나다에서 장기 부상을 당했고 산드로는 에버튼 갔다가 다시 부진에 빠져 라리가로 리턴[20] 이 시즌 말라가전이 대표적인데 선발 출장해서 볼 경합 승률이 16%, 공중볼 경합은 25%, 60분동안 패스를 24번 했다. 이보다 저조한 선수는 20번의 패스를 기록한 골키퍼 슈테겐 뿐.[21] 발베르데의 4-4-2 전술이 딱 이렇다. 메시가 중앙으로 치고 들어갈 때 알바와 파울리뉴가 올라가고 빈자리는 이니에스타와 로베르토 커버, 피케가 측면으로 가서 중앙이 비면 부스케츠가 내려와서 막아주는 이전의 4-3-3 같은 운용이나 부스케츠가 내려가 3백을 형성하면 좌우 미들이 중앙에 가담하고 측면에 풀백을 배치하는 3-5-2, 메시가 내려오면 밑으로 이니에스타-라키티치-로베르토가 역 삼각을 형성해 3-3-1-3이 되기도 하는데 라키티치가 오른쪽까지 전부 커버하기보다 중앙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것.[22] 이 시즌 바르사는 10-11 만큼의 임팩트가 아니라던가 전력 비교할 때도 후순위로 밀리곤 하지만 챔스에선 조별리그는 키프로스 아포엘 FC, 에레디비시 AFC 아약스, 리그앙 파리 생제르망, 16강 EPL 맨시티, 8강 파리, 4강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 결승 세리에 유벤투스까지 전부 전 시즌 리그 챔피언들이었으나 다 이겼고 시즌 50승을 거두며 트레블을 이뤘으니 데이터만 보면 최고의 성적이다.[23]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 아무리 월드클래스 선수들로 선수단을 짜도 우승컵 하나 들어올리는 게, 그것도 라리가라는 세계 최고의 리그 중 하나인 곳에서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그런 조건에서 트레블을 들어올린 건 엔리케 감독의 영향력이 미미해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선수들 개개인의 역량을 잘 활용해 경기중에 뽑아내는 것 역시 전술만큼 중요하단 이야기다. 대표적으로 퍼거슨 전 감독이 이 부분에선 1인자였다.[24] 단장에 힘을 실어주는 이적시장, 전술보단 매니징 위주, 기계적이라 할 수 있는 로테이션을 바탕으로 하는 선수 운용 등.[25] 한준희해설위원이 펩과 엔리케의 바르샤를 평가했을때 "펩은 볼을 지배했지만 엔리케는 골을 지배했다"라고 평가한적이 있다.[26] 물론 이는 모리야스 하지메 체제의 일본이 월드컵에 가까워지면서 급성장을 한 탓도 있다.[27] 당장 이니에스타가 월드컵 직후 은퇴를 선언했으며, 피케, 실바도 은퇴를 선언했고 남아공 월드컵 ~ 유로 2012 세대들도 대부분 30이 넘어서 세대 교체를 어느정도 단행해내야 할 때다.[28] 바르셀로나 시절, 제레미 마티유를 고집하면서 조르디 알바를 스쿼드에서 배제하면서 불화설이 있었는데, 이 불화설의 연장선상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정작 꾸레들은 레프트백 백업도 없는데 바르셀로나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알바를 쉬게 해준다고 좋아했다 다만 그 이후 UEFA 유로 2020 본선에서도 정상적으로 차출되면서 그저 해프닝으로만 남긴 했지만.[29] 만으로 9살의 어린 아이다.[30] 사실 앤리케는 모래노가 수석코치 하기에는 너무 컸고 감독으로서 이미 준비되어있다고 평가한적이 있다.[31] 유망주들과 베테랑들의 완벽한 활약이 빛나 독일의 공격을 유효슈팅 0개로 완전히 묶어버렸고 점유율 70대 30으로 중원 역시 무너뜨리며 짓밟았다. 노이어에게 프로 경력 최다 실점을 선사한 것은 덤.[32] 24개국 본선[33] 연장전 스코어나 승부차기 스코어가 아닌 120분 정규 스코어다.[34] 마지막 32개국 본선 체제이며, 다음 2026월드컵 부터는 48개국 본선으로 확대된다.[35] 심지어 전반전에 기록한 슈팅수는 1개였다.[36] 루초 본인이 바르셀로나의 선수와 감독을 다 해봤기 때문에 전술의 완성도는 굉장히 높다.[37] 일본투어에서는 1무 2패로 아예 1승도 거두지 못했다.[38] 영입 이후 RB 라이프치히로 임대 이적[39] 참고로 갈티에 체제였던 지난 시즌에는 17R RC 랑스전에서야 리그에서 첫 패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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